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촌식에서 이상화 선수 등 한국선수들이 공연을 보고 있다.

100여명 입촌식 “설레지만 큰 일 해낼 것”

“사진 한장만 찍어줘요!” “저두요!”
7일 오전 11시 강원도 강릉선추촌에서 열린 대한민국 선수단의 입촌식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의 열기가 그대로 전달됐다. 미니 취타대의 환영 연주를 배경으로 이승훈과 이상화 심석희 등 100여명의 대표선수와 임원들이 국기광장의 입촌식장에 들어서자 팬들은 환호를 질렀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을 비롯해 김지용 대한민국 선수단장, 전명규 선수단 부단장 등이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박수를 쳤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김기훈 강릉 선수촌장이 따뜻한 환영사로 선수들을 맞았다.


올림픽 오륜기가 게양되고 애국가 연주와 함께 태극기가 올라간 이후 선수단은 민요 ‘쾌지나 칭칭 나네’에 맞춰 둥글게 모여 사물놀이패와 비보이 공연단과 함께 어우러져 잠시의 여유를 즐겼다. 입촌식 행사는 선수들의 몸상태 유지를 위해 짧게 이뤄졌다.
스피드스케이팅 3연패에 도전하는 이상화 선수는 “제 자신을 이기면 된다. 누구와 싸우기보다는 그냥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게 있기 때문에 제 자신만 믿는다. 부담보다는 긴장과 설레임이 크다”고 말했다. 쇼트트랙의 심석희 선수는 “지금까지 잘 해왔다. 해온대로 끝까지 밀고갈 것”이라고 했다. 남북 아이하키단일팀의 골리 신소정 선수는 “북한 선수와의 팀 분위기가 아주 좋다. 상대가 강하지만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큰일을 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피겨 페어에 출전하는 김규은-강감찬 조는 “북한의 렴대옥-김주식 조와는 스케이팅에 대해 얘기도 하고 서로 잘 통한다. 서로 오픈돼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몰려든 자원봉사 팬들의 사진촬영 요구에 밝은 표정으로 응했다. 피겨 아이스댄싱의 민유라-알렉산더 갬린 조도 팬들의 인기가 높았고, 쇼트트랙의 박승희 선수도 팬들의 셀카 요청에 무척 바빴다. 차준환을 포함해 5개 나라 제자들을 이끌고 평창겨울올림픽에 출전하면서도 대한민국 선수단 임원으로 등록한 피겨 스케이팅의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입촌식에 참가했다. 이날 입촌식 때 기온은 영하 3.4도였지만 전날보다 훨씬 포근하게 느껴졌다. 9일 개막하는 평창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를 목표로 세웠다.


< 김창금 기자 >


평창 겨울올림픽이 성큼 다가왔다. 9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7일 동안 세계인의 눈과 귀가 평창에 쏠릴 것이다. 남북이 함께하는 ‘평화 올림픽’이 성사돼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됐다. 한반도에 어른거린 전쟁 그림자로 미국조차 참가를 머뭇거리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감회가 새롭다.


평창 올림픽을 단순한 스포츠 행사로만 취급하기엔 한반도 정세가 너무나 엄중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내에서 펼쳐지는 첫 정상급 다자외교 무대라는 외교적 의미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21개국 26명의 정상급 인사가 한국을 찾는 가운데, 문 대통령은 13명의 정상급 인사와 회동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 주요 국가의 정상급 인사와 북한 대표단장이 함께하는 자리도 마련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를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 평창 올림픽이 북-미 대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적극적 태도가 중요하다. 북한과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가 얼굴을 맞대는 것 자체가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미 대화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2일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방한이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요한 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일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제재·압박을 강조하지만 북-미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건 아니다. 언제 다시 대화의 모멘텀을 찾을지 기약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북-미 대화의 실마리라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쉬운 것은 아직도 ‘평양 올림픽’ 운운하며 평창 올림픽 깎아내리기에 열중하는 일부 보수세력의 태도다. 자유한국당은 평창 올림픽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연일 ‘평양 올림픽 타령’이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홍준표 대표부터 “‘평양 올림픽’이 끝나면 문재인 정권은 민노총, 전교조, 좌파 시민단체, 문슬람, 탈취한 어용방송, 좌파신문만 남을 것”이라며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퍼붓는다. 언 손 비벼가며 차질 없는 준비에 여념이 없는 평창군민과 강원도민을 깔보지 않는다면 이럴 수는 없다. 잔칫상에 손님 불러놓고 우리끼리 삿대질하는 행태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평창 올림픽은 세계에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고 국가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온 국민이 소망하는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정부는 준비를 철저히 하고 정치권도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칼럼] 화해와 치유의 출발점

