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12.3 교훈, 개혁과 도약의 동력으로

● 칼럼 2025. 6. 6. 13:2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12.3 교훈, 개혁과 도약의 동력으로

 

반역과 반전의 6개월이었다.

그 날 이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벼랑끝 고개를 넘나드는 것 같은 아찔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힘겹게 외치고 땀흘려 고갯마루를 넘었다 싶으면 혼탁한 강물이 가로막았고, 갑자기 바윗덩이가 굴러떨어져 아차 피했더니 이번엔 절벽이 시야를 가려 눈 앞이 캄캄한 일도 있었다. 조마조마 모두들 잠을 설치며 애간장을 태워야 했던 곡절의 180일이었다.

 

느닷없이 총검으로 무장한 국군장병이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 들이닥쳐 난리를 벌인 충격적 사건부터, 빛의 장관을 이룬 응원봉의 궐기와 극적인 탄핵, 내란수괴의 관저 버티기 끝에 체포의 환호가 있었지만, 그마저 잠시, 동키호테 판사의 방면으로 허망한 반전을 이루더니 피말린 파면의 역전극, 그리고 물타기와 궤변으로 반전을 노린 선거판까지, 국내외 동포들은 불안한 감정의 냉온탕에 내몰린 시간고문을 견뎌야 했다.

 

어쩌면 숱한 눈구덩이를 오르내리며 힘겹게 내달리는 모굴스키(Mogul skiing)를 탄 기분이 들기도 했던, 유난히 긴 12.3 내란의 겨울, 그 이후 ‘내란의 얼음’이 냉해를 부르며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아(春來不似春) 속이 답답한 날들…

 

주마등처럼 스치는 지난 6개월의 파노라마를 뒤로하고 마침내 흑암의 터널을 벗어나 눈부신 6월의 햇살로 새 시대를 열어 젖혔다.

 

 

6.3 대선의 결말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정의를 되찾았다는 것과, 결코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승리의 전통과 역사적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사는 대한민국 다수를 확인한 사실일 것 같다.

 

당선자 이재명 새 대통령이 내세운 ‘국민주권 정부’의 출범이 바로 민주주의와 정의를 되살리는 신호탄이고, 이를 쏘아올려 뒷받침한 것이 역사 속에서 의로움의 전통을 만들어 온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계엄군을 몸으로 막고 광장을 메운 응원봉의 결기, 해외 각지에서 조국을 위해 외친 동포들의 혈맥에 흐르는 민족정기가 그 증거들이다.

 

민주 헌정질서를 위협한 친위 쿠데타가 어찌 진보에게는 악행이고 반란인데, 보수에게는 정의이고 잘한 일이 될 수 있는가. 도무지 진보 보수를 따질 대상이 아닌데도, 내란 무리는 억지논리로 판을 뒤집으려 했다. 오히려 국가안위에 민감한 보수주의자들이 더 분개하는 게 마땅한 일이거늘, 스스로 거짓 보수임을 커밍아웃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반 만년 우리 역사에 수많은 외침(外侵)이 있었고, 국가적 변란도 잦았지만, 대표적인 민족적 신념은 대의명분(大義名分)이었다. 이성계가 역모로 권력을 잡았어도 정몽주를 충신으로, 단종은 사약에 갔어도 사육신이 충신이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노라는 사가(史家)들 기록과 민심의 기억을 보아도 그렇다. 근현대사에 식민 일제의 패망으로 고통에서 해방된 역사부터, 전쟁 잿더미에서 회생한 일, 불의한 독재권력에 피와 눈물로 항거해 민주주의를 일궈온 기억들까지…‘하나님이 보우하사’ 유구한 대한의 역사가 곧 사필귀정, 정의의 승리를 말해주는 것이다.

 

 

12.3 내란의 파고를 넘어 6.3 투표의 선택과 심판으로 펼쳐진 새 시대는 큰 기대와 희망을 주지만, 난제도 수두룩하다. 새 정부는 조급하지 않되 지혜롭게 선후 완급을 가리며, 무너지고 망가진 구석구석을 재빨리 수리해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 인권 등 국민의 정신행복은 물론, 경제 사법 군, 외교, 문화 등 모든 부문을 정상으로 되돌려, 행복과 평안의 삶을 모두가 향유할 수 있게 발빠른 행보에 나서야 한다. 내란 와중에 드러난 온갖 병폐와 구태들을 제거하고 고치고 바로잡는 법적, 정치·사회적 행동과 조처가 시급하다.

