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소망교회 (담임 박용덕 목사 : 81 Curlew Dr. North York, M3A 2P8)가 오는 1월9일(금)부터 11일 주일까지 멕시코 양국직(김은숙) 선교사를 강사로 신년 대부흥회를 개최한다.
‘주께서 시키는 대로’(요 2: 1~5)라는 주제로 여는 이번 부흥회는 25년간 멕시코 선교에 헌신하고 있는 양 선교사가 1월9일 오후 7시30분과 10일(토) 오전 6시 및 오후 7시30분, 그리고 11일 오전 11시 주일예배에서 말씀을 전하는 등 사흘간 네차례 집회를 인도할 예정이다.
날짜별 설교제목을 보면, 첫날인 9일(금) 저녁에는 주제 말씀인 ‘주께서 시키는대로’의 첫 번째 말씀을 요한복음 2장 1~11절을 본문으로 전하며, 10일(토) 오전 6시 새벽예배에서는 ‘여호와께 구하는 것 한가지’(시 27: 1~6), 오전 9시30분 간담회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마 16: 21~24), 저녁 7시30분에는 ‘주께서 시키는 대로’의 두 번째 말씀을 요한복음 15장 4~7절을 본문으로, 그리고 주일인 11일 오전 11시 예배시간에는 ‘나의 의인은!’(히 10: 38~39)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 예정이다.
강사 양국직 멕시코 선교사
양국직·김은숙 선교사 부부는 멕시코의 뿌에블라 지역에 거주하면서 현지 목회자 교육과 순회선교 및 미전도종족 사역 등 25년간 파송선교사로 충직하게 선교활동을 해오고 있다. 아카풀코 성시화 사역에도 나섰던 양 선교사 부부는 특히 멕시코 게레로 주 칠라파(Chilapa) 등 마약재배와 납치 문제가 심각한 미전도 지역에서 복음 전파와 현지인 사역을 비롯해 원주민교회를 세워 성도를 양육하며, 어린이 사역 및 현지 동역자 양성 등으로 복음 전파와 제자 훈련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양 선교사는 이번 소망교회 부흥회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시키는대로 사는 삶’의 축복을 자신의 체험적 간증으로 강조하며 성도들에게 은혜를 전할 예정이다.
소망교회 박용덕 담임목사
소망교회는 “양 선교사 부부가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 달려온 25년의 충성과 우직함을 배우고 은혜를 나누는 신년대부흥회에 오셔서 올 한해를 믿음으로 승리하고 축복받는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한다”면서 많은 성도들이 참석해 은혜를 나눌 것을 당부했다.
금년도 잘 마무리 하고 희망찬 새해를 준비해가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한해를 결산해 나갈 시간이 되면 마음들이 숙연해지기도 하고 착잡해 지기도 한다. 결산이라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에 새로운 감회를 주기 때문이다.
다사다난 혹은 격변이란 말이 요즘은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 전쟁, 홍수, 지진, 화산폭발, 대형 콘도 화재사건, 대형 유조선 기름유출사고, 대형산불, 대학 총격난사사건, 끔직하고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뉴스거리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비슷한 뉴스거리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구촌의 재앙이라는 뉴스가 전 세계 매스미디어들을 지금도 채우고 있다. 앞으로 지구촌에서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런 가운데 세상은 충성과 지혜로운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 믿고 맡기는 사람 말이다. 신임하고, 맡기고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링컨대통령은 그랜트 장군을 북부 동맹군 사령관에 임명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의 계획을 알 필요도 없고 또 묻지도 않을 것이다. 책임을 갖고 행동하라.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나에게 연락하라". 그랜트에게 모든 것을 믿고 완전히 맡긴 것이다. 그랜트 장군은 모든 것을 맡길만한 충성된 인물이었다. 군대가면 '충성!' 하면서 인사하는 부대가 있다.
미국의 시카고 근교의 위스콘신 주에 있는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과학자, 천체물리학자 닥터 첸드리스카 박사는 시카고대학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박사님 겨울방학 동안에 저희 대학에 와서 고급물리학에 관한 특별강의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는 쾌히 승낙을 했다. 그런데 몇 주후에 다시 대학에서 전화가 왔다. 강의를 취소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2명밖에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 첸드리스카 박사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두 학생을 가르쳤다. 그해 겨울 시카고 거리는 유난히 추었는데도 그는 시카고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일주일에 이틀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강의를 하였다.
