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주님의 증인된 삶

● 교회소식 2017. 7. 26. 17:58 Posted by SisaHan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


지난 2월1일부터 4월6일까지 65일 동안에 걸쳐 한국과 일본 선교여행하며 56일간 7천여명의 환자들을 위해 1:1로 사역하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일들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어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 살아계심을 분명히 믿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역사는 반드시 일어나서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일어나고 있음을 믿고 동일한 역사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강하게 나타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1, 20대중반부터 50년간을 딸국질로 고생해오며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우리교회 성도 아버님이 서울과 부산으로 연결된 단 한번의 전화기도로 깨끗이 치료됐다.


2, 서울 등촌동에서 이틀 집회 때, 3일 후면 수술이 예약돼 있던 폐암환자인 목사님이 마지막 날 내일이 수술이라 저녁집회에는 참석할 수 없다며 먼저 기도받고 갔는데 다음날 평택에서 집회할 때 찾아와서 암세포가 사라졌다며 의사가 ‘2달 후 다시 보자고 했다’며 섬기는 교회에 집회 요청을 해왔다. 물론 그 이후 깨끗이 치료됐다.


3, 강남 성모병원에서 10일간 40도가 넘는 고열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기도로 몇시간만에 회복되어 모든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와 이틀만에 초등학교 입학한 어린 아이.


4, 부산 집회 중, 3살 때 난간에서 떨어져 수술 부작용으로 평생을 소아마비로 알만큼 다리를 심하게 절고 허리 통증으로 40년 넘도록 고생해 온 40대 중반의 권사, 남편인 산부인과 의사가 밤이면 3~40분 정도를 마사지를 해줘야 1시간을 잤다고 했는데 기도받은 그날 다리도 정상이 됐고 남편이 마사지해주러 들어갔을 때에는 깊은 잠에 떨어져 다음날 7시까지 난생 처음 8시간 동안 깊은 잠을 잤다며 다음 날 간증을 했다.


5, 50세 된 IT 사업을 하고 있는 사업가가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가 통채로 떨어지면서 온몸을 다쳤고 특히 무릎은 6개의 쇠가 들어가 박힐만큼 중상을 입어 3년간 불구자로 고생하고 있던 중, 기도로 허리와 무릎을 동시에 완전하게 고침 받았다.


6, 5번 환자의 장인으로 이천에서 활동하시는 대한민국 도자기 명장인데, 흉선암 환자로 첫날 밤늦게 집회에 참석해서 기도받고 호홉이 아주 편안해지자, 이천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일부러 연락을 해서 귀한 도자기도 선물로 주었고, 온 가족이 집회를 통해 따님들이 기도해 온 대로 예수께로 회심하며 구원받은 가정으로 바뀌었다.


7, 백혈병으로 골수이식수술 후 골수이식 숙주반응으로 천식과 모든 합병증으로 호홉기질환 류마티스 약을 8년 넘게 매일 먹으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살아오다 집회에 찾아와 기도 후 하루 만에 완치되었다. 이외에 자살, 우울증, 동성애, 알콜중독, 허리통증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치료되었다. 성령을 받고 권능을 입은 증인들이 가는 곳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도다” 성령의 권능을 입고 말씀 의지하여 기도하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 김석재 목사 - 순복음영성교회 담임목사 >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고 구브로로 선교 떠났을 때 만 해도 자기들의 전하는 기독교복음이 온 세계에 충만하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그것은 언더우드와 아펜셀라가 1885년 조선에 도착해서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천만 크리스천의 기독교 대국이 된 것을 그들이 듣게 된다면 참으로 놀라움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우리는 니카라과 선교에서 느낍니다.

14년 전 갈릴리 장로교회가 외롭게 니카라과 단기선교에 나설 때만 해도 화산과 호수가 있는 시골 떼꽈나메교회에 국한 된 그저 미약하고 소박한 선교였습니다. 그러나 니카라과 단기선교 19회를 지나면서 오늘날 캐나다 전국 주요도시 밴쿠버. 에드몬톤. 위니펙. 토론토.오타와. 몬트리올. 뉴브런스윅 몽턴과 남미 콜롬비아와 니카라과 현지 한인교회를 비롯한 온 세계에 흩어진 12개 한인교회에서 참여한 100명의 장·단기선교사와 함께 미화 10만 달러가 넘는 재정으로 디리암바 지역과 레온 두 지역에서 목회자세미나와 의료사역과 안경사역과 어린이여름성경학교와 노방전도와 전도집회 사역을 통하여 수 천명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달하게 된 것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운 선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하나님께서 이끄셨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 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 우리가 이 일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주님 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사실 선교신학이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선교사로 오시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고, 제자들에게 선교를 명하시고,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셔서 사도들을 능력있게 하시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그들이 선교하러 가는 곳곳마다 성령께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고 회심자들을 주셔서 교회가 세워지게 하심으로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에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선교의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갈릴리교회가 지난 과거를 돌아 볼 때 만일 우리가 어렵고 힘든 그 때에 니카라과 선교를 중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이러한 열매가 맺힐 수 없었겠지요. 이 큰 영적 축복에서 제외되고 말았겠지요. 그러나 결국 우리 갈릴리교회가 지난 세월 동안 순교하는 마음으로 고락 간에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고 오늘날 연합 단기선교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상급과 축복이 크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선교에 관한 한 더 충성되고 확고한 신념으로 그리고 겸허하고 열린 마음으로 중남미선교회와 함께 계속 정진해 나가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 임수택 목사 - 갈릴리장로교회 담임목사, 중남미선교회장 >


