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부정하려 했던 고통스런 결론"

"이스라엘군 행위는 전쟁 아닌 학살"
대다수 홀로코스트 학자들의 '침묵'

"이스라엘 도덕적·역사적 신뢰 고갈"
"인종 분리 독재 국가 깊이 우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민을 상대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내 결론이 됐다. 시온주의 가정에서 자라나 내 인생의 첫 절반을 이스라엘에서 보냈고, 이스라엘 국방군(IDF)에서 사병과 장교로 복무했으며, 경력 대부분을 전쟁 범죄와 홀로코스트 연구와 집필에 쏟아온 내게 이는 어떻게든 오랫동안 부정하려 했던 고통스러운 결론이었다. 그러나 사반세기 동안 난 제노사이드를 가르쳐 왔고 제노사이드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메르 바르토프 미국 브라운대 교수. [출처. 브라운대 홈피]

 

유대인 제노사이드 학자 바르토프 "이스라엘, 가자에서 제노사이드"

 

미국 브라운대의 오메르 바르토프 교수(홀로코스트‧제노사이드학)는 '나는 제노사이드 학자다. 그것을 보면 나는 안다'란 15일 자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2023년 10.7 하마스 기습 공격 이후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보복을 구실로 삼아 22개월째 가자지구 주민을 상대로 자행하는 무자비하고 무차별적 군사 공격과 살해, 강제 이주 행위와 관련해 이렇게 밝혔다.

 

바르토프의 관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었다. 10.7 공격 한 달 후엔 가자에서 이스라엘군이 벌인 행동은 전쟁 범죄이며 반인도적 범죄도 될 수 있다고 봤지만, 인류 최악의 범죄인 제노사이드까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노사이드로 생각이 바뀐 건 작년 5월경이었다.

 

바르토프는 "2024년 5월 IDF는 라파에 피란한 약 10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주거시설이 없는 해안 마을 마와시로 이동하라고 명령한 뒤 라파 대부분을 파괴하기 시작해 8월경 다 마쳤다"면서 "그때쯤엔 IDF 작전의 패턴들이 하마스 공격 이후 '제노사이드 의도'가 담긴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발언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더는 부인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스라엘군이 17일 봉쇄된 가자 지구를 폭격한 직후 파괴된 건물들 위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2025. 07. 17 [AFP=연합]

 

"어떻게든 부정하려고 했었다,
유대인 학자론 고통스런 결론"

 

일례로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 지상 침공을 앞둔 2023년 10월 27일 "이제 가서 아말렉(가나안 남쪽 네게브 사막지대에 살던 고대 유목민족)을 공격하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고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와 젖 먹는 아이,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를 모두 죽여라"(사무엘 상 15장 3절)라는 구약성서 구절을 인용해 충격을 주었고, 당시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등 고위 인사들은 "인간 짐승들" "절멸" "완전 봉쇄" 등의 극단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1948년 '유엔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처벌 협약'에 따르면, '제노사이드'는 "통상 국민적,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제노사이드라고 판단하려면 '의도'를 확인하고 그 의도가 '실행'됐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에 바르토프는 "이스라엘의 경우 그 의도는 많은 관리와 지도자가 공개로 표명했지만, 이런 지상 작전 패턴들에서도 그 의도가 드러났다"며 "IDF가 가자 지구를 체계적으로 파괴할 때인 2024년 5월경에는 이런 패턴이 명확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정권은 지금까지 제노사이드는 물론, 전쟁 범죄나 반인도적 범죄마저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 IDF가 곧 폭격할 지역의 민간인을 소개할 때 미리 경고했고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활용한다고 주장하면서 적법하게 작전해왔고 강변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4일 예루살렘의 크네세트(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5. 07. 14 [로이터=연합]

 

바르토프 "이스라엘군 가자 공격,
전쟁 아니라 일방적 제노사이드"

 

가자에선 주거시설뿐 아니라 공공건물, 병원, 대학교, 초중고 학교, 모스크, 문화 유적지, 정수 시설, 농경지, 공원 등 다른 인프라들에 대한 체계적 파괴가 자행됐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조사에 따르면, 가자 건축물 전체의 최대 70%에 달하는 약 17만4000채의 건물이 파괴되거나 손상됐다. 가자 보건 당국에 따르면 5만8000명 넘게 살해됐고, 이 중 1만7000명 이상이 아동이고, 전체 사망자의 약 3분의 1에 이른다. 2000 가족 이상이 전멸했고, 5600 가족 이상이 생존자가 한 명뿐이었다. 또한 13만8000명 넘게 부상하거나 불구가 됐고, 최소 1만 명이 건물 잔해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로 가자 참상을 '전쟁'으로 부르지만, 잘못된 명칭이란 게 바르토프의 견해다. 지난해 IDF는 조직된 군사 조직과 싸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 IDF는 뭣보다 먼저 (가자에서의) 파괴와 인종 청소 작업에 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18일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이 깨진 후 IDF는 전 가자 주민을 가자의 25%에 해당하는 가자시티, 중부 난민 캠프, 남서부 해안의 마와시에 몰아넣었다. 그동안 미국 제공의 수많은 불도저와 엄청난 양의 폭탄들을 활용해 다른 75% 지역의 모든 구조물을 파괴했다.

