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 칼럼]

살인적 고문 통해 간첩 조작한 독재 권력
검사는 묻지마 기소, 판사는 '판결 자판기'

지난 50년 간 어떤 판사도 사과하지 않아
법과 양심의 결합은 이 시대 인류의 공통 과제

고문 당하고 감옥살이까지 한 사람과 유족들에게는 왜 그토록 가혹했던가?

 

지난 1월 19일,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 11부는 이른바 ‘통일혁명당 재건위원회’를 조직했다는 혐의로 1976년 사형당한 고 강을성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결과를 접한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이 참혹하게 억울한 수사, 기소, 판결을 한 경찰, 검사, 판사들은 어떤 책임을 지나요?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라고 썼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정기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2025.12.5 [공동취재] 연합
 

살인적 고문으로 반국가세력, 간첩 조작

 

1972년 북한 김일성과 7·4 공동성명을 발표한 박정희는, 석 달 후 이른바 ‘10월 유신’이라는 반민주적 폭거를 자행하면서 ‘남북대화’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그는 “만일 국민 여러분이 헌법 개정안에 찬성치 않는다면 나는 이것을 남북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국민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이고 조국통일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임을 아울러 밝혀두는 바”라고 하여 전쟁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자극했다. 그러나 막상 만들어진 유신체제는 한국인들이 1940년대에 이미 겪은 ‘전시 총동원체제’였다.

 

사람들은 박정희가 내세운 ‘남북대화와 평화’가 자신의 종신 집권을 위한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박정희 일당도 굳이 속셈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신체제가 ‘남북대결’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을 바꾸었다. 북한의 대화 제의는 ‘공세’의 일환일 뿐이며 그들의 남침 야욕은 여전하다는 것이 박정희 일당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그들은 이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들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국민대중에게 제시했다.

 

당대의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의 독재정권들이 불의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쓴 수단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정치체제나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을 ‘반국가 행위’로 몰아가는 이데올로기 공작과, 대중에게 그 ‘실례’를 제시하기 위한 반국가세력 또는 간첩 조작이 세계 도처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무고한 사람을 간첩이나 반국가세력으로 조작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살인적 고문이 수반되었다. 1973년 봄부터 여름까지 중앙정보부(중정)와 육군 보안사령부(보안사)는 거의 매달 ‘간첩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4월 제주 우도 간첩단 사건, 5월 일본 거점 귀화 간첩단 사건, 6월 기간산업 침투 간첩단 사건, 7월 귀화 일본인 간첩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남녀 바꾸는 일 빼고는 ‘무슨 짓이든 했던’ 중정

 

이 사건들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재심을 통해 밝혀졌다. 그 무렵 ‘남산에 끌려간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보다 더 공포스런 의미였다. 중정은 자타공인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관’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되는’ 집단은 ‘무슨 짓이든 하는’ 법이다. 그해 8월, 전 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이 일본에서 납치되어 ‘수장(水葬)’되기 직전 살아돌아오는 일이 발생했다. 10월에는 서울법대 교수 최종길이 중정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받던 중 사망했다. 중정은 그가 ‘간첩 활동 사실을 자백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옥상에 올라가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국민을 깨우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주장이었다. 중정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는만큼 ‘공분(公憤)’도 깊어갔다.

 

퇴계로 쪽에서 바라본 남산 중앙정보부. 나무위키

 

12월 3일, 박정희는 중정부장 이후락을 해임하고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지낸 신직수에게 부장직을 맡겼다. 언론사들은 ‘군 출신이 독점하던 부장직을 처음으로 검사 출신에게 맡긴 것은 중정 활동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중정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중정과 검찰의 ‘유기적 관계’만 강해졌다. 1974년 상반기에만 2월의 ‘문인 간첩단 사건’, 3월의 ‘울릉도 거점 간첩단 사건’, 4월의 ‘민청학련 및 인혁당 재건위 사건’, 5월의 ‘여간첩 채수정 사건’, 6월의 ‘재일동포 유학생 김승효 간첩 사건’ 등이 잇달아 일어났다. 이들 사건 역시 대부분 재심에서 무죄로 판정되었는데, 이들 중 ‘민청학련 및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가장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이해찬 등 학생ㆍ지식인에 ‘법적 테러’ 가한 긴급조치

