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필드 박사 손자와 손녀(왼쪽 2·3번째)도 함께한 오타와 참석자들의 만세.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동포들의 만세삼창.


광복 70주년 기념식이 수도 오타와를 비롯해 토론토와 런던, 나이아가라 등 캐나다 각지에서도 열려 다양한 부대행사와 함께 조국통일의 염원을 되새겼다.
8월15일 오전 오타와 연방의회 의사당 앞 잔디광장에서 오타와 한인회(회장 한문종)와 한국대사관이 공동주최한 기념식은 스코필드 박사의 손자 딘 스코필드와 손녀 리사 스코필드도 동참해 의의를 더했고 캐나다군 의장대가 축하 교대식을 하기도 했다.


300여명의 동포와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지역 원로 오범식 장로(96)의 선창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어 주위에 운집한 수천 관광객의 박수를 받았다. 기념식에 이어 태권도 시범, 사물놀이, 전통무용 등 공연과 더불어 팽이,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도 선보였다.

이날 행사에는 민족의 애환을 담은 창작무용 ‘한계령’으로 눈길을 끄는 등 토론토에서 초청된 금국향 무용단과 김옥자, 이영실, 정수연, 유선옥 씨 등도 출연해 춤과 노래로 행사를 빛냈다. 이날 화성시(시장 채인석)는 화환과 서신을 보내 광복 70주년 행사 축하와 함께 스코필드 박사의 후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대사관은 광복절의 의미와 일제 때 캐나다 선교사들의 활약 등을 담은 안내문을 참가자와 관광객들에게 나눠 광복절의 의미와 한-캐 관계의 유래를 알렸다. 한문종 회장 부부가 직접 왕실 전통복장을 입기도 한 한인회는 관광객들에게 태극기 스티커를 붙여주고, 전통놀이 체험행사로 분위기를 돋웠다.


한편 토론토 기념식은 이날 오전 한인회관에서 각계 한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려 김정배 한국노인회장의 선창으로 만세삼창을 하고 조이플합창단이 ‘내 나라 내 겨레’를 부른 뒤 광복절의 의미를 담은 동영상을 시청했다. 또 애국지사 조만식·김창숙 선생과 스코필드 박사의 초상화가 헌정됐으며, 김미영 무용단과 한카노인회 드림합창단, 김유빈·박진술 씨 등의 공연도 이어졌다.
이날 런던한인회는 기본스 공원, 나이아가라 한인회는 벌고인 공원에서 각각 광복70주년 기념식과 행사를 가졌다.


< 문의: 613-244-5010, 416-383-0777 >



‘톈진 폭발’ 사망·실종 200명 넘어

● WORLD 2015. 8. 17. 12:59 Posted by SisaHan

15일 중국 톈진 타이다병원 밖에서 시민들이 꽃과 초를 놓으며 톈진 폭발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지난 12일 밤 발생한 폭발 사고 현장과 비교적 가까운 이 병원은 부상자 상당수가 치료를 받고 있는 곳이다.


당국 “청산소다 격리…확산 없다”
인터넷 불안 확산에 SNS 360개 폐쇄
유가족·주민 항의 “정보도 잘 안줘”

중국 톈진 물류창고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 사망자 수가 110명을 넘어섰다. 실종자도 95명으로 집계됐다. 당국은 인명 구조와 시안화나트륨 등 유독 화학물질 누출 방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추가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사고 수습을 지휘하고 있는 스루쩌 베이징군구 참모장은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고 나흘째인) 오전 9시 현재 112구의 주검을 발견했으며 실종자는 소방관 85명을 포함한 95명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그는 “현재 베이징 군구 소속 국가급 생화학부대원 200여명이 폭발 중심지역에서 생존자 수색,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 주변에선 15일에도 7~8차례 추가 폭발이 이어졌다. 당국은 “폭발 현장 주변 학교나 주거지에 대피하고 있던 일부 주민들에게 더 안전한 곳으로 거처를 옮기도록 지시했다”며 “폭발 지점 반경 3㎞ 이내 주민에 대한 전원 철수령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현재 톈진 시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부상자 721명 가운데 58명은 중상자라 추가로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사상자 가족과 인근 주민들은 이날 기자회견장 앞에서 펼침막을 걸고 “당국이 사상자와 사고 원인 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다”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실종된 소방관 아들을 둔 왕리잉은 “아들이 제발 살아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울부짖었다.

