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PEN문학 클럽 세계 한글작가대회를 다녀와서

● 칼럼 2026. 10. 7. 04:4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윤형복 칼럼] 

국제 PEN문학 클럽 세계 한글작가대회를 다녀와서  

 

윤형복 ISM대표. CKCB-TV.PD 

 

필자는 대학생 시절 부부 유명 작가분(문학인명사전 이름 등재) 댁 자녀 3명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였다. 그 인연으로 당대에 중학교 국어교과서 ‘사반의 십자가’ 저자이신 김동리 박사님 (중앙대 예대 학장. 월간 한국문학 발행인. 한국예술원 원장)과 고등학교 국어교과서 작품 저자이신 문덕수시인 (홍대 문리대교수. 월간 시문학 주간) 등 당시 유명 작가분들을 뵙고 작품 창작에 대한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대학 3학년 때 김동리 박사님의 서문으로 첫 저서를 출판한 이래 지금까지 필자는 15권의 책을 집필하고 출판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대학원 재학시절에는 대학원신문 편집국장을 하면서 글쓰고 사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에 실습하고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기도 하였고 지금까지 100여 국가를 방문하면서 글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금번에 필자는 국제 PEN문학 한국본부에서 주최하고 문화관광체육부의 후원으로 개최되는 제12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 캐나다 작가의 신분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국제 PEN문학클럽은 세계 147개국의 작가들이 가입되어 있는 국제문학단체이다. 국제 PEN문학 한국본부에서 주최한 세계한글작가대회에는 불가리아, 아제르바이젠, 영국, 러시아, 푸에르토리코, 일본, 인도, 중국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각국에서 온 청년대학생들도 참여하였다. 이들 각국 현지인들에게는 수료증까지 수여하였다. 또한 세계각국에서 등단한 동포작가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해외동포작가들 숙소는 여의도 켄싱턴호텔이었고 호텔에서 세종대, 세종대에서 호텔까지는 셔틀버스를 운영하여서 불편함 없이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기조강연자 중에는 조지은 영국옥스퍼드대학교 교수가 있었다. 그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브리테니카 사전 편집위원이었다. 그 교수 덕분에 한국 단어 40개가 사전에 한국말 그대로 등재되는 쾌거 소식에 참석작가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알브레히 후베 독일 본대학교 교수는 독일인으로서 한글학자인데 한국말도 잘 하였다. 데이비드 맥켄 미국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소장은 미국인으로서 한글문학을 세계에 전파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어서 이분들의 강연에서 많은 박수갈채도 있었다. 김주혜 미국소설가는 톨스토이문학상 수상자인데 그는 현재 영국 BBC방송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에 영국 BBC방송 스탭진들과 동행하여 모든 진행 일정을 촬영하여 갔다. 영국 BBC방송에서 방영할 계획이니 대단한 대회임에 틀림이 없다.

 

며칠간 진행되는 대회는 각 분야에서 유명인들이 강연을 하면서 AI시대 미래세대 한글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대회에서는 미래 세대 한글교육의 방향과 인공지능 시대 한글문학의 역할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김진명 소설가는 작품 『세종의 나라』를 통해 한글과 한국문학의 관계를 조명했고, 이승하 시인은 디아스포라 환경에서 한글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발표했다. ‘AI 시대, 한글문학이 나아갈 길’ 세션에서는 인공지능이 창작과 번역, 문학교육에 미칠 영향을 논의했다. 문학평론가와 대학 교수들은 기술 발전 속에서도 인간의 경험과 상상력, 언어의 고유성이 문학의 핵심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글문학의 역사와 세계적 확산도 주요 주제로 다뤄졌다. 한글학자 김슬옹 원장은 『월인천강지곡』을 통해 한글문학의 뿌리를 살폈고,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한국어 교사 아비딘은 한글로 표기된 찌아찌아 전설 · 설화집의 의미를 소개했다. 대회 마지막에는 국내 주요 문학단체들이 한국문학 발전을 위한 역할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으며, 참가자들은 경복궁과 서울 북촌을 둘러보는 문학기행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윤항중장군 (예비역육군소장,대한민국 호국총연합회회장)과 함께 윤형복 목사(오른쪽)
이기남 이사장(93.훈민정음 세계화재단,.원암문화재단).과 필자.

