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군 관계자가 ”미국이 이란에 피해를 주면 호르무즈해협에 이어 홍해 입구쪽 해협까지 봉쇄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이란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25일(현지시각)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에 따르면, 한 군사 소식통은 “(미국이) 이란의 섬이나 우리 영토의 어느 곳에서든지 지상에서 행동하려 하거나 해상 움직임을 통해 이란에 피해를 준다면 또 다른 전선을 열겠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통은 “바브엘만데브해협은 세계 전략적 해협 중 하나”라며 “이란은 이 해협에 대해 위협을 생산할 의지와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어리석은 행동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면 또 다른 해협(바브엘만데브)이 곤경 대상에 추가될 수 있다”고 했다.
아랍어로 ‘눈물의 문’인 바브엘만데브해협은 수에즈 운하 항로의 관문인 홍해 남단 입구다. 해상 원유 물동량의 10% 이상이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 해협까지 이란 쪽의 통제로 봉쇄된다면 국제 에너지 시장이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은 예멘과 지부티, 소말리아에 접해있는 곳으로 이란이 직접 통제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예멘의 친이란 세력인 후티 반군을 통해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후티는 2023년 10월 가자 전쟁이 발발하자 팔레스타인의 친이란 무장세력 하마스와 연대하는 차원에서 홍해 항로를 공격해 해상 교통에 극심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 지난해 5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휴전에 합의하며 홍해 항로 공격을 중단했다. 다만 이후 이스라엘과 이란의 ‘12일 전쟁’ 이후 홍해에서 민간 상선을 향한 공격을 재개한 바 있다.
지난달 28일 이란 전쟁 발발 뒤에도 후티는 “분쟁에 참여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참전을 위협해왔으나, 아직 참전 전이다. 후티의 참전은 이번 전쟁에서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군 소식통은 “이란은 적의 전선 보급과 동향을 지속적이고 꾸준히 감시하고 주시하고 있다”며 “상황 악화를 완전히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곽진산 기자 >
이라크 바그다드의 한 거리에서 숨진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과 아랍어로 ‘하나님의 순교자’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걸려 있다. AP 연합
이란 정부가 미국이 제시한 종전 제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이란 국영 프레스티브이(TV)가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란 고위 당국자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제안의 세부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이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 종결 시점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 핵 개발 포기, 호르무즈해협 개방 등을 대가로 대 이란 제재를 전면 해제하는 내용이 담긴 협상안을 이란 쪽에 제시하며 한달간 정전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란 쪽의 부정적인 입장이 국영 매체를 통해 전해진 셈이다.
이 당국자는 이어 “이란은 스스로 결정한 시점에, 우리가 내건 조건들이 충족될 때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이 외교 채널을 통해 협상을 제안하고 있지만, “(그 제안은) 과도하며 전장에서 미국 쪽의 실패라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에 따라 이란은 우호적인 중재국을 통해 전달된 미국의 제안을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책략’으로 판단하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미국이 협상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 정부를 통해 거절의 의사를 미국 쪽에 전달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매체는 이 당국자가 종전을 위한 5가지 조건을 밝혔다고도 전했다. 이란 쪽이 제시한 5가지 조건은 △침략·암살 행위 완전 중단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 견고한 메커니즘 수립 △전쟁 피해에 대한 명확한 배상 △중동 전역에 걸친 모든 전선에 대한 전쟁 완전 종결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이란의 합법적인 주권 행사와 이에 대한 보장 등이다. < 노현웅 기자 >
백악관, 이란 종전안 거부에 “패배 인정 않으면 더 큰 타격” 압박
“트럼프, 지옥 불러올 준비 돼 있다” 종전협상 하자면서도 위협 수위 높여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일일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
미국 백악관은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진행 중이라면서도, 이란이 군사적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강력한 타격을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25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협상은 계속되고 있으며 생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레빗 대변인은 특히 “이란이 현재 상황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군사적으로 패배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지금까지 겪은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타격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허풍을 떠는 사람이 아니며 ‘지옥을 불러올 준비’가 돼 있다”며 이란에 오판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작전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레빗 대변인은 “작전 개시 25일째인 현재 핵심 목표 달성에 매우 근접했다”며 “당초 4~6주로 예상했던 작전 일정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 능력은 초기 대비 약 90% 감소했으며, 140척 이상의 함정을 파괴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단기간에 이란 해군 전력을 궤멸 수준으로 약화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백악관은 이란이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레빗 대변인은 “이란 정권은 자신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래서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최근 파키스탄 등 중재국을 통해 이란에 전달했다고 보도된 ‘15개 항 제안’과 관련해 레빗 대변인은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공식 확인을 피했다. 협상이 교착 상태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면 회담 여부에 대해서는 “공식 발표 전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백악관은 이번 군사작전이 사실상 이란 정권 구조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도 부각했다. 레빗 대변인은 “이란의 기존 지도부가 제거되면서 정권 지도부 변화가 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더 우호적이고 협력 의지가 있으며 더 이상 ‘미국에 죽음을’이라고 외치지 않을 지도자가 나오길 원한다”고 말했다. 다만 새로운 이란 지도부에 대해선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밝혔다.
레빗 대변인은 제이디 밴스 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는 보도와 관련해, “달라진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부통령은 항상 대통령의 핵심 국가안보팀의 일원이었으며, 모든 논의에 참여해 왔다”고 밝혔다. 시엔엔(CNN)은 이날 미국 정부 관리 2명을 인용해, 밴스 부통령이 참여하는 형태로 이번 주말 파키스탄에서 종전 출구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관리들은 일정과 장소, 참석자 등이 모두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 김원철 기자 >
이스라엘 “트럼프, 조기 휴전 가능성”…단기 군사성과 내기 총력
25일(현지시각) 가자지구 중부 데이를 알 발라흐에서 전쟁으로 피란한 주민들이 머무는 텐트촌 인근에 이스라엘 공습으로 화염이 치솟자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 가자/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최종 합의 없이도 조기에 휴전을 선언할 가능성을 우려한 이스라엘이 단기간 내 군사 성과 극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이 “전쟁 목표 달성에 매우 근접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협상과 무관하게 ‘조기 종료’가 이뤄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움직임이다.
