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연리지 나무

● 칼럼 2015. 6. 12. 16:45 Posted by SisaHan

은퇴를 하자고 조른 건 나였다. 남편은 그런 내 생떼를 3년간이나 잠자코 견뎌냈다. 아마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서양 명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부활절)이 오면 서툴지만 서양식 명절식단을 마련하려고 애를 썼었다. 이 나라의 풍습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었다. 내 자식들에겐 이 캐나다가 모국이니 말이다. 그런데 번번히 만찬을 차려놓고도 네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자리는 늘 비어 있었고, 가게를 닫은 한밤중에서야 혼자 늦은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20년을 훌쩍 넘기고 보니 어느 새 자식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었다. 왜, 무엇을 위해, 온 가족이 식사도 같이 할 수 없는 생업을 지속해야 하는지 그 명분을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건강할 때, 더 늦기 전에, 그간 잃어버린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은 갈망만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던 것이다.


은퇴하면 무엇을 하며 살까 고민하던 남편의 주저는 기우였다. 날마다 얽매인 스케줄로부터의 자유, 가게 운영상에 생기는 문제로부터의 자유, 무엇보다도 시간적으로 여유로우니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피로하면 아무 때나 쉴 수가 있고, 오랫동안 미뤄놨던 일들도 처리할 수 있었다. 아침이면 토스트, 요구르트, 과일을 곁들여 커피 한잔과 느긋하게 들며 새벽에 배달된 신문을 자세히 살펴 읽는 즐거움도 컸다. 가끔 창 밖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벗삼아 호숫가와 숲 속을 산책하는 여유도 싱그러웠다. 식사 때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그 나머지 시간은 아래층과 위층에서 각자 다른 생활을 한다. 간간히 친구가 생각나면 전화를 잡고 수다도 떤다. 저녁에는 함께 한국인 드라마로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접하며 메마른 감성을 적셔보기도 한다. 몸이 뿌듯하면 운동 삼아 탁구도 치고 골프도 함께 간다. 손주들이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를 하거나 장거리를 달려가 만나는 기쁨도 나눈다. 이 모든 일들은 은퇴하지 않으면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니, 얼마나 적절한 때 은퇴를 결단했는지 퍽 다행스럽기만 하다.


언젠가부터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연리지(連理枝)나무를 연상케 한다. 연리지 나무란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이웃 나무끼리 가지가 서로 붙어서 결이 하나로 이어진 것을 말한다. 일명 사랑나무로 불리며 연인과 부부의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다. 두 나무의 가지가 만나면서 서로 문질러 껍질이 터지고 생살이 뜯기면서 점차 상처가 아물어 같은 나이테를 갖는다는 연리지. 그 과정에서 껍질이 파괴되고 안쪽으로 밀려나 맨 살끼리 닿게 되면서 서로의 나무세포가 갈라지는 고통을 인내해야 한다. 이런 고통을 10년이나 견뎌야 비로소 연리지 나무의 특징인 서로의 영양분을 공유할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인가. 마치 남녀간의 사랑이 많은 장벽을 거치면서 완성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나무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그것은 수십 년 동안 갖은 불화와 갈등을 아우르며 평탄하게 살아가는 노년의 부부모습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실제로 다정스런 노부부를 보면 성격도 얼굴도 많이 닮아 보인다. 그 이유는 모난 돌이 세월에 닦여 동글동글한 조약돌로 변형되듯, 서로 부딪히면서 인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며 타협을 배우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연리지 나무 같은 결혼생활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은 철저하게 각자의 영역을 구분하며 서로 구속하지 않는 결혼생활에 가치관을 두는 것 같다. 우리 세대처럼 인내와 희생을 무조건적으로 하지 않고 쉽게 이혼을 결정하는 경향이 아닌가. 어쩌면 무턱대고 참고 견딤을 미덕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우리세대가 비합리적일 수도 있겠다. 하여, 근래에 부쩍 많아진 황혼이혼도 충분히 이해가 갈만도 하다. 다만 은퇴 후 나의 일상은 한 나무가 부실할 때 서로 영양분을 주고 받으며 공생하는 연리지 나무를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요즈음 와서야 깨달아가고 있을 뿐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세월을 함께 산 부부이니 오죽하겠는가. 한때 상대방을 위해 살아가는 줄만 알고 억울해 한 적도 있었으나 그것 역시 나 자신을 위한 길이었으니, 얼마나 새로운 깨우침인가. 이제서야 남편의 건강과 행복을 내 것인 듯 챙긴다.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한마당] 나라 망신 예고한 첫 단추

● 칼럼 2015. 6. 12. 16:40 Posted by SisaHan

예로부터 위신과 체통을 중시하는 양반들의 나라 한국의 자존심이 말이 아니다. 단 한명의 여행객이 묻혀 들여온 괴 바이러스가 온통 나라를 뒤흔들어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된 것이다. 이름도 생소한 메르스라는 중동산 호흡기증후군 신드롬이 중증이다.


