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전쟁, 어느 쪽이 더 오래 버틸까

● Hot 뉴스 2026. 3. 10. 01:5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하메네이 차남 후계체제 정비 이란 장기전 태세

약점 지닌 양쪽 승패 가를 ‘누가 더 잘 버티나’

유가 배럴당 20% 오른 100달러대로 급등
출구전략 없는 미국, 전쟁목표도 불분명

베네수엘라 ‘성공’ 사례에 너무 고무돼 있었나
베네수엘라와 전혀 다른 이란

모즈타바 단기간에 무너뜨리든지 철수하든지
이란도 약점…가자지구처럼 변해가는 테헤란

 

8일 하메네이 후계자로 선출된 그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코노미스트 3월 8일
 

이란 최고 성직자들 8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회의’가 미국-이스라엘 공격으로 살해당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후계자로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56)를 선출했다고 9일 새벽(현지시각) 발표했다. 전쟁 발발 9일 째에 내려진 이라크 지도부의 이런 결정은 하메네이 체제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타협없는 항전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는 평생 은둔생활을 해 왔으나 아버지가 37년을 장악했던 최고지도자 사무실인 ‘베이트’를 지난 20년간 운영해 온 실세였다. 겸손하고 수줍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란혁명수비대 산하 민병대인 ‘바시즈’를 지휘했고 혁명수비대 정보부서를 이끈 성직자 호세인 타에브의 정치적 동맹자였으며, 2009년 대통령선거 때는 강경파 아흐마디네자드를 지원해 당선시켰다. 모즈타바는 이란 헌법이 최고지도자에게 요구하는 성직자 및 정치가로서의 자격을 온전히 갖주진 못했다. 공식적인 고위 공직을 맡은 적이 없고 종교적 권위의 원천인 무스타히드(최고 수준의 이슬람 법학자)에게 요구되는 논문을 발표한 적도 없다. 그리고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이슬람 ‘혁명정부’로서는 모양새가 좋지 않은 ‘부자 세습’ 형태로 권력을 물려받았다.

 

이런 약점들은 이란 내부 개혁파 세력이 수용하기 어렵겠지만, 지금 이란 실세로 알려진 혁명수비대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부정한 침략자’에 대한 응징을 부르짖는, 가족을 거의 모두 잃은 그의 ‘정통성’에 도전할 세력은 적어도 당분간은 없어 보인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모즈타바는 종교적, 정치적 권위를 지니게 됐을 뿐만 아니라 혁명수비대를 비롯한 군 조직의 최고사령관 역할도 맡게 됐다.

 

3월 9일,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 간의 이란 분쟁 속에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긴장이 고조된 데 따른 것이다.2026.3.9. 로이터 연합
 

미국과 이란, 어느 쪽이 더 오래 버틸까?

 

중동 전역으로 전투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국무부는 미국 외교관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라고 지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직 미국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후계자 후보로 거론되고 있던 모즈타바를 겨냥한 듯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전의 그 사람과 마찬가지로 악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했고, 8일에도 모즈타바를 “용남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승인 없이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과 이란 어느쪽이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4~5일” 등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은 몇 주로 길어지고 9월까지 갈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더니, “영원히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치기에 이르렀다. 초기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 급진파를 대표했다가 이스라엘 지원을 둘러싼 이견으로 떨어져 나가 ‘배신자’로 찍힌 전 하원의원 마저리 테일러 그린은 지난해 말 “권력자가 권력에 집착할 때 무슨 짓을 하는가. 전쟁이다. 이제 많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고 했는데(뉴욕타임스), 그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다.

 

원래 트럼프는 2017년 대선 유세 때 조지 부시 정권이 시작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없는 전쟁”이라 비판해 표를 얻었다. 그랬던 그가 그 10년 뒤 스스로 ‘영원한 전쟁 수행’을 입에 올리고 있다. 그를 대통령직에 올려 놓은 MAGA 운동이 대두된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중동에서 장기간 강행했던 태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미국사회의 피폐와 피로였다.

 

다시 이란과의 전쟁이 길어지면 전쟁비용이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고 유가까지 급등하면 미국 내 여론은 악화될 것이다. 개전 뒤 닷새만에 미국이 쓴 전쟁비용이 약 50억달러(약 7조 5000억 원)였다. 11월에 중간선거를 치러야 하는 트럼프 정권에게 장기전은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오래 버티지 못할 쪽”이 미국일 수도 있다.

 

3월 9일, 런던 동부의 BP 주유소 밖에 무연 휘발유와 경유의 리터당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간의 이란 전쟁이 2주째 이어지면서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중동 지역의 공급 차질 우려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월요일 증시는 폭락했다. 2026.3.9. AFP 연합
 

유가 배럴당 20% 오른 100달러대로 급등

 

전쟁의 장기화 조짐 속에 유가는 10% 이상 급등하면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인 그해 7월의 급등 뒤 거의 4년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대를 기록했다. 세계 증시 주가는 일제히 폭락했다. 8일 밤(한국시각 9일 오전) 미국 서부텍사스산 고급 경질유(WTI) 선물가격은 배럴당 110엔대까지 급등해 영업일 전까지의 가격에 비해 20%나 뛰었다. 세계 원유 운송량의 20% 이상이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돼 있는 가운데 쿠웨이트 석유공사는 7일 이란의 공격 등을 이유로 원유 생산과 정제를 예방적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대변인은 8일 “배럴당 200달러가 넘는 유가를 용인(tolerate)할 수 있다면 이 게임을 계속하라”고 말했다. 그들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트럼프 정권은 유가 급등으로 불안정한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란의 에너지 기반시설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의 그런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이란은 인근 산유국들을 공격하고 호르무스 해협을 봉쇄했다. 에너지 비용 인하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 폭등이 “단기적”일 뿐이라며 “미국과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지불해야 할 아주 작은 대가”라고 주장했으나, 전쟁이 길어지면 애초에 이란 공격을 60% 이상이 반대했던 미국인들이 그의 말을 믿을 것 같지 않다.

