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 "한국, 소프트파워의 핵심" "히어로들의 개선문"

BTS 거의 4년 만에 컴백 라이브 공연 'Arirang'
"최대 26만명" 훨씬 못 미친 4만여명 질서정연

AP "지나친 통제로 상징성 훼손됐다는 비판"
외신들 일제히 앨범·공연장소·의상 입체 조명

CNN "관중들, 한복서 영감받은 차림으로 참석"
롤링스톤 "새 앨범 '아리랑', 한국적 뿌리 강조"

모든 수록곡 스포티파이 등 음원 상위권 싹쓸이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복귀한 방탄소년단(BTS)의 ‘BTS 컴백 라이브: ARIRANG’ 공연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날 공연은 넷플릭스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세계 190개국에 생중계됐다2026.3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복귀한 방탄소년단(BTS)의 21일 컴백 라이브 공연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못 미치는 4만여명이 현장 관람한 가운데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넷플릭스 라이브 스트리밍 중계로 190개국 '아미'들이 함께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지켜봤다. 

 

철저한 안전 점검 및 대비, 1만 6000명 가까운 경찰과 지원인력 덕분에 별다른 사고없이 끝났지만, 예상했던 최대 26만 명에 못미치는 인파가 모인 것을 두고 “아쉽다”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지나친 통제로 즐길 기회를 빼앗은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AP 통신도 “지나친 통제로 서울의 정신적 중심지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이번 공연의 상징성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를 겪은 우리 정부와 사회로선 안전한 공연 관리를 우선할 수 밖에 없었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열고 있다. 2026.3.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아리랑 가락에 감동, 12곡 가운데 8곡을 새 앨범 수록곡으로

 

액자 프레임 형태의 큐브 무대에 50명의 무용수들과 함께 선 방탄소년단은 광화문과 경복궁을 배경 삼아 압도적인 오프닝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조선시대 장군의 갑옷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상은 한국적인 미와 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극대화하며 웅장함을 뿜어냈다. 첫 곡 '보디 투 보디'(Body to Body) 중간에 우리 민족의 한과 아름다움이 농축된 '아리랑' 가락이 울려퍼진 것은 감동적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공연에 들려준 곡목 목록이었다. 오랜만의 귀환인 만큼 대중적인 메가 히트곡으로 쉽게 갈 법도 했지만, 모두 12곡 가운데 여덟 곡을 전날 공개된 정규 5집 음반 '아리랑'(Arirang) 수록곡으로 채우는 자신감을 선보였다. 퀄리티와 퍼포먼스로 승부하겠다는 오만함(?)도 내비쳤다. 

 

아미들로선 한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질 듯했다. 새 앨범의 타이틀 곡 '스윔'(Swim)을 완벽한 군무와 노래로 들려준 것이 압권이었다. 55분쯤 흘러 다른 멤버들이 뒤돌아 섰을 때 부상으로 계속 의자에 앉아 랩을 하던 리더 RM이 늘 콘서트의 앙코르를 장식했던 '소우주'(Microcosmos)를 들려주자고 제안하자 멤버들은 다시 관람객들을 향해 돌아섰다. 멤버들은 관객들이 휴대전화를 켜도록 유도했다. 광화문을 물들이던 별빛이 북두칠성이 되어 관객들의 눈앞에 띄워졌다.

 

그리고 질서 정연한 퇴장과 쓰레기 정리 등이 이어졌다. 일본인 아미들이 20리터 들이 쓰레기 봉지를 들고 정리하는 데 앞장선 것이 눈길을 끌었다.  

 

동아일보는 공연이 끝난 뒤 엑스(X)에 ‘아미’로 추정되는 해외 팬들의 열렬한 반응이 쏟아졌다고 전했다. 이들은 “정말 최고의 날이었다. BTS 고맙다. 넷플릭스 정말 고맙다”, “실력이 훨씬 늘었다. 정말 멋진 퍼포먼스였다”, “노래도 최고였고, 눈앞에서 보니 눈물이 나왔다”, “우리의 자랑 BTS, 너무 사랑하고 넋을 잃고 바라봤다” 등의 찬사를 보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열고 있다. 2026.3.21 연합
 

당초 최대 26만명, 실제로 4만명…지나친 통제로 흥 깨뜨린 건 아닐까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공연이 펼쳐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 8시 기준, 4만∼4만 2000명이 운집했다. 경찰도 비공식으로 4만 2000명 정도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주최사인 하이브는 “10만 4000명 정도가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고 전했다. 주최 측의 집계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당초 예상했던 26만 명과는 거리가 꽤 있다.

 

가장 먼저 광화문 광장에 지나치게 많은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의 우려가 높다는 관계당국의 당부에 광화문 방문을 자제한 시민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초·중·고교에 가정통신문을 배포하며 학생들의 광화문 방문 자체를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 공연이 넷플릭스를 통해 실시간 생중계되기 때문에 “‘안방’에서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삼엄한 통제로 광화문 광장 접근성이 떨어지고, 공연 관람을 마친 후 귀가하는 과정에도 적잖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시민들이 광화문행을 꺼린 요소로 꼽혔다. 한 BTS 팬은 “공연 시간이 한 시간 정도라는 소식에 광화문에 가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상황에 무리해서 광화문을 찾기보다는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관객들은 놀라울 정도로 질서정연했고, 좌석 티켓을 가진 팬들은 대부분 자리에 앉아 있었다”며 “함성 소리는 예상했던 것처럼 귀청이 터질 듯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좌석 구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함성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던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평소보다 준비 물량을 크게 늘렸던 편의점과 상점 상인 일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인파에 SNS를 통해 “재고가 많이 남았다”는 식의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열고 있다. 2026.3.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다음달 월드 투어 수익, 스위프트의 '에라스투어' 앞지를 것"

 

미국과 유럽 주요 언론과 전문매체들은 미국 최대 스포츠 연계 음악 이벤트인 슈퍼볼 하프타임쇼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콘서트에 비교하며 일제히 좋은 평가를 쏟아냈다. 새 앨범 제목인 '아리랑', 공연 장소인 광화문광장의 상징성, 무대 의상 선택 등을 두고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문화와 정체성이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졌음을 선언한 것이란 평가를 내놓았다. 

