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자 정해지면 당대표·총리 사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해 12월16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열린 자유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오타와/로이터 연합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6일 사임을 발표했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오타와의 리도 코티지(관저 인근에 있는 총리 거주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이 새 지도자를 선출한 후 당 대표와 총리직을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시엔엔(CNN)과 가디언 등은 글로브 앤 메일을 인용해 트뤼도 총리가 8일 주요 전국 의원총회를 앞두고 이르면 6일 사임을 발표할 것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은 1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한 세기 이상 선거 전 지지율로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말 약 20명의 자유당 의원들은 이미 트뤼도 총리의 사임을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올해 예정된 연방 선거 패배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이웃인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 것도 트뤼도 총리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최근 트럼프 당선자는 캐나다에 25%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하며, 트뤼도 총리를 향해 51번째 주지사라고 부르는 등 외교적 결례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들이 많았다.

 

자유당보다 지지율이 앞선 보수당의 피에르 푸알리에브르 대표는 선거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2015년 11월 43살의 나이로 취임한 트뤼도 총리는 법무장관에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원주민 출신을 임명하는 등 진보정치를 이끌고자 했으나 임기 후반 경제적 불만이 증가해 지지율이 하락했다. 트뤼도 총리의 아버지는 1968~1979년, 1980~1984년까지 17년 동안 총리를 지낸 캐나다 정치의 거목 피에르 트뤼도이다.        < 한겨레 최우리 기자 >

 

2015년부터 집권 유지한 '장수 총리'…고물가·이민자 문제로 인기 하락

트럼프 '25% 관세폭탄' 대응두고 동맹세력 잇따라 등돌리며 '사면초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야권 연합의 내각 불신임으로 총리직을 위협받아 온 쥐스탱 트뤼도(53) 캐나다 총리가 6일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 자유당이 자신의 후임자를 정하는 대로 당 대표직과 총리직에서 즉시 사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당이 차기 대표를 선출한 이후 당 대표직과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나라는 다음 선거에서 진정한 선택지를 선택할 자격이 있다"며 "내가 내부에서 싸움을 벌여야 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내가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점이 자명해졌다"라고 덧붙였다.

 

캐나다 하원은 당초 오는 27일 회기를 재개해 야당을 중심으로 내각 불신임안을 추진할 예정이었지만, 트뤼도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오는 3월 24일 재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기간 집권 자유당은 차기 당 대표를 선출할 전망이다.

 

트뤼도 총리는 2015년 11월부터 9년 넘게 캐나다의 총리직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고물가와 주택가격 상승, 이민자 문제 등으로 국민 불만이 누적되면서 트뤼도 총리에 대한 지지도는 최근 2년여간 하락세를 보여왔다.

이런 가운데 동맹 세력들이 잇따라 등을 돌리고 집권 여당이 다음 총선에서 패배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트뤼도 총리는 정치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바 있다.

 

중도 좌파 성향의 집권 자유당은 지난 2021년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단독 과반 의석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이 때문에 2022년부터 제3야당인 신민주당과 정책 연합을 맺고 의회 협력 체제를 구축해 하원 내에서 입지를 보장받아왔다.

 

특히 트뤼도 총리를 향한 퇴진 압박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캐나다를 상대로 '관세 폭탄'을 예고한 이후 본격적으로 가시화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캐나다가 국경 문제와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취임 첫날부터 모든 캐나다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미 폭스뉴스는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11월 29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을 찾은 트뤼도 총리와의 만찬에서 고율 관세 부과 시 캐나다 경제가 죽을 것이라고 호소하자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며 '뼈 있는 농담'을 건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트럼프 관세' 대응 문제 등을 두고 트뤼도 총리와 충돌하며 지난달 16일 전격 사임했고, 이로 인해 당 안팎에서 사퇴 여론이 급부상했다.