 

기고만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국회의사당 하원 회의장에서 두 번째 임기 첫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J.D. 밴스 부통령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공화당, 루이지애나주)이 앉아 있다. 2026.2.24. 로이터 연합
 

출구전략 없는 미국, 전쟁목표도 불분명

 

무기와 장비 조달 면에서도 미국은 이란에 비해 불리하다. 저가의 이란 미사일이나 드론을 그 몇 배 또는 몇십배로 비싼 고가의 미국제 무기들로 대응해야 하는데다 미국의 생산 및 조달에는 한계가 있다. 지난해 ‘12월 전쟁’ 때 미국-이스라엘의 집중 공격에도 거의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이란은 이미 그때부터 이런 식의 본격 전쟁에 대비해 무기 생산체제를 강화하고 다량의 중단거리 미사일과 드론 등을 비축해 온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비축한 중단거리 미사일을 2500기 정도로 추산하고 그 중에서 지금까지 500기 정도가 발사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이란의 대응이 시간이 지나면서 약화되고 있다며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발사시설 파괴와 비축무기 고갈, 31개 지역단위로 분산시킨 지휘체제사의 문제 등을 그 이유로 들기도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럼프 정권에겐 ‘출구전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일 수 있다. 출구전략을 짜려면 먼저 전쟁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쟁 기간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이 왔다갔다 하는데서도 볼 수 있듯이, 언제까지 무엇을 목표로 전쟁을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베네수엘라 ‘성공’ 사례에 너무 고무돼 있었나?

 

트럼프는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전격 체포한 뒤 마두로체제를 온존시킨 채 미국과 거래할 수 있는 온건파와 손잡고 친미 체제를 만들어낸 베에수엘라의 ‘성공’사례에 고무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베네수엘라 침공 때처럼 몇 개월에 걸쳐 남중국해의 항모 에이브러햄 링컨을 중동지역으로 이동시키는 등 이란 포위를 위한 전력을 그곳에 집중시킨뒤 하메네이 등 이란 지도부가 모이는 회의시간을 노려 미사일로 그들을 한꺼번에 제거하고 방어체제를 무력화시키려 했다. 그런 뒤 하메네이 체제 잔존세력 중 온건파나 체제 외의 개혁파와 손잡고 베네수엘라의 델시 로드리게스 체제와 유사한 친미 과도체제를 만들어 간접통치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란은 베네수엘라가 아니었다.

 

모즈타바뿐만 아니라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을 비롯한 이란 고위층들 다수가 살아남았고, 혁명수비대 조직도 살아남았다. 하메네이 집권 말기에 반체제 운동 등으로 약화됐던 이란 정권은 미국-이스라엘 공격 뒤 오히려 결속력이 높아졌다. 혁명수비대 대원들 중에도 이탈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일의 ‘걸프 정보보고서’(Gulf intelligence report)는 “초기 정보에서 추정한 것과는 달리 이란 군 지도부의 상당부분이 여전히 활동 중”이라고 지적했고, 이는 전쟁 시작 직전에 작성된 미국 정보보고서의 결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당시 보고서는 이란에 대한 공격으로 정권을 전복시키긴 어려울 것이라고 결론지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8일 보도했다.

 

모즈타바 단기간에 무너뜨리든지 철수하든지

 

모즈타바가 최고권력을 장악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와 마주친 트럼프는 아직 향후 대응방침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델시 로드리게스’가 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단기간에 모즈타바 체제를 무너뜨리든지, 적당한 명분을 내세우며 일단 사태를 수습하고 철수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하메네이 후계체제가 온전할 때 ‘딜’(협상)을 해서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전되는 것을 막고, 이란이 은닉한 농축 우라늄이 유출되지 않도록 한 뒤 서둘러 철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얘기들도 나오고 있다.

 

3월 9일, 이란 테헤란의 베헤슈트-에-자흐라 묘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메흐디 호세이니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있다. 2026.3.9.AP 연합
 

이란도 약점…가자지구처럼 변해가는 테헤란

 

하지만 상황이 이란 모드타바 체제에게 유리하기만한 것도 아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개전 9일째에 접어들면서 공격목표를 바꾸고 있다. 전쟁 초기 1단계 공격에서는 이란의 군사시설 파괴에 초점을 맞췄으나, 2단계인 지금은 통치기반인 정부기관과 주요 기반시설들 파괴로 목표를 바꾸고 있다. 이란 내부 봉기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 때문에 기본적인 서비스체제가 위협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테헤란에서 식료품을 구할 수 있고, 환경미화원들은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이스라엘군의 집중공격을 받은 가자지구와 비슷해지고 있다고 현지인들은 얘기한다. 8일의 석유시설들에 대한 공격으로 테헤란의 배수로들은 마치 불의 강처럼 흘러내리며 타오르는 기름이 상점과 주택을 불태웠고, 끈적끈적한 검은 비가 쏟아졌다.

 

항구가 공습으로 파괴되고 국경이 폐쇄돼 수입이 차질을 빚으면서 경제도 휘청거리고 있다. 공장이 파괴돼 생산이 마비되고 있다. 비축 식량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란 남부의 해수 담수화 시설들에 대한 공격으로 전쟁 전부터 심각한 부족상태였던 물 공급이 더 큰 위협을 받고 있고, 연료는 배급제로 운영되고 있다. 만약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유전과 가스전, 하르그 섬에 있는 이란 유일의 주요 가스터미널까지 타격할 경우 전력생산과 취사에 필수적인 가스공급이 중단될 수도 있다.

 

상황이 악화되고 모즈타바 체제가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가지 못할 경우 반체제 운동이 되살아나 격화될 수도 있다.