 

NYT는 홈페이지에 'BTS 복귀' 코너를 별도로 만들어 컴백 공연, 신규 앨범, BTS 음악 가이드, 활동 공백, K-팝 전반에 관한 기사들을 다양하게 심층적으로 다뤘다. NYT는 서울 및 뉴욕발로 공동 작성한 이날 컴백 공연 기사에서 "서울의 역사적 중심부에서 펼쳐진 이번 공연은 한국 소프트파워의 핵심 동력인 BTS의 웅장한 귀환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컴백 공연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며 "BTS의 글로벌 위상과 인기를 입증하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이어 "82회에 달하는 글로벌 투어 역시 그 파급력과 경제적 영향력을 보여준다"며 BTS의 이번 투어 수익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티켓 수익인 20억 달러에 맞먹거나 넘어설 수 있다고 전했다.

 

2023∼2024년 이뤄진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는 관광 수입만으로 콘서트 개최 지역의 경제가 살아난다는 평가를 받으며 '테일러노믹스'(Taylornomics)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미국 안팎에서 사회·문화·경제적 신드롬으로 자리 잡은 바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BTS가 같은 도시에서 여러 번 공연을 열어 자신들의 이동 비용을 절감하고 팬들이 직접 찾아오게 만드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BTS의 이번 투어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대비 절반 정도의 공연 횟수에도 불구하고 공연당 수익은 비슷한 수준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열고 있다. 2026.3.21 연합
 

유럽 언론도 이번 복귀 무대를 주요 기사로 다뤘다. BBC는 공연이 열린 곳이 서울의 역사적인 도심이라고 소개하며, 14세기 왕궁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광화문 광장에 들어서는 것은 마치 BTS에 헌정된 사원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줬다고 평가했다. BBC는 아울러 BTS의 복귀 무대는 개선문을 떠올리게 하는 형태였다며 "이는 한국 문화의 '얼굴'이 된 일곱 멤버에게 주어진 흔치 않은 영예"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독일 dpa통신은 2013년 데뷔 이후 한국 대중음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BTS가 멤버들의 군 복무로 인한 4년의 공백 끝에 전 세계 팬들이 고대하던 대규모 복귀 공연을 치렀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AFP 통신은 다음달 시작하는 BTS의 월드투어가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수익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예상하며, 가요를 비롯해 영화, 한식, 화장품 등 한류 전반의 인기 속에 한국 역시 관광과 굿즈 판매 증가로 혜택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NYT의 패션 담당 기자는 "BTS가 컴백 무대에서 한국 브랜드 송지오의 의상을 선택했다는 것은 공연장소(광화문광장), 앨범명(아리랑) 선택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스타일에 관한 게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문화와 정체성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대중문화 매체 버라이어티도 "한국인 디자이너(송지오)가 멤버들과 협업해 역사적인 콘서트를 위한 캐릭터를 완성했다"라고 소개했다.

 

CNN 방송은 슈퍼볼 하프타임쇼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 행사 연출자로 유명한 해미시 해밀턴이 총연출을 맡았다는 점을 부각하며 "이는 BTS 컴백 공연의 규모를 가늠케 한다"라고 평가했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1억 명이 넘는 미국인이 동시에 시청하는 유일한 행사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대중가수들에게 가장 영예로운 공연 무대로 여겨진다.

 

CNN은 공연을 보러 온 BTS 팬들 상당수가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차림이었다고 전하면서 "최근 몇 주간 소셜미디어(SNS)에는 한복 스타일링과 전통 액세서리를 접목한 패션 아이디어들이 넘쳐났다"고 소개했다.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열린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찾은 팬들이 공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6.3.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새 앨범 호평 쏟아져, 스포티파이 1~14위 모두 수록곡 

 

앨범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미국의 음악지 롤링스톤은 "이번 블록버스터급 컴백에서 세계 최대 밴드 BTS는 그룹 정체성과 한국적 뿌리를 강조하면서도 음악을 모험적이고 새로운 영토로 밀어붙였다"라고 평가했다.

 

미 공영방송 NPR은 앨범 리뷰에서 "여러 측면에서 볼 때 BTS는 장르 경계를 넘어 기존 음악을 끌어오면서도 한국에서 자생한 한국 대중음악의 궁극적 실현이면서 민족적 자부심의 구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4년간의 강제됐던 공백 끝에 그룹을 재결합시킨 앨범 아리랑은 그들의 부재 속에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은 산업에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새 앨범 '아리랑'은 세계적인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글로벌 '데일리 톱 송' 차트에서 타이틀곡 '스윔'이 1위를 차지했으며 수록곡 전곡이 14위까지 싹쓸이했다. 미국 '데일리 톱 송' 차트에서도 '스윔' 1위, '보디 투 보디'(Body to Body) 2위, '훌리건'(Hooligan) 6위 등 30위 이내에 전곡이 진입했다.

