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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16.01.08 [1500자 칼럼] 경쾌한 행진을
  2. 2016.01.08 [칼럼] 가짜 자유주의자들
  3. 2016.01.08 통일위한 동포의 몫
  4. 2016.01.08 조국발전 동포의 몫

[1500자 칼럼] 경쾌한 행진을

● 칼럼 2016. 1. 8. 21:11 Posted by SisaHan

지난 해 이사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살림살이를 없앴다. 넓은 집에서 여러 해를 살다가 좁은 콘도로 옮기는 일은 단순히 물건만 정리하는 일이 아니었다. 가슴 안에 오랫동안 담아온 아름다운 추억과 이날까지 지탱해온 삶의 이야기를 버리는 거였다. 가끔 답답하고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청량제와 활력소로 다가왔던 것들이라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들이고 가치를 부여하며 악착같이 붙잡고 살았던 것들이 어느 새 더 이상 내게 큰 의미가 없는 현실을 맞이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을미년을 마무리하면서 여태껏 허상에 사로잡혀 살아온 내가 아닌지 되돌아 보았다.


아마도 오늘까지 내가 가장 아껴 온 물건은 단연코 책일 것이다. 흔히 여자들이 관심을 갖는 옷이나 장신구보다도 책에 노골적인 집착을 드러냈었다. 책을 구입할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고, 한국에서 우송해온 책들도 책장에 가득 찼었다. 그것들은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 속이 훈훈하고 충만해졌다. 텅 빈 큰 둥지보다는 한층 아담하고 편리한 주거지를 꿈꾸고 보니 그것들이 언제까지나 품고만 있을 수 없는 큰 짐이 되고만 것이다. 3차에 걸쳐 400여권의 책을 솎아냈다. 그 책들과 맺은 관계를 생각하면 아쉽고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디.


어린 시절의 자식들이 탄 상패와 트로피를 정리하는 일, 또한 어려웠다. 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선물로 작은 손으로 정성껏 만든 볼품은 없으나 행복 바이러스를 듬뿍 안겨주던 카드들도 어찌 버릴 수 있을까.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엄마”라는 감동의 찬사로 구멍 뚫린 이민의 삶을 프라이드와 행복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었던 그것들은 내 인생의 크나큰 선물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상패와 트로피 본인들은 자기 자식들을 챙겨야 할 내리받이 인생들이니 어릴 적 영광은 순전히 부모를 위한 것일 뿐이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그것들이기에 비감하지만 용단을 내려야 했다. 아무리 값진 의미를 지녔다고 해도 상패들이란 바로 그 때 그 시간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오로지 그 순간을 기쁨과 자랑으로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족한 것인데 영원한 기쁨으로 지속되기를 욕심냈으니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지나간 삶의 역사가 담긴 사진첩을 간추리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출생부터 학창시절을 거쳐 결혼, 그리고 손주들 사진까지 넘쳐났다. 거기다 사십여 년을 함께 살아온 우리 부부 사진도 만만치 않았다. 얼만큼 버리고 간직하느냐 그 한계가 문제였다. 요즘은 테크놀로지가 뛰어나 기기(器機)를 이용한 저장방법이 다양하지만 아날로그 시대에 머문 우리에겐 인화사진에 더욱 친근감이 간다. 추억이 담긴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는 일만큼은 마치 살아온 날들을 송두리째 내던짐과 같았다. 끝내 매 사진에 담긴 추억에 빠져 바람처럼 스쳐간 인연들이 남긴 흔적을 가슴에 묻었다. 그 외 끈끈한 정에 얽히지 않은 물건들은 기부단체를 이용하면 되니 한층 수월하였다. 이토록 살아가기 위한 필수품으로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한낱 가라지 세일품목으로 추락하는 과정을 아쉬움으로 지켜보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너저분한 살림살이가 보일뿐더러, 더 나아가 새로 장만하고 싶은 물건마저 생겨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소유물이 필요한 걸까? 톨스토이는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에서 보여준다. 인간이 아무리 욕심 내고 피땀 흘려 엄청난 땅(재산)을 얻는다 해도 종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이 죽어서 묻힐 묘지(2㎡남짓)뿐임을. 비록 그렇더라도 아직 생명이 있는 나에겐 아무리 간소하게 살아가려고 해도 삶의 품위와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선 필요로 하는 물질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이토록 솟아나는 욕망을 억제할 수양(修養)이 부족한 나이니 어쩌랴.
 그래도 또 다시 새해의 꿈을 꾼다. 현명한 포기는 좌절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여는 법. 짊어진 짐이 무겁고 힘겨우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고, 설사 나아간다 해도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미지수일 것이다. 한결 가벼워진 기대와 잔잔한 설렘으로 유쾌한 콧노래를 부르며 원숭이 해를 맞는다. 새 노트북을 가득 채울 감동 넘치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 떠나고 싶다. 경쾌한 행진의 첫 발을 힘차게 내디딘다.

