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정 전체 재구성 수준의 개혁 해야
개헌·극단주의 감시·검찰개혁 완수 필요
플랫폼 권력과 인지전 세력 민주적 통제도
민주공화정 지키는 마지막 힘은 시민에게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제도의 시간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된 적이 없었다. 시민들은 무너질 때마다거리로 나와 민주공화정을 다시 붙들어 세워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막연한 위기의식이 아닙니다. 민주공화정을 실제로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입니다. 그리고 그 개혁은 단순한 정책 조정 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헌법과 사법, 검찰과 선거제도, 플랫폼과 시민교육까지 민주공화정 전체를 다시 재구성하는 수준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공화정의 자기방어 원리를 제도화하는 일입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선거를 반복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민주공화정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을 때만 지속될 수 있는 정치질서입니다.

 

12·3 내란은 바로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일회성 정치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 내부에 극우와 검찰권력, 혐오정치와 역사왜곡, 플랫폼 인지전이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를 보여준 경고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독재를 무너뜨렸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정부를 반복해서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했던 권력구조와 극우생태계, 검찰권력과 혐오정치, 역사왜곡과 승자독식 정치구조는 충분히 개혁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극우는 반복해서 부활했고, 마침내 윤석열 내란이라는 위험한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민주공화정이 더 이상 무기력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본격적으로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결국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을 어떻게 다시 공동체의 삶과 공적 질서 속에 뿌리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헌법 전문 개헌 완수와 민주공화정 정신의 재정립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선거와 정권교체 중심으로 이해해온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민주공화정은 단순한 선거체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민주권과 권력분립, 공공성과 책임정치, 차별과 혐오의 배제, 공동체 윤리와 시민적 연대를 포함하는 살아있는 질서입니다. 특히 이제는 “5·18광주민주항쟁 정신 계승”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개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재명대통령의 천명, 국회의장의 관철 의지, 그리고 민주진영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지난 5월 국회에 이러한 내용이 상정되었으나, 국민의힘은 이를 이미 거부한 바 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재추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관철해야 합니다.

 

20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차량 시위를 재현하는 ‘민주기사의 날’행사가 열리고 있다. 2026.5.20. 연합
 

5·18광주민주항쟁은 단지 과거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아닙니다. 국가폭력과 군사독재에 맞서 시민이 민주공화정을 지켜낸 대한민국 헌정사의 결정적 기준점입니다. 독일이 나치 범죄와 파시즘에 대한 반성을 헌법질서 안에 제도화했듯이, 한국 역시 민주주의 수호의 역사를 헌법정신 안에 분명히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헌법정신은 실정법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광주민주항쟁 왜곡과 식민지근대화론, 부정선거 음모론과 내란미화 선동은 단순한 의견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공화정 자체를 허무는 정치행위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민주공화정의 핵심 가치와 헌정질서를 조직적으로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실질적 대응체계를 법률 차원에서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단순한 역사논쟁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공화정의 역사적 정통성과 헌정질서를 지키는 문제입니다.민주공화정은 무기력한 방관 체제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방어할 헌법적 의지와 제도적 장치를 가질 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둘째, 국회 산하의 극단주의·헌정질서 수호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윤석열 내란 사태는 한국 극우세력이 더 이상 인터넷 하위문화 수준이 아니라 실제 헌정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단순한 국내 정치집단이 아닙니다. 미국 MAGA 세력과의 국제적 연결, 극우 개신교 네트워크, 온라인 플랫폼 기반 조직력, 역사왜곡과 혐오정치, 음모론 선동체계를 동시에 갖춘 복합적 정치생태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이러한 극단주의 움직임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할 제도적 장치를 거의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이미 나치 경험 이후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스스로를 방어하는 민주주의(wehrhafte Demokratie)’ 원칙 아래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을 중심으로 반헌법적 극단주의 세력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한국 현실에 맞는 민주공화정 방어체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점은 권력남용 방지입니다. 과거 정보기관들이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시민사회를 탄압했던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국회 산하 독립기구 형태의 가칭 ‘민주공화정수호위원회’ 설치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정부가 직접 통제할 경우 정권에 따라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운영 역시 특정 정권이나 특정 정당 중심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학계, 법조계, 언론계, 인권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그 역할 역시 단순한 처벌기관이 아니라 극단주의 네트워크와 혐오범죄, 조직적 허위정보 유통과 내란선동 흐름 등을 상시적으로 분석하고 공론화하는 역할에 가까워야 합니다. 결국 이것 역시 민주공화정의 공론장과 공동체 신뢰를 지키기 위한 장치입니다. 민주공화정은 서로를 동등한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할 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매듭짓고 완수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와 12·3 내란 사태는 한국 사회가 검찰권력과 사법권력의 정치화를 얼마나 위험하게 방치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검찰은 오랜 시간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독점하며 사실상 초헌법적 권력처럼 기능해왔습니다. 검찰권력의 정치개입과 선택적 수사 논란은 반복되어왔지만 근본적 개혁은 번번이 지체되었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시민들은 촛불혁명을 통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은 느렸고, 기득권 권력구조는 충분히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검찰권력은 다시 정치권력으로 재조직되었고, 결국 윤석열 정부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역사는 이미 충분히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민주공화정을 위협했던 권력구조를 충분히 개혁하지 못하면 그것은 다시 정치권력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 분리는 이제 단순한 조직개편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독점을 차단하고 민주공화정을 방어하기 위한 핵심 개혁과제가 되었습니다.