 

무엇보다 내란일파를 철저히 규명해 단죄하고, 권력을 일가범죄와 카르텔 이권보호에 오남용한 자들, 법치를 내로남불 짓밟은 자들을 징벌해야 한다. 국정을 무속으로 더럽힌 자들, 역사를 거꾸로 되돌린 민족혼이 없는 자들, 주인인 국민의 머리 위에 또아리를 틀어왔던 오만불손한 자들, 피흘려 지켜온 민주업적을 깔아뭉개 선열들의 희생과 열정을 더럽힌 무리들을 응징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민주헌정을 유린하거나 민족 자존심을 훼손하는 망동이 반복되지도, 생각조차도 하지못할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아픔도 거부반응도 나올 테지만 각오할 일이다. 민주적이고 과단성 있는 국정이라면 호응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흔히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며, 고진감래라 했다, 심한 산통 후에 옥동자를 낳듯이. 12.3의 홍역을 우리들의 도약 자산과 개혁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야 말로 한민족의 지혜일 터이다.        < 김종천 편집인 >

[목회칼럼] 기적

● 칼럼 2025. 6. 6. 12:4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기적

민경석 목사 (키치너 워터루 한인장로교회 담임)

 

2009년 봄으로 기억한다. 섬기던 교회의 성도 중에 한 분이 8주 된 강아지를 선물로 주셨다. 감사했지만 아직 세 아이가 ‘강아지’와 비슷했기에 부담이 되는 것도 현실이었는데, 성도가 주신 선물이기에 우리 가족이 되었다.

 

오늘 6월2일 선물로 받은 강아지가 우리 가족과 이별한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기억하고 싶지않아도 스마트폰에 기록된 날짜는 여지없지 그날을 기억하게 만든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 아이들과 함께 어린 시간을 보냈고 아이들의 좋은 친구였으며 지금도 가끔 전화기 사진첩에 등장하여 옛시간을 기억나게 하는 것을 보면 한 가족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떠나 보내고 나면 좋은 기억보다는 늘 아쉽고 해주지 못했던 것만 기억난다”고. 그런 부분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똑같은 것 같다.

 

10여년 전 나는 첫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부교역자로 섬기다가 주어진 첫 담임목회이기에 나름 여러가지 생각과 준비 가운데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난 2023년 12월, 11년의 긴여정을 마쳤다. 첫 담임했던 교회이기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도 했지만, 돌아보면 누군가의 말처럼, 그리고 8주 된 강이지의 추억처럼 “좋은 기억보다는 아쉽고 더 섬기지 못했던 기억”만이 마음 한구석을 가득 메우는 것 같다.

 

2025년 두 번째 담임목회지에 부름 받았다. 52년 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이다. 주변에 나를 아는 많은 분들이 “목사님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된 사역자를 그렇게 두시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축하들 해주시지만, 나는 이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적’이라 정의하고 싶다.

 

지난 시간 나름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돌아보면 아쉬움과 아픔이 많았던 부족한 목회자를 다시 사역의 현장으로 부르신 것은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로 설명이 되지 않아서다.

 

20대 중반 첫 사역을 시작한 이래 이곳 캐나다 땅에서 사역하기까지 쉬지않고 교회와 함께했던 사역자의 입장에서 지난 2년의 쉼은 너무도 아프고 길었던 시간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부름심은 여기까지인가…!?”하는 극히 인간적이고 현실에 매인 생각이 나를 매일 광야로, 광야로, 몰아내고 있었던 것 같다. 광야는 참 차갑고 냉정한 곳이다. 누군가의 인간적인 위로가 아닌 차갑고 냉정한 현실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실망하고 좌절하게도 한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고.. 그 과정 중에 광야에서 기다리시는 “진정한 위로자 나의 주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매일 습관처럼 반복되었던 기도생활이 ‘주님을 만난 광야’에서 기도의 간절함이 새롭게 회복되었고, 다시 한번 ‘영혼에 대한 소명’이 회복되는 순간, 기적과 같이 찾아온 부름심이기에 “기적”이라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3월 첫 설교와 함께 어제 주일 예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기적’의 일기를 써가고 계신다. 차가운 광야에서 좌절하고 낙심한 영혼을 다시 일으키시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시고 성실하심”을 진심으로 믿기에 그렇다.

 

소망하기는, 돌아보아 ‘아쉽고 섬기지 못했던 기억으로 가득했던 인생’이 아닌, 늘 기도보다 앞서지 않으며 우리 주님이 기록하는 ‘기적의 목회일기’에 최선을 다하여 등재되고 동참하는 목회자이고 싶다. 바울 사도의 지극하신 고백처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내가 네 번째 선택하는 대통령

● 칼럼 2025. 5. 31. 14:2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지난 3년 나라가 너무 망가졌다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21대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며칠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대한민국은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돌아보면 참으로 아득하다. 어쩌면 ‘내란 수괴’ 윤석열이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22년 3월 10일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날 우리의 정신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0.73% 차이로 정권이 바뀐 그때, 정부 내 인권기구에서 공직자로 일하고 있던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온 나라가 김건희 모시기에 매달리지 않았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직후 나는 회의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고 용산 대통령실을 찾아갔다. 가서 들은 말은 간단명료했다. 내가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기간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일방적 통고였다. 2020년 5월 현재 국방부 공식 발표에 의하면, 징병제 나라에서 비순직 군인이 3만 8009명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 역시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처럼 그 죽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해 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그런 역할을 해 온 국가기관이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인데, 그들은 그런 의미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설명마저 귀찮게 여기는 태도였다.

