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길에 전나무 숲에 걸쳐진 도톰한 반달이 눈에 들어왔다. 한가위 보름달이 엊그제였는데 불과 며칠 사이 몰라보게 기울어져 있었다. 평소의 밤하늘은 만월이건 그믐이건 메마른 감성에 물기를 나르는 사색의 창구였는데 팔월 한가위 즈음의 밤하늘은 다른 의도로 자주 올려다보게 된다. 차오르는 달을 보며 다가 올 명절 걱정을 했고 기우는 달과 함께 해방감을 맞은 맏며느리의 속내가 그 속에 묻혔기 때문이리라.


매운 시집살이가 극에 달했던 때는 뭐니 뭐니 해도 명절 즈음이었다. 차례 음식 장만부터 수많은 친지들 접대까지 애송이 새댁이 넘어야 할 산은 왜 그렇게 많던지, 시어머니 불호령에 벌벌 떨어가며 눈물바람 몇 구비 돌고 나면 달은 저렇게 기울고 있었더랬다. 장손 며느리 자리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버거웠던 그 시절, 기우는 달을 보며 명절 내내 응어리졌던 가슴을 쓱쓱 문지르면 명치끝에 뭉쳐있던 해소 덩어리가 뿌리째 빠져 나가는 상쾌함이 있었다. 그때의 버릇대로 가슴을 문지르며 산책길 내내 한 생각에서 맴돌았다.

만 년 며느리로 머물 줄 알았던 내가 눈 깜빡 할 사이 시어머니가 되고 나니 시시때때 나의 처신이 올바른지 자문 할 때가 많다. 나의 시어머니께 보고 배운 대로 가자니 시대에 안 맞고, 시대에 맞추어 자유롭게 가려니 가족에 대한 며느리의 운신의 폭이 늘 그 자리이다. 우리의 윗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을 이끌어 갈 좋은 재목으로 훈육하면서 돈독한 고부 관계를 유지할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마침 우리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자연히 서양 사람들의 고부 관계는 어떨지 궁금하여 그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한다. 델리와 베이커리 파트를 담당한 시어머니는 깐깐한 인상의 소유자이고 주로 고기 파트를 담당한 며느리는 누가 봐도 선한 인상의 웃음 많은 새댁이다. 거기다가 시어머니는 경력 15년차이니 경력 5년차의 며느리가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많이 힘들겠다는 상상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쥴리! 어제 저녁에 토마스랑 영화 봤는데 좀 슬픈 장면에서 그가 눈물을 짰어요.”
“그랬어? 불쌍한 녀석, 쯔쯔. 근데 케티 넌 어땠는데?”
“약간 슬프긴 했지만 눈물 흘릴 정도는 아니었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전날 있었던 화제를 양념삼아 일을 하는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적잖이 쇼크를 받았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이름을 거침없이 부르고 나서는 덴, 아무리 문화차이라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과 함께, 내 마음은 약자로 여겼던 며느리 편에서 시어머니 쥴리 편으로 급선회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듣고 있으니 두 사람 모두 사심이 없어 보였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진득하게 나누며 궁금증을 풀어가는 관계, 일손이 달리면 양쪽에서 왔다 갔다 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 주인의 눈에 들도록 서로 엄호 해주는 가족애가 그대로 읽혀져 나는 색안경을 벗고 그들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서로 품고 토닥이고 나누는 그들의 고부 관계가 합리적이란 생각을 하면서 까짓 것 문화차이쯤이야 넘어서기로 했다.
 
거나했던 명절차림이 칠면조 구이로 대체된 지 오랜데 이 시기만 되면 일어나는 타향살이의 명절 증후군, 시어머니께 혼이 나서 눈물 찔끔거리던 것 까지도 그리움으로 남는다.
훗날 나의 며느리는 칠면조를 구우면서 가슴 부비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Thanks Giving 저녁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