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이복형 김정남, 말레이서 피살

● WORLD 2017. 2. 23. 18:45 Posted by SisaHan

13일 오전 공항서 여성 2명이 얼굴에 독극물, 병원이송 중 사망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피살됐다. 현지보도 등을 종합하면 김정남은 13일 오전 9시께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여성 2명에게 독침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고 살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은 현장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회복되지 못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의 경찰 책임자 압둘 아지즈 알리 경무관은 “월요일(13일)에 40대의 아픈 한국인 남성이 공항에서 발견돼 공항 직원들이 병원으로 옮겼으나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숨졌다”고 밝혔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로이터>는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숨진 북한 남성이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지 않고 쇼핑 구역에서 쓰러졌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숨진 남성의 신원이 김정남이라는 사실을 현지 경찰이 확인했다고 전했다.
김정남을 살해한 여성들은 범행 직후 택시를 타고 도주했으며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은 이들 여성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김정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의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출생한 장남이다. 한때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으나 2001년 5월 가짜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붙잡혀 추방된 뒤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정원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김정남에 대한 암살시도가 5년 전부터 이뤄졌고, 김정남은 이복동생에게 ‘살려달라’는 내용의 서신까지 보낸 것으로 전했다. 또 이번 사건은 독극물 테러로 추정되며, 암살을 수행한 여성 2명은 도주 중이지만 아직 말레이시아를 빠져나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1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 출석해 김정남 피살과 관련해 이같이 보고했다고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이 전했다. 김 의원 등에 따르면 이 원장은 “말레이시아 경찰 발표는 ‘김철’이라는 이름의 북한 여권을 가진 북한인이 사망했다는 것으로 김정남을 특정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날 중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과 신원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암살 상황에 대해선 현지시간 13일 오전 9시께 마카오행 비행기 탑승을 위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줄을 선 김정남에게 ‘아시아계’로 보이는 젊은 여성 2명이 접근, 이 중 한 여성이 김정남의 신체를 접촉한 이후 김정남이 공항 카운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 90분 넘게 발언
“강일권 재판관은 국회쪽 수석 대리인인가
뇌물·직권남용 등 섞어찌개 탄핵 소추” 비난

세월호 참사 관련 “대통령은 머리도 못깎나
여자대통령에 10분단위 보고…세상이 웃을일”
“오늘은 초콜릿 많이 가져왔다” 발언도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기일에서 김평우(왼쪽), 이동흡 등 박 대통령측 법률대리인단 변호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일원 재판관은 소추위원단의 수석 대변인인가.”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사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원색적인 용어를 동원해 비난했다.

대통령 변호인단의 김평우 변호사가 22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제16차 변론기일에 나와 돌연 원색적인 어조로 국회의 탄핵 소추와 관련 헌법 조항이 부당하다고 강변했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고 헌재 재판관과 국회 소추위원단을 꾸짖기도 하며 1시간30분이 넘게 발언을 이어갔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출신인 그는 재판관의 실명을 들며 비판하길 서슴지 않았다. 강일원 재판관이 국회의 준비서면의 내용을 정리하도록 지시한 것을 두고 ‘코치를 해줬다’면서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법관은 경기 선수가 아니라 심판이다. 공평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청구인의 법률구성이 잘못되면 청구를 기각하면 된다“면서 ”법관은 약자를 생각하는 것이 정도인데, 약한 여자 하나 편드는 게 아니라 똑똑하고 강한 변호사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은 법관이 해선 안 될 일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강 재판관이 증인 신문을 한 것도 문제로 삼았다. 그는 “(이전 기일 동영상을 보니)강 재판관이 증인 신문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청구인 쪽 증인에 대해선 별로 질문 안 하고 피청구인 쪽 증인에 대해서 주로 묻더라. 재판관이 한술 더 떠서 청구인 쪽 대리인이 발견 못 한 것을 발견해서 꼬집어 주는 것은 과한 것 아닌가”라면서 “자칫 오해하면 청구인의 ‘수석 대리인’이 되는 것이지 법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 재판관은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웃기만 했다.

