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 ‘열대의 묵시록’ - 정치를 좀먹는 종교
정치적 세 쌍둥이 같은 브라질, 미국 그리고 한국
2시간으로 응축된 ‘브라질판 전광훈·지귀연’ 얘기

일찌감치 포이어바흐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고, 그 같은 그의 이론은 줄곧 종교, 특히 기독교도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시사하는 좌파들의 이데올로기라는 식으로 선전돼왔다. 기독교인들은 좌파(실제 좌파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좌파라 공격하는 정치사회집단)가 권력을 잡으면 교회가 문을 닫고 동성애자들이 판을 치게 될 것이라 주장하며, 따라서 기독교를 옹호하는 사람만이 나라를 지배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자신들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닌다.
세계에 이런 나라는 많다. 사실 부기지수이다. 포이어바흐의 얘기대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덧 종교는 아편 같은 존재가 됐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두 개이다. 하나는 브라질, 또 하나는 한국이다.

브라질의 현존하는 정치적 위기를 그린 넷플릭스 다큐 ‘위기의 민주주의 : 룰라에서 탄핵까지’를 만들어 세계적 화제를 모은, 특히 한국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페트라 코스타 감독은 차기작인 ‘열대의 묵시록’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으며 또 당분간 그럴 것으로 보인다. ‘열대의 묵시록’은 브라질 정치에 복음주의 세력, 곧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개입해 자이르 메시아스 보우소나루(중간 이름이 아예 ‘메시아’이다)를 어떻게 대통령에 앉히는가를 기록한 다큐이다.
이 작품은 브라질 복음주의자들이 일명 도미니오니즘(신정주의)를 앞세워 어떻게 사람들을 모으고, 중산층의 돈을 모아, 교회를 기업화하고 세력화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의회를 장악하려고 애를 쓴다. (지금도!) 그리하여 대법원, 검찰 조직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해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브라질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를 축출했고, 그래서 브라질 사회가 지난 10년 가까이 얼마나 혼란을 겪었는지를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똑같다! 참담하다!
정치적 세 쌍둥이 같은 브라질 미국 그리고 한국
마지막 부분에서 보우소나루 지지자들, 광신도들이 의회와 대법원에 침입해 난동을 부리는 장면(어떤 여자는 아예 바지를 벗고 똥을 싼다)은 2021년 트럼프 대선 패배 때 그의 지지자들이 의사당 난입 때의 광경과 똑같다. 2025년 1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서울서부지법 폭동과는 다른 모습인가. 판박이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모든 장면을 CNN과 전 세계 통신사의 뉴스로 접하면서 실로 극한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꼈다. 이들 장면에서는 공통점들이 발견되는데 한 마디로, 기독교 광신도들과 극우 정치인들의 결합이 그 같은 난동의 주역들이라는 것이다. 브라질, 미국, 한국이 세쌍둥이다.
감독 페트라 코스타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하다. 조용하게 설득하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고 날카롭게 지적해 나간다. 이 여성 감독이 브라질의 정치사회를 기록한 기간은 대략 2016년경부터 시작해 2023년 의사당 난입 장면까지이다. 그녀는 수도 없이 많은 장면을 찍고 또 찍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올곧이 첫 번째 다큐 ‘위기의 민주주의 : 룰라에서 탄핵까지’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오랫동안 찍은 파일들을 뒤지면서 감독 페트라는 그 한 작품에 브라질 종교 얘기까지 넣는다는 것은 너무나 무리한 일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페트라 코스타의 결정은 옳았다. 한 사회의 환부는 대체로 그 부위가 크고 넓으며 원인 역시 다기(多岐)하기 마련이다. 특히 종교 부분은 아예 독립된 파트로 다루어야 할 만큼 뿌리가 깊다. 그래서 분리해 낸 것이 이번 다큐 ‘열대의 묵시록’인 셈이다.

