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안 후보 쪽에서 결렬 통보”

그간 협상 공개…책임 떠넘기기

안철수 “고려할 가치 없는 제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대선토론에 앞서 인사후 돌아서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7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물밑 단일화 협상 전말을 전격 공개하며 결렬의 책임을 안 후보에게 돌렸다. 이에 안 후보는 “(윤 후보 쪽에서 제안한 내용은)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며 윤 후보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28일로 예정된 투표용지 인쇄를 앞두고 양쪽의 물밑 협의가 이어졌지만 결국 야권 단일화 논의가 후보 간 감정싸움으로 번지며 파국 수순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윤 후보는 이날 유세 일정을 취소한 뒤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그간의 협상 상황을 공개하며 “오늘 아침 9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쪽으로부터) 단일화 결렬 최종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협상 채널은 국민의힘에서는 장제원 의원이, 국민의당에서는 이태규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맡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전날 오후 2~4시, 이날 0시40분부터 새벽 4시까지 두 차례 협의를 진행해 후보 회동 일정 조율만 남은 상태였지만 일방적으로 단일화 결렬을 통보받았다는 것이 윤 후보의 설명이다. 윤 후보는 “안 후보가 완주 철회를 위한 명분을 조금 더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안 후보가 사퇴 의사가 있었다는 점을 부각했고, 안 후보가 제안한 여론조사 경선은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오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동안 단일화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온 윤 후보가 그간의 협상 노력을 세세하게 공개해, 안 후보에게 단일화 최종 결렬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야권 단일화가 끝내 불발될 경우 책임론에서 벗어나 지지층 결집을 통한 투표로써의 단일화를 호소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읽힌다. 회견 뒤 경북 포항을 방문해 티케이(TK) 유세에 복귀한 윤 후보는 “안 후보가 시간과 장소를 정해준다면 지방에 가는 중이라도 언제든지 차를 돌려, 직접 찾아뵙고, 안 후보와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단일화의 마지막 불씨는 남겨뒀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7일 전남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유세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하지만 안 후보는 후보 회동 일정 조율만 남았다가 최종 결렬된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안 후보는 이날 오후 전남 여수 오동도 부근 이순신광장에서 유세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 아침에 (윤석열 후보 쪽에서) 제안을 했으나,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기에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또한 “국민경선을 계속 주장했는데 (국민의힘 쪽에서) 어떠한 의견 입장이 없었다. (국민경선을) 안 받으면 왜 안 받는지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며 “저희는 협상 내용(여론조사 경선)을 올렸는데 상대측에서 없다고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후보가 이태규 본부장을 전권 대리인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어제 갑자기 (윤 후보 쪽에서) 연락이 왔고, ‘한번 얘기해보자’는 제안이었다고 한다”며 “어떤 말을 할지에 대해 이 의원이 나가서 그 말을 듣기로 했다. 저는 ‘전권 대리인’ 이런 개념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추가 협상 가능성을 두고는 “이미 이런 협상에 대해서 시한이 종료됐다고 선언했다”며 일축했다. 장나래 김해정 곽진산 기자

 

안철수 “국힘, 국민경선 제안 묵살…단일화 고려할 가치 없다고 판단”

 

국힘, 야권 단일화 무산 책임 안철수에 돌리자

“협상내용 올렸는데 없다고 하는 것 도리 아냐”

이태규 “선대본부장으로 만나…전권 대리인 아냐”

“최종 결렬된 건 윤석열 후보측 ‘신뢰’에 대한 의구심”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7일 오후 전남 순천시 아랫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7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쪽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과 관련해 “오늘 아침에 (윤석열 후보 측에서) 제안을 했으나,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기에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이날 오후 4시께 전남 여수 오동도 부근 이순신광장에서 유세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단일화 방법과 관련) 국민경선을 계속 주장했는데 (국민의힘 측에서) 어떠한 의견 입장이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민경선을) 왜 안받는지, 안받으면 왜 안받는지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는지도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날 오후 1시께 기자간담회를 열어 안 후보 쪽과의 야권 단일화 협상 과정까지 상세히 공개하며 ‘두 후보간 회동 일정 조율만 남은 상태에서, 정확한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최종 협상 결렬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하자 반박에 나선 것이다. 안 후보는 “협상이란 서로 얘기를 하는 거다. 저희는 (국민경선을 하자고) 협상 내용을 올렸는데 상대 측에서 없다고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윤 후보 쪽이 단일화 무산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 후보는 또 윤 후보가 직접 계속 연락을 시도하고 만나려 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데 대해서도 “계속 전화가 오고 문자가 3만개가 넘는데 이 전화로 어떤 통화를 하고 시도를 할 수 있겠나”며 “이것 자체도 당(국민의힘)의 채널을 통해 제 번호를 지금 이 순간에도 뿌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 과연 협상 파트너의 태도인지, 이것은 당에서 공식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안 후보는 ‘협상의 여지가 남았느냐’는 기자들의 질의에 “이미 이런 협상에 대해서 시안이 종료됐다고 선언했다”며 사실상 단일화 협상이 종료됐다고 못박았다.

 

안 후보의 이런 기자회견 내용은 ‘여론조사 방식 단일화가 애초부터 협상 테이블에 없었다’는 국민의힘 쪽 주장과 어긋나는 부분이다. 또 국민의힘은 협상 내용을 공개하며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대본부장이 안 후보의 ‘전권 협상대리인’이었다고 지목했지만, 이 본부장은 “선대본부장 차원”에서 만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전권 협상대리인이 아닌 선대본부장 차원에서 윤 후보 측의 진성성과 단일화 계획을 확인하고자 어제 오후와 오늘 새벽에 만났고 단일화 의견들이 오갔지만, 윤 후보 측이 구상하고 제시하는 단일화 방향과 내용이 상호 신뢰를 담보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봤기에 오늘 아침 최종 결정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또 “(단일화 협상이) 최종 결정에 이르지 못한 배경에는 단일화 제안 이후 보여주었던 윤 후보 측의 다양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신뢰’에 대한 문제가 컸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모든 것을 변명과 입맛에 맞추어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보면서 윤 후보 측에서 제안하는 여러 내용을 그대로 믿기에는 신뢰에 문제가 있다고 결정했다”며 “윤 후보 측의 요청으로 시작된 비공개 협의 사실을 후보가 직접 나서서 공개하고 일방적 관점에서 주장한 것은 스스로 진정성을 부정하는 모순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곽진산 기자

 

단일화 협상 결렬되자…‘졸렬한 안철수’ 만들기 나선 윤석열

 

윤 후보가 직접 회견 나서서 ‘표리부동’ 지적

배포한 ‘경과파일’ 원 제목은 ‘못 만나면 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7일 오전 유세일정을 취소하고 오후 1시 단일화 관련 기자회견을 예고하면서, 정치권에서는 윤 후보가 안 후보의 여론조사 단일화 제안을 수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그간의 협의 상황을 이례적으로 상세히 공개했고, 그 내용은 ‘삼고초려 윤석열’과 ‘표리부동 안철수’로 요약됐다. 윤 후보는 이날 “(안 후보가) 시간과 장소를 정해준다면 지방 가는 중이라도 차를 돌려 찾아뵙겠다”며 협의 재개를 촉구했지만 실상은 단일화 무산의 책임을 안 후보에게 떠넘기는 모양새였다. 정권교체를 위해 보수 야권 후보 단일화에 책임을 다했다는 점을 호소해 지지층을 묶으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직접 회견…결렬 책임 피하려 협상일지까지 공개

 

윤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한 자신의 노력을 부각시키려 애썼다. 그는 ‘완주 철회 명분을 더 달라’는 안 후보 쪽 요청에 “안 후보 자택을 방문해서 정중한 태도를 보여드리겠다고 전달했다”며 한껏 낮춘 자세를 강조했다. 윤 후보는 이날 새벽까지 이어진 실무협의 뒤 안 후보 쪽의 긍정적 답변을 기다리려고 “저도 어제 잠을 못 잤다”고 했고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저희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성심을 다해 실무협상에 임했고 안 후보와의 회동 일정이 잡힐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일이 틀어지게 된 건 안 후보 책임이라는 얘기다.

