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폭정과 기억상실의 병

● 칼럼 2024. 9. 8. 10:5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 한마당]  폭정과 기억상실의 병

 

 

중국 역사 5천년에 명멸한 제왕이 509명 인데, 그중에 손꼽히는 10대 폭군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으로 기억에 남는 수나라의 양제(569~618)는 중국사의 대표적인 포악 군주였다. 후대에 ‘방탕 악랄하며 여색에 빠졌고 천륜을 거역하며 백성을 착취했다’는 뜻의 ‘煬(양)’을 써서 ‘양제’라 칭했다는 그는 부왕과 형을 죽이고 제왕이 되어 온갖 패악질을 일삼다 반란군에 목졸려 최후를 맞았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절대 권력의 군왕인지라, 아무리 어진 군주라 해도 폭압적 요소야 있었겠지만, 당대와 후세의 역사는 유별난 독선과 학정, 포악한 살상과 공포정치로 이름을 떨친 자들을 특기해 모멸과 오욕을 안겼다.

서양사에도 무수한 폭군들이 등장했다. 로마의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등부터 영국의 리차드 3세와 헨리 8세, 프랑스의 루이14세, 나폴레옹 1세…그리고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에 이르기 까지 악명을 떨친자들이 허다하다.

한국사에서 ‘폭군’하면 조선의 연산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폭군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는 불운의 군주 연산 외에 사가들은 고구려의 모본왕, 백제의 개로왕, 고려의 의종과 공민왕, 그리고 조선의 광해군을 포함해 ‘6대 폭군’으로 선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공통점은 “편집과 아집, 이기심에 가득 차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고 쓸데없는 겉치레에 신경을 썼다. 자만과 독선이 백성들을 굶주림과 고통에 몰아넣었고, 신하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들의 결말은 외부 침략자의 손에 죽임을 당하거나 신하들의 반정을 통해 왕위에서 쫓겨났다.”고 했다.(폭군의 몰락: 이한, 2013)

토론토대학 출신으로 예일대 정치과학 박사인 월러 뉴웰 (Waller R. Newell) 교수는 ‘폭군 이야기’(Tyrants: 2017)에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장밋빛 믿음은 매우 위험하다. 바로 그 믿음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이 폭정을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면서 안심하게 됐고, 진보의 과정 속에서 ‘필요악’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일부라고 여기게 됐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과거와 같은 폭압과 학살은 어렵지만,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의 전부는 아니다.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고 교묘한 방식으로 대중을 호도하면서 참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제반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폭정이다”라고 ‘합법을 가장한 폭정’의 위험을 지적했다.

한국의 근현대에도 폭군의 역사는 명맥을 잇는다. 이승만은 친일 고등경찰을 고용해 독립투사들을 고문했고, 암살을 사주했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20만명 안팎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4.19 학생혁명으로 물러나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잘 알려진 바다. 18년 집권한 독재자 박정희는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절명했다. 정권찬탈과 광주학살의 주역 전두환은 김대중의 시혜로 요행히 천수를 누렸으나, 두고두고 ‘학살자’ 오명은 벗지 못하게 됐다.

전두환이 ‘위장 항복’한 6.10 항쟁 이후 이른바 87체제로 민주화가 이행된지 37년, 그리고 박근혜가 국내외 2천만 촛불로 쫓겨난지 7년여가 지난 요즘, 기억하기도 싫은 ‘폭군과 독재’의 이야기가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뉴웰 교수의 풀이대로 최근 한국의 권력자가 바로 그 과거퇴행과 막무가내 역주행을 감행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설마’가 실제가 되어 수십년 전의 고통을 되살리는 윤석열 정권의 막가파식 행태가 심상치 않다.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고, 오직 가족과 검찰, 학연과 극우 카르텔에 의존해 독선적이고 특권적인 권력행사에 몰두하는 것을 본다. 국리민복이 아닌 일가와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고, 애국보다 왜국을 중시하는 듯한 징표들… 이제는 ‘계엄’까지 우려할 정도로 뚜렷한 반헌법과 반민주 반민족적인 폭정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앞서의 뉴웰 교수 진단은 마치 지금의 한국상황을 보고 분석한 것처럼 들린다. 그는 이렇게 깨우쳤다. “이른바 민주화 운동을 통해 독재자를 끌어 내린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대중이 폭정에 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화면 그렇게 또 ‘기억상실’이라는 병 때문에 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쉽게 걸리는 기억상실의 병, 불의를 기억하지 못하면 훗날 그 것이 정의로 바뀐다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런 경험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무늬만 민주주의인 사회에 살면서도 그 것이 폭정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거기에서 폭정행위를 떼어내 인지할 수 있고, 적어도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선의 폭정보다 낫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더 엉망인 정권이 들어서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역사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이성을 무장하고 ‘공공의 이익을 향한 열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웰의 경고에 동의한 예일대의 스티븐 스미스 교수도 우리에게 경각심과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여전히 민주주의 가면을 쓴 채 불의한 억압과 폭력을 자행하는 정치지도자들이 많다. 인간에게 권력욕이 있는 한 폭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 