 

1974년 1월 8일, 박정희 정권은 개학 후 대학가에 불어닥칠 유신 반대운동을 사전 차단할 목적으로 긴급조치 1호와 2호를 공포했다.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뿐 아니라 헌법의 개폐를 주장하거나 발의, 제안, 청원하는 행위까지 금지하며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하여 징역 15년 이상에 처하도록 한 이 조치는 세계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법적 테러’였다. 이 직후, 종교인, 문인, 지식인 수십 명이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일부는 간첩죄를 뒤집어 썼다. 3월 말, 유인태, 김병곤, 나병식, 이현배 등 대학생들은 연합시위를 벌일 계획을 세우고 「민중 민족 민주 선언」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만들었고 4월 3일,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10여 개 대학생들이 시가행진을 시도했다. 당국은 이를 ‘공산폭동’으로 규정했고, 시위의 배후에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라는 불법 조직이 있다고 발표했다. 박정희는 이 시위를 빌미로 다시 긴급조치 제4호를 공포하여 민청학련 관련자들을 사형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들이 조직을 만든 적은 없었고, ‘민청학련’이라는 이름도 중앙정보부에서 마음대로 붙인 것이었다.

 

‘민청학련’이라는 가상의 조직을 만들어낸 중정은 시위 관련자들을 체포, 혹독하게 고문하여 이를 실체화했다. 며칠 전 별세한 이해찬 전 총리도 이 때 잡혀가 사경(死境)에 이를 정도로 고문 당했다. 4월 25일, 1964년의 ‘제1차 인혁당 사건’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신직수는 “이른바 ‘민청학련’의 정부전복 및 국가변란기도 사건 배후에는 과거 공산계 불법단체인 인민혁명당 조직과 재일 조총련계의 조종을 받은 일본 공산당원, 국내 좌파 혁신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또는 ‘제2차 인혁당 사건’이다.

 

민청학련 사건 수사 발표하는 신직수 중앙정보부장 1974. 4. 25. 연합 DB

 

중정이 간첩 만들고, 검사가 기소하고, 판사는 사형선고

 

중정은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함으로써 대학생들과 양심적 인사들의 반(反) 유신 활동을 ‘북한의 지시에 따른 체제 전복 활동’으로 몰아가려 했다. ‘인혁당’과 ‘민청학련’ 관련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은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고문과 협박은 피의자의 가족들에게까지 미쳤다. 중정 요원들은 허위자백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상부 지시에 따르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 그냥 지장 찍고 검사 앞에 가서 허위 진술했다고 말하라”고 회유했다. 그 말에 따른 사람들은 검사 앞에서 더 심한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검사들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피의자에게 “이 조서가 허위란 말이지? 그럼 돌아가서 다시 작성해 달라고 해”라고 말했다. “무능한 검사는 간첩이 잡히기를 기다리고, 유능한 검사는 간첩을 잡으러 다니며, 가장 유능한 검사는 간첩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유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결과는 ‘인혁당’ 관련자 8명과 ‘민청학련’ 관련자 7명 등 15명이 사형, 기타 수백 명이 징역형을 받은 것이었다. 법관들은 ‘판결문 자동판매기’에 지나지 않았다. 인혁당 관련자 8명은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지 20시간만에 처형되었다. 이 사건 역시 후일 모두 ‘무죄’로 판정되었다. 중정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1천여 명을 ‘검거’하는 커다란 성과를 내자, 보안사도 경쟁적으로 조작 사건을 만들어 같은 해 11월, ‘일본 거점 간첩단’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고 강을성 씨가 사형 당한 이른바 ‘통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1975년 4월 9일 서대문구치소에 갇혀있던 인혁당 관련자 8명을 면회 갔다가 이미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울부짖는 가족들. 나무위키