● 칼럼 2018. 2. 12. 20:11 Posted by SisaHan

젊은 날 가정교사를 전전한 헤겔은 여유가 없어 양말을 기워 신기도 했던 것 같다. 젊은 철학자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찢어진 양말은 기워 신으면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정신은 찢어진 상태를 극복하면 찬란해진다.” 이 ‘찢어진 양말’의 모티프가 자라나 뒷날 <정신현상학>이 됐을 것이다. 정신은 자기의식을 갖추게 되면 체세포가 분열하듯 스스로 갈라진다. 자기 내부에서 찢겨 피투성이가 된 정신은 불화와 상쟁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상처를 극복하고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
헤겔의 정신은 개인의 정신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개별 정신들의 집합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공동체도 겨레도 개인의 의식처럼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면 찬란해진다. 그러니 헤겔의 찢어진 양말, 찢어진 정신에서 한반도의 남과 북을 떠올려봄직도 하다.
일흔 해 전인 1948년 2월10일 백범 김구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3천만 동포에게 울며 고함’을 발표했다. 반도가 두 동강 날 위기 앞에서 백범의 말은 통절하게 울렸다. “마음속의 삼팔선이 무너지고서야 땅 위의 삼팔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 백범은 그해 4월19일 삼팔선을 넘어 북행길에 올랐으나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고 돌아왔다.


김구의 뜻은 속절없이 꺾였고 남과 북은 참혹한 골육상쟁을 벌였다. 삼팔선이 휴전선으로 바뀐 뒤에도 반목은 끊이지 않았다.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김영삼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이 말은 김영삼이 정치인으로서 남긴 가장 숭고한 말일 것이다. 김영삼의 이후 행보는 스스로 뱉은 말을 배반했지만, 이 말을 실천에 옮긴 사람은 김대중과 노무현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집권기는 분단 70년사에서 남과 북이 통일에 가장 가까이 간 때였다. 남북의 정상은 손을 맞잡고 서로 포옹했다. 통일 한반도의 토대를 닦고 남북협력의 길을 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불어닥친 한파는 짧은 화해를 시기하듯 애써 키운 꽃들을 휩쓸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뤄낸 성과들은 흩어지고 뿌리가 뽑혔다.
문재인 정부는 이 반동과 역풍이 남긴 유산을 물려받았다. 겨레를 공멸로 몰아넣을지도 모를 이 유산을 청산하려면 한반도 남북 모두에 그 어느 때보다 큰 지혜와 인내와 아량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평화는 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의 지속이 아니다. 평화는 적대와 미움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북의 상생 구조를 만들어가는 동적인 과정이다. 평화를 향한 가장 큰 도약은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개성공단 진출과 노무현 정부의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로 밑그림은 진작 그려졌다. 한반도 남쪽과 북쪽이 경제협력으로 긴밀히 결속할수록 전쟁 가능성은 줄어들고 평화의 틀은 튼튼해진다. 남북이 함께 북방으로 가는 통로를 뚫게 되면 부산에서 출발한 철도가 시베리아를 넘어 유럽의 끝에까지 가 닿게 된다. 그렇게 되면 휴전선에 막혀 섬처럼 갇혔던 우리의 상상력도 해방될 것이다.
‘평창’이 출발점이다. 남과 북이 함께하는 올림픽은 작은 통일의 실험이다. 한반도가 반목으로 찢겨 있는 한, 우리의 생존과 번영은 끝없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평창의 실험이 실험으로 끝나지 않고 화해와 치유로 가는 길을 열어주기를, 불화의 긴 시간을 이겨내고 찬란해지는 그날을 불러오기를 소망한다.

