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비행기 세계일주 성공

● WORLD 2016. 7. 30. 07:51 Posted by SisaHan


세계 최초로 기름 한 방울 넣지않고 태양에너지만으로 4만2천Km를 날아 지구를 한 바퀴 돈 태양광비행기‘솔라 임펄스2’가 약 1년 4개월에 걸친 역사적 대장정을 마치며 아랍에미레이트(UAE) 아부다비 상공에서 착륙에 앞서 솔라 임펄스 재단의 베르트랑 피카르(58) 회장이 셀카를 찍고있다.

지난해 3월9일 아부다비에서 출발한 솔라 임펄스2는 아시아, 북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등 4개 대륙과 태평양, 대서양을 505일 동안 비행하고 아부다비 알바틴 공항에 26일 오전 4시5분께 착륙했다. 이 비행기는 스위스 출신 탐험가인 피카르 회장과 앙드레 보르슈베르그(63) CEO가 번갈아가며 조종했다.


7차례 시도 끝에 리프팅빔 작업 마쳐… “9월에 세월호 수면 위로 올라올 것”

해양수산부는 지난 27일 오전 7시30분부터 작업을 시작해 29일 오후 8시10분께 세월호 선수를 약 5도 들어, 세월호 선체 밑에 받침대 구실을 하는 리프팅 빔 18개를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제공=국토교통부)


세월호 인양의 핵심 작업인 선수(뱃머리)를 들어 리프팅 빔(Lifting Beam)을 설치하는 작업이 50여일 만에 성공했다. 지난 5월부터 기상악화 등의 이유로 선수 들기가 6차례나 연기됐는데, 7차례 시도 끝에 작업을 마친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27일 오전 7시30분부터 작업을 시작해 29일 오후 8시10분께 선수를 약 5도(높이 10m) 들어, 세월호 선체 밑에 받침대 구실을 하는 리프팅 빔 18개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선수 들기는 수심 44m에 있는 세월호를 절단하지 않고 인양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작업이다. 선수 들기 작업이 끝난 만큼, 다음 단계는 세월호 선미(배 뒷부분)에 리프트 빔 8개를 설치해야 한다. 리프팅 빔 작업이 끝난 뒤 와이어 52개로 해상크레인과 연결하고 각종 안전장치와 부력 장치를 설치하게 되면 인양을 위한 사전 작업이 마무리된다.

사전 작업이 끝나면 날씨와 바다 상태가 좋을 때 해상크레인에 연결된 세월호를 올려 반잠수 상태로 대기 중인 플로팅도크에 놓은 뒤 천천히 들어 올리게 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작업이 순탄하게 이뤄질 경우, 9월에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크에 인양된 세월호는 예인선을 이용해 침몰 지점에서 100㎞ 떨어진 목포 신항으로 옮겨져 육상으로 꺼내 거치될 예정이다.
<김소연 기자>


오래전에 저에게 영적 지도(spiritual direction)를 해 주었던 미국인 수녀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오래 전에 자신이 우울증에 빠졌던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우울증이 지속되어서 병원에 가보고 싶었지만 수녀가 정신과 의사를 만난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동안 망설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기도 가운데 번개처럼 스쳐간 생각이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울증도 감기나 다른 병처럼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인데, 다른 병에 걸려서 병원에 가는 것이나 우울증 걸려서 병원에 가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수녀들이 수녀복을 입고 생활하는 때라 수녀복을 입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찾아갔고 그래서 적절한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분이 저에게 했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아픈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수녀나 신부나 목사나 다 똑같습니다. 당신의 아픈 것을 내 놓을 수 있는 용기를 항상 가지세요.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짐은 가벼워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한 기분에 있다거나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합니다. 그러나 편견없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기분은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무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이들 모두 평생 우울증과 싸우신 분들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보면 우울은 그냥 나쁜 무드(mood)가 아닙니다. 새로운 모드(mode)로 삶을 살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우울증에 빠져서 죽고 싶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이 그들에게 새로운 모드의 삶을 살게 되는 계기가 실제로 되었습니다. 우울한 기분이나 우울증은 어쩌면 잠시 세상의 입맛을 떨어뜨려서 진짜로 입맛 다실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내면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파커 팔머(Parker Palmer)라는 분이 있습니다. 유명한 교육자이며 영성가입니다. 그는 한창 열심히 달려가던 중년의 시기에 극심한 우울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이 터널을 다 통과한 후에 파커 말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울증은 나를 괴롭히는 적이 아니라 나를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친구였다. 우울증이라는 어두움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되었고, 진정한 소명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난 주 저를 찾아와서 50대 남성이 이런 하소연을 하고 갔습니다. ‘목사님, 사는 것이 왜 이렇게 재미가 없죠. 요즈음 신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아이들도 크고 이민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그러면서 내가 그 동안 열심히 해 왔던 일들이 다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마음이 자주 우울해 집니다.’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이런 기분에 빠져있는 분이 있으시다면, 너무 어둡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잠시 삶에 대한 입맛이 떨어진 것 뿐이닌깐요. 진짜 입맛 다실 일을 찾을 때가 곧 올 것입니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


