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칼럼] "칼은 칼로 망하느니…"

● 칼럼 2022. 11. 21. 15:3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검찰공화국 소묘

대한민국은 지금 검찰이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됐다. 검사가 곧바로 대통령이 되면서 역시나, 다들 우려하던 ‘검찰공화국’이 드디어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설마 처벌이 될까”, “구속이라니 말도 안돼”라고 이구동성 말들 하지만, 검찰은 희한한 기교로 올가미를 씌우고 교묘히 판사의 저울추를 움직여 구속영장을 받아낸다, “그런 적 없다”고 단언하던 사람들이 검사실에 불려 다니더니 갑자기 증인으로 돌변해 ‘검찰 앞잡이’처럼 굴어댄다. “그 사람은 탈북자”라고 입을 모아 공언했던 공직자들이 돌연 태도를 바꿔 “탈북으로 조작했다”고 거들어 전직 장관과 청장을 옥에 잡아넣고, 이젠 그 ‘윗선’을 문초하겠다고 벼른다. 그야말로 거칠 게 없고 눈에 보이는 게 없다. 불가능이 가능한 게 대한민국 검찰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그 검찰의 칼끝이 전 정권 수뇌부와 야당대표를 겨누고 질주하면서 한국 정치가 완전 실종상태에서 혼돈에 빠졌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는 삿대질과 악담만 떠돌고 있다. 어쩌면 의원들도 언제 검찰 칼날에 찔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신경이 곤두선 것 일지도 모른다. 설마하고 믿기지 않던 일들이 현실화하고, 도대체 죄라고 할 수도 없는 문제를 엮어 범죄자로 발라내는 칼 솜씨에 멸문지화를 당한 사례들을 똑똑히 보았으니 어쩌겠는가.

 

‘조직에 충성’하는 일편단심으로 마침내 검찰공화국을 만든 주역이어서 마냥 즐거운 것일까. 어둠이 내려앉으면 부하들과 어울려 질펀하게 술판을 벌이던 습벽이 여전한 듯,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주취소식은 여전히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벌써 5개월이 지났건만 지금도 검사 습성에 충실한 나머지 정치를 특수수사로 해결하려 한다. 정치인 쯤이야, 막말과 욕설로 다루던 피의자 xx들로 여긴다. 국정의 파트너라느니 협치라는 말은 사치스런 고전적 정치용어일 뿐이다. 전직 대통령들도 여럿 잡아 넣었는데 갓 물러난 대통령 예우나 거대야당의 대표가 무슨 대수인가. 정치가 실종됐다니, 무슨 실종? 보기싫은 자들 내가 부리는 검사들 쌍칼에 날아가거나 굴종하면 모든 게 잘 되는 거야, 감사원도 이젠 내 손안에 있지 않나… 경제난 생계난에 안보 위기까지, 국민들의 불안과 국정의 표류는 안중에 없는 ‘무사’(武士)태평이다.

그렇게 암담한 검찰공화국의 ‘실행자’로 보이는 그 수하의 사람도 무소불위 안하무인인 것은 빼닮은 것으로 보인다. 검사에서 장관으로 직행했으니 검사의 습성 또한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국회에서 기고만장을 넘어 오만방자한 태도는 ‘절대 권력’ 검찰의 칼을 내비치며 ‘검찰왕국의 왕자’라고 박박 우겨대듯 오기가 넘친다. 국회의원들이 무시당하는 양태를 보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권위나 삼권분립도 실종상태가 됐다. 미사여구로 아부하는 언론은 융숭히 대우하며 특종감을 던져주고, 집요하게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은 ‘스토커’라며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는 현실에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언론이 궤멸상태가 된 것도 당연하다. 그런 권력자들에게 국민들이 과연 ‘주인’일까, ‘개 돼지’일까,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었다. 너무도 보복적이고, 정치적이며, 지역주의적이었다. 개탄스러웠다. 권력에 굴종하다 약해지면 물어뜯었다. 나라가, 검찰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서 우려스러웠다." 일찌기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렇게 검찰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어디 김 전 대통령 뿐인가. 역대 정권에서 권력의 앞장이로 활개치다가 기우는 권력에는 하이에나처럼 물고 뜯고 날뛰는 검찰의 흑역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곳곳에 얼룩져 있다.

