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논설]  한마당- 편집인의 글 

 

반민족, 반민주, 반평화의 악령 역사 전면에서 지워가야 할 역사적인 2025년.

 

나는 그 해 3년 차 기자였다. ‘언론 물정’을 익혀가던 5월의 어느 날, 느닷없이 시가지에 장갑차와 군 트럭들이 나타나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트럭에 타고 도열한 무장 군인들은 험악한 표정으로 시민들을 노려보는 것 같아 거리가 싸늘했다. 같은 날 흉흉한 신문사 정문에 군용지프가 몇 대 멈춰 서더니, 정사복 군인 여러 명이 들이닥쳐 사장실로 올라갔다. 얼마 뒤 편집국장이 불려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돌아왔다. 국원들을 불러 모은 그는 “이제부터는 군인 세상이야, ‘군바리’들에게 데스크를 받아야 한다구!”라고 신경질을 내더니 “제길헐!”하고 내뱉었다. 신문사 뿐이 아니다. 주요 관공서는 군 장갑차가 지켰고, 기관장들은 군인들과 상의해 행정을 집행해야 했다.

 

그러니까 45년 전인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으로 쿠데타를 본격화 했을 당시의 기억이다. 그렇게 시작된 계엄하에서 신문의 모든 지면은 기자들이 제작본을 들고 삼엄한 계엄분소에 가서 군인들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정훈 대위들이 일일이 체크하며 “이 기사 빼” “이거 키워”…사실상 편집국장 노릇을 했다. ‘광주에서 폭도들이…’ 운운 계엄사 발표 외에는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었고, 정확한 진상을 알 길도 없었다. 그렇게 철저한 언론통제 속에 권력을 장악한 정치군인들은 광주학살을 자행하고 정권을 찬탈했다.

 

도처에 군인들이 설치기 시작하면서 어둠과 공포가 번졌다. 신문사는 물론 행정관서와 기업체들도 평소 ‘눈엣가시’였던 직원들 명단을 보안사에 제출하라는 밀명으로 살벌해졌다. 비밀 리스트에 올라 어느 날 사라져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불량배’가 6만여 명에, 사상자가 무려 2천7백 여명이라 했다. 사기업인 언론사들을 입맛대로 죽이고 살린 언론통폐합도 단행됐다. 그들은 국회를 폐쇄해 헌정을 중단시킨 뒤 ‘국보위’라는 쿠데타 입법기관을 급조해 멋대로 180여건에 달하는 법을 만들고, 헌법을 개정해 전두환 5공 정권을 출범시켰다. ‘민주회복’을 외치며 권력에 저항한 학생과 정치인, 재야 민주인사 등 2천699명이 영장없이 불법 구금과 고문의 고통을 겪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박정희 독재에 이어 군홧발에 짓밟힌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다.

 

 

그런 악몽의 쿠데타가, 2024년 12월3일 한국 땅에서 벌어졌다. 놀라서 걸려 온 전화를 듣고는 ‘장난 아닌가, AI 가짜뉴스 아니야?’ 라고 반문하다 “정말이야? 미쳤군!”으로 바뀌는 순간, 전두환의 계엄이 머리를 스치며 혈압이 치솟았다.

 

12.3 영상을 보면 아찔하다. 국회 안팎의 계엄군 활극과 용감하게 저지하는 시민들, 국회직원들의 투혼이 감동적이다. 국내외 수많은 동포들이 직접 보고 들은 증인이 됐다.

 

