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정 전체 재구성 수준의 개혁 해야
개헌·극단주의 감시·검찰개혁 완수 필요
플랫폼 권력과 인지전 세력 민주적 통제도
민주공화정 지키는 마지막 힘은 시민에게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제도의 시간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된 적이 없었다. 시민들은 무너질 때마다거리로 나와 민주공화정을 다시 붙들어 세워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막연한 위기의식이 아닙니다. 민주공화정을 실제로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입니다. 그리고 그 개혁은 단순한 정책 조정 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헌법과 사법, 검찰과 선거제도, 플랫폼과 시민교육까지 민주공화정 전체를 다시 재구성하는 수준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공화정의 자기방어 원리를 제도화하는 일입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선거를 반복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민주공화정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을 때만 지속될 수 있는 정치질서입니다.

 

12·3 내란은 바로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일회성 정치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 내부에 극우와 검찰권력, 혐오정치와 역사왜곡, 플랫폼 인지전이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를 보여준 경고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독재를 무너뜨렸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정부를 반복해서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했던 권력구조와 극우생태계, 검찰권력과 혐오정치, 역사왜곡과 승자독식 정치구조는 충분히 개혁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극우는 반복해서 부활했고, 마침내 윤석열 내란이라는 위험한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민주공화정이 더 이상 무기력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본격적으로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결국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을 어떻게 다시 공동체의 삶과 공적 질서 속에 뿌리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헌법 전문 개헌 완수와 민주공화정 정신의 재정립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선거와 정권교체 중심으로 이해해온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민주공화정은 단순한 선거체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민주권과 권력분립, 공공성과 책임정치, 차별과 혐오의 배제, 공동체 윤리와 시민적 연대를 포함하는 살아있는 질서입니다. 특히 이제는 “5·18광주민주항쟁 정신 계승”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개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재명대통령의 천명, 국회의장의 관철 의지, 그리고 민주진영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지난 5월 국회에 이러한 내용이 상정되었으나, 국민의힘은 이를 이미 거부한 바 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재추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관철해야 합니다.

 

20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차량 시위를 재현하는 ‘민주기사의 날’행사가 열리고 있다. 2026.5.20. 연합
 

5·18광주민주항쟁은 단지 과거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아닙니다. 국가폭력과 군사독재에 맞서 시민이 민주공화정을 지켜낸 대한민국 헌정사의 결정적 기준점입니다. 독일이 나치 범죄와 파시즘에 대한 반성을 헌법질서 안에 제도화했듯이, 한국 역시 민주주의 수호의 역사를 헌법정신 안에 분명히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헌법정신은 실정법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광주민주항쟁 왜곡과 식민지근대화론, 부정선거 음모론과 내란미화 선동은 단순한 의견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공화정 자체를 허무는 정치행위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민주공화정의 핵심 가치와 헌정질서를 조직적으로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실질적 대응체계를 법률 차원에서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단순한 역사논쟁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공화정의 역사적 정통성과 헌정질서를 지키는 문제입니다.민주공화정은 무기력한 방관 체제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방어할 헌법적 의지와 제도적 장치를 가질 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둘째, 국회 산하의 극단주의·헌정질서 수호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윤석열 내란 사태는 한국 극우세력이 더 이상 인터넷 하위문화 수준이 아니라 실제 헌정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단순한 국내 정치집단이 아닙니다. 미국 MAGA 세력과의 국제적 연결, 극우 개신교 네트워크, 온라인 플랫폼 기반 조직력, 역사왜곡과 혐오정치, 음모론 선동체계를 동시에 갖춘 복합적 정치생태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이러한 극단주의 움직임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할 제도적 장치를 거의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이미 나치 경험 이후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스스로를 방어하는 민주주의(wehrhafte Demokratie)’ 원칙 아래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을 중심으로 반헌법적 극단주의 세력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한국 현실에 맞는 민주공화정 방어체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점은 권력남용 방지입니다. 과거 정보기관들이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시민사회를 탄압했던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국회 산하 독립기구 형태의 가칭 ‘민주공화정수호위원회’ 설치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정부가 직접 통제할 경우 정권에 따라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운영 역시 특정 정권이나 특정 정당 중심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학계, 법조계, 언론계, 인권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그 역할 역시 단순한 처벌기관이 아니라 극단주의 네트워크와 혐오범죄, 조직적 허위정보 유통과 내란선동 흐름 등을 상시적으로 분석하고 공론화하는 역할에 가까워야 합니다. 결국 이것 역시 민주공화정의 공론장과 공동체 신뢰를 지키기 위한 장치입니다. 민주공화정은 서로를 동등한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할 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매듭짓고 완수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와 12·3 내란 사태는 한국 사회가 검찰권력과 사법권력의 정치화를 얼마나 위험하게 방치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검찰은 오랜 시간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독점하며 사실상 초헌법적 권력처럼 기능해왔습니다. 검찰권력의 정치개입과 선택적 수사 논란은 반복되어왔지만 근본적 개혁은 번번이 지체되었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시민들은 촛불혁명을 통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은 느렸고, 기득권 권력구조는 충분히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검찰권력은 다시 정치권력으로 재조직되었고, 결국 윤석열 정부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역사는 이미 충분히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민주공화정을 위협했던 권력구조를 충분히 개혁하지 못하면 그것은 다시 정치권력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 분리는 이제 단순한 조직개편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독점을 차단하고 민주공화정을 방어하기 위한 핵심 개혁과제가 되었습니다.