 

국민의힘의 이런 기조는 윤 후보 회견 뒤 배포한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협상경과’라는 제목의 5장짜리 문건으로 더욱 확연해졌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최진석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윤 후보에게 전화해 ‘안철수 후보와 교감 후 연락한다’며 단일화 조건을 선 제안”했다는 내용부터 이날 오전 9시 이태규 선대본부장의 결렬 통보까지의 상황을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나아가 안 후보가 지난 20일 여론조사 단일화 제안을 철회한 뒤인 23일과 24일 윤 후보가 안 후보에게 만남을 청하며 보낸 장문의 문자메시지도 공개했다. “안 후보님을 직접 뵙고 정권교체를 위해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저의 진정성을 믿어주시기 바라며 다시 한번 제안드립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기자들에게 배포된 이 파일의 초기 제목은 ‘정리해서 못 만나면 깐다’로 확인되면서 협상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협상을 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협상이 깨질 것에 대비해 결렬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고 미리 대비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공보단 관계자는 “한글문서를 피디에프로 바꾸면서 예전 표를 덮어쓰기 하던 과정에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

 

안 후보 쪽과의 협상 상황을 윤 후보 본인이 세세하게 공개한 이례적 행동은 최근 박빙으로 돌아선 선거 판세와 무관치 않다. 윤 후보는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초경합 상태로 나타나자 후보 단일화가 절실한 상황이 됐다. 그러나 ‘여론조사 단일화’(안철수)와 ‘여론조사 단일화를 제외한 모든 제안 수용’(윤석열)이라는 입장 차이는 컸다. 윤 후보는 이날 오전 안 후보 쪽의 ‘결렬 통보’를 받고 더 이상의 협상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그간의 노력을 부각하며 단일화 무산 책임 경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윤핵관’ 장제원, 무보직으로 전권대리…비선 논란

 

이번 단일화 협상에서는 ‘윤핵관’ 논란과 아들 문제로 물러났던 장제원 의원이 윤 후보의 대리인으로 전권을 행사하면서 또다시 비선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의당 협상 상대는 이태규 총괄선대본부이었지만 장 의원은 지난해 9월 캠프 총괄실장직에서 물러난 뒤 선대본부 안에서 직책이 없는 상태다. 이준석 대표와 갈등을 빚으며 윤핵관 논란이 다시 불거졌던 지난해 11월에도 “윤 후보 곁을 떠나겠다”고 거듭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그에게 ‘전권 대리인’ 역할을 맡겼고 이에 대해 “장 의원의 매형이 카이스트 교수인데 안 후보와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다. 서로 의사전달 하는 데 편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안 후보도 장 의원을 협의에 참여시키는 데 동의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장나래 기자

 

‘단일화 결렬’ 원색 비난전…새벽 4시까지 실무 협상, 무슨 일이?

 

윤-안, 단일화 결렬 책임 공방 거세져

윤석열, 직접 ‘비공개 협상’ 내용 공개 나서

국민의당 “진정성 부정하는 모순된 행동”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야권 단일화 협상이 다시 결렬되면서 양쪽이 책임 소재를 두고 상호 비난전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비공개로 진행한 협상을 일지 형식으로 모두 공개하며 안 후보를 비판했고, 국민의당은 “일방적으로 까발리는 것”이라며 윤석열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윤 후보는 2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7일부터 약 20일간 진행된 5쪽짜리의 단일화 협상경과와 윤 후보가 안 후보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안 후보는 지난 13일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제안했다가 지난 20일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는데, 국민의힘은 그 전후 시기에 양당 간에 물밑 조율의 과정을 전부 공개하면서 안 후보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점을 부각했다.

 

국민의힘이 공개한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협상경과’ 자료에 따르면 단일화 논의는 지난 26일 아침 7시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대본부장이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화로 추가적인 실무 회동을 제안하면서 재개됐다. 국민의힘은 장 의원과 이 본부장의 협상이 각각 윤 후보와 안 후보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상황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26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협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윤 후보와 안 후보가 ‘정치교체, 정권교체, 시대교체를 내건 공동선언’에 합의하고 두 후보에게 각각 보고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장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과학강국, 과학실용의 새 시대, 디지털플랫폼 정부, 부패 척결, 공정한 나라, 변화와 혁신의 길,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는 길, 분열된 통합의 길 등 (공동선언문에 담길) 이런 키워드까지 합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5시간 뒤인 밤 9시, 이 본부장이 장 의원에게 ‘안 후보의 완주를 철회할 명분’을 추가로 달라고 요청했고, 장 의원은 ‘윤 후보의 안 후보 자택 방문’을 제안했지만 불발됐다고 국민의힘은 설명한다. 두 사람이 27일 0시40분부터 새벽 4시까지 심야 협상을 벌여 윤 후보가 안 후보에게 공개 회동을 제안하기로 합의했지만 이 본부장이 이날 오전 9시 단일화 협상 결렬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쪽은 윤 후보의 기자회견이 상호 신뢰를 깬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 본부장은 “후보가 직접 나서서 (협상 상황을) 공개하고 일방적 관점에서 주장한 것은 단일화의 진정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 진정성을 부정하는 모순된 행동”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여론조사 단일화 제안에 응답하지 않은 윤 후보의 ‘무성의’가 결렬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반박했다. 안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제가 계속 주장했던 것은 국민경선”이라며 “(윤 후보 쪽이) 어떠한 의견 입장 표명이 없었다. ‘왜 안 받겠다’ ‘받겠다’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윤 후보는 “대리인 사이의 단일화 협의 과정에서 여론조사 얘기는 한번도 나온 적 없다”는 주장에도 안 후보는 “저희는 (여론조사 단일화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는데 (윤 후보가) 없었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으로 도리가 아니다.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본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민의힘) 저기는 여론조사 경선 한다고 하면 논의 자체를 안하잖나. 그러면 여론조사 아니면 무엇을 생각하고 있냐, 그걸 논의하러 간 거다. 그랬더니 ‘공동정부’를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또 입장문을 통해 “오늘 윤 후보가 발표하기로 한 (윤 후보의) 회견내용은 단일화 제안 이후 1주일 간의 자신의 불찰을 인정하고 안 후보에게 정중하게 사과 의사를 표명하고 단일화 의지를 밝히며 회답을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의 책임전가 회견에 자신들도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안 후보 역시 단일화와 관련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안 후보는 지난 25일 생중계된 대선 티브이 토론에서 “(단일화는) 이미 다 결렬됐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로 다음날 이 본부장을 통해 여론조사를 내걸고 국민의힘과 비공개 협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본부장은 이날 “안 후보의 인지하에 전권 협상대리인이 아닌 선대본부장 차원에서 윤 후보 측의 진정성, 단일화 방향과 계획을 확인하고자” 접촉했다고 해명했다.

