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조사 신뢰도 1위는 대통령, 검찰은 꼴찌
검찰은 수사로 정치하고 언론은 여론 왜곡
'파기환송심' 조희대 대법원도 불신 자초
여론 조사서 국민 4명 중 3명이 '교회 불신'
지금은 개혁 반발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시간
우리는 불신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서 불신 사회가 아니라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신 사회입니다.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면 대체로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언론도 믿지 못하고 종교도 믿지 못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국가기관도 믿지 못합니다.
천문학적 갈등관리 비용 쓰는 불신 사회
그래서 민원과 탄원과 투서와 고소·고발과 소송이 난무하고, 판결을 믿지 못하니 재판 불복이 다반사이고, 언론을 믿지 못하니 가짜뉴스가 언론처럼 횡행하고, 의사를 믿지 못하니 인터넷에서 직접 치료법을 찾고, 스마트 시대인데도 미신을 숭배하고 점집은 성황을 이루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이성적인 선거운동보다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TV토론에 나가는 것입니다. .
흔히 신뢰를 사회적 자본이라 합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신뢰도가 높은 사회는 담장이 없어도 안전하다고 느껴 불안하지 않지만,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담장을 높게 세우고도 불안하여 담장 위에 철조망이나 유리 조각을 꽂아두어야 안심하게 됩니다. 그게 불신의 비용입니다.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선 사소한 약속은 말로 해도 되지만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선 계약서를 쓰고 공증을 받아두어야 안심하게 됩니다. 그게 모여 불신의 사회적 비용이 되는 겁니다.
불신에 따른 사회비용은 엄청납니다. 2013년에 나온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적 신뢰의 결여로 한 해에 최대 246조 원을 갈등관리 비용으로 쓰고 있다고 했으니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불신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그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귀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믿을 수 있다는 답변이 2014년에는 74%였으나 2024년에는 56%로 뚝 떨어졌습니다.

왜 많이 배우고 출세한 먹물들일수록 염치가 없어질까
그런데 참 희한합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낮은데 택배기사가 길가에 물건을 부려놓은 채 다른 곳으로 배달을 가도 훔쳐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카페에서 테이블에 핸드폰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외국인들은 그걸 보고 놀란다고 하지요. 어떤 전문가는 우리 사회가 사람에 대한 신뢰는 낮지만 사회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높아서 그렇다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우리에겐 체면 의식이 있어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릴 적에 이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셔서 전이라도 부치면 할머니는 꼭 이웃들과 조금씩이라도 나눴습니다. 손님이 사탕 봉지라도 들고 왔으면 다만 몇 알씩이라도 동네 사람과 나눴습니다. 손님이 오는 걸 봤고 전 부치는 냄새가 나는데, 혼자만 먹는다고 손가락질하고 흉이라도 볼까 할머니는 무척 신경을 쓰셨는데, 그게 체면 의식이 아닐까 합니다.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하던 고 전우익 선생의 말씀이 공동체 의식이고 체면 의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합니다. 신분이 높아지고 출세할수록 그런 의식이 사라지나 봅니다. 사회 신뢰도 조사를 보면, 많이 배운 전문직 종사자들에 대한 신뢰도는 항상 낮게 나옵니다. 국회의원이 그렇고, 판검사가 그렇고, 의사가 그렇고, 기자들이 그렇습니다. 출세할수록 염치는 사라지고 얼굴을 두꺼워지는 게 한국의 먹물들인가 봅니다.
스스로 신뢰 갉아먹는 가짜뉴스 발원지 재래식 언론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매년 전 세계 40여 국가를 대상으로 각 나라의 국민이 자기 나라의 언론매체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조사하여 보고서를 냅니다. 그걸 보면, 한국인들의 언론 신뢰도는 조사대상 국가 중에 항상 꼴찌 수준입니다. 한국인들은 한국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가 가장 불신받는 매체로 언론 불신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늘 당당합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반성과 성찰은 없고 불신을 강화하는 일만 반복됩니다. 한국경제신문의 기자들은 특정 주식을 산 뒤 호재성 기사로 주가를 띄우는 주가조작으로 돈벌이를 하다 들통났습니다. 대한상의는 상속세 때문에 부자들이 한국을 떠난다는 허위 정보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담합이라도 했는지 기자들은 그걸 그대로 베껴 가짜뉴스를 살포했다가 언론 불신을 자초했습니다. 워싱턴 특파원들은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에 고자질하듯이 한국의 사정을 알리고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내정간섭’ 보도를 했다가 ‘그게 언론이 할 짓이냐’는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 모두가 여론을 의도한 방향으로 몰고 가기 위해 사실을 조작하거나 왜곡하거나 과장한 ‘가짜뉴스’입니다. 그런데도 가짜뉴스를 방지하는 목적의 징벌적 배상이나 허위조작 정보 처벌에 반대하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이른바 재래식 언론이 가짜뉴스의 발원지가 되고 온상이 되고 있는데도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언론의 생명은 신뢰이고, 신뢰할 수 없는 언론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데도, 부끄럽다며 성찰과 자정을 말하는 기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 국회 신뢰도 오르고 법원 검찰 떨어진 이유는?