나아가 정책 연합을 맺어왔던 저그밋 싱 캐나다 신민주당(NDP) 대표가 지난달 20일 정부 불신임안 제출을 예고하면서 트뤼도 총리는 정치적으로 고립됐다.   < 연합 이지헌 기자 >

 

'트뤼도 사퇴' 여론 불붙인 전직 재무장관, 후임 총리 물망에

'트뤼도 절친' 현 재무장관·인도 '외교 전쟁' 이끈 외무장관 등도 거론

 

사임 의사를 밝힌 쥐스탱 트뤼도(53) 캐나다 총리의 후임으로 사퇴 여론에 불을 붙인 전직 재무장관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6일 크리스티나 프릴랜드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비롯해 트뤼도 총리의 오랜 친구인 도미니크 르블랑 재무장관, 멜라니 졸리 외무장관, 마크 카니 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등이 후임 총리 후보로 거론된다고 전했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 캐나다 재무장관

 

이 중 가장 주목받는 프릴랜드 전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5% 관세 정책에 대한 대응 문제를 두고 트뤼도 총리와 충돌하며 지난 달 전격 사임해 트뤼도 총리 퇴진론에 불을 붙인 주인공이다.

 

그는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려는 트뤼도 총리의 계획에 반대하며 다가오는 미국과의 관세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핵심 측근이었던 프릴랜드 전 장관이 등을 돌리면서 이미 고물가와 주택 가격 상승 등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던 트뤼도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결정타를 맞았다.

프릴랜드 전 장관은 오는 20일 취임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1기 행정부당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협상을 이끌기도 했다.

 

도미니크 르블랑 캐나다 재무장관

 

프릴랜드 전 장관의 후임으로 재무장관에 임명된 르블랑 장관도 트뤼도 총리의 후임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된다.

 

트뤼도 총리와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인 그는 2000년 의회에 입성, 트뤼도 내각에서 공공 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각종 요직을 맡아왔다.

2012년에는 직접 자유당 대표 출마를 고려하기도 했으나 트뤼도 총리의 출마 계획을 듣고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무장관

 

이 외에 최근 인도와의 외교 갈등에서 인도 외교관 추방을 결정하며 앞장섰던 졸리 외무장관 등도 후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또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 총재를 거쳐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카니도 최근 당 대표직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캐나다 매체들이 전했다.

 

현재 캐나다의 총리는 하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보유한 자유당의 대표가 맡는다. 트뤼도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힌 만큼 당이 선출하는 후임 대표가 총리직도 수행하게 된다. < 연합 임지우 기자 >

 

'사임' 트뤼도의 추락…진보정치 아이콘서 트럼프의 놀림감으로

2015년 '연예인급 인기' 총리 취임…국민 피로감에 9년여만에 사임

'트럼프 관세' 대응과정서 동맹세력 잇따라 등돌리며 '예고된 퇴장'

 

                                       사임 계획 발표하는 트뤼도 총리

 

쥐스탱 트뤼도(53) 캐나다 총리가 6일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9년여 만에 '진보 정치의 아이콘'에서 역대 캐나다 총리 중 가장 인기 없는 인물로 정치 경력을 마무리 짓게 됐다.

 

한때 캐나다는 물론 외국에서도 반향을 일으키는 40대의 '훈남 스타 정치인'이었지만 고물가와 이민자 문제 등에서의 정책 실패 등으로 국민들의 피로감이 커진 탓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의회에서 대선 승리를 최종적으로 공식 인증받는 날 사임 계획을 발표한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을 좋아한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조롱까지 받아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트뤼도 총리를 '주지사'라고 칭하기도 했다.

 

◇ 연예인급 인기 '스타 정치인'으로 등장…오바마와 브로맨스 과시

 

트뤼도 총리는 지난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누르고 10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 국내외에서 연예인급 인기를 거머쥔 스타 정치인이었다.

 

트뤼도는 캐나다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1968∼1979년, 1980∼1984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총리를 지낸 캐나다 정치의 거목 피에르 트뤼도(1919∼2000년)의 장남이다.

부친의 후광을 엎고 사교적 성품과 진보적 가치를 앞세워 2013년 자유당 당수로 선출되는 이변을 일으켰으며, 2015년 11월 총리에 취임했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오바마 미 전 대통령(2016년 )

 

총리 취임 당시 '캐나다의 오바마'로도 불렸던 트뤼도는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았고, 취임 직후 미국을 국빈 방문하며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며 '브로맨스'(남성 간 우정)를 과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지도자가 됐다는 공통점에 더해 진보적인 정책 기조,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이념 성향 등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았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트뤼도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며 우정을 이어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처음 대선 승리를 거머쥐자 그와의 정치적 차별점을 부각하며 진보 성향 지도자로서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 2019년 조디 윌슨-레이볼드 전 법무부 장관이 비리 수사를 받은 캐나다 최대 건설사 SNC-라발린을 선처하도록 자신에게 압력을 넣었다고 폭로하면서 정치적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가 이끄는 집권 자유당은 2019년 총선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SNC-라발린 스캔들 등 여파로 단독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연정으로 국정을 운영해야만 했다.