 

앨범 판매량도 자체 기록을 경신했다. 소속사 빅히트 뮤직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1시 발매된 앨범은 발매 당일 398만장 판매됐다. 이전까지 방탄소년단의 발매 첫 주 판매량 최고 기록은 2020년 2월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소울 : 7'이 세운 337만장이었다. 5집은 하루 판매량으로 이 수치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5집은 또한 이탈리아, 멕시코, 스웨덴 등 전 세계 88개국(지역)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 1위에도 올랐다. '스윔'은 21일 오전 9시까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90개국(지역) 아이튠즈 '톱 송' 정상을 휩쓸었다.

 

이 곡은 국내 음원차트 멜론, 벅스에서도 실시간 차트 1위로 직행했으며 멜론에서는 앨범 전곡이 '톱 100'에 진입했다.                                                      < 임병선 기자 >

  

경복궁 밤하늘 물들인 BTS ‘아리랑’…전 세계 아미들 보랏빛 환호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현장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열린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BTS THE COMEBACK LIVE|ARIRANG)을 찾은 팬들이 응원봉을 든 채 휴대전화 카메라로 BTS의 공연 모습을 담고 있다. 연합
 

“비티에스(BTS), 비티에스, 비티에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월대 앞. 공연 시작 10분 전부터 팬들은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비티에스”를 연호했다. 수많은 아미밤(응원봉)이 흔들리는 가운데 광화문의 조명이 꺼지자 현장 공기는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이어 전날 발표된 방탄소년단(BTS) 정규 5집 ‘아리랑’의 인터루드 ‘넘버 29’에 담긴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가 울렸고, 커다란 나발 소리가 광화문 광장을 가르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가지런히 손을 모은 검은 옷의 댄서들이 양옆으로 흩어지자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큐브 형태의 무대는 광화문과 연결되는 거대한 문처럼 보였다. 그 문을 통과해 방탄소년단은 마침내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위 아 백(We Are Back).” 리더 알엠(RM)의 외침과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광화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이날 무대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등장 자체였다. 방탄소년단은 광화문 월대를 지나 세종대로로 이어지는 길, 조선의 왕이 궁 밖으로 나올 때 걷던 ‘왕의 길’을 따라 무대에 올랐다. 백성의 노래 ‘아리랑’을 앞세운 이들이 왕권의 상징 공간인 경복궁 앞에서 새 출발을 알린 장면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선명한 의미를 남겼다. 한국에서 출발한 일곱 청년이 세계적인 그룹이 돼 다시 서울의 심장부로 돌아와, 자신들의 뿌리를 노래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의 ‘옛 투 컴 인 부산’ 이후 3년5개월 만의 완전체 무대라는 점에서 이날 공연은 ‘방탄소년단 2.0’의 공식적인 출발선이 됐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방탄소년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오프닝은 ‘아리랑’의 주제의식을 집약해 보여줬다. ‘보디 투 보디’ ‘훌리건’ ‘2.0’이 연이어 펼쳐지며 신보의 전반부가 지닌 강렬한 에너지를 밀어 올렸다. 특히 ‘보디 투 보디’에서는 실제 ‘아리랑’ 선율이 울려 퍼지며 한국적 정서가 공연의 한복판에 놓였다. 붉은 조명 아래 광화문이 거대한 배경막처럼 떠오른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리허설 도중 발목을 다친 알엠은 무대 중앙을 자유롭게 누비지는 못했지만 의자에 앉거나 무대 한쪽에 서서 랩을 이어갔고, 나머지 멤버들은 돌출 무대까지 활용하며 그 빈자리를 메웠다. ‘훌리건’의 복면 댄서들, ‘에프와이에이’(FYA) 때 무대를 가득 채운 댄서들의 군무도 새 앨범 전반부의 공격적 사운드를 시각적으로 밀어붙였다. ‘에일리언스’에서는 제이홉의 강렬한 랩이 단연 돋보였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1분간의 오프닝 무대를 마친 멤버들은 첫 인사에서 벅찬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진은 “몇년 전 마지막 부산 콘서트에서 저희를 기다려달라고 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가뿐 숨을 쉬며 말했다. 지민은 “이 앞에서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울컥하고 너무 감사하고 7명이서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슈가는 “한국에서 가장 역사적인 장소인 광화문에서 무대를 할 수 있게 돼 정말 정말 영광”이라며 “이번 앨범에는 저희의 정체성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아리랑’을 (앨범) 타이틀로 정했고 그 마음을 담아서 광화문에서 무대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정국도 영어로 “저희가 가진 걸 쏟아붓겠다”고 했고, 알엠은 “긴 여정이었지만 마침내 여기에 섰다”고 소리쳤다.

 

무대 연출은 광화문이라는 장소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방식으로 짜였다. 큐브형 메인 무대 내부의 삼중 엘이디(LED) 구조는 태극기의 건곤감리 문양에서 착안한 그래픽과 색감을 입혀 곡마다 다른 상징을 부여했다. 붉은 조명이 광화문을 뒤덮을 때는 왕궁의 위엄과 긴장이, 푸른 조명이 무대를 적실 때는 물과 밤의 이미지가 강조됐다. 파도, 불꽃, 하늘, 대지 같은 자연의 상징이 화면을 채우며 신보 ‘아리랑’이 담아낸 한국적 정서와 팀의 새 서사를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무대 뒤편에 실제 광화문이 프레임처럼 걸리면서, 공연장은 세트가 아니라 서울 도심 전체를 끌어들인 하나의 거대한 야외 극장처럼 작동했다.