 

게다가 구호품 배급 지점을 최소한으로 지정해 식량을 구하고자 필사적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죽고 기아 위기는 깊어지고 있다. 지난 7일엔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이 IDF는 라파의 폐허 위에 "인도주의 도시"를 세우고 마와시 피란민 60만 명을 우선 거주시키면서 국제기구의 구호 제공은 허용하되 다른 지역 이동은 금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예드바브네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는 폴란드 기념비 근처에 새로운 명판들이 보인다. 이 명판들은 "범죄는 현지 폴란드인이 아니라 독일 평정 부대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5. 07. 10 [AFP=연합]

 

대다수 홀로코스트 학자들의 '침묵'
"이스라엘 도덕적·역사적 신뢰 고갈"

 

이에 바르토프는 "일부에선 이런 작전을 '제노사이드'(genocide)가 아니라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라고 묘사하지만 두 범죄 간에 연결 고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인종 집단이 갈 곳이 없고 끊임없이 소위 이 '안전지대'에서 저 안전지대로 쫓겨나고 집요하게 폭격과 굶김을 당하면 인종 청소는 제노사이드로 변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가 2차 대전 때의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추방 시도에서 비롯됐지만, 유대인 집단학살로 끝났다는 것이다.

 

제노사이드가 전쟁 범죄, 반인도적 범죄 등 다른 국제법상 범죄와 구별되는 중요한 지점은 제노사이드는 '집단 차원'의 사람들을 살해함으로써 '그 집단'이 정치적, 사회적 또는 문화적 실체로서 재구성될 수 없도록 영구히 파괴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바르토프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 반인도 범죄, 인종 청소 또는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고 보는 홀로코스트 학자는 몇 명에 불과한다"며 '다수의 침묵'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침묵은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란 구호를 조롱하고, 그 의미를 어디서 자행되든 그것(홀로코스트)에 저항하겠다는 적극적 주장을 과거 자신들이 겪었던 희생을 들먹이며 타인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변명, 사과, 나아가 백지위임장으로 변질시킨다"고 개탄했다.

 

바르토프는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존재를 말살하려 하고, (요르단강) 서안에서 갈수록 더 많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폭력을 행사함에 따라 그 유대 국가가 여태껏 확보해왔던 도덕적이고 역사적인 신뢰는 이제 고갈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은 또다른 '홀로코스트'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는 이스라엘은 그동안 자신의 적들을 모두'나치'로 묘사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극우 유대 광신 성향의 네타냐후 정권 시각에선 하마스는 물론이고 모든 가자 주민, 앞으로 성장해 전사가 될 영아들까지 '나치' 범주에 들어간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16일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가자지구 내의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 07. 16 [AP=연합]

 

"네타냐후 이스라엘, 파괴의 길 고집
아파르트헤이트 독재 국가 깊이 우려"

 

바르토프는 이스라엘의 가자 제노사이드 비판을 "반유대주의적"(anti-semitic)란 비난은 제노사이드 연구의 토대를 훼손하고 부정주의와 면죄부 정치에 길을 열어준다고 비판했다. 그는 "홀로코스트의 잿더미에서 파생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스라엘의 도덕성이 불가피하게 붕괴됨에 따라 이스라엘의 미래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라고 묻고는 이스라엘 지도자와 시민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파괴의 길을 고집하고, 아마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권위주의적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국가로 나아갈까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다.

 

바르토프는 "과거 수십 년간 홀로코스트 연구와 기념이 대변했던 건 모든 인간의 존엄과 법치 존중, 그리고 비인간성이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고 안보, 국익, 단순 복수를 이유로 국가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절박한 필요였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그는 "이 매우 어두운 터널 끝의 유일한 빛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새 세대가 홀로코스트의 그늘에 숨지 않고 미래를 직면할 가능성이다"라면서 "이스라엘은 비인도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로 퇴보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