당국은 사고 현장에 있던 맹독성 물질인 시안화나트륨의 소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16일 오전 8시께 소방 전문가들이 현장에 놓였던 700t 가량의 시안화나트륨을 발견했다”며 “일부는 폭발 당시 충격 탓에 새어나갔지만 대부분 안전하게 보존된 상태였다”고 밝혔다. 또 “이미 전문가들과 무장경찰들이 시안화나트륨을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공장으로 격리해 처리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청산소다로 불리는 시안화나트륨은 살충제, 금속 도금 등에 쓰이는 맹독성 물질이다.

원우루이 톈진시 환경보호국장은 “현재 소방, 구조 당국이 사고 현장에서 바다로 통하는 3개 대형 하수관을 막고, 오염 물질이 토양이나 지하수로 스며드는 것을 차단하려 방죽을 설치했다”며 “시안화나트륨을 비롯한 독성 화학 물질이 확산되는 정황은 없고 추가 폭발 우려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이번 사고에 격노했다. 시 주석은 “피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한다. (안전) 직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반드시 추궁하겠다”고 말했다. 리커창 총리는 16일 사고 현장을 찾아 “인명 구조와 사고 규명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인민일보>는 “위험 화학물질은 주거지에서 최소 1㎞이상 떨어진 곳에 보관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며 “톈진 탕구항 물류 창고주변은 시내 주요 간선도로, 주거지와 접해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국가인터넷 정보판공실은 “유독가스가 베이징으로 날아들 것이다”, “사고 현장에 생존자가 전무하다”는 등의 글을 인터넷에 올린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 360여개를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며 폐쇄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1500자 칼럼] 나의 소울 푸드 (soul food)

● 칼럼 2015. 8. 16. 17:34 Posted by SisaHan

허기진 마음을 채워 줄 음식이 어디 없을까. 단비 끝에 묻어 온 소슬바람 탓인지 아침 내내 온 정성으로 만든 건강주스를 앞에 놓고도 머릿속은 다른 먹을거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삼복중엔 그래도 보양식인데, 아니면 평소 좋아하는 면류, 혹은 나물류, 갖가지 음식들을 쭉 나열해 보아도 특별히 당기는 게 없어 씁쓰름할 즈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김치 국밥 한 그릇이 오롯이 떠오른다.


어린 날 우리 형제들이 아플 때면 어머니가 속성으로 끓여 주신 처방식이다. 그 시절 이후론 내 기억 속에서 까맣게 사라졌던 음식이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심한 몸살감기로 고생하고 있을 때 불현듯이 떠올라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오늘 또 다시 허한 속을 데우라 한다.
나는 단숨에 필요한 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내고 스토브를 켜며 준비를 서두른다. 갑자기 바빠진 마음에 부합이라도 하는 듯 부엌의 집기들도 덩달아 달캉거린다.
국밥 한 그릇 준비하면서 이렇게 신바람을 날리다니, 아마도 내 몸이 원했던 것은 단순한 음식물이 아니었던 게다. 음식을 통해 그 맛을 풍미했던 언저리를 돌며 마음의 평온 내지는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이리라.
나는 스테인리스 냄비를 꺼내다말고 주춤한다. 무엇이든 원하는 시간 안에 끓여내는 편리한 전기스토브 대신 바쁠 땐 더 애간장 녹이는 연탄불 위에 알루미늄 냄비 올려놓고 조바심 태웠을 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린 탓이다.