 

사법개혁 역시 본격 추진되고 완수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시민들이 사법 불신을 강하게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법원이 시민의 상식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법관 증원과 국민참여재판 확대, 배심제 강화 등을 통해 사법권력의 폐쇄성과 엘리트주의를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법은 소수 법률 엘리트의 독점영역이 아니라 시민주권 위에서 작동해야 하는 민주공화정의 핵심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12·3 내란 주범자들에 대한 법원의 연이은 솜방망이 판결은 사실상 민주공화정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법권력이 극단주의 정치의 안전판처럼 기능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핵심은 권력기관을 공동체의 민주적 통제 아래 다시 돌려놓는 데 있습니다.

 

넷째, 플랫폼 권력과 인지전 세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극우정치는 더 이상 전통적 정당조직 중심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유튜브와 SNS,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 정치와 결합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혐오와 조롱, 음모론과 허위정보는 클릭 수와 광고수익 구조 안에서 빠르게 확산됩니다.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부정선거 음모론과 혐중 선동 콘텐츠는 플랫폼 알고리즘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최근에는 AI 기반 조작영상과 자동화된 허위정보 유통까지 확산되며 인지전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조롱과 혐오의 밈 정치는 단순한 인터넷 놀이문화 수준을 넘어 민주공화정의 공론장 자체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은 더 이상 단순한 기술기업이 아닙니다. 이미 민주주의의 정보질서와 사회적 감정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정치적 권력에 가까워졌습니다.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6.9. 연합
 

특히 플랫폼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체류시간과 반응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극적 혐오 콘텐츠와 음모론, 극단적 감정동원 콘텐츠가 더욱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혐오와 분노가 곧 수익이 되는 구조 속에서 공론장은 점점 감정시장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특히 인지전의 핵심은 사람들의 사고체계와 감정구조 자체를 흔드는 데 있습니다. 과거 독재가 국가폭력과 검열에 의존했다면, 오늘날 극우정치는 알고리즘과 감정동원, 혐오와 조롱을 통해 일상 속으로 침투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공론장은 무너집니다. 사람들은 상대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민주공화정의 핵심 기반인 사회적 신뢰 역시 함께 붕괴하게 됩니다.

 

따라서 허위조작정보 대응체계 구축과 알고리즘 투명성 강화, 혐오선동 알고리즘 규제, 정치 콘텐츠 투명성 강화와 극단주의 콘텐츠 수익구조 제한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공화정의 핵심 가치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민주공화정을 파괴할 권리까지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플랫폼 개혁은 민주공화정의 공론장을 복원하는 문제입니다.