[1500자 칼럼] 아름다운 작별

● 칼럼 2016. 7. 30. 07:13 Posted by SisaHan
얼마 전 동갑내기 친구를 잃었다. 그녀는 투병생활을 시작한지 1년6개월 만에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비록 시한부 삶이긴 했지만 그리 빨리 가버릴 줄 몰랐기에 아직도 가슴 한 켠에서 싸한 바람이 인다. 떠나기 한 달 전쯤에도 그녀는 전혀 환자 같지 않았다. 넉넉한 미소와 우아한 모습으로 일상의 정담을 나눴기에 더욱 믿기지 않는다. 아직도 살아서보다 더 자주 마음에 밟히고 있는 그녀. 아마도 만날 기회가 또 있을 줄 알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안 나눈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서 그런가 보다.

미치 알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에서 ‘살아서의 장례식 (living funeral)’을 만났다. 모리 교수는 매사추세츠의 브랜다이스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다. 그는 희귀병인 루게릭병에 걸려 시한부 생을 살아간다. 그가 애제자 미치 알봄을 다시 만나며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바로 모리 교수가 경험한 인생의 의미를 강의한 것이다. 학생은 미치 알봄, 단 한 사람. 그러나 미치는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 그 강의 내용을 책으로 펴내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책으로 남긴다. 모리 교수는 자신의 장례식을 정작 주인공인 자신이 볼 수 없기에, 아직 건강을 유지하고 있을 때 인생길에서 만난 소중했던 사람들과 의미 깊은 마지막 작별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살아서의 장례식’을 연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에 둘러 쌓여 자신에 관한 시(詩)도 듣고, 재미있는 추억보따리도 풀어 놓으며, 웃고 우는 감격의 시간을 즐긴다. 정작 그가 떠났을 때는 가족끼리만의 조용한 장례를 치른다.

우리 어느 누구도 자신의 떠나는 시점을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시한부 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건강상태로 어렴풋이 예감할 수는 있나 보다. 토론토에서 내과전문의로 유명했던 고 이재락 박사도 별세하기 5개월 전에 ‘생의 잔치(Celebration of Life)’를 열었다. 어쩜 의사이기에 대강 자신의 떠날 시점을 가늠하지 않았나 싶다. 그날 거의 300여명이 넘는 지인들이 초대를 받았다. 유머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참석하는 여성들에게 절대로 칙칙한 검정색 옷을 입지 말고 꽃무늬 있는 화려한 옷을 입으라고 요청했었다. 말 그대로 ‘생의 잔치’라는 의미였다. 아름다운 작별은 지인들과 정담을 나누며 공식적인 이별잔치로 이뤄졌다. 그날의 분위기는 엄숙하거나 슬픔에 잠기지 않았고, 마치 여행길을 전송 나온 것 같이 술렁였다. 사회자의 격 있는 재담, 이 박사에 관한 시 낭송, 세 아들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이야기, 친구의 추억, 고인의 담담한 작별 인사… 등등으로 조용한 잔칫집 분위기였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큰 아들이 기타연주로 부른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My Way’였다. 울고 싶은 심정을 참아내던 우리 가슴을 촉촉히 적셔줬던 것이다. <My Way>는 죽음을 눈앞에 둔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내 방식대로 아무 후회 없이 충만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는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그대로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기에 아직도 그 노래의 여운으로 이 박사가 남아있다. 그는 ‘생의 잔치’를 통해 이 세상에서 맺은 모든 인연들에게 마지막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공식적으로 작별을 고한, 진정 사려깊고 용기 있는 분이었다.

이렇게 친지들과 함께 ‘생의 잔치’를 열었던 이재락 박사,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마지막 강의’의 주인공 랜디 포시 교수,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 모두 시한부 삶을 살았던 보통사람들이 아니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며, 각자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진하게 남긴 특별한 사람들이다. “고통 없는 경건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고 많은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라는 조엘 드 로스네 MIT교수의 말에 공감이 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며칠 전, 떠난 친구가 생전에 애지중지 아끼며 가꿨던 아름다운 꽃밭과 가지런한 텃밭을 둘러보았다. 방긋이 봉오리를 열은 각종 꽃들이 그녀의 미소로 반기며 손까지 흔드는 것 같았다. 집 안팎에는 온통 그녀가 남긴 삶의 열매로 가득 차 있었다. 문득, 일깨웠다. 생(生)의 길이보다 어떻게 충만하게 살았느냐가 중요함을.

< 원옥재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