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 동안 고용에 대한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 성명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신화 연합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또다시 0.25%포인트 인하했다. 그러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오는 12월 추가 인하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뉴욕 증시는 하락 반전했다.

 

연준 산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9일(현지시각) 10대 2의 표결로 기준금리를 3.75%~4.00% 구간으로 낮췄다. 두 분기 연속 인하 결정이다. 연준은 양적긴축(QT) 정책, 즉 자산 축소 작업도 오는 12월 1일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목표치보다 높은 수준에 있지만, 최근 고용 불안이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서는 스티븐 미란 이사가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자고 주장하며 반대표를 던졌고, 제프리 슈미드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는 금리 동결을 주장하며 반대했다. 미란 이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로, 금리 인하를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회의 뒤 발표된 성명문은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 없이, 고용 시장의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한 우려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성명은 “최근 몇 달 동안 고용에 대한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의에서 12월 방향을 두고 의견이 상당히 엇갈렸다”며 “추가 인하는 정해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준의 정책 결정은 현재 심각한 데이터 부족 속에서 내려지고 있다. 정부 셧다운의 여파로 9월 고용 보고서조차 발표되지 못했고, 10월 고용 상황이 집계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최근 발표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예상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하면서, 연준이 인플레이션보다는 고용시장 둔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시각을 뒷받침했다.

 

양적긴축 종료도 주목할 대목이다. 연준은 그동안 매달 일정 규모의 국채 및 주택저당증권(MBS)을 만기 이후 재투자하지 않고 대차대조표에서 제외해 왔으며, 이를 통해 약 2조 3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축소했다. 하지만 단기금융시장에 일부 긴축 신호가 나타나면서 연준은 양적긴축 종료 시점이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

"그들은 많은 핵무기 보유…김정은과의 만남에 100% 열려있어"

순방기간 '깜짝회동' 성사 강한 의욕으로 유인하는 계산된 발언으로 관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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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국가)라고 또 다시 언급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현실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깜짝 회동을 위해 김 위원장을 유인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25일 백악관 공동 취재단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순방길에 미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 안에서 전날 언론과 가진 문답에서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려면 뉴클리어 파워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에 열려 있느냐'는 질의에 "나는 그들이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내 말은, 나는 그들(북한)이 얼마나 많은 무기를 갖고 있는지 알고 있고,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나는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그들이 뉴클리어 파워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글쎄, 나는 그들이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뉴클리어 파워'라는 용어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취임 당일인 지난 1월 20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뤄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뉴클리어 파워"라고 칭하고서 "내가 돌아온 것을 그가 반기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뉴클리어 파워'라 다시 지칭하며 북한을 인도와 파키스탄 등 사실상의 핵보유국과 같은 선상에 놓는 듯한 언급을 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북한이 핵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인식을 재확인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대북 정책은 변함이 없다"고 밝혀왔다. 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기존 미국 정부의 원칙과 목표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됐다.

 

즉,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는 견지하되,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현실은 그것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인식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동시에 김 위원장을 향해 만나고 싶다는 뜻을 강력하게 표명했다.

 

그는 한국 방문 도중 김 위원장과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날 가능성을 묻자 "그가 연락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며 "지난 번(2019년 6월) 그를 만났을 때 나는 내가 한국에 온다는 걸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가 만나고 싶다면, 나는 분명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언론에 "(내가 한국에 간다는 걸) 알려준다면 나는 열려 있다"며 "그쪽(북한)은 전화 서비스가 거의 없다. 핵무기는 많지만, 전화 서비스는 부족하다. 그(김 위원장)는 내가 (한국에) 간다는 걸 아마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터넷 말고는 방법이 별로 없다. 알다시피, 전화 서비스가 거의 없다"며 "하지만, 그는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를 만나는 데에) 100% 열려 있다. 나는 그와 아주 잘 지냈다"고 강조했다.


                                      2019년 6월 판문점서 만난 북미 정상 [연합]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핵보유국' 발언은 경주에서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방한(29~30일) 기간 중 김 위원장과의 '깜짝 회동'을 성사시키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유인책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때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북한 관영매체들에 보도됐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포기'를 북미대화의 조건으로 사실상 거론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문제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현실을 인정'하라는 김 위원장의 요구에 일정부분 호응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호응 여부에 따라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이뤄졌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깜짝 회동'이 재연될 수 있을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대언론 전화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물론 미래에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이번 순방 일정에는 없다"고 답했다.