 

다섯째, 승자독식 정치구조를 넘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앞선 칼럼에서도 지적하였듯이 현재 한국 정치는 지나치게 승자독식 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그 결과 정치는 협력과 숙의보다 적대와 진영동원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선거는 시민의 다양한 의사를 조정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 진영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전쟁처럼 변질되었습니다. 승자독식 구조가 강할수록 정치세력들은 중도층 설득보다 강성 지지층 동원과 혐오정치에 더욱 의존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극단주의 정치가 성장하기 쉽습니다. 특히 지금 한국 정치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모두 결선투표제가 부재합니다. 그 결과 전체 유권자의 폭넓은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도 강력한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선거가 결선투표제를 운영하는 이유 역시 극단주의 정치가 단순 지지층 결집만으로 권력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결선투표제는 단순한 당선 절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극단주의 정치가 반드시 폭넓은 시민적 동의를 거치도록 만드는 민주공화정의 안전장치에 가깝습니다.

 

비례대표 확대 역시 중요합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다수의 승리를 정당화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다양한 사회세력과 공동체의 의사를 제도 안으로 포괄하고 조정하며 공존시키는 체제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구조에서는 수많은 표가 사표로 버려지고 있으며, 다양한 정치세력과 사회의제가 제도정치 안으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정치 불신은 심화되고, 양당 적대정치는 더욱 극단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선투표제와 비례대표 확대는 단순한 기술적 선거제도 개편이 아닙니다. 다양한 시민의 의사를 민주공화정 안으로 다시 포괄하기 위한 구조개혁에 가깝습니다. 결국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민주공화정을 승자독식 체제가 아니라 시민공존 체제로 재구성하는 데 있습니다.

 

여섯째, 정당민주주의 확대와 시민참여 강화가 필요합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선거만 치르는 체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감시하며 토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그러나 한국 정당정치는 여전히 계파주의와 공천권 중심 정치, 특정 정치인 중심 구조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의 위기는 특정 정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정치 전체가 시민주권보다 계파와 권력관리 중심으로 움직여온 구조적 한계를 함께 드러내고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선거에서 승리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주권자의 의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실천의 문제입니다. 당원민주주의 확대와 정책 중심 정당체제 강화, 시민참여 확대 없이 민주공화정은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기 어렵습니다.

 

권력의지는 정치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정에 대한 철학적 확신 없이 권력의지만 앞설 경우 정당은 쉽게 시민주권의 조직이 아니라 권력집단의 연합체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권력 자체보다 권력이 어떤 가치와 철학 위에서 행사되는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체제입니다. 민주공화정은 특정 정치인의 권력을 위한 체제가 아닙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국가의 주권자로 참여하는 질서입니다.

 

일곱째, 차별금지법과 시민교육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극우정치는 언제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통해 성장합니다. 혐오가 일상화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토대 역시 흔들리게 됩니다. 민주공화정은 시민의 동등성을 전제로 작동합니다. 차별과 혐오가 일상화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반 역시 함께 무너지게 됩니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한 소수자 보호 차원이 아닙니다. 성별과 종교, 성적 정체성 등 모든 인권 영역에서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위반 행위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기준을 세우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국제규범이고, 세계인권선언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2025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맞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1.27. 연합
 

로마교황청역시 차별금지법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습니다. 개별 인권문제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통해 극우세력이 차별과 혐오를 정치동원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구조 자체를 제도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개혁 역시 중요합니다. 민주공화정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시민교육과 역사교육, 공론장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없이 민주주의는 쉽게 혐오와 선동에 흔들리게 됩니다. 교사들의 정당선택권 역시 보다 폭넓게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교사의 수업내용을 사사건건 시비 걸고 교사 개인의 인격을 무너뜨리는 극우적 압박과 위협으로부터 교사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인지전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스스로 허위정보와 선동을 비판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극우는 언제나 사람들의 불안과 피로, 좌절과 분노를 먹고 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공화정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법 몇 개를 만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혐오와 조롱,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공존과 연대, 책임과 공공성을 다시 회복하는 일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공화정을 다시 공동체의 삶 속에 뿌리내리는 일입니다. 민주공화정은 참여와 감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적 개혁 위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다시 시민의 손으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극우와 혐오의 시대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다시 시민의 질서 위에 세우는 길입니다.

 

 

■ 민주공화정은 왜 끊임없이 시민을 요구하는가

 

대한민국 시민들은 민주공화정을 지켜온 ‘극한직업’의 수행자였습니다.