 

사법개혁 역시 본격 추진되고 완수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시민들이 사법 불신을 강하게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법원이 시민의 상식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법관 증원과 국민참여재판 확대, 배심제 강화 등을 통해 사법권력의 폐쇄성과 엘리트주의를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법은 소수 법률 엘리트의 독점영역이 아니라 시민주권 위에서 작동해야 하는 민주공화정의 핵심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12·3 내란 주범자들에 대한 법원의 연이은 솜방망이 판결은 사실상 민주공화정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법권력이 극단주의 정치의 안전판처럼 기능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핵심은 권력기관을 공동체의 민주적 통제 아래 다시 돌려놓는 데 있습니다.

 

넷째, 플랫폼 권력과 인지전 세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극우정치는 더 이상 전통적 정당조직 중심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유튜브와 SNS,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 정치와 결합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혐오와 조롱, 음모론과 허위정보는 클릭 수와 광고수익 구조 안에서 빠르게 확산됩니다.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부정선거 음모론과 혐중 선동 콘텐츠는 플랫폼 알고리즘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최근에는 AI 기반 조작영상과 자동화된 허위정보 유통까지 확산되며 인지전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조롱과 혐오의 밈 정치는 단순한 인터넷 놀이문화 수준을 넘어 민주공화정의 공론장 자체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은 더 이상 단순한 기술기업이 아닙니다. 이미 민주주의의 정보질서와 사회적 감정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정치적 권력에 가까워졌습니다.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6.9. 연합
 

특히 플랫폼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체류시간과 반응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극적 혐오 콘텐츠와 음모론, 극단적 감정동원 콘텐츠가 더욱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혐오와 분노가 곧 수익이 되는 구조 속에서 공론장은 점점 감정시장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특히 인지전의 핵심은 사람들의 사고체계와 감정구조 자체를 흔드는 데 있습니다. 과거 독재가 국가폭력과 검열에 의존했다면, 오늘날 극우정치는 알고리즘과 감정동원, 혐오와 조롱을 통해 일상 속으로 침투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공론장은 무너집니다. 사람들은 상대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민주공화정의 핵심 기반인 사회적 신뢰 역시 함께 붕괴하게 됩니다.

 

따라서 허위조작정보 대응체계 구축과 알고리즘 투명성 강화, 혐오선동 알고리즘 규제, 정치 콘텐츠 투명성 강화와 극단주의 콘텐츠 수익구조 제한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공화정의 핵심 가치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민주공화정을 파괴할 권리까지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플랫폼 개혁은 민주공화정의 공론장을 복원하는 문제입니다.

