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축구경기가 시작됐다. 공격팀이 적진을 향해 볼을 걷어차며 시합이 막 뜨거워지나 싶은 순간, 무슨 일인지 갑자기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풀썩 풀썩 주저앉는다. 그렇게 양팀 선수들이 맥없는 모습으로 앉아 기도하듯 꿈쩍도 하지않자 심판들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만 있다.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생긴 이 돌발적인 사건은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선수들이 그라운드 곳곳에 주저앉아 ‘묵상’하는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은 뉴스통신으로 전세계에 전파됐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 주 그리스의 중부도시 라리사라는 곳에서 열린 프로축구 2부 리그 경기장에서 있던 소동이었다. 아니 사실은 소동이 아니라, 선수들의 ‘난민 사랑’이 만들어 낸 퍼포먼스였다. 이날 시합에 나선 두 팀 선수들은 자국 그리스를 비롯해 유럽 각국이 시리아 난민들을 박대하고 추방하면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바다에서 익사하는 등의 슬픈 뉴스가 전해지는 데 항의하고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뜻으로 경기 전에 2분 동안 침묵시위를 했다는 것이다. 심판들은 물론, 경기를 관전하려던 스탠드의 시민들도 모두 함께 묵념한 뒤 뜨거운 박수로 경기를 재개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거친 대결과 승퍠만이 관심사일 것 같은 메마른 축구경기장에 아름다운 인류애의 인정이 훈훈하게 감돈 것이다.

호주 총리의 따뜻한 모습도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 멜버른에서 길을 가던 맬컴 턴불 총리가 노숙자를 발견하고는 다가가 악수를 나누며 함께 웅크려 앉아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총리는 노숙자가 4개월 전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 뒤 거리로 나앉았다는 고단한 사정을 듣고 위로하면서 정부가 마련한 빈민과 노숙자 지원 프로그램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정치인이라고는 하지만, 호주 국회의원 가운데 두 번째 부자라는 턴불 총리에게 권위나 오만이 아닌 배려와 긍휼의 자세가 배어 있었던 것이다. 그 곳 언론들의 보도를 접하다 보면 호주 국민들이 마음 든든해 했음은 분명하다.
지난해 말 시리아 난민들이 자유당 정부의 포용으로 토론토 국제공항에 도착하던 장면에서 많은 캐나다인들이 긍지를 가졌던 감동이 새롭다. 갈수록 천덕꾸러기 신세들이 되어가는 그들을 이 나라는 총리와 장관이 직접 공항에 나가 따뜻한 품으로 맞아주어 지구촌의 선망을 샀다. 캐나다에는 인간애가 살아있는, 사랑이 흐르는 나라임을 과시한 것이다.

역시 지난 주, 미국 병원에서 중한 심장병으로 대수술을 받은 뒤 돈이 없어 호주의 집으로 돌아갈 엄두를 못내던 13살 소녀가 누리꾼들의 성원으로 이생의 마지막 소원을 이뤘다는 아름다운 외신도 있다. 이 소녀는 두달 전 오하이오의 병원에 와서 수술을 받았으나 악화돼 생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돌아갈 비용이 없어 이역 땅에서 가족과 떨어진 채 생명이 다해가는 슬픔에 처하고 말았다. 귀국을 위해서는 중환자실을 나와 의료장비를 갖춘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무려 21만여 달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에 가족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라인에 소식을 알렸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3천7백여명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비용을 초과했고, 호주 콴타스항공도 돕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삭막한 세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의외로 많다. ‘헬조선’이라는 한국에도 물론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사랑의 온도탑’이 100도를 넘겨 100.5도가 됐다는 뉴스도 있었다. 지난해 이웃돕기 성금이 목표액을 그만큼 초과해 3천446억원이나 걷혔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기업들 외에 개인기부가 1천793억원이나 됐다니, 겉으로는 치열한 아귀다툼의 세상 같아도 우리네 이웃사랑의 인정은 면면히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겠다며 혹한 속에 한 달 넘게 노숙하고 있는 젊은 학생들에게 텐트조차 못주게 했던 매정한 권력이 분노를 불렀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시민들이 찾아와 격려하며 따끈한 꿀차와 보온용품을 전하고, 밥차를 동원해 뜨끈한 밥과 국물을 대접한다.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들, 누나와 언니, 형과 오빠들이 그들을 감싸주고 있다. 누구보다 할머니들을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걱정한 갸륵한 젊은이들, 그들은 결코 미워할 적(敵)이거나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사랑하는 아들들이요 귀한 딸들이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냉기가 진동해도, 우리네 가슴 안쪽, 동네 골목마다에는 연민과 사랑이 살아 숨쉬며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가 내연하고 있음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래서 절망 보다는 희망을, 좌절 보다는 소생의 기력을 내며 다시 내일을 향해 달려갈 힘을 얻는 것이리라.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