돌이켜보면 한국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누려온 역사라기보다 무너질 때마다 시민들이 다시 몸으로 붙들어 세운 역사에 가까웠습니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항쟁과 6월항쟁, 촛불혁명과 윤석열 내란 빛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시민들은 수없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완성된 체제가 아니다. 시민의 참여와 감시, 공론과 연대를 통해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 공동체의 질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언제나 고단하고 치열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역사를 만들어낸 위대한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사적으로도 드물게 시민의 힘으로 반복된 탄핵과 정권교체를 비교적 평화롭게 수행하며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혀온 나라입니다. 독재와 군사권력, 검찰권력과 내란 위기를 시민의 힘으로 돌파하며 민주공화정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시켜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적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민들이 오랜 시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축적해온 삶의 경험이자 사회적 진화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번 7부작에서 제가 계속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인류가 오랜 시간 공동체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해온 철학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표현은 단순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표현은 공동체의 질서를 구성하는 힘입니다. 어떤 표현은 사람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살립니다. 그러나 어떤 표현은 혐오와 폭력을 퍼뜨리며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권리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소수가 권력과 질서를 독점하려는 욕망이 존재해왔습니다. 왕정의 절대권력과 자본독점, 전체주의와 파시즘은 그 반복된 형태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 역시 인간사회가 끊임없이 반복해온 자연스러운 권력 본능의 일부인지도 모릅니다. 약육강식의 질서는 자연세계에서는 낯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류는 오랜 사회적 진화 과정을 거치며 경쟁과 지배만으로는 공동체를 지속시킬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확인해왔습니다. 협력과 공존, 공론과 숙의, 책임과 연대가 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생존과 발전에 더욱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온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 경험이 정치제도로 발전해온 결과가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그리고 민주공화정 체제입니다. 반대로 힘 있는 소수가 모든 권력과 부, 질서를 독점하려는 성향 또한 끊임없이 진화해왔습니다. 오늘날 그것은 극우적 세계관과 혐오정치, 권위주의와 배제의 정치 형태로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민주공화정과 극우적 세계관은 인간과 공동체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민주공화정은 느리지만 공존을 선택합니다. 토론과 숙의, 절차와 합의를 통해 함께 살아갈 질서를 만들려고 합니다. 반면 극우적 세계관은 빠른 결정과 강한 지배를 선호합니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승자와 강자가 정하는 질서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이성보다 감정동원을 더욱 중시합니다. 혐오와 차별, 조롱과 배제는 바로 그 감정정치의 핵심 도구가 됩니다. 오늘날 플랫폼 알고리즘은 혐오와 조롱, 분노와 배제를 놀이처럼 소비시키고 증폭시키는 거대한 장치가 되었습니다. 조롱은 밈이 되고, 혐오는 콘텐츠가 되며, 거짓은 클릭 수와 광고수익 속에서 빠르게 확산됩니다. 그 결과 공동체의 신뢰와 공론장은 조금씩 무너져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함께 살아갈 시민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인류는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세계관과 지배와 독점을 추구하는 세계관 사이의 충돌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혐오와 배제, 조롱과 지배의 질서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더디고 불완전하더라도 공존과 숙의, 시민적 존엄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개혁 과제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실현해나가느냐에 따라 그 선택의 방향 역시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이미 여러 차례 그것을 증명해왔습니다. 결국 민주공화정을 지키는 마지막 힘은 언제나 시민에게서 나옵니다.

 

민주공화정은 헌법 속 문장이 아니라 시민이 매일의 삶 속에서 끝없이 지켜내야 하는 공동체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 이병권 인문연구가 >

 
 

영 16세 미만 SNS 금지 "아이들 중독 막아야"vs"실효성 없는 통제" 갑론을박


휴대전화 중독 [연합]

 

영국이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SNS) 사용을 막는 법안 추진에 나서자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한국도 도입해야 한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막아도 우회해서 쓸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 세계는 지금 '청소년 SNS 금지' 열풍…한국도 법안 발의

 

16일 여러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영국 정부가 15일(현지시간) 'SNS는 어린이들을 중독시키도록 설계됐다'며 청소년 SNS 금지법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공유됐다.

 

금지 대상에는 엑스(X·옛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스냅챗, 유튜브 등이 포함된다. 다만 왓츠앱과 같은 메시지 앱은 제외되고 유튜브 키즈, 구글 클래스룸 등 일부 서비스에 대해서도 예외가 적용된다.