< 원옥재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칼럼] 가짜 자유주의자들

● 칼럼 2016. 1. 8. 21:08 Posted by SisaHan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자유’라는 단어가 이만큼 수난을 당하던 시절이 또 있었나 싶은 생각을 했다. 꽤 오랜 기간 사회 현안에 대한 각종 토론 자리에 참석했지만, 올해만큼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을 많이 맞닥뜨린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결국 나는 한국에서 ‘자유’라는 이름을 쓰며 대중 앞에 나서는 이들 중 상당수는 진짜 자유주의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자칭 자유주의자’였을 뿐이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이 2015년에 가장 눈에 띄게 했던 일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지지다.
그런데 자유주의자라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사용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경쟁이 일어나고 질이 높아진다고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교과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교사와 학생이 자유롭게 교과서를 선택하도록 하면 공급자들 사이의 경쟁으로 교과서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믿어야 자유주의자다. 그러니 진짜 자유주의자라면 교과서를 누구나 자유롭게 발행하도록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의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역사 교과서를 국가가 독점적으로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식의 국가 독점을 옹호하는 이들은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또 서울시와 성남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벌이는 다양한 정책 실험에 적대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청년수당’으로 불리는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제도 및 성남시의 청년배당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지역에서 선심성 복지정책으로 예산을 낭비하기 때문에 중앙에서 통제해야 한다는 논지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라면 거대한 중앙정부가 획일적으로 제도를 디자인하는 방식 대신 더 작은 규모의 지역 단위 정책 디자인을 지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체적 의사결정보다 개별적 의사결정이 더 효율적이라고 믿는 게 자유주의적 입장이다. 지자체 정책실험 반대는 사리에 맞지 않는 입장이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의 입장 가운데는 재벌 체제를 일관되게 옹호하는 점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재벌 총수 일가와 외국인 투자자 사이에 기업 경영권을 놓고 갈등이 생길 때 재벌 일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숭상하며 소유자의 권리를 신성시하는 게 자유주의적 입장이다. 자유주의자라면 지분은 적지만 대기업을 인적으로 지배하는 재벌 일가를 견제하는 주주 그룹을 옹호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급기야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의 책 <위대한 탈출>을 번역하면서 입맛에 맞게 왜곡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외부의 지적을 받고 나서야 이 책은 다시 번역된 뒤 전량 교환되어야 했다.


물론 자유주의 안에서도 ‘리버럴’(liberal)이라 불리는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들이 있는 반면 ‘리버테리언’(libertarian)이라 불리는 시장지상주의자들도 있다. 하지만 공통분모는 있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점이다. 공통적으로 개인의 이성을 신뢰하며 합리적 토론과 숙의 과정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의 이성적인 경쟁과 협력을 통해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독점이나 인종주의나 국가 폭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맨 앞에서 맞서 싸운다.
획일화와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자유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는 없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가짜 자유주의자들일 뿐이다. 진짜 자유주의자들이 그립다.
< 이원재 -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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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한 동포의 몫