브라질의 신정주의자들의 뿌리는 1950~60년대의 미국 빌리 그레이엄 목사로 내려간다. 그가1974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한 집회가 시작이다. 다큐는 그 과정을 편년체적으로 보여주는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중간중간 마치 극영화가 즐겨 사용하는 플래시백 장면처럼 과거의 푸티지 영상으로 그 역사를 짚고 나간다.
페트라 코스타의 머릿속은 그 누구보다 브라질 종교사에 대한 정리가 잘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중 관객, 넷플릭스 시청자들에게는 그 요점만을 정리해 전달하면 된다는 선택과 집중의 방식으로 이번 다큐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여 준 영상편집 능력이 상당함을 보여준다. 잘 만든 다큐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내용을 어떻게 2시간 안에 응축시키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2시간으로 응축된 ‘브라질판 전광훈·지귀연’ 얘기
‘열대의 묵시록’은 다큐가 구체에서 추상으로, 개인에서 전체로, 작은 강에서 큰 강으로 가는 점층법을 올바르게 구사해야 한다는 점을 단단히 역설해 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많은 신문 기사가 육하원칙에 따른 삭막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주간지나 월간지의 경우 대체로 어떤 개인의 행동이나 사건을 묘사하는 것으로 문장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얘기이다.
‘열대의 묵시록’의 단초는 실라스 말라파이아라는 이름의, 천박하면서도 종교적으로 극단화 되어있는 한 목사의 얘기로 시작한다. 그를 팔로우한다. 그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고, 이념적으로 얼마나 위험하며(자신의 적은 모조리 좌파, 좌익,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것) 그래서 얼마나 추악한지를 보여준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브라질의 전광훈 혹은 브라질의 김장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가 보우소나루를 쥐고 흔드는 것, 그 방식 역시 복잡할 게 없다. 전광훈이 다수의 정치인을 손아귀에 넣었던 것을 생각하면 된다. 통일교나 신천지가 교인들을 보수당의 당원으로 등록시키며 지도부를 장악하고, 국회의원 당선을 조종하는 것과 매한가지의 일이다. 한국에 있는 한동훈 같은 법무장관, 지귀연 같은 판사는 다큐 속에 나오는 판사 세르지우 모루 같은 인물이나 데우탕 달라그노우 같은 검사로 생각하면 된다. 도플갱어이다.
다행스럽게 한국에 문형배 같은 헌법재판관이 있었던 것처럼 브라질에는 알렉샨드리 지 모라이스 같은 대법관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해 준다. 이 흡사함은 오히려 하늘의 뜻처럼 느껴질 정도다. 심지어 한국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가 다행스럽게 실패로 끝난 것처럼,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역시 쿠데타를 모의했고, 그 과정에서 모라이스 대법관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얘기를 전하는 다큐의 장면을 보고 있으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이다.
저 쪽에 침투해 찍고, 이 쪽도 비판하는 감독의 불안한 시선
놀라운 것은 페트라 코스타의 위치가 시종일관 ‘이쪽’이 아니라 대체로 ‘저쪽’에 있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이것은 일종의 ‘침투’이다. 신중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접근해 ‘위장된 균형감각’으로 그들이 쏟아 내는 무수한 거짓말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일으키는 폭동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또 한편으로 ‘이쪽’의 문제에도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려 노력한다.
페트라는 룰라 다 시우바의 이런 얘기를 담는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은 교회를 인정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존재는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러나 난 교회에 가서 표를 구(걸)할 생각이 없다. 그건 나의 정치철학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곧 페트라의 카메라는 룰라가 근본주의자들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장면을 포착한다. 룰라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교회와 일정 부분 타협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 선택이 어쩌면 룰라를 박빙의 승부 차로 이기게 한 요소일 거라고 다큐는 풀이한다. 그러면서도 이 다큐의 비관주의는, 그렇기 때문에, 그 작은 차이를 만든 기독교주의자들의 표가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으며, 언제든지 위기의 민주주의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페트라 코스타의 시선이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영화는 종종 현실의 정치, 현재의 사회에 대한 가장 정확한 분석 보고서를 내놓는다. ‘열대의 묵시록’이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 게다가 이 다큐는 주제를 특수에서 보편으로 이어 붙인다.
이건 브라질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 한국에 대한 얘기이며 우리 모두에 대한 얘기임을 천명한다. 이 작품이 브라질뿐 아니라 한국의 OTT 시청자들에게 잘 보여지고, 잘 읽혀야 하는 이유이다. 대중들을 위한 올바른 정치적 선전 선동에 영화만한 것이 없다. 영화가 국가 이데올로기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필견을 권하는 바이다.
< 오동진 영화 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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