한 달여가 지나며 수사로 드러난 윤석열 친위쿠데타의 전말은 더욱 섬찟하고 엽기적이다. ‘드론과 포사격 등 전쟁유도 대북도발’, ‘군 공항과 사드기지 공격으로 미군 북폭유도’, ‘체포조가 정치인 납치, 사살 후 수거·수장과 북한소행 위장극’, 그리고 ‘선관위 서버 탈취와 임직원 납치 고문계획’ 등… 국회의 계엄 해제안 의결 전후에는 “총을 쏴서라도, 도끼로 부수고 본회의장에 들어가 끌어내라”고 대통령이란 자가 발포명령까지 하며 사령관들과 경찰청장, 국정원을 전화 닦달했다고 한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치밀한 모의와 상상을 초월하는 정황이 쏟아져 나오니, 대한민국에 하마터면 쿠데타 잔혹사가 재현될 뻔했다. 전두환은 정권탈취가 목적이었지만, 윤석열은 이미 거대 권력을 쥔 대통령이 전시도 아닌 평시에 독재적 망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전두환급을 훨씬 뛰어넘는 사악한 군사반란 책동이었다. 자신의 당선은 옳았는데 총선결과만 부정이라는 확증편향이 계엄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그는 야당과 국회를 ‘반국가적 공산 전체주의 세력, 그 소굴’이라고 계속 적대-무시하며 법안과 특검을 거부하고 장관청문회 결과도 묵살해왔다. 재임 2년반 동안 정치무시와 의회주의 부정으로 일관한 그가 ‘입법독재’를 쿠데타 빌미로 든다는 것도 궤설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한 신부님이 ‘지랄발광’이라고 원색 비난했겠나.

 

대선 전부터 수없이 지적했었지만, 윤석열은 절대 국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될 됨됨이였다. 비열하고 간악한 사람은 반드시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재임 2년반 동안 위태위태 하더니 역시나,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제 발로 기어들어간 꼴이 12.3 비상계엄이다.

 

 

그런데, 당장 큰 걱정은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다. 오직 저만 살겠다는 쿠데타 세력이 죽기 살기로 나라와 국민을 ‘인질’로 잡고 반격에 목매달고 있기 때문이다. 수괴 윤석열의 헌재 회부와 공범들의 속속 구속으로 급한 불은 끈 것 같지만, 잔당들의 몰상식한 준동을 보는 국내외 동포들은 불안과 불면의 날이다. 법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며 ‘배째라’고 난동이다. 만천하가 보고 들은 것을 사실이 아니라고 삿대질이다. 내란을 ‘내전’으로 키우겠다는 막가파 법꾸라지들의 '개수작'이다.

 

친위 쿠데타의 경우 주모자와 공범들의 권력이 살아있고, 합법처럼 착각할 수 있어 진압이 어렵고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바로 윤석열 내란이 말해준다. 현행범인 내란 우두머리가 대통령 신분으로 경호를 받으며 사실상 내전을 선동하는 어이없는 현실이다. 그가 기용한 자들이 여전히 행정부와 군의 요직에 포진해 있다.

 

거기에 수괴를 배출한 여당은 다른 유전자인가? 역시 사대주의 뿌리와 쿠데타의 후예들다운 혈맥 그대로, 오로지 권력 향배와 사리사욕에 매몰돼 상식과 이성을 팽개친 공범들임을 드러냈다. 사이비 종교적 가스라이팅으로 우매한 지지자들의 맹종을 악용하는 교활한 무리들이야 아예 제쳐놓는다 치자. 국정을 담당하는 집권당마저 개과천선(改過遷善)은 커녕 되레 극우화 되어 반동적으로 설쳐대는 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7할 이상이 내란죄 처벌과 파면을 원하는데, 국민이 뽑은 선량들이 국민의 분노는 안중에 없이 반헌법적 반국가적인 언동으로 전세 뒤집기에 안간힘을 쓰며 폐족의 길을 가다니!.

 

올해가 을사늑약 120년 되는 해다. 나라를 팔아넘기고 일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한 이완용 매국노 일당의 행태를 오늘날 내란수괴 편이 되어 감싸 옹호하고 선동하는 자들에게서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윤석열 쿠데타 이후 한국은 후진국 취급을 받고 있다. 주가 급락, 환율 급등으로 경제가 휘청인다. 국민들은 내란 트라우마와 울분을 삭이고 있다. 대선에서 한 표 잘못 찍었다가, 그야말로 혹독한 댓가를 치르는 중이다.

 

하지만 절망하고 너무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우리 민족이 어디 한 두 번 겪은 시련이던가.