이승만의 조봉암 제거, 박정희의 조용수 처형과 민족일보 폐간, 인혁당 사법살인, 전두환의 내란음모 날조 등 갖가지 패악에 검사들이 수족노릇을 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권력 아부의 망언, 무고한 퇴임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파렴치 수사…. 독립투사들을 괴롭히던 친일검사들부터 자유당 때 설치던 반공검사들, 그리고 역대 독재정권과 그 아류 부패정권에서 정치수사와 조작의 주역은 검사들이었다.

오늘의 심각하고 위험한 현실은 그런 검찰권력이 ‘통치권력’ 마저 손에 쥐었다는 것과, 그들이 민주적 시스템과 합법으로 포장한 채 선택적이고 감정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병화(私兵化)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대로’ 라는 합법의 기치를 내세워 수사와 기소권을 독점 행사하는데 제동을 걸 장치는 현 ‘공수처’가 열 개라도 부족하다. 국회와 법원이 막아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과연 기대할 만한가.

소위 선진국이라는 어느 나라에 이런 흑역사가 이어지는고. 참 불안하고 답답한 형국이다.

하지만 ‘칼은 칼로 망한다’는 경험칙적 금언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며 오래가지 못한다는 역사적 사실도 새겨둘 일이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한국적 저항의식과 오늘의 민주한국을 일군 정의감은 세계 최강이다. 검찰의 전횡이 미완에 그친 검찰개혁의 절실성을 절감시킨다는 역설도 희망이다.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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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대통령’의 시대

● 칼럼 2022. 3. 29. 23:1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아침햇발] 손원제 |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어쩌다 대통령이 된 ‘어통령’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이 “그야말로 ‘어쩌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고 칭했고, 윤 당선자 스스로도 누누이 “국민이 불러냈다”는 말로 어쩌다 대선에 나선 상황을 설명했다.

 

‘어통령’이 됐다는 건 윤 당선자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아 당선된 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가 국정 운영을 잘할 거라고 믿어서 지지한 국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지난 2월3~4일 케이스탯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윤 후보 지지층의 64.8%는 지지 이유로 “정권교체를 위해서”를 꼽았다. “자질과 능력이 뛰어나서”는 4.1%, “정책이나 공약이 마음에 들어서”는 9.7%에 그쳤다. 실제 투표 결과도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1차적으로 강경 보수층의 정권 탈환 욕망이 그를 유력 대선 주자로 띄워 올렸고, 여기에 현 정부의 집값 폭등과 세금 인상, ‘내로남불’에 성난 민심이 가세해 어쩌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윤 당선자가 드러내고 있는 난맥 또한 대부분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준비되지 않은 ‘어쩌다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은 물론 그에게 투표한 지지층마저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윤 당선자가 자신의 첫 국정과제로 집무실 용산 이전을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은 그가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엄중함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안보는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본연의 서비스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초적 ‘서비스 마인드’ 역시 안보에는 한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어야 한다. 국방부·합참 연쇄 이전의 문제점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의 사장 등 곳곳에서 제기되는 우려를 ‘일단 청와대에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다’는 기이한 논리를 들어 거듭 일축하고 있는 것은, 윤 당선자가 대통령의 기본 책무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겠다며 ‘탈청와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졸속과 불통의 제왕적 행태를 드러낸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애초 윤 당선자가 “경호 문제나 외빈 접견 문제는 충분히 검토했다. 당장 인수위 때 준비해서 임기 첫날부터 광화문 집무실에 가서 근무가 가능하다”고 장담해놓고 당선된 지 사나흘 만에 경호와 시민 불편 등을 문제 삼아 용산으로 이전 장소를 바꾼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지 않을 수가 없다. ‘말 바꾸기’를 넘어 처음부터 용산을 염두에 둬놓고 선거 기간 중에는 국민들에게 듣기 좋은 ‘광화문’을 얘기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윤 당선자는 흔한 유감 표명조차 없이 “결단”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추켜세우고 있을 뿐이다. 이 역시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투명한 논의를 거쳐 국가적 의제를 결정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지도자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보는 경험을 갖지 못한 채 ‘어통령’이 됐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윤 당선자가 용산 이전에 집착하며 당선 뒤 첫 3주의 ‘골든 타임’을 날려버린 것은 이걸 빼면 그가 국민에게 내놓을 수 있는 뚜렷한 비전이나 국정과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을 잡긴 했지만, 정작 어떤 나라와 정부를 만들어 국민의 삶을 향상시킬 것인지는 스스로도 오리무중이기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속이 텅 빈 ‘정권교체’ 구호만으로 당선된 ‘어통령’의 근본적 한계다. 그가 국민의 실제 삶과 직결된 국정 분야에서 약간의 준비만 돼 있었다면, 지금처럼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며 귀중한 국정 동력을 허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윤 당선자 주변에 직언을 서슴지 않는 ‘레드팀’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어통령의 시대를 맞는 불안과 우려를 더욱 깊게 한다. 정치 초보의 불통 행보를 말리기는커녕 “권한을 포기하겠다는 굳은 의지”(권성동),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결단”(김기현) 운운하며 칭송하기에 급급한 사람들뿐이다. 계속 이 상태로 간다면 언젠가는 국민들이 소리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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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시간’이 오고 있다