이스라엘 채널12는 25일(현지시각) 고위 당국자들을 인용해 “미국이 제시한 15개 합의안에 대해 이란과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원칙적 합의’ 수준에서 전투 중단을 선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도 이날 이스라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이란의 ‘의미 있는’ 제안을 대가로 전투를 일시 중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쪽에서는 전쟁 종료를 시사하는 신호가 잇따르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초 예상했던 4~6주보다 빠른 속도로 작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목표 달성에 매우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의 브래드 쿠퍼 사령관도 이란 내 1만여 개 표적을 타격했으며, 이란 해군 대형 함정의 92%를 격파하고 미사일·드론 공격 빈도를 90%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또 이란 군사 생산시설 3분의 2 이상을 파괴하거나 손상시켰다며 “이란의 군사 생산 체계를 완전히 제거하는 경로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발언들은 협상 결과와 별개로 미국이 ‘승리 선언→휴전’ 수순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25일 밤 군 지휘부 회의에서 향후 48시간 내에 이란 방산업체를 최대한 파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이 긴박한 지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 휴전을 선언할 수 있다는 이스라엘 정부 내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스라엘은 미·이란 간 협상에서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다만 느슨한 형태의 ‘기본 틀 합의’는 충분히 성사될 수 있다고 판단하며, 이 경우 미국이 이를 명분으로 전투 중단을 선언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중재자들을 통해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투 중단을 휴전의 필수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명확한 조건 확정 이전에 전쟁이 종료될 경우 이스라엘만 실질적인 양보를 강요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김원철 기자 >
WSJ “미국, ‘협상 파트너’ 이란 의회의장·외교장관 암살 표적서 일시 제외”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이 지난 16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열린 주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화연합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전쟁 종식을 위한 고위급 협상을 추진하면서 이란 지도부 고위 인사 2명을 암살 표적에서 일시 제외했다고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당국자들은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과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장관이 최대 4∼5일간 공격 대상 명단에서 빠졌다고 WSJ에 전했다.
갈리바프 의장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유력한 협상 파트너로 본다고 거론된 인물이다. 아라그치 장관은 2015년 이란핵합의(JCPOA) 당시 이란 대표단 수석을 맡은 인물로, 미국과의 핵협상 전문가로 꼽힌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이란 고위 지도자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 공습을 통해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보안 수장 알리 라리자니를 비롯한 많은 정권 인사를 제거했다. 또 이란 수뇌부를 계속 추적하겠다고 공언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이 2024년 10월 12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레바논 국회의장을 만난 후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기자들에게 “우리는 그들(이란)의 지도부를 모두 죽였고, 이제 (이란에서) 새로운 집단을 갖게 됐다”며 “(이란의) 한 집단의 사람들과 상대하고 있으며 그들은 곧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의 미온적 반응에도 종전 협상을 강하게 추진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란과 종전 협상 중이라며 이란이 핵무기 포기 등 주요 쟁점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이란전 종식을 위해 이란과 계속 협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란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더 강력하게 타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이란 정권과 군부는 미국과 협상 중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또 이란 측은 미국의 종전 조건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이란 국영 매체는 전했다.
미국과 이란 사이 중재를 시도하는 튀르키예, 파키스탄, 이집트의 중재자들은 양측이 이른 시일 내에 만나 휴전을 논의하도록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요구 사항 사이에 격차가 커 당국자들은 회담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본다고 WSJ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9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클럽에서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 도중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이란 전쟁을 주도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율이 하락하며 정치적 위기에 빠지고 있다. 트럼프는 플로리다 마라러고 저택이 있는 주 의회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는 타격을 받았고, 네타냐후는 예산안이 통과 안 되면 패배가 예상되는 조기총선에 직면하고 있다.
네타냐후는 오는 31일까지 예산안 통과시켜서 조기총선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애초 네타냐후는 이란 전쟁 개전으로 지지율을 높여서 예산안을 수월하게 통과시키려 했으나, 전쟁이 성과를 못 내고 지지율도 하락하자, 비상이 걸린 것이다.
3월19일자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의 여론 조사에서, 총선이 치러질 경우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이 1당을 유지하나 현재 34석에서 28석으로 줄어들고 연정 전체는 51석에 그쳐 과반 확보에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의회는 총 120석이다.
