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세월호 참사가 정부의 총체적 무책임과 비리, 무능의 결과였음이 8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확인됐다. 희생자 가족들과 언론이 지적했던 그대로다.
세월호는 바다에 띄워선 안 되는 배였다. 증축된 세월호는 강한 풍속에서나 급선회할 때 옆으로 기울어지는 각도 등이 복원성 기준을 초과하고 있었다. 급변침 등에 전복할 우려가 컸던 것이다. 그런데도 선박검사를 맡은 한국선급은 증축 설계업체가 허위로 내놓은 시험보고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등 부실 검사 끝에 이를 승인했다. 애초 항로 취항이 불가능했는데도, 인천항만청은 청해진해운이 변조한 자료를 받아들여 세월호의 취항을 승인했다. 인천해경은 심사 전 사흘간 해운회사의 향응을 받고, 심사 필수서류도 제출하지 않은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을 승인했다. 그렇게 승인된 규정만으로도 이미 과적인데, 출항 당일 해운조합은 화물을 그보다 더 과적한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출항허가를 내줬다.
 
하나하나가 부실과 비리투성이다. 안전의 핵심 요소들이 그렇게 조작되고 확인되지 않은 채 배가 띄워졌으니 언제든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위험을 관계자들이 몰랐을 리도 없다. 생때같은 목숨을 죽게 만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고 뒤에도 구조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무능과 무책임으로 다 날려버렸다. 최초 신고를 접수한 전남소방본부는 ‘해상 사고는 해경 소관’이라는 이유로 21분가량을 흘려보냈고,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는 건성건성 근무하다 뒤늦게 통지를 받은 뒤에도 긴박한 사고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못해 사고 초기 구조의 ‘골든타임’ 47분을 허송했다. 현장의 해경 123정이나 목포해경도 승객의 퇴선을 지시하거나 적극 유도하지 않았다. 해경본청은 배가 가라앉는 순간까지 ‘여객선 자체 부력이 있으니 차분하게 구조하라’는 엉뚱한 지시만 했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전원구조 따위 확인되지 않은 언론보도를 전파하는 등 되레 혼란을 부채질했다. 제구실을 한 기관은 아예 없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부터 자리에 없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회 증언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후 늦게까지 7시간이 넘도록 박 대통령은 세월호와 관련한 회의는커녕 대면보고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김 실장은 당일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4월16일 대한민국은 대통령부터 부재했던 것이다.


정부가 7일 북한의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응원단 파견 제안을 받아들였다. 남북 단일팀 구성이나 공동 응원 등과는 거리가 있지만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북쪽이 평화공세를 계속하고 있으나 태도가 이전에 비해 그다지 달라진 건 아니다. 북쪽은 이날 발표한 ‘공화국 정부 성명’에서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고수하고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등 지금까지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공화국 정부 성명’이라는 형식이 이례적이긴 하지만 내용은 6월30일 내놓은 ‘국방위원회 특별제안’의 연장선에 있다. 자신의 노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여러 사안에 대한 책임을 남쪽에 돌리면서 남쪽이 굽히고 들어오기를 압박하는 것이다. 북쪽이 정말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뜻이 있다면 이런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북쪽과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정부는 이날 북쪽에 ‘비합리적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의 대화의 장에 조속히 나와야 한다’고 했는데, 정부가 ‘대화의 장’을 마련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의문이다. 실제로 ‘북쪽이 먼저 잘못을 인정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이제까지 정부 모습은 대화 재개 노력과는 거리가 있다. 남북 사이 신경전을 중단하고 생각 차이를 좁혀보겠다면 남쪽이 먼저 나서야 한다. 2월 한차례 열고 중단한 고위급 회담을 재개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최근의 동아시아 정세는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높인다. 우리나라는 갈수록 심해지는 미국·일본과 중국 사이 대결 구도에 끼여 운신 폭이 제한되고 있다. 북-일 협상의 진전 역시 한반도 관련 사안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을 좁히고 있다. 나아가 우리의 최대 현안인 북한 핵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남북 사이 갈등이 완화되지 않는다면 이런 양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거꾸로 남북관계가 잘 풀린다면 한반도 관련 현안들에 집중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게 된다.
 
과거 경험을 돌아보더라도 남북관계와 한반도 관련 현안의 진전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남북관계를 전환하려면 우리 정부의 의지와 창의적인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북쪽을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래서는 아무런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도 남북관계 개선에 반대하지 않는다. 정부 발상 전환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6.25 한국전쟁 때문에 북한은 우리에게 상당 기간 무서운 존재였고 배척 대상이었다. 한편 1960~70년대 경제성장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다 보니 사회주의 북한을 대안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중에 북한을 찬양하는 언동 때문에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와 탈냉전 후에는 국가보안법 사건 자체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꼭 친북 언행이 아닐지라도 진보 성향의 행동만 해도 법적 조치와는 무관하게 여론재판이 드세게 진행된다. 일단 종북-좌빨이라는 딱지부터 붙는다.
해방 후 60년대 초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군사적,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남북 체제경쟁은 70년대 중반에 남한의 절대적 우위로 끝났다. 남한은 이제 G-15 경제대국이 되었고 국제적 위상도 매우 높아졌다. 반면 90년대 중반에 시작된 탈북행렬이 아직도 이어질 정도로 북한은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핵·미사일 문제 때문에 여러해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다. 국가 이미지도 나쁜 편이다. 이렇게 남한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북한을 추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기에도 남한에 있다는 것인가? 종북 논쟁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치공세다.
 