● 칼럼 2022. 3. 29. 23:1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28일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고발된 삼성전자와 삼성 웰스토리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경기 성남시 삼성웰스토리 본사.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김경욱ㅣ법조팀장

 

검찰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정권 이양기에 때아닌 대형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분주한 모습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첫 번째 검찰 인사가 마무리되면, 준비 기간을 거쳐 주요 사건 수사를 본격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금은 정권 교체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대형 수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수사의 칼날이 벌써부터 문재인 정부를 향한다는 점에서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의 ‘코드 맞추기’에 공을 들이는 모습도 감지된다.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25일 산업통상자원부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데 이어, 28일에도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8곳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서다. 이 사건의 핵심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산업부가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산하 기관장의 사직을 압박했다는 의혹이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2019년 1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는데, 서울동부지검은 캐비닛 속에 묵혀둔 이 사건을 3년2개월 만에 꺼내 든 것이다.

 

검찰은 늘 그렇듯, ‘원칙대로 수사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산업부 사건과 유사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대법원 판단을 기다렸고, 이 의혹의 정점에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1월 징역 2년을 확정받은 만큼, 산업부 수사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비슷한 사건에 대한 사법적 최종 판단이 내려지고, 대선 기간에는 선거 개입 논란이 우려되는 탓에 수사에 착수하지 못했으니, 선거가 끝난 뒤 수사에 나섰다는 설명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왜 꼭 지금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3년2개월을 묵혀왔는데 앞으로 새 정부 출범까지 남은 40여일은 왜 못 참은 것일까, 새 대통령 취임 전에 서둘러 강제 수사에 나선 것은 새 정부에서 수사가 시작되면 표적·보복 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삼성 관련 수사도 검찰이 선제적으로 윤 당선자의 의중을 받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서울중앙지검은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고발된 삼성전자와 삼성웰스토리를 28~29일 압수수색했다. 삼성웰스토리는 급식 사업을 하는 삼성 계열사다. 주목할 점은 수사 자체가 아니라, 검찰이 수사에 나선 ‘시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것은 지난해 6월이다. 검찰은 지난 아홉달 동안 사건을 묵혀두다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에서 이기기 무섭게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윤 당선자는 대선 후보 시절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특수관계로 설립한 회사에 일감을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문제는 분명히 법에 저촉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집행을 하는 게 맞다”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취임도 하기 전에 납작 엎드려 대통령 당선자 심기를 살피며 코드 맞추기에 나선 검찰이 새 정부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공정성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윤 당선자는 불과 1년여 전까지만 해도 검찰총장이었다. 검찰 장악력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법전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검찰 위계를 암묵적으로 규율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이 대통령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검찰총장이 아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대통령-검사’ 동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게 잡으면, 우리가 안 시켜도 경찰들이 알아서 입건한다. 그게 무서운 거지.” 대선 기간 공개된 이른바 ‘7시간 통화’ 녹음에서 윤 당선자 부인 김건희씨가 한 말이다. 김씨의 말 가운데 ‘경찰’을 ‘검찰’로 바꾸면, 작금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김씨는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권의 시간이 다하면, 검찰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적 순환고리다.