 

김건희에 너그러운 판사, 간첩 혐의 피해자엔 왜 가혹한가

 

얼마 전, 미국 미네소타에서는 ICE 대원들이 죄없는 시민을 사살하는 일이 두 차례 일어났다. 전 세계인이 지켜본 이 만행을 두고도, 미국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은 ‘좌파 이데올로기에 감염된 불법 시위자들을 대상으로 정당한 공무집행을 했을 뿐’이라며 살인자들을 두둔했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양심’까지 빼앗고 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가 그랬던 것처럼,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살인이 중정과 보안사, 검찰, 법원의 ‘협업’에 의해 연쇄적으로 이루어졌다. 고문 → 기소 → 판결 → 집행에 이르는 시간이 좀 더 길었을 뿐, 국가권력에 의한 살인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다.

 

작년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 27부(재판장 우인성)은 1971년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서병호 유족들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 국가의 사과와 법원의 재심을 권고했지만, 재판부는 ‘고문에 의한 허위진술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문 현장 사진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며칠 전 김건희에게 고작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한 바로 그 재판부다.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을 덮은 검찰과 김건희·윤석열이 지시한대로 공천한 국민의힘에게는 이토록 관대한 재판부가, 고문 당하고 감옥살이까지 한 사람과 유족들에게는 왜 그토록 가혹했던가?

 

윤석열 내란 사건의 1심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왼쪽)와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등의 1심 재판장인 우인성 부장판사

 

사과한 적 없는 법관들, 지금의 양심 수준은 어떤가

 

1987년 이후 중정과 보안사는 여러 차례 ‘개혁’ 대상이 되었지만, 검찰과 법원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신원(伸冤)을 위해 진화위가 만들어졌지만, 가해자들이 사과조차 않는데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 ‘인혁당 사법살인’만 하더라도 당시 중정부장 신직수, 검찰총장 김치열, 대법원장 민복기 어느 누구도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한 적 없다. 오히려 그들 모두 훈장을 받았고 후손들은 부귀영화를 누린다. 노태우의 아들과 전두환의 손자는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했지만, ‘사법 살인자’의 후손들 중 대신 사과한 사람은 없다.

 

법으로 살해당하는 사람이 양산되던 시대로부터 반세기가 지났다. 법관들은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양심의 수준이 과연 높아졌는가? 우리 사회의 평균적 양심 수준은 어떤가? 물질의 증가만이 ‘역사 발전’은 아니다. 인간의 양심 수준이 고양되는 것도 역사 발전의 한 부면을 이룬다. 법을 양심과 결합시키는 것이, 이 시대 인류의 공통 과제이다.                                                                               < 전우용 역사학자 >

 

민주당 “힐러리 꿈꿨던 김건희 국정농단, 엄중한 심판만이 답”

“제2의 힐러리 꿈꾸며 국정을 사익 편취의 장으로 전락시킨 김건희, 관용은 사치”

 
 