십년이 흘러갔다.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이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그들은 수상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이 상을 수상하게 된 데는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 때문이었습니다".
충성된 사람은 일관된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
맥아더 장군의 회고록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의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한국의 전황을 살피기 위해서 부랴부랴 한강교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쌍안경을 가지고 건너편의 형편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미 이때는 한강교가 폭파되어 있었고, 건너편에는 이미 인민군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쌍안경으로 강 건너편을 보게 된 맥아더 장군의 눈은 문뜩 강 이쪽에 서있는 부동자세의 군인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은 지프를 타고 이 병사에게로 갔다. 그리고 병사에게 물었다. “왜 끊어진 다리 앞에 서 있느냐?” 이 병사가 대답했다. “이것이 제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언제까지 여기 서있을 작정인가?” 병사는 여전히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새로운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입니다.” 전세는 위급하고, 지휘 계통은 사라지고, 지휘관들도 도망하는 형편에서 적이 바로 앞에 와 있는데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위치를 지키는 이 병사의 투철한 군인 정신을 목격한 맥아더 장군은 감탄했다. 그래서 외쳤다. "이런 군인이 있는 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감동을 받은 맥아더는 그날로 당장 미군병력의 출동명령을 내리고, UN군이 참전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전투를 뒤집어 놓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전쟁평론가들은 평가한다.
남편은 2022년 8월22일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 결국 위에 호스를 넣고 영양을 공급받아야 했습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이야기 했지만 그때 우리의 눈앞은 막막했습니다. 다시 밥을 씹고 삼킬 수 있을까? 그 질문 하나가 하루를 버티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물과 주스로 음식 넘기는 것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적처럼 남편은 호스를 빼고 입으로 영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변화가 우리에게는 다시 살아 갈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씹을 수 없고 삼키는 것도 어려운 남편에게 무엇을 먹여야 할지 막막 했습니다. 그때 저는 요리사가 아니라 그저 남편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
카레 한 냄비가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식처럼 부드러운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카레라면 어떨까?” 남편이 예전부터 좋아했고 한 그릇 안에 여러 가지 재료를 담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감자, 당근, 양파, 고구마, 마늘, 생강, 표고버섯, 사과, 샐러리… 넣을 수 있는 모든 영양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씹지 않아도 되도록 모두 갈아내어 부드럽게 만들어 한 숟가락씩 떠먹게 했습니다. 그 한 숟가락이 들어 갈 때마다 남편의 얼굴에는 생기가 조금씩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카레는 어느새 우리의 주식이 되었습니다
한 번 만들 때 큰 솥 가득 끓여 일주일 정도 먹을 양을 준비했습니다. 활동이 많은 날에는 식사를 챙기지 못할까 걱정되어 한가한 날을 정해 온 힘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끼니를 놓치지 않는 것이 그 시기 제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카레는 단순한음식이 아니라 남편의 회복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아내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에 저는 그 냄비 앞에서 마음을 담았습니다.
두 번째 변화, 오트밀과 계피
남편은 85세, 15년째 당뇨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오트밀에 시네몬 반 티스푼을 넣어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의사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당이 7.5에서 6.5로 내려갔네요. 아주 좋습니다.”
기적 같았습니다. 특별한 약을 바꾼 것도 아니었는데 식탁이 남편의 수치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운 치료이자 사랑이었다는 것을.
나는 요리사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제게 말합니다. “그 많은 재료를 넣고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남편이 살아 숨 쉬는 오늘을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한 숟가락 더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다시 걷고 대화하고 웃는 모습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 하나가 저를 냄비 앞으로 데려갔고, 그 국자 한 번이 우리의 생활을 다시 이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건 큰 수술이나 새로운 약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한 그릇의 음식, 한 번의 끼니,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나는 요리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식탁 위의 사랑으로 다시 살아 났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고 지혜였습니다. 남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 때에 “하나님이 하신다”라고 큰 글씨을 보여주시고, 눈을 뜨니 살았구나 하며 그 믿음을 굳게 붙잡고 있었기에 저에게도 지혜를 주셔서 만들었고, 남편도 잘 먹고 건강을 회복 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남편은 “미자 카레 때문에 살았다”고 제가 만드는 카레에 제 이름표로 부릅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사랑은 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