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빅 브라더’를 꿈꾸나

● 칼럼 2015. 7. 17. 18:49 Posted by SisaHan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라는 거대한 3개 국가가 세계를 분할 통치하는 시대. 이들 3개 강국은 화평이 아닌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평화를 유지한다. 안보장사로 정권을 유지하는 독재의 모델이다. 특히 초강대국 오세아니아는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위협하는 대형 포스터가 거리마다, 건물마다 내걸려 총구처럼 노려본다.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이 장치돼 개개인의 내밀한 삶을 24시간 샅샅이 감시한다. 심지어 인적이 드문 숲속이나 들판에도 마이크로폰이 숨겨져 있다. 공중에는 수시로 헬리콥터가 배회하며 건물 안까지 들여다 본다.


거리마다 사상경찰이 돌아다니고, 반체제 인사는 고문을 통해 새로운 순응인간으로 개조해 버린다. 사람들의 본능인 성욕까지도 국가가 통제한다. 결혼과 섹스의 단 한가지 목적은 당에 봉사할 아이를 낳기 위해서 일 뿐이다. 당의 우두머리인 ‘빅 브라더’의 뜻에 맞지 않으면 문서나 신문, 녹음, 영화 등 과거의 모든 기록을 수시로 삭제하고 조작한다. ‘진리부’‘평화부’‘애정부’‘풍부부’ 등 4개의 정부 부서는 그 반대의 일을 하는 기관들이다. 진리부는 과거를 조작하는 일을 맡고, 평화부는 전쟁을 수행하는 부서다. 애정부는 사랑과는 상관없는 법과 질서를 규제한다. 풍부부는 경제를 담당하지만, 허황된 수치로 경제성과를 떠들면서도 백성을 굶주림으로 내몬다.
이쯤 서술을 들으면 대개 짐작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이야기다. ‘빅 브라더’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감시하며 조종하는 유리알 세상. 참으로 숨이 막히고 끔찍한 인간 말살의 감옥이고 지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쯤 거론하면 또 웬만큼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흔히 인터넷 감시나 전화도청이 횡행하고 거리마다 CCTV가 설치 돼 개인 사생활 보호가 위협받는 현실이라는 일반론적인 추세의 상황묘사에 그치는 말이 아니다. 한국의 거대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온 국민의 사이버와 모바일 생활을 전방위로 구석구석 훔쳐보고 있다는 무서운 정황이 폭로된 것이다.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 개발업체가 최근 되레 해킹을 당해 유출된 ‘고객’정보들로 인해 국정원의 ‘빅 브라더’ 유령이 양파껍질처럼 땅 위에 그 음험한 꼬리가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이 국제사회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는 ‘육군 5163부대’라는 위장명칭으로 해킹업체와 거래한 내역들을 보면, 구입의혹이 있는 ‘리모트 컨트롤 시스템(RCS)’은 그 위력이 공포 그 자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한 모든 인터넷 활동은 운영체제나 플랫폼, 암호화 등 어느 방호시스템에도 전혀 지장없이 실시간 들여다 보고 원격조종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종류는 달라도 셀폰, 즉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 역시 드물다. 앉으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걸어 가면서나 버스 지하철에서도 휴대전화나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바야흐로 만능기기 그 자체가 돼버린 내부에 온갖 정보가 담겨있고, 개인과 개인의 소통과 관계, 그들만의 속삭임과 은밀한 거래들까지, 사람들의 언행과 성향과 그가 가진 모든 정보들이 담겨 오고가는 통로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기관이 이 통로를 당사자도 모르게 장악하고 세세하게 감시를 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문을 걸어 잠근 자기 집 안방에 앉아 옷을 입고 있어도 알몸을 투시당하고, 사진 찍히고 손가락질의 표적이 되는, 한마디로 광장에 발가벗겨진 원숭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 것도 본인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니, “바로 나” 라고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은 더구나 2012 대선 당시 야당후보를 댓글 비방하는 선거공작으로 지탄을 받고 원장이 사법처리 당한 순간에도 해킹업체와 접촉해 스마트폰 도청용 불법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추진했다니, 그 저의와 철면피가 놀라울 뿐이다. “해외·대북 정보용”이라고 변명하지만, ‘국내용’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국가와 국민 안보에 진력하기는 고사하고 국민을 감시하는 데 거의 ‘무데뽀’ 수준이라면, 과연 누구를 위해 왜 존재하는 기관인지, ‘빅 브라더’를 꿈꾸는 독재정권의 앞잡이를 추구하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국정원 말고도 경찰과 군기관 등의 수상한 사이버 감시장비 확충이 잇달고 있다니, 이들 기관들이 국가나 국민을 받드는 게 아닌 정권을 위한 공작기관이라면, 정권과 함께 하루속히 사라져야만 국민들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 김종천 편집인 >