▲김건희 여사. 사진=대통령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이 1일 “윤석열은 총선 전 국민의힘 의원들을 소집해 김건희의 ‘광주 출마’ 가능성을 타진했고, 대통령실 참모진은 힐러리 클린턴을 모델로 한 별도 전략 보고서까지 수립했다는 증언이 흘러나왔다”며 “이는 김건희가 단순한 배우자를 넘어 ‘V0’로서 직접 권력을 행사하려 했던 노골적인 탐욕의 증거다. 이러한 권력욕은 막후에서의 추악한 국정농단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방송된 JTBC 특집 다큐 ‘김건희의 플랜’에서 JTBC 기자들은 “총선 전이었는데, 윤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들 몇 명을 불러 얘기하다가 ‘혹시 내 부인이, 광주에 출마하는 거 어떻게 보냐’라고 했다”, “강남을 해볼까라는 얘기까지도 당내에서 나왔다”, “강남에 여사가 나온다는 소문이 도니까 당은 난리가 났다”며 2023년 김 여사를 둘러싼 일명 ‘힐러리 프로젝트’의 실체를 공개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반클리프 목걸이와 금거북이를 대가로 고위 공직 자리를 거래했다는 매관매직 의혹부터, 특정 종교 세력을 동원한 입당 로비와 비례대표 약속으로 선거 시스템을 사유화하려 했다는 정황까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나토 목걸이’를 비롯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추가 청탁 의혹들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탐욕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이처럼 국정농단의 증거들이 쏟아짐에도, 사법부는 지난 28일 국민 상식을 짓밟는 면죄부 판결을 내놨다”고 주장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주가조작 인식과 수익 배분 정황을 인정하고도 공범성만 부정하는 궤변을 늘어놓더니, 명태균 사건 역시 ‘계약서나 재산상 이득이 없다’는 기만적인 논리로 여론조사와 공천 거래 의혹에 면죄부를 사실상 상납했다”며 “제2의 힐러리를 꿈꾸며 대한민국 국정을 사익 편취의 장으로 전락시킨 이에게 관용은 사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법부를 향해 “남은 죄과를 낱낱이 파헤쳐 법의 엄중함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 정철운 기자 >

 

헌법 전문 개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살리길
동학농민혁명의 '폐정개혁안' 헌법에 버금

2차 동학농민혁명은 항일독립운동의 출발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우금티 농민군 9명이나

동학 정신은 25년 뒤 3·1 만세운동으로 이어져
민족자주 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뿌리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 196쪽에 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구국투쟁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성환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반제국주의 운동이다. 이 선언은 역사학계 정설로 한국사 교과서에 실려 있다. 1894년 3월 1차 동학농민혁명이 봉건 질서에 반대한 운동이라면 같은 해 9월 2차 동학농민혁명은 일본 제국주의 침탈에 맞선 항일 구국 투쟁이다.

 

'폐정개혁안'으로 상징되는 1차 동학농민혁명은 천인의 대우를 개선하고 노비문서를 불태우며 청춘과부의 개가를 허용하는 등 기본권 보장과 인간 존엄성을 숙고한 대목이 담겨 있다. 더불어 탐관오리와 횡포한 부호를 엄징하고 무명잡세를 폐지하며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토지의 평균 분작을 추구하는 등 국민주권 원리를 실현하려는 정신이 적잖이 담겨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 해 5월 전주화약 당시 동학농민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안'은 원시 헌법 문서를 인정하는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학농민혁명이 원시 헌법 문서로 인정될 기준 가운데 하나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계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1919년 4월 11일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으로 건립된 역사 속 실체임을 헌법 전문에 명기하고 있다.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천도교 대표가 15명이고 2차 동학농민혁명의 상징인 우금티 전투에 참전한 농민군이 손병희를 비롯해 무려 9명에 이른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원시 헌법 문서로서 요건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다시 말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근대 입헌주의 헌법의 맹아로서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의 기원이자 정신적 뿌리로 볼 수 있다.

 

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독립투쟁으로 규정하며 전봉준, 최시형을 비롯해 2차 동학농민군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추서할 것을 논증한 박용규 박사의 책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표지(인간과 자연사, 2021)
 

불행하게도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농민군들 가운데 전봉준, 최시형을 비롯해 아직 단 한 명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추서 받지 못하고 있다. 우금티 전투에 참전한 뒤 일본군에 체포돼 화형을 당한 동학농민군 이승원이나, 홍주성 전투, 해미읍성 전투에 참전한 뒤 일본군에 피검 당해 목이 잘리는 작두형을 당한 동학농민군 강운재 그 누구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현실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담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실제로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은 조선 관군을 지휘하는 위치였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농촌을 초토화했고 농민군을 교수형, 총살형은 물론이고 불에 태워죽이는 화형과 작두로 목을 베는 작두형을 서슴지 않고 만행을 자행했다.

