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파분열의 원인도 된 교계예양

● 교회소식 2015. 2. 16. 13:13 Posted by SisaHan

피선교국에 대한 기독교국의 복음전파에 있어서 다수의 교파가 동시에, 사전의 계획과 사업의 분담 없이 활동이 중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일정한 원칙을 정하여 교파마다 일정지역을 분할, 혹은 예양(禮讓)하여 선교하도록 하는 제도나 조치를 ‘선교구역 분할’, 또는 교계예양(敎界禮讓)이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이 조치는 ‘분할’이란 말을 사용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교파간 협조, 이해, 협력 관계의 형성을 의미한다.

이런 노력이 처음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1893년 1월 28일 ‘선교사 공의회’이었다. 이 협의회에서는 장로교파 선교사 전원이 참석하여, 남 장로교회는 충청도와 전라도를 선교 책임지역으로 맡게 되었으며, 북 장로회 선교부는 이미 활동을 하고 있었던 황해, 평안도를 맡았고, 오스트레일리아 장로회 선교부는 경상도의 남부지역, 그리고 낙동강 이북의 경상도 지역은 북 장로회가 책임하도록 합의하였다.


하지만 같은 교파 안에서도 지역 배치에 따라 교회 신앙의 형태가 달라서 교파 내 분열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 선교구역 분할 정책은 63년 후인 1956년 9월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모인 제41회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철폐되었다.



[평신도 글마당] ‘12’의 힘

● 교회소식 2015. 2. 16. 13:10 Posted by SisaHan

미식축구인 풋볼을 수퍼볼(Super Bowl)이라 한다. 경기장이 거대한 국그릇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번 결승전은 아리조나 주 뉴잉글렌드 퍁리어츠(New England Patriats)팀과 지난해 우승자인 시애틀의 시호크(Seahawk)팀의 대결 이었다.
2월1일 일요일, 이 경기에는 진기한 기록들이 수립 되었다. 중계방송에서 광고는 초당 15만달러(1억 6천만원)을 받아냈고, 입장권은 예매가 진작 끝나서 암거래 값이 평균 한 장에 4,600달러(500만원), 일등석은 1만 달러(천백 만원)을 호가했다. 그 뿐이던가! 수퍼볼 중계동안 미국인들이 마셨던 맥주가 12억 3천만 리터, 치킨윙이 12억 5천만개, 감자칩이 5천80톤, 피자가 4백만 판 등으로 총 지출한 돈이 140억 3천백만 달러(약 15조원)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미국인들은 수퍼볼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오로지 우승컵인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Vince Lombardi Trophy)를 누가 차지하는가의 한 개임에 상상을 초월하는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 중에서도 시애틀에서의 수퍼볼에 대한 관심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마침 시애틀에 머무는동안 이 게임이 치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해의 우승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열망이 극에 달해 있었다. 참으로 흥미로운 응원이 바로 ‘12’라는 숫자 였다. 집집마다 12라는 숫자를 써서 붙여 두었고, 고속도로 주변 산에도 12라는 숫자를 크게 만들어 세워 두었다.
38년만에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지난 해의 영광을 살려내지 못하고 4쿼터에서 마지막 2분 2초를 남기고 28: 24로 석패를 당했지만, 시애틀 시민들은 아직도 12 라는 숫자를 집 앞에 붙여놓기도 하며, 기를 만들어 걸어 놓기도 했다.

수퍼볼은 각팀 11명의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뛴다. 그래서, 비록 경기장에 들어가 함께 뛰지는 못하지만, 모든 시민들이 자신들은 12번째의 선수로 경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토록 한 마음으로 뭉쳐진 힘은 선수들에게 더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전도와 선교다. 주님의 그 귀하신 사랑으로 빚진 자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은, 가끔 전도하지 못함과, 선교하지 못함에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이럴 때 우리들도 12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도의 현장이나 선교지에서 직접 뛰지는 못할 망정, 우리도 그곳에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적은 물질이지만 조금씩 이라도 힘을 합하여 선교지를 후원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현장에서 함께 뛰는 12번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사정으로 교회 일에 봉사가 힘든 분들도 계신다. 미안해 하거나,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된다. 우리들은 한 형제 자매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감을 보시고 크게 기뻐 하신다고 하셨다. 내 몸이 직접 봉사에 참여하지 못할 지라도, 기도로, 격려로, 충분히 기쁨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 시민들의 12번 정신이 나를 정신 번쩍들게 만들었다.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




동부신학교 김진 박사 상담학 공개강좌 ‘그리스도인 이해’

동부개혁장로회 신학교 캐나다분교(분교장 정관일 박사)가 김진 박사 초청 상담학 특별 공개강좌를 2월9일부터 12일까지 나흘간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가든교회 내에 있는 신학교(260 Yorkland Blvd., M2J 1R7)에서 진행 중이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전문의인 김진 박사는 미국 Calvin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신학과 정신의학의 접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독특한 분야의 사역자이다. 이번 강좌에는 관심있는 목회자들과 신학생 및 성도 등 30여명이 참석,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다.