거리도 먼 이방에 불청객으로 도착한지 불과 보름여만에 본고장인 사우디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보유한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불안의 여파가 얼마나 심각한지, 특히 자존심 강하기로는 적수가 없을 정도인 북한 마저 열감지기 등 방역장비를 도와달라고 남쪽에 황급히 손을 내미는 것을 보면 파장은 정말 크다. 졸지에 한국인들이 세계 각국에서 입국을 꺼려하는 처지가 되고, 나라마다 자국민의 한국행을 말리는 상황이 됐다. 메르스가 상시 유행하는 중동의 나라들이 ‘한국행을 삼가라’는 여행경고를 발했다는 소식에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휴대폰에, 자동차에, K-pop에 이르기까지 지구촌을 주름잡아 잘 사는 경제강국으로 소문나며 콧대가 높아졌던 한국이 하루 아침에 보건·의료 후진국으로 급전직하 추락해 버렸으니, 황당한 경우가 바로 이런 상황일 것이다.


단지 괴질 감염에 대한 불안에 그치지 않고, 경제·사회적인 여파가 빠르고 넓게 번져 후유증도 걱정이다. 상가와 각종 모임, 문화·연예·스포츠 행사들이 텅텅비고 매출이 반토막 나 모두들 울상이란다. 최초 진원지 평택은 폭탄을 맞은 듯 철시상태이고, 아예 한 마을이 차단과 동결로 고립된 곳도 있다. 표현 그대로 전쟁과도 같은 준전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메르스가 그처럼 공포의 살인괴질은 아니라고 말한다. 치사율이 40%라는 말이 있지만, 사우디의 경우 4만명 발병에도 사망자는 1%에 불과한 4백명에 그쳤을 만큼 심각하지 않고, 심지어 독감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경험담도 나오고 있다. 실제보다 과장, 과잉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별 것도 아닐 법 한데 왜 이렇게 한국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는 것인가.


모국의 언론들, 세계적인 뉴스들을 종합하면, 한국정부의 무능과 무개념에 지탄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최초 발병 환자를 병원측이 신고했음에도 반응이 없었다는 보건당국, 뒤늦게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허겁지겁 나섰지만, 치밀하지도 조직적이지도 못해 적절하고 철저한 방제와 차단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초기대응 실패에 후속대처도 졸속이었고, 특히 ‘삼성’을 의식한 비밀주의로 감염정보를 쉬쉬하며 화를 키웠다는 분석들이다.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쳐 참사를 키운 과오를 덮기에 변명으로 지샌 세월호 참사의 판박이라는 중론이다. 세계적인 난리법석 속에서도 유일하게 ‘사망 제로’를 기록했던 사스 당시 철통방역 노하우의 기억상실도 지적한다.


‘골든타임’의 중차대함이란, 어디 세월호나 메르스의 경우 뿐이랴. 골든타임이 인간지사 세상만사를 좌우한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되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은 첫 단추를 잘 못 끼워 고생하는 것과 같고, 한 번 뱉은 거짓을 참말로 위장하기 위해 일곱가지 거짓말을 동원한다는 루터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실수를 만회 한답시고 엉뚱하게 자치단체의 발빠른 대처에 시비를 거는 졸렬함이 그렇다. 준전시라며 팔을 걷어부친 서울시장·지사들을 칭찬은커녕 나무랄 이유가 무엇인가. 단 한명의 메르스 감염자를 경시했다가 나라가 뒤흔들리는 꼴이란, 무장공비 한명 놓쳐 국방불안을 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준전시’로 보아 박멸에 나섬은 너무 당연하다. 청와대가 콘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비겁한 리더쉽도 궁색하기 이를 데 없어, 역시 단추가 잘 못 끼워진 탓에서 근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정보·군기관의 댓글로, 또 비밀 선거캠프와 남북대화록 유출 등으로 권력을 취한 것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사죄와 개과천선의 골든타임을 뭉개고 덮으려다 보니 집권 내내 크고 작은 불상사가 잉태되어, 끊임없이 국민을 괴롭히고 나라를 추락시킨다는 이야기다. 이 참에 국민들도 첫 단추와 골든타임 무시의 실수를 되새길 터이니 그나마 작은 수확일지 모르겠다.
< 편집인 >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예상대로 맥빠진 공방만이 오간 부실 청문회였다. 검증에 필요한 자료가 대부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황 후보자의 답변에만 기댄 답답하기 짝이 없는 청문회였다. 황 후보자가 교묘한 발언으로 의혹을 피해 가도, 불성실한 답변으로 진실을 은폐해도 추궁할 자료가 없으니 검증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다.

