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옹호' 자유대학 고발했다 무고죄 조사받아
경찰, 윤석열 옹호 통상적 집회라며 고발도 각하
내란 청산 정부·국회에만 못맡겨…내란특위 필요

 

청년이 내란 청산 주역으로 앞장서는 조직돼야
'반민특위 실패했지만, 내란특위단은 성공해야'
시민이 내란죄, 옹호죄, 선전선동죄 심판나서길

 

백은종(오른쪽 두 번째) 서울의소리 대표와 김혜민(오른쪽) 국민의힘해체행동 대표가 지난 1일 서울영등포경찰서에서 자유대학 고발 사건 조사를 받기 전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혜민 대표 제공

 

9월 1일 오전, 비가 내렸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앞에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와 강전호 이사, 서울의소리 회원들이 모였다. 국민의힘해체행동 대표인 필자도 그 자리에 섰다. 거센 비를 맞으며 우산을 쓰고 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해야 했던 이유는 다소 황당했다.

 

지난 1월 백은종 대표와 필자는 12·3 계엄을 옹호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유포해 온 자유대학을 고발했다. '윤석열은 옳았다', '계엄은 합법이었다'는 주장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유대학 관계자들은 특검의 황교안 전 총리 자택 압수수색을 막아서기도 했다. 공무집행방해다. 지금도 그 생생한 영상이 온라인 상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내란에 동조하며 공무집행을 방해한 범행 내용도 고발장에 담았다. 

 

특히 걱정스러웠던 것은 청소년과 청년이었다. 10대와 20대가 이런 콘텐츠를 반복해서 접하면 "12·3 계엄이 정말 합법이었던 것 아닌가", "윤석열이 그렇게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역사적 평가는 시간이 흐른다고 절로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 누군가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다시 쓰려 한다면, 그 왜곡에 맞서 기록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역사를 겪었다.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과 5·18 관련 내란 등의 책임으로 법정에 서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권에서는 전두환을 찬양하는 발언들이 나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모욕하는 일이 반복된다. 배재고 스타벅스 사태가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던가.

 

그래서 내란을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내란에 동조하는 자들도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자유대학을 고발한 이유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우리의 고발은 각하됐다.

 

경찰은 윤어게인을 외치며 윤석열을 옹호하는 것은 통상적인 집회이고 윤석열이 받은 처우가 부당하다고 알리는 것은 개인적인 의견 피력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각하 사유를 댔다.

대신 우리가 자유대학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고소당했다. 내란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움직임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우리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상황인가'

비를 맞으며 영등포경찰서 앞에 서 있으니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12·3 내란 이후 수많은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응원봉을 들고 국회 앞으로 달려갔고, 내란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특검은 끝났고 언론의 관심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재판은 그렇게도 신속하게 하더니, 내란 재판은 하염없이 질질 끌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윤어게인’과 ‘합법 계엄’을 주장하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내란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건이 희미해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아지고, 역사를 왜곡하는 주장이 조금씩 용인될 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힘은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우리는 친일청산에 실패한 경험도, 군부독재를 끝낸 뒤 독재세력을 철저히 청산하지 못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제나 다음 세대가 치렀다.

그날 경찰서 앞에서 다시 한번 절감했다. 내란 청산을 정부와 국회, 사법부에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내란청산국민특별위원단의 백은종 수석단장과 김혜민 국민의힘해체행동 대표 등 관계자들이 1일 국회 소통관에서 발족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민 대표 제공

 

"제도권 정치가 국민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같은 날 오후 1시 20분, 서울의소리와 애국시민들, 필자가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경찰서 앞이 아니라 국회였다. '내란청산국민특별위원단', 내란특위를 공식 출범시키기 위해서였다. 

 

내란특위 수석단장을 맡은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내란에는 반드시 단죄가 따른다는 것, 민주주의를 파괴한 자는 반드시 법과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오직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의소리, 청년들, 그리고 필자가 함께 한 달 전부터 내란특위를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은 바로, 제도권 정치가 국민의 염원, 눈높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내란특위 국회 자문위원인 최혁진 국회의원은 말했다.