감사원이 14일 발표한 ‘해외자원개발사업 성과분석’ 성과감사 결과로 이명박 정부가 자랑하던 ‘자원외교’의 생생한 민낯을 거듭 확인한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1984년 이후 해외자원 개발을 위해 투자한 돈은 모두 169개 사업 35조8천억원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만 28조원이 투자됐다. 투자 규모에 비해 성과는 극히 미미했다. 석유의 경우 실제 도입 실적은 우리가 손에 쥔 지분의 0.4%(220만 배럴)에 불과했는데, 이마저도 대부분 3차례 시범 도입한 물량일 뿐이다. 더욱 심각한 건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설령 사업성이 떨어져 손실을 입었더라도 마음대로 중단할 수조차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감사원은 앞으로도 46개 사업에 46조6천억원이 추가로 투자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4월 예상했던 추가 투자금액 34조3천억원보다 12조원이나 늘어난 수치다. 당장 2019년까지 필요한 추가 투자규모만 22조원이 넘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말이 이보다 더 딱 들어맞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나랏돈을 생짜로 허공에 날려버린 것도 원통한 마당에,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 어깨로 옮겨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추가 투자액 대부분을 부채로 메워야 할뿐더러 사업을 진행한 자원 공기업의 재무위험 증가는 결국 미래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각각 221%와 220%인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의 부채비율은 2019년 320%, 692%로 늘어날 전망이다. 사정이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특히 이명박 정부가 철저한 준비나 투명한 절차 없이 실적 보여주기식 국책사업으로 해외자원 개발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탓이 제일 크다. 부실투성이 사업을 4조5천억원을 들여 덜컥 인수했다가 손실 확정액만 이미 1조5천억원을 넘긴 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 인수가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겉으로는 자원 공기업의 의사결정이라는 모양새를 띠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와 정권 실세가 모든 과정을 쥐락펴락한 정황은 충분히 드러난 상태다.


한때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무상급식 재정은 연간 2조원 남짓이다. 무책임한 정권이 날려버린 나랏돈 수십조원에 견줄 때 새발의 피에 불과한 액수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는 단순한 정책 실패 사례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책임자를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



