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일 ALPHA 초청으로 본 한인교회서

일제 군위안부 피해 길원옥 할머니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대표가 오는 5월1일 토론토를 방문해 한인동포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길 할머니와 윤 대표는 자신을 포함한 군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을 다룬 다큐영화 ‘The Apology’의 월드 프리미어 오프닝행사 참석을 위해 캐나다 알파(ALPHA) 초청으로 토론토를 방문, 본한인교회에서 5월1일 오후 5시 증언과 영화 시사회를 가질 예정이다.


‘Apology’는 캐나다 영화 협의회가 지원하고 한국계 캐나다인 Anita Kim 이 연출한 작품으로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중 수십만명의 한국,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의 어린 소녀들을 유괴하여 성노예로 삼았던 끔찍한 범행을 고발하는 영화다.
길 할머니는 1928년 오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길원옥(86) 할머니는 가족과 함께 평양에서 지내다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3살, 15살 두 차례 중국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가 수모를 당했다.


< 문의: 905-881-2999 >



환태평양 ‘불의 고리’ 불붙나?

● WORLD 2016. 4. 22. 18:26 Posted by SisaHan

일 구마모토 이어 에콰도르도 규모 7.8 강진
사상자 3천명 넘을 듯

에콰도르 최악 강진
비상사태 선포 구조

에콰도르를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480명으로 늘어났다. 부상자 수도 2천560명, 실종자가 1천700명으로으로 집계됐다.
재난 현장인 서부 해안도시 만타를 방문한 호르헤 글라스 에콰도르 부통령은 17일 여진이 발생했지만, 현재 쓰나미 위험은 없다면서 군경을 투입해 구조작업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군경과 재난 당국이 피해 지역에서 구조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매몰자가 많아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에콰도르 정부는 재난 수습을 위해 군인 1만 명과 경찰 4천600명을 피해가 집중된 태평양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배치했다.
앞서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공식 트위터를 통해 자국을 덮친 규모 7.8의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480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코레아 대통령은 “무너진 건물 등은 다시 복구할 수 있지만 인명은 되살릴 수 없다”며 인명 구조를 최우선 순위에 뒀다.


이탈리아 로마 방문 일정을 접고 급거 귀국 중인 코레아 대통령은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에스메랄다스 지역을 찾을 예정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규모 7.2의 지진으로 1천 명이 사망한 1987년 3월 지진 이래 에콰도르를 강타한 최악의 지진이라고 분석했다. AP통신과 로이터통신은 에콰도르 정부를 인용해 이번 지진이 1979년 에콰도르 강진 이후 최악이라고 전했다. 당시 강진으로 600명이 사망했고 2만여 명이 다쳤다.
이번 지진은 16일 오후 6시58분 에콰도르 무이스네에서 남동쪽으로 27㎞, 수도 키토에서 북서쪽으로 170㎞ 떨어진 태평양 해안지점에서 발생했다. 진원 깊이는 19.2㎞로 비교적 얕은 편으로 관측됐다.
에콰도르 재난 당국은 전날 오후 본진이 난 후 135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2시께 전날 강진의 진앙으로부터 80㎞ 떨어진 곳에서 규모 5.6의 지진이 추가로 발생했다.


내진건축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구마모토 지역 강진으로 와해된 우토시 건물.


도시기능 사실상 마비

구마모토 연쇄 강진
11만명 피난 큰 고통

“초중고교와 유치원 휴교, 시청 폐쇄….” 두차례 강진으로 47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다친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은 사실상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현내 유치원 및 초중고교의 60%가량인 450여개교는 여전히 수업을 하지 못했다.
건물 파괴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학교들, 그리고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는 학교도 많기 때문이다. 구마모토시는 오는 20일까지 휴교에 들어갔다. 공공기관도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청사가 파괴된 우토시, 야쓰시로시, 마시키마치 등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두차례 강진으로 가옥 파손은 물론 곳곳에서 산사태와 도로 단절 등으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대피소 생활을 하는 주민이 이날 오전에도 11만명에 달했다. 한때 피난민 수는 20만명에 육박했지만 아직도 절반 가까이는 추가 붕괴 우려 및 교통 두절 등으로 피난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피난민들은 하루 한끼로 버텨야 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위대가 긴급 급수 차량을 보내 식수 공급에 나섰지만 물과 식량부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구마모토현 아소시의 피난소에 있던 77세 여성이 숨지는 등 2차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건물에 금이 가고 일부가 무너진 우토시청의 경우 추가 붕괴 우려가 있어서 청사 접근이 아예 금지됐다. 야쓰시로시청도 붕괴 우려가 제기돼 이날부터 본청사를 폐쇄했다.
상당수 기업체와 음식점도 지진피해로 정상영업이 중단됐다.