 

김홍신 작가.(국제PEN 세계작가대회 조직위원장,.국제PEN 한국본부이사)와 필자(왼쪽).

 

 

 

[편집인 칼럼- 한마당]   호르무즈 파병론, 실망스럽고 불안하며 어리석은 일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국민주권정부가

 국제적 · 외교적 파장과 국가의 안위, 

 국민적 자존심과 명분을 걸만한 대상이라고 판단하는가"

 

시민사회단체들의 주한 미국 대사관 앞 호르무즈 파병반대 시위(연합]

 

한국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못이겨 전쟁중인 호르무스 해협에 국군파병을 적극 검토해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불안하고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아닌가.

이례적으로 우방인 이스라엘의 만행을 해적행위라고 비난하는 결기를 보여 선진외교라는 평가도 받았던 이재명 정부가 설마 그런 위험한 결정을 내리겠느냐는 의구심이 자꾸만 커져 불신감으로 변하는 것은, 청와대와 국방부의 모호한 태도 때문이다. 

보도가 사실일 개연성이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호르무즈 파병의 예민함과 위험성을 모를 리 없는 이재명 정부가 긍정적 검토로 돌아선 데는 ‘동맹협력’을 강압하는 미국측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얼마나 집요하고 전방위적이며 위협적인지를 암시한다.  최근의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합 군사훈련을 트럼프 대통령이 축소-중단 시키자 당황한 데서도 압박강도의 일단이 감지된다. 역대 민주정부가 남북대화를 위해 중단하자고 제안하곤 했던 훈련이었는 데도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국가이익과 국민생명을 지켜야할 책임과 의무(責務)가 지상명제이며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다. 거센 외압에 시달려 고육책을 찾는 고충은 이해못할 바 아니나, 미국의 압력이 국민과 국가에 대한 책무에 우선할 수는 없다.

코앞에 닥친 정권의 득실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국가의 안위가 최우선임을 명심하여, 결코 시류에 영합하거나 줏대없는 결정으로 후회나 후유증을 자초하지 않을 거시적이고 강단있는 리더십과 대처가 절실한 시점이다.

벌써 시민사회가 파병 강력 반대를 들고나오는 것은 국민과 국가의 자존과 안위에 심각한 불안요소라고 판단한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왜 호르무즈 파병이 실망스럽고 불안하며 현명하지 못한 실책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지, 파병을 반대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국군 파병의 득실을 따져보면 그 불합리와 비현실적 근거가 명확해진다.

한국정부가 파병 검토의 명분으로 거론하는 것은 통상 · 안보 · 대북현안 등의 한미공조와 한반도 대비태세, 핵심적 원유 공급루트 확보에 기여 등으로, 혈맹인 미국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파병으로 이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고 국익으로 돌아올 것인가.

 

먼저, 미국 트럼프의 압박에 한미공조 악영향 등 외교적 손실을 피하기 위해 국군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설득논리다.  쉽게 풀어 말하면 트럼프 강압에 순종해 전쟁에 동참하면 특별동맹 예우를 받게되어 통상압력이 누그러지고, 전작권 쉽게 넘겨주며, 우라늄 농축이나 핵잠 건조 순탄해지고, 북미대화에 한국을 주역으로 참여시켜 주지 않겠느냐는 등의 판단이고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일방적이고 순진한 희망이고 기대일 뿐이다. 전혀 언질도 보장도 없는 추정이고 트럼프를 과신(過信) 내지는 과대평가한 맹종외교의 실책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트럼프는 개별 현안에 철저한 자국위주 시나리오와 득실에 따라 대응한다. 설령 밀약을 통해 트럼프가 약속했다손 치더라도, 확실한 이행을 확신,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에, 과연 그런 위태로운 거래에 국제적·외교적 파장과 국가의 안위, 국민적 자존심과 명분을 걸만한 대상이냐는 것이 외교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협박에 굴복해 군대를 보내면 좌충우돌 트럼프가 대만족한 나머지 잠시 상찬(賞讚)의 말을 떠벌일지는 모른다. 허나 그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근성으로 끝없이 깔아뭉개며 무시하고 벗겨먹는 조폭적 스타일이 그간의 행적에서 증명된 바 있다.