 

동학 접주는 체포 대상이자 즉결 처형 대상이었다. 동학혁명에 참여한 농민군을 체포하는 즉시 목을 베는 참형, 장작불에 태워죽이는 화형, 총살형, 교수형 등 잔혹하게 집단 학살한 학살 주체 미나미 고시로 대대장(동학서훈국민연대 제공)
 

그러나 피로 쓴 역사는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2차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에 출병해 동학농민군을 잔혹하게 진압, 학살한 학살 주체 미나미 고시로 소좌가 전남 나주 초토영에서 전봉준 장군을 문초한 대목이 그렇다. 이것은 2차 동학농민혁명이 항일 구국 투쟁이자 항일독립운동의 출발임을 명징하게 말해 주고 있다. 전봉준 장군은 “경복궁을 침탈한 일본군 축출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1894년 2차 동학농민혁명과 이듬해 을미의병의 독립유공 서훈을 비교한 학술세미나가 2023년 8월 25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인 박용규 박사가 발제하는 모습인데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 '전봉준 장군 독립유공 서훈에 헌신한 자'라고 적히길 희구할 만큼 동학농민혁명군 독립유공 서훈에 열정을 쏟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하성환 시민기자
 

청일전쟁 연구의 대가인 일본 나라여자대학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교수도 19년 전에 2차 동학농민혁명을 “조선의 민족독립운동이자 동아시아 독립운동의 선구”라고 규정했다.

 

해방된 지 80년이 흐른 지금도 1895년 을미의병을 항일독립운동의 시작으로 본다는 국가 보훈부 내부 심사 규칙을 고수하는 것은 명백한 시대착오다. 더구나 보훈 심사 내부 규칙을 만든 자들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 사학자 이병도, 신석호라고 한다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정치권이 혼란스러워 개헌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오는 6·3 지방선거를 치를 때 동시에 개헌의 찬반 여부를 묻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뿌리로 하는 3·1운동,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2016 촛불시민혁명, 2024 응원봉과 빛의 혁명을 헌법 전문에라도 담아 개헌하기를 열망한다. 이것을 부정하는 자는 반민족 매국노들이란 사실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8년 총선까지 개헌을 기다리기엔 늦어도 너무 늦다.

 

 

2025년 10월 31일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개최한 동학혁명정신 헌법 전문 명시 토론회 펼침막. 하성환 시민기자
 

인간 존중을 표현한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 사상을 비롯해 민권을 강조한 억강부약 정신과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나누고 돕는다는 유무상자(有無相資)의 정신은 동학농민혁명 정신의 핵심이다. 노비문서를 불태움으로써 신분제 철폐를 통해 평등 세상을 열망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본정신과도 궤를 같이한다.

 

다시 말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인 인간 존중 사상, 인간 평등 사상,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이 25년 뒤 고스란히 3·1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민주주의 사상은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2016 촛불시민혁명, 2024 응원봉과 빛의 혁명으로 계승되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국민주권 정부를 자처한 이재명 정부에서 2차 동학농민혁명군에 대해 독립 유공 서훈을 단행하길 기대한다. 더불어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을 것을 역사상 책무로 받아 안을 것을 호소한다.                     < 하성환 기자 >

 

중국ㆍ베트남 "깊은 애도" vs 북한 "방사포탄 발사"

김정일, 첫 정상회담 김대중 작고에 조문단
"민족의 화해ㆍ단합ㆍ통일 염원 실현한 공적"
노무현ㆍ정주영ㆍ정몽헌 타계에 "깊은 애도"

김일성 작고 때 남한 '조문 파동' 흑역사
이명박, 김정일 타계에 "북한 주민 위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타계했다.