● 칼럼 2016. 1. 8. 21:05 Posted by SisaHan

조국 평화적 통일에 동포들 역할 막중
북 인권·핵문제 등 해결에 관심,동참을

시사 한겨레 신문에서 창간 10주년 신년 특별기획으로 ‘한인사회 100년을 향하여’라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였다. 일반적으로 십년 이상이면 장기계획이라고 하는데 100년이면 말 그대로 백년대계의 멀리 바라보는 통찰력있는 큰 안목이 필요하다. 특히 오늘을 다시 성찰하고 미래의 변화까지 예측을 하여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지만 통일에 관해서는 의외로 결론은 명확하다.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고 미래이고 희망이고 민족의 소망이요 국가와 민족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백년이 아니고 당장 해야될 일이다. 그러나 빨리 빨리 하고싶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또 해외동포들은 한반도와 지리적 거리로 인한 현실감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특히 2세대로 가면 통일에 대한 인식은 더 멀어져 있다. 한인사회는 지금까지 1세대 이민자가 이끌어 왔지만 백년을 바라본다면 앞으로의 한인사회 주역은 분명히 이곳에서 자란 2세대가 될 것이기에 2세들이 한인사회와 캐나다 사회에 진출하도록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가 광복 70년이고 앞으로 30년이면 분단의 한 세기가 된다. 고통의 분단이 적어도 백년이 지나면 안 된다. 이게 바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책임이다. 분단의 책임을 선조들에게 묻는다면 통일에 대한 책임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다. 더 이상 고착화되기 전에 통일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30년이면 백년이기에 지금의 1,2세대가 분단 백년이 되기 전에 함께 통일을 해야될 세대다. 그래서 먼 훗날 지금의 세대를 통일세대로 불리워 지길 희망해 본다. 아픈 분단의 현장인 조국의 땅에서 살다온 1세대와 이곳에서 자란 2세대가 함께 사는 이 시기는 앞으로 백년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외교부의 2015.6.29자 자료에 의하면 해외이주 신고자 2005년 2만8,707명이 2014년엔 7,257명(한국 귀국 3,561명)이다. 십년 사이에 87%의 해외이주자가 감소되었다. 즉, 앞으로 해외 이주보다 1세대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현상이 더 커질 가능성도 많다. 이러한 추세라면 해외동포 2세의 역할은 여러 면에서 더 커진다. 지금부터 동포사회는 2세대에 대해 정체성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되고 그 핵심은 통일이다.


평화통일을 위해 해외동포들이 나서자!
탈북민에게 북한주민의 캐나다에 대한 인식을 물어 보면 캐나다는 중립국이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는 과거 수십년 동안 수많은 난민들을 신속하게 받아들여 정착시켜왔다. 1990년대 코소보 난민위기 때에는 5000여명을, 1972년 우간다에서 5000여명을, 1979~1980년엔 베트남 보트 피플 6만명을 받아 들여 2차 세계대전 이후 총120만명 이상의 난민들을 정착시켰고 이번에도 시리아 난민 2만5000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을 보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공헌도가 큰 나라이기에 북한에서도 캐나다는 좋은 국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 캐나다는 미국과 차별화된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캐나다 동포들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캐나다는 이민자 국가이면서 복합문화를 인정하는 국가이기에 한국과 같이 분단된 민족이 모인 한인사회는 정체성이 더 많이 요구된다.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본 받을 수 있도록 해외동포들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민자들은 살고있는 나라의 문화에 동화되는 거소주의 성향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3세대가 지나면 거주국의 현지화가 되기에 정체성의 문제는 앞으로 한인사회의 중요한 과제로서 대책이 필요하다.
이제 분단의 고통을 더 이상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없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세대가 해야될 과제이자 숙명이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해외동포들이 주도 하였듯이 평화통일 또한 해외동포들이 주도해서 만들어야 한다. 평화통일 전에 선결해야 될 두 가지의 과제가 있다.


하나는 북한인권 문제다. 2015.12.17.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북한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 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한 북한인권 결의안이 2년 연속 유엔총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인권위에서는 “북한 당국이 유엔 인권 메커니즘의 권고사항 이행 및 협조, 정치범수용소 폐쇄, 인권침해 가해자 처벌, 탈북자 보호, ILO 협약 가입 및 비준 등을 하루 속히 이행해 북한 주민의 인권이 개선되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것 처럼 캐나다에서도 북한인권협회(회장 이경복)가 주도하는 북한인권법이 제정되도록 캐나다 서부에서 동부에까지 동포사회의 대대적인 제청이 필요하다.


