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시론] 6.3 선거, 왜 떨떠름한 결말인가

● 칼럼 2026. 6. 5. 23:4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정치 시론 - 한마당]        6.3 선거, 왜 떨떠름한 결말인가

 

이기고도 진 것 같은 선거, 그 결말의 이유는...

 

내란청산 실패와, 소위 '보수'를 얕본 자만과 무대책
진영내 분란-이전투구, 무뇌 언론의 나팔수 역할 탓

 

 

6.3 선거는 민주 진보세력이 이기고도 웃지 못하고 있다. 뼈아프다.

서울 탈환은 물거품이 됐고, 윤 어게인을 외친 내란적폐들이 줄줄이 소생했다.

뿌리깊고 사악한 수구보수를 얕보며 자만에 빠진 고질병 재발의 업보다.

선거 막바지부터 조짐이 보였지만, 더욱 기고만장 설쳐댈 적폐무리의 난동과 난잡을 어떻게 지켜볼 것인가, 앞으로가 참으로 심란, 착잡, 걱정이다.

 

민주 진보진영의 이번 선거가 이기고도 진 빛바랜 승리가 된 이유는, 저마다 제각각 지적하겠지만 나는 요약해서 크게 4가지를 꼽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내란청산 실패, ▲보수를 얕본 자만과 무대책, ▲진영내 분란과 이전투구, 그리고 ▲언론의 기계적 공정과 경마보도 등 4가지다.

 

 

먼저, 나는 내란청산의 지지부진이 국민정신과 선거판을 혼란시킨 가장 큰 원흉이라고 본다.

좌절과 미봉은 악순환을 부른다는 역사의 교훈은 이번에도 입증됐다.

위세만 요란하다 용두사미로 끝난 특검들은 내란세력을 발본 단죄하지 못해 종범과 동조자들 선전 선동자들, 심지어 내란중요임무 종사자들이 다시 고개 쳐들고 활개치는 걸 막지 못했다. 내란 편승세력이라 할 검찰 카르텔 박멸이나 처벌도 미봉에 그쳤고, 특히나 사법부 탄핵도, 법원개혁도 변죽만 울리는 바람에 내란범들 징벌 또한 미흡해 ‘국사범’ 내란에 대한 인식을 희석시키고 말았다. 민주당은 내란세력 청산과 심판선거라고 주장했지만, 중도와 보수적 유권자들은 내란 인식의 희박 내지는 부재상태로 “‘이재명 독주’ 견제”라는 내란세력의 물타기 전략에 그루밍 휩쓸려갔다. 적어도 대표적인 추경호나 이진숙 김태규, 김현태 같은 자, 조희대와 지귀연, 심우정 같은 인물을 확실하게 단죄 처벌했으면…, 그에 앞서 박근혜나 이명박 전두환 같은 자들에게 중벌을 면해준 특혜만이라도 없었다면, 선거판이 그처럼 민주를 위협하는 반민주와 반헌법, 부정·부패범들까지 설치는 혼돈에 빠졌겠는가!.

이제라도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헌정을 유린해 역사를 퇴행시킨 악행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 뿌리를 뽑는 발본색원, 경중을 불문한 철처한 단죄로 ‘삼족을 멸한’ 징벌에 맞먹을 정도의 “그야말로 패가망신, 다시는 재발이 없게 만들어야” 사회정의도, 민족 정기도, 역사정의도 바로 세울 수 있음을 되새김 입증해 주었다고 본다.

 

 

보수는 만만치 않다. 그들은 정치모략과 술수공작에 능한 세력이다. 얕보다 큰 코 다친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일제 부역부터 해방이후 70여년을 지배세력으로 뿌리박은 독버섯의 역사와 저력을 간과해선 안된다. 지지율 70%를 웃돈 문재인 직후 이재명은 보수를 참칭한 윤석열에 0.73%차로 패했다. 지난 대선에선 내란과 탄핵 정국임에도 내란범을 옹호한 김문수가 무려 41.15%나 득표했고, 이재명은 진보후보로는 역대 최고치인 49.42%로 당선됐다 하나, 김문수와 이준석(8.34%)을 합한 보수전체(49.49%p)에는 미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소위 보수가 지닌 넓고 깊은 저변과 영향력의 증거들이다.