 

미국, 전쟁 계속이냐 타협하고 철수하느냐

 

하메네이 생전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이란 전역을 31개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이 중앙정부나 부처의 승인없이 모든 결정을 내리고 실행할 수 잇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집중공격을 피해 전투력을 유지하는데에는 유리했으나, 중앙의 일사분란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인근 산유국들에 대한 공격을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사과한 직후에 혁명수비대가 다시 아랍 산유국들에 드론 공격을 감행한 것을 이런 분산된 지휘체계상의 문제 탓일 수 있다고 저적했다. 분산은 심할 경우 체제 해체의 원심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내부 반체제 세력이나 쿠르드족과 같은 소수민족을 지원해 내부 붕괴를 꾀할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으로선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모즈타바 체제 역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전쟁을 계속할 것인가, 타협하고 일단 전쟁을 끝낼 것인가?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 한승동 기자 >

 

 

이란의 '수평적 확전' 전략…'정치적 인내'의 전투로 바꿔

 

트럼프 전략적 갈림길…공중 작전 강화냐 철수냐


장기전 가면 미국·걸프·유럽에 큰 '정치적 비용'
페이프 "이란에 필요한 건 오로지 인내뿐"
이란, 2·28 공격 책임 '친미 질서'로 확대

"이스라엘 증오 무슬림 대중 직접 겨냥"
"결정적 국면, 지역 위기와 함께 시작돼"
압도적 공군력에도 베트남 전쟁서 패배

 

"이란의 타격들은 지리멸렬한 보복이나 죽어가는 정권의 마구잡이 행동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되려 그건 분쟁의 범위를 넓히고 기간을 늘림으로써 판을 바꾸고자 하는 '수평적 확전'(horizontal escalation) 전략이다."

 

미국의 군사 역사가인 로버트 페이프 시카고대 교수(정치학)는 '확전이 이란에 유리한 까닭'이란 9일 자 <포린 어페어즈> 기고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2‧28 '불법 공격'과 최고 지도자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지난 9일간 이스라엘과 걸프 지역 내의 미군기지와 외교공관들은 물론, 공항과 석유 인프라 등 민간 시설들을 타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유조선을 타격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속에서, 바레인 시트라 섬의 밥코 정유소에 가해진 타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 03. 09 [로이터.=연합]
 

"이란의 타격들, 지리멸렬한 보복 아냐"
'수평적 확전' 통해 '인내의 전투' 전환

 

페이프 교수는 약한 교전국이 더 강한 적의 '계산'을 바꾸게 하는 이 전략은 과거 베트남과 세르비아가 활용해 압도적 공군력을 지녔던 미국과 동맹국을 패배시켰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수평적 확전은 약한 국가가 분쟁을 단일 전역에 국한하지 않고 그 지리적, 정치적 범위를 확대할 때 일어난다. 약자는 강자와 정면으로 맞붙는 대신에 추가로 다른 나라들, 경제 부문, 역내 대중들을 분쟁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위험의 무대를 다각화한다.

 

페이프는 "이란은 재래식 군사 대결에서 미국이나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란의 목표는 더 큰 정치적 지렛대를 얻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등 최고지도부에 대한 '참수 작전'이 이 전략을 활용하도록 강력한 유인을 제공했다고 봤다. 그는 "지도자를 잃고도 정권이 살아남았다면, 분쟁 확대를 통해 신속하게 회복력을 과시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보기에 이란은 먼저 회복력을 과시했다. 이란 군대 마비를 겨냥한 미국의 참수 작전에도 불과 몇 시간 만에 대규모 보복을 개시해 지휘 체계의 연속성과 작전 능력을 보여줬다. 둘째, 분쟁을 이란 영토 너머로 크게 확장했다. 보복을 이스라엘에 국한하지 않고, 미군이 주둔한 바레인, 요르단,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최소 9개국의 목표물을 타격하거나 겨냥했다. 페이프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미군 수용 국가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이스라엘과 미국이 시작한 전쟁은 확산할 것이란 점이다"라고 짚었다.

 

11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이슬람 혁명 47주년 기념행사 도중(2026년 3월 9일 배포), 한 이란 남성이 암살당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의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국영 매체에 따르면, 이란 전문가 회의는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부친의 뒤를 잇는 국가의 새로운 최고 지도자로 임명했다. 2026. 02. 11 [EPA=연합]
 

이란, 2‧28 공격 책임 '친미 질서'로 확대
"이스라엘 증오 무슬림 대중 직접 겨냥"

 

이란 외무부가 미군 기지가 있는 걸프 국가 등에 대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두고 "지역 내 모든 '적대 세력'에 대한 정당한 대응"으로 규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페이프는 "이 표현은 대이란 공격의 책임을 이스라엘과 미국을 넘어 걸프 지역의 광범위한 친미 질서로 확대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이란의 수평적 확전은 정치적 전략이다. 이는 이란이 설득하려는 대상, 이란과 이념적으론 일치하지 않아도 대체로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역내 무슬림 대중들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셋째, 이란의 보복은 공항 폐쇄, 상업 시설 화재, 외국인 노동자 사망, 에너지‧보험 시장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분쟁을 '정치화'했다. 걸프 지도자들은 외국인 투자자와 관광객을 안심시켜야 하는 처지가 됐고, 이란 전쟁은 회의실과 의사당으로 옮겨갔다. 그는 "이제 수많은 행위자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갈등으로 들어섰으며, 전혀 조율되지 않은 채 모두가 워싱턴의 통제를 벗어나 확전의 경로를 바꿀 수 있게 됐다"고 경고했다. 끝으로 시간이다. 여러 나라가 압박을 느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역내 국가와 그 너머에서 정치적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

 

8일 미국 중부사령부 공보실이 배포한 미 해군 제공 사진.  '에픽 퓨리 작전'을 지원하며 항해 중인 알레이 버크급 유도 미사일 구축함 토마스 허드너함(DDG 116)이 토마호크 지상 공격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2025. 03. 09 [AFP=연합]
 

장기전, 미국‧걸프‧유럽에 '정치적 비용'
페이프 "이란에 필요한 건 오로지 인내뿐"

 

이런 이란의 '수평적 확전' 전략에는 명확한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봤다. 우선 세계적 금융‧ 투자‧관광‧물류의 허브인 걸프 지역의 '절대 안전' 평판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그건 물리적 피해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다음은 알우데이드, 알다프라, 프린스 술탄 등 미군 기지와 그 주변을 타격해 미군 기지 수용에 드는 걸프 국가들의 정치적 비용을 높였다. 페이프는 "테헤란은 워싱턴과의 동맹이 공격에 대한 노출을 뜻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걸프 지도자들은 동맹의 약속과 국내 경제적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셋째는 중동 질서 관련 서사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들의 행동이 지역 패권을 노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으로 묘사함으로써, 걸프 국가의 지도자와 대중 사이를 벌려 놓으려는 것이다. 끝으로,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등 경제적 요충지를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미사일 공격, 해상 사고나 보험료 상승 같은 부분적 혼란만 이어져도 즉각 글로벌 파급 효과를 일으키며,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 우려와 국내 정치적 압박에 기름을 붓는다. 페이프는 "이들 목적 달성엔 전장에서의 승리가 필요 없다. 이란에 필요한 건 오로지 인내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 속에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의 확전에 뒤이어,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외곽에 가해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 03. 09 [로이터.=연합]
 