이후 팬데믹 위기와 고물가 충격 등이 닥치면서 그의 인기와 명성은 하락세를 지속했다.

 

                                    총선 승리 후 어머니와 마주한 트뤼도 총리(2015년 10월)

 

◇ 고물가 여파 가계 고통 …이민자 문제로 인기 하락 가중

 

트뤼도 총리의 인기 추락을 불러온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는 팬데믹 이후 나타난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가계의 고통이 커진 점이 꼽힌다.

또한 고물가 상황에서 탄소세 인상을 야당과 지방정부의 강력한 반대 속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도 지지율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

나아가 트뤼도 행정부 기간 늘어난 이민자 유입이 주택 부족 등을 야기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국민의 피로도가 커졌고, 이는 보수 야당에 대한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3년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한 시크교 사원 주차장에서 캐나다 국적의 시크교 분리주의 지도자가 괴한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일을 계기로 인도와 상대국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등 외교 갈등이 격화되기도 했다.

 

◇ 트럼프 폭탄관세 대응 속 동맹세력 잇따라 등돌리며 '사면초가'

 

고물가와 주택가격 상승 등에 따른 국민 불만으로 트뤼도 총리에 대한 지지도는 하락세를 보여왔고, 이에 따라 트뤼도 총리의 당 안팎에선 일찌감치 그를 향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줄기차게 제기돼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1년 6개월간 여론조사에서 집권 자유당은 선거 시 야당인 보수당에 패배할 것으로 나타났다.

 

트뤼도 총리의 지지율은 약 20% 수준으로 떨어졌고, 보수당과의 지지율 차이는 20%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진 상태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핵심 지지 세력이었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재정 정책을 두고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충돌하며 지난달 16일 전격 사임한 이후 트뤼도 총리의 퇴진론은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가 예고한 25% 고율 관세 대응 문제 등을 두고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충돌한 게 계기였다.

당시 로이터 통신은 "프리랜드 장관의 사퇴는 트뤼도 총리 취임 후 직면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라며 "다음 총선에서 야당인 보수당에게 패배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핵심 동맹을 잃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리랜드 장관 사임 발표 나흘 뒤인 20일 집권 자유당과 정책 연합을 맺어왔던 진보 성향 신민주당(NDP)이 정부 불신임안 제출을 예고하고 나선 것은 트뤼도 총리에게 결정타가 됐다.

자유당이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야당이 불신임안을 지지한다면 트뤼도 총리는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며 캐나다는 조기 총선 실시가 불가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임 기자회견하는 트뤼도 총리

 

결국 크리스마스 및 새해 연휴가 끝난 6일 트뤼도 총리는 추운 겨울 날씨 속 관저 앞 야외에서 기자들 앞에 서며 "이제는 리셋할 시간"이라며 사임 계획을 발표했다.

 

캐나다의 정치평론가 브루스 앤더슨은 WSJ에 "지난 몇 년간 트뤼도는 효과적인 정치인이 아니었다"며 "마치 정치적 안테나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였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선 승리를 공식 인증받은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자신이 설립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캐나다의 많은 사람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을 좋아한다"라며 또다시 조롱성 발언을 했다.

 

그는 "미국은 캐나다가 버티기 위해 필요로 하는 막대한 무역적자와 보조금을 더는 감내할 수 없다"며 "트뤼도도 이를 알고 사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캐나다가 국경 문제와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취임 첫날부터 모든 캐나다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미 폭스뉴스는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29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을 찾은 트뤼도 총리와의 만찬에서 고율 관세 부과 시 캐나다 경제가 죽을 것이라고 호소하자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트루스 소셜 글에서 "캐나다가 미국과 합병하면 관세도 없고 세금도 내려갈 것이며 그들을 끊임없이 둘러싸는 러시아와 중국 배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연합 이지헌 기자 >

 

 

뉴욕남부연방지검 작년 권씨 형사기소…뱅크먼-프리드는 1심서 징역 25년

미증권당국, 권씨상대 민사소송 이미 승소…권씨 6조5천억원 벌금납부 합의

 

                                    미국 송환 결정된 권도형씨(2024년 3월) [로이터 연합]
 

 31일(현지시간)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3) 씨의 신병이 미국으로 인도되면서 권씨는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의 사건을 담당한 같은 검찰청과 같은 법원의 관할 아래 형사재판을 받게 됐다.