둘째는 북한 핵문제다.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의 민족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평화를 불안정하게 하고 미국과 캐나다의 본토까지 위협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 캐나다에서도 관심이 높다. 북한은 실전적으로 전술적 핵배치가 이미 되었고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까지 성공하므로써 핵무기의 종합세트를 갖추었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북한의 정권은 헌법상 불법거주집단이고 김씨 유일 왕조국가로써 지극히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김정은의 손에 핵단추가 있다는 것은 국가의 안위가 마치 ‘우연’에 의해서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래서 한반도의 비핵화는 평화통일로 가기 전에 반듯이 선결되어야 할 과제다.
한반도가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 해외동포의 역할은 지극히 중요하다. 거주국에서 한인사회의 역량과 위상이 높아지려면 먼저 바른 국민이 되어야 함께 사는 국민들이 한인을 존중하고 중요한 시기에 한인들의 뜻을 따른다. 바른 국민은 거주 국가가 요구하는 가치체계와 법질서를 존중하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동참하고 기여하는 것이다. 쉬운 말로 세금 많이 내는 부자가 되고 국민의 권리인 투표에 열심히 참여해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표현해 주고 자녀교육 잘 시켜서 이 국가에 필요한 인재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민자세대는 문화와 언어의 제한으로 동족 중심의 섬나라에 산다. ‘井底之蛙’(정저지와) 의 우물안 개구리에서 넓은 바다로 1,2세대가 함께 손잡고 앞으로 백년을 바라보며 나가는 한인사회가 되기를 새해를 맞이하여 간절히 바란다.
새해 병신년은 붉은 원숭이 해로써 ‘건강,부귀,명예’를 뜻한다고 하니 동포 여러분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여 성취하시길 기원드린다.

< 최진학 - 민주평통자문회의 토론토 지부 회장 >



조국발전 동포의 몫

● 칼럼 2016. 1. 8. 21:02 Posted by SisaHan

동포 애국심 밑거름 발전… 현실 한숨
이민 경륜·캐나다 선진문화 이전 노력을

신뢰의 신문을 향해 10년을 달려 온 시사 한겨례 다운 발상이라고 여겨지지만, 필자에게 주어진 제목이 너무 큰 것은 물론, 모국이 정의로운 나라로 도약해서 민주적인 선진문화를 확립하는데 캐나다 동포들이 어떤 몫을 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기란 사실 부담스런 일이다.


독일 통일의 교훈: ‘라인강의 기적’을 공부한다면서 독일에 유학간 필자는 동서독간 장벽을 뛰어 넘어 선물, 편지를 교환하는 것이 꿈 세계 같았다. 당시 동아일보 통신원으로 칼럼을 게재한 적도 있지만, 서독이 동독에 관용과 포용의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며 ‘1민족 2국가’를 근간으로 한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발전시켜 1989년 11월 통일 성업을 성취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통일 독일이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 되고 캐나다의 20배가 넘는 100만명의 시리아난민을 받아들이는 점을 보면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은 우리 입장에서 진지하게 연구하고 꼭 본받아야 되지 않을가?


배달민족의 애국심 유전인자: 대학시절 어느 교수가 ‘수많은 타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매우 큰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라는 필자의 질문에 ‘첫째 국내에서는 노력한 만큼 잘 살수 있고, 해외에 나가서도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게 국가가 잘 보호해 주기 때문이지’라는 대답을 해준적이 있다.
우리 배달민족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임금과 관료들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피난했을때 외적에 맞선 농민들이 의병을 일으켜서 나라를 구했다. 일제 침략자들에게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삶의 터전을 강탈당하고 만주 벌판으로 쫓겨간 농민들이 형언할수없는 비참한 새삶을 꾸려가면서도 재정적으로 독립군을 돕고 독립군으로 직접 자원하기도 했다. 역시 일제의 속임수에 빠져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노예노동자로 팔려갔던 조선인들이 미국에서는 물론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배달민족의 애국심과 민족사랑은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사랑에 버금가리만큼 남다른 것 같다. 아마도 우리 민족의 피속에는 애국적 유전인자가 담뿍 들어있음이리라.
그런데 1945년 해방이후 6.25 전후의 혼란기에 위정자들이 국민들의 애국심을 정치적 목적에 악용한 패단때문에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아니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서 처럼 그러한 폐습이 연장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의 조국은 남한만인가?: 90년대 중반 북쪽에 ‘사상 최악의 기근’을 만나 수백만명이 아사하고 있을 때 서방세계가 식량원조에 발벗고 나섰을때, 흥청망청 잘사는 남쪽에서는 버리는 음식물만도 1인당 하루 500그람이 넘는데도 굶어 죽어가는 동족을 모른체 외면했었다. 세계인의 눈에 이러한 남북관계와 한국인이 어떻게 인식되었을까?
박정희 개발독재시절 적정임금의 1/3이하를 지급한 노동자 임금착취, 한국의 젊은이들이 독일의 1000피트 지하광산, 베트남의 밀림전쟁터, 중동의 얼사에서 희생적으로 봉사한 덕택에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성취하고 이젠 잘사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중일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갖가지 도전을 받고 있다. 뒤쫓아 오는 중국의 도전으로 그동안 3대효자 산업중의 하나였던 조선업이 선더미처럼 증가하는 적자로 반토막이 된 것은 노임격차가 그 원인이다. 남북간의 교류협력만이 그 해결책일 것이며, 개성공단이 입증하듯이 남쪽이 북쪽보다 수십배 더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남북이 상호협력을 통한 공생공영의 길을 택하지 않을수 없는 숙명이라 하겠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 6월 진보적인 DJ 정권이 남북 교류협력의 역사적인 물꼬를 트고 뒤이은 MH정권에서 계속해서 남북공생공영의 터전을 닦았다. 그러나 사상 최악의 무능부패 MB 정권이 분단 55년만에 트였던 남북협력의 물꼬를 다시 막아버리더니, 현 정권하에서도 적대적 대치상태가 더 악화되고 있다.


