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들과 어울린 훈훈한 무대

● 교회소식 2014. 11. 25. 19:27 Posted by SisaHan

밀알선교단, 소망교회서 밀알의 밤 음악회 열어

장애인 선교단체인 캐나다 밀알선교단(단장 김신기 목사)이 장애우와 가족들에게 용기를 주고 재활교육용 선교관 건립과 운영기금 모금을 위해 마련한 제19회 ‘밀알의 밤’ 음악회가 지난 11월15일 저녁 토론토 소망교회(담임 서인구 목사)에서 가족과 후원인, 일반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려 함께 기쁨을 나눴다.
 
‘주의 자비가 내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콘서트는 밀알선교단 장애우들이 찬양과 기타연주, 핸드벨 합주 등으로 평소 익힌 솜씨를 선보여 박수를 받았고, CCM 가수이며 작곡자인 민소영 씨와 대학가요제 입상자 한규원 집사(본한인교회 예빛찬양팀 리더)의 찬양, 시각장애인인 한재범 전도사와 이정례 씨 등의 찬조 공연으로 분위기를 돋웠다. 또 장소를 제공한 소망교회의 크로마하프 합주단과 몸찬양팀의 공연이 훈훈한 무대를 꾸며 참석자들이 함께 정을 나누며 어울린 한마당이 됐다. 이날 소망교회는 장애우와 참석자들을 위해 애찬도 준비해 주었다.
밀알선교단은 “장애우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며 따뜻한 사랑을 나눈 뜻깊은 시간이 되어 감사하다”며 각계 후원과 협조에 고마움을 표했다.
 
< 문의: 416-491-0002, 416-566-1232 >


10년 전 토론토에 온 이후 지금 까지 개척하여 목회를 하면서 많은 학생들에게 기타를 가르쳤습니다. 보통 처음 기타를 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몇 년씩 기타를 친 경력자들도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경력자 보다 더 빨리 진도가 나가는 일들이 자주 있습니다.
여러 해 기타를 치면서 자신에게 익숙한 코드와 주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습관을 고쳐 주어도 그 다음 번 레슨에서는 여전히 익숙한 이전 습관을 다시 가지고 옵니다. 
그러면 또 다시 반복 레슨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타를 10년, 20년 경력을 가지고 있어도 사실 익숙한 코드 몇 개와 주법 몇 개만 가지고 기타를 연주하는 분들이 대부분 입니다.
익숙하다는 것은 친밀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덧 무감각하게 익숙함에 젖어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골리앗 앞에 선 사울왕과 이스라엘군은 가지고 있는 전력과 기술로 골리앗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조롱 당하는 것도 패배하는 것도 익숙해 질 무렵 다윗은 평소 익숙한 돌팔매질로 골리앗을 죽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잘 살펴 보면 다윗은 익숙한 돌팔매질로 골리앗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익숙해도 돌팔매질 하나 믿고 골리앗 앞에 서는 어리석은 다윗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윗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 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익숙함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도전을 한 것 입니다.
우리 속하고 살아가는 사회는 죄와 부정에 익숙해져 가고, 우리들도 이제 그것에 익숙해져서 무감각 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항상 그래왔고, 우리 가정도 그래왔고 그리고 정치판도 그래왔으니 이제 익숙함에 편하게 가자”. “ 우리 교회는 원래 이래 왔으니 이것도 좋습니다”.
 
결국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는 일에도 익숙해져 버립니다. 그리고 범죄에도 동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듯 익숙함은 우리를 더 깊은 죄와 무감각으로 몰아넣고 결국 우리가 원하지 않는 모습을 갖도록 합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를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익숙함이 나의 게으름이 되지 않았는지, 익숙함이 나의 핑계거리가 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익숙함이 나의 무능이 되지 않았는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익숙함이 삶과 믿음의 도전에 방해가 된다면 이제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 조금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도전의 발걸음을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합니다.

< 임함남 목사 - 토론토 베다니침례교회 담임목사 >


[1500자 칼럼] 사이버 망명

● 칼럼 2014. 11. 25. 19:06 Posted by SisaHan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개의 일이 그러하듯, 한 때는 마치 큰 일이 벌어질 것 처럼 난리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조용히 잊혀져가고 있는 일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사이버 망명’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신조어랄까 새로 생기는 단어들이 많다. 그리하여 떠나 와 사는 사람들에게는 얼핏 대하는 단어의 뜻을 몰라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맨 처음 사이버망명이라는 말을 들었을때, 사실 어리둥절했다. 망명이라는 단어의 뜻은 알겠는데, 앞에 사이버라는 단어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얼핏 사이버라는 나라로 망명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망명이라면 흔히들 정치적인 망명을 의미한다. 부득이한 상황에서 타의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나라로 피신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망명이라는 단어에는 무게가 있고,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비장해지기도 한다.

한국사람들이 스마트폰 같은 휴대전화기로 카카오툭을 사용한다고 한다. 전화기로 무료 통화, 무료 장거리 전화를 사용할 수 있으며, 문자메시지 그리고 사진 전송까지 가능하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통의 수단이라고 한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다운로드를 받아 쓰고 있는 분이 있는데,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빠져 나가기 시작하여 ‘Telegram’이라는 독일회사로 사람들이 옮겨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적의 회사에서 독일국적의 회사로 소통수단을 바꾼다는 뜻인데, 망명이라 한다면 좀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망명까지의 어떤 심각한 갈등도 없이, 잠시의 불편을 참지 못해, 몇 분 다운로드 받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망명이라면….