트럼프 행정부, 전략적 갈림길에 서
공중 작전 배가 vs 군사 개입 종료

 

이란의 '수평적 확전' 전략이 먹혀 장기전으로 넘어갈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페이프는 먼저 그동안 미국의 지원 아래 이스라엘과 '조용히' 안보 협력을 확대해온 걸프 정부들의 행보가 밖으로 노출될 걸로 봤다. 아랍 대중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공격적 군사 행동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걸프 통치자들엔 상당한 국내 정치적 부담을 안길 수 있다.

 

미국 정치에도 큰 영향을 줄 걸로 예상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 미군 사상자 발생, 불확실한 목표로 점철된 지루한 중동 전쟁은 미국 내 불만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이미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내에서 대선 공약을 어기고 중동 문제에 개입하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꽁무니를 따른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많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 그 균열은 더 확대될 개연성이 크다.

 

또한 확전을 원하는 미국과 그렇지 않은 유럽 간의 갈등도 확대될 수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의 수입 중단을 입법화한 상황에서 중동산 석유와 가스 수입마저도 어려워진다면 유럽 경제는 이중으로 막대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 내 기지들의 미군 사용 문제를 놓고도 미국과 갈등이 확대될 수 있다. 장기전 속에서 기존 또는 신생의 무장 단체나 테러 단체들이 고개를 들 위험성도 작지 않다.

 

1960~7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작전 중인 미군. 나무위키

 

"결정적 국면, 지역 위기와 함께 시작돼"
압도적 공군력에도 베트남 전쟁서 패배

 

분쟁을 확대하고 정치화하는 이런 이란의 장기전 전략에 맞서 트럼프 행정부가 취할 대응과 관련해 페이프는 "전략적 갈림길에 섰다"라면서 추가로 공중 자산을 투입해 공중 작전을 배가하던가, 아니면 "목표가 달성됐다"고 선언하고 이 시점에서 군사 개입을 끝내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트럼프는 미국이 지금 당장 짧고 제한적인 정치적 비용을 감수할지, 아니면 추후 더 길고 불확실한 정치적 비용을 감수할지를 판단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페이프는 "지리적으로 넓고, 경제적으로 파괴적이며, 정치적으로 계산된 이란의 보복은 분쟁의 구조 재편을 목표로 한다. 전역을 넓히고 전쟁을 장기화함으로써 테헤란은 대결의 성격을 군사적 능력의 싸움에서 정치적 인내의 싸움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전쟁의 결정적 국면은 첫 번째 타격이 아니라 뒤이은 지역적 위기와 함께 시작됐다. 여러 수도에서 방공망이 가동되고, 공항이 폐쇄되고, 시장이 요동치고, 동맹 정치가 긴장 상태에 빠진 지금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플로리다주 팜 비치의 마러라고 클럽에서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도중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2025. 12. 29 [로이터=연합]
 

한편,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페이프는 1965년부터 미국이 압도적 공군력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전체 기간에 사용한 것보다 3배나 많은 양의 폭탄을 북베트남에 투하하고, 1967년 가을 무렵엔 주요 통신, 군사, 산업 센터와 간선 도로들을 폐허로 만들었지만, 북베트남이 분쟁을 시골과 남베트남의 주요 도시, 정치 영역으로 확대하고 워싱턴의 국내 정치적 계산도 바꿔냄으로써 결국은 장기전에서 승리했다고 설명했다.                           < 이유 기자 >

 

 

진정한 통합은 반대파의 모든 요구 수용 아냐
시대적 과제 '검찰·사법개혁'서 효능감 떨어져

모두를 아우르려다 개혁 칼날 무뎌진 건 아닌지
국민 발안제·시민의회 도입 등 과감한 개혁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반복적으로 내세우는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구호는 듣기에 달콤하나, 냉정한 정치학적 잣대를 들이대면 심각한 논리적 결함에 직면한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전근대적 군주가 아니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대리인(Agent)'이자, 특정 가치와 정책적 지향점을 선택받은 '일꾼'이다.

 

현실 정치에서 정책이란 한정된 자원의 배분이다. 누군가의 이익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손실로 귀결된다. 모든 국민을 100% 만족시키는 정책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강박은 결국 결단을 회피하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흐르거나, 지지층과 반대파 모두를 실망시키는 어중간한 정책으로 귀착되기 쉽다.

 

진정한 통합은 반대파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파의 의지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되, 소수파의 생존권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부당한 손실을 주지 않는 '절차적 공정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혼동할 때,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수사는 통합의 언어가 아니라 책임 회피의 언어로 전락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동 상황 대응책 논의를 위한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3.5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효능감 없는 개혁, 그리고 '주변부 정책'의 위험성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보이는 일부 행보는 이 우려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시대적 과제로 꼽히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서 정작 '효능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공소청 설치를 골자로 하는 수사권·기소권 분리 법안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독립성 강화 논의는 국민 다수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거나 여전히 원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개혁의 외양은 갖추되 핵심 의제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모두'를 아우르겠다는 명분 아래 개혁의 칼날을 스스로 무디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 안정의 핵심 수단인 종합부동산세·보유세 개편은 '조세 저항'을 우려해 소극적인 채, 공급 확대라는 부분적 처방에만 기대고 있다. 세제 개편 없는 공급 확대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뿐이다. 단기 집값 급등이 재현될 경우, 그 정치적 책임을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쪽은 대통령 자신임을 잊어선 안 된다.

 

소통 방식 역시 점검이 필요하다. 국무회의를 개방형으로 운영하는 파격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통령 한 명이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통치로 굳어진다면, 제도와 시스템이 아닌 개인 역량에 기대는 정치가 된다. 개인의 유능함에 의존하는 통치는, 그 개인이 한계에 봉착할 때 국가 전체를 리스크로 몰아넣는 법이다.