 

세계 각국에서도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제한하는 입법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호주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을 금지했다. 이후 캐나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도 유사한 법안을 도입하거나 연령 제한 정책을 발표했다.

프랑스, 그리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페인도 관련 법안 마련을 검토 중이다.

 

한국내에서도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제한하거나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 5건이 국회에 계류돼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과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은 지난 3월 미성년자 계정의 알고리즘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개정법을 각각 발의했다.

 

앞서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도 2024년 7월 미성년자의 SNS 이용 시 부모 동의를 받지 않을 경우 알고리즘 기반 게시물 알림을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청소년이 스마트폰과 SNS에 과도하게 몰입할 경우 판단력과 자기 통제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 "사이버 불링 온상"vs"친구들과 소외감"…찬반 '팽팽'

 

그동안 국내에서는 SNS를 통해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확산한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 숨진 병사들의 영상이 별다른 제한 없이 확산했고, 전자담배나 마약 등 유해 물질의 유통 경로로 활용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기 파주의 중학교 교사 장모(34) 씨는 "학교 수업 전 휴대전화를 걷어도 공기계나 세컨드 폰을 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며 "쉬는 시간이나 하교 후 자기들끼리 유해 콘텐츠를 공유해도 교사나 가정에서는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외국도 저런 규제를 하는 것을 보면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우리도 해야 한다" 등 의견이 나오고 있다.

 

SNS가 학교폭력과 사이버 불링(괴롭힘)의 온상지가 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친구를 조롱하는 숏폼(짧은 영상)을 제작하거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초대해 나가지 못하게 하며 괴롭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부 전문가도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SNS에 과도하게 몰입할 경우 역기능이 더 많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리진 전북대 아동학과 교수는 "SNS가 자기표현과 소통을 위한 수단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발달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은 성인만큼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학교폭력이나 언어폭력 같은 문제들을 막기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SNS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 중학생 이모(14) 군은 "SNS를 안 하면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지고 소외되는 기분"이라며 "하루에 몇 시간 정도만 하면 되는데 아예 못하게 제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SNS 제한이라는 규제 조처가 도입돼도 우회 방법을 찾아 SNS를 하는 학생들이 나올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부모의 명의를 빌리거나 ID와 비밀번호를 사고파는 방식 등으로 청소년도 SNS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SNS 이용이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을 알지만 이를 제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 중학생 오모(15) 양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다이어트, 메이크업 등만 뜨고 친구들과 '릴스'나 '틱톡'을 찍으려 밥을 굶는 경우도 많다"면서도 "이미 SNS 사용이 생활이 됐는데 이를 완전히 막을 수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일부 누리꾼도 "폐지된 셧다운제나 게임 중독 질병 코드 등록 논란과 다를 바 없다"라거나 "이렇게 규제해도 결국은 다 SNS 하게 된다" 등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내놨다.                                                                          < 정윤주 기자 > 

매하기
스마트폰 과의존 (PG)

 

캐나다 범민주원탁회의  6.15 남북공동선언 26주년 맞이 성명

 

“ 남과 북은 하루빨리 동족의 양심으로 돌아가 겨레의 간절한 염원을 헤아려 화해 화답해야 한다.  특히 북의 지도자들에게 호소한다아무리 눈을 돌려도 피와 물을 속일 수 없는 현실은 진실이다대결과 적대의 피해는 동족과 동포들 외에 누가 부담하는가분단을 즐기는 주변 강국들 외에 누가 웃는가

핵과 무력의 철벽이 아니라평화와 번영의 공동체 보호막이 현명하지 않은가남의 민주정부와 국민들의 진정성을 받아들여 어서 속히 대화의 길에 나서라.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26주년이다. 남과 북의 하나됨을 추구하고 선언했던 26년 전의 꿈과 비전은 그저 일장춘몽으로 묻혀야 하는가.