앞서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검은 2023년 3월 권씨가 몬테네그로에서 검거된 직후 권씨를 증권 사기,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상품사기, 시세조종 공모 등 총 8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테라폼랩스 발행 가상화폐 테라USD(UST)의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해 투자자들을 속이고 TV 인터뷰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허위 정보를 퍼뜨린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미국의 한 투자회사와 공모해 테라의 시세를 조종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직접 출석해야 하는 까닭에 권씨 형사재판은 기소 이후 추가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왔다.

뱅크먼-프리드 사건 브리핑하는 전 뉴욕 남부연방지검장 [EPA 연합]
 

권씨를 기소한 뉴욕 남부연방지검은 각종 대형 사건을 처리해온 미국 내 최고 정예 검찰 조직으로 유명하다.

뉴욕 남부연방지검장은 대형 금융사들이 위치한 뉴욕 맨해튼을 관할하며 각종 화이트칼라 범죄를 지휘하다 보니 '월가 저승사자'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가상화폐 관련 주요 범죄사건 처리를 도맡아 오기도 했다.

고객 자금 수십억 달러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은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뱅크먼-프리드 역시 이곳에서 사건을 맡았다.

뱅크먼-프리드는 2022년 12월 FTX 소재지인 바하마에서 미국으로 송환된 바 있다. 그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지난해 8월 보석이 취소되면서 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았다.

권씨 재판 역시 뱅크먼-프리드 재판을 맡은 뉴욕 남부연방지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법정 나서는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2023년 7월) [EPA 연합]
 

권씨가 미국에서 유죄로 인정된다면 중형과 함께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몰수를 선고받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뉴욕 남부지검은 국경을 초월해 벌어진 가상화폐 관련 범죄 사건이라도 예외 없이 처벌 대상이 된다는 방침을 강조해왔다.

뱅크먼-프리드를 기소한 데이미언 윌리엄스 전 뉴욕 남부지검장은 지난 2022년 7월 한 가상화폐 사기 사건 관련자 기소 후 성명에서 "웹3(블록체인 기반 웹)는 무법지대가 아니다"라며 "블록체인에서 발생했든 월가에서 발생했든 사기는 사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의 징역형이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해 이론상 징역 100년형 이상도 가능하다.

다만, 미 연방법원의 양형 지침이 유연하다 보니 실제 선고되는 형량이 사건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금융사기 범죄의 형량을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뱅크먼-프리드 역시 7개 범죄 혐의에 모두 유죄 평결이 나오자 최대 1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지만 실제 선고된 형량은 징역 25년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사기극을 벌인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의 경우 지난 2022년 징역 11년 형을 받았다.

다만, 사상 최대인 640억달러(약 94조원) 규모의 다단계 금융사기(폰지 사기) 사건을 저지른 희대의 미국 금융사범 버나드 메이도프(2021년 사망)의 경우 2009년 연방 법원에서 징역 150년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다.

                                             미국으로 범죄인 인도되는 권도형(가운데) [몬테네그로 경찰청 제공]
 

권씨는 형사재판에 앞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기한 소송에서 이미 패소한 상태다.

패소 이후 권씨는 SEC와 44억7천만 달러(약 6조5천억원) 규모의 환수금 및 벌금 납부에 합의했다.

앞서 미 증권 당국인 SEC는 2021년 11월 권씨와 테라폼랩스가 테라의 안정성과 관련해 투자자들을 속여 거액의 투자 손실을 입혔다면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재판은 권씨를 상대로 제기된 형사재판과는 별도로 제기된 민사재판으로, 피고인이 직접 출석하지 않은 채 진행됐다.

현지 몬테네그로 일간지 비예스티, 포베다에 따르면 몬테네그로 경찰청은 이날 권씨의 신병을 미국으로 인도했다. 지난해 3월 23일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체포된 지 1년 9개월여만이다.

권씨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여권 혐의로 체포되자 한국과 미국은 거의 동시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며 치열하게 신병 확보 경쟁을 벌여왔다.