보다 못한 이정미 재판장이 “말씀이 지나치시다. 수석 대변인이란 말을 이 자리에서 감히 하시면 안 된다”라며서 “주심 재판관이 주도하기 때문에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고, 증인들이 주로 피청구인 쪽 증인밖에 없었다. 사실관계는 아시고 말하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김 변호사는 이어 “다 보고 잘못된거 있으면 정식 사과하겠다. 죄송하게 됐네, 이 이야기 하게 돼서”라면서도 “이정미 재판관도 문제가 있다. 역사적이고 국제적인 심판이 이정미라는 특정 재판관의 퇴임 일자인 3월13일 선고에 맞춰서 과속으로 졸속 진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역사에 없는 섞어찌개 탄핵 소추다.” “국회의원들이 야쿠자(일본 조직폭력배)입니까?“ ”성경에 죄 없는 사람이 돌을 던지라했다“라며 국회의원들도 비판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의결할 때 사유 별로 투표하지 않고 탄핵안 찬반만 묻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법전 어디에도 뇌물, 직권남용, 강요를 합친 복합범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국회는 세계 어느 나라, 우리나라 검사도 하지 않는 뇌물죄, 직권남용, 강요를 하나의 복합범죄, ‘섞어찌개’로 만들어서 탄핵 소추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 위키피디아를 들어가 보라. 미국의 어느 탄핵 소추장에도 두 가지 범죄를 섞어서 소추한 예는 없다. 한국 국회는 안하무인으로 동서고금 세계 역사에 없는 섞어찌개를 개발해 13가지를 만들어 또 하나의 큰 통에 넣었다”

이어 “이분들이 역사에 없는 섞어찌개 소추안을 만든 것이 고의라면, 재판관과 5천만 국민을 속이려고 한 것으로 무고한 박근혜 대통령을 쫓아내고 조기 선거로 정권 잡겠다는 사기극이며 국정 농단의 대역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로 실질적으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것은 세계 유례 없는 한국만의 제도로 무죄 추정원칙에 위반되는 헌법 조항”이라고도 주장하며 헌법 조항이 부당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이 탄핵안이 가결되지 않으면 사직을 하겠다는 의미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을 두고 “국회의원이 무슨 야쿠자입니까”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서도 “세월호 피해자를 구조해야 할 책임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있나. 대통령에게 머리도 깎지 말고 밥도 먹지 말라고 하고, 국회의원은 놀고 술 먹어도 되나”라며 “성경에도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했는데, 더군다나 여자 대통령에게 10분 단위로 보고하라는 건 세상 사람이 알면 웃을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 재판 준비기일에서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사건 당시의 행적을 요구한 것은 헌법재판관들이었다.

그는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란 국회 소추위원단의 표현을 두고 “내가 서강대에서 한국 법제사를 강의한 사람인데 국정농단이란 단어는 경국대전에도 없다. 이건 당파 싸움할 때 상대당에게 쓰는 용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헌재가 어느 한쪽 편을 들면 안 된다”면서 “헌재가 없으면 시가전이 발생하고 내전상태에 들어간다. 영국 역사에 크롬웰 혁명으로 수십만명이 죽었다. 국회파와 대통령파가 직접 충돌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박한철 전 헌재소장 등 20명이 넘는 증인을 추가로 신청했다. 그는 “이정미 재판장 퇴임 전에 선고를 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대단히 우리 국민 혼란에 빠트린 장본인인 박 전 헌재 소장을 증인으로 불러서 어떤 취지에서 말했는지 증인으로 들어볼까 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통령 재단 설립 역사를 듣기 위해 극우 성향 복거일 소설가를, 국회 탄핵 표결의 적법절차상 문제점을 밝혀내겠다며 정세균 국회의장과 원내대표단 정진석, 우상호, 박지원 의원 등 20여명 이상의 증인을 추가로 신청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조갑제닷컴 출판사에서 <탄핵을 탄핵한다>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이정미 헌법 재판소장이 이날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 변론기일 끝에 변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을 두고 ”적절한 시간에 발언할 기회를 드릴 테니 보고 말씀하시면 된다”고 말하자, 이에 김 변호사는 “오늘 초콜릿을 많이 가져왔다”며 초콜릿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김지훈 기자>


손녀 리아에게 몇 살이냐고 물으면 아이는 검지와 중지로 브이 자를 만들며 “두 샬” 하고 자신 있게 외친다. 이를 본 어른들이 엄지를 세워주며 세 살임을 강조해도 아이는 부자연스런 손가락을 접으며 “아니야, 리아는 두 샬이야.” 하며 팔을 더 높이 치켜든다. 숫자 3 으로 도배된 생일잔치를 한 지 두어 달이 지났건만 아이의 인지는 아직도 세 살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나 보다. 아이의 생떼가 요즈음 내 마음과 같아서 “그래 세 살은 하고 싶을 때 하자.” 며 아이를 안아서 볼을 부빈다.