“대한민국을 세운 것도 국민이고 헌법의 주인도 국민이며, 내란이 일어났을 때 나라를 지켜낸 이들도 국민이다. 내란 척결을 내란 당시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법부의 판결만으로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란의 잔불까지 완전히 끝났다는 최종적인 판단은 결국 우리 국민의 몫이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섰다.” 

 

최혁진 내란특위단 국회 자문인 최혁진 의원이 격려 발언을 하고 있다. 김혜민 대표 제공

 

"청년은 내란 청산의 구경꾼이 아니다"

 

이날 우리가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청년이었다. 12·3 내란에 대한 마지막 재판이 끝날 때쯤이면 지금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판결 이후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 사람들도 청년들이다.

 

민주주의의 규칙이 무너졌을 때 그 충격을 가장 오래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제 막 삶을 시작하는 청년 세대다. 이 사회에서 취업을 해야 하고, 집을 구해야 하고,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정한 채용도, 평등한 기회도,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도 결국 사회의 기본적인 규칙이 지켜질 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를 이용해 다른 세대와 성별, 집단을 공격하게 만들고, 그 틈에서 정치적 선동이 확산되고 있다. '계엄은 정당했다', '윤석열은 옳았다'는 콘텐츠 역시 그 흐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청년이 싸워야 할 상대는 다른 청년이 아니다. 청년의 기회를 빼앗는 불공정이며, 민주주의의 규칙을 무너뜨리는 권력이며, 사실을 왜곡해 국민을 갈라놓는 선동이다.

 

그러므로 청년은 내란 청산의 구경꾼일 수 없다. 당사자이며 주역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내란특위를 청년들이 앞장서는 조직으로 만들려는 이유다. 

 

 

시민 3만명이 감시자가 된다면

 

우리가 만들려는 조직은 ‘말뿐인 조직’이 아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내란의 기획과 실행뿐 아니라 그 과정의 방조와 비호, 옹호에 이르기까지 추적하고 필요하면 고발하고자 한다.

 

수사와 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국민의 눈으로 지켜보고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꿀 것이다. 온라인에서 내란을 왜곡하고 옹호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시민이 제보하고, 법률 검토를 거쳐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다.

 

평범한 시민이 나서 내란을 청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300명으로 시작해 3000명이 되고, 3만명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3만명의 시민이 내란 재판을 지켜보고, 내란 옹호와 역사 왜곡을 감시하고, 관련 사실을 기록한다면 내란 청산은 몇몇 정치인이나 법조인의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이 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결국 주권자 시민의 감시와 참여이기 때문이다. 

 

 

"반민특위는 실패했어도 내란특위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해방 이후 우리는 친일세력을 청산하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를 만들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의 방해와 경찰의 습격 속에 좌초했고, 친일청산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여파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내란특위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런 구호를 내걸었다. "반민특위는 실패했어도 내란특위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을 때 그 대가를 다음 세대가 치러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말이다.

 

9월 1일 아침, 필자는 비를 맞으며 경찰서 앞에 섰고 ‘자유대학’의 명예를 ‘감히’ 훼손한 것 아니냐는 질의로 가득한 경찰 조사까지 2시간 내내 받아야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국회에서 시민들과 함께 내란특위의 출범을 선언했다. 그 하루가 내게는 하나의 답이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국민이 직접 지켜야 한다. 반민특위는 실패했지만 내란특위는 실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청년들도 함께 역사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 김혜민 시민기자 > 

 

 

월드투어 LA 공연 기념…"현세대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

 
 

그룹 방탄소년단(BTS)  [빅히트뮤직 제공]

 

미국 로스앤젤레스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 개최를 기념해 이달 1∼8일(이하 현지시간)을 'BTS 위크'(BTS Week)로 지정했다고 소속사 빅히트뮤직이 1일 밝혔다.

 

로스앤젤레스시는 지난달 31일 시의회, 관광청, 빅히트뮤직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청에서 공식 선포식을 열었다.

 

'BTS 위크'를 기념해 로스앤젤레스 시청은 1일 5집 '아리랑'의 키 컬러인 붉은색으로 불을 밝힌다. 이는 도시를 방문하는 관객을 위한 공식적인 환영과 우정의 의미라고 빅히트뮤직은 설명했다.