‘독불광인’(獨不狂人)으로 지탄받는 트럼프의 잠시 쾌감 외에 거시적인 외교적 이득은 희망고문으로 남을 뿐, 오히려 장기적으로 엄청난 부담과 후유증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지닌다.

한-미 간에 잠시 허니문은 있을지 모르나, 한국은 아무리 비전투 영역일지라도 병력과 함정파견을 하게 되면 이란이 규정하는 전쟁 당사자이고 적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참전의 여파가 일시적인 득(得)보다 국내외-국제적 악영향과 불이익과 위험스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명약관화, 허다하다.

명백한 침략전쟁으로 약소국을 두들겨 팼다가 궁지에 빠진 미국과 트럼프를 위해 방패막이 뒷처리에 한국이 소모되고 말려들어 국군 젊은 장병들이 자칫 개죽음 당할 이유를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겠는가.

 

왜 서방의 미국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협박과 요청을 모두 묵살하는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캐나다, 호주 등 유럽과 서방 각국은 한국보다 미국이 더 중시하는 동맹들이다. 그들도 득실을 따져 전혀 득이 되지 않기에 외면하고 소극적인 것이다.

역시 미국이 한국보다 중시하는 동맹인 일본은 민망할 정도로 미국을 적극 추종하는 나라다. 평화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격무기까지 수출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치면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요구에 헌법적 제약을 들먹이며 단호히 거절했다.

우리보다 한 단계 위 동맹국들이 대부분 안면몰수하는 형국인데, 어찌 한국만 마치 최고의 동맹노릇을 혼자 다하듯이 짝사랑이고 새가슴인가 말이다. 여전히 탈피하지 못하는 한국외교의 대미종속 악폐요, 후진적 사대외교 철학에서 비롯된 숭미(崇美)와 종미(從美)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트럼프가 연속 한국만을 겨냥해 때리는 것은 그 ‘약한 가슴’을 간파한 술책이라고 봐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압력에 굴복한다는 것은 ‘굴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 주권국가 한국이 미국에 굴종해 불의한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는가. 정권에 말못할 약점이 있고 트럼프에게 책잡힐 만한 구린데가 있다거나, 전작권 조차 맡겨놓은 종속국이니 원래 그런 수준의 나라라는 국제사회의 냉소와 멸시를 자초하고 국민적 자존심이 망가질 것을 감내할 작정이라면 혹시 모른다.

 

트럼프가 한국을 진정한 동맹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호구로 볼 뿐인가도 생각해 보자.

조변석개(朝變夕改)의 인물인 트럼트의 그간 언동을 보면, 자기가 필요할 때, 큰 득을 봤을 때만 진정한 동맹이라고 떠벌일 뿐, 전혀 참 동맹이나 전통 혈맹으로 생각하고 예우한다는 정황은 찾기가 힘들다.

FTA 일방 파기하고 관세 공갈로 3500억 달러를 뜯어냈다. 공장 지어주러 간 한국인 300명을 범죄자 취급해 감금했다. 반도체 미국공장 지으라 압박이 끈질기다. 마가(MAGA)를 이용해 선거부정과 반정부를 외치는 극우 뒷배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상 처음 무궁화 대훈장을 주고 신라금관 선물을 안기자 파안대소하며 가장 친한 척했고, 한국의 거액투자에 기뻐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관세전쟁에, 주한미군 방위비 압박, 남북대화, 어느 것 하나 ‘혈맹’의 예우를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이재명에 실망감을 표하며 “김정은이 가장 좋아하는 지도자”라는 이율배반의 언급을 반복하고 있지 않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는 약자와 약소국을 짓밟아 약탈하고 덤터기 씌울 대상으로 보는 냉혹한 조폭 권력적 사업가다. 이란전쟁도 그렇지만, 최근의 베네수엘라, 그리고 캐나다와 관계를 보라.  국제 외교무대에서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 끝에 쇠락한 영국의 블레어 정권도 타산지석이다.