 

의상도 이번 공연의 의미를 보강했다. 멤버들의 의상은 전통 한복의 실루엣을 현대적으로 변주한 디자인이었다. 넓은 소매와 여밈선, 갑옷을 연상시키는 절개와 장식이 섞이며 조선시대 장군의 복식 같은 인상을 남겼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중반 이후 공연은 과거의 히트곡과 현재의 고민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흘렀다. ‘버터’에서는 노란 조명이 분위기를 환하게 바꿨고, ‘마이크 드롭’에서는 푸른 조명이 차갑고 날렵한 긴장을 만들었다. 초반 다소 굳어 보였던 멤버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농담을 주고받으며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노멀’ 무대를 마친 뒤 “노래 너무 좋은데?”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서는 긴장을 풀어낸 멤버들의 여유도 읽혔다.

 

특히 타이틀곡 ‘스윔’ 무대는 멤버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던 공연의 핵심이었다. 스크린을 수놓은 파도 이미지와 여백을 살린 절제된 안무는, 더 세고 빠른 자극 대신 삶의 파도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헤엄쳐 나아가겠다는 이번 앨범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노래를 부르기 전 제이홉은 “이번 앨범에는 다양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는 저희의 수많은 고민들도 담겼다”며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조금은 잊혀지지 않을까’ ‘여러분들이 우리를 기억해주실까’ 하는 그런 고민들도 사실 없지 않아 있었다”고 털어놨다. 슈가는 “저희가 잠시 멈춰야 했던 시간 동안 우리가 지킬 것은 무엇인가, 또 변화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말 정말 정말 많이 고민했다”며 “확신할 수 없고 불안하긴 하지만 이런 감정들 또한 저희 감정, 저희 자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방탄소년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메가 히트곡 ‘다이너마이트’를 부르며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이들은 앙코르 곡 ‘소우주’로 컴백 공연을 마무리했다. 멤버들은 관객에게 휴대전화 불빛을 켜달라고 요청했고, 광화문광장은 다시 한번 별빛 같은 불빛으로 물들었다. 어깨동무를 한 채 인사한 멤버들은 “감사합니다, 아미” “안전하게 돌아가세요”를 거듭 외쳤다.

 

꽉 차인 60분의 공연이었지만, 스피커와 조명, 각종 구조물이 관객을 여러 구역으로 분절시키면서 현장의 에너지가 완전히 하나로 응집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날 빅히트 뮤직이 밝힌 10만4000명 관람객의 안전한 관람을 위한 조처였지만, 무대가 여러개로 나뉜 듯한 인상이었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방탄소년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럼에도 이날 광화문에 울려퍼진 것은 단순한 컴백의 환호만은 아니었다. 백성의 노래 ‘아리랑’과 왕의 공간 경복궁, 그리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방탄소년단의 현재가 한자리에서 맞물렸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은 광화문에서 자신들의 뿌리와 현재, 그리고 다음을 함께 꺼내 놓으며 ‘방탄소년단 2.0’의 시작을 알렸다.                   < 이정국  김민제 기자 >

국힘 필리버스터 종결 후 표결... 검사 수사개입 차단, 독소조항 제거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범죄수사청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민주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
 

국회가 21일 본회의를 열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법을 의결했다. 전날 처리된 공소청법과 함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구조가 제도화됐다. 중수청은 수사를, 공소청은 기소를 각각 맡게 된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재석 167명에 찬성 166명, 반대 1명으로 중수청법을 가결했다. 반대표는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던졌다. 이날 중수청 법안 통과를 앞두고 국민의힘은 이를 ‘검찰 파괴’라고 부르며 24시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섰지만,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돼 가결됐다.

 

법안에 따르면 중수청은 행안부 장관 소속 기관으로 설치되고, 주요 수사 대상은 6대 범죄인 ‘부패’, ‘경제’, ‘방위산업’, ‘마약’, ‘내란·외환 등’, ‘사이버범죄’가 포함된다. 법왜곡죄 사건, 공소청·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원 공무원이 재직 중 저지른 범죄도 중수청의 수사 범위에 포함된다.

 

중수청 수사관은 특정직 공무원으로 1∼9급까지 단일 직급 체계를 갖는다. 공개 채용이 원칙이지만, 직무 관련 학식과 경험, 기술 등이 있는 자의 경우 경력 채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애초 정부가 내놓은 법안에는 중수청이 수사를 개시할 때 공소청에 통보하도록 한 조항이 있었지만, 민주당은 당·정·청 논의 과정을 거쳐 이 부분을 삭제했다.

 

앞서 전날 국회는 본회의에서 공소청의 조직 구조와 공소청 검사의 권한 등을 규정한 공소청법을 처리했다. 공소청법은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따라 기소만을 전담하며 공소청·광역공소청·지방공소청 등 3단 체계로 운영하도록 한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여기에 기존 검찰의 특별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지휘·감독권은 폐지했고, ‘권한남용 금지’ 조항이 신설됐다. 또, 검사의 징계 사유에 ‘파면’을 명시해 탄핵 절차 없이도 검사를 파면할 수 있게 했다.