[한마당] 구태에 젖어있는 외교관들

● 칼럼 2017. 7. 26. 17:45 Posted by SisaHan

한민족은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조선왕조만의 연륜도 5백년이다. 그 유구한 역사가 물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고 깊이 상처난 굴곡도 있었고 숱한 외침도 받아왔다. 하지만 백의민족의 명맥은 이어져 왔다. 홍익인간의 얼과 DNA는 죽지않고 살아서 민초들의 숨결과 혈관에 연면히 흘러왔다.
그 명맥이 위태로웠던 게 말까지 잃어버린 일제 36년이다. 36년은 오랜 역사에 비해 참 짧은 기간이다. 4백30년을 타국노예로 산 이스라엘 민족에 비하면 얼마나 짧은가. 그런데 그 역사의 짧은 단절과 외세 오염의 시기가, 이제 그 보다 두 배나 더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도 말끔하게 ‘정화’되지 않고 혼탁한 본류로 흘러내리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일제 잔재 친일 본색과 군국주의에 물든 독재 망령의 무리들이 단 36년으로 그쳤어야 할 오욕의 시대를 엿가락처럼 늘려서 위세를 떨져 왔고, 여전히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잔재 위력도 얼마간은 계속될 전망이니 참 질기고 독한 오염물질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그 실상은 현대사를 간단히 복기해 보면 명확하게 이해가 된다.
광복 후 분기충천했던 자주독립의 민족적 여망이 반민특위를 무력화 시킨 이승만 독재로 무산되어 버렸고, 4.19 혁명으로 되돌리려던 시도 역시 일본 천황에게 충성혈서를 썼다는 박정희 쿠데타로 무참히 짓밟혀 버렸다. 독재자가 총탄에 쓰러진 뒤 찾아 온 1980년 민주의 봄은 전두환의 군홧발이 깔아 뭉갰다.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민주화 진전은 독재군부 후계자와 그에 결탁한 변절 민주세력에 의해 도루묵이 됐다. 그리고 나서야 등장한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는 다시 득세한 독재 잔존 수구세력에 의해 어이없이 후퇴해 원점으로 되돌려졌다.
국정원의 정치공작 국기문란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의 몰상식 외교, 반인권과 불의한 역사의식, 거기에 국방을 위태롭게 하는 방산비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적폐들에서 일제 36년의 지독한 잔상들을 본다.


무려 1700만이 들고나온 촛불이 그 잔재와 악습을 불태우기 시작하며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연 것이 두 달 전이다. 그런데 여태껏 크게 달라진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수구 잔당들은 이번에도 다시 되돌려보려, 사사건건 반대하고 발목을 걸어 역사 퇴행과 불의한 기득권 유지의 검은 속셈을 노골화하고 있다. 친일성향 이사장 때문에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방송의 구성원들이 ‘친일’과 ‘민주’ ‘세월호’ ‘탄핵’ 등의 단어를 금기시 한다는 놀라운 증언이 나왔다. 지난 10년 망가질대로 망가진 문화방송은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빨갱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인물과 ‘탄핵은 잘못된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자들이 ‘지푸라기 권세’를 잡고있다. 질긴 친일독재 세력의 회귀본능을 가장 극명히 증언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적폐의 얼굴들이 어디 국내 뿐이겠는가. 새 시대의 도래를 거부하며 수구적 향수에 젖어 비정상의 정상화를 거북해 하는 세력들이 해외 이민사회라고 없을 리가 없다. 탄핵을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수감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며 국제 인권기구에 청원한다는 몰상식의 당당함에는 연민이 인다. 그저 그들은 민간인이고 이민자들이니 감(感)이 무디다고 치부한다손 치자. 정부의 관료로 국록을 먹고사는 외교관들은 어떻게 봐야 하나. 행정부의 수장이 바뀌고 국정철학과 지표가 쇄신됐는데도, 여전히 구태에 젖어 구 정권적인 사고와 행동에 머무는 공무원이라면 도태의 대상임을 잘 알텐데 말이다.