애초 네타냐후 쪽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제거라는 “개전 초기 일격”을 이용해, 원래 10월로 예상되던 총선을 6월로 앞당기면 우파 연정에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법적으로 3월31일까지 예산을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90일 이내 자동 조기총선이 치러지는 점을 이용해, 예산 부결을 ‘의도된 조기선거 촉발’ 카드로 쓸 여지까지 거론했다. 실제로 일부 측근들과 여당 인사들은 라디오와 언론 인터뷰에서 6월 선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띄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 전쟁이 시작된 지 4주가 지나도록 이란의 정권 및 체제 붕괴라는 목표 달성에 진전이 없고, 여론 흐름도 악화하자, 네타냐후는 조기선거를 피하는 쪽으로 전략을 급선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히브리대학 정치학자 기디온 라하트는 네타냐후의 현재 전략이 “시간 벌기”라며 한 차례 전쟁과 짧은 휴지기, 또 다른 전쟁이 반복되는 구도가 유권자 피로를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네타냐후는 이란 전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연정 참여 세력들에게 선심성 예산을 남발하고 있다. 네타냐후는 의회 다수 확보에 필수적인 유대교 초정통파 정당들을 달래려고 약 50억 셰켈(16억달러)을 초정통파 학교 지원에 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정통파 정당 샤스와 통합토라유대교(UTJ)는 초정통파 신자의 군 복무 면제 법제화가 없으면 예산에 반대하겠다고 압박해 왔으나, 이번 재정 지원을 계기로 반대 방침을 누그러뜨린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의 부패 혐의 재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개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이츠하크 헤어초크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사면을 요청한 상태다. 재판 중 사면은 이스라엘에서 전례가 없는 조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플로리다 마라러고 자택이 있는 지역구에서 주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져, 민주당 후보가 트럼프가 직접 지지한 공화당 후보를 꺽고 승리했다. AFP 연합
트럼프도 플로리다 마라러고 자택이 있는 지역구에서 벌어진 주의회 보궐선거에서 자신이 직접 지지한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게 완패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24일 치러진 플로리다 주 하원의원 제87선거구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에밀리 그레고리가 공화당 후보 존 메이플스를 꺾고 의석을 탈환했다. 이 지역구는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11%포인트 격차로 승리를 안겨준 공화당 우세 지역이다. 트럼프의 주거지에서도 민심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트럼프는 선거 전날인 23일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장문의 글을 올려 공화당 후보 존 메이플스를 강하게 밀어줬는데도, 메이플스는 완패했다. 트럼프의 지지 효과 역시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공화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승리한 그레고리는 선거운동 내내 물가 상승과 생활비 부담, 지역 경제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트럼프의 지지율도 취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로이터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함께 지난 20∼23일 실시한 여론조사(오차범위 ±3%p)에서 응답자의 36%가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지난주 조사에서 나온 40%보다 4%포인트(p) 하락한 수치로 재집권 이후 최저이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재집권 초기 47%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여름 이후로도 대체로 40% 선을 유지해왔는데, 40%대가 깨진 것이다. 응답자의 25%만이 트럼프의 물가 대응을 긍정 평가했다. 이란 전쟁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5%였고, 61%는 반대한다고 답했다.
여론조사 집계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 평균에 따르면, 트럼프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41%에 그치지만 56%가 부정적 평가이다. 지지-반대 격차는 마이너스 15%포인트로 2기 집권 이후 최악이다. < 정의길 기자 >
미국 · 이스라엘 '이란 침공' 25일째…국제법 질서 '짓밟혀'
유엔헌장 등 따른 침략전쟁 금지·민간인 보호 위반
핵 협상 중 임박한 위협 없는데도 선제공격 교전 지역 아닌데도 이란 지도부 표적 살해
이란은 350만 명, 레바논 100만 명 피란 이스라엘의 반인도 범죄 중동 전체로 확장
이란에 대한 수십 년 제재와 군사 공격 슈타인보크 "집단 처벌 전제 경제 전쟁"
미국과 이스라엘의 2·28 '불법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25일째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미국·이스라엘의 유례 없는 대규모 폭격이 이어지고 이에 맞서 이란의 거센 반격이 맞물리면서 이미 수만 명의 사상자와 수백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했고, 특히 가스전과 정유시설 등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이 오가면서 유가 급등 등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촉발했다.
알자지라의 집계에 따르면 24일 현재 침공을 당한 이란의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1500명과 1만8551명이다. 이란의 반격에 따른 이스라엘의 사망자와 부상자는 18명과 4829명이다. 미군은 사망자 13명과 부상자 200명이다. 그리고 레바논(사망 1039명, 부상 2876명), 이라크(사망 61명, 부상 수십 명), 아랍에미리트(UAE, 사망 8명, 부상 161명), 사우디아라비아(사망 2명, 20명 부상), 오만(사망 3명, 부상 15명), 쿠웨이트(사망 6명), 바레인(사망 2명), 카타르(부상 16명), 요르단(부상 28명) 시리아(사망 4명), 팔레스타인(사망 4명) 등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6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폭발 직후 연기가 치솟고 있다. 2026. 03. 06. [WANA=로이터=연합]
미국·이스라엘 '이란 침공'…어떤 국제법 위반? 유엔 헌장·제네바 협약·로마 규정 전방위 타격
이런 가운데 국제경제컨설팅 업체 디퍼런스그룹의 설립자이자 저명한 국제 문제 전략가인 단 슈타인보크는 '미국·이스라엘의 국제법과의 전쟁'이란 24일 자 <모던디플로머시> 기고를 통해 이번 불법적 이란 침공을 통해 두 나라가 어떻게 국제법을 훼손했는지를 조목조목 따졌다.
단 슈타인보크는 "현대 국제법 질서는 유엔 헌장(1945), 제네바 협약(1949), 로마 규정(1998), 그리고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도출된 관습법에 기초한다. 핵심 원칙에는 침략 전쟁 금지, 민간인 보호, 전쟁 범죄·반인도주의 범죄·집단학살(제노사이드)에 대한 개인의 형사 책임이 포함된다"라면서 "무력은 자위권을 행사하거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승인할 때만 허용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이미 이런 원칙 대부분을 위반했다는 게 그의 견해다.
먼저 유엔 헌장 제2조 4항(무력 사용 금지) 위반이다. 이 조항은 유엔 회원국이 타국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을 해할 목적으로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란에 대한 미국·이스라엘의 합동 공격은 이 조항을 위반한 "침략 전쟁"이라는 얘기다.
2025년 10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당일 예루살렘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에서 만나고 있다. 이날은 미국이 중재한 포로-인질 교환 및 하마스 간 휴전 협정이 체결된 날이었다. 2025.10.13. 로이터 연합
이란의 임박한 위협 없는데도 선제공격 "자위권, 안보리 승인 때만 무력 허용"
물론 자위권(유엔 헌장 제51조)과 안보리 승인이란 예외가 있다. 하지만 미국·이스라엘의 공격 이전엔 이들이 자위권을 정당화할 만한 '이란의 위협'은 없었다고 봤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2월 26일 제네바 3차 핵 협상이 "상당한 진전"(중재국 오만의 바드르 알부사이디 외무부 장관)을 봤고 성공적 타결을 앞둔 시점에 예고 없이 이란을 선제공격했다. 작년 6월에도 핵 협상 도중 마찬가지로 나탄즈, 포르도, 이스파한 핵시설 3곳을 때렸다.