 

공소청·중수청법의 국회 입법 절차를 완료한 민주당은 6월 지방선거 이후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을 처리하면서 검찰 개혁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놓고는 당내에서 공소청 검사에 보완 수사권을 부여할지 여부가 쟁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예외적인 보완수사권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으나 당내 강경파는 보완수사권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윤연정 기자 >

 

 

중수청·공소청법 ‘최종안’ 매듭... 민주, 당·정·청 ‘최종 수정안’ 당론 채택

 
더불어민주당이 17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개혁 당·정·청 협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민(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추미애(법사위원장)·한병도(원내대표)·정청래(당대표) 의원. 윤운식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이 17일 검찰청 폐지 후속 입법인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설치법안의 당·정·청 ‘최종 수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수사-기소 분리’ 정부조직 개편 방안 갈등이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당·정·청이 긴밀한 조율을 통해 하나 된 (중수청·공소청법) 협의안을 도출했다. 국민들이 많이 우려하고 걱정했던 독소조항들을 삭제하고 고쳤다”며 “당·정·청 협의안대로 1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회견장에는 검찰개혁 강경파로 꼽히는 추미애(국회 법제사법위원장)·김용민(법사위 간사) 의원도 함께했다.

 

당·정·청은 최종 수정안에서 “검사가 우회적으로 수사권을 확보할 가능성을 제거”하기로 했다. 수정안은 검사의 직무를 기존 정부안의 ‘법령’이 아닌 ‘법률’로 정하도록 해, 대통령령 등으로 검사에게 수사권을 줄 가능성을 아예 없앴다. 아울러 “기소 전담 기관이라는 본연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기존 정부 안에서 중수청 수사관이 검사에게 수사 개시를 통보하도록 한 의무 조항과 검사가 지녔던 입건요구권·의견제시권도 삭제했다. 검사의 영장 청구·집행 지휘권은 “영장 청구에 관해 필요한 사항”으로 고쳤다. 특별사법경찰에 대한 검사의 지휘·감독권도 없앴다. 검사도 일반 공무원처럼 징계를 통해 파면될 수 있게 했고, 중수청이 ‘법 왜곡죄’ 혐의를 받는 판사·검사를 수사할 수 있게 했다. 당내 개혁파의 수정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된 셈이다.

 

 

다만 공소청법에서 “공소청의 장은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기존 규정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공소청의 ‘3단 구조’도 그대로 두되 공소청-광역공소청-지방공소청으로 이름만 바꾸기로 했다. 기존 검사 정원을 해임한 뒤 선별해 재임용하자는 강경파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정·청 최종 수정안은 이 대통령이 지난 7일부터 여러차례 에스엔에스(SNS) 글을 띄우고 여당 초선 의원 만찬을 하면서 “안정적 검찰개혁”을 주문하고 정리에 나선 끝에 마련됐다. 전날 오후 정청래 대표와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 등 당·청 핵심 관계자들은 국회에서 만나 막판 조율을 했다.

 

 민주당은 17일 오후 의원총회를 열어 최종 수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은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어 중수청·공소청법을 처리하고, 오는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두 법을 최종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바 있다.                                        < 김채운 기자 >

미군 2500명 더 파견 예정…이란 “중동 밖 미 지휘관 추적·보복”

 

 
 
21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반전 집회에서 시위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AP 연합
 

이란이 48시간 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을 경우 이란의 발전소를 공격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고에, 만약 공격을 받으면 지역 내 미군과 이스라엘과 관련한 에너지·정보기술·해수담수화 시설을 공격하겠다고 맞받았다.

 

이란 국영방송(IRIB) 보도를 보면, 이란군 중앙사령부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각) “이전 경고에 이어, 만약 이란의 연료와 에너지 인프라가 적에 의해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 정권이 지역 내 보유한 모든 에너지·정보기술·담수화 시설은 공격 대상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란군 중앙사령부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이란 정규군을 총괄하는 기구다. 이란군의 성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48시간 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지 않으면 이란의 발전시설을 공격하겠다고 경고한 지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란이 지금 이 시점으로부터 48시간 이내에 ‘위협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그들의 다양한 발전소들을 가장 큰 곳부터 차례로 초토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수원이 부족한 중동 국가들은 식수와 생활· 산업용수를 얻기 위해 해수담수화 시설에 크게 의존하는데, 이를 공격받을 경우 해당 지역민들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이때문에 해수담수화 시설에 대한 공격은 상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중대한 행위로 여겨진다.

 

앞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 7일 이란 케슘섬의 해수담수화시설을 공격했고, 다음날 이란은 바레인의 해수담수화 시설을 보복 공격한 바 있다.                           < 김지훈 기자 >

 

트럼프 “호르무즈 봉쇄 48시간 내 안 풀면, 이란 발전소 초토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팜비치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팜비치/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을 48시간 이내에 전면 개방하지 않을 경우 주요 발전소를 타격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란이 지금 이 시점으로부터 48시간 이내에 위협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그들의 다양한 발전소들을 가장 큰 곳부터 차례로 초토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원철 기자 >

 

오락가락 미국, 이란산 석유 제재 한 달간 해제

 

“미국의 일관된 전략 부재를 상징하는 조치”
11월 중간선거 의식한 석유가격 억제 시도
최대 1억 4천만 배럴의 해상 재고물량이 대상
전문가들, 제재 일시 완화조치 효력에 의문

 

스콘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20일 이란산 석유에 대한 제재를 한 달간 한시적으로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3월 16일 프랑스 파리 OECD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는 베센트 장관. 2026.3.16. AP 연합
 

미국이 ‘미국-이란 전쟁’으로 치솟은 국제유가를 억제하기 위해 최대 1억 4천만 배럴 분량의 이란산 원유 판매를 한 달간 한정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20일(현지시각)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현재 해상에 발이 묶여 있는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해 대다수 국가들에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매우 제한적이고 단기적인 조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발급한 일반면허에 따르면, 미국 뉴욕 시간으로 20일 이후 선박에 실린 이란산 원유와 석유제품에 대한 판매가 4월 19일까지 허용되며, 미국으로의 수입도 포함된다.