김 박사는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는 인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출발하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 출발해 그 다음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이해할 때 먼저는 인간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순서”라고 전제,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을 인간으로 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다뤄보자”고 했다. 그는 강의에서 첫 날 ‘인간 이해의 필요성과 어떻게 하는 것인가’, 둘째와 셋째 날은 ‘인간 정신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정신적 현상들’을 설명했고, 나흘째인 12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과제인 성화의 문제에 인간 이해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강의하고 질의응답 시간도 갖는다.


김 박사는 강의에서 ‘억압’에 대해 설명, “인간은 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데서 삶을 시작하는 만큼 자연적으로 열세한 위치에서 인생경험을 시작하므로 가장 손쉽게 택하는 정신의 길”이라며 “억압이 바로 전치(轉置)와 투사(投射), 합리화, 동일시 등 정신적 현상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기초”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억압의 부작용으로 △정체성이 약해 타인에 의한 암시적 영향을 많이 받고, △분노의 표현을 하지 못하며 △억압된 분노가 엉뚱한 사람에게 분출된다는 등 사례를 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뢰감과 정신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 및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때 가능하다며 “가능한 좋은 작은 공동체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또 서로 다른 것을 동일시하는 전치에 대해 “본질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을 관련짓는 우매한 일을 하는 것도 인간의 정신”이라고 폐해를 지적하고 ‘투사’(projection)에 대해서도 극복의 방법을 제시했다. ‘투사’란 자신의 바람직스럽지 않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그 감정이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으로 보이게 하는 과정을 말한다. 흔히 볼 수 있는 투사행위로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노여운 감정 때문에 우려될 때 오히려 그 사람을 적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김 박사는 “투사에 의한 여러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부정적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식을 발전시키고, 자기 성찰을 훈련하며, 타인의 지적을 적극적으로 듣고 자신의 잘못이나 부정적 모습을 용기있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특히 신앙세계에서도 투사가 나타난다면서 “하나님 상(像)이 순수한 하나님에 자기가 만든 투사적 하나님 상을 가미하고, 순수한 신앙에 자신의 투사적 신앙내용을 덧입히는 것이 그렇다”면서 “항상 ‘만들어진 하나님 또는 신앙’,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하나님과 신앙을 만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문의: 416-554-7495 >



[기쁨과 소망] 수고 하세요

● 교회소식 2015. 2. 16. 12:56 Posted by SisaHan

캐나다에서 20년째 살지만, 아직도 영어로 생각이 되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게 된다. 그래서 종종 “이 표현은 영어로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말 중에서 어떤 표현은 영어로 번역하기 힘든 말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수고 하세요’이다. 한국에서는 아주 자주 쓰는 표현인데, 영어로 번역하기가 참 힘이 든다. 굳이 영어로 직역하면, ‘take pain’ (고통을 감당하세요)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 까? 영어에는 이런 인사도 없을 뿐 아니라, 이렇게 인사를 한다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게 만들 것이다. 가만히 보니깐 영어 인사 중에서 ‘수고 하세요’라는 인사와 제일 가까운 인사는 ‘take care’(잘 돌보세요) 또는 ‘take it easy.’(쉬엄쉬엄 하세요)와 같은 인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헤어질 때에 우리는 ‘take pain’(고생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너무 고생하지 마세요!(take care, take it easy)라고 인사를 한다. 인사의 정서가 달라도 많이 다르다. 실제로 내가 자주 가는 은행 직원은 헤어질 때에 나에게 ‘Don’t work too hard.’(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세요) 라고 인사를 자주 한다.

인사말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정서가 담겨져 있다. 전쟁이 많았던 유대인들이 ‘샬롬’(평화)이라고 인사를 한 것이나, 날씨가 안 좋은 영국인들이 ‘Good Morning’이라고 인사를 한 것이 그런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왜 헤어질 때에 ‘수고 하세요’라는 인사를 했을까? 고통스러운 우리의 역사 현실의 반영이라고 볼 수도 있고, 노력을 중시하는 유교의 문화, 인생을 고통으로 보는 불교의 문화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째든 배경에 상관없이 우리는 ‘수고 하세요’라는 인사를 계속 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인사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담아서 써야 할까?

나는 나름 이런 의미를 담아 보았다. 인생은 고(苦)이다. 그래서 인생은 고생(苦生)이다. 고통 없이 살 수 도 없을 뿐 아니라, 고생이 없이 사는 것이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생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살려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차피 고생할 바에는 의미 있는 고생을 하자는 것이다. 인간이 사랑 없는 고생을 하면 불행해지지만, 사랑 있는 고생을 하면 행복해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를 위해서 대신해서 고생을 하면 인생이 위대해 진다. 사실 우리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을 가지고, 누군가를 대신해서 고생한 분들이다. 예수님이 위대한 이유는 온 인류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고생을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고생의 철학을 담아서 ‘수고 하세요’라고 인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신이 남아서 수고를 하는 것은 누군가를 대신해서 하는 위대한 고생입니다. 누군가 대신해서 수고하는 당신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를 담아서, 새해부터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수고 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면 어떨까?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