이재명 정권이 ‘트럼프의 푸들’이 되어 파병하면 미국이 특별동맹으로 예우하며 한미현안을 특별히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는 한마디로 헛된 꿈에 그칠 것이라는 이야기다. 트럼프는 절대 그럴 위인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종속국 이미지만 강화할 뿐더러, 국내 분란은 물론 국민적 자존심이 엉망진창이 되어 정권 반감만 커질 악재임에 틀림없다.

 

전혀 명분도 없는 일이다.

이란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제법을 무시한 주권국 침략과 무차별 폭격, 비인도적 살상으로 발발했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래서 국제사회가 비난하고 서방동맹도 협조를 꺼린다. 그런데 헌법에도 명백히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대한민국이, 더구나 셀프 쿠데타를 제압하고 빛의 혁명으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반헌법적 침략전쟁을 거들고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의 위헌적 모순이며 낯뜨거운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분별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끼어드는 바람에 러시아를 적으로 만들어 기업과 경제, 국제외교에, 특히 남북관계에 얼마나 큰 후유증이 지속되는지를 모를 바도 아니다.

한국이 이란을 적대하고 중동분쟁에 개입해 한쪽 편을 들 때, 원유수급을 비롯한 경제-무역파장과 국제적 곤경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정권 지지기반에 이상기류가 경종을 발하고 있는데, 명분도 실리도 없는 파병문제로 갈라지고 대립할 국내정치와 민심의 분열을 자초하며 기름 붓고 부채질하겠다는 것인지, 무엇보다 청년층의 이반이 심각한 상황에, 젊은 장병들을 사지로 내몰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을 어찌 그리 쉽게 ‘긍정 검토’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우리가 국민주권정부에 바라는 것은, 설령 현 정권내에 다 오를 수 없는 높은 산을 향한 작은 발걸음에 불과할 지라도, ‘한국 패싱’을 걱정하는 대미 굴종과 숭미일변도 눈치외교 구태에서 탈피할 용기있는 첫걸음을 내딛으라는 것이다.

대국 의존과 예속적인 사대의식을 제발 떨쳐버리고, 스스로 국제사회 중심적, 다자적인 위상을 높여 ‘한국 퍼스트’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전력투구하라는 국민적 여망이고 독려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반만년 배달겨레의 ‘홍익인간’ 민족혼을 되새겨 온세상에 웅비하고 펼쳐나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재명 정부는 민족 자존과 역동적인 국민저력을 바탕으로, 근래 언필칭 자랑하고 자부하는 국력과 국민의 수준에 걸맞게 대범한 자존 자주외교에 진력해 나갈 시대적 사명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습과 구태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대한민국이 진정한 자주독립국이요 평화를 사랑하는 선진 문화대국임을 만방에 각인시키도록 노심초사, 매진해 나가기를 기대하며 거듭 당부하고자 한다. 

정부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한다면, 국내외 동포들은 든든한 자부심과 함께 언제든 뜨거운 응원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잊지말기 바란다.                         < 편집인 >

 

 

[시국 논단- 한마당 칼럼] 

 

"배부른 민주진보의 고질병, 민주당 내분이 위험하다"

 

 

12.3 내란청산이 미결상태로 체한 가슴처럼 답답한 가운데 6.3 선거를 전후한 민주당내 자중지란이 선거 후, 그리고 당권 전초전이 격화하면서 위험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정당이 비판도 잡음도 없이 고요하고 일사불란하길 기대하는 건 아니다. 당권잡기 권력투쟁도 당연히 열풍에 휩싸일 수 있다.