< 고명섭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1500자 칼럼] 은퇴 여행

● 칼럼 2018. 2. 12. 20:09 Posted by SisaHan

하얀 모래사장이 야자수 숲 저편으로 끝없이 펼쳐져있다. 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언뜻언뜻 보이는 해변을 짜깁기 하듯 이어가며 심란한 마음을 애써 다잡는다. 2월의 플로리다는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기 조차 쉽지 않은 듯하다. 겨울을 지나 봄이 시작 된 듯 한데 이제 겨우 파릇파릇 새싹이 움트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잎이 청청한 나무들도 즐비하고, 꽃이 피어 만발한 동백나무 옆엔 탐스런 레몬이 주렁주렁 매달려 결실의 계절을 알린다. 경계가 불분명한 이곳의 계절은 마치 요즘의 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하여 유심히 그 속을 들여다본다.

지난해 늦가을 그토록 기다리던 은퇴를 했다. 예정된 시기보다 몇 년 앞당겨지긴 했지만 남은 생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욕심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긴 세월동안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했다. 은퇴라는 그 달콤한 시기가 언제쯤 일지 막연하게 기다리기도 했고, 때론 그때를 위해 갖가지 청사진을 그리며 꿈에 들뜨기도 했었다.
어느 날 드디어, 하루 스물 네 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주어졌다. 양 어깨에 올려졌던 무거운 짐을 내리고 나니 홀가분함은 물론 황홀하기까지 했다. 곧 다가 올 은퇴를 대비하여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였음에도 전과 후는 확연히 달랐다. 주어진 업무의 경중을 떠나 구속에서 자유로 회귀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며칠 동안은 제한시간 없이 늦잠에다 게으름도 부리고 자유를 만끽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음 한쪽에선 새로운 불안감이 스멀거렸다.
‘아직 한창 일 할 나이에 이렇게 놀아도 괜찮을까.’ 하는 죄책감과 함께 열심히 돌아가는 사회라는 집단에서 혼자 떨어져 나온 듯한 소외감이 엄습해왔다. 거기다가 혹한과 폭설까지 겹쳐 고립 아닌 고립 신세가 되어 날로 우울함이 더했다.


나는 해변에 들어서자마자 샌들을 벗어들고 모래사장을 걷는다. 부드러운 감촉사이 바닷물이 들락거리며 발바닥을 간질인다. 그 느낌이 좋아 물속으로 한 발 두 발 들어갔다가 파도에 쫓겨 뛰쳐나오기도 하고, 갈매기 노니는 한가로운 해변 풍경을 음미하기도 한다. 겹겹이 이랑지은 거친 파도 너머의 물결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마치 혼돈의 시기를 지나면 평화가 오리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여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니 불현듯 어느 팔순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명언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고령임에도 힘든 도전을 하며 행복해 했던 분이다.
매주 목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바이올린을 들고 우리 가게에 나오는 할머니가 계셨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손자를 대신하여 수고하시나보다 생각했다. 여든도 훨씬 넘어 보였기에 나의 생각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할머니에게 “손자 돌보기 힘드시지요?”하며 인사를 건넸더니“아니, 재밌어요.”하며 다소 생뚱한 대답을 했다. 그리곤 잠깐 멈칫하더니 가방에서 악보를 꺼내어 펼쳐보였다. 저승꽃이 널찍널찍하게 자리 잡은 손으로 짚어 보이는 악보 위엔 교사의 지침이 까맣게 얽혀있었다. 할머니는 바이올린을 배운지 일 년 남짓 되었다며 한 달째 같은 동요를 연습 중이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순간 나는 딱딱하고 거친 할머니의 손을 감싸 쥔 채 한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느 유명한 바이올리스트의 멋들어진 연주보다 더 감동적인 할머니의 도전 정신이 눈부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는 의지의 할머니를 우러러 보며 새로운 불씨 하나를 내 안에 심고 있었다. 

어느 노학자는 은퇴 후의 시기를 ‘신이 내린 축복의 삼십년’ 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나 가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갈고 닦기에 가장 적합한 이 시점을 잘 활용하라고 강조 한다. 요즘 같은 장수 시대에 은퇴를 하고도 삼십년이란 세월이 더 남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며 이때를 위하여 차곡차곡 저장해둔 나의 버킷 리스트를 열어본다. 행복한 인생 3막을 위해 가늘지만 긴 호흡으로 새로운 길을 나서야 할 때다. 찰랑거리는 물결처럼 경쾌하게 앞으로, 앞으로.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