좌익 빨갱이도 실체가 없는 공격용 용어다. 6.25를 전후하여 북한 체제가 좋다고 자진 월북한 사람들이 제법 된다. 그들은 스스로도 좌익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사람이 남한에는 없다고 본다. 다만, 정부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이 없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들도 북한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의 폐단을 지적하더라도 북한이 아니라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수준의 복지나 분배를 요구한다. 이 정도면 좌익이라 할 수도 없고 빨갱이는 더더욱 아니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는 통일 문제가 담론 차원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남남갈등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햇볕정책이 추진되자 우리 사회 내부에 이념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다른 대북정책으로 남북 교류협력이 일상화되면서 담론 차원에 머물러 있던 통일 문제가 현실 차원의 문제로 다가왔다. 그러자 분단체제하에서 누리던 기득권이 위협받게 될 것을 우려한 보수층의 저항이 시작됐다. 대북지원은 ‘퍼주기’, 대북협상은 ‘끌려다니기’로 매도됐다. 남북갈등과 차별화하기 위해 남남갈등이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했다. 보수층에서는 햇볕정책이 기본적으로 친북적이기 때문에 안보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한-미 동맹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동맹이 외교수단이 아니라 국가목표처럼 되어 버렸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 대(對) 분단체제하에서 구축된 기득권 유지 욕망 간의 충돌, 그것이 남남갈등의 출발점이고 친북-종북-좌빨 논쟁의 뿌리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만 해도 친북-반북 논쟁에 그쳤던 남남갈등은 이명박 정부 들어 종북-좌빨 논쟁으로 판이 커졌다.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는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 노력이나 대북정책 비판까지도 종북-좌빨로 매도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그 정도가 좀더 심해지는 것 같다.
종북-좌빨 논쟁이 우리 사회를 풍미하는 한, 남북 대화와 교류는 할 수 없다. 화해와 협력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남북관계 원리상, 이런 과정과 절차를 밟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종북 논쟁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한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통일 관련해서 아무런 업적도 남길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종북 논쟁은 실로 무서운 반통일·분단 이데올로기이고, 남북관계에는 북핵 문제보다 더 강력한 족쇄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제기했다면, 박 대통령은 자기 대북정책의 족쇄인 종북 논쟁부터 끝장내주어야 한다. 통일대박론을 제기할 때처럼 직접 나서야 한다.
< 정세현 - 원광대 총장, 전 통일부장관 >


일본정부 헌법해석 변경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의 시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개조했다.
아베 정부는 지난 1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헌법 해석 변경안을 각의 결정(국무회의 의결)했다. 일본이 1945년 패전 이후 69년 동안 지켜온 ‘전수방위 원칙’(공격은 하지 않고 방어만 하는 안보 원칙)과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면서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에 근본적인 변동이 불가피해졌다.
 
아베 총리는 각의 결정을 단행한 직후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결정했음을 공식 선언했다.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만전의 준비를 다하는 것이 (타국이) 일본에 전쟁을 걸려는 시도를 무너뜨리는 큰 힘이 된다. 이것이 억지력”이라며 “(일부의 우려와 달리)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하려는 국가가 되는 일은 없다”고 강변했다. 그는 나라 안팎의 강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결단에는 비난이 동반되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책임 있는 행동을 선택해 온 게 지금의 평화로운 일본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결정으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들었다”며 주변국의 우려와는 정반대되는 현실 인식도 드러냈다.

그러나 일본 언론들은 이번 결정이 일본 안보정책의 역사적 대전환점이 될 것으로 분석한다. 1972년 10월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이후 일본이 42년 동안 지켜온 헌법의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미국과 대등한 국가로 나아가려는 아베의 숙원도 담겨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통과된 각의 결정안에 “일본을 둘러싼 안보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할 때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을 받을 경우 필요 최소한도의 실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위의 조처로서 헌법상 허용된다고 판단하는 데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자위대의 무력 행사 범위가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 미국 등 타국까지 확대된 셈이다.
 
아베 정권의 이번 결정은 일본뿐 아니라 남북한, 미국,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미-일 동맹이 강화되고 이는 중국을 봉쇄하는 흐름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한반도 주변에서 자위대의 역할이 미군에 대한 ‘후방 지원’이라는 소극적인 역할에서 대폭 확대되는 것을 사실상 용인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게다가 한반도 유사사태(전시)가 발생할 경우 한국군의 작전권은 미국에 넘어가게 돼 있어 미국의 작전상의 판단에 따라 미국 정부가 일본에 자위대의 한반도 출병을 요청할 경우 한국 정부가 이를 막기는 사실상 쉽지 않은 구도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협력의 구도 속에서 일본의 군사 대국화 행보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함에 있어 한반도 안보 및 우리의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우리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중국 견제 카드를 늘린 미국은 일본의 결정을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일본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 도쿄=길윤형 특파원, 이용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