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빈 의자를 곁에 두는 나의 감사 : 데리다의 환대와 그리스도의 식탁

큰나무교회 김동욱 목사
나의 가을은 인생의 가을을 닮아, 문득 삶의 유한함을 고백하게 만든다. 채우는 일에만 눈이 멀었던 청춘을 지나, 이제는 내가 거둔 수확들을 세어보며 비로소 ‘은혜’라는 단어를 입술에 올려놓는 나이. 그리하여 매년 돌아오는 캐나다 추수감사절은 일 년간 우리 삶을 신실하게 채우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는 고요한 감사의 절기이다. 내 가정이 누리는 평안과 따스한 불빛 아래 모인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보며 우리는 신앙의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은혜로운 등불 아래서,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날카로운 해체주의는 뜻밖에도 성경의 가장 깊은 본질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감사의 제목으로 삼는 그 아늑한 식탁이, 혹시 나와 내 울타리만을 위한 ‘조건적 환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주일이면 늘 만나는 익숙한 성도들, 나에게 상처 주지 않을 안전한 성도의 교제, 그리고 ‘내가 주인 된’ 공간 안에서만 베풀어지는 선별적 친절. 데리다의 시각에서 이는 진정한 환대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삶의 무게에 지쳐 "내 가족, 내 신앙만 지키기도 벅차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거는 것 역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울타리를 치는 조건적 환대의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고 데리다가 꿈꾸었던 진정한 환대는 계산도 경계도 없는 ‘무조건적 환대’였다. 그것은 성경 속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길 위에서 만난 나그네를 영접했던 풍경과 닮아 있다. 아브라함은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서 그저 스쳐 지나가던 낯선 나그네들을 아무 조건 없이 영접했고, 성경은 이에 대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브리서 13:2)고 증언한다. 추수감사절의 첫 새벽, 신대륙의 혹독한 겨울 속에서 굶어 죽어가던 이방인(청교도)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던 원주민들의 마음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조건이 지워진 자리에서만 피어나는 순수한 다정함, 그것이 환대의 본질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는 늘 환대(Hospitality)를 배신하는 적대(Hostility)의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원주민들의 무조건적인 환대가 결국 그들의 눈물과 비극으로 되돌아왔듯, 인간이 베푸는 환대에는 늘 한계와 죄성이 깃들어 있다. 오늘날 우리의 추수감사절 식탁이 풍요를 누릴 때, 그 식탁 너머에서 여전히 굶주리고 소외된 이방인의 탄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아픈 진실이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오직 ‘나의 축복’으로만 가두어둘 때, 감사는 어느새 타자를 배제하는 이기적인 의식으로 변질되고 만다.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베풀 때 늘 우리를 향해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초대하라 그들이 갚을 길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누가복음 14:13-14)라고 말씀하셨다. 보답을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영접이야말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참된 잔치의 풍경이다.
삶을 지나오며 세상의 거친 풍파를 알아버린 그리스도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문을 열어두라는 요구는 무모하고 두렵게 느껴진다. 내 소유와 평안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염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무조건적 환대의 본을 보여준다. 바로 아무 자격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식탁에 우리를 앉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주님은 우리의 이름이나 신분을 묻지 않으시고, 그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며 무조건적인 품을 열어주셨다. 우리가 누리는 이 가을의 수확은 바로 그 거대한 환대로부터 거저 받은 선물이다.
그러므로 데리다의 렌즈로 성경을 다시 읽는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은, 단지 내가 받은 복을 확인하며 안도하는 날이 될 수 없다. 참된 감사는 내가 은혜의 빚진 자임을 깨닫고, 내 견고한 울타리에 거룩한 균열을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던진 질문과 주님의 말씀은 이 가을날 우리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당신의 식탁에는 갚을 길 없는 이방인을 위한 ‘빈 의자’가 준비되어 있는지, 그리고 당신의 다정한 문에는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의 쓸쓸한 노크 소리가 스며들 작은 틈새가 남아 있는지 말이다. 이번 캐나다 추수감사절에는 내가 가진 것을 지키는 넉넉함을 넘어, 비록 두렵고 서툴지라도 내 마음의 문을 아주 조금, 십자가의 사랑만큼 타인을 향해 밀어보는 그 고통스러운 다정함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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