 

그뿐인가. 윤석열 내란 권력은 집권 3년 동안 국민의 삶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사실상 단 한 명을 위한 권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김건희, 그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대한민국 검찰이 존재했고 거기에 모든 국정이 매달렸다는 말에 과연 어느 누가 부정할까. 지난해 12월 3일 내란 역시 ‘결국 막을 수 없는’ 김건희 특검을 저지하려고 무리수를 쓰다가 위대한 국민의 저항 앞에 좌절한 것이 아니겠는가.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가운데)과 그가 임명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왼쪽),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오른쪽). 

 

윤석열의 3년 임기를 인권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정부 내 인권기구의 황폐화는 측정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세계에서 ‘인권위 모범국가’로 평가받던 대한민국이 지금은 ‘등급 보류판정’ 중이다. 2002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박근혜 집권 시기를 제외하고 줄곧 A 등급을 유지한 우리나라 ‘국가인권위’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바로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 결의안’을 처리한 것이 이유였다.

 

왜 인권기구들이 집중적으로 무너졌을까?

 

‘군인권보호관’ 역시 마찬가지다. 군인권보호관 제도를 한 사람의 악의로 어떻게 희화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빠른 시간에 한 조직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 완벽하게 증명한 사례였다고 나는 평가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 박선영 역시 그렇다. 극우세력인 뉴라이트 출신 인사를 기용함으로써 악의의 임명권자가 기대한 그대로 진실화해위는 ‘배가 산으로’ 갔다. 유족들의 가슴 속 한은 산을 이루고, 눈물은 강처럼 흐르는데 파면된 윤석열이 임명한 이들 기관장들은 그 자리에서 사퇴할 생각이 없다.

 

인권위원장 안창호의 행보는 더욱 가관이다. 그는 경찰을 대동한 채 5.18 기념식장에 나타나 강제 진입을 시도하여 유족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자리에서 피해자 인권을 능멸하는 행동을 하고, 더 나아가 가해하는 발언을 일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 안창호의 법적 임기는 2027년 9월 5일까지다. 아직도 2년이 넘게 남았다. ‘내란 수괴’ 윤석열이 ‘알박기’한 ‘알’은 굵고도 두껍다.

 

나는 만 20세 성인이 되어 투표권이 생긴 이래 어떤 선거에서도 투표권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래서 50대 중반이 돼 맞은 이번 투표는 여덟 번째 대통령 선거다. 지금까지 일곱 번 투표에서 내가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경우는 세 번에 불과하다. 이제, 나는 내가 선택한 네 번째 대통령을 만들고자 6월 3일, 투표하러 갈 것이다.

 

내가 대통령 선거에 투표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한결같다. 나라가 나라다운 세상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간결하게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선택했던 ‘두 번째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1988년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어 국회 단상에서 행한 연설이 생각난다. 

 

노무현 민주당 의원이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중인 노조원과 담배를 같이 피우고 있다. 1990.5.1 연합
 

 

인권이 보호받고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무위원 여러분. 부산 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노무현입니다. (…)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세상’, 모두가 입는 것 먹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이어지는 세상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사회라 생각합니다.”

 

나는 여기에 하나만 덧붙이고 싶다. 국가기관이 제 역할을 하는 나라, 국가인권위는 국민의 인권을 제대로 옹호하고, 군인권보호관은 군인의 생명과 인권을 지킴으로써 그 부모를 안심케 하는 나라, 진실화해위는 과거사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을 위해 최후의 변호인이 되어주는 나라. 그렇게 모든 정부 부처와 공무원이 제 역할을 함으로써 국민이 더 이상 서럽고 고통받지 않는 대한민국.

 

나는 그런 나라를 구현할 철학과 신념을 가진 후보를 내가 선택한 ‘네 번째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 희망으로 투표장에 갈 거다.