 

결국 윤 후보와 안 후보 사이의 불신은 더 깊어지게 됐다. 단일화의 문 역시 더 좁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김해정 장나래 곽진산 기자

 

 

‘읽지 않은 문자’만 1만8723개... 안철수 “이 전화로 뭘 할 수 있나”

 

“국민의힘이 전화번호 유포 뒤 문자 폭탄”

윤석열 “문자 보내고, 봤다는 답변도 받아”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7일 오전 전남 목포시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의 힘 측이 전화·문자 폭탄을 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7일 전남 여수 유세장에서 ‘문자폭탄’ 세례를 받고 있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취재진에 공개하며 “이 전화로 어떤 통화를 하고 어떤 시도를 하나”라고 되물었다.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안 후보에게 보낸 사실을 공개하며 단일화에 진정성을 보였다고 주장하는 윤석열 후보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안 후보는 이날 전남 여수 오동도 부근 이순신광장에서 유세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계속 전화가 오고, 문자가 3만개가 넘게 왔는데 제가 이 전화로 어떤 통화나 시도를 할 수가 있나”라고 말했다. 안 후보가 기자들에게 공개한 자신의 휴대전화에는 읽지 않은 문자메시지 숫자가 1만8723개로 표시돼 있었다. 국민의당은 안 후보가 지난 20일 여론조사 단일화 제안을 철회한 뒤 국민의힘이 안 후보의 전화번호를 조직적으로 유포해 윤 후보 지지자들이 안 후보에게 문자폭탄 공격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안 후보도 “당(국민의힘)에서 어떤 채널을 통해 제 번호를 지금 이 순간에도 뿌리는 걸로 안다. 이런 짓들을 하는 것이 협상 파트너로서의 태도인지, 당에서 공식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 후보에게) 워낙 문자가 많이와서 제가 전화와 문자를 드린 것을 볼 수 없으셨을 수 있겠지만, 안 후보에게 전화·문자 드리고 나면 그쪽 관계자에게 전화를 제가 드려 문자 드렸으니 보시라는 말씀을 전했고, 보셨다는 답변도 들었다”고 반박했다. 안 후보가 문자를 확인하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문자폭탄’을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나래 기자

 

[사설] 서로 ‘네 탓’ 하며 볼썽사납게 끝난 윤-안 단일화 협상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볼썽사나운 ‘네 탓’ 공방 끝에 사실상 막을 내렸다. 윤 후보는 전권대리인을 통해 전달받은 안 후보 쪽 제안을 자신이 모두 수용했지만 안 후보 쪽이 일방적으로 결렬을 통보했다고 주장했고, 안 후보 쪽은 윤 후보 쪽의 책임 떠넘기기라고 반박했다. 비전과 정책의 공유 없이 후보들의 지지율 부침에 따라 냉온탕을 오간 ‘선거 공학적’ 단일화 협상의 예고된 파국이라 할 수 있다.

 

윤 후보는 27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권대리인 협상에서) 오늘 아침 7시까지 (두 후보의) 회동 여부를 포함한 (회동) 시간·장소를 결정해 (서로) 통보해주기로 합의했지만 오전 9시 (안 후보 쪽으로부터) 단일화 결렬을 최종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협상 결렬 이유에 대해선 “저희도 알 수가 없다. 그쪽(전권대리인)도 ‘이유를 모르겠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전날부터 이날 새벽까지 두차례 이어진 협상에서 안 후보 쪽 제안을 모두 수용했으나 안 후보 쪽이 돌연 판을 깨버렸다는 주장이다. 안 후보 쪽은 즉각 반박했다. 이태규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입장문을 내어 “전권대리인이 아닌 선대본부장 차원에서 윤 후보 측의 진정성, 단일화 방향과 계획을 확인하고자 만난 것”이라며 “오늘 (윤 후보의) 회견으로 책임 회피를 위해서는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신뢰하기 어려운 세력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시켜주었다”고 밝혔다. 안 후보도 여수에서 유세 뒤 기자들에게 “오늘 아침 (윤 후보 쪽에서) 전해온 내용을 듣고 그 내용이 별반 차이가 없어서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누구 말이 진실인지는 협상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핵심은 이번 단일화 협상이 안 후보가 윤 후보 쪽이 수용하기 어려운 ‘국민 경선 방식의 여론조사’를 갑자기 제안한데다, 지지율을 따라 오락가락한 윤 후보 쪽의 불성실한 협상 태도 탓에 타결이 쉽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 25일 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TV 토론회에서 안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이미 다 결렬됐다고 선언을 했다. 분명하게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는데도 윤 후보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그동안의 물밑 협상 내용까지 시시콜콜 공개한 것은 정치 도의에 어긋난다. 단일화 무산의 책임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피해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두 후보 모두 이제 단일화에 대한 미련을 접고 비전과 정책으로 정면 승부를 펼치기 바란다. 투표일까지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유레카] 비선실세 ‘윤핵관’ 장제원 의원 / 정남구

 

1882년 차별과 임금 체불에 시달리던 구식군대가 선혜청 당상 민겸호의 집에 불을 지르고, 그의 뒷배를 봐주던 민 왕후를 죽이겠다고 경복궁으로 쳐들어갔다. 가까스로 달아나 충청도에 숨어 있던 민 왕후에게 어느 날 한 무당이 ‘신령님이 알려줬다’며 찾아왔다. 무당은 50일 안에 궁궐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흥선대원군을 밀어내고 한달 만에 환궁할 수 있었다.

 

무당에게 혹한 민 왕후는 ‘관우의 딸’을 칭하는 무당을 위해 사당 관왕묘를 지어주고, 왕자나 공신에게 주는 ‘군’의 칭호까지 내렸다. ‘진령군’은 국정과 인사에 깊이 개입하는 숨은 실세가 됐다. 황현은 <매천야록>에 “장차관급 인사들도 앞다퉈 진령군에게 아부했고, 누님 혹은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고 기록했다.

‘비선 실세’는 존재 자체로 통치권력의 정당성을 흔든다. 직선 대통령들의 지지율이 정권 말이면 다 추락했지만, 유독 박근혜씨가 임기 중 탄핵을 당한 것도 비선 실세 탓이 컸다. 최순실(최서원)은 대통령을 마치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사람이었으니, 국민이 몰아낸 것은 ‘가짜 대통령’이란 말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이번 대선에 나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주변에도 비선 실세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법사·도사로 불리는 이들이 한 부류다. 정부·여당이 ‘무주택자들이 집 가진 사람 횡포에 시달리게 해서 표를 얻으려고 일부러 집값을 올렸다’든가, ‘광주 시민들이 좋은 물건에 관심을 가져 투쟁 능력이 약화될까봐 복합쇼핑몰 유치를 막았다’든가, ‘탈원전 정책은 태양광 패널을 만드는 중국을 위한 것’이라든가, 논리가 황당한 말들을 후보의 입에서 나오게 만드는 신통한 능력을 가진 이도 있다.