< 김종천 편집인 >

[목회칼럼] 우리의 에밀들

● 칼럼 2024. 9. 8. 10:3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우리의 에밀들

 

전상규 목사 (생명나무 교회)

 

「에밀, 집에 가자!」라는 어린이 동화가 있습니다.

알프스 산 중턱에 사는 마르타 할머니는 에밀이라는 아기 돼지를 기릅니다. 이 할머니는 매우 가난해서 늘 음식도 부족합니다. 그나마 여름에는 텃밭을 가꾸어서 채소를 얻고, 가끔 목장의 우유도 몰래 먹을 수도 있지만,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고픈 채 잠을 잘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 마르타 할머니가 아기 돼지 에밀을 기르는 이유는 배고픈 겨울을 나기 위해서입니다. 할머니는 에밀과 음식을 나누지만, 사실은 에밀이 어서 살이 통통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자 마르타 할머니는 에밀을 데리고 도살장으로 향했습니다. 아기 돼지 에밀은 그것도 모르고 도살장으로 가는 길의 도시를 구경하면서 신나합니다. 그러나 도살장의 참혹한 실상을 직접 목격한 마르타 할머니는 아기 돼지 에밀을 도살장에 넘겨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기 돼지에게 말합니다.

“에밀, 집에 가자!”

어느 새 할머니에게 에밀은 음식이 아니라 가족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희노애락의 감정을 나누며 그만큼 가까워진 것입니다. 마르타 할머니와 아기 돼지 에밀이 함께 집에 돌아오는 오후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마르타 할머니는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먹을 것이 아니라 따스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오히려 함께하며 생겨난 그 사랑이 한 겨울의 배고픔마저 이길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넘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각자도생, 먹고사니즘이 점점 우리의 머리를 갉아먹고 가슴을 굳어지게 합니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햇빛에 더위를 먹은 것처럼, 우리의 살갗에서 삶의 치열함의 열기가 잘 식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필요하고 늘 부족하기만 합니다.

심지어 저만치 떨어져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젠가 나의 삶의 필요를 채워줄 존재들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기다렸다가 도살장으로 데리고 가서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할 대상으로 보입니다. 내가 좀 더 높이 올라가야 할 디딤돌로, 나의 즐거움을 위한 쾌락의 도구들로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쌀쌀해지고 찬바람이 돌 때 같이 배고픔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가족들입니다. 그들과 더 가까이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허기진 겨울을 이길 수 있는 진정한 힘입니다. 아니 실제로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약간의 더 풍족함보다 이 따스한 사랑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에밀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것들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가슴에 그들을 더 많이 담아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더 어려워지는 시간들을 이겨낼 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국치일에 나온 "침범 걱정은 일본이 해야" 칼럼

경제·군사력 한국이 앞서니 자위대 들여도 된다?
일, 전쟁범죄 부정·역사왜곡에 독도영유권 도발

국민 반일 감정 조롱하는 친일 매국 신문 아닌가

 

8월 29일은 국치일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에 못 이겨 대한제국이 망하고 국권을 빼앗긴 날이다. 국호도 일제 뜻대로 조선으로 칭하게 되었다. 조선일보라는 이름이 달리 보인다. 국치일을 기억해야 까닭은 다시는 그런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독립투사를 기억하며 민족적 자부심을 가질 만한 삼일 혁명일이나 광복절조차도 못난 조상을 떠올리며 치욕스러운 과거를 곱씹어야 하는 괴기스러운 날이 되고 말았다. 우리 민족에게 갖은 만행과 수탈을 일삼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꾸짖기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지 못하는 좀팽이 자신을 탓하는 행태를 강요받았다. 암약하던 뉴라이트 세력의 발호가 한창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이 8월 29일에 “침범 걱정은 우리 아닌 일본이 해야”라는 장문의 칼럼을 올리셨다.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기발한 발상이다. 역시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실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경우라도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묘책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1등 민족정론지 조선일보의 주필이 되셨구나 싶다. 