 

다시, 또, 검찰의 시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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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새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서게 될 용산 국방부 청사 일대의 조감도를 가리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주현 | 이슈부문장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보인 ‘용산 시대’ 조감도를 보면서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새 대통령 집무실이 될 국방부 청사 남쪽으로 널따란 잔디밭 공원이 펼쳐져 있다. 실제로 50m 옆에 있는 합동참모본부 건물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삼각지 일대 고층 아파트들은 원경으로 한참 물러나 있다. 삼각지역 일대는 보이지도 않는다. 용산미군기지가 공원으로 바뀌면 새 대통령 집무실과 연계해 많은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다 보니 얼짱 각도를 위한 생략과 과장이 거침없다. 이날 윤 당선자의 발표 장면을 지켜본 도시·건축 전문가들도 “사기에 가깝다”며 비판하는 반응이 많았다.

 

걱정스러웠다. 누군가 제공한 근사한 청사진에 윤 당선자가 그저 휘둘리는 것이 아닌지, 잠재적인 문제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의도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알지 못한 채 거침없는 의지만 앞세운 것이 아닌지.

 

용산 이전을 최대한 ‘선해’하는 이들은 백악관 모델을 거론한다.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건축가인 유현준 교수는 지난 1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용산 이전과 관련해 “신의 한 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우리가 백악관을 보시면 앞에서 워싱턴 내셔널 몰 같은 기념관들이 딱 있고 거기에서 백악관이 약간 언덕에 올라가게 돼 있다. 그런 구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윤 당선자가 검찰총장을 그만둔 뒤 6월말 정치선언을 하기까지 ‘공부’를 한다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던 시절에 만난 사람이다. 윤 당선자가 제시한 공원 그림도 링컨기념관-워싱턴기념관-의사당까지 잇는 내셔널 몰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 21일치 <조선일보 >는 “윤 당선인 측은 미 백악관 집무동인 웨스트윙을 새로운 집무실 모델로 고려해온 것으로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왜 서울이 워싱턴을 따라해야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지만, 정말 백악관을 모방하기 위한 의도였더라도 이는 워싱턴과 미국의 수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맥락을 떼놓고 하는 말이다. 18세기 말 워싱턴디시 밑그림을 짠 건축가 피에르 샤를 랑팡은 의회와 백악관을 두 축으로 하여 의회-행정부 간 균형과 견제의 원칙을 담았다. 20세기 초 수립된 ‘맥밀런 플랜’은 내셔널 몰과 링컨기념관, 제퍼슨기념관을 배치해 미국이 지향하는 독립과 자유, 평등의 가치를 명확하게 풀어냈다. 링컨기념관이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로 꼽히는 것도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마틴 루서 킹의 연설로 인해 인권의 보편적 가치가 더해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백악관 역시 1800년에 완공된 이래 수차례의 증축, 확장, 보강공사를 거쳐 오늘날의 모습이 됐다. 즉, 윤 당선자 쪽이 지향하는 워싱턴은 시대에 부응하는 전문가의 계획과 시민의 행동, 그리고 200여년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애초에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던 ‘광화문 시대’는 단지 대통령과 참모가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문밖으로 나가면 시민들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광화문은 국가 지도자가 휘두르는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려는 시민의 열망이 분출되고 자유로운 담론이 오가는 직접민주주의의 전당, ‘광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셀카를 찍는 수준의 소통이 아니라, 반대 의견을 청취하고 항의를 수용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소망한 것이었다.

 

윤 당선자가 ‘광화문 시대’를 주장한 최초의 의도도 비슷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윤 당선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4대강 사업보다도 훨씬 급조되고 미숙한 청사진을 흔들며 50여일 만에 집무실 이전을 마무리짓겠다고 말한다. 여론의 반대는 본인이 직접 나서 ‘설득’하겠다는 것으로 충분한 모양이다.

 

공간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물이 담기면 물잔이고 술이 담기면 술잔이다. 너무나 손쉽게 광장의 소통을 저버린 윤 당선자는 용산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윤 당선자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했다. 큰일이다. 불통과 과속이라는 우리 시대의 치명적 한계가 새 대통령 집무실에 담길 것이며, 그 불통과 과속을 옹호하는 대통령의 인식은 더욱 강화될 테니.