거기에 윤석열이 웅변해 주었듯이 이른바 보수는 0.73%에 분루한 국민들, 정치적 반대세력과 통합 등은 무시하고 폭주하는 독재 후예들임이 박근혜 이병박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명박이 종편을 만들어 언론계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작업을 시작한 것, 윤석열이 사회정의를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 검찰을 사병조직으로 유린 악용한 일, 뉴라이트들을 민족 정체성과 역사관련 단체에 대거 투입해 국가의 혼과 맥을 끊으려 한 것 등등 그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과 사익에 집착한다. 이승만 학당이니 리박스쿨 등으로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들을 교육, 세뇌하고 수구선전 선동으로 물들인 성과가 20~30대의 극우화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벨트가 수구의 성채가 되어 보수에 몰표를 주는 것이나, 오세훈 측이 마타도어 댓글부대로, 박완수가 공무원까지 동원해 AI딥페이크로 상대후보를 폄훼했다는 사실, 한동훈의 떳다방식 선거운동과 위장전입, 유사사무소 운영 의혹 등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들은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덮고 뭉개기 악습을 잘 알고, 악용하는 것이다.

 

 

민주-혁신당의 합당논란에서 불거진 당내 분란을 출발점으로 일부 영혼없는 진보 가면을 쓴 자들의 당권선점 노림수가 이전투구 양상으로 번지면서 이번 선거에서 민주 진보세력의 분열과 혼선을 초래한 사실 또한 수구보수에 어부지리를 안겼다고 본다. 보수는 이권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헛말이 아닌 것이다.

전장에서 아군끼리 다투고 아군 뒤에서 총질을 해대는데 적을 무찔러 이긴다면 기적이나 적의 자폭 외에 다른 설명이 가능한가. 내란 뒤끝인데다 이재명 정권 인기로 압승할 거라는 여론조사와 추정 자만에 배가 부른 나머지, 눈 앞 선거의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팔려 당권경쟁의 전초전으로 활용하려던 세력이 판을 흐렸다. 그들은 수구적 언론과 일부 유튜버들의 부채질을 즐기며 당내 경선 과정에서, 또한 선거국면에서 사사건건 아군에 시비를 걸었다. 총리까지 부회뇌동하여 당권도전을 공식화하며 선거전선을 흐트렸다.

전북지사 선거에서 김관영의 최고위 결정 불복 무소속 출마는 당 분열상 노출과 당력을 엉뚱한 곳에 허비케 한 대표적 사례로, 평택을 지역은 진보의 분열과 자중지란, 적전 자해로 적군에 승리를 헌납한 표본사례로 지적되는 근거다.

“선거에서 왜 지느냐”고 일갈한 이해찬은 진실 성실과 ‘절실’을 승리의 요소로 든 바 있다. 민주 진보진영이 갈라져 서로 다투며 진실 성실과 절실성 없이 싸운 선거, 오로지 ‘내란당’의 패착과 이재명 인기에만 기대 이만한 성과를 올렸으니, 그나마 하늘이 국운을 도왔거나, 깨어있는 시민들 덕이 아니었을까.

