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15일 오후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1백여명의 한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기념식은 저녁식사 후 어린이 사물놀이 천둥소리 공연으로 개회, 국민의례에 이어 정관균 총영사가 박근혜 대통령기념사를 대신읽고 이진수 한인회장이 기념사를 한뒤 만세삼창과 광복절 노래제창이 있었다. 이어 애국지사 손병희, 이청천, 강우규 3인의 초상화 헌정과 영상자료 상영, 기념공연 등이 뒤를 이었다.

 
< 문의: 416-383-0777 >

 

“인간적 고통에 중립없어”

● COREA 2014. 8. 21. 11:54 Posted by SisaHan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순교자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 편지를 건네받고 있다. 김 씨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이날까지 34일째 단식을 계속해왔다.

교황, 세월호 리본 제거요청 거절 밝혀

한국 방문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귀국편 기내 회견에서 세월호 추모 리본을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은 사람이 있었다고 소개한 사실이 전해지자, 과연 누가 그런 조언을 했는지에 궁금증이 폭발하면서 SNS에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뜻으로 노란리본을 다는 것을 정치적·이념적인 행위로 풀이되는 상황에 대한 자조 섞인 반응이다.
 
트위터 이용자 @go***는 “노란리본과 중립이 무슨 상관인지...에효~~ 더러븐 세상”이라고 씁쓸해했다. @fa***는 “세월호참사를 추모하는걸 어떻게 중립을 지키는 문제와 연결시키지. 뇌가 썩었나”고 지적했다.
@ah***는 “세월호 추모 리본을 떼는 것이 어떠냐”고 말한 사람이 누군지는 꼭 밝혀내야 한다. 참사에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것이 정치적 문제인가? 이념의 문제인가?”라고 썼다. @so***의 글도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수 없었다는 교황의 말보다 유족이 달아준 노란리본을 보고 반나절도 되지 않아 중립을 지켜야 하니 떼는 게 좋겠다고 얘기한 사람이 있었다는 게 웃기지 않나?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로 부터 내동댕이 쳐진 사람들인데. 중립?” 이라고 힐난햇고, @18***는 “정치 중립을 지키기 위해 세월호 추모 리본을 그만 달아야 한다는 요구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답변.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세월호를 정치에 이용하는 자가 누구입니까?”라고 되물었다.
 
프란피스코 교황은 귀국 기내에서 그런 사실을 전하면서 “희생자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를 생각하면 그 고통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며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1500자 칼럼] Forgive and Never Forget

● 칼럼 2014. 8. 18. 16:28 Posted by SisaHan
‘용서하라, 그러나 결코 잊지마라’
무슨 큰 사건이나 일이 생겼을 때, 종종 하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처음 이곳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들었다. 당시 그 말을 들으며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말이 원래 나오기는 이차대전 때, 나치 독일의 탄압, 또는 학살에 의해 큰 희생을 당한 유태인이 한 말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전대미문의 참혹한 일을 당하고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가? 더우기 내가 알기로는 유태인의 역사이기도 한 구약에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는 복수의 사상이 담겨져 있다고 막연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민족의 대학살을 감행한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용서하고 난 다음에 절대 잊지말아야 한다는 것. 부모와 형제를 죽인 것이나, 그것도 가스실이라는 참혹한 방법으로 죽인 사실을 용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용서한다는 일이 무조건 사실을 덮어버리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 이전에 진실이 밝혀져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시는 그런 비극적인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이 이차대전 이후 독립된 국가를 건국한 이후, 그들은 MOSAD라는 정보부를 세웠다. 아랍권 국가에 둘러싸인 상황 아래 언제 침략을 받을지 몰라, 그 조직의 비중은 컸으리라. 그런 군사적인 목적 이외에 그들은 전세계에 흩어져 숨어살고 있는 나치 전범을 찾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 이름을 바꾸고, 심지어는 성형수술을 하여, 다른 사람으로 살고있는 이들을 몇십년이 걸려서 찾아내어 국제재판에 회부했다. 심지어는 불과 몇 해 전에도 캐나다에 숨어 사는 범죄자를 거의 죽을 때가 다 된 사람도 찾아내어 재판에 회부했다. 그 재판 과정에서 그들의 범죄 사실을 밝히는 동시에 유대인들이 당한 부당한 대우에 대해 샅샅이 밝혀진 셈이다. 사실 이런 과정을 보며 그들은 결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령의 전범들을 악착같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찾아내어, 곧 죽을지 모를 그들을 재판에 세워 심판하는 것이....., 설사 형을 선고 받더라도 고령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몇년, 몇 십년이라는 숫자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이미 지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잊지 않는 길이며 희생자에 대한 배려일까? 아니면 숨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일까? 나아가서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언젠가는 당한다는 복수심일까?