14일 오전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 참배단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광주·전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이개호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지역구 당선자가 홀로 묵념하고 있다.


“선거철만 호남, 호남…이곳이 야당표의 화수분인가요?”


“아이고, 말할 것도 없이 심판한 것이지요.”

14일 오후 2시께 광주시 서구 치평동 무각사 인근 주차장에서 승용차 문을 열고 있던 정성철(45·회사원)씨에게 “총선 결과를 본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정씨는 “(수도권에선)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했고, 우리는 더민주를 심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왜 과거와 달리 더불어민주당을 응징하려고 한 것일까? “선거 때마다 밀어줬는데, 해준 것이 뭐 있어요? 뭔 말을 하더라도 선거철만 호남, 호남했잖아요. ”


많은 시민들은 광주에서 더민주의 참패를 “예고된 결과”로 받아들였다. 광산구 수완동에 사는 김수지(46·공인중개사)씨는 “여기가 (더민주의) 표가 솟아나오는 화수분인가요? 김종인 셀프공천을 보고 ‘아, 더 이상 기대할 것 없구나’ 했지요. 문재인은 ‘커버력’(정치력)이 없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국민의당과 지지격차가 벌어졌던 더민주가 호남 공천을 둘러싼 불협화음을 내자 유권자들이 조금 열었던 마음을 완전히 닫았다는 분석이 많다. 무각사 숲길에서 만난 김선미(45·보험회사)씨도 “더민주가 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총선 전 “광주가 국민의당을 지지하면 ‘호남 자민련’이 될 것”이라는 경고에 내심 찜찜해하던 시민들은 총선 결과에 대해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총선으로 박근혜 정권을 심판한 것이 가장 시원하고, 그 다음으로 더민주 혼낸 것이 후련하지요.” 광주 남구 양림동에 사는 박상현(52·자영업)씨는 “하지만 국민의당 광주 후보 면면이 이뻐서 찍은 것이 아니라는 말을 기사에 꼭 써 달라”고 말했다. 이상갑(49·변호사)씨는 “이번 총선은 기성정치를 심판한 것에선 일관성이 있다. 수도권에선 그 대상이 새누리당이었고, 호남에선 더민주였다. 광주에선 더민주 지도부가 당을 제대로 끌고 나가지 못한 무능을 국민의당 현역의원 심판보다 더 우선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민주 혼낸 것 마음 후련”

“국민의당 예뻐 찍은 거 아냐”

일부 “이렇게 표 쏠릴지 몰랐다”

문재인 거취엔 ‘관망’ 많아


그러나 일각에선 호남의 ‘나 홀로 선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아침 광주 동구에서 만난 정아무개(52)씨는 “나는 소신껏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한 쪽으로 쏠리니까, 조금 머쓱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광주지역 한 시민단체 운영회의에서 만난 노경수(54) 광주대 교수(부동산건축학과)는 “광주가 더민주에 대해 칼을 살짝 보여주기만 해야 하는데, 칼을 다 빼 들어 버린 것 같다. 다른 곳에서 이제 광주에 빚진 느낌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노 교수의 말을 듣던 최민석(54) 신부는 “더민주에 대해 영금(따끔한 곤욕)을 보인 것은 좋은데, 가치를 보고 투표해온 광주가 이젠 정치1번지라고 말을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주 싹쓸이를 곧바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에 대한 지지로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광주시 공무원 송아무개(56)씨는 “지역구는 국민의당을 찍고, 정당투표는 더민주에 줬다”고 했다. 김원영(54)씨는 “더민주의 무능과 선거전략이 주요 원인이다. 안철수가 좋아서 표를 몰아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당장 두 당이 기계적으로 통합하는 것보다 서로 경쟁하는 것을 보고 싶다. 앞으로 정치적 쟁점을 대하는 입장 한 두 가지만 보면 다시 여론은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은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던 문재인 전 대표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흐림’이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40대 남성은 “문재인이 크게 거시기(던져) 해부러야지. 약속했응께.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더라도…”라고 말했다. 무각사 앞 벤치에 앉아 있던 허아무개(75)씨는 “호남에선 패했는디, 딴디(수도권)서 승리한 것을 빙자해 나올 것 같던디…”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1500자 칼럼] 귀향

