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콘서트를 인도하는 이동영·김윤희 부부 선교사.

이동영·김윤희 선교사 ‘힐링’의 찬양

부부 찬양선교사 이동영 목사와 김윤희 사모 초청 ‘위로 콘서트’가 옥빌 한인교회(담임 석대호 목사)와 토론토 염광교회(담임 이요환 목사)에서 열려 성도들이 뜨거운 찬양가운데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부부선교사 찬양집회 위로콘서트는 11월5일 저녁 수요예배 시간에 염광교회에서 먼저 열렸고, 이어 7일 저녁과 9일 주일 오후 옥빌 한인교회에서 두 차례 집회가 열렸다. 주일 오후 콘서트에는 토론토 여성합창단(지휘 김경숙 권사)도 찬조 출연해 은혜로운 찬양집회가 됐다.
 
주요 합창단과 오라토리오 솔리스트 등으로 활약하면서 현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파송선교사와 CCM 크로스 오버 찬양사역자로 활동 중인 이동영·김윤희 선교사 부부는 솔로와 듀엣, 성도들과의 합창 및 연주 등으로 힘차고 은혜롭게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위로하는 시간을 참석 성도들에게 선사했다. 이 목사와 김 사모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예수 이름 높이세’, ‘모든 근심을 주께’ 와 ‘위로’ 등 히트곡을 호소력 있는 가창력으로 소화, 가을 저녁 성도들 가슴에 포근한 은혜의 메시지를 전했다.
 
< 문의: 905-510-7728, 905-415-9115 >


아버지학교 토론토 24기
고백·위로‥감동의 나눔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아버지들이여, 막힌 담을 허십시오!” 등의 구호와 함께 열린 토론토 제24기 아버지학교가 지난 11월7일과 8일 오후 서부장로교회(담임 박헌승 목사)에서 개강, 전반부 10시간 프로그램을 고백과 축복, 감동과 은혜 속에 진행했다. 후반부는 이번 주말 15일(토)과 다음 주 22일(토) 오후 5시~10시에 이어 열린다.
‘가정을 세우는 사람들’ 두란노 아버지학교 운동본부 토론토 운영위원회(위원장 조충호 디모데장로교회 장로) 주관으로 열린 이번 강좌에는 10여개 교회에서 30명 가까운 성도와 목회자, 천주교인, 불신자 등이 참석, 진행을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모인 수료자 30여명과 함께 오프닝 찬양과 기도로 시작해, 조별활동과 발표 및 나눔, 강사의 강의, 고백과 간증, 구호제창 등 시간대별 준비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이번 강좌에는 40대를 중심으로 70세 고령까지 다양한 연령이 참가, 이틀간 수료 선배들의 인도를 따라 과거를 돌아보고 서로 나누며 자성하는 한편 강사의 말씀으로 깨달음과 결단의 시간을 갖는 등 자신과 가정을 돌아보며 상처를 감싸 안고 ‘아버지와 남성 회복’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위로와 성찰의 기회를 갖게 했다.
 
강의는 첫날 장성훈 목사(토론토 한인장로교회)가 남성회복 운동과 아버지학교에 대해 설명하고 ‘아버지의 영향력’에 대한 말씀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장 목사는 “가정 회복의 중심인 아버지의 영향은 3~4대까지 이어진다”면서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아버지로부터의 영향력, 그리고 아버지로써 자녀들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력을 되짚어보며 저주는 끊고 좋은 영향력을 전해주기 위해 가족을 결속·사랑·인도·파송하는 역할을 감당하면서 기도로 축복을 간구하자”고 조언했다. 둘째 날은 김민규 장로(나이아가라 한인교회)가 ‘아버지의 남성’이라는 제목으로 아버지의 남성성을 파괴하는 남성문화들의 폐해를 들고 “그로인해 아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고 자녀들에게서 한숨이 나오게 하지는 않았는지 묵상해보자, 나는 과연 어진 왕·부드러운 전사·참된 스승·다정한 친구였는지, 폭군·비겁자·위선자·배신자는 아니었는지 돌아보자”며 회복을 위한 성결운동을 역설, 가정과 사회에서의 책임과 사랑을 다하는 남성성을 제시했다.
 
참석자들은 이어 조별 나눔으로 지나온 부정적 발자취를 돌아보며 죄와 상처와 잘못 등을 적어 불태우는 ‘태우기’ 의식도 진행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를 복창하고 허깅을 익히며 서로 용기를 돋우기도 했다. 또 아버지와 자녀, 아내에게 편지쓰기, 아내와 자녀가 사랑스런 20가지 이유 쓰기와 포옹하기·데이트하기·축복기도 등 숙제를 통해 가족사랑을 되새기며 ‘화해의 손’을 내밀기로 다짐하는 등 성찰과 격려의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학교는 15일 오후 강좌를 재개, 준비된 순서와 함께 박태겸 목사(동신교회 담임)가 ’아버지의 영성’ 강의를 하며, 22일에는 아내초청 및 세족식 등과 장성환 목사(런던 한인교회 담임)의 ‘아버지의 사명’ 강의 등 프로그램을 마치고 파송식으로 24기강좌를 마무리 한다.