민족사의 기로마다 확인했듯이, 이번에는 국내외 동포들이 광장을 달군 ‘빛의 혁명’을 일궜다. 비상아닌 비상에 뿔이 나 달려가고, 불의한 총구에 겁없이 맞섰다. 따끈한 커피와 응원물품을 서로서로 나누고, 현장에 못가면 선결제로, 그리고 돈도 참가도 힘들면 벽에 대고 소리치며 주먹이라도 휘두른 위대한 국민이다. 국회수호와 탄핵가결, 체포영장 등 고비마다 광장의 촛불과 응원봉의 저력 앞에 나가 떨어진 내란 발광의 끝이 보이는 이유다.

 

어둠의 세력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빛을 이기지 못함은 진리이고 섭리다. 온갖 간악한 술수와 사술로 치받아도 천하 대의를 거스를 수 없고, 도도한 민의의 물줄기를 역류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내란사태가 한민족에게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호기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00수십 년, 해방 이후 80년이 되도록 민족혼을 더럽혀 온 불의한 저들을 우리 모두 똑똑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반민족 반민주 반평화의 악령을 역사의 전면에서 지워가는 내일을 준비하여, 참 광복을 열어가야 할 역사적인 2025년이다.

 

[편집인 칼럼] 다시 반동의 시대, 눈 부릅떠야

● 칼럼 2024. 12. 23. 14:4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다시 반동의 시대, 눈 부릅떠야"

 

 

마치 극적인 테러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공격헬기에서 뛰어내린 중무장 특공부대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숨가쁜 모습과 이에 맞서는 국회직원과 보좌관들의 안간힘이 영상에 생생하게 잡혔다. 대통령 지시대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기 위해’ 본회의장으로 침투하려고 유리창을 ‘깨부수는’ 섬찍한 장면도 국민들이 직접 보았다. 나중 열린 상임위에서 군인들의 양심적 증언도 있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국회가 만의 하나, 비상계엄 해제안을 처리하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무리 많은 국민들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침탈 장면을 직접보았다며 피눈물로 증언해도 성공한 총칼 앞에서는 허공에 부르짖는 신음소리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내란범과 음모 세력은 눈엣가시 정치인과 언론인, 심지어 판사까지 체포조를 동원해 붙잡으려 했고, 국회의원들을 끌고가 지하벙커에 감금할 작정이었다. 병원에 병상 확보와 수혈준비, 구치소엔 감방 먀련까지 지시한 것도 드러났다. 실제 유혈사태를 예비한 것이다. 선관위는 총선을 무효로 돌리려는 서버자료 탈취작전이 벌어졌다. 전국 지자체는 포고령 발령 이후 계엄군에 행정이양을 대비한 것도 밝혀졌다.

군 통수권을 적국이 아닌 자국민 제압용으로 발동한 친위 쿠데타의 전말이 양파껍질처럼 드러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하고 손바닥에 땀이 배어난다. 40여년 전 수많은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다 무도한 독재자의 권력욕에 짓밟혀 총칼에 목숨을 잃거나 반신불수가 되고 철창에서 고난을 겪었다. 신문 방송은 군 검열관의 통제하에 천편일률의 홍보기사로 채워졌다. 비판과 반론의 도전은 지하실 몽둥이 물고문에 목숨을 각오해야 했던, 살벌한 시절로 되돌아갈 뻔 했다는 이야기다.

천만다행, 내란수괴로 전락한 대통령 윤석열과 공범들의 처벌이 시작됐다. 국민 75%가 탄핵하라는 분노의 함성 속에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해 ‘수괴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헌법재판소는 즉각 내란수괴 파면여부 심리에 착수했다. 반란소동이 일단락 되어 정상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순탄하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국회 탄핵안은 겨우 4표가 넘어서 가까스로 가결됐다. 여당 108명 가운데 85명은 확실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계엄이 뭐가 문제냐, 합법적인 통치행위였다.”고 우겨댄다. “정권을 야당에 헌납할거냐”고 일부 소신파들을 윽박 지른다. 탄핵 찬성 입장이던 당대표를 쫓아내고, 찬성표 12명 색출에 나서 “쥐새끼들”라고 욕하며 탈당과 제명요구 등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오기를 과시한 ‘헌법 파괴범’ 내란수괴와 입을 맞춘 것처럼, ‘의회주의’의 폭파위기를 겪은 국회의원들이 불법을 합법이라고 자기부정을 하며 사죄 기색 전혀없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나섰다. 법적 권한이 없는 ‘정치검찰’의 수상한 수사 독주. 구속된 주범 국방장관이던 자는 “내란 수사가 내란”이라고 궤변을 꺼내며 돌연 진술 거부를 시작했다 한다. 광장에서는 극우 단체와 종교인 등이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헌재의 주심 재판관이 ‘내란수괴’가 임명했던 극보수 인물로 정해졌다는 뉴스까지 나오면서, 이상해진 분위기에 국민적 공포가 다시 불거지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반동(反動)의 시기, 정의와 진실과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내란동조 세력의 파렴치한 판뒤집기 시도가 본격화했다는 불안이다.