권씨는 가상화폐 테라·루나를 발행해 한때 주목받았던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다.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인한 전 세계 투자자들의 피해액은 5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 연합 이지헌 특파원 >

 미국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장수
 퇴임 이후 더 빛난 대통령으로 기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02년 12월 노벨평화상 상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각) 100살을 일기로 별세했다.

카터는 2023년 2월 이후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돌봄을 받아온 고향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집에서 눈을 감았다고 그의 가족이 밝혔다. 아들 칩 카터는 “아버지는 나뿐 아니라 평화, 인권, 사심 없는 사랑을 믿는 사람들 모두의 영웅이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카터는 미국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장수했다. 정치적으로는 4년 단임(1977~1981년)에 그치면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불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백악관을 나온 이후 중동과 한반도 등의 평화 문제에 적극 나섰다. 자원봉사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세계 평화를 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고 퇴임 이후가 더 빛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카터는 1924년 조지아주의 시골 플레인스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 졸업 뒤 당시 개발이 본격화된 핵잠수함 분야에 배치돼 촉망 받는 장교였다. 그러나 1953년 땅콩 농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군복을 벗고 가업을 물려받았다.

카터는 1960년대에 들어 조지아주 등 남부를 중심으로 흑인들의 권리를 위한 민권운동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 흑백 통합을 주장하며 1962년에 조지아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1970년에는 조지아 주지사로 당선됐다. 이어 전국적 지명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당 후보로 대권에 도전해 1976년 선거에서 승리해 제39대 미국 대통령이 됐다.

선거 상대인 공화당 소속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그늘에서 못 벗어난 것도 그의 승리에 기여했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포드는 닉슨이 1974년 8월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사임하자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는데, 이후 닉슨을 사면해준 게 여론의 반발을 불렀다.

카터는 재임기에 높은 물가와 이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 등의 탓에 인기가 높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특히 대선이 있던 해인 1980년에 발생한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구출 실패 사건이 결정적으로 재선 행보의 발목을 잡았다. 이란 학생들은 1979년 11월에 미국대사관에서 직원들과 그 가족 등 90명을 인질로 잡았는데, 1980년 4월에 이들을 구출하려는 ‘독수리 발톱 작전’ 과정에서 헬리콥터와 수송기가 충돌해 미군 특공대원 8명이 숨졌다.

카터는 같은 해 11월 선거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했다. 외교에서 도덕적 가치를 내세운 카터는 재임 때 한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이유로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는 등 박정희 정권과 대립하기도 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차 북핵 위기 때인 1994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있다.
 

카터는 퇴임 뒤 아내 로잘린과 함께 ‘사랑의 집 짓기’ 운동에 참여하는 등 봉사와 평화 정착 활동에 나섰다.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1994년에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그와 김 주석은 미국이 제재 추진을 중단하면 북한도 핵개발을 동결한다는 합의를 했고, 전쟁 발발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이던 한반도 긴장이 완화됐다. 이는 그해 10월 북·미가 제네바합의에 이르는 데도 기여했다. 또 카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2개 국가 해법’ 실현을 위해 나서는 등 중동 평화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카터는 재임 때인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평화 협정(캠프데이비드협정)을 중재하고 퇴임 뒤에도 세계 곳곳의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카터는 말년에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을 걱정하기도 했다. 10월1일에 만 100살이 된 그는 8월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손자를 통해 밝혔다. 그는 생일 직후 사전투표를 했지만 해리스는 낙선했다.

카터의 동향인으로 그와 77년간 결혼 생활을 한 아내 로잘린은 지난해 11월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집에서 먼저 세상을 떠났다.   <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

‘별세’ 지미 카터 전 대통령…냉전 승리와 미국 혁신 기반 만들어

퇴임 뒤 빛을 발한 전직 대통령 롤 모델
‘유약해 보였으나 가장 강한 대통령’
진보적 가치와 독실한 기독교 신념이 대중에 호소
퇴임 뒤에는 평화봉사로 존경받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21년 7월10일 결혼 75돌 축하연에서 아내 로잘린의 발언을 듣고 있다. AP 연합
 

‘재임 때보다는 퇴임 뒤에 빛을 발한 대통령’