탐사 보도에 권위가 있는 시사주간지 <시사IN>은 매년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한 기사를 게재합니다. 2025년 10월의 기사를 보니, 대통령(청와대)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최저치(10점 만점에 2.75점)를 기록했는데 이재명 정부에선 5.24점으로 껑충 뛰어 조사대상 기관 중에 가장 높았고, 만년 꼴찌를 기록하던 국회에 대한 신뢰도 높아져 여전히 불신 구간이긴 하지만 4.19점으로 대법원(4.11점)보다 높았고, 검찰 신뢰도는 3.06점으로 조사대상 기관 중에서 꼴찌였습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대통령과 국회에 대한 신뢰는 높아졌고, 검찰과 법원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습니다. 국회가 아니라 여야를 나눠 정당별로 신뢰도 조사를 했다면, 국회 불신의 귀책 사유가 어느 쪽에 있는지 시시비비가 분명하게 드러났을 겁니다. 다음 조사에서는 국회 신뢰도와 별도로 여야 정당별로 신뢰를 묻는 조사를 하면, 양비론의 정치 혐오에서 탈피하여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하고 성숙해지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검찰 신뢰도가 꼴찌로 추락한 이유는 수사로 정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피의자를 협박하여 허위 진술을 강요하고, 증거를 조작하고, 객관의 의무를 저버리고, 정적을 제거하려는 마녀사냥 수사를 하고 정치적 기소를 한 사실이 드러나도 사과도 반성도 없습니다. 검찰을 개혁하라는 민심이 분노로 표출하는 와중에도 수사권을 놓지 않으려고 잔꾀를 부리고, 법 왜곡죄 도입에는 막무가내로 반대합니다. 검사 선서문에 있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는 그저 선서문에만 존재하나 봅니다.
법원 불신 자초해 놓고 사과 한 마디 없는 조희대 대법원장
법원 신뢰도가 뚝 떨어진 데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공(?)이 가장 큽니다. 2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이재명 선거법 사건은 어느 쪽에서도 불복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판결이고 흠잡을 데가 없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법과 절차를 무시하며 초고속으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윤석열의 정적’ 이재명의 대선 출마를 봉쇄하려고 주도한 결정이었습니다. 판결이 아니라 정치였고, 광장의 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파기환송을 배당받은 고법 재판부는 공판 기일을 지정했다가 광장의 분노에 놀라 대선 이후로 재판을 연기했지요. 애초에 대법원이 그래야 했습니다. 법원 불신은 사법부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이 자초한 겁니다. 그런데도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판사에 따라 유무죄의 판단이 다르고 형량이 다를 수 있지만, 그 편차는 상식의 범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판결이 예측 가능하고 판결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판결문에 솔로몬의 지혜나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 인식이 담기면 법원에 대한 신뢰와 권위는 저절로 높아집니다. 반대로 친위 쿠데타 내란을 성경 읽겠다고 촛불을 훔친 행위에 비유하는 판결이나 ‘공천 주라는데 말이 많네’라는 대통령 당선자의 육성 증거가 있는데도 정상적인 공천이었다는 판결은 일반의 상식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판결입니다. 마녀사냥이 명백한 검찰의 정치적 기소에 유죄로 화답하는 판결을 존중하라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재판소원이든 법관 증원이든, 사법부 개혁이 당위가 된 건 윤석열 늪에 빠진 ‘조희대 코트’가 자초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개혁에는 반대합니다. 국민을 위해서라는데, 그 주장에 동의할 국민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기자들이 언론 윤리를 신의성실하게 준수하면 징벌적 배상을 두려워할 일이 없듯이 법관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을 하면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호를 지키고 교통법규를 지키면 과속 난폭 운전을 할 수가 없고, 단속 카메라가 곳곳에 있거나 말거나 신경 쓸 이유가 없습니다.
국민 4명 중 3명이 불신하는 ‘믿음의 교회’
교회 권력을 감시하는 독립 매체인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한국 교회 사회적 신뢰도’ 조사를 보면, 교회를 불신한다는 응답이 75.4%였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정병오·신동식·이상민)이 올해 1월 초에 전국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에 절반은 한국 교회를 극우로 인식했고, 그 이유로 △12·3 계엄 옹호(64.5%)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타성(58%) △권위주의 옹호(43.7%) △폭력적인 언어와 폭력 선동(43.3%)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높은 불신에는 누구보다도 전광훈, 손현보 같은 극우 성향 목사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여 부와 명성을 얻은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책임이 클 겁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개신교 내부에서도 언론에서도 지식인 사회에서도 그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검찰 개혁은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 자초한 것이고, 사법 개혁은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 자초한 것이고, 언론 개혁은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 자초한 것인데, 내부에서는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만 나올 뿐 성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신뢰가 생명인 집단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존재할 이유도 잃게 됩니다. 신뢰가 생명인데 그들 스스로 신뢰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언론, 검찰, 법원, 교회를 불신의 늪으로 밀어 넣는 범인은 그 집단의 내부에 있습니다. 지금은 반발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 송요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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