그러나 정책과 민생, 개혁 논쟁이 아닌 감정과 모욕의 막가파식 쟁투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더구나 외부를 향한 것이 아닌 내부, 집안 식구끼리 반대세력을 죽여 매장해야 할 적군처럼 언동의 총검을 마구 휘두르는 것은, 금도를 넘어선 파시스트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결국은 제 발등 찍는 짓이고 모두가 깊은 내상을 입을 게 뻔한데도, 첨예한 당내 분란에 대리격인 안팎의 갈라치기 세력들까지 끼어들어 준동하면서 상태가 중증으로 치닫고 있다. “문조털래유”니 “한강새똥돼주길” 운운, 결코 진영내에서는 입에 담지 말았어야 할 천박한 모멸과 배제의 조어까지 만들어 너도나도 부추기며 막무가내 내부총질로 서로의 상처를 들쑤시는 모양새다.

 

급기야 당도 대통령도 지지율이 폭락하고 내란당에도 역전됐다는 소식이 지지자들에게 충격과 실망을 더해준다.

 

그런데 갈수록 태산이다. 우려와 질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리전과 음모설, 공작설까지 나돌며 진영내전으로 확산될 조짐이라는 것이다.

 

소위 신-구와 주류-비주류의 권력 다툼, 중도보수와 개혁그룹의 주도권 싸움, 민주본류와 영입통합파의 갈등 등이 일거에 분출하며 이합집산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특이한 것은 이른바 ‘문파’ 비판과 배제 움직임이 이제는 유시민을 고리로 노무현까지 제물로 삼으려는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분석에, 검찰과 사법카르텔에 포획된 개혁저항 세력의 은밀한 뒷배 암약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단순히 당권 쟁탈의 힘겨루기를 넘어선 권력과 개혁의 승패를 건 대결이라는 시각까지 있다.

 

내란 시국과 돌아온 권력 앞에 너도나도 집결했던 자들이 차츰 이기적 욕망과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승자의 저주요 권력에 취한 진보의 분열폭망 고질병이다.

 

민주와 진보의 오래고 소중한 인적자산들을 하루 아침에 경원하고 척결대상으로 짓밟는 자칭 민주진보 세력이 정상인가?

자당 출신 대통령들과 민주인사, 진보의 역군들을 모욕 배척하는 정당이 민주당 사람들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풍찬노숙 동고동락하던 동지들을 배부르자 쫓아내고 외면하는 자들이니, 제정신도 도리도 아니다.

이념적·화학적 결집과 정체성을 경시한 정략적 통합과 확장의 부작용은 아니겠는가.

 

모처럼 다수여당으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의 분열과 망조가 가시화, 가속화 하는 것 같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피땀과 눈물도 자부도, 고유의 색깔도 비전도 잃고, 내란의 추억을 뒤로한 채 그저 권력의 진흙탕을 헤매는 중이다.

 

내분격화에 부화뇌동 세력까지 이전투구의 뒤 끝에, 금세 다가 올 총선과 대선, 빼앗길 정권의 말로도 예고하고 있어 민주 시민들은 화가 치밀 뿐이다.

민주진보 세력은 다시 횃불을 들고 삭풍을 향해 나아가야 하나?.               < 편집인 >

[시국 논단]

선관위가 기름을 부으며 매국 적폐들의 ‘불길한’ 불길이 확산의 조짐

독재망령 젖어 민주주의 파괴하고 자주평화 훼방의 노림수 암적존재

 

민주진보 내홍과 분열에 빠져 자중지란의 내부총질에 정신 팔 때 인지

무뎌진 칼 갈아 발본쇄신 사회대개혁 명운 걸어야, 전망도 시간도 없다

 

 

민주주의의 축제인 선거판을 반민주, 반헌법 세력의 부활축제로 만든 6.3 선거 오염의 ‘원흉’들 가운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면 과녁으로 등극했다. 축제를 원만하게 운영해 깔끔히 마무리해야 할 본분을 망각하고 되레 재를 뿌려 민주주의를 위협한 때문이다.