29일 100살을 일기로 별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흔히 퇴임 대통령의 ‘롤 모델’로 평가받는다. 그가 퇴임 뒤 펼친 분쟁 해소를 위한 평화 활동 및 지역 봉사 때문만은 아니다. 혹평을 받았던 재임 시절의 정책도 시간이 갈수록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1977년부터 81년까지 카터의 재임 동안 경제불황, 석유 위기,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사태 등으로 미국의 위상과 지위는 바닥을 쳤다. 이런 ‘미국의 위기’시기에 카터는 인권 외교와 도덕 정치만을 앞세운 ‘유약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정책과 대응은 미국을 혁신하고, 소련 붕괴의 씨를 뿌려 냉전에서 미국을 승자로 만든 기반을 조성했다는 평가를 뒤늦게 받고 있다. 이는 퇴임 뒤 그가 펼친 헌신적인 평화 및 봉사 활동과 맞물려, 가장 성공적인 전직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지아 플레인즈의 땅콩 농장 집안에서 1924년에 태어난 카터는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복음교단인 남침례교의 독실한 신자로 성장했다.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잠수함 장교로 근무했다. 부친이 숨지자 퇴역해 가업을 물려받았다. 아버지의 빚과 형제 사이의 재산분할로 카터는 거의 물려받은 것이 없었지만 땅콩 농장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고향에서 땅콩 농장을 경영하던 1950~60년대, 미국 남부에는 민권운동이 몰아쳤다. 보수적인 고향 분위기에도 그의 양심적인 기독교 신앙은 흑백분리 반대와 민권운동 찬성으로 그를 이끌었고, 이는 그가 정계로 나가는 동기가 됐다.

1979년 3월 캠프데이비드 협정에 따라 맺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 평화조약 체결식 때 미국 백악관에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당시 대통령(왼쪽부터)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악수를 하고 있다. 카터 센터
 

그는 1963년 조지아 주의회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데 이어, 1970년에는 주지사로도 선출됐다. 카터는 민주당 주지사 후보 경선에서 소수인종을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배려 정책)에 기반한 흑백분리 반대를 내걸고, 현직 주지사를 물리쳤다. 그가 주지사로 재직하던 1970년대 전반은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전 후유증으로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실망이 절정에 오를 때였다.

무명의 시골 주지사였던 카터는 1975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되자 출사표를 던지며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그는 참신했고 신뢰할 수 있는 경력이 있었고 그가 내세운 ‘인권과 도덕’은 좌우를 넘어 호소력을 발휘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 해군 장교, 땅콩 농장 경영주, 민권운동 정치인이란 경력을 가진 카터는 도덕성이 실추한 기존 정치권을 질타하는 ‘도덕과 인권’ 가치를 내세워, 진보와 보수 양 진영 유권자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진보적인 가치를 설파하는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 카터는 기독교 우파 세력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아냈다. 이에 힘입어 카터는 닉슨 사임 뒤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를 간발의 차로 누르고 1976년 당선됐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8월 애틀랜타주 조지아에 있는 카터센터에서 자신의 암 투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카터 센터
 

취임 뒤 그는 대외정책에서 인권 외교 및 분쟁 해소를 내세웠다. 친미 동맹국들의 인권탄압에도 강경하게 대처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당시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압력을 가했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 공약까지 내걸었다. 주한미군 철수는 미 군부 내의 강경한 반대로 백지화됐으나, 카터의 압박은 유신체제 붕괴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중동에서 최대 친미 동맹국이었던 이란의 팔레비 국왕 체제에도 압력을 가해, 반정부 세력이 활성화됐다. 이는 1979년 팔레비 왕조를 타도한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란 이슬람 혁명은 과격파 학생들이 테헤란에 있는 주 이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해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삼는 사태로 이어져 카터의 재선을 무산시킨 부메랑이 되기도 했다.

1994년 6월17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일성(오른쪽) 북한 주석이 대동강 유람선 위에서 두번째 회담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재임 시절 카터는 대외정책에서 굴직한 치적들을 남겼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역사적인 평화조약인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중재했고, 미국 제국주의의 상징인 파나마 운하를 반환했으며, 소련과의 전략무기제한협정2(SALT2)를 타결지었다. 하지만, 오일쇼크에 이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다가 임기 후반기에 들어서는 1979년 이란이슬람혁명으로 2차 오일쇼크가 엄습했다. 스리마일 핵발전소 사고,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위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이 겹치며 지지율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특히,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위기와 구출작전의 실패는 재선을 앞둔 카터에게 치명적 타격이 됐다.