중국은 이튿날인 26일 바로 깊은 애도를 표했다. 궈자쿤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이해찬 선생은 한국의 원로 정치인으로 여러 차례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중한 관계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면서 "중국은 그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출장 중 자국에서 명암을 달리한 베트남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팜 민 친 총리 등 베트남 지도부가 한국 정부와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반세기 걸쳐 민주 한국을 지탱해온 원로 정치인에 대한 예우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 빈소에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2026.1.27 연합
 

북한, 이해찬 타계에 '조의 대신 미사일'
중국ㆍ베트남 외교부 대변인 "깊은 애도"

 

북한은 달랐다. 이해찬 전 총리의 운구가 27일 오전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이재명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시민들의 조문이 시작된 이날 오후 탄도미사일 4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핵전쟁 억제력 고도화를 위해 "갱신형 대구경 방사포탄 4발"을 시험 사격했고, 현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참관했다.

 

물론 고인이 전면에 나서 남북 관계 역사를 써 내려가진 않았지만, 주요 변곡점마다 평양을 방문해 주요 역할을 해온 인물이란 점에서 북한이 '조의'까진 아니어도 '미사일'로 답하는 모양새를 취한 건 매우 초현실적이다. '남북 단절'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 전 총리는 역사적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처음 평양을 방문했다. 2007년 3월엔 노무현 대통령의 정무 특보 자격으로 비공식으로 평양을 방문해 그해 10월 남북정상회담을 물밑에서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는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격으로 평양을 찾아 당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 남북 국회 회담 등을 제안했고, 그해 10월 10·4 선언 11주년 기념행사 때는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약 150명의 민관 방북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으로선 꽤 친숙한 인물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성능을 개량한 대구경 방사포 시험발사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딸 주애도 시험사격을 참관했다. 2026.1.28 연합
 

김일성 작고 때 남한 '조문 파동' 흑역사
김대중 정부 때부터 '상호 조문' 정착해

 

미사일까진 아니어도 이 전 총리의 타계에 북한이 조의를 표하진 않을 거란 짐작은 가능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이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타계 소식을 전한 작년 11월 4일 이재명 정부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공식 조의문을 통해 고인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지만, 북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1년 1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조문' 문제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의 타계 당시 남북정상회담 추진 중이었는데도 김영삼 정부가 조문단을 보내는 대신, 되레 최고의 대북 군사 경계 태세를 취하면서 남북 관계를 다시 적대적으로 몰아갔지만,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6‧15 정상회담 이후론 '상호 조문'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서 화해와 관계 회복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소떼 방북'으로 남북 경제 협력의 물꼬를 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001년 3월 21일 작고하자, 북측은 김정일 위원장의 조전에 이어, 사흘 뒤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조문단을 보내 애도했고, 이들 편에 대형조화도 함께 보냈다. 2년 후인 2003년 8월 4일 아들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충격적 소식이 전해진 그날, 김정일 위원장은 조전을 보내 깊은 애도를 표하고 남북 화해‧협력에 기울인 고인의 노력을 평가했으며, 북한 금강산 온정각에 분향소를 세우는 한편 대형조화를 보내오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00.6.13. 연합
 

김정일, 첫 정상회담 김대중 작고에 조문단
"민족의 화해ㆍ단합ㆍ통일 염원 실현 공적"

 

그 후 남북기본합의서(1991년)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1992년) 체결의 북측 주인공인 연형묵 국방위 부위원장이 2005년 10월 22일 타계했을 때 당시 노무현 정부는 '정부' 명의로 공식 조전을 보내 깊은 애도를 표했다.

 

2009년은 한국 민주주의와 남북 관계의 역사에선 매우 비극적인 해였다.

한 해 전인 2008년 이명박 수구보수 정권이 출범하고 그해 7월 박왕자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고 남북관계는 다시 급속히 악화하는 상황에서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등진데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도 8월 18일 유명을 달리했다.

 

악화된 남북관계 와중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은 2007년 10‧4 평양 정상회담의 파트너였던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틀 후 "로무현 전 대통령이 불상사하게 서거하였다는 소식에 접하여 권양숙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는 본인 명의의 조전을 보냈다.