● 칼럼 2016. 4. 15. 19:35 Posted by SisaHan

얼마 전에 이곳 토론토에서 한국영화 ‘귀향’을 보았다.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군’위안부’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누구에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할 말이 없었다.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일이어서 나 자신조차 없었던 일처럼 잊어버리고 싶었다. 우리 역사에서 나아가서는 인류의 역사에서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인데 부끄럽다고 숨길 일이 아니라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일이다.
전쟁기간이라 해도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피해자들에게는 특히 여자로서 그보다 더한 굴욕과 수치가 없을 것이었다.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다가 죽어갔으며 설령 살아남았다 해도 산 것이 아니었다. 그런 만행이 일본군대의 조직적인 계획 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상황 아래 누가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가?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범죄로 여겨지는 나치독일의 유태인 학살에서 나치전범들은 유태인의 육체를 죽였지만 일본군들은 그녀들의 육체와 영혼을 죽였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살아있다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노를 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 자신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어떻게 약20만 피해자가 끌려갔는데,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을까?
영화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끌려간 여자 중의 한 명이 자신의 오빠가 일본군복을 입고 서있는 것을 보고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된다. 생각해 보면 여자들 못지않은 수의 남자들이 일본군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누이 같은 조선여자들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몰랐을까? 그녀들 중 극히 일부만 살아 돌아왔을 때,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영화에서 주인공이 피해자로 등록을 하러 갔는데, 담당자는 말한다. 미치지 않고는 피해자 등록을 할 수 없다고,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과거를 밝힐 수 없다고, 그러자 등록을 망설이다 그냥 가려던 주인공은 말한다. “내가 바로 그 미친 여자라고…”

 나 자신도 그 분들의 희생과 아픔, 그리고 맺힌 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몇 해 전에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국계 미국작가인 노라옥자 켈러의 소설, ‘The Comfort Woman’과 이창래의 소설 ‘A Gesture Life’로 대략 짐작을 할 정도이다. 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한국작가는 있는지 궁금하다.

 이 영화 한편을 만드는데도 유명하거나 자본이 든든한 영화사에서 외면하고 정부의 도움은 없었고, 오랜 시간 자금난에 허덕이다 하마터면 완성되지 못할 영화가 7만여 명의 시민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졌다. 개인적인 영리취득 보다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진실을 알리는 영화의 목적, 주된 목적이다. 그런 뜻을 알고 돈을 받지 않고 출연한 배우도 있다고도 한다. 영화는 제목이 말해주듯, 강제로 또는 속아서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여인 또는 소녀들이 고향에 돌아오는 사실을 주제로 하고 있다. 누가 돌아오고 돌아오지 못했는지 생각하게 만들지만 사실 대부분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살아남았다 해도 그들의 영혼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확히 밝혀질 수는 없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치스러워, 중국, 또는 동남아의 각지에 남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영화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혼이 되어 돌아오게 하여, 일종의 죽은 자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생각할 때 그들은 돌아와도 돌아오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20만명 중에 50여명이 살아남았는데, 그들은 가해자인 일본정부가 진실을 밝히고, 진정한 사과를 하고, 법적인 책임을 지고 배상하기를 원하고 있다.
작년 겨울에 한국 정부가 일본과 맺은 협정은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점도 있지만, 결국 돈1o억 엔을 받고 우리는 다시는 이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말이 무엇보다 진정으로 잘못을 사과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