국가정보원 쪽은 해킹을 통한 사이버 사찰 의혹에 대해 14일 국회 정보위원회 등에서 “민간인 사찰용이 아니라 대공수사와 대북·해외 정보전을 위한 기술 분석과 전략 수립 차원에서 해킹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 국정원은 우리 국민이 많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모델과 주요 인터넷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해킹하려 했다. 국내 사찰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유출된 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 판매업체의 내부 자료들을 보면, 국정원의 관심이 어디 있었는지는 분명하다. 국정원은 갤럭시 휴대전화 제품이 국내에서 출시될 때마다 업체에 보내 해킹을 의뢰했다. 해외 판매용이 아닌 국내 판매 제품을 굳이 해킹해 달라고 했으니 도·감청의 대상은 국내 사용자다. 지난해 3월에는 업체 쪽을 직접 만나 카카오톡에 대한 해킹을 강력히 주문했다. 한둘이 아닌 전체 대화방과 대화 내용을 다 들여다보겠다는 얘기다. 국내 보안업체가 개발한 백신프로그램 V3 모바일을 피해갈 기능 개발도 의뢰했다. 하나같이 국내용이다. 이러고도 대북 감시·해외 정보전 운운하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짓이다. 실제로 문제의 해킹 프로그램은 한국 통신체계를 벗어난 외국이나 북한에선 사용이 어렵다고 한다.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실제 해킹이 이뤄졌으리라고 볼 만한 정황도 여럿이다. 국정원은 2013년 10월 이탈리아 업체에 ‘서울공대 동창회 명부’라는 파일과 ‘천안함 조사’라는 영문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어 달라고 의뢰해 이를 전달받았다. 해킹 프로그램을 감시 대상자의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심기 위한 스파이웨어다. 그런 ‘미끼’는 최근인 6월 말까지 87차례 이상 제작 의뢰됐다고 한다. 미끼는 ‘떡볶이 맛집’ 따위 관심을 끌 만한 파일에 숨겨져 보내진다. 각기 다른 관심사를 지닌 여러 사람의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동시다발로 해킹해 도·감청하려 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감시 대상은 크게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의 용량이 제한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얼토당토않은 변명이다. 통째로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감시할 수 있으니 감시 대상은 사실상 무한대라고 봐야 한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감시했는지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황들만으로도 이미 경악할 일이다. 통제받지 않는 정보기관이 국민 일상과 의사소통을 몰래 전면적으로 감시해왔으니, 민주주의 체제의 존립 기반은 뿌리부터 위협받게 된다. 설령 국정원 주장대로 대공수사용이더라도 위헌·위법이고 비정상이기는 마찬가지다. 헌법상 통신 비밀을 침해하는 일이, 법관 영장도 없이, 여러 법을 위반하면서, 국정원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채 저질러졌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민주국가에서 용인될 수 있단 말인가.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정한 재발방지책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모든 화해는 좋은가?
그렇지 않다. 평화를 위한 화해가 있는가 하면, 평화를 가장한 화해도 있기 때문이다. 무릇 진정한 화해는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전환점이어야 한다.
1984년 9월22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베르됭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 70여년 전 프랑스군 55만명, 독일군 43만명이 죽임을 당하는 참혹한 전쟁이 있었던 장소에서 화해의 손을 맞잡은 것이다. 참혹한 전쟁이었던 만큼 어렵던 화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영원한 적’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은 더 이상 전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미테랑과 콜이 마주 잡은 손은 평화를 위한 화해였다.


하지만 이들의 화해는 서유럽 중심의 화해였다. 프랑스가 리비아에 공습을 퍼부어 카다피 정권의 마지막 숨줄을 끊을 때 독일은 프랑스 편이었다. 이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가 러시아를 향해 서서히 팽창해 나가는 데도 협조했다. 최근 그리스 사태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유럽 안에서도 약소국에 긴축을 강요하고 부담을 전가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는 그들만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아베 정부와 화해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라고 등을 미는 오바마 미국 정부에 적극 순응하는 모습이다. 이 흐름이 이어진다면 올해 안에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을 추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화해의 본질이 무엇일까? 그 답을 이번 유네스코 세계유산 결정에서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사실이 명기되지 않은 채 그 시설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쇼카손주쿠가 세계유산 1484-005로 등록이 되는 데 한국이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요시다 쇼인이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펼치고, 대동아공영론의 토대를 제시한 곳이다.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이 평등하다는 ‘일군만민론’ 아래 존왕양이를 주창한 곳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제자들을 배출하여 그 이론이 실천되도록 한 도장이다. 한국의 식민지배와 태평양전쟁의 사상적 모태가 세계유산이 되었고,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문제 제기조차 없었다.


요시다 쇼인은 19세기 중엽 막부가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자 “취하기 쉬운 조선과 만주, 지나를 복종시키고, 열강과의 교역에서 잃은 국부와 토지는 조선과 만주에서 보상받아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이런 주장은 서구 열강과의 경쟁에서 뒤지고 있던 일본의 일시적 책략이 아니었다. 일본 국체론의 불가결한 일환이었다. 삼한을 정벌했다는 진구(신공)황후와 조선을 침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황도를 밝게 하고 국위를 신장한” 인물로 칭송하며, 한국을 정벌하는 것은 떨어진 국위를 선양하여 황도를 밝히는 것으로 이론화했다.
아베 정부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사상적 근원지를 메이지 산업혁명 유적에 끼워넣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역사의 반역을 감행했다. 박근혜 정부는 강제노역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이 문제만을 부각시켜 오히려 더 본질적 문제인 쇼카손주쿠를 세계유산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는 아베 총리, 그를 사상적 스승으로 모시는 일본 우익에게 바치는 공물인가. 박근혜 정부는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아베 총리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싸우라고 부추기는 오바마 대통령에 부응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북아 안정을 위해 화해해야 할 북에는 손을 내밀고 있지 않다.
전쟁을 위한 화해를 도모하고, 평화를 위한 화해를 도외시하는 것은 역사적 죄악이다.

<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