 

20일부터 한 달간 1억 4천만 배럴 시장에 추가 유입?

 

베센트 장관은 “현재 중국이 제재 대상인 이란산 원유를 헐값에 사들여 비축하고 있다”며 “이런 공급량을 일시적으로 세계 시장에 풀면 약 1억 4천만 배럴의 원유가 (추가로) 유입돼 이란으로 인한 공급 압박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19일, 중국 홍콩 칭이항의 석유 터미널에 정박한 중국 국적 유조선과 그 뒤로 보이는 칭마대교의 모습. 2026.3.19. 로이터 연합
 

그는 “본질적으로는 이란산 원유를 역이용해 유가를 억제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하루에 1000만∼1400만 배럴의 공급 부족이 발생하는 시장을 약 3주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베센트 장관은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이 4억 배럴 이상의 원유를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이런 노력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혼란을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관된 전략 없는 즉흥적 이란 공격 상징하는 조치

 

그러나 미국이 전쟁 대상국인 이란에 가한 경제제재 조치까지 이처럼 스스로 완화하는 것은, 트럼프 정권의 이번 이란 공격이 얼마나 일관된 전략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이번 조치는 지난 12일의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 완화에 이은 것으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 완화도 미국 등 서방이 지원하는 우르라이나를 침범한 러시아의 수입을 증대시켜 우크라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꼴이어서, 트럼프 정권의 전략 부재를 비판하는 지적들이 나왔다.

 

트럼프 정권은 이란 공격 직전에 준비없이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이란의 호르무즈 헤햡 봉쇄 등으로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정보기관과 군이 경고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이런 제한적인 제재 해제가 국제 유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도 불확실하다. 이란산 원유의 대부분은 미국의 제재를 회피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을 통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전문가들, 제재 일시 완화조치 효력에 의문

 

에너지 분석가들은 이미 해상에 있는 원유의 대부분은 이미 구매되어 거래가 완료된 상태이므로, 제재 해제가 시장에 상당한 추가 공급량을 가져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제재 면제에도 이란산 원유를 북한, 쿠바, 그리고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으로는 판매하지지 못하도록 한 금지조치는 계속 유효하다.

 

베센트 장관은 이번 주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일본, 인도와 같은 국가들이 제재 면제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언급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이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국제 은행들이 이란산 원유 거래를 즉시 지원할지는 불확실하다며 ”우선 대부분의 원유 물량이 이미 예약되어 있어 공급 자체가 문제이고, 또 어떤 국제 은행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이란산 원유 거래에 자금을 지원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한 올리버 와이먼의 파트너이자 전 재무부 관료였던 대니얼 태너바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베센트 장관은 이번 조치는 이미 운송 중인 원유로 엄격히 제한되며 새로운 구매나 생산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베센트 장관은 이번 제재 해제로 이란은 경제적 이득을 거의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란은 어떠한 수익에도 접근하기 어려울 것이며, 미국은 이란과 이란의 국제 금융 시스템 접근 능력에 대해 최대 압박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중간선거 의식한 유가 억제 시도

 

이처럼 미국이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마저 해제하고 나선 것은 전쟁이 3주째 이어지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고 이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앞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하고, 전략비축유 1억7천200만 배럴도 방출하기로 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방출하기로 한 초기 물량 8600만 배럴 중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4500만 배럴이 이날 방출됐다.

 

하지만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배럴당 112달러를 넘겼고, 미국의 휘발유 소매 가격도 4년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유가는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이란은 자국산 원유 제재를 한시적으로 면제한다는 미국의 조치에 대해 '더 판매할 원유가 남아있지도 않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란 석유부 대변인은 엑스에 “현재 이란은 해상에 남아있는 원유가 없고 다른 국제시장에 공급할 물량도 없다”며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은 구매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 한승동 기자 >

 

핵 제거냐 협상이냐…트럼프, 이란전 ‘확전 vs 협상’ 갈림길

 