 

언론에 등장하는 ‘윤석열 후보 쪽 핵심 관계자’(윤핵관)는 다른 부류다. 지난 1월 윤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이 수습되면서 사라진 듯했던 ‘윤핵관’이 최근 다시 등장했다.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장제원 의원하고 ‘(후보) 두분이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윤핵관’이라고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했던 장 의원이 단일화 물밑 협상 파트너였다는 것이다. 윤 후보도 27일 기자회견에서 선대본부에 아무런 직책이 없는 장 의원이 단일화 협상 전권 대리인이었다고 밝혔다. 비선 실세는 쉽게 밀려나지 않는 법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유사시 일본, 한반도에” 윤석열 발언 수습 나섰지만, 후폭풍 거세

 

국가보훈처 산하 단체들 “귀를 의심케 하는 언사”

민주당 “일 극우인사 같은 ‘망언’…국민 앞 사죄를”

국힘 “유사시 개입 전제한 말 아냐, 허위사실 공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2차 티브이(TV) 토론회에서 언급한 ‘유사시 일본의 한반도 개입’ 발언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망언”이라며 사과를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허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수습에 나섰다.

 

윤 후보는 지난 25일 토론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3불 정책’(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불추진)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시) 유사시에 한반도에 일본이 개입하도록 허용하는 건데 그걸 하시겠나”라고 묻자 “유사시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거지만 꼭 그걸 전제로 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윤 후보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검토하시는 거냐”는 심 후보의 질문에 “절대 안 하실 거냐”고 되묻기도 했다. 윤 후보의 이런 발언은 일제 강점 등 한일 관계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까지 상정하는 ‘한미일 동맹’이란 용어 대신 ‘한미일 안보협력’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와 충돌하는 발언이었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이런 발언을 ‘망언’이라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후보는 토론 다음날인 26일 특별성명을 내어 “윤석열 후보가 어제 토론에서 유사시에는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망언을 했다”며 “도저히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의 발언이라고 보기 어려운 윤 후보의 국가관과 대일본 인식을 보여준다. 일본 극우세력 인사의 발언과도 구분하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 후보는 3.1절을 앞두고 한 자위대 한반도 진입 가능 망언을 취소하고 순국선열과 국민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가 윤 후보의 발언을 왜곡했다며 법적 조치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은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전날 토론회에서 윤 후보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을 허용했다는 이 후보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심 후보의 ‘한일동맹하면 유사시 일본 진입을 허용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꼭 그걸 전제로 하는 건 아니란 취지를 분명히 했다. 설령 한일동맹을 하더라도 유사시 일본이 한반도에 들어와선 안 된다는 얘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허위사실공표를 즉각 사과하지 않으면 법적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혜련 민주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이에 대해 27일 “윤 후보의 자위대 망언에 국민의힘도 화들짝 놀란 모양이다. 논란 확산을 차단하고 싶은 것인지 오히려 ‘법적조치’ 운운하며 겁박하고 있다”며 “경악스러운 망언을 내뱉고 이처럼 얕은 수로 책임을 면하려 한다고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윤 후보는 발언을 즉각 철회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또다시 맞받았다.

 

국가보훈처 산하 25개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도 이날 성명을 내어 “3·1절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난 2월25일 개최된 대선 후보 2차 법정 토론회에서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케 하는 언사가 이뤄져 심히 유감스럽고 우려가 들어 분노하는 마음으로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윤석열 후보의 이 같은 발언은 참으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항단연은 “일본의 자위대가 해외 파병이 안달이 난 현재 상황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일본의 군대가 우리 영토에 발 하나라도 딛게 해서는 안 된다”며 “동학 농민 혁명을 진압하기 위한 유사시의 명분으로 일본이 처음 우리나라에 군대를 보냈었다는 역사를 복기해보면 단서 조항으로도 일본의 자동개입 여지를 남겨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윤 후보의 인식에 우려를 표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윤 후보가 자위대의 개입을 명시적으로 주장한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자위대가 개입하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예민한 국민 정서를 고려해 (자위대 개입 가능성을) 부인하는 쪽이었다”고 말했다.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구축센터 팀장은 “윤 후보의 발언은 상당히 위험하고 심각하게 볼 부분”이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통해 일본과의 협력을 높인다는 국민의힘의 외교 방향도 아베 정부의 자위권 추구나 평화헌법 개정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윤석열 없는 윤석열 영주 유세…국민의힘, 우왕좌왕하며 ‘안철수 탓’

 

‘단일화 관련 기자회견’으로 경북 일정 취소해

현장선 윤석열 불참 몰라 “곧 도착” 우왕좌왕

“윤, 하루종일 안철수 만나러 가야…양해 부탁”

 

27일 오전 경북 영주시 번영로에 마련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유세장에서 연예인 유세단이 윤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선대본부 공보단은 이날 오전 언론 공지를 통해 “윤 후보가 오늘 사정상 유세에 참석하지 못함을 알려드린다”며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관련 입장 표명을 이유로 27일 예정됐던 경북 지역 유세 일정을 급작스럽게 취소하면서, 일정을 전달받지 못한 유세 현장에선 윤 후보의 참석 여부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국민의힘 경북 지역 의원들은 “곧 윤석열 후보가 도착할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다 결국 윤 후보의 ‘노쇼’가 확정된 직후, 지지자들에게 큰절 사과에 나섰다.

 

윤 후보는 이날 오전 9시 경북 영주시 하망동에서 선거 유세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세 시작 20분 전인 오전 8시40분,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공보단이 윤 후보의 유세 일정 전면 취소 소식을 문자메시지로 공지할 때까지, 현장에서는 아무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 했다.

 