 

캐런 배스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BTS 위크' 선포에는 예술과 문화가 상호 이해를 높이고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이 담겼다"며 "세계 문화에 크게 기여해 온 방탄소년단의 놀라운 업적을 기리고, 로스앤젤레스와의 특별한 인연을 전 세계인과 함께 축하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존 리 로스앤젤레스 시의원은 "이번 선포는 방탄소년단이 세계 문화에 남긴 특별한 발자취를 시 차원에서 기리는 것"이라며 "동시에 로스앤젤레스와 한국 및 한인 사회의 오랜 유대와 문화 교류를 기념하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방탄소년단(BTS) 로스앤젤레스 'BTS 위크' 선포식 [빅히트뮤직 제공]

 

방탄소년단은 1∼2일과 5∼6일 로스앤젤레스 대형 공연장인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연다. 4회 공연은 전석 매진됐다. 이들이 이곳에서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것은 2021년 12월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PERMISSION TO DANCE ON STAGE) 이후 4년 9개월 만이다.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는 결의문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2013년 데뷔 후 현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고 소개했다.

 

또한 방탄소년단이 세계 음악 산업에서 한국과 아시아 가수들에게 길을 열어줬고, 이들이 전한 희망의 메시지가 언어·문화를 넘어 전 세계를 연결하고,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앞서 '아리랑' 공연이 열린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 카운티, 일리노이주, 캐나다 토론도 등은 콘서트 개최를 기념해 'BTS 위크' 혹은 'BTS 데이'를 잇달아 지정했다.      < 이태수 기자 >

 

 

 

프레드릭 맥켄지와 기록하는 자의 책임

 

사진 한 장과 책 두 권으로 후대 한국인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 남겨

힘없는 자의 편에서, 강자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눈앞의 사실 기록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난 신문기자가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러 조선 땅을 밟았을 때, 그는 그저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기사를 송고하는 종군기자였을 뿐이다. 처음엔 일본에 딱히 나쁜 감정도 없었다. 오히려 근대화를 이룬 신흥강국이라는 호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사람은 눈으로 보고 마음을 바꾸는 법이다.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rthur McKenzie, 1869~1931)는 조선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본의 만행을 직접 목격한 뒤, 펜끝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그는 백년도 더 전에 이 땅에 왔다가, 사진 한 장과 책 두 권으로 후대 한국인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남겼다.

 

프레드릭 맥켄지(위키피디아)

 

을사년 이후의 목격자

 

맥켄지는 런던의 신문사 데일리 메일 소속으로 1904년과 1906년, 두 차례 조선을 찾았다. 첫 방문은 전쟁 취재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1906년 여름 다시 찾아온 그는 이번엔 아예 조선에 눌러앉다시피 하며 약 1년 반을 머물렀다. 1907년에는 순종의 즉위식 현장을 눈으로 지켜봤고, 같은 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한 뒤 전국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의 활동을 취재하러 다녔다.

 

경기도 양평 지평면 인근 야산에서는 낡고 녹슨 총을 든 젊은 의병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훗날 그는 이때 만난 의병이 "우리는 어차피 죽겠지만,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고 기록했다. 이 장면은 훗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회에서 재현될 만큼 깊이 남은 순간이 되었다.

 

1907년 맥켄지가 촬영해 '대한제국의 비극'에 실린 의병들 사진(위키피디아)

 

사진 한 장, 책 두 권

 

맥켄지가 이때 남긴 사진은 오늘날까지 전하는 사실상 유일한 의병 기록사진이다. 제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청년들이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선 이 사진은, 문서보다 더 강한 방식으로 그날의 진실을 증언한다. 그는 이 경험을 담아 1908년 '대한제국의 비극'이라는 책을 펴냈다. 을사늑약 이후 조선에서 벌어진 일제의 탄압과 의병의 항쟁을 세계에 소개한 최초의 서양어 기록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꾸민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재판 기록까지 부록으로 실려 있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하나의 고발장에 가까웠다.

 

1910년부터는 런던 타임스로 자리를 옮겨 1914년까지 일했지만, 조선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당시 캐나다 출신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암리 학살의 진상을 세상에 알렸고, 이 기록을 바탕으로 1920년에는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이라는 책을 펴냈다. 같은 해 런던에서는 한국친구회를 조직해 "한국의 독립은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에도 이익이 된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항일 언론활동을 벌였던 영국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1872~1909)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신념으로 목숨을 걸었던 서양인 언론인이었다. 맥켄지와 베델처럼 낯선 땅의 약자 편에 서기를 택한 외국인들이 있었기에, 조선의 참상은 완전히 묻히지 않고 세계에 전해질 수 있었다.

