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기업에 휘둘리는 나라

● 칼럼 2015. 6. 19. 17:21 Posted by SisaHan

사람들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만으로도 삼성의 위력은 눈부시다. 지난 1년 사이 전세계적으로 팔린 스마트폰 5대중 1대는 삼성이 만든 것이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선 부동의 1위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삼성은 ‘글로벌 재벌’의 반열에 올랐다.
미국의 포브스지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2000대 기업 순위에서 삼성전자는 20위에 당당히 올랐다. 덩달아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애플에 이어 세계 2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삼성전자만의 브랜드 파워도 세계 7위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제경제에서 삼성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난 2009년 베트남에 설립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공장이 거론된다.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허덕이던 베트남은 현지 삼성전자의 수출실적에 힘입어 무역 흑자국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베트남 전체 수출의 18%를 차지해 베트남 국가 경제를 뒷받침 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그 정도 일진대, 대한민국 안에서의 삼성의 절대적인 위상이야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룹차원에서 20개 주요 계열사만으로도 1년 총 매출이 390조원 규모로, 나라 전체의 1년 총 예산 360조원을 웃도는 데에서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삼성전자 한 회사가 국내 10대 그룹 상장기업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있을 정도로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경제를 좌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삼성의 실적이 부진하면 나라 전체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걱정들 한다.
문제는 삼성이 거대화하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여타 분야까지 막강한 영향력이 파급되고,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어휘가 세간에 회자되기 시작한지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풍성한 자금에, 막강한 경제비중, 그리고 치밀한 인맥관리와 정보기관에 버금간다는 정보력 등등 정부에 맞먹을 만한 삼성의 파워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나라가 기업에 휘둘린다는 부정적 표현이고, 경계를 촉구하는 심각한 조어다.


정치인들은 삼성의 ‘뒷돈’에 길들여진 탓인지 삼성 관련 기업들의 부정에 대한 국회추궁의 칼날이 무디기가 한량없다. 검찰은 삼성 수사에서 유독 맥을 못추고, 법원은 ‘솜방망이’판결을 내기 일쑤다. 법조와 조세를 비롯한 정부 고위직에 삼성 출신들 혹은 ‘삼성 장학생’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국정에 미치는 삼성의 입김은 ‘암묵적 비밀’에서 이젠 공공연한 현실이 되었다.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의 광고에 목을 매는 ‘제4부’ 언론도 그 영향권에서 예외가 아니다. 거기에 삼성맨, 삼성가족이 되겠다고 좁은 문에 몰려드는 수많은 청년들, 국민들을 감안하면 삼성의 위세에 나라전체가 휘둘리는 것은 틀림없다.
“X파일 사건, 반도체 백혈병 사건, 태안 기름유출 사건,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이 모든 사건과 사태에서 삼성은 언제나 예외였고 법 위에서 군림해 왔다. 이제 우리는 삼성이 한 나라 국민들의 생명이 걸린 메르스 사태에서조차 예외가 되고 법 위에 군림하는 사태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 과연 삼성공화국이다.”


어느 보건분야 전문가가 최근 기고한 글의 일부다. 삼성의 파워가 메르스라는 괴질파동의 현장에도 위력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감염된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삼성병원에서 나왔는데, 정부는 병원명 거론을 질질 끌다가 사태확산을 초래했다. 삼성병원의 실명 공개는 이 병원에 관련된 확진자가 17명이나 나온 뒤에야 뒷북치듯 이뤄졌다. 삼성서울병원은 최고의 시설과 의료진으로 소문 나 있다. 특히 병원장은 감염분야 권위자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상 메르스의 진원지가 됐다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그래서 “정부의 오판과 무능, 삼성의 자만과 의료 영리화가 부른 참화”라는 비판도 나온다. 기업의 영향력이 너무 비대해질 때 초래되는 폐해가 고스란히 나타난 전형적 사례인 것이다.
기업인 대통령이 국정을 기업마인드로 경영하려다 나라를 망친 MB의 추억을 망각해선 안된다. 기업은 기업에 충실해야지 타 영역에 마수를 뻗치면 마피아가 될 수 있다. 이윤에 눈먼 세상은 틀림없이 황폐해진다. 공직자와 국가기관은 기업의 이익이 아닌 오직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봉사해야 한다. 재벌 앞에 설설 기고 눈치보는 나라를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정부가 애플이나 구글 앞에만 서면 기가 죽고 작아지던가?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