현장에선 윤 후보의 유세를 보기 위해 지지자들이 약 1시간 전부터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개그맨 김종국씨 등 연예인 유세단이 사전 유세로 한창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윤 후보의 일정 취소를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전달된 이후에야 무대에 올랐던 김정재·박형수 의원 등 경북 지역 의원 등이 여기저기로 전화를 거는 분주한 모습이 포착됐다. 윤 후보의 유세 시작 시간에 맞춰 현장에 도착한 선대본 대변인단도 윤 후보의 위치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현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전 9시가 임박할 때까지도 사회자는 청중들에게 “곧 우리 윤석열 후보가 도착하십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지지자들은 “윤 후보가 오면 사진을 찍을란다”라며 윤 후보가 오를 단상이 잘 보이는 쪽에 자리를 잡으려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일부 시민들은 취재진과 대변인단이 모여 있는 유세장 밖을 지나가다 “윤석열 후보가 여기에 오는 것이냐”고 묻고 대변인들과 사진을 촬영하는 등 들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도 윤 후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유세를 보러 온 시민들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오전 9시가 지나자 김정재(포항시 북구) 의원과 김관용 전 경북지사, 송언석(김천시)·임이자(상주시·문경시)·김영식(구미시을)·박형수(영주시) 의원이 연이어 무대 위에 올라 윤 후보의 연설 시간을 채웠다. 경북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인 김정재 의원은 “우리도 사전투표 해서 민주당에 선빵을 날려야 한다”고 말했다. 송언석 의원은 “영주와 김천을 다니는 경북선 열차 전철화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이거 하려면 3월9일에 윤석열 후보를 통으로 뽑으면 무조건 된다”고 말했다. 임이자 의원은 “민주당 여성 국회의원들한테 한번 묻고 싶다. 여성운동한다고 큰소리 뻥뻥 쳐놓고 형수에게 대놓고 욕설을 하는 이재명을 지지하느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연설에서 윤 후보의 불참 이유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유세기획단장을 맡은 박종희 전 의원이 무대에 올라 “여러분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윤석열 후보가 오늘 새벽에 영주·봉화 우리 구민들을 뵈러 오시려고 했는데 갑자기 중요한 일정이 생겼다. 그게 뭔가, 여러분”이라고 물었고, 청중들은 “단일화”라고 외쳤다. 이어 박 전 의원은 “(윤 후보가) 어제밤에 서울 은평구에서 저녁 7시반에 유세를 마치고 안철수 후보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렸는데 안 후보가 호남 유세를 하러 간다고 기차를 타고 가버렸다. 그래서 오늘 하루종일 안 후보를 만나러 다녀야 한다”며 “그래서 오늘 불가피하게 경북 지역 유세를 모두 취소한다. 여러분 양해해주겠나”라고 말하자, 일부 청중들이 “네”라고 답했다. 경북 지역 의원들은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건설 추진 △영주댐 수생태 국가정원 조성 추진 △남북9축 고속도로 조기 건설 추진 △백두대간 산림바이오 휴양산업 육성 추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 지역 공약을 유세차 화면에 띄우는 등 윤 후보의 불참으로 가라앉은 유세장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1시간10분가량 유세를 마무리하면서 박형수 의원은 “주민 여러분, 실망이 크시죠? 윤 후보 못 봐서”라고 물은 뒤, “(윤 후보가) 오늘 새벽 5시에 출발하기로 돼 있었다. 조금 전 유세기획단장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정권교체를 꼭 하려면 단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설사 단일화가 안된다고 하더라도 성의를,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들이 ‘정말 정권교체를 해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을 먹는다”며 윤 후보를 대신해 연신 사과했다. 그러면서 사과의 뜻을 담아 경북 지역 의원들이 무대 위에서 청중들을 향해 큰절을 했다.

 

이날 경북 영주시에 이어 안동시·영천시·경산시·경주시 등 5곳의 유세는 윤 후보 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날 오전 경북 지역 유세 전면 취소를 공지한 지 2시간30분가량 지난 오전 11시13분께 국민의힘 선대본 공보단은 윤 후보가 이날 오후 5시45분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 일정에서부터 유세를 재개한다고 알려왔다. 오는 28일에는 강원도 유세에 나설 예정이다. 윤 후보는 이날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단일화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저의 유세를 기다리고 계셨던 경북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단일화 불발 ... “안철수 쪽이 결렬 통보” 윤석열, 협상 과정 공개

“오늘 아침 9시 단일화 결렬 통보를 최종 받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 들어서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7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쪽과의 야권 단일화 협상 과정을 공개하며 “오늘 아침 9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쪽으로부터) 단일화 결렬 최종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시간과 장소를 정해준다면 지방 가는 중이라도 차를 돌려 찾아뵙겠다”며 안 후보의 답변을 요구했지만, 이례적으로 협상 과정을 밝히며 결렬의 책임을 안 후보에게 돌리는 듯한 인상을 남겨, 야권 후보 단일화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는 모양새다.

 

윤 후보는 이날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저는 오늘 이 시간까지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왔다”며 “우리 당 의원과 전권을 부여받은 양 대리인이 만나 진지한 단일화 협상을 이어왔다. 특히 어제는 양측의 전권대리인들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회동했고 최종 합의를 이뤄서 저와 안 후보에게 보고가 됐다. 안 후보와의 회동 일정 조율만 남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협상 채널은 국민의힘에서는 장제원 의원이, 국민의당에서는 이태규 총괄선대본부장이 맡았다고 한다. 이어 “다시 저녁에 그간 완주 의사를 표명해온 안 후보께서 완주 철회를 위한 명분을 조금 더 제공해달라는 요청이 있으셨고 그래서 저는 안 후보 자택 방문해서 정중한 태도를 보여드리겠다고 전달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고 안 후보께서 목포로 출발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양쪽에 전권대리인은 또다시 오늘 새벽 0시 40분부터 새벽 4시까지 다시 협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어 윤 후보는 “안철수 후보 측으로부터 제가 오늘 오전에 기자회견을 열어서 안철수 후보에게 회동을 공개 제안해달라는 이런 요청을 하셨고 저는 이를 수락했다”며 “양측 전권대리인이 오늘 아침 7시까지 회동 여부 포함해 시간 장소 결정해 통보해주기로 협의했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아침 9시 단일화 결렬 통보를 최종 받았다”고 안 후보에게 책임을 돌렸다.

 

윤 후보는 단일화 협의가 결렬된 이유에 대해 “저희도 알 수 없다”며 “그쪽에서도 오늘 아침에 답이 와서 이유를 물었더니 이유를 모르겠다. 특별한 이유 없는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최종 협상안에서 여론조사 방식 단일화가 포함됐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실제로 대리인 사이의 단일화 협의 과정에서 여론조사 얘기는 한 번도 나온 적 없다. 여론조사 역선택 막을지 등도 전혀 협상 테이블에 올린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안 후보가 여론조사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실무협의 과정에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날 오전 경북 거점 유세 일정을 전격 취소했던 윤 후보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포항으로 이동해 유세 일정을 재개한다. 김해정 장나래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게르기예프·마추예프 반대 여론 들끓자

독일에 있던 조성진에게 요청해 긴급 투입

 

피아니스트 조성진. 유니버설뮤직 제공

 

‘친 푸틴’ 행보를 해온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미국 뉴욕 카네기홀 연주에 제동이 걸리면서 독일에 머물고 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긴급 대타’로 투입됐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로 25일(현지시각) 저녁 세계 최정상급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와 갑작스러운 협연을 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25~27일 빈필을 이끌고 연주할 계획이었으나, 카네기홀은 공연 하루 전날 이를 전격 취소했다. 빈필과 협연하기로 예정돼 있던 러시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의 공연도 함께 취소됐다. 게르기예프와 마추예프 모두 푸틴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게르기예프의 공연을 앞두고 트위터에 ‘#CancelGergiev’(게르기예프를 취소하라)가 퍼지는 등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다.

 

카네기홀은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며 지휘자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야닉 네제 세갱으로 교체한다고 24일 밝혔다. 그러면서도 협연 피아니스트를 누구로 교체할지는 밝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카네기홀은 공연 당일인 25일에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조성진은 이번 공연에서 빈필과 함께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이번 연주를 위해 독일 베를린에 머물던 조성진이 긴급히 나서준 데 대해 카네기홀과 빈필이 깊은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한겨레> 자료사진

 

게르기예프는 그동안 노골적으로 푸틴을 지지해왔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침공해 합병하자 러시아 문화예술계 인사 19명과 함께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99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마추예프도 이 서명에 함께했다. 게르기예프는 푸틴이 세번째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방송에서 지지 연설을 했다. 앞서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도 공공연하게 푸틴을 지지했다.