일의 발단은 그랬다. 대통령께서 인터넷 상에서 더 이상 자신을 모독하는 일은 못참겠다고 하시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검찰에서 사이버 감시단을 만들고 업계 대표들을 불러 들였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의 반발이 심해졌다. 그러자 검찰이 개인적인 소통수단인 카톡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공개사이트를 말하는 것이라 해명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적인 대화도 감시당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비교적 보안이 철저한, 개인 대화의 내용이 비밀에 부쳐지고, 나중에라도 검찰의 조사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외국회사인 텔레그램으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장난이 아닌 것이 한동안 하루 몇 백만 명이 옮겨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텔레그램의 독일 담당자는 갑자기 한국사람들이 고객으로 몰려오는 통에 당황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발빠르게 움직여 한국어 능통자를 구하고 그리고 한글판을 개발해냈다니…. 그리고 빠져들어 온 한국고객들 때문에 별 이름도 없는 회사가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 좀 어이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참 우수한 개발품인 카카오툭 한국 본사에서는 고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사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검찰이 자신의 개인적인 대화 내용을 볼 수 있다는 말인데, 대부분의 한국민들에겐 상관이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슨 중대한 비밀 대화들을 한다고, 또 정부로서 그게 과연 기술상으로 실현 가능할지도 의심이 든다. 정부로서도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부 의심가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의 침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이다. 창조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여건이기도 하다. 생각을 자유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무엇보다 먼저 조성돼야 창조적인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아무튼 한국의 남북이 사상으로 갈린 특수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인지, 그로 인한 피해의식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감시받는 것을, 아니 가능성도 두려워하고 있다. 아마 자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친구 또는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얽혀 들어가 생활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감시를 당하는 일이 생긴다면, 왜 기본권을 침해하는냐고 항의하기에 앞서 딴 나라의 프로그램을 쓰겠다고 쉽게 돌아서서 우리 회사를 아무런 미련도 없이 버린다는 것도 그렇다. 한국의 대표적인 IT기업인 카카오톡이 그렇게 쓰러질 리도 없겠지만, 쓰러져야 한다면 너무도 억울한 일이다. 한국의 카카오톡이 페이스 북이나 트위터를 넘는 소통의 기구로 발전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어쩌면 이번 사이버 망명 소동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지 아니면 일종의 해프닝으로 없었던 일이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마치 찻잔 위의 태풍처럼 잠시 불고 갔는지? 왜냐하면 이제 한국신문이나 인터넷 상에서도 더 이상 사이버 망명이라는 말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투다. 비록 가상의 공간이지만 사람들은 독일까지 망명갔다 벌써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사설] 문학의 사명과 작가회의 40돌

● 칼럼 2014. 11. 25. 19:04 Posted by SisaHan
한국작가회의가 18일로 창립 40돌을 맞았다. 파란과 곡절의 지난 세월을 거쳐 작가회의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문학단체로 성장했다. 이런 뜻깊은 날을 맞아 축하의 박수를 보내기에 앞서 엄혹한 시대 현실을 둘러본다.
 
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가 태어난 1974년 11월18일은 박정희 유신체제가 긴급조치로 온 나라를 질식시키던 때였다. 그날 고은·백낙청·염무웅·박태순·황석영 등 문인들이 광화문에서 기습시위 벌이듯 모여 ‘문학인 101인 선언’을 발표했다. “오늘 우리 현실은 민족사적으로 일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이 선언은 긴급조치로 구속된 문인·지식인·종교인·학생의 즉각 석방, 언론·출판·집회·결사와 신앙·사상의 자유 보장을 촉구했다. 그렇게 정치적 폭압을 뚫고 태어난 자실은 1987년 6월항쟁 직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거듭났으며, 2007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정신과 역사를 온전히 계승”하는 한국작가회의로 이어졌다.
이 40년 동안 작가회의 문인들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맨 앞에서 싸웠다. 문학은 저항의 언어였고, 희망의 언어였다. 특히 70년대와 80년대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 시기에 문인들의 글은 시대를 고발하는 가장 큰 함성이었고 시대의 환부를 도려내는 날카로운 메스였다. 겨레의 화해와 남북의 통일을 위해 온갖 탄압을 무릅쓰고 앞장선 이들도 문인들이었다. 작가회의는 펜으로 시대의 어둠을 헤쳐온 우리 문학정신의 집성체라고 할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작가회의가 문학이 본디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사적이고 소소한 이야기에 한눈팔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회의 40돌에 젊은 작가들이 문학갱신을 다짐하고 나선 것은 반갑고 고무적이다. 김근·김경주·진은영 시인이 대표 집필한 ‘젊은 문학 선언’은 “지금 우리 문학은 작품 속에서 인간을 버렸다”며 인간 고통을 고발하는 데 게을렀던 문학에 대한 준열한 자기비판을 감행했다. “남쪽 바다에서 침몰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인간이었다는 증명인지 모른다”는 젊은 작가들의 언어는 절박하고, ‘문학의 유일한 존재이유는 기억하고 질문하는 데 있다’는 작가들 다짐은 절실하다. 이 다짐이 우리 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기를, 작가회의가 현실과 맞붙어 인간성을 드높이는 문학 고유의 사명을 다하는 데 튼튼한 진지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