이를 두고 슈타인보크는 "당시 개혁 성향의 신임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은 미국, 이스라엘과의 갈등을 끝내고자 협상을 시도했지만, 그건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메시아적 극우 내각이 구상한 '새로운 중동'과는 맞지 않았다"고 풀이했다.
지난 17일 이란 전쟁에 항의하며 사임한 조 켄트 미 국가대테러센터 국장은 X를 통해 "이란은 우리나라에 즉각적 위협이 되지 않았으며, 우리가 이 전쟁을 시작한 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강력한 대미 로비에 의한 압박 때문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해 이런 시각을 뒷받침했다. 국제법상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은 '임박한' 위험이 있을 때만 허용된다. 이번 이란 전쟁의 성격에 대해 슈타인보크는 "전쟁 범죄와 반인도주의 범죄로 기소됐거나 돼야만 할 네타냐후 같은 지도자들이 선동한 국제법상 불법 침략 전쟁이다"라고 규정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집요한 공격에도 하메네이 후계 모즈타바 하메네이 체제는 건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큰 그림은 알리 하메네이, 작은 얼굴그림은 그의 차암 모즈타바 하메네이. 뉴욕타임스 3월 15일
"하메네이·라리자니 암살은 국제법 위반" 선포된 교전 지역 밖의 표적 암살 불허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을 포함한 이란 최고 지도부 인사들에 대한 표적 암살도 심각한 국제법 위반으로 봤다. 그는 "특히 선포된 교전 지역 밖에서 이뤄지는 표적 암살은 중대한 국제법 위반이다"라며 "이런 행위들은 타국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에 반하는 무력 사용 금지를 위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적 적대 행위가 없는 상황에선 자의적 생명 박탈을 금지하는 국제인권법이 적용되며, 표적 살해는 해당 국가의 책임이 따르는 초법적 살해다"라고 비판했다. 전례로는 알리 하메네이의 오른팔이었던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살해 사건이 있다. 솔레이마니는 2020년 1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른 드론 공격으로 살해됐다.
반인도 범죄와 강제 이주 문제도 심각하다. 슈타인보크에 따르면, 이번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에서 350만 명, 레바논에서 100만 명 이상이 강제로 이주했다. 앞서 2023년 하마스의 10·7 '기습 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 과정에서 민간 인프라 공격, 경제 봉쇄, 대규모 강제 이주, 대량 학살이 이스라엘에 의해 체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됐다. 이런 행위들은 로마 규정 제7조의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
15일, 이스라엘 북부 국경 근처 북부 갈릴리의 한 진지에서 이스라엘 자주포가 레바논 남부를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2026. 03. 15 [AFP=연합]
이란은 350만 명, 레바논 100만 명 피란 이스라엘의 반인도 범죄 중동 전체 확장
이런 이스라엘의 행위가 초기엔 가자와 요르단강 서안에 국한된 걸로 보였지만, 이젠 레바논과 이란 등 지역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봉쇄와 과도한 무력 사용, 집단 처벌 등이 그 공통점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로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의 리타니강 이남을 '안보 구역'으로 설정하고 남북을 잇는 모든 다리를 폭파하고 장기 주둔 계획을 밝힌 걸 들 수 있다. 최근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 폭격을 피해 북부로 내몰린 남부 주민 수십만 명의 귀환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슈타인보크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완충 지대를 확장하는 정책은 인구 구조 재편을 전제로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란에서도 체제 약화를 목표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민족 간 분열 조장 시도가 진행 중이라고 본 슈타인보크는 "이란 체제 약화와 분열을 목표로 한 정책은 특정 종교·민족 집단을 겨냥한 문화적 집단학살과 국가 해체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제 이주에 기반한 인종 청소 혐의도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22일 새벽 이스라엘의 응급 구조대원들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아라드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방공망이 요격에 실패하면서 전날 이스라엘 남부의 핵도시 디모나와 아라드 두 곳에 쏟아진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의료진이 밝혔다. 2026.3.22 아라드 AFP 연합
이란에 대한 수십 년의 제재와 군사 공격 슈타인보크 "집단 처벌 전제한 경제 전쟁"
그는 수십 년에 걸친 미국의 일방적 대이란 제재와 불법적 군사 공격을 "집단 처벌을 전제로 한 경제 전쟁을 연상시킨다"며 "경제 제재와 군사 공격의 결합은, 특히 국제법적 관점에서 정당하지 않을 때 인도주의법과 인권법상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가자와 이란에서 단행된 일방적 제재는 국제법을 위반하며 부당하고 막대한 고통을 초래해 왔다"고 덧붙였다.
슈타인보크는는 "미국 주도의 서방 국가들이 무기와 자금을 지원한 이스라엘의 가자전쟁...현재 진행 중인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이르기까지 명확한 연속성이 존재한다"며 "이들의 공통분모는 과장된 자위권 선언, 취약한 인도주의법 집행, 국제법의 선택적 적용, 그리고 궁극적으론 안보리에서의 미국의 절대적 거부권 행사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국제법 위반이 더 많이 허용될수록 경제적 비용은 더욱 커질 것이며, 군사적 파괴는 더욱 잔혹해지고 인명 피해는 더욱 치명적일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 이유 기자 >
이란 전쟁, 트럼프 없는 세상을 꿈꾸게 하다
당장 전략적 자율성 확보 위한 고민 시작해야 전쟁 언제 끝나든 세계는 이전으로 못 돌아가
전통적 우방국들, 미국 정책에 대놓고 등돌려 트럼프 외교에 피로·혐오 쌓여 전환점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이란 전쟁은 언제 끝나냐고 묻습니다. 그만큼 이 전쟁이 일상을 파고드는 충격이 크다는 방증입니다. 휘발유 값과 환율이 치솟고, 주가는 널을 뜁니다. 미국이 동맹국들에 파병까지 요청하고 있으니, 자칫하면 우리 젊은이들의 인명 피해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눈앞에 다가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전문가는 사실상 없습니다. 한국에서 중동 문제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조차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라며 방송 출연 요청을 고사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답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이 전쟁을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한 사람뿐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조차 어제 말과 오늘 말이 다른 ‘럭비공’ 같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나든, 세계는 이미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22일 새벽 이스라엘의 응급 구조대원들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아라드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방공망이 요격에 실패하면서 전날 이스라엘 남부의 핵도시 디모나와 아라드 두 곳에 쏟아진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의료진이 밝혔다. 2026.3.22 아라드 AFP 연합
이란 전쟁과 ‘제3차 세계대전’의 그림자
프랑스의 역사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 “제3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미국이 러시아의 경고를 묵살하고 나토의 동쪽 확장을 밀어붙이면서 강대국 간 구조적 충돌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란 전쟁은 그 충돌이 더욱 격화한 버전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에서 벌어진 균열의 서막이었다면, 이란 전쟁은 세계 에너지 공급의 심장부인 중동에서 그 균열을 결정적으로 심화시키는 사건입니다. 파장은 경제와 안보, 외교를 가리지 않고 훨씬 넓고 깊게 번질 것입니다.