당권 싸움이 본격화하면 내분 갈등세력이 선거결과를 덮어씌우며 더욱 발호할 터여서, 그리고 그후 봉합될 분열의 씨가 진보의 하나됨을 막고 차기정권 창출에도 걸림돌로 남을 것이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투철한 분석과 복기, 정밀한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들, 총선과 대선은 참패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흔히 진보적이라는 신문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언론은 ‘균형잡힌 운동장론’ 곧 공정보도를 빌미로, 선거판에 등장한 헌정 파괴 법치무시의 반 민주주의적이고 반 역사적인 수구 적폐들의 기를 살려주고 합리화 시킨 꼴이 됐다. 내란청산과 내란 동조세력 심판론을 희석시켰고, 내란 물타기를 도와 “내란이 뭐가 문제냐”는 윤 어게인 논리를 대변하고 일반화하는 데 일등공신들이 되었다. 그 결과 내란범들은 물론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도 명예회복을 시켜야 한다고 뻔뻔한 주장을 내뱉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면서 민주진보 진영의 분열과 적전 분열상은 열심히 보도해 갈등을 부추기고 선거전략과 민주시민들 판단에 혼선을 주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언론은 단순한 현장 중계와 당사자들의 나팔수 역할이 본령이 아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파사현정과 정론직필로 독자와 시청자에게 바르고 정확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해야 참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뉴스타파 등 일부를 제외하고 후보자들의 자질이나 정책, 공약 등을 따져 유권자에게 준엄한 한 표를 행사하도록 판단자료를 제공한 언론은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계적인 공정론의 경마식 보도와 ‘선택적인 균형’ 포장으로 눈과 귀를 흐리게 하고 내란세력을 핍박받는 정치인들로 탈바꿈시켰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부패범과 전과자들에게 표를 주게 만들었고, 내란 연루 혹은 동조 옹호자들 다수가 당당히 국회에 입성하는데 일조했다. 전력으로 보아 깜도 안되는 자가 당권이니 대권을 바라보겠다는 과욕에 부풀도록 ‘펌프질’도 마다하지 읺았다.

이제 선거는 끝났지만, 양심과 사명감을 가진 언론이라면, 자신의 기사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돌아봐야 한다. 적어도 자기성찰의 매서운 분석과 비판으로 참회해야 한다. 민주주의 축제였어야 할 이번 선거에서 왜 반 민주주의적, 반 헌법적인 부적격 후보들이 부상했는지, 그들이 어찌 감히 민주주의의 상징이며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리고 부정한 속임수와 불법적 수단으로 귀중한 한표 한표를 가로 챈 자들은 반드시 법적처벌을 받도록, 당선이 무효화되어 민주주의를 더 이상 오염시키지 않도록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위에 언급한 것들 외에도 많은 승패의 요인이 있다고 보지만, 그 중에도 선거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대한 시대적, 정치적 영향요소라고 생각되어 4가지를 열거하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그에 앞서 무엇보다 중시되어야 할 것은, 역시 시대를 읽고, 나라와 민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안목과 비전을 지닌 유권자 시민들의 엄정한 분별력과 적부 판단력, 그리고 현명한 선택이 민주 선거에 있어 최고의 승리 요소요 덕목이라고 믿으며 그래야 한다고 강조하고자 한다.

[편집인 칼럼] 무감각, 위험한 헌법경시 풍조

● 칼럼 2026. 5. 9. 01:4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무감각, 위험한 헌법경시 풍조

 국내외 동포들의 헌법경시 일반화...다시 헌정파괴 사태 온다면 누굴 탓하나

 

홍순구 작가

 

헌법은 나라의 정체성과 국정방향을 규정한 법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통치구조와 운영 원칙을 규율하고, 국민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최상위 법으로, 모든 법률의 기초가 되는 ‘법 중의 법’이다. 그 위상에 있어 국민정신과 국가의 혼맥(魂脈)이 담긴 가치규범이라고도 할 수 있다.

 

헌법을 위배하면 반헌법이 된다. 삼권분립과 공직의 규범을 어긴 정치권력과 공직자들이 탄핵대상인 것은 헌법에 반한 때문이다. 박근혜가 국회의 탄핵소추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되고, 12.3 친위쿠데타로 윤석열이 탄핵, 파면되어 징벌을 받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사와 재판, 국정조사에 드러난 권력 사유화와 국정을 망가뜨린 행태는 법적 형벌이라도 처할 수 있고, 그 정도에서 멈췄기에 천만다행이나, 돌아보면 윤석열 정권의 헌법 무시는 해도 너무했다. 의법 조치마저 할 수 없는 반헌법적 일탈, 특히 국민정신과 자존에 상처를 준 일들은 얼마나 많았고 심화시켰는지, 오히려 심각했다는 생각이다.

 

독립기념관장을 필두로,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 민족 정체성에 직결된 역사문화 연구 보존과 학술적 근거를 쌓아나갈 국가기관 챔임자들을 모조리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뉴라이트 인물들로 채워 넣었다. 엄연히 헌법에 명시된 3.1운동과 독립투쟁사를 평가절하 하며 ‘5.18은 북한군 개입’ 운운하는 자들에게 잔치판을 깔아준 것이다.