 

대의제의 한계를 넘는 직접민치(直接民治)의 제도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민은 선거 날에만 주권을 행사하고, 나머지 4~5년은 정치의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대의민주제의 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그 골격 위에 '직접민치'라는 근육을 붙이는 과감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제도가 시급하다.

첫째, 국민발안제 도입이다. 일정 수 이상의 시민이 서명하면 법률안을 직접 발의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스위스에서는 국민발안이 수십 년째 일상적 주권 행사의 통로로 작동하고 있다.

둘째, 구속적 국민투표제의 확대다. 현행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는 대통령의 임의적 부의에 의존한다. 이를 일정 요건을 갖춘 시민 청원만으로도 발동되도록 개정해야 한다.

셋째, 추첨제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의 제도화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 시민의회를 통한 선거제 개혁

 

가장 시급한 것은 선거제도라는 '정치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에게 스스로의 목을 치는 선거제 개혁을 맡기는 것은 '중이 제 머리를 깎으라'는 말만큼 비현실적이다. 이해충돌이 명백한 집단에게 이해충돌의 해결을 위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자기모순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시민의회다. 아일랜드는 2016~2018년 시민의회를 통해 낙태권 헌법화와 동성결혼 합헌화라는 극심한 사회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소했다. 인구 통계에 따라 무작위 추출된 99명의 평범한 시민들이 법학자·의료윤리학자 등 전문가와 함께 수개월간 숙의한 뒤 권고안을 도출했고, 이는 국민투표로 직결되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도 2004년 시민의회를 통해 선거제 개혁안을 설계했다.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인을 배제한 채, 주권자가 직접 설계한 선거법만이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고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

 

대만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디지털 플랫폼 'vTaiwan'을 통해 우버(Uber) 합법화, 핀테크 규제 등 첨예한 사안들을 온라인 숙의로 풀어냈다. 당시 디지털장관이었던 오드리 탕(唐鳳)은 '정부는 플랫폼이 되어야 하며, 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답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모두의 대통령'을 자처하는 이재명 정부가 경청해야 할 충고다.

 

한국에서의 실행 경로 - 헌법 개정 없이도 시작할 수 있다

 

시민의회나 직접민치의 도입이 당장 헌법 개정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법체계 안에서도 실행 가능한 경로가 있다. 우선 선거제 개혁과 정치자금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 특별법'을 국회가 통과시켜, 그 권고안에 국회가 상당한 무게를 두도록 의무화하는 방식이 있다. 법적 구속력을 완전히 부여하기 어렵다면, 권고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절차를 명문화하면 된다.

 

더 나아가 디지털 시민 참여 플랫폼을 정부 차원에서 구축해야 한다. 국민청원 게시판 수준이 아니라, 시민들이 정책 초안을 열람·수정하고 숙의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예산 우선순위 결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예산제'의 중앙정부 적용도 검토할 만하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정부가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국가 단위로 확장하면 그 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물론 직접민치 확대에는 위험도 따른다. 숙의 없는 여론의 쏠림, 정보 비대칭, 포퓰리즘의 악용 가능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도 설계로 보완할 수 있는 리스크이지, 제도 자체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대의민주제의 실패 비용과 비교하면, 직접민치의 실험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도전이다.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통합이다

 

'모두의 대통령'은 수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주권자의 뜻이 막힘없이 흐르는 제도를 설계하는, 일꾼의 헌신으로 완성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내가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겠다'는 선의의 오만에서 벗어나, '국민이 직접 결정하게 하겠다'는 민주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검찰개혁과 선거제 개혁의 주도권을 시민의 손에 넘기는 멍석을 깐다면,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패러다임을 바꾼 지도자로 평가받을 것이다. 반대로 핵심 개혁 과제를 회피하며 '이도 저도 아닌' 행태를 반복한다면, 가장 큰 기대를 받은 정부가 가장 큰 실망을 남긴다는 역사의 공식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만기친람형 소통이 아니라, 기득권의 저항을 뚫고 권력을 국민에게 반납하는 과감한 제도적 이행이다. 그 이행의 첫걸음이 시민의회다. 멍석은 대통령이 깔고, 그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은 국민이어야 한다.              <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봉하의 피눈물 여전히 닦지 못한 민주정부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총리가 말하라

검사 수사 배제, 먼저 한 약속 아니던가
국민 눈높이 맞는 검찰 개혁이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마지막을 배웅하는 시민들. 노무현사료관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오전, 정확하게는 오전 9시 3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비보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사인은 대검 중수부의 서슬 퍼런 칼날이었다. 그들은 수사가 아닌 사냥을 선택했고, 법치를 버리고 악의적이고 집단적인 린치를 선택했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잠긴 대한민국을 내려다보며 ‘무관의 제왕’ 검사들은 비웃고 있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섰지만 대한민국 제 21대 대통령 이재명 역시 검사라는 사냥개 앞에서 실낱같은 확률로 살아남았기에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17년, 그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두 명의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고 세 명의 대통령이 감옥을 갔다. 바뀌는 권력마다 안성맞춤으로 충성하던 검찰은 직접 권좌에 오르더니 급기야 검찰독재에 이어 친위 쿠데타까지 시도하고야 말았다.

 

민주주의라는 배를 침몰시킨 자들에게 다시 설계를 맡겨도 되나

 

국무총리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의 가장 큰 모순은 검사들의 집단 참여이다. 심지어 검찰 출신 봉욱 수석은 작년 12월 국무총리 산하 검찰개혁 추진단의 비공개 회의에서 “법률가 주도의 엄격한 이원조직 설계가 필요하다”며 중수청의 수사이원화를 주장했다고 한다. 국민주권정부 시대의 시대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우려는 우려로 끝나지 않았다. 국회로 넘어온 정부안에서는 중수청의 비대화가 큰 우려를 낳았다. 수사범위를 얼핏 줄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이버 범죄’ 수사에 대한 정의가 어려워 수사 범위 확대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선 수사권과 이첩권은 또 어떤가? 중수청이 타 수사기관에 대해 우선 수사권과 이첩권을 갖는 것은 폐지된 ‘수사지휘권’을 변칙적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이첩요청권을 통해 유리한 사건은 가져오고 불리한 사건은 떠넘기는 ‘선택적 수사(체리피킹)’와 이를 통한 정치적 악용이 증가될 것이다.

