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광대는 건들지 않았다.” 정치평론가 공희준의 말이다. 맞다. 교회가 권력의 중심이던 16세기 유럽, 프랑수아 라블레는 풍자소설을 통해 “악마에게 잡아먹혀라, 더러운 사제들아!”라고 질러댔다.
18세기 탐관오리가 판치던 이 땅에서도, 양반의 위선을 조롱하는 봉산탈춤이 뭇 백성의 분을 풀어줬다. 하지만 해코지 입은 광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 조선 중기, 자신을 풍자한 남사당패를 의금부로 끌어가 혼쭐낸 왕 연산군 말고는. 그런 보복은 미치광이나 할 짓이라는 이야기다.
코미디언 김미화, 수난의 연속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연한 SBS 프로그램 사회를 본 것이 화근이었다. 그 방송 사장으로부터 ‘김미화는 친노가 아니다’라는 확인서를 받고, ‘친노’라고 모해한 몇몇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이겼지만 소용없다. ‘선동꾼’ ‘좌익운동가’라는 무도한 빨간색 색칠하기는 여전하다.
이런 일각의 광기에 이성 회복을 촉구해야 할 거대 방송사 경영진은 되레 부화뇌동하며 ‘김미화 죽이기’에 일조하고 있다. 코미디언을 무대 밖에서까지 우습게 여기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것이 분뇨·가스통을 들고 지저분한 위세를 떨치는 ‘애국’ 진영만의 행태는 아닌 듯하다. 재담꾼 김제동은 <한겨레>  ‘직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사회를 맡았을 때 “십자포화 안티를 맞았다. 한쪽에서는 명계남·문성근 같은 훌륭한 사람들을 놔두고 너 따위가!”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엄숙주의 탓이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끈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석연찮게 사라졌다. 재미가 없다는 제작진 내부 평가가 구실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그 유행어, 마음에 안 든다’는 여당 의원의 압박 때문이라는 데 무게를 둔다. 안윤상의 재기 넘치는 성대모사만 나오면 큰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진정한 재미는, 흉내 대상 인물의 호칭은 다 생략해도 이명박만은 ‘대통령’ 직함을 꼭 넣어주는 센스다. 행여 각하가 노여워하실까 염려한 탓이리라.
또한 요즘 이래저래 유명한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얼마 전 ‘욕설 쓰는 연예인’이라며 김구라의 퇴출을 요구했다. 무명 시절 ‘뜨기 위해’ 거친 표현을 삼가지 않은 과오, 유명인이 돼 거듭 참회해도 소용없다. 고상하지 않은 ‘육체의 언어’를 쓴 죄는 밥줄 끊어 마땅한 중죄로 본 연유다.

1970년대 ‘후라이보이’ 곽규석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멋대로 휘갈긴 그림을 보고 “피카소 작품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다 ‘남산’에 불려가 사달 났다. ‘공산당원 피카소’의 정체를 몰랐던 탓이다.
이런 저열한 시대에 독재자와 맞서 싸우다 훗날 보수정치인이 된 이들, 요즘은 곽규석이 아닌 다른 코미디언의 숨통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자신이 싸운 괴물과 닮지 말라”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당부, 마치 이들을 겨냥한 듯하다.
폼 잡고 심각한 말을 해도 대중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그래서 동정도 받는 코미디언. 이들을 울리는 세력의 온전한 노후는 없었다.
곽규석에게 공포감을 안긴 그때 그 지도자는 흉탄에 맞아 죽었고, 두상이 흡사하다는 이유만으로 방송 출연을 막아 이주일을 낙담케 한 당대 지도자는 여태 ‘전재산 29만원뿐인 영세민’이라며 조롱받고 있다. 김미화는 “더이상 코미디언을 슬프게 하는 사회가 안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를 호소 아닌 경고로 새겨듣는 이가 진정 현자일 것이다. < 김용민 시사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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