나누고 보살피는 선진문화사회 지향: 선진화를 추구하려는 한국이 북구나 캐나다를 모델로 삼아야 할가, 아니면 나라의 구석 구석 까지 만연한 갑질행패,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는 물론 동족인 조선족과 탈북인들 까지 온갖 멸시와 차별을 다하면서 남북이 대치적인 공포정치체재를 계속 해야 할까?
캐나다 역시 유색인종은 물론 앵글로색손 이외의 모든 타민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국가였으나 생산인구의 필요성 때문에 1960년대에 이민법을 개정하여 모든 이민자를 환영하고 복합문화정책을 채택하면서 급변하게 되였다. 82년 획기적인 ‘인권헌장’을 헌법에 추가하므로서 인종차별을 헌법으로 금지한 후 지금은 11살때 아프가니스탄 피난민으로 캐나다에 정착한 ‘몬세프’라는 무슬림 여성 초선의원을 최근 투루도정부에서 31세의 최연소 장관으로 임명할 만큼 널리 포용하는 선진 복합문화국가로 변신했다.


캐나다 한인사회의 역할: 겨우 20만을 웃도는 캐나다 한인사회가 미국의 1/10에 불과하리 만큼 크지 않고 역사도 50여년 밖에 되지 않지만, 70년대의 한국 민주화운동 주도, 남북간의 첫 이산가족상봉이 성사된 2000년도 보다 21년 앞선 79년의 ‘이산가족상봉 사업’ 시작, 북미주에서 가장 먼저 신용조합 및 협동조합운동의 시작,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민사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캐나다 최고인 토론토대학에 한국학과를 성공적으로 설치한 ‘토론토대학 한국학과 후원재단’ 설림-78년, 북미주 최초의 ‘캐나다한인장학재단’설립-78년, 과 같은 사례가 입증하듯 이민1세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함은 물론, 2세, 3세 자녀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수있게 된것이 캐나다의 포용적인 복합문화사회 덕택이겠다. 이러한 캐나다를 모국이 자진해서 선진화 모델로 삼으면 최상일 것이다.


캐나다 교민사회가 모국의 여러 분야에 스카웃된 전문인들과 수많은 유학생들을 통해서 모국의 캐나다형 선진화 노력에 벌써부터 상당한 보탬이 되고 있으리라. 초대이사장을 역임한 윤택순박사 같은 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매년 30여명의 장학생을 배출함은 물론, 벌써 1.5세대로 주역의 세대교체까지 성공시킨 ‘캐나다한인장학재단’에서는 모국의 포항공대생 2명에게도 각 1만불의 장학금을 매년 지불하고 있다. 이재단에서 벌써 여러해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지도자양성 프로그램’을 크게 보강, 발전시킨다면 현지 캐나다 사회는 물론 캐나다의 선진문화를 모국에 이전하는 역할에도 큰 몫을 하게될 것이다.

< 김병권 - 무궁화사랑모임 창설, 전 평통지부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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