 

석 달 후 첫 남북정상회담 파트너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한 고위급 조문단을 서울로 보내 8월 21일 국회에 마련된 빈소에서 조문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여, 김정일"이란 글귀가 새겨진 대형조화도 보냈다. 앞서 19일엔 공식 조전을 통해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이희호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긴 공적은 민족과 함께 길이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깊은 애도를 표했다. 당시 김기남 비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해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조문'을 통한 남북 관계 복원 희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7.10.3. 연합
 

김정일, 노무현 타계에 "깊은 애도" 조전
'남북경협 상징' 정주영ㆍ정몽헌에도 예우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타개했을 때 정부 차원의 조문단은 보내지 않았고, 다만 류우익 통일부 장관 담화문 형식으로 "정부는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란 뜻을 밝혔다. 유가족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겨냥한 냄새가 짙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민간 조문단은 방북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6월 10일 이희호 여사가 별세했을 때도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던 시기였다. 한 해 전인 2018년 9‧19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문 대통령이 개성공단 재개를 약속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네오콘의 눈치를 보며 끝내 재개 결단을 내리지 못한데다, 그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도 결렬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별세 이틀 후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 부부장을 직접 판문점 통일각까지 내려보내 조전과 조화를 전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성능을 개량한 대구경 방사포 시험발사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딸 주애도 시험사격을 참관했다. 2026.1.28
 

이명박, 김정일 타계 때 "북 주민 애도"
날로 깊어만 가는 '남북 단절'의 풍경

 

거기까지였다. 북한은 2020년 6월 16일 남북 화해협력과 대화의 상징이었던 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을 폭파하고, 2022년 4월 금강산 내 남측 시설들을 철거했다. 그리곤 반북 대결과 흡수통일에 매진한 윤석열 수구 보수 정권 때인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관계를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그리고 통일 및 대남 관련 기구를 모두 없앴다.

 

급기야 2024년 10월 15일 민족의 혈맥인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와 철로 북측 구간을 폭파하고 대전차 방벽 구축 등 요새화에 주력했다. 윤석열 내란을 제압하고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평화공존과 남북 공동 성장'을 내세우며 대화 재개와 화해의 손짓을 하고 있지만, 이젠 군사분계선(MDL)을 '국경'이라고 주장하면서 3중 철조망 설치로 대답하고 있다.

 

남쪽에선 이해찬 전 총리 빈소에서 상실의 눈물을 흘리고, 북쪽에선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지금의 현실이야말로 날로 깊어만 가는 남북 단절의 풍경을 보여준다. 

                                                                                           < 이유 기자 >

 

국회 대미 투자법 통과 지연에 불만인 듯... 트럼프 의도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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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가 한미 간의 무역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다며,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한국 입법부는 미국과의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무역 협정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합의된 거래에 따라 신속하게 관세를 낮췄고, 당연히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도 같은 조치를 취하길 기대한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지난해 7월 30일 양국 모두에 훌륭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10월 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왜 한국 국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나”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회가 우리의 역사적인 무역 협정을 법제화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권한이긴 하지만, 나는 이에 따라 한국의 자동차, 목재, 의약품을 비롯한 모든 품목에 대한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 김원철 기자 >

 

트럼프 관세 인상 돌발카드 왜…대미투자법 통과 지연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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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기 취임 1주년을 맞은 2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제임스 S. 브래디 기자회견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가 한·미 간 무역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 및 품목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이미 관세 인하 조치를 단행해 한국 기업들이 혜택을 보고 있음에도, 관세인하의 반대급부인 대미투자를 위한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것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무역 협정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합의된 거래에 따라 신속하게 관세를 낮췄고, 당연히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도 같은 조처를 하길 기대한다”며 “그러나 한국 입법부는 미국과의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과 지난해 7월 30일 양국 모두에 훌륭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10월 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왜 한국 국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나”라며 “한국의 자동차, 목재, 의약품을 비롯한 모든 품목에 대한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는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 정부는 한국산 제품에 대해 지난해 8월7일부터 상호관세를, 지난해 11월 1일부터는 자동차·부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각각 25%에서 15%로 낮췄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미국이 먼저 관세를 인하했음에도 한국에선 대미 투자를 위한 법제화가 더디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선 한국의 합의 이행 과정이 더디다는 불만이 누적돼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 투자의 법적 근거가 될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대미투자특별법)은 현재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한미 무역합의의 법적 성격을 둘러싼 여야의 해석이 엇갈리기 때문에 처리에 속도가 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미 무역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이므로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없다고 본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26일 의원 입법 형태로 대미투자특별법을 발의했으며, 이 법안을 통해 무역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헌법 제60조 1항을 들어 맞서고 있다. 3500억 달러(약 5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투자 규모는 사실상 조약에 준하기 때문에 특별법 처리에 앞서 무역합의 비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법안 소관 상임위인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의 위원장은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다.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 상정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김원철 기자 >