사람들은 잊기 쉽다, 어쩌면 잊어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당했을 때, 잊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큰 아픔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를 볼 때, 절대 용서하지 못하면서 너무 쉽게 잊어버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불과 몇 달 전에 일어난 일도 우리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밝혀야할 많은 진실이 있음에도, 진실을 밝혀 누구를 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진실도 모르면서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는가, 한국은 참 이상한 것이 사건에 사건이 뒤를 이어 터져, 그 이전의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이제 세계에서 무슨 일이 터졌다 하면 미처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도 전에 다시 다른 일이 터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몇 해 전에 전쟁이 터져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시리아가 아직도 전쟁 중인지도 잊어버렸다. 말레시아 항공기를 떨어트려 당장에 강력한 견제를 받을 것 같은 러시아도... 그냥 하루하루 생활과 계속 터지는 다른 일로 인해 잊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같은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진실을 모르기에 같은 성격의 사건들이 또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우발적인 사고라기 보다 인재이기에, 사회제도의 구조적인 모순이 같은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법과 질서가, 원리와 원칙이 지켜지는 선진국이라면 충분히 희생을 줄일 수 있는 사고라는 점이다. 어느 사회나 고쳐야할 점이 있는데, 이 번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져 한국사회의 단점들이 빨리 고쳐졌으면 한다. 먼저 두려워 말고, 제살을 도려내는 한이 있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한마당] 한인 정치인 ‘연목구어’

● 칼럼 2014. 8. 18. 16:25 Posted by SisaHan
캐나다는 한인 동포들에게 정치 불모지나 다름없다. 지방정부에 시의원과 주의원이 한둘 이름을 올렸을 뿐 중앙정계에는 총리 지명으로 상원의원이 된 연마 마틴(Yonah Martin: 김연아) 의원을 제외하면 선출직 정치인이 아무도 없다. 인구가 많은 중국계는 물론 인도계, 베트남계도 연방의회와 정부에 진출했는데, 20만명을 헤아리게 된 한국계는 전혀 제 몫을 찾아먹지도, 다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모국의 국력이나, 이민 50년의 역사를 보나, 만만찮은 한국인들의 저력에 비춰보아도 위상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여러 요인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무래도 정치에 무관심하고, 참여 자체를 멀리하는 데 있다는 지적이 정확할 것 같다. 모국의 정치 동향은 일개 국회의원의 움직임까지도 일거수 일투족을 국내 있는 것 못지않게 꿰고 있으면서, 정작 살고있고 시민권도 가진 캐나다 정치에는 문외한인데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 현실 그대로다.
 
토론토 윌로데일에서 연방 하원의원 선거 자유당 후보경선에 나선 소니 조(Sonny Cho: 조성용) 씨는 요즘 경선투표에 참여할 한인 유권자 모집으로 날을 지샌다. 매일 모임이란 모임은 빠짐없이 쫓아가고, 단체 마다 찾아다니기에 발이 부르틀 지경이다. 기독교인이기도 한 그는 일요일에는 교회를 돌며 예배를 드리고 지역구내에 사는 성도들을 찾아내 입당원서를 내밀며 서명을 구걸하다시피 한다. 
9월말로 예상되는 경선을 앞두고 조 후보가 후보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최소 2천명이 넘는 당원이 확보돼야 한다고 한다. 그가 지금까지 모은 입당원서는 1천5백여장이다. 토론토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노스욕의 중심지에서 2천명의 도움을 받기도 벅찬 상황인 것이다. 그의 체험담으로는 10명 중 1~2명이 눈길을 줄 정도라고 했다. 입당원서를 받기 위해 대형 한인식품점 앞에서 캠페인을 벌였더니 슬슬 피하고 멀리 돌아서 다니더라는 얘기도 털어놓았다. 대부분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태도라고 쓴 웃음을 짓는다.
 
많은 한인들이 “우리 정치인 한 사람 정도는 만들어야 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을 만들기 위한’ 일에 자신이 직접 나서는 일은 꺼리고, 반면 정치인은 배출되기를 원하니, 결국은 내가 아닌 ‘남의 손으로’ 만들어지기만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손 안대고 코풀기“요,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한다는 뜻)에 다름아닌 것이다. 따져보면 연아 마틴 의원이 그런 사례일 수 있겠으나, 과연 제2 제3의 연아 마틴이 언제 나올 수 있을까. 그런 기대조차 결국은 평소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수요 선결과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연아 마틴은 일찌감치 훈련된 시민활동가요 정치인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최근 한 동포 회계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고 공개적으로 떠들 일도 아니라는 전제하에, “심각한 불황에 처해있는 요즘 한인사회 상황은 1년에 1백개 정도의 자영업자가 문을 닫는 놀라운 쇠락지경”이라는 것이다. 부침이야 있을 수 있고 사업부진에 폐업소식도 듣긴 하지만, 1년에 1백개 안팎이라면 매월 10군데 가까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다.
 
마땅한 사업대안도 찾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 설상가상 한인 이민과 유학생이 급감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들을 한다. 한인 유입이 급격 줄어든 것은 바로 보수당 정부의 이민정책이 바뀐 때문이다. 연간 이민자 수는 큰 변동이 없는데 왜 한인 이민자에 대한 문턱은 높아졌을까. 자유당 연방의원에 도전하는 소니 조 후보는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자유당의 이민정책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인들의 정책이 곧바로 우리 생활에 직결되는데, 그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적은 그간의 ‘업보’가 그대로 되돌아 오는 것을 깨달아 적극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캐나다인 평균을 보아도 선거참여율이 그다지 높지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를 논하기에 앞서 이민자들의 처지는 다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다수 캐나다인들이야 소소한 정책변화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생활에 영향이나 불편 역시 소소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기반이 취약한 마이너리티인 소수민족 이민 커뮤니티는 하찮은 정책변화에도 생계까지 위협받을 수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우리 입장을 잘 알고, 대변하고, 방호하고, 나아가 정책을 입안할 우리 정치인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정치에 눈곱만큼 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정치인을 우리 손으로 만드는 일이 비록 서먹하고 귀찮아도 발을 벗고 나서야하는 것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