 

그들은 3.1운동 당시 “일본 제국주의 통치에 대한 도전이자 국법질서를 흔드는 위험한 선동”이라느니,“독립은 허황된 꿈이다 조선의 발전과 민족문화 향상은 오직 일본의 힘으로만 가능하다”고 으름장을 놓은 이완용 등 친일파와 다를바 없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지 1년이 넘은 지금도 대부분은 ‘법적임기’을 붙들고 숨을 죽인 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이 역사관이나 가치관을 바꾸고 회심했다고 믿을 근거는 아무 것도 없는데.

 

지난해 21대 대선에서 많은 이들은 파면당한 대통령을 배출했던 정당 후보의 완패를 점쳤지만 결과는 무려 41.15%나 득표했고, 당선자와는 겨우 8.27%p 밖에 격차가 나지 않았다. 4할이 넘는 국민이 헌법을 짓밟은 세력에 표를 주었다는 이야기다.

 

최근 요란한 지방선거 여론조사도, 이른바 ‘윤 어게인’세력과 인물들을 지지한다는 국민이 많다. 특히 TK지역은 무슨 상관이냐는 듯 지지세가 대략 40% 이상에 달하고, 선거 한달 전인데 이미 당선 확정됐다는 지역도 있다. 내란옹호를 문제삼는 게 아니라, 문제삼는 자들이 문제라는 시각인 것이다. 그런 민심에 기대 계엄해제 방해혐의로 기소된 인물까지 버젓이 공천한 당에서는 파면 대통령의 최측근 비서실장이 왜 나만 외면할 거냐고 큰소리 치는 기막힌 일도 벌어지고 있다.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전범(典範)을 만들었다는 한국에서, 오늘 이런 반헌법적이고 반 민주적인 일들이 어찌 횡행하게 되었는가. 거슬러 올라가면 민족사와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데 치명상을 입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곧 ‘반민특위’ 무력화가 그 뿌리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정부가 기미(己未) 삼일운동으로 건립돼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헌법 전문에 명시해 공표하고도, 이를 부정한 원조 친일세력 척결을 못한 데서 역사정의가 좌절되며 헌법경시가 일상에 젖어든 것이다.

 

올해 46주년을 맞는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전문에 수록하는 개헌안이 국회문턱에 있다.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한 시민항쟁으로 헌법에 그 정신을 담아 기려햐 한다는 여망이 강하다. 하지만, 헌법에 실리면 폄훼와 부정적 시각이 사라질 것인가. 시민들을 압살했던 전두환이 단 한마디 사죄없이 천수를 누렸고, 그 앞잡이로 승승장구 호의호식한 자들, 민주인사들을 고문, 조작살인까지 저질렀던 자들이 여지껏 훈포장을 자랑하는 현실에서, 5.18 왜곡처벌법을 조롱하며 억지를 부리는 자들이 헌법인들 두려워할까 말이다.

 

국내의 그런 인식과 분위기는 해외동포 사회도 멍들게 하고 있다. 다시 5.18 항쟁의 기념식이 다가오는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며 국가기념일이라는 공식 의미부여에, K-민주 역사문화 자산으로 자랑스럽게 기념할 민족행사임에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시선은 46년 전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다. 호주머니 돈을 모아가며 지키고자 하는 동포들의 의로운 뜻과 모국을 향한 충정을 가상히 여길 만도 하련만, 진보적 민간 동포단체가 개최하는 행사여서 떨떠름한 것인지, 국가행사로 기념하면 인식과 호응도가 달라질 것인지… 안타까움이 교차할 뿐이다.