 

한국정부는 2014년 삼일절을 맞아 맥켄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조선 땅에 잠시 머물다 간 외국인 기자 한 사람에게, 백 년도 더 지난 뒤에야 갚은 감사였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위키피디아)

 

기록하는 자가 지켜야 할 것

 

맥켄지가 남긴 것은 단순한 특종이 아니다. 그는 힘없는 자의 편에서, 강자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눈앞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 그는 캐나다 퀘벡 태생이었지만, 당시 캐나다는 영국의 자치령(Dominion)이었고 그 자신도 평생 런던의 신문사에 몸담았다. 그가 소속된 영국 언론사는 하필 일본과 동맹을 맺은 나라였다. 자신이 몸담은 언론사와 국가의 외교적 이해관계와 정반대되는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힘없는 이웃 나라의 재산과 목숨을 짓밟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제국의 팽창은 인간의 양심에 반한다고 분명히 적었다. 자기가 속한 언론사와 동맹국의 체면보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진실을 앞세운 선택이었다.

 

지금 한국을 돌아보면 어떨까. 2024년 12월 3일 밤, 국민들은 텔레비전과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이라는 낯선 단어와 다시 마주해야 했다. 그 순간 시민들의 휴대전화 영상, 기자들의 현장취재, 국회의 담을 넘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 한 장 한 장이 훗날 진실을 증언하는 자료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맥켄지의 사진 한 장이 백년 넘게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이야기되듯, 지금 이 순간의 기록들도 언젠가 역사의 증거로 다시 소환될 것이다.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편에서 사실을 붙잡아 두는 일. 이것이야말로 맥켄지가 백 년 전 조선 땅에서 몸소 보여준 언론의 본분이었다. 지금 한국언론이 되새겨야 할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권력을 쥐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진실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 김성수 기자 >

 

KBS1 ‘다큐 공감’ 방송 화면 갈무리 2019.3.16.

 

 

 

 

 

 

참혹했던 네팔홍수 상황…"급류에 떠내려가다 나무에 걸려 살아"

 

                     중국 티베트 산사태 [AFP=연합]

 

중국 티베트자치구 르카쩌시 지룽현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로 인한 인명 피해가 사망 3명, 실종 558명으로 늘었다.

 

27일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현지시간) 기준 산사태로 3명이 숨지고 558명이 실종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실종자 가운데 외국인은 260명으로 파악됐다.

 

전날 오후 8시 기준 사망 3명·실종 265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밤사이 실종자가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구조 당국은 주민 2명을 구조했으며, 실종자 수색과 피해 상황 파악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산사태는 전날 오전 10시30분께 네팔 쪽에서 발생해 중국과 네팔 접경지역인 티베트자치구 르카쩌시 지룽현 일대를 덮쳤다.           < 한종구 기자 >

 

"비 한방울 안 왔는데 네팔 대홍수"…무서운 히말라야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 빙하호 붕괴로 홍수 가능성…'V'자 협곡도 피해 키워


대홍수 발생한 네팔 지역 항공사진  [AFP=연합]

 

중국 국경 인근에 있는 네팔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갑자기 발생한 큰 홍수가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내면서 홍수 발생 원인에 관심이 쏠린다.

 

네팔 정부는 애초 지진에 따른 영향으로 추정했으나 지구 온난화로 인한 히말라야산맥의 기후변화 탓에 엄청난 규모의 빙하와 암석이 붕괴하면서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7일(현지시간) AFP·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네팔 중북부 바그마티주 일대에서 일어난 대규모 홍수로 지금까지 네팔에서 157명이 숨지고 외국인 391명을 포함한 484명이 실종됐다.

 

이 지역에서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던 한국남동발전과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한국인 9명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네팔 접경 지역인 중국 티베트자치구 르카쩌(日喀則·시가체)시 지룽현에서도 전날 이번 홍수 원인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산사태가 발생해 3명이 사망하고 265명이 실종됐다.