새해가 되면 떡국과 함께 자연스레 한 살씩 더해지던 나이를 몇 년 전부터 생일날로 미루곤 한다. 서양에 살면서 나이도 여기의 관습에 맞춰야 한다는 지론에서다. 하지만 막상 생일이 되면 ‘한 달 남짓 남은 새해에, 그러다가 설날에… ’ 하면서 고무줄 늘어뜨리듯 나이를 마음대로 늘려 잡기 일쑤다. 그러다 때때로 정확한 내 나이를 읊어보곤 우울한 기분에 들기도 한다. 수명 백세시대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쇠퇴해 가는 신체의 기능은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가능했던 일들이 하나 둘 줄어드는데 대한 상실감 내지 무력감에서 애꿎은 나이만 탓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이런 나를 꾸짖기라도 하듯 최근 모 방송국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지리산 어느 할머니의 일상은 죽비로 내리치듯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시리즈로 방영된 일주일 동안 잔잔한 여운과 함께 끌어 올려진 긍정의 힘은 앞으로의 삶에서 나이는 큰 제약이 아님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된 셈이다.


지리산 해발 700 m 고지의 어느 골짜기에 한 평생 억새풀처럼 살아가는 채옥(76세) 할머니가 살고 있다. 지리산에서 나고 자라 현재의 지리산 자락에 일가를 이룬 할머니는 이십 초반에 아들 하나를 얻자마자 청상과부가 되었다. 지리산 하면 산세 험한 것은 기본이요, 자연 또한 여자의 힘만으로 대항하기 벅찬 그곳에서 바람이 불면 바람결 따라 누웠다가 일어서고 한파가 몰아치면 그 속에서 강인함을 키워 새움으로 발돋움하기를 칠십 여년, 지금은 지리산의 일부분이 되어 어두운 주변을 환하게 밝히며 쉼 없이 달리고 있는 할머니이다.
카메라 앵글은 할머니의 사계절 활동영역을 가감 없이 잡아주었다. 가을철이면 자신의 인생역정을 닮았다는 억새풀을 베어다 말리고 간수하여 간편한 플라스틱 지붕 대신 억새 지붕만을 고집하는 우직함, 눈 쌓인 산야를 돌며 나무 삭정이를 주워 나르면서도 야생동물이 지나는 자리에 먹을거리를 놓아주는 따뜻함, 산비탈을 개간하여 힘들여 지은 농산물을 거동이 불편한 형제자매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나눠주고 돌보아 주는 가족애, 기억자로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며 봄에는 산나물 채취, 여름엔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며 삶을 영위해 가는 꿋꿋함 등에서 노년기의 허망함 따위는 발붙일 틈이 없어보였다. 할머니의 일상사를 들여다보며 문득 이런 말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렇게나 사는 마흔 살 사람보다 열심히 일하는 일흔 살의 노인이 더 명랑하고 희망적이다.’ 라는.


할머니의 일상에서 특이한 점은 세상과 단절된 환경이나 노령에 굴하지 않고 의욕과 노력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음이다. 다른 사람들이 운전대를 놓을 시기에 어렵게 운전면허를 따서 자신은 물론 이웃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가 하면, 겨우 한글을 터득한 수준으로 컴퓨터를 배워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한다. 철철이 주변 환경을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리면 그녀의 팔로워들은 지리산 자연을 간접으로 접하며 감사의 댓글을 올린다. 담당 PD에게 답글을 일일이 올려주고 싶어도 글 쓰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은 애잔함을 넘어 찐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디 그뿐인가. 평생 노동으로 인해 굳고 뭉툭해진 손으로 피아노를 배운다. 그리고 매일 밤 방바닥에 엎드려 일기 쓰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시시때때 ‘바쁘다 바빠’ 하고 외치면서도 피아노 연습과 일기 쓰기에 열중인 할머니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래 한곡 제대로 쳐 보는 것과 어설프지만 자신의 삶을 시로 표현해 보는 것이라 한다. 앞으로도 배우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힘은 들어도 신이 난다는 그녀는 발그레한 볼을 감싸며 열일곱 소녀의 모습으로 잠시 카메라를 응시하다가 방바닥에 납작 엎드린 낡은 전자오르간에 손을 올린다. 지리산 눈 속에 파묻힌 조그만 초가에서 할머니의 숨결 같은 피아노 소리가 한음 한음 따뜻하게 이어지며 끝을 맺었다.