일부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질서의 균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면, 이란 전쟁은 그 균열을 돌이킬 수 없는 단층으로 만드는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무너지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
2차 대전 이후 세계 질서는 미국이 설계하고 주도한 자유주의 국제질서 위에 세워졌습니다. 국제법과 동맹, 자유무역, 국제기구라는 네 개의 기둥이 그 건물을 떠받쳤습니다. 이른바 ‘규칙 기반 국제질서’입니다.
그 건물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유엔에서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많은 나라들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대러시아 제재에는 상당수 국가가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글로벌 사우스’가 중립을 선택한 것입니다. 규탄은 하되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이 엇갈린 태도야말로,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한 세계의 속마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이란 전쟁을 전후해 이 흐름은 한층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들까지 워싱턴의 정책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동맹국들마저 돌아서다
그 첫 신호는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서 울렸습니다.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는 미국의 관세 압박 외교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중진국들의 연대를 강조했습니다. 이란 전쟁이 시작된 뒤에는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미국의 군사 행동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천명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장면입니다. 미국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도,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것은 동맹의 문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그의 기고문을 게재한 3월 6일 이코노미스트 기사.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에 군함을 보내 달라고 주요국들에 요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명받은 나라 중 중국은 물론이고 영국·프랑스·한국·일본 어느 나라에서도 즉각적인 파병 약속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요청을 받지 않은 독일과 호주 같은 전통적 우방국들에서는 “우리가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라는 냉담한 반응이 흘러나왔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적 마찰이 아닙니다.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신뢰가 이미 붕괴의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신호입니다.
일본마저 한발 물러서다
한국 정부가 가장 예의 주시한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안보에서는 미국과 가장 긴밀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일본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한국의 선택지를 가늠하는 사실상의 잣대였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한국도 같은 압박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일본도 신중함을 택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19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서방 국가들과 이란 규탄 공동 성명을 앞세운 채 “법적으로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라는 논법으로 군함 파견 요구를 비켜 갔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서방 국가들의 공동성명에 이름을 올리는 선에서 대응을 마무리했습니다. 동맹의 언어를 쓰면서도 행동은 꺼리는, 이 조심스러운 줄타기야말로 지금 중견국들의 공통된 생존 방법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이 3월 19일 워싱턴 D.C. 백악관 국빈 만찬장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만찬을 하는 동안 발언하고 있다.2026.3.19. UPI 연합
트럼프 없는 ‘N-(마이너스) 1 체제’라는 가설
이 일련의 장면들은 하나의 가설을 떠올립니다. 'N-(마이너스) 1 체제'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현재 세계 질서를 구성하는 국가들의 수를 N이라고 할 때, 그 가운데 단 하나의 변수, 즉 트럼프의 미국을 제외한 세계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트럼프식 외교에 대한 피로와 혐오가 쌓이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는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의식해 정면충돌을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민 사회와 여론의 세계에서는 “트럼프가 없는 세계가 더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국경을 넘어 번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집단적 욕망이 가시적인 외교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종종 여론이 먼저 움직이고 정치가 뒤따르는 방식으로 전환점을 만들어왔습니다.
다극 세계로 향하는 길목에서
많은 국제정치 전문가는 세계 질서가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망합니다. 미국·중국·러시아,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영향력을 나누는 구조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변화를 예고했다면, 이란 전쟁은 그 속도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큽니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한국에 이것은 단순한 지정학적 관전의 문제가 아닙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파병 압박과 전쟁 확산의 위험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긴 시야로 보면, 다극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떻게 외교적 선택지를 넓히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것인지를 지금 당장 고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란 전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냉혹하고 가장 중요한 교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쟁은 저 멀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그 전쟁이 던지는 질문은 이미 우리 발밑에 와 있습니다.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복귀한 방탄소년단(BTS)의 ‘BTS 컴백 라이브: ARIRANG’ 공연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날 공연은 넷플릭스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세계 190개국에 생중계됐다2026.3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복귀한 방탄소년단(BTS)의 21일 컴백 라이브 공연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못 미치는 4만여명이 현장 관람한 가운데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넷플릭스 라이브 스트리밍 중계로 190개국 '아미'들이 함께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지켜봤다.