 

전날 네팔 정부는 예비 조사 결과 티베트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빙하가 붕괴하면서 홍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부 장관은 의회에서 오전 8시 37분께 지진이 발생했고 3분 뒤에 돌발 홍수가 보고됐다며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 현지 보테코시강의 흐름이 차단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산사태로 인한 토사물과 바위가 보테코시강을 막았다가 갑자기 뚫리면서 흙탕물이 하류 지역으로 강하게 쏟아져 내렸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도 애초 바그마티주 라수와 지역에서 북쪽으로 47㎞ 떨어진 티베트 지역에서 규모 4.4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으나 이후 새로운 보고서를 내고 이를 정정했다.

 

USGS는 "장주기 지진파와 위성 사진 등을 추가로 분석한 결과 (규모 4.4가 아닌 규모 5.2 수준의) 지진 에너지는 오히려 산사태로 인해 발생했다"며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지진과 같은 충격이 발생했고 이후 빙하 붕괴와 토석류가 하류 지역으로 휩쓸려 내려가면서 큰 홍수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히말라야산맥의 기후변화로 이번과 같은 대형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그동안 계속 커졌다고 분석했다.

 

아시아 인구 20억명가량의 주요 물 공급원인 히말라야산맥에서는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아 없어지는 속도가 21세기 들어 2배 이상 더 빨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 지역의 빙하 두께는 2000년 이전에는 연평균 34㎝씩 줄었으나 2000년 이후부터는 연간 73㎝씩 2배 이상 빨리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대홍수로 흙탕물 덮친 네팔 누와코트 지역  [AFP=연합]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본부를 둔 통합산악발전국제센터(ICIMOD) 소속 기후 전문가들은 이번 돌발 홍수도 빙하에서 발생한 눈사태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ICIMOD 소속 한 전문가는 "네팔 쪽 빙하에서 발생한 얼음과 바위가 강을 막으면서 하류로 갑작스러운 물살을 쏟아낸 상황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빙하호 붕괴로 인한 홍수 발생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빙하호 붕괴는 빙하가 녹아 형성된 호수에서 막대한 양의 물이 갑자기 방출되는 현상이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기온 상승으로 산악 빙하는 줄어들고 있다. 빙하가 녹은 물은 빙하호를 형성할 수 있으며, 1990년대부터 빙하호의 수와 규모는 증가해왔다.

 

호수를 가둔 얼음과 암석으로 된 이른바 '자연 댐'이 갑자기 무너지면 홍수가 일어난다. 기후 변화 때문에 앞으로 이런 홍수가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번에 산사태가 함께 발생한 티베트 르카쩌시 지룽현 지룽커우안 일대에서는 지난해 7월에도 대규모 산사태와 홍수가 일어났고, 네팔과 티베트에서 모두 합쳐 1명이 숨지고 28명이 실종됐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 재해 이후 위성 영상을 분석한 결과 사고 지점 상류에는 빙하호 55개가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빙하호들의 전체 면적은 3.39㎢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홍수도 빙하 표면의 호수에서 갑자기 물이 빠져나오면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샌안토니오 텍사스대학교 소속 수문학자인 하팀 샤리프는 이번 홍수가 발생하기 전 강우량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고 짚었다.

 

그는 "이는 사실상 전 세계 모든 홍수 경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라고 지적했다.

강우량을 토대로 한 '홍수 경보'가 울리지 않기 때문에 하류 지역 주민들이 대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산악 지대에서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 거대한 흙탕물은 액체 콘크리트와 같은 치명적 조합을 형성한다며 이를 발견하고 도망치면 소용없기 때문에 유일한 해결책은 6m 높이의 언덕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사와 흙탕물이 매우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내린 히말라야 산악지대의 'V'자 협곡도 인명피해를 키운 부수적 원인으로 지목됐다.