무려 100년에 가까운 반동기(反動期)로 나라와 국민이 고초를 겪은 프랑스 혁명의 사례를 들 것도없다. 우리의 민족 수난사 역시 그 반동의 환란이 불과 최근까지도 수없이 반복됐다. 해방 후 친일 매국노와 부역자를 처벌하려던 ‘반민특위’가 독재권력의 반동적 훼방으로 무산된 일, 4.19 민주혁명이 1년 만에 군사쿠데타로 무위에 그친 사실, ‘서울의 봄’과 5.8 항쟁이 전두환의 군홧발에 무참히 짓이겨진 역사, 그리고 6.10 시민항쟁이 ‘6.29 기만선언’으로 물타기 되었고, 노무현의 참여 민주주의가 탄핵위기를 겪었으며, 광우병 촛불은 명박산성과 종편허가 등이 말해주는 수구적 우경화 공세로, 2016년 촛불혁명은 잠시의 민주시대 방심에 괴물 항명검사가 치받고 나와 검찰독재와 파시즘적 군주를 꿈꾸는 상황을 맞았다. 마침내 친위쿠데타로 본색을 드러냈다가 실패한 것인데, ‘본심’을 바꿀 생각이 없는 주범은 물론 그 동조 비호세력이 궁지에 몰린 쥐떼 처럼 발악을 시작한 것이다. 불행히도 그들에게는 국민이나 나라와 민족, 역사·정의·상식 등은 안중에 없다. 오로지 권력과 이권, 일가의 안위와 호사(豪奢)가 정의이고 목적인 부류들이다. 그래서 ‘수구 반동’이 성사됐을 경우 역사 왜곡은 물론 엄청난 국가적 난맥을 초래하곤 했던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진과 후진의 기로에 서 있다. 만에 하나 내란세력이 되살아난다면, 지난 2년반 남짓에 무너져 내린 국가적 퇴행과 손실은 급속히, 몇 배 더 심각한 풍파로 덮칠 것이며, 앞으로 수년 수십 년의 암흑기를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 거듭 강조하지만 그들이 저질러 온 막가파식 반동의 폐해와 지난 민족사, 그리고 세계사가 증명하고도 남는다.

탄핵을 추동한 수백만 민주시민과 든든한 청년 학생들의 애국 열정에서 불퇴전(不退轉)의 저력과 도약의 미래 희망을 보지만, 끈질긴 반동세력에 낙관은 금물이다. 내란은 끝난 게 아니다. 부릅뜬 눈으로 감시하며 목줄을 단단히 움켜쥐지 않으면 안된다. 

[목회칼럼] 내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 칼럼 2024. 12. 23. 14:4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내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박용덕 목사 (토론토 소망교회 담임목사)

 