병역 기피 의혹 문제는 대표적이다. 황 후보자는 “신검을 받을 때 저희가 어려운 집안이고 배경 없는 집안이라 특혜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병을 입증할 ‘자료’인데도 황 후보자는 어떤 근거 자료도 내놓지 못했다. 황 후보자는 신체검사 당시 군의관들이 자신의 두드러기 상태를 보고 “군에 가서 긁히면 집중할 수 없다. 결국 전투수행에 문제가 생긴다”며 면제 판정을 내렸다고 말했으나, 이 역시 상식과는 어긋난다. 두드러기로 고생하는 젊은이들이 수없이 많은데도 ‘전투수행 문제’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두드러기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사람이 불과 네 명이라는 사실 자체가 황 후보자의 병역 면제가 얼마나 이례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상황이라면 황 후보자 스스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해 의혹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마땅한데도 그는 오히려 ‘실력이 있으면 내 병역 비리 의혹을 한번 밝혀보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병역 기피 의혹 자체도 문제지만 이런 교만한 자세도 국민의 눈에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변호사 시절의 전관예우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가 변호사 시절 수임한 19건에 대해서는 법조윤리위원회가 수임 내역을 삭제한 상태에서 보냈다. 황 후보자는 야당이 청문회 보이콧까지 거론하며 압박하자 뒤늦게 “공개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으나, 인사청문 위원들이 이 사안을 깊숙이 들여다보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밖에 증여세 탈루 의혹 등을 밝힐 가족 간 금융거래 기록도 제출하지 않는 등 곳곳에서 자료 공백 상태가 빚어지고 있다.

황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지금 상황으로 볼 때 지루한 말씨름만 계속하다 흐지부지 끝나고 말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메르스 사태로 청문회 자체가 국민의 관심사 밖으로 벗어난 것을 기회 삼아 여당은 어물쩍 인준 절차를 마무리지으려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얼렁뚱땅 청문회로 내각의 최고책임자를 인준하는 게 옳은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점입가경이다. 메르스 공포에 국민은 공황 상태인데 청와대는 쓸데없는 싸움만 걸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국회·여당과 대립하더니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판했다.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가 한몸이 되어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이런 대립과 갈등을 보는 국민은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다. 박 시장 회견을 비판하기 전에 정상적인 정부라면 서울의 대형병원 의사가 메르스 증상이 의심되는데도 1500여명이 모인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한 사실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대처했어야 마땅했다. 그 장소에 모인 사람에게 정확한 상황을 알려서 추가 감염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옳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조합원 명단도 입수하지 못해 쩔쩔맸다. 이 의사에게 메르스를 옮긴 환자가 시외버스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왔다고 하는데, 정확한 이동 경로와 버스에 함께 탔던 승객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전염병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신속·철저하게 대응하는 게 생명인데, 정부 대응은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몇 배나 굼뜨고 비체계적이다.
왜 그런가. 지금 정부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메르스와의 전쟁을 지휘하는 사령탑이 없다는 점이다. 메르스와 싸우는 최일선의 책임자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그러나 그는 잇단 판단 잘못과 능력 부족으로 전선에 여러 차례 구멍을 냈고, 국민과 의료계의 신뢰를 잃었다. 국무총리는 공석이다. 부총리라도 중심이 되어 모든 부처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궁극적으로 메르스와 같은 국가재난 수준의 전염병 대처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중심에 서서 지휘하는 게 맞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하고 정부·민간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 국회의 법적·제도적 지원을 신속하게 받고,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하게 공조하며 지역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청와대는 뒷짐만 지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처럼 비치는 게 현실이다. 한 예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5일 박 시장을 비판하면서 “서울시와 복지부가 서로 긴밀하게 협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게 할 주체가 다름 아닌 청와대와 대통령이란 사실을 망각한 채 마치 제3자처럼 말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이 이런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부처간 협조가 발 빠르게 진행될 리가 없고, 대응도 체계적일 리 없다. 골든타임에 보건복지부가 환자의 동선과 접촉자 파악에만 며칠을 허비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대통령이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해야 한다. 필요하면 중앙대책본부에서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현장을 찾아가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믿음을 잃은 장관 뒤에서 보고만 받고 있어서는 메르스와의 전쟁에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