조그마한 옻칠 소반에 조선간장 종지와 국밥이 전부였던 조촐한 어머니의 상은 온몸의 열꽃을 순식간에 잠재웠던 명약이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녹아있던 그 국밥을 재현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멸치 다시마 육수에 포기김치를 숭숭 썰어 넣고 한소끔 끓인 다음 콩나물, 달걀 등 약간의 부재료들을 넣어가며 끓이다 보면 솔솔 풍겨나는 익숙한 냄새가 회를 동하게 한다.
꼭 같은 음식을 먹어도 옛날 그 맛이 아니라며 투정부리기 일쑤지만 이 냄새만큼은 절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집집마다 손 맛 장 맛 모두 틀려도 하나로 통일시키고야 마는 김치의 우월성 덕에 어머니의 김치 국밥은 어렵지 않게 재현할 수 있다.
뚝배기에 밥을 담고 그 위에 국을 몇 국자 끼얹으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나만의 소울 푸드가 완성 된다. 평소엔 소식을 운운하면서도 이 국밥만큼은 뚝배기 위로 큰 산 하나가 더 솟아있기를 원한다. 건강한 육체를 위해 옥죄고 산 세월에 반항하듯 원 없이 풀어놓고 마음껏 흘려 넣어도 큰 무리가 없다.


휘파람 불 듯 휘휘 불어가며 한 그릇 뚝딱 비울 즈음이면 헛헛한 마음에 훈기가 돌고 기운이 솟는다. 그 시절 주위를 맴돌던 미풍이 비로소 내 안에서 꼬물거리기 시작한다.
허기지고 힘들 때, 불안하고 답답할 때 간간이 찾게 될 나의 비밀 병기, 어디 이것뿐이랴. 무쇠 밥솥에서 쪄낸 할머니의 명란 알 찜, 온 식구가 두레상에 둘러앉아 호호거리며 퍼 먹던 띄운 비지찌개, 식사 후 돌아오는 특별한 후식 쌀뜨물 숭늉 등 하나씩 꺼낼 때마다 삶이 풍요로워질 테다.
열거한 소찬들을 굳이 영혼의 음식이라고 이름 붙이긴 뭣하지만, 옛 맛을 추억한다 함은 생애 가장 평온했던 시기로 회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거하다고 볼 수 없다.
세상의 흐름이 힘에 부칠 때를 대비해서 소울 푸드 몇 개 쯤 품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최근 동포사회 일각에서 이른바 ‘건국절’ 제정론이 갑자기 돌출해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광복 70주년이라는 역사적 시점에 뭔가 ‘애국 이벤트’를 선보이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 사랑의 발로라는 점 하나만은 가상한 일이로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공연한 부회뇌동의 돌출행동으로 보여져, 그렇잖아도 모국의 갈등이 전파된 동포사회에 괜한 분란과 혼란을 낳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모국에서 이른바 뉴라이트 그룹이 이명박 정권 시절 크게 외쳐대다가 ‘미수’에 그친 사안이니, 비유하자면 낡아빠진 레코드판을 돌리는 일에 다름 아니요, 뜬금없이 이 시점에 들고 나온 것은 그들의 경거망동에 뒤늦게 편승하여, 관심이 적고 내용을 잘 모르는 동포들을 오도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당시 뉴 라이트 중심의 건국절 거론 요지는, 광복절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 같아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15일이 중요시되고 건국일인 1948년 8월15일의 의미는 축소되어 왔기에 개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건국일이 1948년 8월15일이니 그 날이 대한민국 생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건국’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국부로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러면 왜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꾼다면 정부가 수여한 독립유공자 훈장을 반납하겠다고 까지 격앙했을까. 애국지사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이상하게도 이런 주장을 하는 주동자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개 친일파에 속해 있거나 그 선조들이 친일파로 일제에게 빌붙어 많은 공적(?)을 세운 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그런 DNA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일까?”라고 어찌하여 호되게 비판한 것일까?