 

다만 이 당국자는 "물론 변동이 생길 수는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 기간 한국에서 만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만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만 이슈는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논의 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오는 30일 부산에서 양자 회담을 할 예정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반중 인사이자 홍콩 빈과일보(2021년 폐간) 전 사주로 수년간 구금 상태인 지미 라이가 석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순방 중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의 회동을 기대하며 관세 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러시아의 해결 의지를 믿는다고 밝혔으며, 평화 협상 과정에서 중국의 도움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밤(아시아 기준 25일 낮)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워싱턴 DC를 출발했으며, 4박 5일간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을 차례로 방문한다.       

                                                                             <  신창용 김아람 박성민 기자 >

미중 관세전쟁의 승자이자 ‘게임 체인저’는 중국

● WORLD 2025. 10. 25. 11:5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이코노미스트 “중국이 이기는 이유” 분석

미국이 쓴 수법을 역이용해 미국을 이기는 중국
중국이 미국 이기는 첫째 이유-토대와 전략의 우위
중국이 이기는 두 번째 이유-대안적 규범 창출 주도
세 번째 이유-미국 도발이 오히려 중국 강화시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한 4월 12일 닷새 뒤인 17일 제작된 이미지 그림. 미국 국기와 "관세"라는 단어가 그려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묘사했다. 2025.4.17. 로이터 연합
 

오는 31일 경주에서 개막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주석도 참석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경주에서 만나더라도 최대 현안인 미중 ‘관세전쟁’(무역분쟁)에 관해 제대로 얘기할지, 따로 정상회담을 열기나 할지도 지금으로선 불확실하다. 두 나라는 최근 몇 주 동안 서로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상호 보복조치를 공언하고 대화통로조차 제대로 열어 놓지 않았다. 이른바 G2의 두 나라가 이런 현실에 처해 있는 상황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미국 재무부 장관 스콧 베센트가 10월 15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IMF(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례 회의에서 미국 무역대표 제이미슨 그리어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5.10.15. 로이터 연합
 

미국이 쓴 수법을 역이용해 미국을 이기는 중국

 

이 잡지는 23일 기사 ‘중국이 무역전쟁에서 이기는 이유’(Why China is winning the trade war)에서 이런 불편하고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관세/무역전쟁’의 승자는, 이 전쟁을 도발한 트럼프 쪽이 아니라 시진핑 쪽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백악관이 이 긴장과 고통 견뎌내기 시험대에서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중국이 “약하다”(weak)고 한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의 말을 인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현실은 그들의 믿음과는 달리 “무역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쪽은 중국”이라고 이 잡지는 단정했다. “중국은 미국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확장하고 보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중국은 자국의 치외법권적 무역규칙들을 시험하면서 세계경제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월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10.23.  EPA 신화 연합
 

중국은 미국의 무역 무기들(trade weapons)을 이용해 미국을 때리고 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해 백악관에 복귀했을 때, 그의 대중국 정책 중에서 국방/안보 분야는 애매모호했다. 그가 대만과 동맹국들을 중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방어할 준비가 돼 있었는지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모호했지만, 중국과의 무역에 관한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그는 1기 정권(트럼프 1.0) 때 시작했단 대중국 압박 캠페인을 더욱 강화하려 했고, 그것은 더 많은 관세, 첨단기술 교역에 대한 통제 강화, 그리고 적극적인 제재를 의미했다. 트럼프 정권의 목표는 거대한 중국 제조업체제를 망가뜨리고, 재정적 상업적 양보를 얻어내 중국의 기술 발전을 지체시키는 것이었다. 트럼프 팀의 일부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완화해 주는 대가로 중국이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개혁하겠다고 맹세하는 빅딜(grand bargain)을 꿈꿨다. 중국이 미국 요구대로 경제 시스템을 바꿀 테니 제발 압박을 거두고 살려 달라 빌 것으로 생각했다는 얘기다.