 

 

권력자들의 헌법경시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국민들의 헌법존중과 헌법 준수의지가 강할 리가 없다. 헌법을 소홀히 여기는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권력자들 또한 헌법을 도외시할 터이니, 누가 먼저랄 것 없는 악순환이요, 언제 다시 헌정파괴와 중단 사태가 재발한다 해도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가 위기에 몰릴 때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1항과 2항을 소리 높여 외치곤 한다.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머슴들이 헌법을 무시하고 주인 행세하며 국정을 유린하는 꼴을 좌시할 수 없다는 불호령이다. 대다수 국민이 그러한 헌법의 정신과 중요성을 깨닫고 존중하며 지켜 나갈 때, 헌법 파괴자들이 감히 표를 달라고 뻔뻔한 낯짝을 내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가 올 때 진정한 민주주의 선진국의 민주 국민임을 자부할 수 있으리라.                                                                                                                < 편집인 >

[편집인 칼럼] "메타인지 결핍증 중환자들"

● 칼럼 2026. 4. 18. 12:5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메타인지 결핍 중환자들"

 

 

요즘 자주 회자되는 말 중에 ‘메타인지’라는 단어가 있다. 미국의 발달 심리학자 John H. Flavell 이 1976년에 정의를 내려 널리 쓰이게 됐다는 이 용어는 다소 생소하긴 하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인간관계와 처세를 포함해 ‘세상 경영’에 아주 유용하고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다.

 

메타인지(Metacognition:高次認知)에 대해 위키백과(Wikipedia)는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 · 발견 · 통제 · 판단하는 정신 작용으로 '인지에 대한 인지' 혹은 '사고(생각)에 대한 사고'나 '다른 사람의 의식에 대해 의식하는‘ 고차원의 생각하는 기술”을 의미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또 AI에게도 물어보니,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능력을 뜻한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학습 전략을 수정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능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지‘를 인지하고 ’사고‘를 사고하며 ’의식‘을 의식한다니, 꽤 어렵고 헷갈리는 말 같지만, 알고보면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너 자신을 알라”, 혹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아는가”라는 뜻과 일맥상통해 쉬운 풀이가 될 것 같다. 그러면 50년 전에 Flavell이 최초로 ’인지‘한 이론이 아니라,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2천4백여년 전에 이미 자기성찰의 메타인지 개념을 도입했던 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너무 험악하고 어수선하다 보니 메타인지라는 말이 매일매일 뇌리를 맴돈다. 나 자신은 과연 메타인지를 갖춘 사람인가 하는 자문에서부터, 근래 극히 ’험하고 풍진 ‘세상을 만들고있는 원흉들이 심각한 메타인지 결핍의 중환자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하는 능력이 낮아,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과대 혹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에, 임기응변식 대처, 자기성찰 부족, 타인배려 부족 등의 특징을 보인다”는 문구를 읽으며 즉시 떠오르는 인물이 없는가.

 

기자가 이란전쟁에 관해 질문하면서 “민간시설 공격은 국제법 위반 전쟁범죄 가능성”을 따지자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떻게 국제법을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나 자신을 멈추는 것은 오직 내 자신의 도덕성뿐“이라고 오만의 극치적 답변을 내뱉은 인물, 전쟁을 장난처럼 여기는 문제적 리더인 미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다.

 

트럼프의 언행이 어디로 튈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안하무인과 조변석개, 좌충우돌 천방지축의 행태는 지구촌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AI가 분별한 메타인지 결핍증의 전형적 특징에 정확히 부합한다. 지금 미국과 이란은 물론 전세계인을 어떻게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그 자신은 전혀 모르는 건지 괘념치 않고 오불관언 내닫고 있다. 교황을 모욕하고, 예수 흉내까지 서슴지않는 것을 보면 결핍정도가 아닌 중증에 틀림없다.

 

 

또 한 인물이 있다. ’부패 덩어리‘라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다. 트럼프를 충동질해 이란 공격을 시작하게 만들더니, 휴전하겠다는 트럼프 만류도 묵살한 채 전방위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서 대놓고 휴전과 종전을 방해하고 있다. 가자지구 학살 만행과 초토화에 이어 이젠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잡겠다며 민간과 남녀노소를 불문한 폭탄세례를 퍼붓고 있다.

 

지금껏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를 감싸며 예우해오던 유럽의 각국이 맹비난하고, 심지어 ’가해국‘ 독일까지 가세해 등을 돌리는데도 못들은 척, 그 역시 메타인지 결핍 중증의 폭주족이다. 