 

[시사 칼럼] 9·11의 백악관, 윤석열의 청와대

 

정의길 기자

 

윤석열 당선자에게 청와대란 그저 대통령 책상이 있는 사무실이고, 자신이 쓸 개인 공간이다. 청와대는 없고, 윤 당선자의 집무실만 있을 것이다.

 

20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시민들이 텔레비전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밀어붙이는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 이전에 대해 전직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들도 “정부와 군 지휘부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목표가 된다”며 반대했다. ‘9·11 테러’가 겹쳐졌다.

 

알카에다의 2001년 9·11 동시 테러 때 공격받은 목표물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이었다. 실패한 목표물도 있었다. 백악관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4대의 비행기 중 1대는 워싱턴으로 날아오던 중에 펜실베이니아 섕크스빌에 추락했다. 기내의 승객들이 제압하려 하자, 테러리스트들이 여객기를 추락시켜 버렸다. 워싱턴에서 약 200㎞ 거리였다. 여객기를 가속하면 1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추락한 여객기의 테러리스트들은 백악관이나, 상황을 봐서 의사당을 공격하려고 했다. 여객기의 승객들이 저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9·11 동시 테러에서 가장 비판받은 지점은, 쌍둥이빌딩이 공격받는 초유의 비상사태가 발생하고 거의 한시간이 지났는데도 미국 국방의 지휘부로 최고 보안 대상인 펜타곤이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민간 여객기의 공격에 허망하게 당했다는 것이다. 추락한 여객기가 계획대로 워싱턴으로 날아왔다면 백악관 역시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백악관과 펜타곤이 같은 공간이나 인접한 장소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그날 미국의 전쟁 지휘본부는 상당 기간 완전 먹통이 됐을 것이다. 국방부를 옆으로 밀어내고 대통령 집무실을 꽂아넣겠다는 발상을 놓고 9·11 테러의 교훈까지 끌어대는 것은 민망한 일이기는 하다.

 

물론 9·11 테러의 교훈은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민간 여객기로도 세계 최강국의 최고 안보시설물들이 공격당할 수 있다는 안보의 불가측성이며, 백악관 등 미국 지도부가 그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는 것이다. 안보 위기를 안보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이데올로기가 결부된 대외정책의 관철 기회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은 9·11 테러 당일 알카에다가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텅 빈 훈련장을 공습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오콘의 핵심인 더글러스 파이스 국방차관은 9·11 테러 당일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던 기내에서 후세인을 타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가, 동석한 존 애비제이드 대장한테서 “후세인은 아니다, 알카에다와 관련이 없다”는 반박을 받기도 했다. 9·11 테러 발발 뒤 일주일 동안 부시 행정부의 고위 외교안보회의, 이른바 ‘전쟁위원회’는 9·11 테러나 알카에다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라크 응징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결국 아프간 침공을 우선시하기로 결론이 났으나, 이라크 전쟁은 9·11 테러 당일 결정된 것이나 진배없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고 친미 자유주의 정권을 수립해서 중동을 바꾸겠다는 ‘중동 개조론’이 9·11 테러 대책의 결론으로 둔갑했다. 그 산물인 이라크 전쟁이 미국에 어떤 재앙을 불러왔는지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부시 행정부는 9·11이라는 위기 앞에서 즉각 이라크를 조건반사처럼 끄집어냈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장악하고 있던 네오콘의 머리에 뿌리박힌 미국의 가치, ‘반미 국가’에 대한 혐오로 채워진 우파 이상주의가 그런 조건반사를 일으키게 했다.

 

부시 행정부는 9·11이라는 위기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는 이유라도 있었으나, 윤석열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위기를 자초하는 것은 도대체 그 이유를 알기 힘들다.

 

부시 행정부 네오콘들의 머리에 우파 이상주의가 박혀 있던 것과 비슷하게, 윤 당선자와 핵심 측근인 ‘윤핵관’들의 머리에는 용산으로 가야만 하는 풍수와 도참사상이 박혀 있다는 말인가?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9·11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는데, 윤핵관들은 청와대 이전으로 위기를 만들어서 기회로 삼으려는 것인가? 대선에서 승리한 당선자인데도 지지율이 부진하니, 이걸로 당선자의 밀어붙이기를 보여줘 정국을 장악하려는 의도인가?