지난 2023년 12월 12일 외국의 어느 유력 언론 기사에 “대한민국은 사라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뉴스가 실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기에 CNN 뉴스에서도 “한국의 가장 큰 적은 낮은 출산율”이라는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경고하고 나서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다 못해 이제는 충격 그 자체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이 문제가 심각한 경제적 문제를 가져오겠지만 그보다도 당장 군대에 보낼 젊은이들이 줄어들어서 과연 이대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지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점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전에 “대한민국 교회에게 미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저출산과 인구 절벽에 대해서 이렇게 심각한 경고를 여기 저기서 터뜨리기 전에 한국 교회는 이미 충격적인 주일학교 인원 감소와 젊은이들의 대거 교회 이탈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왔기 떄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파는 이민 교회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주변을 보아도 몇몇 대형 교회들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주일학교가 갖추어져 있는 교회가 적고, 그러다보니 더더구나 젊은 부부들이 중소형 교회에 갈 수도 없고, 있던 사람들도 교육 체계가 잘 갖춰진 대형 교회를 찾아 나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형교회에서는 이러한 심각성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그 안에 있다보면 찾아오는 수 많은 젊은이들로 인해 일종의 환각 증상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곳이 결국 이 모든 절벽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지금이라도 우리가 가진 거의 모든 가용 리소스들을 총 동원해서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을 위한, 자녀들을 신앙훈련을 위해 투자해야 할 때입니다. 누군가는 교육을 제2의 선교라고 했지만 저는 반대로 교육이 제1의 선교가 되야 할 시점이 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큰 교회들은 그들이 가진 최고의 장점을 다해서 함께 교회 교육을 일으키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정말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당장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큰 교회에서 젊은 부부들을 좀 더 집중적으로 양육시켜서 평신도 교육 지도자(Lay Director of Christian Education)로 세우고 이들을 중심으로 실제적으로 작은 교회들로 파송하는 제 2의 선교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훈련된 평신도 교육지도자들이 각각 교회에 몇몇 가정들과 같이 파송되어 그 교회들을 살리기 시작한다면 10여년 안에 교회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회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제 토론토 안에 있는 대형 교회들부터 이 사역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우리는 “교회에 미래가 있느냐”고 묻기 이전에 “누가 이 땅의 교회를 위해 자신의 귀한 옥합을 먼저 깨뜨릴 수 있는가?”를 먼저 묻는 것이 빠를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고귀한 헌신의 향내가 이제 절망의 냄새를 덮어가기를 기도합니다.           

[편집인 칼럼] 사법 폭주와 민의의 선택

● 칼럼 2024. 11. 25. 06:5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사법 폭주와 민의의 선택

 

 

미국 대통령에 돌출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공직사회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주도해온 법무부와 FBI 등에 보복하겠다고 호언해온 때문에 해당부서 고위직들은 불안에 떨면서 변호사를 만나 대책을 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선동으로 의회난입 폭동을 벌여 범죄자가 됐던 사람들은 트럼프가 사면해줄 거라는 기대에 희색인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이런 상황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의와 불의, 합법과 불법을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도움도 되지 못하게 되었다.

무려 34건의 범죄혐의로 유죄평결까지 받은 ‘중범죄자’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하루아침에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현실이다. 인권과 정의의 기준을 내세우며 전세계에 민주주의를 자랑하고 수출했던 나라가, 도무지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트럼프 잣대’가 만능인 사회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그것도 4년 전 이미 경험했던 ‘거짓과 망발’의 발호를 다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허용한다는 미국인들의 선택의 결과다.

한국에서는 일부에서 ‘코리안 트럼프’라고 칭하는 윤석열의 등장 이후 미국사회와 비슷한 ‘가치전도’현상이 만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비슷한 좌충우돌 성향에, 범죄에도 무뎌진 윤리 도덕의 추락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따져보면 미국하고는 연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트럼프는 중범죄자임을 알고도 그의 ‘노회한 박력’에 표를 던져 이른바 ‘면죄부’를 줬다면, 윤석열은 ‘정의로운 검사’라는 거짓된 위장과 포장술로 유권자를 속여 대권을 잡았다는 증거들이 뒤늦게 쏟아져 나왔다. 트럼프는 국민의 선택으로 정권을 잡은 뒤 으름장을 놓은 상태지만, 윤석열은 거머쥔 검찰권을 휘두를 때마다 내로남불 위선과 무도함, 그 것도 야당과 정적을 끝없이 짓밟는 비열한 발톱을 드러내, 기만 당했다는 자괴감과 분노로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7할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속았다는 국민 감정을 능가하는 유능과 역량으로 무마해 나가든가, 아니면 자숙하고, 회개하여 용서라도 구해야 봐줄까 말까 고민할 그나마의 최선책이련만, 염치는 눈곱만큼도 없이 “그래 어쩔건데”라며 ‘배째라’는 식의 가장 최악의 선택지인 후안무치와 몰상식으로 국민들의 열불을 돋우고 있다. 수두룩한 일가 범죄를 대통령 권력으로 덮고 뭉개는 뻔뻔함에 눈뜨고 지켜보는 국민들은 기가 찰 뿐이다. “장모가 10원 한 장 피해준 적 없다”더니 법원의 판결로 새빨간 거짓임이 드러났고, 대표적인 경제범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품백 수수’도 검사를 동원해 아무렇지 않은 일로 지우려 했다. 특검여론이 비등한데도 남편이랍시고 반헌법적 거부를 반복하며 오히려 ‘특검이 삼권분립에 어긋난 반헌법적’이니,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일’이라는 궤변으로 우겨댄다. 탄핵 뇌관이 될 수도 있는 대통령 부부의 명태균 거래와 뇌물건은 축소수사로 치닫는 중이라니, 과연 무슨 재주를 부리는지 두고 볼 일이다.