 

이 외에도 고등공소청 유지, 조직 확대 제도 삽입, 신분 보장 특혜 유지, 보안수사권 유지, 특사경 지휘, 법무부 직원의 검사 겸임, 수사 개시 시 공소청 검사에 통보 등 개혁의 본질을 보란 듯이 훼손하는 내용들을 법안 전반에 담고 있다.

 

오직 국민 입장에서 검찰개혁 완수를 외치는 김민석 총리의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에서 나온 안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김총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들이 공소청에 가장 큰 권한인 기소와 영장청구권에 대한 견제 논의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와중에 기존의 검찰청보다 더 큰 권한이 주어진 양대 조직으로 재편시키고 있는 의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검찰청을 폐지하라. 촛불행동

 

국민들, 검찰개혁 시급하지만 졸속 원하지 않아

 

정부는 공소청법 및 중대범죄수사청법 수정안을 재입법 예고하면서 기간을 단 이틀(2026. 2. 24. ~ 2. 26.)로 설정했다. 행정절차법 43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입법 예고 기간을 40일 이상으로 정하라고 되어 있다. 문제는 이보다 2일 앞서 2월 22일 민주당이 당론으로 정부안을 먼저 채택해버린 것이다. 10월 2일 새로운 조직을 출범시켜야 한다는 시간적인 압박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지만 기간이 늘어나더라도 안전하게 집을 지어달라는 국민의 요구가 사라진 느낌은 어쩔 수 없다.

 

형사소송법(196조·197조의 2)상의 ‘경찰 송치 사건에 대한 검사의 보완수사권 및 보완수사요구권’ 폐지 논의를 뒤로 미룬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누가 얼마나 살지 모르면서 이러한 집을 짓겠다는 것인지부터가 본말전도다. 보완수사권 폐지는 즉각적인 대국민 요구사항이다.

 

진정한 앎은 뼈에 새겨진 아픔에서 나온다

 

그간 국민들은 검찰의 패악질을 눈뜨고 바라만 보았다. 단결했을 때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도 국민이지만 아무리 단결한 채로 있어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국민들이다. 우리 국민들은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일하다가 퇴임 이후 검찰의 칼에 죽어가는 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픔을 뼈에 새기고 있다. 지엄하다는 법치가 정치검찰에게 독점되어 있는데 법치주의라는 테두리에 갇혀 사는 국민들이 무슨 수로 다시금 그 더럽고 야비한 칼을 막겠는가? 국민들의 하나같은 검찰개혁의 요구는 더 이상 이런 비극에 휩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이 국민주권정부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겠다는 절박함, 이걸 정부와 민주당이 모를 리 없다.

 

정부와 민주당에게 말한다. 검찰의 올바른 개혁이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것임을 알고 국민주권정부와 민주당은 대다수의 국민들을 강경한 검찰개혁론자로 몰아세우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살아있는 국민들이 오죽하면 이미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까지 검찰개혁을 도와달라고 하겠는가? 국민주권정부는 과거의 정치검찰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여 역사에서 퇴장 시키고 이제는 국민을 위한 공소청과 중수청으로 태어날 기회를 주기 바란다.

“검찰개혁, 이 쯤 되면 꼭 하자는 거지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황의원 기자 >

 

검찰의 간판만 바꿔 달기…행정부의 입법 침탈 멈춰야

중수청·공소청법, 시대적 요구 배반한 '누더기'

 

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중수청·공소청 법안 관련 참여연대와 민변 사법센터 기자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2026.3.4. 연합
 

대한민국 형사사법의 역사는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으로 인한 권력 남용의 역사였다. 그 뿌리는 1930년대 일제의 전시 총동원체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에 집중된 기소권, 강제처분권, 사법경찰 명령권이라는 기형적 권력 구조는 해방 후에도 청산되지 않은 채 이승만 정권을 거쳐 유신과 군부독재의 자양분이 되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1981년 부림 사건,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그 패륜적 행태의 이정표들이다. 독일·프랑스의 사인소추권, 미국의 대배심제와 검사장 직선제, 일본의 검찰심사회가 말해주듯, 선진 민주국가 어디에도 이런 구조는 없다.

 

2026년 오늘, 우리는 그 비정상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 앞에 서 있다. 4년 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시민들이 외쳤던 '검찰 개혁'의 본령은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였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행정부가 내놓은 공소청법 및 중대범죄수사청법안은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 정상적인 입법 절차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그 알맹이마저 검찰의 입맛대로 뒤바꾼 '누더기 법안'에 불과하다.

 

국회 추미애 법사위원장의 절규 "검찰청법을 제목만 바꾼 것인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추미애 의원이 지난 5일 토해낸 비판은 이번 정부안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추 위원장은 정부가 재입법 예고한 공소청법안이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검사동일체 원칙을 그대로 담았고, 제왕적 총장의 권한을 존치시켰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에 네 건의 글을 올린다"고 개탄했다.

 

특히 정부안 7조와 25조 등을 거론하며,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검사를 오히려 처벌할 수 있게 만든 구조를 맹비난했다.

 

영장 청구와 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쥔 공소청이 여전히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면, 그것이 과거의 정치 검찰과 무엇이 다른가. 이는 입법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개혁의 설계도를 행정부가 멋대로 가로채 검찰 기득권 보존용으로 개악한 명백한 월권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2026.2.25. 연합
 

김민석 국무총리의 처신…방조인가, 주도인가

 

이 과정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의 처신은 더욱 뼈아프다. 김 총리는 불과 두 달 전 "수사-기소 분리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과제"라며 기세 좋게 공언했다. 그러나 정작 결과물은 검찰의 직급 구조와 권한을 우회적으로 살려둔 '간판갈이' 수준에 머물렀다.

 

만약 김 총리가 이 누더기 법안을 주도했다면 그는 개혁의 배신자요, 대통령의 의중에만 충실하며 민의를 반영하지 못했다면 책임 있는 내각 수반으로서의 직무유기다.