철저한 안전 점검 및 대비, 1만 6000명 가까운 경찰과 지원인력 덕분에 별다른 사고없이 끝났지만, 예상했던 최대 26만 명에 못미치는 인파가 모인 것을 두고 “아쉽다”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지나친 통제로 즐길 기회를 빼앗은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AP 통신도 “지나친 통제로 서울의 정신적 중심지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이번 공연의 상징성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를 겪은 우리 정부와 사회로선 안전한 공연 관리를 우선할 수 밖에 없었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열고 있다. 2026.3.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아리랑 가락에 감동, 12곡 가운데 8곡을 새 앨범 수록곡으로
액자 프레임 형태의 큐브 무대에 50명의 무용수들과 함께 선 방탄소년단은 광화문과 경복궁을 배경 삼아 압도적인 오프닝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조선시대 장군의 갑옷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상은 한국적인 미와 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극대화하며 웅장함을 뿜어냈다. 첫 곡 '보디 투 보디'(Body to Body) 중간에 우리 민족의 한과 아름다움이 농축된 '아리랑' 가락이 울려퍼진 것은 감동적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공연에 들려준 곡목 목록이었다. 오랜만의 귀환인 만큼 대중적인 메가 히트곡으로 쉽게 갈 법도 했지만, 모두 12곡 가운데 여덟 곡을 전날 공개된 정규 5집 음반 '아리랑'(Arirang) 수록곡으로 채우는 자신감을 선보였다. 퀄리티와 퍼포먼스로 승부하겠다는 오만함(?)도 내비쳤다.
아미들로선 한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질 듯했다. 새 앨범의 타이틀 곡 '스윔'(Swim)을 완벽한 군무와 노래로 들려준 것이 압권이었다. 55분쯤 흘러 다른 멤버들이 뒤돌아 섰을 때 부상으로 계속 의자에 앉아 랩을 하던 리더 RM이 늘 콘서트의 앙코르를 장식했던 '소우주'(Microcosmos)를 들려주자고 제안하자 멤버들은 다시 관람객들을 향해 돌아섰다. 멤버들은 관객들이 휴대전화를 켜도록 유도했다. 광화문을 물들이던 별빛이 북두칠성이 되어 관객들의 눈앞에 띄워졌다.
그리고 질서 정연한 퇴장과 쓰레기 정리 등이 이어졌다. 일본인 아미들이 20리터 들이 쓰레기 봉지를 들고 정리하는 데 앞장선 것이 눈길을 끌었다.
동아일보는 공연이 끝난 뒤 엑스(X)에 ‘아미’로 추정되는 해외 팬들의 열렬한 반응이 쏟아졌다고 전했다. 이들은 “정말 최고의 날이었다. BTS 고맙다. 넷플릭스 정말 고맙다”, “실력이 훨씬 늘었다. 정말 멋진 퍼포먼스였다”, “노래도 최고였고, 눈앞에서 보니 눈물이 나왔다”, “우리의 자랑 BTS, 너무 사랑하고 넋을 잃고 바라봤다” 등의 찬사를 보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열고 있다. 2026.3.21 연합
당초 최대 26만명, 실제로 4만명…지나친 통제로 흥 깨뜨린 건 아닐까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공연이 펼쳐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 8시 기준, 4만∼4만 2000명이 운집했다. 경찰도 비공식으로 4만 2000명 정도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주최사인 하이브는 “10만 4000명 정도가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고 전했다. 주최 측의 집계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당초 예상했던 26만 명과는 거리가 꽤 있다.
가장 먼저 광화문 광장에 지나치게 많은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의 우려가 높다는 관계당국의 당부에 광화문 방문을 자제한 시민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초·중·고교에 가정통신문을 배포하며 학생들의 광화문 방문 자체를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 공연이 넷플릭스를 통해 실시간 생중계되기 때문에 “‘안방’에서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삼엄한 통제로 광화문 광장 접근성이 떨어지고, 공연 관람을 마친 후 귀가하는 과정에도 적잖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시민들이 광화문행을 꺼린 요소로 꼽혔다. 한 BTS 팬은 “공연 시간이 한 시간 정도라는 소식에 광화문에 가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상황에 무리해서 광화문을 찾기보다는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관객들은 놀라울 정도로 질서정연했고, 좌석 티켓을 가진 팬들은 대부분 자리에 앉아 있었다”며 “함성 소리는 예상했던 것처럼 귀청이 터질 듯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좌석 구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함성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던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평소보다 준비 물량을 크게 늘렸던 편의점과 상점 상인 일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인파에 SNS를 통해 “재고가 많이 남았다”는 식의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열고 있다. 2026.3.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다음달 월드 투어 수익, 스위프트의 '에라스투어' 앞지를 것"
미국과 유럽 주요 언론과 전문매체들은 미국 최대 스포츠 연계 음악 이벤트인 슈퍼볼 하프타임쇼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콘서트에 비교하며 일제히 좋은 평가를 쏟아냈다. 새 앨범 제목인 '아리랑', 공연 장소인 광화문광장의 상징성, 무대 의상 선택 등을 두고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문화와 정체성이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졌음을 선언한 것이란 평가를 내놓았다.
NYT는 홈페이지에 'BTS 복귀' 코너를 별도로 만들어 컴백 공연, 신규 앨범, BTS 음악 가이드, 활동 공백, K-팝 전반에 관한 기사들을 다양하게 심층적으로 다뤘다. NYT는 서울 및 뉴욕발로 공동 작성한 이날 컴백 공연 기사에서 "서울의 역사적 중심부에서 펼쳐진 이번 공연은 한국 소프트파워의 핵심 동력인 BTS의 웅장한 귀환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컴백 공연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며 "BTS의 글로벌 위상과 인기를 입증하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이어 "82회에 달하는 글로벌 투어 역시 그 파급력과 경제적 영향력을 보여준다"며 BTS의 이번 투어 수익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티켓 수익인 20억 달러에 맞먹거나 넘어설 수 있다고 전했다.