그처럼 살아있는 권력에 너그럽고 모른척 하는 검찰의 무딘 칼날이, 야당과 정적을 향해서는 양날의 비수로, 물불 안가리는 사냥개가 되어 사정없이 후벼파고 물어 뜯는다. 아마 정권을 넘겼을 때 자기들이 했던 것처럼 혹독한 보복을 당할까 지레 겁먹고 싹을 자르려는 속셈인지 모른다.

거대야당 지도자이자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 부부를 수백 번 압수수색으로 샅샅이 털어 ‘먼지 기소’하고는 최대치 구형을 하더니, 벌금형과 징역형이 나오자 자신감을 얻었는지 이번엔 경찰이 송치하지도 않은 사건을 검찰이 또 기소하는 지독한 끈기를 보였다. 어쩌면 검사정권이 잘하는 단 하나, 검찰권 악용을 무기로 정권 임기 내내 정적 죽이기에 세월을 지샐 작정인 것으로 보인다. 무능정권의 궁지 탈출에 다른 뾰족한 전략도 묘수도 없기 때문이다. ‘양승태 사법농단’ 이후 검찰에 덜미가 잡혀있는 법원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할 호기라는 악랄하고 교활한 회심의 미소까지 지으면서.

대통령 부부 무능과 무책임, 무속적 국정농단 의혹과 정치브로커 명태균을 통한 여론조작 대선, 공천개입, 공직거래 등 각종 의혹에 전쟁위기 조장까지, 지지율이 10%대를 맴돌면서 초초해졌을 게다. 그동안 쌓인 탄핵사유가 차고 넘칠 뿐더러, 자칫 대통령 당선무효로 번질 수도 있으니 막다른 골목에서 안달이 난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을 계속 거부했다가 이탈표 8만 나오면 끝장일 상황이니, 여권 행동대원들이 더욱 날뛰며 정신나간 듯 ‘윤건희 방탄’의 궤설을 읊어대는 것을 보면 단말마가 아닌가 싶다. 갈수록 거센 퇴진과 탄핵 벼랑끝에서 유력한 야당 적수를 죽이면 정국이 반전될 요술램프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광장의 탄핵과 퇴출 함성은 반비례해 커져만 가니 어쩌랴.

‘트럼피즘(Trumpism)’ 흉내를 내고 싶은지 모르나, 트럼프는 그렇게 비루하고 쪼잔하고 무능한 정치인이 아니다. 비록 중점죄자를 택했다지만, 미국은 유권자의 판단에 사법권력이 감히 대들지 못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검사출신 해리스가 외면당한 것이다. 국민의 심판이 아닌 사법의 폭주에 정치와 정치인의 명운을 거는 기묘하게 굴절된 민주주의의 타락상을 한국의 현명한 주권자들이 언제까지 두고볼까. 오로지 검찰권력에 정권의 안위를 의탁한 ‘검사 쿠데타’ 세력의 배째라 공세를 용납지 않으리라는 것은 철퇴를 든 우리 국민의 역사적인 경험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