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글마당] 주심의 휘슬

● 교회소식 2014. 9. 2. 15:56 Posted by SisaHan
월드컵은 축구의 묘미와 승패의 흥분도 넘치지만 많은 이야기 거리와 삶의 교훈도 남긴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역시 나라의 명예를 짊어지고 젊은 선수들이 그 힘과 역량을 마음껏 펼친 드라마 였다. 정말 한 골이 중요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 순간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주심이 짊어진다. 주심의 휘슬이 골을 좌우하고 승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 경기의 주역은 당연히 선수들이지만 사실은 주심이라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글자 그대로 경기의 심판자요, ‘절대자’이기 때문이다. 사력을 다하여 공을 몰아 가다가도, 주심의 휘슬소리엔 경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하고, 골 문에 들어간 골도 주심의 휘슬에 따라 골인이 인정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주심의 휘슬소리엔 그 어떤 경우라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주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억울하기도 하고 누가 봐도 아주 애매한 경우도 있지만 주심의 휘슬은 막지를 못한다. 
어릴 적 동요 가운데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하는 동요가 있다.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하다가, 그대로 멈춰서는 재미로 깔깔 거리던 생각이 난다. 그대로 멈추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 놀이니깐 다행 이지만, 나라의 명예가 달린 시합에선 정말 중요한 것이 주심의 휘슬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동작 그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다. 
지난 달 우리교회를 방문하신 유종만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동작그만!’ 하시면 우리는 그 순간 모든 일이 종료되게 되므로 단 한사람에게라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자고 하셨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주심이 마지막 휘슬을 불었다. 그러자, 휘슬소리는 하나인데 극과 극의 모습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한 쪽은 환희의 함성과 함께, 독일이라는 한 나라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고, 다른 한 쪽의 나라는 슬픔의 눈물과 분노가 폭발했다. 경기하는 시간 안에, 주심의 종료 휘슬이 불기 전에 골을 넣은 팀과 넣지 못한 팀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군대에서 ‘동작 그만!’ 한마디에 온 몸이 그대로 굳어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언제, 하나님의 ‘동작 그만’ 이라는 휘슬을 듣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복음의 씨앗을 많이 뿌린 사람은 그 마지막 휘슬이 얼마나 기쁜 휘슬이 될 것인가. 그러나 아무 씨앗도 뿌리지 못한 사람은 이미 때가 늦은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래서 우리에게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예복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잔치에서 쫒겨 났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신부들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였다. 
주심의 휘슬에 울고 웃는 우리가 되지 말자! 주님께서 언제 우리에게 “동작 그만!” 이라고 하실지 아무도 모른다.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


[기쁨과 소망] 휴대폰 중독

● 교회소식 2014. 9. 2. 15:45 Posted by SisaHan
제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화장실 갈 때 휴대폰을 가져가는 버릇입니다. 용변을 보는 그 짧은 시간에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누군가의, 그 무엇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있습니다.
배변의 즐거움을 포기한 채 납작한 네모상자의 매끄러운 표면 위로 제 엄지 손가락은 쉴새없이 비행을 합니다. 수많은 사진들과 의미없는 이야기들, 그리고 가치 하락한 정보들이 순식간에 눈앞에 스쳐갑니다. 남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기분이며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리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그저 아무런 뜻이나 의미도 없이 휴대폰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합니다. 중독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실 것입니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새로운 신드롬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휴대폰을 곁에서 떼어 놓지 못할까요? 그 이유를 살펴 볼 때, 먼저는 휴대폰의 가치를 꼽을 수 있습니다.
휴대폰이 가지고 있는 집약적 기능들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외로움병 떄문입니다. 도심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이 외로움은 우리의 뼛속까지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상에서 벌어지는 허상의 공동체에 그토록 집착을 하고 있나 봅니다. 
하지만 마음의 이야기 꺼내 놓을 수 없고 껍데기의 일상이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는 그 신기루 같은 군중들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외로움을 느낍니다.
 
“I am a deeply superficial person” 
21C 예술가 엔디 홀이 생각없이 내던진 유명한 말입니다. ‘표상적 깊이’라…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저는 Andy 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고상한 척하는 모든 가벼운 존재들의 허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하는 표상적 깊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깊이인 것 같습니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표상이라는 것에는 절대로 깊음의 세계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매끄러운 휴대폰의 표면처럼 말입니다. 
휴대폰이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 많은 것들, 예를 들자면 사이버 공간의 정보와 감정, 그리고 의미없는 연대들은 표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작 뿌리를 내려 존재의 깊음과 깊음이 만날 수 있는 곳은 삶이라는 생명의 공간입니다. 그 곳에서 깊은 숨을 고르고 눈빛을 교환하며 삶의 이야기의 씨를 뿌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우리 존재의 깊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군중 속의 외로움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는 깊은 고독 속에 잠길 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 최봉규 목사 - 드림교회 담임목사 >


평양 봉수교회 앞에 함께 선 남-북 교회 대표들.