2023∼2024년 이뤄진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는 관광 수입만으로 콘서트 개최 지역의 경제가 살아난다는 평가를 받으며 '테일러노믹스'(Taylornomics)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미국 안팎에서 사회·문화·경제적 신드롬으로 자리 잡은 바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BTS가 같은 도시에서 여러 번 공연을 열어 자신들의 이동 비용을 절감하고 팬들이 직접 찾아오게 만드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BTS의 이번 투어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대비 절반 정도의 공연 횟수에도 불구하고 공연당 수익은 비슷한 수준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열고 있다. 2026.3.21 연합
유럽 언론도 이번 복귀 무대를 주요 기사로 다뤘다. BBC는 공연이 열린 곳이 서울의 역사적인 도심이라고 소개하며, 14세기 왕궁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광화문 광장에 들어서는 것은 마치 BTS에 헌정된 사원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줬다고 평가했다. BBC는 아울러 BTS의 복귀 무대는 개선문을 떠올리게 하는 형태였다며 "이는 한국 문화의 '얼굴'이 된 일곱 멤버에게 주어진 흔치 않은 영예"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독일 dpa통신은 2013년 데뷔 이후 한국 대중음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BTS가 멤버들의 군 복무로 인한 4년의 공백 끝에 전 세계 팬들이 고대하던 대규모 복귀 공연을 치렀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AFP 통신은 다음달 시작하는 BTS의 월드투어가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수익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예상하며, 가요를 비롯해 영화, 한식, 화장품 등 한류 전반의 인기 속에 한국 역시 관광과 굿즈 판매 증가로 혜택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NYT의 패션 담당 기자는 "BTS가 컴백 무대에서 한국 브랜드 송지오의 의상을 선택했다는 것은 공연장소(광화문광장), 앨범명(아리랑) 선택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스타일에 관한 게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문화와 정체성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대중문화 매체 버라이어티도 "한국인 디자이너(송지오)가 멤버들과 협업해 역사적인 콘서트를 위한 캐릭터를 완성했다"라고 소개했다.
CNN 방송은 슈퍼볼 하프타임쇼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 행사 연출자로 유명한 해미시 해밀턴이 총연출을 맡았다는 점을 부각하며 "이는 BTS 컴백 공연의 규모를 가늠케 한다"라고 평가했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1억 명이 넘는 미국인이 동시에 시청하는 유일한 행사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대중가수들에게 가장 영예로운 공연 무대로 여겨진다.
CNN은 공연을 보러 온 BTS 팬들 상당수가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차림이었다고 전하면서 "최근 몇 주간 소셜미디어(SNS)에는 한복 스타일링과 전통 액세서리를 접목한 패션 아이디어들이 넘쳐났다"고 소개했다.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열린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찾은 팬들이 공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6.3.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새 앨범 호평 쏟아져, 스포티파이 1~14위 모두 수록곡
앨범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미국의 음악지 롤링스톤은 "이번 블록버스터급 컴백에서 세계 최대 밴드 BTS는 그룹 정체성과 한국적 뿌리를 강조하면서도 음악을 모험적이고 새로운 영토로 밀어붙였다"라고 평가했다.
미 공영방송 NPR은 앨범 리뷰에서 "여러 측면에서 볼 때 BTS는 장르 경계를 넘어 기존 음악을 끌어오면서도 한국에서 자생한 한국 대중음악의 궁극적 실현이면서 민족적 자부심의 구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4년간의 강제됐던 공백 끝에 그룹을 재결합시킨 앨범 아리랑은 그들의 부재 속에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은 산업에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새 앨범 '아리랑'은 세계적인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글로벌 '데일리 톱 송' 차트에서 타이틀곡 '스윔'이 1위를 차지했으며 수록곡 전곡이 14위까지 싹쓸이했다. 미국 '데일리 톱 송' 차트에서도 '스윔' 1위, '보디 투 보디'(Body to Body) 2위, '훌리건'(Hooligan) 6위 등 30위 이내에 전곡이 진입했다.
앨범 판매량도 자체 기록을 경신했다. 소속사 빅히트 뮤직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1시 발매된 앨범은 발매 당일 398만장 판매됐다. 이전까지 방탄소년단의 발매 첫 주 판매량 최고 기록은 2020년 2월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소울 : 7'이 세운 337만장이었다. 5집은 하루 판매량으로 이 수치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5집은 또한 이탈리아, 멕시코, 스웨덴 등 전 세계 88개국(지역)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 1위에도 올랐다. '스윔'은 21일 오전 9시까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90개국(지역) 아이튠즈 '톱 송' 정상을 휩쓸었다.
이 곡은 국내 음원차트 멜론, 벅스에서도 실시간 차트 1위로 직행했으며 멜론에서는 앨범 전곡이 '톱 100'에 진입했다. < 임병선 기자 >
경복궁 밤하늘 물들인 BTS ‘아리랑’…전 세계 아미들 보랏빛 환호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현장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열린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BTS THE COMEBACK LIVE|ARIRANG)을 찾은 팬들이 응원봉을 든 채 휴대전화 카메라로 BTS의 공연 모습을 담고 있다. 연합