 

살얼음 걷듯 조심스레 가꿔온 남북간의 공존과 신뢰의 꽃을 이명박·박근혜가 비틀고 윤석열이 짓밟아 버린 뒤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북은 아예 철벽을 세우고 남과 북의 동족개념을 폐기하여 완전히 다른 나라라며 대한민국을 제1의 적국이라고 적의마저 강고히 하고 있다.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가 다양한 화해의 신호를 보내지만, 저들은 냉담과 조소로 반응할 뿐이다. 핵무장과 러시아·중국 밀착을 강화하며 뒷배삼아 완고한 독주로 기운 상황에서, 언제쯤 남북 간에 다시 훈풍이 불지, 손을 맞잡게 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민족의 현실이 정말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분단 80년의 장벽이 아무리 높아도, 등을 돌려 부정하려 해도, 남과 북은 말이 같고, 얼굴이 같고, 5천년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같은 민족이며, 피를 나눈 겨레요 혈족이다. 언제일지 모르나 하나되고 통일되어야 할 대상이다. 북녘의 동포들은 이를 모를까. 애써 외면해도 결국은 하나일 수 밖에 없다는숙명의 양심이 북의 지도자들 내심에는 없겠는가.

 

남과 북은 하루빨리 동족의 양심으로 돌아가 겨레의 간절한 염원을 헤아려 화해 화답해야 한다.

특히 북의 지도자들에게 호소한다. 아무리 눈을 돌려도 피와 물을 속일 수 없는 현실은 진실이다. 대결과 적대의 피해는 동족과 동포들 외에 누가 부담하는가. 분단을 즐기는 주변 강국들 외에 누가 웃는가. 핵과 무력의 철벽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 보호막이 현명하지 않은가. 남의 민주정부와 국민들의 진정성을 받아들여 어서 속히 대화의 길에 나서라.

 

우리는 하루빨리 남북간 소통과 신뢰를 되돌려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의 길을 열어 가기를 염원하며 아래와 같이 남과 북의 당국과 지도자들에게 촉구한다.

 

1. 6.15 남북공동선언은 평화롭게 하나 될 것을 기약한 화해와 공존공영의 원리와 원칙을 제시했다.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 정신과 약속을 재확인하여 신뢰회복과 교류협력 재개를 위한 소통과 대화 채널을 당장 복구하라.

 

1. 북측은 6.15 공동선언에 입각하여 9.19 군사합의 효력을 원상 회복시키려는 남측 정부에 호응하여 조속히 적대행위 중단과 평화체제 구축에 나섬은 물론, 그동안 다섯 차례의 정상 간 만남에서 합의한 사항들을 재확인, 복원과 이행에 적극 나서라.

 

1. 남과 북은 주변 관련국 및 국제사회와의 협력에 힘쓰고 적극 추동해 나가되, 일부 패권주의와 자국 이기 및 독선적 영웅주의에 경도된 외세 의존을 경계, 탈피하고, 민족 내부 하나됨의 열망을 중시하며 최대한 자주적 역량으로 통일을 향한 해법과 민족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하여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실현에 합심 매진하라.

                                                                                                                2026년 6월15일    

           캐나다 범민원탁회의   Korean Canadian Democratic Community Round-table Conference

 

단순한 기념 넘어 현재를 점검하는 작업이기도

박종철, 이한열, 직선제 그리고 인간다운 삶
‘시민’이라는 자각은 이때 구체적인 현실로

 

명동성당과 서울광장이 이끌어낸 6·29선언
변화의 출발점은 여전히 시민의 인식과 행동

 

참여의 폭 넓히며, 공론장 질을 높이는 과제
기억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그 여름은 살아나

 

1987년 6월 26일 부산에서 열린 국민평화대행진에 참가한 한 시민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달리고 있다.(나무위키)
 

1987년 초여름,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경계에 서 있었다. 오랜 억압 속에서 누적된 긴장이 한계에 도달했고, 마침내 거리 위에서 폭발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그보다 더 큰 것은 인간다운 삶을 향한 열망이었다. 이 흐름은 특정 집단의 행동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의 순간이었다.

 

그 불씨를 드러낸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권력은 사건의 진실을 축소하고 왜곡하려 했지만, 그러한 시도는 오히려 체제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결과를 낳았다. 한 개인의 죽음은 더 이상 개인의 비극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확장되었고, 시민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거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학생들이 먼저 움직였고, 직장인과 노동자, 종교인과 상인들이 뒤를 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이 공통의 이름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시민’이라는 자각은 이때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다.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주체로서의 의식이 형성된 것이다.