 

윤 당선자는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며 더 이상 ‘청와대’는 없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이 말이 총각 자취방 이사하듯이 감행하는 그의 집무실 이전 구상보다도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그에게 청와대란 그저 대통령 책상이 있는 사무실이고, 5년간 자신이 마음에 들어 써야 할 개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청와대는 없고, 윤석열의 집무실만 있을 것이다.

 

[유레카]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이 집무실 이전에 주는 교훈

 

박민희 | 논설위원

 

1864년 아들 고종이 즉위하면서 권력을 장악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이듬해 경복궁 중건을 시작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270년 넘게 서울 한복판에 폐허로 남아 있던 경복궁을 중건하는 일은 워낙 대규모의 사업이어서 이전까지 어떤 국왕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밖에서는 제국주의 세력들이 밀려오고 내부에서는 봉건 지배질서가 와해되고 민생이 피폐해진 위기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경복궁을 중건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김종학 국립외교원 교수가 쓴 <흥선대원군 평전>을 보면, 대원군은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나라의 기풍을 일신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경복궁 중건을 통해 공식 관직을 맡을 수 없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위해 세운 영건도감은 그가 국가 재정을 주무르고 인사에 간여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중건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미신도 활용했다. 경복궁 안 석경루 아래서 구리그릇이 나왔는데 그 안에 조선 건국 초기 무학대사가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을 예언한 듯한 글귀가 나왔다. 대원군이 사람을 시켜 몰래 묻어놓은 것이었다. 1866년 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애써 모아 놓은 목재가 전부 불타버린 뒤에는 전국 각지의 좋은 나무나 바위, 양반 선산의 산림까지 무자비하게 벌채해 궁궐 건축에 동원했다.

 

공사를 위해 가혹한 징세를 했다. 7년간의 공사에 들어간 총비용은 783만냥이었는데, 그중 왕실의 내탕금과 종친의 기부금은 45만냥이었고, 나머지의 대부분인 727만냥은 민간에서 거둬들였다. 처음에는 부호들로부터 원납전( 願納錢)을 거뒀는데 제대로 걷히지 않자, 백성들에게 강제 징수를 했다. 백성들은 이를 ‘원망하면서 내는 세금’이라는 뜻으로 원납전( 怨納錢)이라고 불렀다. 서울 도성문 출입세를 비롯해 온갖 명목의 잡세도 더해졌다. 그래도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대원군은 실질 가치가 명목 가치의 20분의 1인 당백전을 주조해 강제로 유통시켰고, 화폐 가치 하락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1868년 8월19일 경복궁이 중건되어 고종을 비롯한 왕실이 창덕궁에서 옮겨 왔으니,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집무실과 관저 이전이었다.

경복궁 중건으로 권력을 장악한 대원군은 국제 정세 변화를 외면한 채 쇄국정책을 강압적으로 추진했고, 권력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가차 없이 탄압하고 독재에 나섰다. 대원군과 며느리 명성왕후가 권력 투쟁을 벌이는 틈을 이용해 외세가 번갈아 조선에 개입했다. 김종학 교수는 조선 말 혼란의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대원군에 대해 “무너진 사회질서를 복구하고 생존의 최소한의 조건을 지켜줄 강력한 권력자의 도래를 바라는 절박한 염원“을 가졌으나, 결국 그것은 “우상을 향한 맹목적인 바람, 또는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에 지나지 않았다”고 썼다.

 

150여년이 흐른 뒤, 국제질서는 또 다시 위태롭고 코로나19와 불평등으로 인한 민생의 고통도 엄혹하다. 여론의 우려를 무시하고 속전속결식으로 집무실 이전을 밀어붙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제왕적 불통’은 정치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듯하다. ‘강력한 권력자가 지켜줄 것이라는 맹목적 바람’이 아닌, 민주적 제도, 정치권의 반성, 대안을 만들어 내려는 시민 각자의 노력이 퇴행이 아닌 희망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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