대사는 대통령을 대신해 국가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고위공직자이기에 특명전권대사라 한다. 나라의 정체성에 투철하여 정부간 교류와 교섭은 물론 재외국민 뒷바라지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외교관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선 중요한 시기에 부임한 캐나다 대사는 토론토를 첫 방문하면서 누구를 만나고 갔는가. ‘한인사회와의 소통과 열린 마음 다가가는 공관, 서비스 공관을 다짐했다’ 운운하는 입발린 보도자료에는 참 어이가 없다. 간담회에서 ‘새 대통령의 동포사회에 대한 관심’을 언급했다는 그가 만나고 간 인사들이 과연 새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길 부류였을까. 대사와 총영사가 은밀히 연락해 만난 연줄인사들이 과연 새 정부 새 시대를 이해하고 수렴할 만한 사람들이라고 믿고 만난 것인지, 아니면 시대와 정신이 바뀐 것을 거북해 하거나 애써 외면한 구습의 연장선에서 의례적인 ‘자기들만의 리그’ 이벤트 쇼를 재연했을 뿐인가.


친위그룹을 앞잡이로 사주하고 그들만을 상대하며 반대세력은 철저 배제·탄압한 불통 수구정권은 압도적으로 탄핵당했다. 그런데 그 단절돼야 할 악행이 아직도 횡행하고 거기에 외교의 첨병들이 젖어있는 현실은 이미 과도기라 변명할 때도 지났다. 적폐청산과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국가적 과제와 국정철학을 잘 모르거나 거부하는 공직자, 신선한 새 공기를 외면하고 탁한 옛 공기에서 계속 숨 쉬겠다는 외교관이라면 곧 호흡곤란이 올테고, 당연히 도태되어야 마땅하다.


< 김종천 편집인 >


케케묵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워낙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어서 다시금 음미하고 싶은 발언이 있다. 그것은 “다시 태어난다면 과학자가 아니라 상인이나 배관공이 되고 싶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발언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인슈타인의 이 말은 그 자신이 원자폭탄이라는 미증유의 대량살상무기가 세상에 출현하는 데 일조를 했다는 무거운 죄책감의 소산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아인슈타인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주요 계기가 되어 맨해튼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원폭 제조에 돌입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그 편지는 히틀러의 세계정복 야욕을 패퇴시켜야 한다는 절박한 시대적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나치독일은 미국의 원폭이 완성되기 전에 패망했고, 그 몇 달 뒤 일본이 항복한 것도 (오늘날 역사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기본적으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때문이 아니라 소련군에 의한 일본열도 점령이라는 임박한 위협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 때문이었다.


파시즘을 괴멸시키는 데 실효가 있었든 없었든, 핵무기란 인류사회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될 끔찍한 괴물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는 마땅히 폐기됐어야 했다. 그럼에도 전후에 열강 간의 가공할 핵무기 개발 경쟁이 격화되었고, 그 상황에서 아인슈타인은 누구보다 고통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1955년에 철학자 러셀과 함께 핵무기 개발 중지를 호소하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했던 것인데, 저 ‘배관공’ 이야기는 그런 배경 속에서 나왔던 것이다. 아인슈타인뿐만이 아니다. 맨해튼계획 이후 현대과학이 타락 일변도로 변질돼온 현실에 절망을 느낀 과학자들은 실제 한둘이 아니다. 어떤 경우이든, 그러한 자세는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을 함부로 건드림으로써 자연과 생명의 질서를 근원적으로 망가뜨려온 현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쓰라린 회의, 절망, 깊은 죄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아인슈타인이나 비주류 시민과학자들의 입장이 반드시 옳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양식과 정직성을 소유한 과학자라면, 현대과학이 저질러온 ‘죄’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현대과학의 죄 가운데 가장 중대한 것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전문영역을 넘어 월권을 행사해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잘 알다시피 원전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무수한 ‘타자’를 희생시켜야 비로소 성립 가능한 심히 폭력적인 시스템이라는 데 있다. 주의할 것은, 이런 문제들은 전부 원자력공학, 물리학, 화학 등등 전문분야의 좁은 식견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흔히 원자력 관련 과학자들은 원전문제는 무조건 자기들의 소관사항이고, 결정권도 자기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원전의 안전성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성, 방사능 의료문제, 심지어 윤리문제에 관해서도 그들은 마치 최종적 권위자인 것처럼 행세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말,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의 수반답게 대통령이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정지를 선포하며 ‘탈핵국가’를 향한 시나리오를 제시한 이후, 관련 학(업)계와 수구언론들은 봇물처럼 반대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그들은 대통령 1인의 ‘제왕적’ 결단으로 국가 중대사가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물론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제왕적 결정을 그만두자는 게 바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제안의 핵심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현재 건설중인 신고리 원전 5, 6호기의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그 기간 동안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무작위로 뽑힌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하여 그 시민배심원단이 숙의와 토의 끝에 최종적 결정을 내리면 그것을 따르겠다는 게 정부의 공표된 입장인데도, 그것은 무시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원자력계가 대통령의 ‘제왕적’ 결정 운운하는 것은 초점이 빗나간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그들도 모를 리 없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완강히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실은 국가의 중대사를 ‘전문가’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결정한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두를 만드는 것은 장인의 몫이겠지만, 구두를 신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구두를 신는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라는 것은 너무도 정당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게 어째서 틀렸다는 것인가.

<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