여성·청년 교류, 연락사무소 등 논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영주목사)와 조선그리스도교련맹(위원장 강명철목사, 이하 조그련)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공동기도주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남북공동기도회를 평양 봉수교회에서 열었다. 
이를 위해 NCCK 총무 김영주목사, 기감 감독회장 전용재목사, 기장 총회장 박동일목사, 남부원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차경애 한국YWCA연합회 회장을 포함한 회원교단과 청년대표 등 19명의 대표단이 지난 8월13일~16일 평양을 방문했다. 한국교회가 광복절을 기념해 북한 조그련과 공동기도회로 만난 것은 지난 2011년 이후 3년 만이며, 종교계가 올해 들어 정부 허가를 받고 가진 두 번 째 공식 방북행사인 만큼 이번 남북공동기도회는 경색된 남북관계 해소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8.15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기도회’ 참석차 지난 13일 방북한 대표단은 평양 봉수교회를 비롯해 평양신학원과 칠골교회, 아동병원, 유선종양연구소 등을 돌아보며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위한 양국 교회 간 협력 방안을 비롯해 여성·청년교류와 협력, 통일 운동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교회협은 이번 방북 일정기간 조그련 측에 △8.15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회 정례화 △내년도 광복 70주년 기념 8.15 국제협의회 개최 △남북교회간 협력 강화를 위한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제안해 향후 처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8.15 남북공동기도회는 지난해 WCC 부산 총회 현장에서 채택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와 지난 6월 스위스 보세이에서 열린 WCC 국제협의회의 제안들을 실천하기 위한 ‘한반도 정의와 평화, 화해를 위한 에큐메니칼 순례’의 첫 여정이다.
 
교회협은 “공동기도회를 위해 회원교단과 회원기관 뿐 아니라 여성과 청년대표 2명을 참여시켰고, 조그련 역시 여성과 청년대표를 참석시킨 가운데 향후 여성교류에 대한 가능성도 모색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15일 주일 감리회가 건축한 평양 봉수교회에서 열린 ‘8.15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기도회’는 한국교회 대표단 19명과 강명철 조그련 위원장, 오 경우 서기장, 리정로 부위원장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평범 거부하고 이색장면 찍으려다 비명횡사 잇따라

2013년 말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셀피’(우리말에선 셀카)를 선정했다.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스마트폰의 셀카용 카메라는 해상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화웨이는 지난달 800만 화소의 전면 카메라를 채택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얼짱 각도’에 만족하지 않는 이들은 ‘셀카봉’을 이용해 셀카를 찍고 있다. 다양한 각도의 셀카를 가능하게 하는 막대인 셀카봉은 젊은층의 여행 필수품이다.
 
최근 사회관계망에서는 ‘극한의 셀카’가 인기리에 공유되고 있다. 절벽 끝이나 고층빌딩에 아슬아슬 매달린 사진은 평범한 수준이다. 전투기 조종석이나 스카이다이빙 도중의 셀카에 이어 지난해 12월24일 지구를 배경으로 한 ‘우주 셀카’ 등장으로 ‘셀카 올림픽’의 순위 다툼이 종결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 마이크 홉킨스가 우주유영 도중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다.
 
비명횡사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일 유라시아대륙 서쪽 끝인 포르투갈 호카곶 절벽에서 폴란드인 부부가 셀카를 찍으려다 추락해 숨졌다. 지난 7월에는 멕시코시의 오스카르 아길라르(21)가 장전된 줄 모른 채 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셀카를 찍다 사망했다. 4월에 러시아 소녀 크세니야 이그나티예바(17)는 철교 위에서 셀카를 찍으려다 감전사했다. 6월에 미국 여성 코트니 샌퍼드(32)는 고속도로 운전 도중 셀카를 찍다가 트럭을 들이받고 사망했다. 같은 달 이탈리아 소녀 이사벨라 프라키올라(16)는 해안 절벽에서 셀카를 찍다 18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4월엔 필리핀 파시그시 14살 여학생이 학교 계단통에서 셀카를 찍다 추락사했다.
 
팝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은 “미래에는 누구나 15분간은 유명해질 수 있다”고, 사회관계망 시대를 예견한 듯한 말을 남겼다. 극한의 셀카는 워홀의 예언을 실현하는 도구로 여겨진다. 하지만 멋진 셀카 뒤에 숱한 사고사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 구본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