 

 

요약한 내용을 보면 “많은 측면에서 일본을 추월 중인 한국” “군사력은 이미 앞서 군사력 앞선 나라 정치인들이 약한 나라가 쳐들어온다고 겁주고 속이기 그만해야”로 되어 있다. 일본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지만 과대평가할 이유도 없단다. 지당한 말씀이나 여전히 일본 제국주의에 쇠말뚝인 조선일보의 꿍꿍이가 궁금하다.

하필 조기를 달아야 하는 국치일에 이런 글 나부랭이를 만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글을 쓰거나 말할 때는 대상을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은 과연 누구를 생각하고 쓴 것일까? ‘겁주고 속이기’를 그만해야 한다는 말의 주어가 군사력이 앞선 한국 정치인들이니 한국 사람이 읽겠다고 생각한 글임이 틀림없다.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이 이 글을 읽고 동의하게 될까’라는 허튼 질문을 해본다.

사실 양상훈 종업원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 사람의 마음이 아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 즉 ‘중일마’의 시대에 한가운데 있음을 절감한다. 조선일보가 한글로 된 일본 신문이란 말이 더욱 사무친다.

자신들이 박아놓은 쇠말뚝 관리를 소홀히 할 일본 극우 세력이 아니다. 그들이 일본은 한국이 침범하지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는 기사를 읽으며 어떤 표정을 지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양 종업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일본은 자나 깨나 윤석열 정권의 눈치를 보아야 할 처지다. 그렇다면 윤 정권의 잇따른 대일 굴종 외교 자세는 고도로 계산된 강자의 교만이라도 된다는 말일까?

기초 기술과 국제적인 평판도, 호감도 등을 제외하고 이미 일본보다 우월하게 된 나라의 대통령으로 자세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물론 일본이 앞섰다고 말한 양 종업원의 기준은 지극히 악의적이다. 평판도 나쁘고 호감도 받지 못하는 군사 강국 국민은 조금도 기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음양사들(여우)이 과거 세키가하라 전투와 조선침략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베어 죽여 신이 된 일본 무사 귀신의 미라에 쇠말뚝을 넣고 이것으로 한반도(범)의 허리 부분에 그 귀신을 박아넣아 한반도를 영원히 지배하려고 했다는 내용의 영화 '파묘'의 메인 포스터.
 

양 종업원의 장황한 일본 군사력에 대한 분석이 사실인지는 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일본의 자위대 체제가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장교 중심이고 전시에는 언제라도 병을 충원하기에 잠재적인 군사력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군사적으로 약한 나라가 침략 전쟁을 부인한 평화헌법을 고쳐 이른바 정상 국가로 가려는 군사적인 야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한국으로부터 침범당할 걱정을 해야 하는 일본이 우리 고유한 영토인 독도에 대해 끊임없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행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최근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전쟁 범죄를 부정하며 역사 왜곡을 일삼는 행태 역시 양 종업원이 걱정해 주는 나라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군사력이 뒤진 나라라면 전쟁 범죄를 철저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양 종업원은 섬세하게 국제 사회가 외면하지 않고 귀를 기울일 반일(反日)을 훈수한다. 합리적이고 사실에 부합하게 반일을 하란다. 조선일보가 바람을 잡으면 으레 생각 없이 뒤를 따르는 윤석열 정권의 허수아비 짓을 지켜볼 일이다.

조선일보 지면에 이어지는 ‘울분 사회’라는 김민철 논설위원 종업원의 글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한국인은 타인과 비교가 일상화되고, 경쟁이 심한 사회인 탓일까’라며 병 주고 약은 주지 않는 짓거리를 멈추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국정원 직원과 추악한 성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참으로 해괴한 집단이다. 매국 세력들이 침묵하는 국치일에 조선일보 폐간만이 국민과 국가를 살리는 길이라는 다짐을 굳게 새긴다.      < 이득우 언소주 정책위원(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단장) >

어찌하여 날더러 난을 일으켰다고 하느냐
왜놈한테 나라 팔아먹은 너희들이 반란자다

허락을 받았느냐고? 진리 펴는데 무슨 허락!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허락받고 치우나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동학농민혁명(1894~5)의 주역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이 봉기한 지 1년 만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사형을 당하기까지 모두 5차례 심문을 받았다. 당시 법무부 재판관과 일본 영사가 배석했고, 법무부 관료 서광범이 묻고 전봉준이 답했다.