 

이 흐름의 분수령에는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이 놓여 있었다.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청년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내면을 흔들었다. 슬픔은 행동으로 이어졌고, 행동은 연대로 확장되었다. 개인의 희생은 공동체의 결단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으며, 거리의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서울광장과 소공로, 서소문로 등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나무위키)
 

명동성당은 그 시기 중요한 공간으로 기능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몸을 피하고 숨을 고르며 다시 나설 힘을 얻던 장소였다. 이곳은 신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양심이 머무는 자리로 자리 잡았다.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에,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켜주는 울타리 역할을 수행했다.

 

거리에서 형성된 힘은 점차 거대한 흐름으로 성장했다. 각자의 목소리는 하나의 요구로 모였고, 그 요구는 정치적 변화를 압박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권력은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으며, 결국 양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6·29 선언이었다. 대통령 직선제 수용과 기본권 확대 약속은 분명 중요한 전환점이었지만, 그것은 완결이 아니라 새로운 국면의 출발이었다.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핵심은 민주주의가 단일 사건으로 완성되는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도는 마련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이후의 시간 속에서 결정된다.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이러한 과정을 압축적으로 경험해 왔다. 정기적인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 다양한 정치 세력의 등장, 표현의 자유 확대 등은 외형적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나 외형의 안정이 곧 내용의 충실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권력은 형태를 바꾸며 영향력을 유지하기도 한다. 노골적인 강압 대신 행정, 자본, 정보가 결합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새로운 지배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문제의식이 흐려지기 쉽고, 시민의 참여 역시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일상 속에서 공공의 문제에 관여하는 경험이 축소될 경우,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실질은 약화될 수 있다.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1987년 6월 9일 학교 정문 앞에서 박종철 변사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자 친구가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후유증에 시달리던 이한열은 다음달 5일 세상을 떠났다. (나무위키)

 

경제적 조건 역시 중요한 변수다. 삶의 격차가 커질수록 정치적 권리의 실질적 행사 능력은 불균등해진다. 생존의 부담이 클수록 공적 참여는 뒤로 밀려나고, 그 결과 일부의 목소리만이 공론장을 주도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다시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순환으로 이어진다.

 

정보 환경의 변화 또한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과거에는 검열이 문제였다면, 오늘날에는 과잉과 왜곡이 문제로 등장한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방대한 정보가 유통되지만,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감정적 반응이 이성적 판단을 압도하거나 특정 시각이 반복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은 공론장의 균형을 흔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출발점은 여전히 시민의 인식과 행동에 있다. 1987년의 경험은 개인의 선택이 사회를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공적인 행동으로 연결할 때 제도는 살아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감각이 유지될 때 민주주의는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작동한다.

 

서울광장과 같은 공간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집회와 토론, 문화적 표현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 시민이 공공의 문제를 공유하고 확장하는 장이 되어 왔다. 과거와 같은 긴박함은 아닐지라도, 의견을 모으고 사회적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초기 수사 결과를 전한 1987년 1월 19일 동아일보 1면. (나무위키)

 

남아 있는 과제는 분명하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참여의 폭을 넓히며, 공론장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 언론, 시민사회 전반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정 집단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주체가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나눌 때 균형 있는 발전이 가능해진다.

 

이 시기를 돌아보는 일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현재를 점검하는 작업이다. 과거의 경험은 완결된 답을 제공하지 않지만, 방향을 설정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이 가능했는지를 성찰할 때 새로운 선택의 근거가 마련된다.

 

결국 남는 것은 공동체의 방향에 대한 물음이다.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특정 시기에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계속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서로의 차이를 어떻게 조율하느냐다.

 

1987년의 여름은 하나의 출발점이었다. 그 이후의 시간은 그 출발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속된 과정이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역시 그 흐름 위에 놓여 있다. 과거의 경험을 단절된 기억으로 남겨 둘 것인지, 현재의 선택으로 이어갈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기억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여름은 현재 속에서 살아 있게 된다.

       < 박철 : 샘터교회 원로목사. 시인. 부산예수살기 대표.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

 

6월 항쟁,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운김'

 

여럿이 함께할 때 우러나오는 힘과 따뜻한 분위기
[오늘의 토박이말]   운김

 

[오늘의 토박이말] 운김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입니다.