 

중국공산당(CPC)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10월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를 주재했다. 2025.10.23. EPA 신화 연합
 

중국이 미국을 이기는 첫째 이유-토대와 전략의 우위

 

하지만 4월 2일 트럼프가 행정명령으로 상호관세 부과를 선포하면서 그날을 ‘해방의 날’로 명명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이기고 있는 쪽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중국은 미국의 강압을 견뎌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복에 능숙하며,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확대, 축소할 수 있는 이른바 ‘확장적 지배’(escalatory dominance)를 확보했다. 이를 트럼프가 타코(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큰소리 치지만 겁을 먹고 금방 꼬리를 내린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에도 트럼프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 규제 강화 방침을 발표하자 발끈하며 100% 대중 관세를 추가로 때리겠다고 큰소리 치면서 경주 APEC에서 시진핑을 만날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가 금방 ‘그게 아니고’식으로 물러섰다. 그에 앞서 4월 2일 상호관세 부과 발표도 그 직후에 월스트리트 주가가 폭락하자 바로 철회(연기)했다.

 

이는 중국 국력의 토대(underlying power)와 준비, 기술이 탄탄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1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며 거의 전면적인 금수조치로 중국을 무릎 꿇리겠다는 기세의 트럼프의 위협은 미국에도 피해를 안길 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실제로 기세는 허세였다. 중국이 위기에 처했다고들 했지만, 올해 중국 증시는 달러 기준으로 34% 상승한 데 비해 미국 S&P(스탠더드푸어) 500지수 상승률은 그 절반에 그쳤다.

 

미국이 자국 항구에 입항하는 중국 컨테이너선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듀폰, 구글, 엔비디아, 퀄컴 같은 미국 대기업들을 압박하는 반독점 조사를 벌이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모두 미국이 중국에 대해 써먹은 수법을 되받아친 것이다. 특히 중국의 미국산 대두(콩) 전면 금수조치는 트럼프가 중시해 온 자신의 지지자들인 농민들을 빈털터리로 몰아넣어 그의 표밭이 흔들리고 있다.

 

10월 14일: 미국 켄터키주 메리언에서 수확을 앞둔 대두(콩). 트럼프 행정부와 중국 간의 관세 분쟁 여파로 미국 대두 농가들이 중국의 미국산 콩 수입을 중단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5.10.14.AFP 연합
 

전략없는 트럼프

 

항공기 엔진 등 미국이 중국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들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시진핑은 중국의 공급망에서 외국산 자재를 배제해 나가면서 중국을 다른 국가들의 공급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드는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트럼프에게는 이런 주도면밀한 장기전략이란 게 없다.

 

트럼프는 중국의 달러 금융시스템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중국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발생할 금융시장 혼란이 미국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안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할 것이라고 해야 한다.

 

중국이 이기는 두 번째 이유-대안적 규범 창출 주도

 

중국이 미국을 이길 수 있다고 얘기하는 두 번째 근거는 중국이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면서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글로벌 무역규범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해 왔으나 흔들리고 있는 기존 자유주의 무역질서 잔해 위에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그것이 모두를 만족시킬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트럼프의 관세제국’(Trump’s empire of tariffs)에 필적하는 그 무엇을 만들려 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무역지형을 바꿨다. 9월까지 중국의 상품 수출은 8% 이상 늘었지만, 대미 수출은 27% 줄었다. 중국은 자국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서방의 제조업 공급망을 마비시킬 수도 있는 이런 위협은 중국이 글로벌 라이선스(면허, 인허가) 시스템(system of global licensing)을 강제하려 하는 것이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바로 미국이 반도체산업을 장악하기 위해 사용해 온 전략을 업그레이드시킨 더 강력한 버전이다. 정교한 제조국이자 70여개 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그런 입지를 활용해 더 많은 무역규칙들을 바꾸려 할 것이다.

 

10월 17일, 서울 주재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한국 관세 정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 시위대. 현수막에는 "트럼프 규탄"이라고 적혀 있다. 2025.10.17. AP 연합
 

세 번째 이유-미국 도발이 오히려 중국 강화시켜

 