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

답: 전봉준이다. (중략)

문: 왜 난을 일으켰느냐?

답: 어찌하여 날 보고 난을 일으켰다 하느냐? 난을 일으킨 것은 바로 왜놈에게 나라를 팔아먹고도 끄떡없는 부패한 너희 고관들 아니냐?

문: 관아를 부수고 민병을 일으켜 죄 없는 양민을 죽게 한 것이 난이 아니고 무엇인가?

답: 일어난 것은 난이 아니라 백성의 원성이다. 민병을 일으킨 것은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함이요, 백성의 삶에서 폭력을 제거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중략)

문: 그럼 너도 최시형(해월)에게서 봉기의 허락을 받았는가?

답: 진리를 펴는데 무슨 허락이 필요한가? 충의(忠義)란 본심(本心)이다. 그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면 그대는 그것을 허락을 받고 치우겠는가?

 

녹두장군 전봉준은 1894년 말 전북 순창군 피노리에 피신해 있다가 옛 부하인 김경천의 밀고로 붙잡혔다. 현재 이곳에는 '녹두장군 전봉준관'이 들어서 있다. 2017.1.28. [연합]
 

자유의 본질 꿰뚫은 동서의 두 혁명가와 친일파 이광수의 ‘강자 동일시’

나는 이 짧은 대화(?) 속에 ‘프레임 전쟁’이 있다고 본다. 비록 전봉준은 물리적 전쟁에선 져서 만 40에 세상을 떠났지만, 프레임 전쟁에서는 이겨서 지금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다.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는 비법은 사물을 풀뿌리 민초의 입장에서 보는 것, 가장 낮은 자의 관점을 잃지 않는 것,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춘원 이광수는 이와 180도 다르게 보았다. 그에게 ‘프레임 전쟁’은 없다. 차라리 대적할 수 없는 강한 상대방의 프레임 속으로, 그것도 아주 깊숙이 들어가 버리는 게 그의 ‘생존전략’이었다. 그는 1940년 9월 <매일신보>에서 “조선인은 전연 조선적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고/ 이 속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길이 있다고/ 조선 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 만큼 조선인은 일본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읊어댔다. 강자를 만나 도저히 싸울 수도, 도망갈 수도 없을 때는 차라리 강자 앞에 무릎 꿇고 ‘형님, 뭐든 할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쇼’하는 마인드, 한마디로, ‘강자 동일시’ 심리다. 그 뒤 80여 년이 흐른 지금, 서글프게도 우리는 개인 이광수가 아닌, 대통령 이광수를 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앞에 간과 쓸개까지 모두 내어줄 것처럼 행세하는 대통령 이광수! 그에게 까짓것, 독도 정도야 ‘껌값’ 아닐까? 만일 녹두장군이 ‘환생’하여 대통령 이광수와 독대한다면 과연 뭐라 일갈했을까?

당시 조선에서 혁명가로 ‘짧고 굵게’ 살고 간 전봉준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서 살았던 혁명가가 있었다. 쿠바의 독립 영웅, 시인이자 교육자인 호세 마르티(1853~1895)다. 그는 “억압받고 있는 나라에서 시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혁명전사가 되는 것뿐”이라며 기꺼이 투쟁에 나섰다. 오랫동안 쿠바를 지배, 수탈, 착취하던 스페인 제국주의에 맞서려는 결단! 전봉준의 일갈처럼 “그대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면 그것을 허락을 받고 치우겠는가?”하는 단호함이다. 또 호세 마르티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려 들지 않는 사람만이 자유를 위해 투쟁할 자격이 있다”고도 했다. 이는 또한 “난을 일으킨 것은 바로 왜놈에게 나라를 팔아먹고도 끄떡없는 부패한 너희 고관들이 아니냐?”며 호통을 치던 전봉준의 소신과 통한다. 130년 전 같은 지구 위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렇게도 마음이 통하는 이들이 목숨을 바쳐 참된 자유와 평등, 우애의 세상을 위해 ‘짧고도 굵은’ 삶을 살다 갔다. 새삼,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베르톨트 브레히트)을 느낀다.