< 문의: 647-907-0021, 905-482-9676, www.gcfather.org >


[기쁨과 소망] 함께함의 위력

● 교회소식 2014. 11. 18. 17:55 Posted by SisaHan
어떤 주인이 부도를 맞아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울수가 없었다. 그 주인은 메모와 함께 고양이를 작은 우리에 넣어 길가에 버렸다. 
주민의 신고를 받고 동물보호센터에서 이 고양이를 데려갔다. 고양이는 갇힌 공간에서 다른 버려진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 고양이는 전혀 밥을 먹지 않았다. 거식증(拒食症)에 걸렸다. 다른 친구들과 사귀지도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깊은 우울에 잠겼다. 3개월이 지나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전혀 먹지 않았다. 
동물보호센터에서는 신문에 광고를 싣었다. “기아 상태에서 죽어가는 고양이의 주인을 찾습니다.” 그러나 흉칙한 모습을 보고는 아무도 그 고양이를 데려가지 않았다. 이렇게 고양이의 삶은 끝이나는 듯 했다. 
그때 한 여배우가 나타나 그 고양이를 입양해 갔다. 새 주인은 고양이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지만 그는 도무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양한 주인은 고양이를 향한 사랑과 애정을 계속해서 전했다.
 
고양이는 한 주일이 지나자 슬거머니 새 주인의 품에 안겼다. 두 주일이 지나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 누가 돌봐도 회복될 수 없을 듯한 그 고양이가 일어섰다. 
어떻게 버려진 고양이가 회복될 수 있었을까? 주인의 ‘생명의 숨(breath of life)’이 그와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욥은 친구와 논쟁을 하다가 마침내 자기 주장을 내려놓고 회개한다. 이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함’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친구를 위해 기도하는 증인으로 바뀐다. 
주님의 제자 도마는 주님의 부활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주님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자 중인이 된다. 증인이란 내가 죽고, 내 인격이 주님과 ‘함께함’의 열매이다.
 
나는 8개월간 제자반을 하면서 사람들이 점점 증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이는 저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일어나는 열매이다.
내가 쎌모임에 참석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내가 식탁에 앉으면 성도들이 조금 긴장을 하지만, 그 자리가 은혜와 축복의 자리로 바뀐다. 하물며 하나님이 나와 같은 자리에 앉으면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나는자녀들에게 이런 확신을 심어준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면 다 잘 된다.” 네가 주와 함께 할 때 주님도 네 인생에 함께 하신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주인과 ‘함께함’ 이다. 이것이 버려진 고양이가 거식증을 푼 이유이다.

< 박태겸 목사 - 캐나다 동신교회 담임목사 >


[1500자 칼럼] 솔로몬과 여로보암

● 칼럼 2014. 11. 18. 17:52 Posted by SisaHan
어쩜 한 편의 설교를 쓸지도 모르겠다. 제목의 두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고 서로가 연관이 있는 사람이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지혜의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그의 재위 말년에 그는 이방 나라와 통혼하고 많은 처첩을 두었으니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범죄케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솔로몬으로서는 자신의 재위시나 사후에 나라를 안정시키는 비결이 주변 국가와 좋은 관계를 이루고 사는 것이며 그것은 양국간에 사돈 관계를 맺으면 더욱 안전할 것이라 보았을 것이다. 그 결과 이방 여인들이 가지고 온 우상으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나라가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국가가 되었다.
 
내치에 있어서는 자신의 신하 가운데 여로보암이 문제였다. 그는 솔로몬에게 충직한 신하였고 백성들의 신임을 받으며 개인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받았다. 이후 왕위의 두려움을 느낀 솔로몬이 그를 죽이려 했으니 이것을 피해 여로보암은 애급으로 달아난다. 솔로몬의 사후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애급에서 돌아와 백성들과 함께 르호보암에게 와서 솔로몬 당시에 가졌던 부역과 세금을 감면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거절 당하자 백성들과 함께 나라를 세웠으니 그것이 북왕국 이스라엘이다. 
북왕국의 시조가 된 여로보암 역시 나라를 세우고 보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통치하에 있는 백성들이 비록 나라는 갈라졌으나 민족의 절기인 유월절 같은 때 제사를 위해 성전이 있는 남왕국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그에게 생겼다. 그래서 대안과 같은 꼼수를 부렸으니, 절기도 바꾸고 자기가 만든 금신상을 단과 벧엘에 두고 꼭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드릴 필요 없이 여기에서 제사를 드려도 같은 제사가 된다고 역설한다. 또 그 제사를 집례해야 할 제사장도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세웠으니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여기서 문제는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솔로몬의 경우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고 지혜로웠던 왕인데, 어찌 그의 지혜가 세상적인 방식으로 나가 이방 여인들과 통혼함으로 우상을 섬기는 나라를 만들었으며, 자신의 신하를 믿지 못해 박해하다 죽이려 한 결과 그의 나라가 갈라지고 말지 않았는가. 
여로보암의 경우도 그렇다. 하나님이 그를 세우셨고 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조건 그대로 여호와만을 섬기는 왕이 되었더라면 나라는 그냥 정상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 인간적인 방식을 도입하여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을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은 후손들이 모두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악한 오명을 남기게 된 것이다. 
솔로몬과 여로보암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쓰다 실패한 왕들이고 오명을 남긴 자들이 되었다. 한국영화 ‘명량’이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느낀 것도 바로 그것이다. 지도자는 신하를 믿어야 하고, 지도자는 어떤 꼼수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말고 진실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그것은 신앙인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이 과거 시대와 많이 다르다고 해도 성경적인 삶에서 달라져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자신의 위치나 주변의 여건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일들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세상적인 방식, 인간적인 어떤 방식이나 이벤트를 통해 성도들의 마음을 모으고 교회를 이끈다면 거기에는 또 다른 폐해가 생기는 것이다.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