 

조적 조(朝敵朝)와 조적 조(曺敵曺)

● 칼럼 2025. 5. 21. 01:3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조희대가 옳았다"는 방씨 조선일보 박정훈

"그들의 적은 바로 그들이었다"

 

조희대가 이끄는 사법부가 최대 위기에 처했다. 원인은 간단하다. 조 씨가 주권자인 국민의 무시한 채 뜻을 거스르며 무리하게 판결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있다. 사법부의 권력도 당연히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조 씨는 사법부가 이어오던 오랜 관행과 절차를 무시하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권력 행사를 막으려 했다. 특히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 윤석열의 반국가범죄를 막고 나선 이재명 후보에 대한 요상한 상고심은 사법부의 구성원들조차 의구심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방씨조선일보의 논설실장 박정훈 씨는 대법원이 왜 민주당 반발을 무릅쓰고 이재명 대선 후보에 대한 선고를 강행했는지, 재판부는 명시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고 쓰고 있다. 언론인의 본분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끈질기게 묻는 일이다. 박 씨는 대법원이 사건 배당과 동시에 전원 합의체에 회부해 전광석화처럼 2차 심리까지 마치고 선고 기일을 5월 1일로 지정하는 등 속도전을 펼쳤다고 전한다. 대법원이 전광석화처럼 속도전을 벌였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개인을 넘어 국가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는 중차대한 판결을 이처럼 무리하게 서두른 이유를 대법원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박 씨는 끝까지 묻고 그 까닭을 밝혔어야 했다.

 

조적조(朝敵朝)라는 말이 있다. ‘조선일보의 가장 큰 적은 조선일보’라는 뜻이다. 방씨조선일보가 원칙보다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자들이기에 흔히 관찰되는 모습이다. 박정훈 씨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원칙주의자라고 하며 대법원이 전광석화처럼 속도전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원칙주의자가 전광석화처럼 속도전을 했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광석화나 속도전이 원칙이라는 뜻일까? 박 씨는 대법원이 그 이유를 명시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질문을 잃은 박 씨의 추측에 의하면 대법원이 선고를 대선 전에 하려 했으리라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개입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정훈 씨가 조희대 씨를 원칙주의자라며 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조선일보 5월17일자 박정훈 칼럼. 

 

국가 지도자를 뽑는 중요한 선거에 대한 판결일수록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과정과 절차를 거쳐 양심적으로 선고해야 마땅했다. 누군가에 쫓기듯 전광석화나 속도전처럼 판결을 해치운 대법원을 이해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사법부만이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오만은 또 어떤가? 윤석열의 내란 사태는 물론 극우 폭도들의 서부지원 침탈이나 추문에 휩싸인 지귀연의 윤석열 탈옥 허용에도 단 한마디 없던 사법부에 진실을 기대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조희대의 오만이 사법부의 몰락을 재촉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윤석열의 임명을 받았다. 그는 취임사에서 ‘지난날 서슬 퍼런 권력이 겁박할 때 사법부는 국민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다시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국민을 지켜주겠다는 뜻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사법 절차의 공정성과 일관성을 훼손하며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타격을 주었다. 대법원판결을 앞둔 시점에 내란 세력과의 우려스러운 행보에 대한 구체적인 풍문이 돌고 있다. 새삼 대법원의 뒤에 서슬 퍼런 권력의 겁박은 없었는지 묻게 된다.

 

조 대법원장은 또한 취임사에서 어떤 선입견이나 치우침 없는 판단을 강조했다. 또한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에 맞는 재판을 하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불공정하게 처리한 단 한 건이 사법부의 신뢰를 통째로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한결같은 마음가짐과 자세를 갈고 다듬어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기를 부탁하고 있다. 이쯤에서 조적조(曺敵曺)라는 말이 떠오른다. 조 대법원장이 조 대법원장에게 가장 큰 적이라는 뜻이다. 그가 취임사에서 한 말을 보란 듯이 스스로 뒤집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
 

박정훈 씨가 ‘조희대가 옳았다’라는 칼럼을 쓴 날, 방씨 조선일보 권순완은 ‘기자 수첩’을 통해 “이재명에 묻는다, 국회는 깨끗한가”라고 썼다. 박정훈 씨의 칼럼과 연결하니 묘한 생각이 든다. 마치 사법부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국회는 사법부에 “깨끗한 법정” 운운할 만큼 깨끗한지를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헌법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며 유독 법관에게 양심을 요구한다. 지킬 수 있는 사람들에겐 무한히 자랑스럽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참으로 끔찍한 저주처럼 들릴 말이다.

 

이제 조희대가 옳았다는 박정훈을 생각해본다. 그동안 방씨조선일보 지면에서 박 씨가 보여온 행적을 바탕으로 그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심의 직업인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묻는다. 최근 당신이 이끄는 사법부가 당신이 옳았다고 단정하는 박정훈 씨 말에 침묵할 만큼 양심적이었는지를 말이다. 내 생각에는 방씨조선일보의 논리나 주장은 틀려먹었고, 박 씨의 심보는 한참 글러 먹었다. 그리하여 다시 방씨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  < 이득우 언소주 정책위원·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