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그랜드 벨리 통신 2

● 칼럼 2016. 12. 6. 20:08 Posted by SisaHan

저들을 어찌할꼬

이른 아침 커튼을 젖히니 검붉은 아침 해가 가까운 편백나무 숲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흐린 날씨가 연일 계속되는 요즘이라 탐스러운 해돋이는 반가움을 넘어 감동이었다. 나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일출 광경을 음미하다 아랫동네로 시선을 돌렸다. 된서리가 내려 희뿌옇던 동네가 아침 햇살이 닿자 말갛게 깨어나 신선함을 더한다. 싱그러운 나의 아침은 이렇게 찬란한데, 고국소식은 눈만 뜨면 해외 톱뉴스거리이니, 소시민의 출근길이 천근만근 무겁다.
 
나는 서둘러 채비를 차리고 근거리에 있는 사업장에 바쁜 듯 들어선다. 특별히 바쁜 일도 없건만 주위 시선을 의식하며 괜히 과장된 움직임을 하는 것이다. 그리곤 직원들이나 손님들에게 다소 과한 아침인사를 보낸다. 속에선 더 크게 더 신바람 나게 외치라고 하지만 생각 뿐 자격지심으로 움츠려드는 행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 말이라도 걸어오면 한 두 마디 단 답으로 끝내고 종종걸음 치기 일쑤다. 얼굴 맞대고 몇 마디 더 걸쳤다간 작금의 고국 사태로 이어지기 십상이라 나름대로 연막을 치는 것이다. 평소 활기 넘치는 나의 생활태도가 이렇게 위축되다보면 얼마 안가서 대인공포증까지 오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는 일상이다.

지금의 황망한 고국 상황은 내 개인의 잘못이 아니기에 자존심을 조금 굽히면 되련만 이곳 공직자들의 올곧은 집무 과정을 간접 경험하곤 더 안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다. 그 올곧은 공직자들이 내 가까운 이웃이자 우리의 고객이기에 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우리 가족이 터를 잡은 곳은 그랜드 밸리의 신흥주택지이다. 오래 전 주택단지가 완공되어 주민들의 입주가 끝났건만 외부공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어느 날 잘 조성된 인도를 느닷없이 파헤치는가 하면, 또 어느 날은 잘 마무리된 도로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다시 까는 작업을 반복하고, 많은 비가 내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공사 차량이 몇 대와서 맨홀 깊숙이 안전 점검을 한다. 그리곤 부족하다 싶으면 하수관을 교체하랴 부분 땜질을 하랴 며칠을 보낸다.
도로 곳곳에 빨간 깃발이 꽂히거나 주황색선이 그어지면 그 주변은 반드시 대형 공사로 이어진다. 주민의 입장에선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지만 책임자는 이에 아랑곳 않고 파고 묻기를 밥 먹듯이 한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개보수 작업은 주택 시공자와 관계 공무원의 끝없는 줄다리기였다.
정해진 규격이나 함량에서 조금이라도 미달되거나 오차가 생기면, 그 작업이 아무리 돈이 많이 들었던들 두 번 세 번 혹은 될 때까지 가야 완공 판정을 받는다. 오죽하면 시공업자를 측은하게 여겼을까.


구시가에서는 건물을 지은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완공 판정을 못 받은 사례가 있다. 처음엔 설마 했는데 이런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이해가 되었다.
주택 시공업자나 건물주 인들 부족한 부분을 금전으로 해결 보려는 마음이 왜 없었을까, 아니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끝까지 원칙을 고수하는 투철한 공인 정신을 가진 지방 공무원들이 한국의 현재 상황을 얼마나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 사람이라곤 유일한 우리 가족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 너무 커서 괴로운 것이다.
열심히 사는 소시민들에게 극도의 수치심을 안기는 저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국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는 날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