오죽하면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이 점잖게 국제적 인도주의 규범을 지키라고 타일렀을까만, 오히려 발끈하며 “용납할 수 없다” “홀로코스트 경시발언”이라고 반발했다. 보편적 인권중시를 강조한 내용 어디에 문제가 있고, 도대체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경시했다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다.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상흔을 간직한 자들이 홀로코스트나 다름없는 학살적 전쟁을 즐기는 것도 몰양심, 곧 파렴치려니와, 홀로코스트를 전가의 보도삼아 궁지에 몰릴 때마다 ’신검‘(神劍)’인 양 휘두르는 행태야 말로 시대착오적이고 조상을 모독하는 몰상식임을 모르는 것일까.

 

 

메타인지를 겸비한 리더는 자신의 언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하여 더 나은 결정을 위해 노심초사하게 되어있다. 자기성찰도, 보편적 상식과 규범도 묵살하는 리더가 민심을 두려워하고 역사 앞에 옷깃을 여미면서 인류의 평화 공영과 공동선 구현을 위한 헌신이라는 고차원의 리더십에 무슨 관심을 두겠는가?.

 

자신의 행동이 자국민은 물론 이웃 나라 국민들, 나아가 지구촌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반향과 평가를 받는지를 모르고 관심도 없는 이기적 인물이라면, 결코 지도자가 아닌 사욕의 탐욕자요 해악만을 끼치는 권력 기생충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니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요즘 우리는 지도자에게 메타인지가 얼마나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덕목인지를 국내외적으로 고통 속에 체감하는 중이다.

나와 우리가 평안하고 세계인류가 평화를 누리려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세계인 모두가 메타인지 결핍증 환자를 다시는 지도자로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뼈아프게 되씹을 일이다.

[편집인 칼럼] "난세 광인의 무덤이 궁금하다"

● 칼럼 2026. 4. 4. 13:2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난세 광인의 무덤이 궁금하다

 

홍순구 작가 만평

 

지금 중동에서의 전쟁으로 전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는데, 회심의 미소를 감추며 득을 보고 즐기는 일부가 있다. 러시아 푸틴은 최대 수혜자이고, 중국 시진핑도 그에 못지 않다. 미국을 끌어들여 ‘차도살인(借刀殺人)’을 저지르고 학살을 서슴지 않으면서 자기 범죄를 가리고있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어쩌면 가장 질이 나쁜 인물이 아닐까.

 

이들은 “남의 손 빌어 코를 푸는” 행운에 신나서 칭송을 보낼지도 모르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현재 전 세계인의 원망과 지탄을 한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미국의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일 것이다.

 

도대체가 무슨 전략과 목적과 후과를 염두에 두고 느닷없이 이란을 전면 공격하고 나선 것인지, 전쟁과 살상을 재미로 아는 듯한 막말과 오락가락 전황대처, 전쟁기밀 악용한 사익편취 논란 등도 겹쳐지면서 중동파고의 장본인에게 세계인의 손가락질과 욕설이 쏟아지고 있다. 초등학생 170여명 폭살을 시작으로 수많은 무고한 인명 살상도 개탄스러울 뿐더러, 원유공급이 막혀 그렇지 않아도 침체에 빠진 세계경제가 유가 폭등에 휘청대면서 민생과 기업, 각국 정부 모두 고달픈 상황에 처한 때문이다.

 

 

지난해 6월14일 트럼프의 79번째 생일날 미국 전역 2,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5백만명이 모여 외친 “No Kings!” 시위는 이란전쟁이 딜레마에 빠진 지난 3월28일에는 무려 3,300곳으로 늘어나 8백만명 이상 참가하는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반 트럼프, 반전(反戰) 시위로 폭발했다. 미국인들이 자국의 대통령에게 “당신은 왕이 아니다. 당장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무모하고 반인륜적인 전쟁을 벌여 국력을 소진하고 생활고를 가중시킴은 물론 국제적인 배척대상이 되고있는 ‘막가파’ 대통령을 좌시할 수 없다는 분노의 외침이 미 전역에 확산일로이고, 전세계로도 번지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의 수학자들은 오는 7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릴 ‘국제 수학자대회’ 거부와 개최 장소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명 수학자 5천명 안팎이 모이는 이 대회는 국제 수학자연맹(IMU)이 주관해 4년마다 개최하는 최대규모 학술대회로 ’수학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수학 노벨상‘이라고도 하는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여하는데, 지난 2022년 대회 때 한국인 허준이(June Huh) 교수가 수상해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런데 올해 미국 대회를 앞두고 각국의 수학자들과 초청연사 등이 현재 미국 상황을 지적하며 ’보이콧‘ 운동에 돌입, 다른 나라로 옮기라는 청원에 3월 말까지 2천명이 서명했고, 프랑스는 아예 불참을 선언했다.