국정관리 능력 자체가 없는 것 같은 ‘제왕 같은 보스’ 대통령

최근에 전봉준과 호세 마르티를 이토록 간절히 떠올리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강박적으로 외치는 2024년 8월의 윤석열 덕이다. (물론, 그의 ‘자유’는 우리가 아는 ‘자유’와 전혀 다르다. 그의 자유가 돈과 권력의 자유라면, 우리의 자유는 돈과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니까.)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을지훈련 및 제36회 국무회의’에서도 이렇게 발언했다.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해 폭력과 여론몰이, 선전·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민 분열을 꾀할 것이다. 이러한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처음에 나는 귀와 눈을 의심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 전두환 시절이나 50~60년 전 박정희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 때문! 찬찬히 행간을 읽어 보면, ‘전쟁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당시, 마치 ‘정의로운’ 검사인 것처럼 이미지 관리를 잘한 덕에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이가 불과 3년도 못 돼 ‘제왕 같은 보스’로서 국정을 주무르다니,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악몽이 따로 없다!

게다가 대통령의 눈에는 사실이나 진실도 “허위 정보와 가짜뉴스”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대통령 부부나 국정에 대한 비평 내지 비판은 ‘공격’으로 느껴지는 걸 넘어 “북한의 회색지대 도발”로 인식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국정관리 능력 자체가 검토 대상이다. 큰일이다!

통치 안정성 해치는 정권, 자본은 언제까지 용인할까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이날 기념식은 광복회가 불참해 반쪽이 됐다. 2024.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이었던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언론조차 이미 ‘레임덕’ 같은 용어를 써가며 ‘정치적 거리두기’를 한다. 2024년 벽두의 대통령 신년사에 대해서도 조‧중‧동은 (기존의 ‘우호적’ 분위기와는 달리) 이구동성으로 “아쉽다”고 했다. 아마 4.10 총선을 앞둔 훈수였을 터! 그 뒤 조선일보는 장기적 안목 없이 즉흥적으로 행해지는 대통령실 인사에 대해 “정상이 아니”라며 꼬집었고, (검찰 조사를 받은 건지 검찰을 조사한 건지 모를 정도로 모호했던) 김건희 명품백 무혐의 결정을 앞두고 “받은 것 자체가 부적절”이라 쏘아댔다. 중앙일보는 대통령이 ‘얼차려 사망’ 훈련병 영결식 날 술자리를 가진 걸 두고 “진정한 보수라면 이럴 수 있나”며 질타했고, 동아일보도 “오염수 우려, 괴담으로만 보면 안 돼”라고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작년 8월 이후 꼬박 1년간 일본은 윤 정부의 동의 아래 후쿠시마 핵폐수를 매번 8천 톤 가까이, 모두 8차례나 바다에 방류했다. 방사능투성이 바닷물은 돌고 돌다 결국 우리에게도 올 것이다.) 이제 그들도 대통령을 슬슬 ‘버리는’ 분위기 내지 ‘헤어질 결심’인 듯!

냉정히 보건대, 재벌과 파트너인 보수언론은 (마치 미국이 그러하듯) 한국 정부가 ‘통치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지속 가능한 축적’을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다. 자본의 목적은 누가 뭐래도 이윤 획득인데, 그러려면 ‘세상이 조용해야’ 한다. 이런 통치의 안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면 자본은 정권을 가차 없이 ‘버린다.’ 솔직히 보자면, 그 정권이 국힘당이건 민주당이건 큰 차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국힘당 계열이 더 확실하겠지만, 민주당 정권조차 자본의 ‘지속 가능한 축적’에 정면으로 도발하지 않고 통치의 안정성만 유지해 준다면 ‘일단, 오케이’다. 이는 이미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확실히’ 증명된 바다. 물론, 보수언론과 재벌들, 그리고 정치 검찰과 정치 경찰, 나아가 보수 학계 및 보수 지식인들은 ‘민주당’ 권력을 길들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그 수단은 명백히 돈과 정보, 그리고 협박이다.

정치 검사의 심문에 맞선 ‘반국가세력’의 ‘프레임 전쟁’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앞서 살핀, 녹두장군 전봉준의 심문 과정을 ‘오늘에 되살려’ 이렇게 각색하고픈 충동을 강렬히 느낀다.

문: 너희는 누구냐?

답: 너들이 말한 “반국가세력”이다. (중략)

문: 왜 “암약”을 하고 있느냐?

답: 어찌하여 우리더러 “암약”을 한다 하느냐? “암약”을 하는 건 바로 왜놈에게 나라를 팔아먹고도 끄떡없는 부패한 너희 고관들, 그리고 수사조작, 증거조작, 고발사주, 조사농단, 마약밀수, 역사왜곡 따위에 대해 전혀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너희 정치 검사들 아니냐?