 
20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서 내리고 있다. 팜비치/로이터 연합
 

이란과의 군사 충돌이 4주차에 접어드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특수작전부대를 투입해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을 직접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국 시비에스(CBS) 뉴스가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이란과의 평화협상 준비에 착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전쟁 출구전략에 대한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논의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들은 이날 시비에스에 미 정부가 이란 핵물질을 확보하거나 반출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옵션을 검토하고 있으며, 특히 비밀 합동특수전사령부(JSOC) 부대의 투입 가능성에 계획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이란은 무기급에 근접한 60% 고농축 우라늄 약 972파운드를 축적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량이 파괴된 핵시설 지하에 묻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작전을 실제 승인할지 여부와 시점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개전 이후 이란의 방공망·미사일 체계·이슬람혁명수비대(IRGC) 관련 핵심 기반시설을 집중 타격하며 이란의 재래식 군사력을 상당 부분 약화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 영구 제거’는 여전히 달성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핵 물질 확보 작전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도전적인 작전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략기구 사무총장은 이날 시비에스에 “60% 농도의 고농축 우라늄 육불화물 가스가 담긴 실린더를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매우 도전적인 작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엔엔(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미군을 직접 파병하는 옵션을 거의 매일 군 수뇌부로부터 보고받고 있다고 전했다. 하르그섬 점령과 고농축 우라늄 직접 확보 등 지상작전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으며, 수천 명의 해병대원과 수병이 중동으로 추가 이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화당 내부에서는 지상군 투입에 대한 우려가 크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칫 ‘끝없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공화당 내 주요 인사들은 ‘지금까지 파괴한 이란의 군사 시설 성과를 바탕으로 승리를 선언하고 신속히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고 있다고 시엔엔은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이란과의 평화협상 준비를 시작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액시오스는 21일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인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윗코프가 물밑에서 평화협상안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액시오스에 따르면 미국은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경우 △5년간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및 미사일 보유 한도 1000기 제한 △우라늄 농축 전면 중단 및 나탄즈·이스파한·포르도 핵심 핵시설 폐기 △원심분리기 등에 대한 엄격한 외부 감시 수용 △헤즈볼라·후티·하마스 등 대리 세력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등을 수용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하지만 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이란은 이집트·카타르·영국 등 중재국을 통해 ‘휴전, 향후 공격 재개 금지 보장, 배상금 지급’ 등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과거에도 미국의 이 같은 요구를 여러 차례 거부한 바 있다. 특히 이란 지도부는 대화 중 돌연 폭격을 가했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에 강한 불신을 표출하고 있다고 한다.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배상금 요구에 선을 그었으나, 미 행정부 내에서는 이를 ‘동결 자금 반환’이라는 용어로 순화해 정치적 타결을 모색하려는 기류도 감지된다”고 보도했다. 이는 이란 정권이 자국 내에서 협상 타결을 위한 정치적 명분과 합의를 얻을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 김원철 기자 >

 

미군 2500명 더 파견 예정…이란 “중동 밖 미 지휘관 추적·보복”

 

 
 
지난달 27일에 촬영한 상륙강습함 복서함이 태평양을 향해하고 있다. 미 국방부가 상륙강습함 ‘복서호’ 등 군함 3척과 해병대·해군 병력 약 2500명 규모를 중동에 추가 파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AFP 연합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전쟁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동 전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미군 추가 파병과 이란의 보복 위협이 맞물리며 충돌 수위가 한층 높아지는 모습이다.

 

20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과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상륙강습함 ‘복서호’ 등 군함 3척과 해병대·해군 병력 약 2500명 규모를 중동에 추가 파견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주 일본 주둔 미 해병대 5천명 파병에 이은 두 번째 대규모 병력 배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상군 투입을 부인해 왔지만, 해병대가 실제 지상 작전에 투입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중동 곳곳에서 무력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이란 수도 테헤란과 이란 중부 지역에 두 차례의 대규모 공습을 가해 무기 제조 시설과 탄도 미사일 발사대 등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의 테헤란 정부 시설 공습에 알리 모하다므 나이니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대변인도 사망했다고 이란혁명수비대가 확인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은 시리아가 소수민족인 드루즈족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시리아 내 기반 시설을 타격하며 공격 범위를 넓혔다.

 

이란도 거센 반격에 나섰다. 이란은 21일 인도양에 있는 미국과 영국 합동 군사기지인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를 향해 중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미사일이 기지를 타격하지 않았지만, 이번 발사는 이란이 중동 지역 밖에서도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려는 중대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지난 2일 카타르 라스 라판 산업도시에 있는 카타르에너지 운영 시설 전경이다. 이란은 19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이 자국 가스전을 공격한 데 따른 보복으로 세계 2위 액화천연가스 생산시설인 카타르 라스라판 단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AFP 연합
 

이란 군 당국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직자, 군 지휘관들을 군사 시설 외에도 중동 밖 지역의 관광지까지 추적해 보복하겠다는 경고도 내놨다. 아볼파즐 셰카르치 이란군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영방송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이제부터 전 세계의 공원과 리조트, 관광지 그 어디도 당신들에게는 더는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군은 이스라엘에도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했다. 앞서 정유시설이 있는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예루살렘에 요격 파편이 떨어진 데 이어 21일 새벽에도 미사일 공습을 이어갔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는 드론 및 미사일 공격을 요격했다고 발표했다.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 당국은 해당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다. 이라크에서도 공항과 미국 외교 시설을 겨냥한 드론 공격이 이어지며 화재가 발생했고, 앞서 가스전을 공격받은 쿠웨이트는 이날 새벽 정유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아 일부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라라자치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20일(현지시각) 밤 페르시아 새해인 노루즈를 맞아 쿠르드인들이 횃불을 들고 언덕을 오르고 있다. AP 연합
 

미·이란 지도자들이 전쟁 메시지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이란의 새해 명절인 노루즈를 맞아 낸 신년사에서 항전 의지를 다졌다. 21일 국영 언론을 통해 간접 메시지를 전한 모즈타바 새 최고지도자는 “민생 안정과 부의 창출은 경제 전쟁의 핵심 방어선”이라며 올해를 ‘국가통합과 국가안보 아래 저항 경제를 구축하는 해’로 규정했다.