 

게르기예프에 대한 음악계의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시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지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예정된 라스칼라 극장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게르기예프에게 통보했다. 게르기예프가 수석지휘자로 있는 독일 뮌헨 필하모닉도 그에게 명확한 의견 표명을 요구했다. 침묵하면 해고하겠다는 통보나 마찬가지다.

 

반면, 체코 필하모닉 음악감독인 러시아 출신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체코 필하모닉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의 표시로 입주한 건물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걸었다.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멜니코프는 미국의 한 공연에 앞서 “러시아 출신이라는 데 대해 죄책감을 갖게 한 이들에게 화가 난다.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퀸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와 슈만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한국에서도 몇차례 공연했다. 임석규 기자

미국·유럽, ‘우크라 침공’ 푸틴 직접 제재 ‘초강수’

 

미, 라브로프 외무 등 고위급 3명도 포함

EU · 영국 · 캐나다도 푸틴 · 라브로프 동시 제재

EU, 금융·에너지 · 교통업계 제재도 발표

서방, ‘국제 금융망 퇴출’ 방안도 검토

 

미국과 유럽이 25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푸틴 오른쪽)에 대한 직접 제재를 단행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이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제재를 단행했다. 국가 지도자를 직접 제재하는 것은 아주 드문 초강경 대응이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푸틴 대통령,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 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재무부는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은 민주 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 침공을 감행한 직접 책임자”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미국의 직접 제재를 당한 국가 지도자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알렉산드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있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심각한 경제, 외교적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우방들과 단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필요하면 추가 제재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미 재무부는 러시아 국영 ‘러시아 직접 투자 펀드’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백악관 대변인이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이 펀드는 고성장 분야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국부 펀드다.

 

미국 외교관계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에드워드 피시맨 선임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제재는 대체로 상징적인 것”이라며 “이는 우크라이나에 강한 연대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앞서, 유럽연합(EU)과 영국도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에 대해 직접 제재를 가했다. 유럽연합 회원국 외무 장관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러시아에 대한 2차 제재를 승인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유럽연합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제재 외에 러시아 금융, 에너지, 교통 부문에 대한 제재 방안도 통과시켰다. 이번 조처로 러시아 국영 금융 기관 등 전체 금융계의 70% 정도가 유럽연합 금융 시장을 접근할 수 없게 된다고 <데페아>(dpa)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에 대한 항공기 부품과 반도체 수출도 금지된다.

 

영국 정부도 이날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의 영국 내 자산 동결 조처를 취하고, 러시아 재벌 기업 소속 항공기의 영국 영공 진입을 금지시켰다고 <아에프페>가 전했다. 앞서 영국은 러시아 은행 브이티비(VTB)와 군수 업체 로스텍의 자산 동결 조처를 취하고 러시아 국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의 영국 진입을 금지시킨 바 있다. 캐나다도 이날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 제재에 동참했다.

 

미국과 유럽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를 배제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배제되면, 러시아의 국제 금융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될 경우, 에너지 수출 등 무역은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해, 지금까지는 이 제재안이 배제되어 왔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서방의 제재가 “그들의 전적인 무기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는 영국의 아에로플로트 항공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이날 영국 항공기들의 러시아 영공 통과를 금지시켰다. 신기섭 기자

 

푸틴 “다른 선택지 없었다”…젤렌스키 “새 ‘철의 장막’ 내려와”

  러시아 · 우크라이나 자국 입장 호소

  프랑스 · 인도 등 “군사작전 중단, 대화로 해결” 외교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관련해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외교전’도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앞장서 내놓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자국 주요 기업인들과 한 면담에서 “러시아에 어떻게 대응할 수 없는 안보 위협이 가해졌다”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군사작전)은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24일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가 지금 듣는 것은 미사일 폭발, 전투 소리뿐만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철의 장막’이 내려지는 소리”라며 “우크라이나에 이 장막이 쳐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의 장막’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유럽을 동유럽 사회주의와 서유럽 자유주의 진영으로 나눴던 사상적·물리적 경계를 말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세계 정치지도자들에게 “자유 세계를 이끄는 당신들이 지금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내일 당신들이 이런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호소했다.

 

주변국들은 더 이상의 참사를 막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이어갔지만, 우크라이나를 ‘중립화’하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결심이 워낙 확고해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4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로이터> 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먼저 이야기를 나눈 뒤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되자, 해결사를 자처하며 이 문제의 외교적 해법 찾기에 나서왔다.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즉각적인 폭력 중단을 호소했다. 인도 총리실은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모디 총리가 이날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당사자가 외교적 협상과 대화의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합심해 노력해 달라”며 “폭력을 즉각 중단할 것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인도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도 24일 푸틴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외교를 통한 군사적 충돌을 막기 바란다”고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묘한 중립적 입장을 취하면서 사실상 러시아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4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회담에서 “중국은 일관해서 각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한다”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우크라이나 문제에 복잡하고 특수한 경위가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러시아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반드시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균형 있고 효과적이며 지속 가능한 유럽 안보 체제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략을 잇따라 비난하며, 제재를 쏟아낸 미국 등 서구 국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 셈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밝히며 “이번 침공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포함한 국제질서와 관련된 문제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연계해 사태 타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길윤형 기자

 

우크라 개전 이틀 만에 중-러 정상회담…중국 “교섭 통해 해결해야”

 

푸틴 대통령 “우크라와 고위급 담판 원해”

시진핑 주석 “교섭 통한 문제 해결 지지”

앞서 러 외교장관은 전제조건으로 ‘항복’ 요구

푸틴 ‘조건 없는 대화’ 의사인지는 불분명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신화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이틀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화 회담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와 고위급 회담을 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전제조건’이 없는 진지한 대화 의사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중국 외교부는 25일 보도자료를 내어 두 나라 정상이 이날 오후에 전화 회담을 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문제의 역사적 경위와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특수군 작전의 상황과 위치를 설명”한 뒤 그동안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러시아의 합리적 안전보장상의 우려를 오랫동안 무시해 왔고, 약속을 거듭해 뒤집어 왔다”는 지론을 다시 밝혔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고위급 담판을 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냉전의 정신을 버리고 모든 국가들이 정당한 안전보장상의 우려를 중시하고 존중해 교섭을 통해 균형잡히고, 효과적이며, 지속가능한 유럽의 안전보장체제를 형성해야 한다”며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모든 국가들의 주권과 영토보전을 존중하고 유엔(UN)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준수한다는 중국의 기본적 입장은 일관돼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느끼는 안보상의 불만에 대해선 이해하지만, 전쟁을 금지한 유엔 헌장을 무시해가며 전쟁으로 문제를 풀려는 러시아의 방식엔 중국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뜻을 에둘러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에 대항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협력국인 중국이 사실상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에둘러 밝히고, 교섭을 요구함에 따라 푸틴 대통령의 입지가 다소 좁아지게 됐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진지하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고위급 담판’을 할 의사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자료가 공개되기 직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가 무기를 내려 놓는다면 키예프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사실상 ‘항복’을 요구한 것이어서, 중국 외교부가 전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과 상당한 온도차가 있다. 길윤형 기자