그림 속, 푸른 하늘 위로 평화의 흰 비둘기들이 날아오르는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빈틈없이 모여 있습니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한목소리로 무언가를 외치는 이웃들의 얼굴에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한 굳센 다짐과 열정이 가득 배어 있네요. 그들 위로 '운김'이라는 글씨가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혹은 힘차게 피어나는 새싹처럼 단단하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습니다.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한마디씩 보탠 목소리가 광장 가득 퍼져나가며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내는 이 정경을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의 힘은 작을지라도 그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거대한 물결이 얼마나 위대하고 감동적인지 가만히 깨닫게 됩니다.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한데 모여 이루어지는 큰 힘 '운김'

 

온여름달 열흘(6월 10일)은 우리 역사에서 시민의 힘이 민주주의의 큰 물줄기를 바꾼 날인 '6·10 민주항쟁 기념일'입니다. 온나라 곳곳에서 그날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기념식과 학술행사, 사진전이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네요. 1987년 6월, 대통령을 내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는 권리와 참된 자유를 바라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던 평범한 이웃들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가 가슴 깊이 새겨볼 토박이말은 '운김'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말을 '남은 기운', '여럿이 한창 함께 일할 때에 우러나오는 힘', '사람들이 있는 곳의 따뜻한 기운', 그리고 '집안의 분위기나 기운'이라고 여러 가지로 깊이 있게 뜻풀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많은 사람의 마음이 모여 이루어지는 큰 힘'이라고 쉽게 풀이하고 싶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서로 운김에 쌓여 모를 척척 심었다"라거나 "사람 운김과 술기운으로 실상은 선선치도 않은 데다가"라는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속 문장처럼, 이 말에는 단순히 물리적인 힘을 넘어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질 때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에너지와 인간미 넘치는 온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외롭고 쓸쓸한 하루를 채워주는 우리들의 따뜻한 온기

 

1987년 6월의 눈부신 역사는 어느 위대한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이 먼저 용기 내어 외쳤고, 평범한 시민들이 그 곁을 함께 걸었으며, 노동자와 종교인,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샌 어르신들까지 기꺼이 뜻을 보태었습니다. 서로 다른 일터를 가지고 다르게 살아오던 사람들이었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단 하나의 마음으로 뭉친 것이지요. 혼자의 목소리는 촛불처럼 작고 가냘플지라도, 그 마음들이 모이고 포개어져 거대한 운김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단단한 벽을 허물고 민주주의를 향해 활짝 열린 길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삶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직장에서, 혹은 학교와 가정에서 혼자서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아 "어쩐지 집안의 운김은 전과 같지 않고 쓸쓸하였다"라는 이기영의 소설 '고향' 속 대목처럼 외로움과 막막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나 혼자의 노력으로는 세상의 거찬 벽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아 자존감이 쪼그라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혼자서 애쓰던 외로운 자리에 다정한 이웃과 가족이 손을 얹고 함께 발을 맞추기 시작할 때, 그곳에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고 따뜻한 운김이 피어납니다. 혼자서는 힘에 부쳐 쓰러질 것 같던 모내기도 이웃과 함께라면 즐거운 잔치가 되듯, 우리의 힘든 삶도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갈 때 비로소 든든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누리는 소중한 자유와 권리가 그날의 운김이 남긴 값진 열매인 것처럼, 오늘 내가 곁에 있는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웃음과 격려 한 자락도 내일의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운김이 될 것입니다.

 

[마음 나누기]

 

그림 속 광장에 가득 모여 서로의 손을 잡은 사람들처럼,  여러분의 나날 속에서 여러 사람과 마음을 모아 힘을 냈거나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운김) 덕분에 외로움을 이겨냈던 정겨운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웃들과 함께 동네를 청소하며 보람을 느꼈던 일"이나 "힘든 시기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토닥여주었던 일" 등 나만의 운김 이야기를 댓글로 소중하게 나누어 주세요. 여러분의 다정한 공감과 공유가 모여, 지친 이 세상을 한층 더 구순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거대한 운김이 됩니다.^^

 

[한 줄 생각]

 

"역사는 몇몇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운김이 모여 바꾸어 갑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운김

뜻: 여럿이 한창 함께 일할 때에 우러나오는 힘. 

보기: 이웃들이 품앗이로 힘을 보태주니 잔치 준비가 운김에 척척 끝났다.

 

                                                                                              < 이창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