“비티에스(BTS), 비티에스, 비티에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월대 앞. 공연 시작 10분 전부터 팬들은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비티에스”를 연호했다. 수많은 아미밤(응원봉)이 흔들리는 가운데 광화문의 조명이 꺼지자 현장 공기는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이어 전날 발표된 방탄소년단(BTS) 정규 5집 ‘아리랑’의 인터루드 ‘넘버 29’에 담긴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가 울렸고, 커다란 나발 소리가 광화문 광장을 가르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가지런히 손을 모은 검은 옷의 댄서들이 양옆으로 흩어지자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큐브 형태의 무대는 광화문과 연결되는 거대한 문처럼 보였다. 그 문을 통과해 방탄소년단은 마침내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위 아 백(We Are Back).” 리더 알엠(RM)의 외침과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광화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이날 무대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등장 자체였다. 방탄소년단은 광화문 월대를 지나 세종대로로 이어지는 길, 조선의 왕이 궁 밖으로 나올 때 걷던 ‘왕의 길’을 따라 무대에 올랐다. 백성의 노래 ‘아리랑’을 앞세운 이들이 왕권의 상징 공간인 경복궁 앞에서 새 출발을 알린 장면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선명한 의미를 남겼다. 한국에서 출발한 일곱 청년이 세계적인 그룹이 돼 다시 서울의 심장부로 돌아와, 자신들의 뿌리를 노래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의 ‘옛 투 컴 인 부산’ 이후 3년5개월 만의 완전체 무대라는 점에서 이날 공연은 ‘방탄소년단 2.0’의 공식적인 출발선이 됐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방탄소년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오프닝은 ‘아리랑’의 주제의식을 집약해 보여줬다. ‘보디 투 보디’ ‘훌리건’ ‘2.0’이 연이어 펼쳐지며 신보의 전반부가 지닌 강렬한 에너지를 밀어 올렸다. 특히 ‘보디 투 보디’에서는 실제 ‘아리랑’ 선율이 울려 퍼지며 한국적 정서가 공연의 한복판에 놓였다. 붉은 조명 아래 광화문이 거대한 배경막처럼 떠오른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리허설 도중 발목을 다친 알엠은 무대 중앙을 자유롭게 누비지는 못했지만 의자에 앉거나 무대 한쪽에 서서 랩을 이어갔고, 나머지 멤버들은 돌출 무대까지 활용하며 그 빈자리를 메웠다. ‘훌리건’의 복면 댄서들, ‘에프와이에이’(FYA) 때 무대를 가득 채운 댄서들의 군무도 새 앨범 전반부의 공격적 사운드를 시각적으로 밀어붙였다. ‘에일리언스’에서는 제이홉의 강렬한 랩이 단연 돋보였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1분간의 오프닝 무대를 마친 멤버들은 첫 인사에서 벅찬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진은 “몇년 전 마지막 부산 콘서트에서 저희를 기다려달라고 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가뿐 숨을 쉬며 말했다. 지민은 “이 앞에서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울컥하고 너무 감사하고 7명이서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슈가는 “한국에서 가장 역사적인 장소인 광화문에서 무대를 할 수 있게 돼 정말 정말 영광”이라며 “이번 앨범에는 저희의 정체성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아리랑’을 (앨범) 타이틀로 정했고 그 마음을 담아서 광화문에서 무대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정국도 영어로 “저희가 가진 걸 쏟아붓겠다”고 했고, 알엠은 “긴 여정이었지만 마침내 여기에 섰다”고 소리쳤다.
무대 연출은 광화문이라는 장소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방식으로 짜였다. 큐브형 메인 무대 내부의 삼중 엘이디(LED) 구조는 태극기의 건곤감리 문양에서 착안한 그래픽과 색감을 입혀 곡마다 다른 상징을 부여했다. 붉은 조명이 광화문을 뒤덮을 때는 왕궁의 위엄과 긴장이, 푸른 조명이 무대를 적실 때는 물과 밤의 이미지가 강조됐다. 파도, 불꽃, 하늘, 대지 같은 자연의 상징이 화면을 채우며 신보 ‘아리랑’이 담아낸 한국적 정서와 팀의 새 서사를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무대 뒤편에 실제 광화문이 프레임처럼 걸리면서, 공연장은 세트가 아니라 서울 도심 전체를 끌어들인 하나의 거대한 야외 극장처럼 작동했다.
의상도 이번 공연의 의미를 보강했다. 멤버들의 의상은 전통 한복의 실루엣을 현대적으로 변주한 디자인이었다. 넓은 소매와 여밈선, 갑옷을 연상시키는 절개와 장식이 섞이며 조선시대 장군의 복식 같은 인상을 남겼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중반 이후 공연은 과거의 히트곡과 현재의 고민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흘렀다. ‘버터’에서는 노란 조명이 분위기를 환하게 바꿨고, ‘마이크 드롭’에서는 푸른 조명이 차갑고 날렵한 긴장을 만들었다. 초반 다소 굳어 보였던 멤버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농담을 주고받으며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노멀’ 무대를 마친 뒤 “노래 너무 좋은데?”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서는 긴장을 풀어낸 멤버들의 여유도 읽혔다.
특히 타이틀곡 ‘스윔’ 무대는 멤버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던 공연의 핵심이었다. 스크린을 수놓은 파도 이미지와 여백을 살린 절제된 안무는, 더 세고 빠른 자극 대신 삶의 파도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헤엄쳐 나아가겠다는 이번 앨범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노래를 부르기 전 제이홉은 “이번 앨범에는 다양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는 저희의 수많은 고민들도 담겼다”며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조금은 잊혀지지 않을까’ ‘여러분들이 우리를 기억해주실까’ 하는 그런 고민들도 사실 없지 않아 있었다”고 털어놨다. 슈가는 “저희가 잠시 멈춰야 했던 시간 동안 우리가 지킬 것은 무엇인가, 또 변화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말 정말 정말 많이 고민했다”며 “확신할 수 없고 불안하긴 하지만 이런 감정들 또한 저희 감정, 저희 자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방탄소년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메가 히트곡 ‘다이너마이트’를 부르며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이들은 앙코르 곡 ‘소우주’로 컴백 공연을 마무리했다. 멤버들은 관객에게 휴대전화 불빛을 켜달라고 요청했고, 광화문광장은 다시 한번 별빛 같은 불빛으로 물들었다. 어깨동무를 한 채 인사한 멤버들은 “감사합니다, 아미” “안전하게 돌아가세요”를 거듭 외쳤다.
꽉 차인 60분의 공연이었지만, 스피커와 조명, 각종 구조물이 관객을 여러 구역으로 분절시키면서 현장의 에너지가 완전히 하나로 응집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날 빅히트 뮤직이 밝힌 10만4000명 관람객의 안전한 관람을 위한 조처였지만, 무대가 여러개로 나뉜 듯한 인상이었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방탄소년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럼에도 이날 광화문에 울려퍼진 것은 단순한 컴백의 환호만은 아니었다. 백성의 노래 ‘아리랑’과 왕의 공간 경복궁, 그리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방탄소년단의 현재가 한자리에서 맞물렸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은 광화문에서 자신들의 뿌리와 현재, 그리고 다음을 함께 꺼내 놓으며 ‘방탄소년단 2.0’의 시작을 알렸다. < 이정국 김민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