그 이유는 ‘건국절’ 주장의 근저에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잘못된 역사인식과 모순, 그리고 자신들의 과오를 덧칠하고 합리화하려는 꼼수가 숨어있다는 게 중론이니,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대한만국이 언제 건국 되었는지는 국체(國體)를 규정한 헌법을 살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1948년에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했다.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이제(1948년)는 “민족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것이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 하여 독립정신과 민주정신이 대한민국의 토대임을 분명히 하면서 1919년 3.1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포하고 대한민국을 창건했으며, 일제치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함을 천명하고 있다.
1948년 5월10일 총선 후 국회가 개원되었을 때 국회의장 이승만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의 임시정부의 계승에서 이날이 29년만에 민국의 부활일 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民國)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라고 했다. 이승만 뿐만 아니라 이 당시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대한민국이 1919년에 기인했음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그 해 8월15일 수립된 정부가 9월1일에 간행한 관보 1호는 「민국 30년 9월1일」이라고 명기했다. 따라서 건국은 1919년이요 1948년 8월15일은 ‘건국일’이 아니고 ‘정부수립일’인 것이다.

그런데도 건국절 논자들이 ‘1948년 건국’론을 고집한다는 것은 결국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결된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일제의 한국 근대화’를 통해 해방이후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우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는, 임시정부로부터 시작하여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독립투사나 일제에 항거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이 아니라, 한낱 일제 근대화의 시혜로 건국에 이르렀으니 이승만과 그를 따르며 정부수립에 참여한 인물들에게 그 공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승만 대통령 조차 대한민국이 3.1 독립만세운동을 통해 건국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모순되고 비굴한 역사관이 아닐 수 없다. 이승만은 당시 “만약 대한민국이 해방 후 1948년에 건국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연합국의 승리에 의한 것으로, 우리 힘이 아닌 외세에 의해 이뤄진 것이며 수치스런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계 원로인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숙대 명예교수)은 “건국절 논란은 결국 대한민국의 건국을 독립운동의 전통 위에 둘 것인가, 친일의 전통 위에 둘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승만을 추종하는 자들이 이승만 수준의 역사의식에도 미치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라고 개탄했다.

건국절 주창자들이 대부분 친일과 보수성향을 가진 인사들이라는 것이 그래서 뚜렷해진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이전 역사와 완전 단절된 신생독립국으로 만들어 과거 자신의 선조들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덮고, 신생국을 건설한 업적을 부각시키려는 저의 아래, 자신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고 영속화하려는 속셈으로 ‘건국절’이라는 그럴 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덧씌우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와 애국선열들을 기리겠다고 뜻을 모은 애국지사 기념사업은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언제로 알고 활동해야 할지가 극히 자명해진다. 안창호·윤봉길·이봉창 등 독립열사들은 1919년에 건립된 대한민국의 법통인 임시정부의 적자(嫡子)들임이 틀림없다.

덧붙여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섬겨야한다는 주장 또한, 모순이며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몇가지만 인용해 보자.
이승만은 미국의 환심을 사 군정청의 후원으로 정권을 잡고 자유 민주주의 정부를 세운 초대 대통령이며, 국무회의를 기도로 시작하는 등 한국의 기독교국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교분리 헌법규정을 무시하는 등, 공 보다는 과오가 너무 많은 인물이다. 상해 임시정부를 와해 위기에 빠뜨려 배척당했고, 반민특위를 강압 격파해 친일파 청산을 무산시켰다. 김구와 조봉암 등 라이벌을 암살하고 법살(法殺) 시킨 잔혹 술수에,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장기독재자였다. 6.25가 터지자 국민을 속이고 가장 먼저 도주한 뒤 한강다리를 폭파해 수많은 시민을 죽게 했다. 전란 중 보도연맹 사건을 빌미로 20만명에 달한다는 무고한 자국민을 학살했다. 임시정부 당시 국제연맹에 ‘조선의 위임통치’를 청원했던 그는 한국전쟁에 맨 먼저 도망간 것도 부족해 일본에 망명정부를 요청한 것으로 최근 KBS가 보도해 알려졌다. 4.19혁명에 발포명령으로 2백여명의 시민이 죽고 6천여명이 다치는 피해를 입힌 뒤 권좌에서 쫓겨났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나 프랑스의 드골, 터키의 케말 파샤 처럼 국부로 추앙받는 이들이 그런 만행과 그 정도의 실정에도 면책 받고 존숭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