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마디에…의원 159명 국회법 표결 불참
김무성 사과·청와대 환영 뜻…새정치 “국민 배신”
야당 불참 속 법안 처리 강행…정국 경색 심화

6일 오후, 본회의장 한쪽에 마련된 기표소 앞에 선 이들은 야당 의원들뿐이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거나, 자신들의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160명의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나 투표를 한 이는 정두언 의원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투표를 포기했다.

“투표하세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외침은 수차례 반복됐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투표를 서둘러 달라”고 독려했다. 움직이는 여당 의원들은 없었다. “빨리 투표나 끝내라”라고 야유를 보낼 뿐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까지 나서 야당 의원들을 향해 “그만해!”라고 소리쳤다. 투표가 시작되고 54분이 지나도록 여당 의원들의 움직임이 없자, 정 의장이 ‘투표 종료’를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재의를 요구(거부권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가 재의결을 시도했지만, 새누리당의 표결 불참(투표 불성립)으로 무산된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된 지 39일 만의 일이다.

이날 본회의에서 재의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전체 의석 298명(새누리당 160명, 새정치민주연합 130명, 정의당 5명, 무소속 3명) 가운데 과반인 의원 149명의 참석이 필요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들이 표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재의안 처리는 물거품으로 끝이 났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의원 등을 포함해 표결에 참석한 의원은 130명에 그쳤다. 국회법 개정안은 여당 의원들에 의해 19대 국회 회기 끝까지 처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재의결 무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집권 여당으로서 그 뜻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과정이야 어찌 됐든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국은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새누리당의 표결 불참으로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이 무산된 데 반발해, 국회법 외에 본회의에서 의결하기로 한 61개 법안 처리에 새정치연합이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새정치연합 원내지도부는 국회법 개정안 재의 절차가 마무리되면 나머지 법안 처리에 협조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의총에서 다수 의원들이 ‘의사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입장을 바꿨다. 새누리당은 이날 밤 9시40분께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열어 이른바 ‘크라우드펀딩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대부업법’(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법안을 처리했다. 야당은 “대한민국 의회 민주주의가 무너진 날”이라고 반발했다.

거부권 행사로 국회를 혼돈 속에 빠뜨린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오늘 국회의 결정은 헌법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라며 청와대의 공식입장을 전했다.

한편, 국회법 개정안 재의 절차가 무산됨에 따라 청와대와 당내 ‘친박계’(친박근혜계)로부터 사퇴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고민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김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