 

영국 레딩대학교 소속 연구원인 도로시 하인리히는 "산악 지형에서는 강이 일부 구간에서 상당히 좁아질 수 있다"며 "(눈사태나 산사태로 강이 막히면) 물이 많이 고이게 되고 (그것이 한꺼번에 터지면)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의 홍수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토사와 험난한 지형 탓에 실종자 수색과 구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2차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ICIMOD 관계자는 "네팔과 중국 국경 지역의 강 상류에 여전히 막힌 부분이 남아 있다"며 "당국은 두번째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종구 손현규 기자 >

 

네팔 대홍수로 고립됐다가 구조된 남성  [AFP=연합. 네팔 육군 제공] 

 

참혹했던 네팔홍수 상황…"급류에 떠내려가다 나무에 걸려 살아"

 "아내 손잡고 피하려고 했지만…진흙에 휩쓸려 떠나버려"
 

홍수 덮친 네팔 바그마티주  [AFP=연합]

 

네팔과 중국 티베트자치구 일대를 덮친 대규모 홍수·산사태로 수백 명이 사망·실종된 상황에서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전하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전날 네팔 중북부 바그마티주 라수와 지역 주민 비벡 쿠말(24)은 신축 주택 외부에서 화장실 구덩이를 파다가 '쉬익'하는 소리를 들었다.

거센 물살과 진흙, 바위가 거대한 벽을 이루며 쏟아져 내려오면서 내는 굉음이었다.

 

1.5m 깊이의 구덩이 속에서 일하던 쿠말을 향해 동료 4명이 어서 나와 도망치라고 소리쳤고, 그가 허둥지둥 구덩이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동료들은 이미 대피한 뒤였다.

 

쿠말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대한 물의 벽이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려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급류에 휘말려 하류로 쓸려 내려가던 쿠말은 "운 좋게도 망고나무에 걸려 멈춰 섰다"며 "망고나무가 없었다면 휩쓸려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10대 때인 2015년 약 9천 명의 사망자를 초래한 네팔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쿠말은 이번에는 나무 한 그루 덕분에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나무에 매달린 채 자신이 일하던 집이 휩쓸려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쿠말은 이후 경찰에 구조됐다. 그는 수도 카트만두의 국립외상센터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다.

 

쿠말의 맞은편 병상에서 치료받고 있는 11살 소녀 리하나 라미차네는 "학교에 있었는데 그 일(홍수)로 학교 문을 닫아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강을 건너는데 갑자기 홍수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가슴과 다리에 부상을 입었지만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내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 딸을 찾기 위해 달려왔다는 라미차네의 어머니 리타는 "딸에게 큰일이 생기지 않아 기쁘다"며 "그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했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던 케샤브 프라사드 바라알(68)은 "거대한 진흙더미가 우리를 향해 곧장 밀려왔다. 가까워질수록 높이가 점점 더 높아졌다"며 "진흙이 집 안으로 들이닥치는 것을 보고 아내의 손을 잡고 테라스로 피하려 했다. 하지만 아내는 진흙에 휩쓸려 가버렸다"고 전했다.

 

바라알은 "4∼5시간 뒤 헬기가 와서 나를 구조했다"며 "아내는 여전히 어딘가 진흙더미 아래에 있다. 아내는 떠나버렸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홍콩 성도일보 등에 따르면 같은 날 오전 중국인 팡모 씨는 오전 가족·지인들과 함께 차를 타고 중국에서 네팔 방향으로 운전하고 있었다.

 

오전 10시께 중국·네팔 국경검문소에서 약 4㎞ 떨어진 지점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앞쪽에서 거대한 흙탕물이 밀려왔다.

 

그는 "앞쪽의 나무와 전봇대가 모두 쓰러져 있었고 큰물이 우리를 향해 밀려왔다"며 "차를 돌릴 틈도 없어 그대로 후진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뒤따라오던 차에도 손을 흔들며 앞으로 가지 말라고 알리며 계속 후진했다.

그는 "3㎞ 정도 물러난 뒤에야 물살이 그렇게 거세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팡씨는 통신시설 복구차 한 대가 앞으로 갔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고, 이후 짙은 안개까지 끼면서 주변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다행히 큰 사고를 피했지만, 산사태 발생 지역인 티베트자치구 르카쩌(日喀則·시가체)시 지룽현에 있는 친구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날 대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이날 현재 네팔 157명·중국 3명 등 최소 160명으로 늘었다. 실종자도 확인된 숫자만 네팔에서 484명, 중국에서 558명에 달해 인명피해 규모는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 박진형 한종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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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가족 찾는 네팔인  [AP=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