 

범여권 내에서도 "김 총리가 검찰개혁 법안의 본질 훼손에 대해 분명히 해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행정부 2인자로서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고 헌정 질서의 균형을 잡아야 할 총리가 오히려 행정부의 입법 침탈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책임 

 

이 모든 사태의 최종 책임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당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정부는 그 의견을 수렴하라"고 지시했지만, 실제 정부안은 국회 법사위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수정 요구를 묵살한 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정상적인 국회 절차를 거쳐 도출된 법안을 행정부가 가져가 입맛대로 뜯어고치는 행위는 트럼프식 전횡과 다를 바 없다.

 

공수처가 이미 무력함을 드러냈음을 상기하라. 보완수사권 폐지와 검사동일체 원칙 해체가 담기지 않는 누더기 법안은 시대와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다. 만약 이대로 '검찰 권력 고스란히 살리기' 법안이 확정된다면, 이재명 행정부는 일제강점기와 80년 독재가 남긴 괴물을 청산할 천금 같은 기회를 발로 차버린 역사의 배신자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안의 전면 철회와 국회 입안권의 회복을

 

민주주의의 원칙은 간명하다. 법을 만드는 곳은 국회다. 행정부는 국회가 만든 법의 집행자일 뿐, 그 내용을 사후에 검찰과 공모하여 변질시킬 권한이 없다. 지금이라도 이재명 행정부는 검찰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정부안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 검찰 개혁의 선명한 깃발을 다시 국회 법사위로 돌려주라.

 

개혁 이후의 실무적 우려는 입법 과정에서 보완하면 될 일이지, 개혁의 본질을 훼손하는 핑계가 될 수 없다.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입법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다시 아스팔트 위에서 이재명 행정부를 향해 엄중한 심판의 칼날을 겨눌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이원영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

 

 

정부가 재입법예고한 수정안에도 논란 확산

주요 시민사회단체 "검찰청 간판갈이에 불과"
여권 지지층, 김민석에 정청래까지 불신 기류
7개 당원 단체 국회서 기자회견…김용민 주선

"검찰 직접 수사 가능하게 한 독소조항 존재"
공소청법 4조, 형사소송법 196조 등 위험 내포
"총리는 폐기하라…민주 지도부도 수용 안 돼"

당론 채택 방침에도 이성윤 "충분히 검토해야"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6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민주당 당원 단체들의 공소청법 정부안 반대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3.6. 연합
 

이재명 정부가 재입법예고한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법을 두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이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민주당 당원들도 조직적이고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이 싱가포르·필리핀 순방 중이던 지난 3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중수청·공소청법 수정안을 심의, 확정했다. 당초 지난 1월 국무총리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이 발표했던 입법예고안에 대해 각계에서 '제2의 중수부 설치법' '검찰 부활 방안'이라며 철회하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다시 내놓은 수정안은 가장 문제가 됐던 중수청 이원화(수사사법관-전문수사관) 체계를 폐기하고 모든 수사 인력을 1~9급 단일 직급 체계의 수사관으로 통일하는 등 나름대로 여러 곳을 보완했다.

 

그러나 ▲공소청의 경우 기존 3단계 검찰 구조를 그대로 따른 상태에서 수장의 명칭도 공소청장이 아닌 검찰총장으로 유지했고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살아있으며 ▲공소청법이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존치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데다 ▲공소청 직원이 법무부 직원을 겸임할 수 있도록 해 법무부 탈검찰화에 역행하고 ▲중수청 수사 범위가 6대 범죄로 여전히 넓게 규정된 채 다른 수사기관에 대해 우선수사권과 이첩권을 갖도록 하는 등 1차 입법예고안의 핵심 문제들이 여전히 시정되지 않아 '검찰청 간판갈이'에 불과하다는 정치권과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의 혹평이 제기됐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중수청·공소청 법안 관련 참여연대와 민변 사법센터의 기자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
 

특히 법사위 위원장인 추미애 의원과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 등이 정부안의 대폭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의 공소청법 심사를 잠정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내부 이견이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더욱이 상당수 민주당 당원들이 '검찰개혁추진단의 배후'로 의심하는 김민석 총리에 대해서는 물론, '미세 조정' 외에는 정부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기로 한 여당의 사령탑인 정청래 대표를 향해서도 불신을 표시하는 등 지지층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민민운, 민대련, 세종강물, 부산당당, 민경네, 파란고양이, 더민실 등 7개 민주당 당원 단체는 6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는 공소청법 개정 반대 성명서>를 낭독하고 "검찰로 구성된 검찰개혁 TF가 만든 검찰안을 폐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은 정부안을 앞장서 비판해온 김용민 의원의 주선으로 진행됐다.

 

이들 7개 민주당 당원 단체 대표자들은 "국무회의에서 2차 수정안을 통과시키고 현재 법사위에서 법안심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수정된 법안 또한 여전히 검찰의 직접 수사를 가능하게 하고 있고(형사소송법 제196조 1항·2항), 대통령령으로 직접 수사권을 줄 수 있는 독소조항(공소청법 제4조 9항)도 들어가 있다"며 "대통령이 바뀌면 검찰 수사권이 부활되는 매우 위험한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구체적인 내용까지 설명하진 않았지만 '독소조항'이라는 공소청법 제4조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다음 각 호의 직무를 수행하며, 그에 따른 권한이 있다'면서 공소청 검사의 직무 범위로 1항 '공소 제기 여부 결정 및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 2항 '영장 청구·집행 지휘' 등을 열거한 뒤 8항에서 '제1호부터 제7호까지의 직무와 범죄수익 환수, 국제 형사사법 공조 등 법령에 따른 검사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형사소송법 등에 규정된 사항'이라고 명시하고 마지막 9항에서는 '그 밖에 법령에 따라 그 권한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형사소송법 제196조 1항은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한다', 2항은 '검사는 (…) 사법경찰관으로부터 송치받은 사건에 관하여는 해당 사건과 동일성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수사할 수 있다'고 해 수사개시권과 보완수사권의 근거가 되고 있다. 즉 현행 형사소송법과 공소청법을 연계하면 공소청 검사도 '형사소송법 등에 규정된 사항'에 따라 직접 수사를 할 여지가 있으며, '그 밖에 법령에 따라' 대통령령 등 하위 입법을 통해 윤석열 정권 시절처럼 검사의 수사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시행령 통치'가 재현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민민운, 민대련, 세종강물, 부산당당, 민경네, 파란고양이, 더민실 등 7개 더불어민주당 당원 단체의 대표자들이 6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공소청법 정부안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오마이TV 중계 화면 갈무리