 

푸틴 멈춰세울 ‘카드’가 없다…경제 제재 효과도 미지수

 

미국 · 유럽 “우크라에 병력 투입 안 해”

“우크라 넘어 나토 회원 공격하면 대응”

 경제제재 꺼냈지만 시간 걸리고 푸틴 못 멈춰

 젤렌스키 “우리는 홀로 남겨져 싸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기갑부대가 수도 키예프의 30㎞까지 육박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돌려세울 카드가 마땅치 않은 모습이다. 서방은 예고했던 경제·금융 제재만 잇따라 쏟아낼 뿐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하지 않겠다는 점을 오히려 분명히 하고 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들여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각)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발표하는 연설에서 “우리 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의 충돌에 관여하지 않고 있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려고 유럽에 가는 게 아니고, 우리의 나토 동맹을 방어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날도 독일에 미군 7000명을 추가로 파병하는 등 우크라이나 주변에 병력을 증강했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아닌 유럽의 나토 동맹들이 러시아에 공격당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이미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로 이동시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나토 회원국들에까지 진격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그 경우 “나토 헌장 제5조”를 들어 개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조항은 한 나라에 대한 군사 공격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즉각 대응한다는 내용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안에는 나토 병력이 없고, 앞으로도 보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직접적 무력 개입에 선을 긋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다’라는 점이지만, 러시아와 전면적 대결을 꺼리는 유럽 회원국들의 이해관계도 걸려있다. 미국의 경우, 해외에서의 전쟁에 개입하는 데 대한 반대 여론도 높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서방이 직접 충돌할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할 우려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 경우 “3차 세계대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은 옛 소련 영토로 러시아가 훤하게 파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서방의 군대를 투입해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해온 것은 무기 공급 등 간접적 지원 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도 약속했다.

 

서방은 강력한 응징 카드로 경제·금융 제재를 내세우지만, 이걸로 푸틴 대통령을 당장 멈추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은 미 정부 관리와 전문가들 모두 인정한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등 “즉각적 효과”가 나고 있다면서도 “효과는 시간이 지나야 정말로 느껴질 것이다. 제재가 지속되면 고통이 커지면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세계 군사력 22위인 우크라이나는 2위 러시아를 사실상 혼자서 맞서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개전 둘째날인 25일 화상연설에서 “우리는 홀로 남겨져 나라를 지키고 있다. 누가 우리와 함께 러시아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러, 제공권 장악 뒤 3면에서 우크라군 포위

키예프 장악하고 동부 우크라군 고립 시도

향후 변수는 시가전과 우크라군 항전 여부

우크라 안정화엔 중장기적으로 60만 병력 필요

 

러시아군의 25일 새벽 미사일 공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둘러 보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24일 개전 첫날부터 우크라이나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기갑부대는 수도 키예프 인근까지 육박했다. ‘결사항전’을 외치는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상태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오후 러시아군의 의도에 대해 개전 초 키예프를 신속 점령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을 ‘참수’(제거)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리 정권을 세우려는 의도라는 분석을 내놨다. 다른 서구 정보·군사 당국자들도 러시아군이 키예프에 압도적인 전력을 쏟아 부어 함락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데 동의한다.

 

벌써, 침공 12시간만에 러시아군 공수특전 병력과 공격용 헬기는 수도 키예프의 25~30㎞ 안에 접근해서 북서 외곽에 자리한 공항을 놓고 전투를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와 관련해 키예프 서부의 고스토멜과 안토노프 공항을 놓고 공방전을 벌여 재탈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키예프를 겨냥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25일 새벽 키예프에 러시아의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이 여러 발이 떨어져 굉음이 발생했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서방의 한 정보 당국자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러시아는 정해진 시간 내에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효율적인 불도저 같은 우위를 같고 있다”며 “핵심 변수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전투를 벌여서 푸틴에게 코피를 흘리게 하느냐이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며칠 내 전쟁의 운명을 가를 변수는 키예프 등 주요 도시에서 진행될 시가전의 양상이다. 미국 등 서구 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키예프를 뭉개 버리기보다는 질식시키기를 원한다”고 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즉, 키예프를 포위한 뒤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전력의 러시아군이 키예프를 포위한 뒤 시가전을 시도하면,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가 꺾일 수 있다.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에 노출돼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24일 전경. 키예프/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 러시아군이 일방적 우세를 보일 것임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하지만, 예측보다 훨씬 빨리 전황이 기운 것은 두 나라 사이의 압도적인 전력 격차,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 외부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불가능한 상황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꼽힌다. 그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변수가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취약성’이다.

 

우크라이나를 거대한 시계로 보면, 러시아는 10시 방향에서 12시를 지나 7시 방향까지 세 방면에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벤 베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연구원(전 영국 육군 준장)은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우크라이나의 이런 지형적 취약성에 대해 “방어자에게 매우 어려운 입지”라고 말했다. 잭 워틀링 영국 왕립연합연구소 연구원도 우크라이나는 다방면에서 위협받아서 그 전력이 아주 “옅게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침공군 전력은 19만명에 달하나, 우크라이나의 전체 정규군 병력은 12만5천명이다.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전을 선포한 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주요 군부대에 미사일 공격과 공습을 가한 뒤 3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국경을 넘어 침공했다. 북쪽에선 벨라루스 접경, 동쪽에선 돈바스 지역의 분리독립 세력들의 자칭 공화국 경계, 남쪽으로는 2014년에 강제 합병한 크림 지역을 넘어서 침공했다. 침공이 시작된 뒤 우크라이나의 첫 방어선은 러시아 군의 정밀 미사일 공격으로 폭격 당했다.

 

핵심 전선은 북쪽 국경에서 수도 키예프까지 불과 100㎞ 떨어진 북쪽 전선이다. 벨라루스에서 국경을 넘어 침공한 러시아군은 전투기, 공수 특전부대, 헬기를 동원해 키예프 인근 주요 공항들을 공략하고 있다. 목적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우크라이나 정권 전복이다. 서구 고위 관리들은 러시아가 키예프를 며칠 내로 점령하려고 “압도적인 전력”을 모으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의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러시아군의 초기 작전은 “주요 인구 중심지들을 점령하려는 의도가 확실하다”며 특히 키예프의 정부를 ‘참수’하는 것이 궁극적인 의도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을 받아 벽면이 너덜너덜해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아파트 건물 앞에서 25일(현지시각) 이곳에 살던 주민이 절규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전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이 공격을 받치기 위해 동부와 남부에서도 동시에 진격해 우크라이나군의 주력을 포위하려 시도하는 중으로 보인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주력은 돈바스 내전 때문에 동부에 배치돼 있기 때문에 동시 공격을 벌여 이 전력의 발을 잡아두겠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현재 가장 치열한 전투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중심 도시인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쟁의 양상을 결정한 또다른 요소는 제공권이다. 전쟁이 시작된 직후 지상과 흑해 함대에서 100여발의 미사일이 발사돼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러시아의 Kh-31P 미사일은 우크라이나군의 레이더와 통신시설을 공격했다. 또, 러시아 공군의 전투기 75대가 발진해 우크라이나의 방공망, 지휘통제 시설, 공군기지, 대규모 병력 주둔지를 공격했다. 유럽의 한 서방 정보 관리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은 지금 효과적으로 제거됐다”며 “그들은 더 이상 비행하거나 자신들을 보호할 공군력이 없다. 본질적으로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한 제공권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전쟁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가르게 될 마지막 변수는 우크라이나군이 서부 배후지로 전략적 후퇴를 한 뒤 항전할 수 있느냐이다. 그러려면 우크라이나군 주력은 러시아의 포위를 피해 서구와 가까운 서부로 이동한 뒤 러시아의 진공을 저지하며 새 전선을 확보해야 한다. 마이클 코프먼 미 해군분석센터(CNA) 연구원은 “러시아군의 진공에 우리는 놀라서는 안 된다”며 “문제는 우크라이나 군이 저지선을 확보하느냐”라고 지적했다. 나토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뒤 게릴라전을 막으려면 약 60만명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라 보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러시아 입장에서도 상당한 출혈이 불가피하다.