 

다섯째, 승자독식 정치구조를 넘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앞선 칼럼에서도 지적하였듯이 현재 한국 정치는 지나치게 승자독식 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그 결과 정치는 협력과 숙의보다 적대와 진영동원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선거는 시민의 다양한 의사를 조정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 진영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전쟁처럼 변질되었습니다. 승자독식 구조가 강할수록 정치세력들은 중도층 설득보다 강성 지지층 동원과 혐오정치에 더욱 의존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극단주의 정치가 성장하기 쉽습니다. 특히 지금 한국 정치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모두 결선투표제가 부재합니다. 그 결과 전체 유권자의 폭넓은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도 강력한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선거가 결선투표제를 운영하는 이유 역시 극단주의 정치가 단순 지지층 결집만으로 권력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결선투표제는 단순한 당선 절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극단주의 정치가 반드시 폭넓은 시민적 동의를 거치도록 만드는 민주공화정의 안전장치에 가깝습니다.

 

비례대표 확대 역시 중요합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다수의 승리를 정당화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다양한 사회세력과 공동체의 의사를 제도 안으로 포괄하고 조정하며 공존시키는 체제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구조에서는 수많은 표가 사표로 버려지고 있으며, 다양한 정치세력과 사회의제가 제도정치 안으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정치 불신은 심화되고, 양당 적대정치는 더욱 극단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선투표제와 비례대표 확대는 단순한 기술적 선거제도 개편이 아닙니다. 다양한 시민의 의사를 민주공화정 안으로 다시 포괄하기 위한 구조개혁에 가깝습니다. 결국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민주공화정을 승자독식 체제가 아니라 시민공존 체제로 재구성하는 데 있습니다.

 

여섯째, 정당민주주의 확대와 시민참여 강화가 필요합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선거만 치르는 체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감시하며 토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그러나 한국 정당정치는 여전히 계파주의와 공천권 중심 정치, 특정 정치인 중심 구조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의 위기는 특정 정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정치 전체가 시민주권보다 계파와 권력관리 중심으로 움직여온 구조적 한계를 함께 드러내고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선거에서 승리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주권자의 의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실천의 문제입니다. 당원민주주의 확대와 정책 중심 정당체제 강화, 시민참여 확대 없이 민주공화정은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기 어렵습니다.

 

권력의지는 정치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정에 대한 철학적 확신 없이 권력의지만 앞설 경우 정당은 쉽게 시민주권의 조직이 아니라 권력집단의 연합체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권력 자체보다 권력이 어떤 가치와 철학 위에서 행사되는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체제입니다. 민주공화정은 특정 정치인의 권력을 위한 체제가 아닙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국가의 주권자로 참여하는 질서입니다.

 

일곱째, 차별금지법과 시민교육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극우정치는 언제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통해 성장합니다. 혐오가 일상화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토대 역시 흔들리게 됩니다. 민주공화정은 시민의 동등성을 전제로 작동합니다. 차별과 혐오가 일상화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반 역시 함께 무너지게 됩니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한 소수자 보호 차원이 아닙니다. 성별과 종교, 성적 정체성 등 모든 인권 영역에서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위반 행위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기준을 세우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국제규범이고, 세계인권선언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2025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맞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1.27. 연합
 

로마교황청역시 차별금지법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습니다. 개별 인권문제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통해 극우세력이 차별과 혐오를 정치동원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구조 자체를 제도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개혁 역시 중요합니다. 민주공화정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시민교육과 역사교육, 공론장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없이 민주주의는 쉽게 혐오와 선동에 흔들리게 됩니다. 교사들의 정당선택권 역시 보다 폭넓게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교사의 수업내용을 사사건건 시비 걸고 교사 개인의 인격을 무너뜨리는 극우적 압박과 위협으로부터 교사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인지전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스스로 허위정보와 선동을 비판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극우는 언제나 사람들의 불안과 피로, 좌절과 분노를 먹고 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공화정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법 몇 개를 만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혐오와 조롱,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공존과 연대, 책임과 공공성을 다시 회복하는 일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공화정을 다시 공동체의 삶 속에 뿌리내리는 일입니다. 민주공화정은 참여와 감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적 개혁 위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다시 시민의 손으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극우와 혐오의 시대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다시 시민의 질서 위에 세우는 길입니다.