중국이 이기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세 번째 이유는 무역전쟁으로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이 미국의 바람대로 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관세전쟁 때문에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외부 관찰자들은 지옥같은 부동산 시장 상황, 주머니를 열지 않는 소비자, 당국의 강압조치들로 겁에 질린 기업가들, 그리고 문제많은 산업정책으로 인한 과잉생산과 비효율적인 자본 배분 등 중국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지적한다. 하지만 많은 중국인들은 트럼프의 압박이 기술산업 초강대국으로 도약해서 적대적인 세계에 대비하겠다는 시진핑의 지난 12년간의 계획을 정당화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보니 그래도 시진핑이 옳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20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중국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는 제15차 5개년계획(2026~2030년)은 그런 기술 민족주의적인 시진핑의 접근방식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여전히 많은 문제에 부닥칠 것이다. 미국의 제재로 과잉생산 물품의 수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경우 많은 나라들이 반발해 중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중국이 새로 만들려는 미성숙한 라이센싱 제도는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들에게 관료주의적 악몽을 안겨줄 수도 있다.

 

미국이 지금 깨달아가고 있듯이 경제력을 곤봉(무기)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곤봉을 휘두르면 얻어맞은 나라들이 그냥 있을 리가 없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방망이를 휘두르면 다른 나라들은 그들 나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무역을 다각화하고 경제를 혁신하려 할 것이고, 실제로 빠른 속도로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와 시진핑이 경주에서 만나 타협하는 것이 서로에게도 좋고 세계에도 좋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며 이렇게 경고했다. “앞으로 펼쳐질 전망은 두 나라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호전적인 두 거대 국가들이 경제력을 무기화하는 것이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에서 이기고 있지만, 개방적인 무역에서 후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 것이다.” 낙관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 한승동 기자 >

전쟁 준비 일본극우 야합한 다카이치 정권 출범

● WORLD 2025. 10. 22. 13:3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자민당이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 할 수 있게 됐다”

헌법 9조 2항 삭제 등 전쟁준비와 방위산업 강화
“더 강한 일본” 추구 “개혁이란 이름의 극우 야합”
트럼프와 유사한 정책 지향, 미일동맹 강화 예상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재명 정부 당면 최대과제

 

10월 20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 뒤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요시무라 히로후미 일본 유신회 대표와 악수하는 모습. 이날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연립정권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2025.10.20. 교도 로이터 연합
 

공명당의 연립 이탈로 집권구상이 흔들렸던 일본 집권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64) 총재가 자민당보다 더 우파적인 일본유신회의 연립 가담으로 21일 임시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될 것이 확실해졌다. 총리로 선출되면 황실에서의 총리 임명식과 각료 인증식 절차를 거쳐 이날 밤중에 다카이치 정권(내각)이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자민당(중의원 196석)과 일본유신회(35석)가 연합할 경우 연립정권 의석은 중의원 의석 과반수(233석)에서 2석 모자라는 231석이지만 다카이치 지지 의사를 밝힌 ‘유지개혁회’ 소속 의원 3명만 더해도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가 과반수 찬성으로 총리에 선출될 수 있다. 과반의석 미달로 2차 결선에 가더라도 분열된 야당이 하나로 통합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다카이치가 다수표 확보로 총리에 선출되는 것은 확정적이다.

 

다카이치는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을 외상(외무대신)에,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을 방위상에,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을 총무상에 기용하고,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상을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에 앉히는 등 총재선거 경쟁자들을 모두 각료나 당3역(간사장·정조회장·총무회장) 등 요직에 기용하는 “전원 활약” “전 세대 총력결집” 체제를 표방하고 있다. 연립에 참여하는 일본유신회는 각료로 참여하지 않는 ‘각외협력’ 체제를 갖추되 총리 보좌관에 엔도 다카시 국회대책위원장을 앉힘으로써 총리와의 통로를 열어 두기로 했다.

 

일본 집권 여당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오른쪽)와 일본유신당(JIP) 요시무라 히로후미 대표가 10월 20일 도쿄 국회에서 양당 간 정책 협정에 서명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20일 연립정부 구성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다카이치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25.10.20.AFP 연합
 

“자민당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 할 수 있게 돼”

 

이에 앞서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와 요시무라 히로후미(50) 일본유신회(이하 ‘유신회’로 약칭) 대표(오사카부[府] 지사)는 20일 헌법개정과 군비강화, 경제 재건 등을 골자로 한 12개 항의 연립정권 수립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유신회의 요구를 통째로 수용했다”는 말을 들은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두 사람은 “일본을 더 강하게!”를 구호로 내건 “국가관에 일치”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본공산당의 고이케 아키라 서기국장은 “지금까지 자민당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을 일거에 밀어붙일 수 있게 하는 내용”이라고 요약했다.