 

7개 당원 단체 대표자들은 또 "검찰개혁 TF 구성을 보면 검찰 및 검찰수사관이 모든 주요 자리에 배치돼 있다. 개혁의 대상인 분들이 대거 들어가 있어서 바람직한 검찰개혁 법안이 나오는 데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며 "이번 수정안은 '검찰안'이다. '정부안'으로 포장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난 민주당 정부에서 검찰개혁 법안 통과 때 '중'을 '등'으로 고친 것이 결국 내란의 씨앗이 되었음을 우리 당원들은 잊지 않고 있다"면서 "검찰개혁 대원칙은 수사와 기소의 완벽한 분리다. 그것이 12·3 내란 때 국회 앞에 달려가고 추운 겨울 길에서 응원봉을 들었던 민주 시민들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대통령은 '검찰개혁 및 보완수사권 관련 당이 숙의하고 정부는 수렴'하라고 지시했다. 민주당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이미 당론으로 정했다. 그런데 왜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은 3~4월에 보완수사권 관련 의견 수렴을 하겠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국무총리께 촉구한다. 검찰로 구성된 검찰개혁 TF가 만든 검찰안을 폐기하고 검찰개혁 입법은 국회에 맡겨달라.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은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서도 "간곡히 요청드린다. 정부에서 낸 안이라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말라. 법사위에서 수정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받았으니 법사위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검찰개혁에 오랜 시간 전력투구해 온 분들의 의견에 부디 귀 기울여 달라. 당정청 협의회 때 당원들의 염원을 꼭 전달해 달라. 당 지도부는 입법부로서의 권한을 포기하지 말라"고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에 거듭 당부했다.

 

그러면서 "국민 주권으로 명령하건대, 검찰과 야합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누더기 검찰개혁 정부안은 지금 당장 철폐하라. 노무현 대통령의 희생,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을 겨냥한 기획 수사,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멸문지화식 수사,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조작 수사의 기소를 잊었는가"라며 "지금의 검찰개혁 정부안이 적용된다면 검찰의 다음 희생양은 정부안을 내놓은 당신이 될 것임을, 그리고 또다시 검찰 출신의 무도한 대통령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장담한다"고 경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의총을 통해 정부가 당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중수청·공소청 설치법 수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2026.2.22. 연합
 

한편 국회 법사위원이자 민주당 최고위원인 이성윤 의원도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께서 요구하신 검찰개혁의 방향, 수사·기소 분리라는 대원칙에 비춰 공소청 법안의 몇 가지 쟁점을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공소청은 이름만 바뀐 제2의 검찰청이어서는 안 된다. 법사위에서 여러 쟁점을 충분히 논의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제시한 6가지 쟁점은 다음과 같다.

 

① 공소청의 장을 꼭 '검찰총장'이라고 불러야 할까?

 

공소청은 기존 검찰청과 달리 공소제기와 공소유지 기능을 담당하는 새로운 기관이다. 이런 기관의 장 명칭을 검찰권 남용의 상징인 '검찰총장'으로 유지하면 국민은 검찰이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바뀐 게 없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새로운 제도에는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다. '공소청장'으로 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취지와 상징성에 더 맞다.

 

② 고등공소청이 꼭 필요할까?

 

공소청 법안은 공소청을 '대공소청-고등공소청-지방공소청' 3단 구조로 설계했다. 이는 기존 '대검찰청-고등검찰청-지방검찰청' 구조와 똑같다. 검찰이 3단 구조였던 이유는 수사 지휘를 하려는 목적이었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상명하복식 수사 지휘 구조에서 수사 방향도 정해졌다. 공소청은 수사를 하지 않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이다. 고등공소청을 없애고 공소청-지방공소청 2단 구조로 설계하는 것이 적합하다.

 

③ 공소청 검사가 특별사법경찰관리 수사를 지휘해도 될까?

 

검사의 수사지휘권은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폐지됐다. 공소청 법안은 공소청 검사가 특별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는 할 수 있도록 했다. 공소청은 더 이상 수사기관이 아니다. 경찰과 중수청에 대한 수사지휘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특사경은 지휘할 수 있다는 규정은 수사·기소 분리라는 검찰개혁 원칙에도 어긋난다.

 

④ 공소청 검사는 여전히 검사징계법으로 징계해야 할까?

 

검찰청법상 검사는 일반공무원과 달리 검사징계법이라는 특별법에 따라 징계한다. 이마저도 가장 무거운 징계는 '해임'만 가능할 뿐 '파면'은 할 수 없다. 똑같은 공무원인데 검사만 특혜를 줄 필요가 있을까? 공소청 법안은 공소청 검사도 '파면'이 가능하게 했지만, 여전히 별도의 검사징계법으로 징계하도록 돼 있다. 검사만 별도 법률로 징계토록 하는 방식은 형평에도, 공정에도 맞지 않다.

 

⑤ 기존 검찰 수사 인력 그대로 공소청 인력으로 남겨둬도 될까?

 

종래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함께 수행하는 기관이었다면 공소청은 기소와 공소유지를 하는 기관이다. 기관의 역할이 달라졌다면 사람과 업무체계 역시 바뀌어야 한다. 검찰의 폐습인 검사동일체, 상명하복식 조직문화도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없어진다. 신설 공소청 기능에 맞는 전문적인 인력과 업무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⑥ 공소청사건심의위원회가 실질적인 견제 장치가 될 수 있을까?

 

공소청 법안은 각 고등공소청에 공소청사건심의위원회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기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와 이름만 바뀌었을 뿐 같은 위원회다. 검찰수사심의위는 주요 사건에 대한 구속, 기소 여부 등을 외부 인사들이 논의하려 설치됐지만 취지와 달리 불투명하게 운영됐고, 검사들이 검찰권을 마음껏 휘두르면서도 책임은 회피하기 위한 창구로 악용됐다. 공소청사건심의위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투명한 운영과 확실한 견제 기능을 갖춰야 한다. 

                                                                                             <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