 

마티유 블레그 영국 채텀하우스의 유라시아프로그램 연구원은 앞으로 “2~4일 동안 상황을 판단하면서 진공, 정지, 탈환이 반복되는 진격-중단 작전이 될 것이다”며 “그 다음은 러시아 군의 사망자가 어느 정도이냐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전쟁은 최대한 전면적인 접근이나, 단순히 돈바스를 확보하려는 기만전략일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친러 분리독립 세력들의 자칭 공화국이 있는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무너뜨리고 대리정권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정도에서 그칠 것인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수렁에 빠질 것인가? 향후 며칠이 고비이다. 정의길 기자

 

러시아, 우크라 침공 3일째…오늘 ‘키예프 대공세’ 할 듯

 

러시아군, 키예프 북·서부 진입 시도

인근 50㎞까지 근접해 치열한 교전

동부·남부 지역 주요 도시서도 전투

유엔, “난민 최대 400만명” 예상

두쪽, 정전 협상 나설 의지 밝혀

 

러시아의 침략을 피해 피난에 나선 가족이 아이를 열차에 태우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3일째로 접어든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 밤(현지시각) 사이에 키예프에 대한 러시아의 총공세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키예프로 진입하려는 러시아 군과 이를 막으려는 우크라이나 군은 키예프 북부와 서부 인근에서 이날도 치열한 교전을 계속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화상 연설에서 “오늘밤은 어제보다 더 어려운 날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수도를 잃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늘밤 적들이 거칠고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방어를 무너뜨리려 시도할 것”이라며 “오늘밤 (키예프를) 몰아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군과 우크라이나 군의 전투는 이날 내내 키예프 인근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러시아는 키예프 진입의 교두보 구실을 하는 인근의 호스토멜(고스토멜) 비행장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 비행장 주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확인했다고 전했다.

 

<아에프페>는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40~80㎞ 떨어진 두 곳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고위 정보 관계자는 러시아 군이 키예프 북부와 서부에서 수도 인근 50㎞까지 접근했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키예프 외곽에는 러시아 전차, 보병, 공수부대원들이 침투를 준비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파괴 공작원들은 이미 키예프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당국은 키예프가 조만간 함락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키예프 시내 정부 기관 주변에서는 무장 차량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돼,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은 “시 북부에 있는 발전소 인근에서 3∼5분 간격으로 다섯 차례 폭발음이 들렸다”며 “긴급대응팀이 출동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현지 방송은 발전소가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전했다. 클리치코 시장은 러시아군이 키예프와 가까워짐에 따라 시내 모든 다리를 보호하고 특별 통제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트위터를 통해 키예프 북동부 도시 체르니히우와 남부 해안 도시 멜리토폴에서도 교전이 거센 상황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제2 도시인 동부 국경 지대의 하르키우 인근 공항에서도 폭발음과 총격 소리가 들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유엔 관리들은 적어도 10만명의 우크라이나 주민이 피란에 나선 것으로 보이며 피란민은 최대 400만명에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에이피>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근 해상에서 선박 두 척이 이날 포격을 당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프라부는 경유를 운반하던 몰도바 국적 ‘밀레니얼 스피릿’과 오데사 항구에서 곡물을 선적하던 파나마 국적 ‘나무라 퀸’이 포격을 당했다고 밝혔다. ‘밀레니얼 스피릿’에는 러시아 국적 승조원 10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중 2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무라 퀸’의 피해 상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러시아는 앞서 정전 협상을 위해 대표단을 벨라루스 민스크로 보낼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우크라니아 대통령 대변인도 협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신기섭 기자

 

폴란드 · 헝가리 국경으로 몰리는 피란 행렬…“이건 시작일 뿐”

 

우크라 피난민들 탄 버스·기차 폴란드 도착

400여명은 걸어서 헝가리 국경 넘어

러시아에선 반전 시위…1600명 이상 체포

 

24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 프셰미실의 기차역으로 피란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야외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 프셰미실/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4일(현지시각) 한적한 폴란드 남동부 마을인 메디카에 우크라이나 피란민 행렬이 몰려들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이 마을에 이날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백명이 버스와 미니 밴을 타고 도착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피란민 대부분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었으며, 버스 운전기사 한 명은 “혼란 그 자체다. 모든 버스가 꽉 찼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버스 운전기사는 “이건 시작일뿐이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고도 말했다. 메디카에 도착한 우크라이나인들 상당수는 폴란드와 거리가 64㎞ 남짓에 불과해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꼽혔던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프에서 온 이들이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26살 이바나 카르피네츠는 “폭발음에 일어났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냥 뛰었다”며 “우크라이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서 떠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날 폴란드 남동부 국경도시 프셰미실에 도착한 정기 열차에서도 100여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내렸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출발한 이 열차에서 내린 이들은 전쟁을 피해 왔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500㎞ 국경을 접한 폴란드는 피란민 행렬이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보고, 국경에 임시 대기 시설 8곳 그리고 부상자 수송 특별 열차를 마련했다. 폴란드에는 일자리를 찾아온 우크라이나인 100만여명이 이미 거주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추가로 100만명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24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도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도착하고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24일 헝가리 국경 도시 자호니로 들어오는 우크라이나 자동차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헝가리에 도착한 첫번째 우크라이나인 피란민 중 한명은 아에프페에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도망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아내와 어린 아이가 있다. 아내가 아빠 없이 아이들을 키우게 하고 싶지 않다”며 징집되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헝가리 <엠티아이>(MTI) 통신은 이날 우크라이나인 400여명이 걸어서 헝가리로 들어왔다고도 전했다.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는 이들도 있다. 33살 우크라이나 의사는 동료 2명과 함께 헝가리에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돌아갈 것”이며 “히치하이킹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615㎞ 국경을 접한 루마니아에도 이날 우크라이나에서 5300여명이 들어왔다.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러시아 침공 뒤 우크라이나인 10만명이 이미 집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고 수천여명은 국경을 넘었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이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이 시위 참가자 1600명 이상을 체포했다고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NGO) ‘오브이디(OVD)-인포’가 밝혔다. 조기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