 

이는 이번 다카이치 정권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소 다로 전 총리의 정권 재창출 기본구상과도 일치한다. 자민당은 나치 히틀러의 정치수법을 배워야 한다고 공언한 극우 국수주의적 아소가 실세(부총재)로 댜시 등장한 자민당 정권에서, 이제까지 개헌과 재무장 등에 일정한 제동 역할을 해 온 공명당이 연립에서 이탈하고 자민당보다 더 우편향적인 유신회로 대체됨으로써 그나마 부분적을 작동했던 제동장치가 없어져 버렸다.

 

트럼프 정권과 유사한 정책 지향 속 미일동맹 강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연상시키는 “일본을 더 강하게!”는 AI(인공지능)시대에 대비해 에너지정책을 기존 재생에너지 지향에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가동이 중지된 가시와자키 기리와 원전 등 기존 원전들의 재가동 쪽으로 방향을 틀고, 개헌과 미사일 수직발사 체제를 갖춘 원자력잠수함 보유를 지향한다. 제조업 부활에 토대를 둔 강한 경제, 강한 국방을 추구하는 이런 정책지향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그것과 유사하다. 외교·안보면에서도 친미·반중·반북적 정책 지향성을 지닌 다카이치 정권은 트럼프 정권에 더욱 밀착하면서 미일동맹을 한층 더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측된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재명 정부 당면 최대과제

 

그럴 경우 조 바이든 정권이 추구한 한미일 준동맹체제 이상의 한미일 밀착과 반중국적 정책지향을 강화하면서 양자택일식 선택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은 미일동맹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이재명 정권 외교안보정책의 당면 최대과제로 떠올랐다. 적극적 친일·친미 행보를 보이면서 반중·반북·반러로 일관했던 윤석열 정권의 투항적 대미일 의존정책을 비판해 온 이재명 정권으로선 선택 폭이 넓지 않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직전인 28일 일본에 들러 경제적 밀착과 미일동맹 강화를 재천명할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 정권과의 관세협상 최종합의를 앞둔 상황부터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반세기 이상 관행적으로 유지 강화돼 온 기존 한미, 한미일 관계를 한국 국익에 맞게 주도적으로 새롭게 재정립할 드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유신회 주장 통째로 수용한 자민-유신 합의

 

연립정권 수립에 정식으로 합의한 뒤 다카이치가 “국가관을 함께 하는 당”이라고 추켜세운 유신회와의 합의사항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헌법에 비상시에 정부에 권한을 몰아 주는 ‘긴급사태’ 조항을 창설하기로 하고 21일 임시국회 중에 자민당, 유신회의 양당 ‘조문기초협의회’를 설치해 내년 국회에 조문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대통령제 하의 한국 비상계엄법을 연상시키는 이 조항에 대해서는 국민의 권리가 제한될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에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

 

헌법 9조 2항 삭제, 자위대는 국방군으로

 

군대 보유와 전쟁(교전권)을 부정한 헌법 제9조 2항을 “삭제”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전면 허용”하며,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개칭하기 위한 양당 간의 조문기초협의회도 이번 임시국회 중에 설치하기로 했다고 명기했다. 이는 유신회가 지난 9월에 정리한 제언 ‘21세기의 방위구상과 헌법개정’ 내용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런 내용은 자민당이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었던 2012년 야당시절에 작성한 개헌 초안에 담겨 있었으나 여론의 반발 때문에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다.

 

합의서는 2027년도까지 5년간 방위비를 43조 엔(약 387조 원) 증액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올린다고 한 안전보장관련 3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개정을 계획보다 앞당겨 실현하기로 했다고 명기했다. 28일 일본에 올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이를 당당하게 제시할 것이다.

 

전쟁 대비와 방위산업 강화

 

일본산 무기 수출에 대해서도 이제까지 규제로 작용해 온 수출할 수 있는 방위장비품 사용목적 ‘5가지 유형’의 “폐지”를 내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5가지 유형은 ‘구난(재난 구제), 수송, 경계, 감시, 소해’ 등으로, 방위장비(무기) 수출은 이 5가지 유형에 해당하는 것만 할 수 있다고 한 기존 규제를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모든 무기들을 생산, 수출할 수 있게 하겠다는 얘기다. 공명당이 이에 제동을 걸어 왔는데, 공명당의 연립 이탈로 제어장치가 없어지게 된다.