 

사상 유례없는 투표지 부족 사태는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국민 참정권을 침해하여 반헌법적 행위를 한 것이니, 탄핵에 준하는 징벌은 불가피 하다. 의도적인 선거 망치기 공작은 아니었는지, 내란세력과의 연계설 등 불거진 의혹과 진상을 명명백백히 규명해 책임을 묻고, 엄정한 시정조치를 단행해 절대 재발이 없게 단도리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선거가 불씨를 살리고, 선관위가 기름을 부으며 매국 적폐들의 ‘불길한’ 불길이 확산의 조짐을 보이는 점이다. 6.3 선거를 통해 되살아난 수구 적폐 극우 좀비들이, 때를 놓칠세라 기세를 올리고 있다. 예상하고 우려한 대로, 아니 예상보다 더 빨리 더 거세게 저들의 난잡과 난동이 시작된 감이 든다. 젊은이들의 참정권 침해 규탄시위를 기화로 선거부정 재선거를 내란당이 부추기고, 총리까지 지낸 넋빠진 자, 역사팔이 장똘에 미국 극우잡배도 끼어들어 설치는 난장판이 가관이다.

 

이 또한 내란과 적폐무리를 철저히 뿌리뽑지 못한 실패의 후유증이고 이른바 ‘집단지성’에 기댄 방심의 업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바로 대통령과 민주진영의 지지율 급락 소식이 말해준다.

 

선거를 빌미로 ‘윤 어게인’과 사대극우(事大極右)를 선전 선동하는 저들의 노림수는 뻔하다. 독재망령에 젖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자주 평화를 훼방하는 것 외에 무슨 선의가 있는가. 민주주의의 적이고, 공동선의 암적 존재이며 평화를 깨는 사회악일 뿐이라는 말이 과한가.

 

우리 공동체가 지켜야 할 민주 정의 평화의 가치와 비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6.3 선거와 수구의 준동이 웅변해주고 있다. 저들의 기세를 방치 방관했다가 뒤통수 맞고 하루아침에 역사가 뒷걸음 쳐 다시 암흑천지가 될지도 모른다. 특검에 나온 내란수괴 윤석열이 어찌 더 기고만장 해졌겠는가.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와 눈물을 먹고 자란다!”. 역사의 진보는 힘드나 퇴행은 순식간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정의와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럭저럭 정의가 바로 서나?, 유야무야 평화가 오던가?. 방심했다 뒤집히고 어이없이 패퇴 낙담하는 어리석음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위기감이 업습할 때, 늦었다고 조바심 날 때가 적기다. 6.3 선거가 내란세력에 면죄부를 줬다고 패배감을 퍼뜨리지 말라, 오히려 확실히 척결하라는 준엄한 민의의 경고다. 조작 검찰부터 내란 법원까지 신속히 도려내라! 내란세력 척결과 극우박멸에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보지 않으면 진짜 되치기 당할 위기가 온다.

 

지금 내홍과 분열에 빠져 자중지란의 내부총질에 정신을 팔 때가 아니다. 민주 진보는 지금이 바로 똘똘뭉쳐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권투중래(捲土重來)를 각오할 때다.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고, 발본쇄신과 사회대개혁에 명운을 걸지 않으면 전망이 없다. 시간도 없다. 2년 뒤 총선, 4년 뒤 대선이다.

 

개혁과 청산에 피로니 역풍이 두려운가, 차라리 그만 두는 게 낫다. 허울좋은 통합, 적당한 미봉과 타협으로 선한 척, 자기만족의 희망고문은 자멸의 길일 뿐이다! 그럴려면 아예 포기하고 일찌감치 백기를 들어 굴종을 선언하라.

그게 아니라면, 진정 급박하고 절실하다면, 가죽을 벗기고 뼈를 깎는 결단으로 무뎌진 칼을 갈아 전광석화의 돌진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실로 마지막 물실호기(勿失好機)임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