소박하면서도 담백하게 엮어낸 다큐멘터리가 감동을 주는 건 주인공 할머니의 진솔하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전면에 포진하고 있었음이리라. 물리적인 거리, 신체적 불편함, 고령의 나이 등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삶을 열심히 개척해 가는 긍정적인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의 미래를 꿈꾼다. 나이는 그냥 숫자일 뿐, 불모지를 개척하듯 다방면으로 꾸준히 일구어 가꾸는 일에 매진하리라 다짐하면서.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칼럼] 청와대 압수수색과 법치

● 칼럼 2017. 2. 14. 21:39 Posted by SisaHan

법관, “법원이 증거제출명령을 내렸을 때 행정부는 그냥 무시해 버렸죠?” (중략) “당신이 그 사실(대통령의 위법 사실)을 모른다면 어떻게 대통령을 탄핵하죠?”/ 대통령 쪽 변호인, “안다면 탄핵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모른다면 탄핵할 수 없습니다.”/ 법관,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대통령이 불법을 지저르는 것을 알면, 탄핵할 수 있지만,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증거제출명령밖에 없을 땐, 탄핵할 수 없다. 고로 당신은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얘깁니다.”/ 법정 안에 폭소가 터졌다.
한국 법관과 박근혜 대통령 쪽 변호사 사이에 오간 얘기가 아니다.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벌어진, 대법관과 닉슨 대통령 쪽 변호사의 대화다. 권력자의 속성은 어디나 같아서 웬만하면 제 발로 내려오지 않는 모양이다.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는 책을 보면 워터게이트 사건 뒤 닉슨 사임까지의 상황이 지금 한국과 놀랄 만큼 닮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특별검사가 지방법원으로부터 증거제출명령서를 받았는데도 닉슨이 증거를 내지 않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특별검사가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는데도 청와대가 여기에 불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불응하는 이유도 닮았다. 닉슨 쪽 이유는 기밀 유지 등 대통령의 의무와 특권이 있으니 증거 제출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110조 1항을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2항은 “전항의 책임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했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가 어떤 것인지, 지금이 거기에 해당하는지 누가 판단하는가. 청와대의 판단이 틀리면 어떻게 할 건가.


앞의 연방대법원 법정에서 특별검사가 말했다. “근본 쟁점은 누가 헌법의 해석권자인가입니다. 대통령의 입장이 틀렸다면 누가 틀렸다고 말해줘야 합니까?” 닉슨 쪽은 대통령의 특권에 대한 최종판단 주체가 행정부라고 다툴 태세였다. 그걸 본 대법관들은 모두 닉슨이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는 데 일찍 동의했다. 대법원 연구관이 이런 의견서를 써서 돌려 읽고 웃고 찢어버렸단다. “행정부의 특권은 매우 중요한 원칙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다릅니다. 왜냐면 닉슨은 사기꾼이고 그 개자식을 누군가가 교도소에 처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특권이 쟁점으로 남았지만 논란 끝에 ‘군사, 외교에 관한 한’, ‘불가피한 경우에’ 등 대통령의 특권을 인정하는 표현이 다 사라지고 논리가 명쾌해졌다. ‘형사사법의 공정한 실현을 위해 요구되는 적법절차의 필요상’ 증거의 제출이 요구된다는 거였다. 최종 판단 주체는 대통령 아닌 법원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한 결정이었다.


청와대 압수수색을 놓고 법원의 영장이 우선이냐, 청와대의 거부권이 우선이냐 말들이 많다. 그 상태에서 압수수색이 안 되면 결국 최종 판단 주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마는 셈이 된다. 앞의 책은 증거제출명령에 관한 재판이 “법원의 기술적인 조치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헌정체제의 장래가 관련되는 사건”이었다고 썼다.
특검은 압수수색을 해서 청와대로 하여금 수색에 반대하는 준항고를 법원에 내게 하든지, 아니면 압수수색을 방해하는 이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해 법원의 판단을 받든지, 다른 절차를 찾든지, 어떻게든 사법부 판단을 구해야 한다.


< 임 범 -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