 

또 해상자위대가 추진 중인 적기지공격 능력을 지닌 미사일 수직발사장치(VLS) 탑재 잠수함도 도입하기로 했다. 미사일 수직발사가 가능한 ‘차세대 동력’ 활용 잠수함 보유란 사실상 원자력 잠수함 보유를 가리킨다.

 

이런 내용들은 모두 연합협의 때 유신회 쪽이 요구한 정책들이다. 다카이치는 기다렸다는 듯 덜컥 받아들였다. 유신회는 협상 때 아예 “원자력 잠수함”을 합의서에 명기하는 것도 검토했다.

 

정보전과 관련한 정책에서 경제안보상 출신인 다카이치와 요시무라 유신회 대표는 스파이 방지관련법(반간첩법)을 “올해 검토를 시작해서 조속히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킨다”고 합의서에 명기했다. 이 법은 1985년에 자민당이 국회에 제출한 국가비밀법(스파이 방지법)과 같은 것인데, 개인의 사상과 신념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폐기됐으나 이번에 되살린 것이다.

 

또 내년 정기국회에서 내각정보조사실을 ‘국가정보국’으로 격상하고, 20207년까지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과 유사한 ‘대외정보청’을 창설한다는 것도 명기했다.

 

이를 두고 방위성의 한 간부는 “이제까지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합함으로써 안보정책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측면이 있다. (그런데) 자민당보다 더 강경파(매파)적 색깔이 강한 정책에 적극적인 유신회와 연립하면 그 기세만으로도 정책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모든 것들은 전쟁에 대비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의 본격적인 재무장과 함께 방위산업을 일본 제조업 부활의 핵심사업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온상인 기업·단체 헌금 존속

 

불법 정치자금 조성과 관련해 기업과 단체 헌금 중단 조치를 취하라고 공명당은 주장했으나 자민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이 공명당의 연립 이탈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였는데, 유신회는 기업 및 단체 헌금 중단에 반대한 자민당 입장을 수용했다. 자민당은 2년 남은 다카이치 총재 임기 중에 이 문제에 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데 합의해 유신회를 달랬으나, 2년 안에 헌금을 폐지하겠다는 것도 아닌 이런 어정쩡한 타협은 사실상 폐지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 문제에서 공명당과 같은 입장이었던 유신회의 이런 자세전환은 연립참여, 정권참여를 우선시한 것으로,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로부터 “개혁 깃발을 내걸었지만 결국 자민당과 동화해 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신에 유신회는 ‘개혁’ 모양새를 보여주기 위해 중의원 정수를 1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민당과의 합의서에 명기했다. 이에 대해서도 초점을 흐리며 문제의 본지를 피해가는 꼼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낙관 불허, 리즈 트러스 정권처럼 단명할 수도

 

정권참여를 우선한 유신회의 자세전환은 집권 유지가 급한 자민당의 필요와 맞물려 일단 권력창출에는 성공했으나, 감세를 주장하고 오사카를 제2의 수도로 만들려는 '오사카 유신회'가 모체인 유신회의 지방분권 지향은 자민당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경제 재건을 최우선시하는 다카이치 내각의 아베노믹스적 적극재정의 성장정책이 조기에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비판여론이 커지면서 감세를 주장하는 유신회와 사이가 벌어질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일본의 이번 극우조합은 단명한 영국의 리즈 트러스 정권처럼 단명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지적들이 있다. 제조업 부활과 첨단산업의 자국내 공급망 강화를 겨냥한 트럼프의 조급하고 난폭한 극우적 성장정책이 낙관적이지 못한 것만큼이나 다카이치 정권의 그것도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성 천황, 부부 별성 거부한 보수 역행

 

천황직 계승과 여성권리 문제에서도 다카이치 정권은 더 보수적인 쪽으로 후퇴했다. 천황자리 계승은 “고래로 예외없이 남계(男系) 계승이 유지돼 온 무게”를 강조하면서 여계 계승 가능성과 관련한 논란을 잠재우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남아를 낳지 못해 남계 직계 계승이 어려워질 경우에도 2차 대전 뒤에 황적에서 이탈한 예전 11개 황실가계 남계의 남아를 양자로 들여 천황자리를 잇게 하도록 황실전범을 개정하기로 했다. 또 한 가지 논쟁거리였던 여성황족이 결혼 뒤에도 황족 신분을 유지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부부가 각기 자신의 원래 성을 사용하는 부부별성제로의 개정에도 명확하게 반대했다.