1980년 대선에서 카터는 강한 미국을 주장한 공화당의 보수파 로널드 레이건에게 대부분의 주에서 패배해, 압도적인 선거인단 표차로 참패했다. 공화당과 보수파들은 인권과 도덕이라는 이상주의만 내세운 카터가 소련 등 경쟁국에 무른 대응을 해서 미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고 공격했고, 이런 평가는 공식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그의 국내외 정책은 미국을 혁신하고 냉전에서 승리하게 한 원동력으로 재평가받는다.

우선, 그는 소련의 인권문제와 관련해,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의 반체제 세력을 후원하는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여 1980년대 후반 소련 및 사회주의권 붕괴의 씨앗을 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맞서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주도하고, 소련을 아프간 수렁에 빠뜨린 무자헤딘 투쟁을 적극 지원했다. 보수파 및 군비확산론자들이 반대하던 전략무기제한협상2를 타결해, 방만한 미 국방비를 줄이면서도 군비 현대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는 미국이 1980년대 레이건 시절 소련을 압도하는 군사력 우위를 구축하는 바탕이 됐다.

1960년대부터 미국 대통령과 대외정책을 지켜보며 중앙정보국장 및 국방장관을 역임한 공화당 계열의 로버트 게이츠는 가장 유약하다고 평가받은 카터가 사실은 소련 붕괴의 씨앗을 뿌린 가장 강경한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카터 행정부의 선전과 비밀공작이 궁극적으로 소련 붕괴를 가져온 체제 균열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또, 게이츠는 카터 시절에 린든 존슨 행정부 시절부터 추진해온 국방 현대화와 전략무기 세대교체가 본격적 결실을 맺었다고 강조했다. 오일 쇼크에 대처하기 위한 연비 효율화 및 대체에너지 개발 등도 카터 때 시작됐다. 이 모든 정책은 소련을 압도하는 미국의 경쟁력으로 나타났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유례없는 참패로 재선에 실패한 카터는 대중들에게 잊혔다가 1980년대 중반부터 정력적인 사회활동으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는 1982년 카터센터를 세워 인권 신장에 나섰고, 세계 각국을 돌면서 평화협상, 선거감시, 질병퇴치 등의 활동을 이끌었다. 특히, 현재 활발한 국제적인 선거감시 활동도 그에 힘입었다.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폭격을 을러대던 1차 한반도 북핵위기 때 대담하게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면담을 통해 북-미 협상과 남북정상회담을 중재한 것도 퇴임 뒤 그의 대표적인 평화협상 행보로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 인권 보장을 주장하고 이스라엘의 평화협상 파기를 일관되게 비난해, 미국 보수파들의 공적이 됐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2년 그는 이런 활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노숙인들과 무주택자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은 그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80살이 넘은 그가 망치를 잡고 집을 짓는 모습은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줬다. 그는 집짓기 노동으로 몇번이나 낙상해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 한겨레 정의길 기자 >

 

노바스코샤 핼리팩스 스탠필드 국제공항 착륙 여객기 랜딩기어 이상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멈춰 선 캐나다 PAL항공 여객기 [핼리팩스 AP=연합]
 

캐나다에서도 랜딩기어 이상으로 여객기가 착륙 도중 위험한 상황을 맞았으나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AP통신과 CNN 방송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캐나다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스에서 73명의 승객을 태우고 출발한 PAL 항공 AC2259편 여객기가 전날 밤 9시30분께 노바스코샤 핼리팩스 스탠필드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랜딩기어 이상으로 추정되는 기체 결함으로 기체에서 불꽃이 발생하는 위험한 상황을 맞았다.

사고기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멈춰 섰으며 73명의 승객과 승무원은 곧바로 버스를 이용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이번 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PAL 항공 제휴사인 에어 캐나다는 사고 기종이 쌍발기인 드 해빌랜드 DHC-8-402(봉바르디에 Q400)이며 착륙 도중 랜딩기어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스탠필드 국제공항은 사고 직후 일시적으로 항공기 이착륙을 중단시켰으나 90여분 만에 1개 활주로의 운영을 재개했다.

캐나다 교통안전위원회(TSB)는 이번 사건을 조사할 예정이다.

사고기 승객인 니키 발렌타인은 착륙 도중 비행기가 상당히 흔들렸다면서 기체 왼쪽에서 불이 났으며 창문으로 연기가 들어왔다고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연합 김계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