 

 

■ 민주공화정은 왜 끊임없이 시민을 요구하는가

 

대한민국 시민들은 민주공화정을 지켜온 ‘극한직업’의 수행자였습니다.

돌이켜보면 한국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누려온 역사라기보다 무너질 때마다 시민들이 다시 몸으로 붙들어 세운 역사에 가까웠습니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항쟁과 6월항쟁, 촛불혁명과 윤석열 내란 빛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시민들은 수없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완성된 체제가 아니다. 시민의 참여와 감시, 공론과 연대를 통해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 공동체의 질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언제나 고단하고 치열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역사를 만들어낸 위대한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사적으로도 드물게 시민의 힘으로 반복된 탄핵과 정권교체를 비교적 평화롭게 수행하며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혀온 나라입니다. 독재와 군사권력, 검찰권력과 내란 위기를 시민의 힘으로 돌파하며 민주공화정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시켜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적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민들이 오랜 시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축적해온 삶의 경험이자 사회적 진화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번 7부작에서 제가 계속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인류가 오랜 시간 공동체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해온 철학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표현은 단순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표현은 공동체의 질서를 구성하는 힘입니다. 어떤 표현은 사람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살립니다. 그러나 어떤 표현은 혐오와 폭력을 퍼뜨리며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권리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소수가 권력과 질서를 독점하려는 욕망이 존재해왔습니다. 왕정의 절대권력과 자본독점, 전체주의와 파시즘은 그 반복된 형태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 역시 인간사회가 끊임없이 반복해온 자연스러운 권력 본능의 일부인지도 모릅니다. 약육강식의 질서는 자연세계에서는 낯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류는 오랜 사회적 진화 과정을 거치며 경쟁과 지배만으로는 공동체를 지속시킬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확인해왔습니다. 협력과 공존, 공론과 숙의, 책임과 연대가 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생존과 발전에 더욱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온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 경험이 정치제도로 발전해온 결과가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그리고 민주공화정 체제입니다. 반대로 힘 있는 소수가 모든 권력과 부, 질서를 독점하려는 성향 또한 끊임없이 진화해왔습니다. 오늘날 그것은 극우적 세계관과 혐오정치, 권위주의와 배제의 정치 형태로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민주공화정과 극우적 세계관은 인간과 공동체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민주공화정은 느리지만 공존을 선택합니다. 토론과 숙의, 절차와 합의를 통해 함께 살아갈 질서를 만들려고 합니다. 반면 극우적 세계관은 빠른 결정과 강한 지배를 선호합니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승자와 강자가 정하는 질서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이성보다 감정동원을 더욱 중시합니다. 혐오와 차별, 조롱과 배제는 바로 그 감정정치의 핵심 도구가 됩니다. 오늘날 플랫폼 알고리즘은 혐오와 조롱, 분노와 배제를 놀이처럼 소비시키고 증폭시키는 거대한 장치가 되었습니다. 조롱은 밈이 되고, 혐오는 콘텐츠가 되며, 거짓은 클릭 수와 광고수익 속에서 빠르게 확산됩니다. 그 결과 공동체의 신뢰와 공론장은 조금씩 무너져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함께 살아갈 시민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인류는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세계관과 지배와 독점을 추구하는 세계관 사이의 충돌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혐오와 배제, 조롱과 지배의 질서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더디고 불완전하더라도 공존과 숙의, 시민적 존엄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개혁 과제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실현해나가느냐에 따라 그 선택의 방향 역시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이미 여러 차례 그것을 증명해왔습니다. 결국 민주공화정을 지키는 마지막 힘은 언제나 시민에게서 나옵니다.

 

민주공화정은 헌법 속 문장이 아니라 시민이 매일의 삶 속에서 끝없이 지켜내야 하는 공동체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 이병권 인문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