문: 허위 정보와 가짜뉴스, 사이버 공격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국민의 정신을 혼란하게 만드는 게 ‘암약’이 아니고 무엇인가?

답: 자유도, 민주주의도, 역사까지도 망가뜨려 국민을 혼란하게 만든 건 우리가 아니라 바로 너희 ‘가짜 한국인들’이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건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함이요, 국민들 삶의 질과 민주주의를 고양하고자 할 따름이다. (중략)

문: 그럼 너희들도 최시형(해월)에게서 촛불 봉기의 허락을 받았는가?

답: 민주주의를 하자는데 무슨 허락이 필요한가? 정의(正義)란 본심(本心)이다. 당신 발등에 똥이 떨어졌다면 당신은 그것을 허락을 받고 치우겠는가?

문: 아직 할 말이 남았는가?

답: 제발 정신 좀 차려서, 세계 공멸 앞당길 ‘전쟁 준비’ 같은 건 않으면 쓰것다! 쿠바의 호세 마르티 선생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려 들지 않는 사람만이 자유를 말할 자격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점점 강해지는 자본의 지배력, 대통령 이광수와 돌아온 아베

물론, 이런 식으로 전봉준처럼 깡다구 있게 ‘프레임 전쟁’을 압도하기는 쉽지 않다. 돈, 정보, 권력, 네트워크, 협박 등을 활용한 자본의 지배력(길들이기 전략)이 너무나 거대하고 교묘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돈(화폐 권력) 앞에 무너진다. 돈이 아니라도 ‘발목’이 잡힌 경우도 많다. 지배권력(자본과 정치의 동맹)은 정보력을 이용해 평소에 요주의 인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른바 ‘검찰 캐비닛’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기에 선거 직전엔 체 게바라 같은 혁명가처럼 세상을 바꾸겠다고 목소리 높인 사람들도 막상 당선되고 나면 ‘슬슬 알아서 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가 임기가 끝나고 나면 한가하게 언론에 나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식의 한담이나 나누기 일쑤다. 나는 일제가 남기고 간 ‘밀정들’이 죽(이)도록 밉지만, 이런 식의 ‘가짜 혁명가’는 더 밉다. 그래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공부가 필요하다.

특히, 1945년 8월 광복 당시 조선의 마지막 일제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이런 말을 하고 떠났다 한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이미 이 땅에 대통령 이광수도 돌아왔고 아베 노부유키도 무수히 많이 돌아온 듯하다. 아, 식민지 노예 교육! 오호, 통재라!

사태의 진실을 파악하기가 이래서 힘들게 되었는데, 하물며 본질보다 현상에만 눈이 곧잘 쏠리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자본의 지배력이나 자본 독재의 실상이 잘 보일 리 없다. 설사 본인이 직접 피해당사자가 되는 불행한 시간이 닥쳐 어렴풋이나마 자본 독재의 실상이 보여도, 자본의 지배력에 맞서 싸울 능력도 기운도 의지도 대체로 약하다. 그래서 대다수는 기껏 ‘떡고물’이나 좀 더 많이 챙기려는 분배투쟁에만 목숨을 걸 뿐, 근본 문제를 뿌리 뽑으려는 의지는 약하다. 그러나 좌절과 포기는 영원한 패배일 뿐!

 

24일 촛불대행진을 벌이는 시민들이 대통령실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촛불행동TV 화면 갈무리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끊임없이 균열을 내며 행진하자

따라서 스페인 카탈루냐오베르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로라 로스 선생의 말(<녹색평론> 186호, ‘지역의 자치, 왜 중요한가’)처럼 “사람들은 비록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는 없을지라도 거기에 균열을 낼 수 있다.” 그리고 “(균열을 내는 식으로) 성취감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비관주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렇다. 반인간, 반민주, 반생명 체제의 틈새를 뚫고 부단히 균열을 냄으로써 우리는 성취감과 효능감을 느끼게 된다.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한 행진이다!

마치 (전봉준과 비슷하게 꼬박 40년만 살았던) 세계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가 쿠바 혁명에 성공한 뒤 혁명 동지 피델 카스트로를 떠날 때 했던,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란 말처럼, 우리 역시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 결코 민주주의 행진을 포기할 순 없다. 세상이 아무리 비관적이고 정치가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오늘 우리가 여기저기 뿌린 민주주의의 씨앗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이미 딱딱해진 땅조차 균열을 내며 소록소록 새싹을 틔우게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