 

청와대 “미, 상호관세 인상 설명 없어…곧 러트닉과 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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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연합
 

청와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25%로 인상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대책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관련 내용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경부도 “현재 미측의 의중을 파악 중에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대변인실은 27일 언론공지를 통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한국 국회의 대미 전략투자 특별법 상정 지연을 이유로 자동차 품목 관세와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게시했다”며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나 세부 내용에 대한 설명은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대한민국 국회가 미국과의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국산 자동차와 목재, 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즉각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무역 합의는 미국에게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는 합의된 거래 조건에 따라 신속하게 관세를 인하해 왔고 우리의 교역 상대국들도 동일하게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오늘 오전 정책실장 주재로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대책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현재 캐나다에 체류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조속히 미국을 방문해 러트닉 상무장관과 관련 내용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경부 대변인실도 이날 공지를 통해 “앞으로 한국 국회의 법안 논의 상황을 미측에 설명해 나가는 등 미국 정부와 소통할 것”이라며 “당초 오늘 오후에 예정된 부총리-재경위원장 면담 등을 통해 특별법안에 대한 국회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었으며, 이를 포함하여 앞으로도 국회와 적극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신형철  박수지 기자 >

 

민주 정태호 “한미 투자 특별법 정상적 입법 절차 중”

트럼프 ‘한국 국회 합의 불이행’ 탓 관세 인상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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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차트를 들고 상호 관세 부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가 한·미 간 무역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상호관세를 다시 25%로 인상한다고 밝히자, 더불어민주당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정상적인 입법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여당 간사인 정태호 의원은 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재 5개의 한·미투자법(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이 발의돼 있다”며 “숙려 기간이 지나면 당연히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의원은 또 “입법 지연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실무적 어필을 받은 바 없다”며 “(지난해 11월) 한·미가 합의한 것은 관련 법안을 발의한다는 것이었고, 통과 시점은 (정해진 게) 없었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병기 의원(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을 비롯해 안도걸·진성준·홍기원(이상 민주당)·박성훈(국민의힘) 의원이 한-미 관세협상 타결 직후인 지난해 11월 이후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재경위에서는 이후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정 의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엔 조세심의, 이달에는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로 개별 법안 심의를 할 여유가 없었다”며 “향후 정상적 절차에 따라 심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쪽에선 소관 상임위인 재경위 위원장이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인 데다가, 연간 200억달러 대규모 대미 투자와 관련된 사안인 만큼 야당과의 합의 없이 법안을 서둘러 일방 처리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민의힘이 비준을 반대하는 가운데 소속 의원이 따로 법안도 냈다. 여·야가 법안을 다 낸 만큼 법안을 (상임위에) 상정해서 논의를 해나가면 된다”며 “법안이 발의된 지 두달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안은 국민의힘이 협의해주면 신속하게 처리하면 된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합의 이전으로 관세를 되돌리는 발표를 하며) 표면적으로 밝힌 이유가 전부인지 더 파악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안 자체가 제정법인데다가 (대미 투자 금액이 연간 200억달러에 달하는 만큼) 간단하게 처리할 게 아니라 숙려가 필요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 고한솔  기민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