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곤 전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의 사퇴 후폭풍이 심상찮다. 공영방송 전반의 정상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8일 세월호 유족들이 희생자 영정을 들고 KBS을 방문한 다음날 김 전 보도국장은 길환영 KBS 사장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왔다”며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길 사장은 12일 백운기 시사제작국장을 새 보도국장에 임명했으나, KBS 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은 길 사장과 임창건 보도본부장이 퇴진하지 않으면 제작거부에 들어가겠다고 결의했다. <문화방송>(MBC)에서도 이날 차장급 이하 기자 120여명이 집단으로 ‘세월호 보도 사죄문’을 발표했고, 전국 18개 지역 계열사 기자들도 본사 기자들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KBC와 MBC 에서 한꺼번에 아래로부터 쇄신 운동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제 모습을 잃고 정권 보위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참담하게 망가진 그 속살이 낱낱이 드러났을 뿐이다. KBS보도국장이 다른 방송(<JTBC>)와 인터뷰하면서 자사 사장을 ‘공영방송 사장을 해서는 안 될 인물’로 지탄한 것만 보아도 KBS의 병증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MBC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MBC의 김장겸 보도국장은 세월호 유족을 “깡패”라고 부르며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고위 간부는 세월호 유족들에 대해 ‘그런 ×들은 (조문)해줄 필요 없어’라고 막말을 했다고 MBC 노조가 12일 공개했다. 이런 몰상식한 행태들이 결국 공영방송을 정권에 빌붙은 ‘종박방송’, ‘청영방송’이라는 굴욕적인 말을 듣는 지경으로까지 몰아간 것이다.
 
사실 공영방송이 이런 참담한 상황까지 몰락하지 않고 정상화할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MBC 기자들이 170일 넘도록 파업을 벌인 것은 공정방송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절치부심의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하의 김재철 사장 체제는 이들을 철저히 탄압하고, 박근혜 정부도 해직기자들을 복직시키는 정상화 조처를 팽개쳤다. 김재철 사장의 후예들이 사장 자리를 꿰차고 반언론적 행태를 이어갔다. 이런 사정은 KBS라고 결코 다르지 않다.
지금 KBS와 MBC 기자들의 집단 반발은 침몰한 공영방송을 구출하겠다는 몸부림이다. 이 몸부림이 또다시 무위로 끝난다면 공영방송은 영원히 국민의 버림을 받고 말 것이다. 기자들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