 

이들은 청원서에서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에서 뿐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본적인 인간성을 저버리는 조처들을 하고 있다”며 “수학자들 간의 국제적 연대감을 고취하는 게 대회의 목적인데 이것이 불가능하다. 현재 미국은 개최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민세관집행국(ICE)의 무차별 단속과 시민 살해, 미 대법원의 검문 허용 등 현재 미국 정부는 이민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감을 명백히 드러냈다”고 지적, “전세계 수학자들은 ICE 요원에게 무차별적인 괴롭힘과 신체적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연맹(IMU)이 위험을 조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IMU에 미국 아닌 곳으로 옮겨 열라고 요구했다.

 

청원서에서 수학자들은 “미국이 광범위한 공격을 통해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했다. “이민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ICE 무차별 단속, 가짜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 지도자를 불법적 납치한 사건, 이란에 대한 파렴치하고 무모한 전쟁, 팔레스타인에서 진행 중인 대량 학살을 방조하고 조장하는 행위, 쿠바에 대한 강압적이고 징벌적인 봉쇄, 거주민 의사에 반해 그린란드를 식민지화하려는 시도” 등이다.

한마디로 불안하고 위험한 ‘불한당 미국’엔 가기 싫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집권 1기에도 무수한 거짓말과 허풍으로 국제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2기에는 증세가 더 위중해졌다. 그는 지구촌을 지탱하고 유지해 온 국제질서를 멋대로 깨부셨다. 대표적으로 유엔과 나토, 기후협약 등을 무력화하고 관세전쟁에 집착했다. 전통적으로 내걸었던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외교의 기조를 아예 무시했다. 이민자와 사회적 약자, 약소국을 짓밟는 무지막지한 힘의 논리에 취했다. 태생적인 장사꾼 탐욕 기질이 뒤엉킨 권력의 교만과 과시적 자만에 독선과 아집, 종잡을 수 없이 튀는 몰지각한 저질 언동 등 파시스트 괴물군주화 했다. 국정이 난관에 봉착하고 이른바 앱스타인 스캔들에 몰리며 ‘면피성 발광’은 증세가 심해졌다, “No Kings!” “No Dictators!”라는 미국시민들 외침이 그걸 증명한다. 차츰 그의 실상과 폐해를 체감한 미국인들이 자격없는 지도자를 뽑은 걸 후회하며 옐로우카드에 그치지 않고 레드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트럼프를 ‘광인(狂人)’이라고 부름에 주저함이 없는데, 나중 역사가들은 그를 어떤 단어들로 기록할까. 글자의 본 뜻이 으뜸이고 승자라는 ‘Trump’의 오만과 기고만장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는 여전히 “전쟁은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믿으며 노벨평화상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인간의 기행과 괴벽은 개성의 영역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치부 욕망을 나무랄 수는 없다. 엄청난 거부가 자기 배 두드리며 떵떵거리고 산다해서 누가 뭐랄 수 있나. 다만 개인적 전횡에 그치지 않는 인류적 난동질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초강국 미국을 추락시키고 국제사회에 풍파를 일으켜 세계인을 심적·물적 고통에 몰아 넣은 것은 분명 ‘패악질’에 다름 아니다.

 

한국사회를 수십년 후퇴시킨 윤석열이 자승자박, 제 발등을 찍더니 마침내 몰락한 것처럼, 사악한 권력자들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가고 결국은 제 무덤을 파는 게 인류역사의 굴곡진 단면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대통령직은 미국은 물론 세계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고 불운이다. 미국민들의 울분지수 상승과 이란전쟁 패착에, 중간선거 폭망론 등을 앞에 둔 ‘난세 광인’의 향후 인생행로가 궁금하다.                   < 편집인 >

박순찬 작가 만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