또 일본 국기 즉 일장기를 ‘손괴(파손)’할 경우 처벌하는 법도 제정하기로 했다.

 

"전쟁준비에 혈세를 쏟아붓는 일본,
개혁이란 이름의 야합을 단죄하라!"

 

자민당과 유신회의 이런 우편향 담합에 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보기 드물 정도로 격정적이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짚어낸 쓰네미 요헤이 지바상과대 교수의 논평이다. 아사히신문의 10월 20일 관련기사에 붙은 쓰네미 교수의 논평은 다음과 같다.

 

‘유신’이란 이름을 반환하라. 살을 에는 개혁으로 파산하기 전에 기회주의 정치가들을 탄핵하라. 아사히신문 독자 여러분, 나는 중대한 결의를 가슴으로 호소한다. 분노를 억눌러서는 안 된다. 이 논평을 무기로 ‘개혁’이라는 이름의 야합을 단죄하라. 이것은 유신이 아니다. 복고이자, 체제의 연명이다. 전후(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이 쌓아 온 입헌주의, 민주주의, 평화주의를 지금 정치가들은 비웃으며 짓밟으려 하고 있다. 야당도 침묵하는거나 다름없다. 이 나라에 미래는 있는가.

 

유신회가 내건 ‘개혁’ ‘민의’ ‘오사카부터 바꾼다’는 표어는 이제 배신의 깃발이 됐다. 기업헌금 폐지에는 발을 빼고, 의원 정수 삭감을 ‘살을 에는 개혁’이라 위장한다. 국민의 정치참여를 줄이는 한편으로 권력과 자본의 유착은 온존하려 한다. 무엇이 ‘살을 에는 개혁’인가. 잘려 나가는 것은 국민의 소리이고 양심이다.

 

이 나라는 이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공포와 망념(망상)이 정책을 움직이고 권력을 향한 도취가 폭주를 가속시키고 있다. 공명당이라는 제어장치가 제거됨으로써 정치는 제어불능 상태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있다. 이것을 ‘적극적(진취적)’이라고 하는 건 잘못이다. 유신은 강경파의 정책을 동경하고 보수의 위세를 빌려 “국가를 강하게 만든다”고 부르짖으면서 입헌주의를 내버리고 있다. 이미 ‘민주국가’라는 간판을 내리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전전(2차대전 전)으로의 회귀 조짐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유신은 그 이름을 반환하라. 유신이란 이름은 권력에 저항해 온 이들의 유산이다. 지금의 귀당(유신회)이 과연 그 이름값을 하는가. 엄중하게 자문해야 한다. “(자민당과) 국가관을 공유했다”는 말은 국가의 사물화(私物化) 선언에 가깝다. 다카이치 사나에와의 악수는 개혁의 계약이 아니라 타락일 뿐이다. 체제에 저항하지 않을 것인가. 체제와 악수하고 잠을 잔다면 그 행위는 유신이란 이름에 대한 배신이다.

 

헌법은 권력을 구속하기 위해 존재한다. 권력을 속박하는 사슬을 끊는 것이라면 그것은 입헌주의의 해체를 의미한다. 전통과 가족이라는 미사여구 아래 여성의 권리와 다양한 삶의 방식을 짓눌러 부수는 정치는 보수의 가면을 쓴 차별의 재구축과 같다.

 

침묵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민주주의는 전차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야말로 최대의 방어력이다. 기업헌금 폐지를 폐기하고 헌법을 사물화하려 하면서 전쟁 준비에 혈세를 쏟아붓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아닌가. 정치가 다시 밀실화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 문을 걷어차 부술 것이다. 분노는 희망이며, 비판은 자유의 증거다. 민(民)을 배신하는 정치에 미래는 없다. 우리는 목청을 높일 것이며,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게으른 잠을 거부하라. 분노의 마그마를 폭발시켜라.                                            <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