국가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특히 인종적 특성으로 국가를 규정하려는 방식은 세계 각국이 다문화 국가가 되면서 그 정당성을 잃었다. 반만년 역사의 한민족이라는 국가정체성은 2015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50만명을 넘어섰다. 광주광역시 인구를 훌쩍 넘는 수치다. 국민 100명 중 3명이 외국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75만명 내외의 귀화한 다문화 가족이 존재한다. 국제결혼이 전체 결혼의 10분의 1에 육박하고, 농촌지역 결혼의 절반이 국제결혼이다. 신생아 20명 가운데 1명은 다문화 가정 출신이고, 그 결과 다문화 가정 자녀 수는 20만명에 이른다.


2020년이 되면 청소년 인구의 20%가 다문화 가정 출신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한국은 급격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출산율 최저의 고학력 사회다. 당분간 이주노동자의 유입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으며, 이로 인한 한국 사회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다문화 정책은 국가 생존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셰리프와 사이드 쿠아시 형제,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범인들이다. 언론은 테러의 폭력성과 프랑스의 분노만을 다루고 있을 뿐, 테러범들이 어떤 사회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쿠아시 형제가 태어나 자란 곳은 파리 10구와 19구, 그리고 방리외 지역이며 바로 여기가 프랑스 다문화 정책의 적폐가 누적된 장소다. 프랑스의 이민자 비율은 약 10%로 추산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촉발된 이민의 물결은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북아프리카 식민지의 대규모 이민을 포함해 20세기 말까지 꾸준히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동화주의 이민정책은 한계에 봉착했다고 평가된다. 방리외 지역의 거대 공공아파트는 빈곤의 상징이 되었고, 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여러편 제작되었을 정도다. 한 영화의 제목은 <증오>다. 방리외 지역의 청년실업은 33%에 달한다. 실제로 몇년 전 프랑스 청년들의 폭력봉기 사태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동화주의의 실패는 프랑스 저소득층에 광범위하게 퍼진 무슬림과 아프리카 문화로 증명된다. 방리외 지역의 젊은이들은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가난은 사회계급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쿠아시 형제는 이런 곳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소매치기로 삶을 연명하다 지하디스트, 즉 무슬림 급진주의자가 되었다. 그들의 폭력은 용서받을 수 없으나, 테러의 사회적 배경 또한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보도한 아까이소라의 말처럼 “프랑스 사회 역시 이 사건의 원인제공자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엔 39개국에서 모여든 3만5000여명의 외국인이 집단 거주한다. 정부는 이곳을 ‘다문화 1번지’로 소개하며 다문화 정책의 홍보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오랫동안 연구한 오경석에 따르면 원곡동은 모순의 공간이다. “원곡동은 한국의 다문화 1번지라기보다는 한국 다문화주의의 이중성을 가장 극명하게 표출하는 공간적 사례”라는 것이다. 이주 노동자의 대부분이 거쳐가는 원곡동이 관용의 공간이 아니라 차별과 관료주의 포장의 공간으로 변질된다면, 그 적폐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날지 모른다.
이주 노동자들과의 일자리 경쟁이 심화되고, 학교에서 다문화 출신들이 차별받고, 그들이 게토로 소외되고, 분노가 증오로 폭발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에게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없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다문화 국가는 피할 수 없는 길이다.
< 김우재 - 초파리 유전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