 

이러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 군사작전 축소를 시사하며 출구전략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 게시물에서 “우리는 이란의 테러 정권에 대한 중동에서의 대규모 군사적 노력을 점차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우리는 군사적 목표 달성에 매우 근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 윤연정 기자 >

러시아는 "유가 높은 수준 유지 경우 수출 금지하는 방안 검토할 수 있어"

 
 
18일 이란 공격 이후 이스라엘 하이파의 한 정유시설. 이스라엘 에너지부에 따르면 이번 공격은 중대한 피해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하이파/로이터 연합
 

이란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제재완화를 통한 원유 공급 확대와 원유 수출 정책 유지 방침 등을 내놓으며 시장 안정 메시지 발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유가 급등을 막기 위해 해상에 대기 중인 이란산 원유 약 1억4000만배럴에 대한 제재를 며칠 내로 유예할 수 있다고 19일(현지시각)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이날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출연해 “본질적으로 이란산 원유를 이용해 이란을 견제하면서 향후 10~14일간 유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재로 9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중국에 팔리던 이 물량이, 제재 해제와 함께 시장 가격으로 풀려 일본·인도·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우방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선트 장관은 앞서 제재를 유예한 러시아 해상 원유 1억3000만 배럴을 합치면 총 2억6000만 배럴 규모를 시장에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하루 1000만~1400만 배럴의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약 3주간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물량이다. 미 재무부의 원유 선물 시장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금융 시장이 아닌 실물 시장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산 원유에 이어 이란산 원유까지 제재 해제를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과 이란이 18일 세계 최대 가스전에 공격을 주고받은 뒤 국제 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일(현지시각) 브렌트유 선물 5월물 가격은 장중 한때 배럴당 119달러까지 올랐다가 108.65달러로 하락 마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수출 제한 카드도 배제하며 시장 불확실성 차단에 나섰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 장관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라며 “석유 및 가스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된 ‘수출 제한 카드’ 가능성을 공식 부인한 것으로, 공급 확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바이든 행정부가 유가 안정을 위해 수출 제한을 검토했지만, 업계 반발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반면 러시아는 상황에 따라 수출 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날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에너지부 관계자는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일부 연료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공급 확대 기조와 상충하는 움직임이다.

 

베선트 장관은 전략비축유(SPR) 추가 방출 가능성도 열어뒀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공조해 역대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비축유 방출을 지난주 승인했으며, 미국 자체적으로도 1억7200만 배럴 방출을 결정한 바 있다. 그는 “우리는 쓸 수 있는 수단이 많다”며 “가격을 낮추기 위해 미국이 단독으로 추가 전략비축유 방출에 나설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실제 추가 방출에는 제약이 적지 않다. 현재 방출 계획이 완료될 경우 전략비축유는 1982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며, 법적 하한선과 안전 기준에 근접하게 된다. 저장시설 구조상 잦은 인출이 어려운 물리적 한계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에너지부는 “모든 옵션을 검토 중이지만 현재로써는 추가 방출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 김원철 기자 >

 

미 재무 “이란산 원유 제재 풀어 유가 억제…중국행 물량 우방국으로”

앤디 김 상원의원 “미 가정 돈 빼앗아, 푸틴과 이란 정권 주머니 채워, 완전한 난장판”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지난 1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파리/AP 연합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유가 급등을 막기 위해 해상에 대기 중인 이란산 원유 약 1억4000만 배럴에 대한 제재를 며칠 내로 유예할 수 있다고 19일(현지시각)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이날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출연해 “본질적으로 이란산 원유를 이용해 이란을 견제하면서 향후 10~14일간 유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재로 9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중국에 팔리던 이 물량이, 제재 해제와 함께 시장 가격으로 풀려 일본·인도·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우방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선트 장관은 앞서 제재를 유예한 러시아 해상 원유 1억 3000만 배럴을 합치면 총 2억 6000만 배럴 규모를 시장에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하루 1000만~1400만 배럴의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약 3주간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물량이다. 미 재무부의 원유 선물 시장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금융 시장이 아닌 실물 시장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조치를 두고, 역설적으로 적국인 이란의 수익을 극대화해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동안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 묶여 원유 물량의 90% 이상을 중국에 헐값으로 넘겨야 했던 이란이, 제재 해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제값 받고 원유를 팔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 앤디 김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 엑스에 “트럼프 행정부가 더 높은 가스비와 식료품비로 고통받는 미국 가정의 돈을 빼앗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이란 정권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다”며 “완전한 난장판”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미 재무부 계획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중국으로 향하던 이란 원유를 더 넓은 글로벌 시장으로 돌리면 충분한 공급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레버리지(영향력)를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이번 조치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제재 해제가 어떻게 작동할지, 이란이 어떻게 대금을 수령할지, 어떤 자산이 동결 해제될지 불분명하다”며 원유 판매 대금이 실제 이란에 귀속될지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베선트 장관은 전략비축유(SPR) 추가 방출 가능성도 열어뒀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공조해 역대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비축유 방출을 지난주 승인했으며, 미국 자체적으로도 1억 7200만 배럴 방출을 결정한 바 있다. 그는 “우리는 쓸 수 있는 수단이 많다”며 “가격을 낮추기 위해 미국이 단독으로 추가 전략비축유 방출에 나설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현재 진행 중인 1억 7200만 배럴 방출 계획이 완료되면 미국의 전략비축유가 1982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적으로 비긴급 방출이 금지되는 하한선(2억 5240만 배럴)과 미 회계감사원(GAO)이 심각한 비상사태가 아닐 경우 방출하지 말 것을 권고한 마지노선(2억 5000만 배럴) 문제로 인해 대규모 추가 방출은 법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물리적·구조적 한계도 크다.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에 위치한 60개의 지하 소금 동굴 형태의 저장 시설은 5회의 전면 방출 및 재충전만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잦은 인출 시 동굴벽이 녹아내려 붕괴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여러 한계와 우려를 반영하듯, 비축유 실무를 총괄하는 미 에너지부(DOE)의 벤 디트데리히 대변인은 베선트 장관의 인터뷰 직후 성명을 내고 “모든 옵션을 고려하고 있으나, 현재로써는 추가적인 비축유 방출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 김원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