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명확히 소명, 국민 검증 통과해야" 강조
'모두의 대통령' '통합과 실용' 메시지 우선 방점

"민주당은 중도보수, 가짜 보수 몰아내야" 지론
국힘 존립 기반 무너뜨리려는 헤게모니 전략도

박원석 "극우 정당 가두고 정치 지형 재편하려"
장동혁, 실제 '윤 어게인' 노선 더 강화 방침 시사

같은 보수 정당도 "보수 굉장한 위기 초래" 비판
이준석 "이재명 자신감…보수 외연 확장 불가능"

정규재 "이러다 국힘엔 장동혁, 전한길만 남아"
민주 "이혜훈 역량 등 청문회 통해 철저히 검증"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들어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5.12.29. 연합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을 두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은 폭탄을 맞은 듯 아우성이고 진보 진영에서도 적지 않은 반발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정면 돌파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혜훈 후보자를 둘러싼 크게 두 가지 문제, 즉 12·3 비상계엄을 옹호했던 행보와, 확장재정보단 재정건전성을 강조해온 정책적 이력에 대해 이 대통령은 '본인의 명확한 단절 의사 표명' 및 '격렬한 토론을 통한 접점 만들기'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29일 이 후보자의 불법 계엄 옹호 등과 관련한 언론보도 등을 보고받고 "과거 용납할 수 없던 내란 등에 대한 발언에는 본인이 직접 좀 더 충분히 소명해야 하고, 그 부분에 있어 단절 의사를 좀 더 표명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며 "이 후보자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이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정부를 구성한다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일지언정 격렬한 토론을 통해서 견해 차이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그 과정 자체가 새롭고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어가는 지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지를 모아가는 과정에서 차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이 차이를 잘 조율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의견을 도출할 수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인사권이라는 게 지명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 지명을 통해 충분히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아야 하고 이 검증 과정에서 국민 검증도 통과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이 후보자가 제대로 소명해서 '국민 검증'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지명 철회'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어떻게 대처할지가 핵심이지만 이 후보자는 그에 앞서 30일 오전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대통령실 이전 작업이 마무리된 청와대 본관으로 첫 출근하고 있다. 2025.12.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
 

이 대통령이 진보 진영과 지지층 일각의 반대가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 출신 이 후보자를 발탁한 배경에는 '통합과 실용'이라는 인사 철학의 양대 축이 작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강유정 대변인도 "이혜훈 후보자는 통합의 메시지로 선택된 후보자가 맞다"고 부연했다.

 

'실용' 측면에서 대통령실은 "이혜훈 후보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KDI 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정책과 실무에 능통한 분이다. 경제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고, 재벌의 불공정거래 근절과 민생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면서 "다년간 의정 활동을 바탕으로 곧 출범하는 기획예산처가 국가 중장기 전략을 세심하게 수립해 미래 성장동력을 회복시킬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인사 철학 이외에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보수 표심을 끌어오는 한편, 더 장기적인 전망에서 국민의힘을 철저히 극우 내란 정당의 테두리 안에 가둠으로써 한국 정치 지형을 재편하려는 공격적인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이미 대선 전인 지난 2월 "민주당이 중도보수 정권으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라고 발언해 정치권을 들썩이게 한 일이 있는데, "진짜 보수와 진보가 힘을 모아 가짜 보수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내야 한다"는 '진짜 보수'론은 이 대통령의 오랜 지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보수 인사 영입은 단기적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임기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김성식 전 의원. 연합
 

이와 관련해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단순한 인재 영입이 아닌 공세적 헤게모니 전략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김성식(신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등 보수 진영 인사를 기용한 것은 단순한 정책 스펙트럼 확장이 아니다"라며 "이는 정치적 정당성과 대표성을 최대화하고 나아가 독점함으로써 경쟁 세력의 존립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공세적 헤게모니 전략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박 전 의원에 따르면 이 같은 공세적 전략 실행이 가능한 이유는 상대 진영의 '자멸적 궤도' 때문이다. 윤 어게인 세력, 극우 유튜버들과 손잡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하는 위헌 정당, 극우·극단 세력이 지배하는 컬트 정당, 수권 가능성을 상실한 영남 지역당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이 대통령이 과거 보수의 수권 능력과 유능함을 상징했던 인사들을 흡수하는 것은 정책의 스펙트럼 확장을 넘어 자멸하는 보수 정당을 영구적으로 그 궤도에 가두고 정치 지형을 재편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렇게 되면 한쪽은 전문성과 합리성의 포괄적 연합으로 확장하고, 다른 한쪽은 협소한 정체성 정치와 내부 충성 경쟁으로 수축하는 명확한 비대칭성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한 번 형성된 '합리성의 독점' 구조는 자기 강화적 메커니즘을 갖는다. 유능한 인재들은 미래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고, 남겨진 조직은 더욱 극단화하며, 이는 다시 이탈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즉 상대 진영에는 구조적 악순환을 고착시키고, 자신은 선순환 구조를 제도화하려는 헤게모니 전략이 가동된다는 것이다.

 

박 전 의원은 "물론 성공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만약 성과를 거둔다면 그 결과는 일시적 정세 변화가 아니라 향후 한국 정치의 기본 틀을 규정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이 될 것"이라며 "단순한 정책 논쟁이나 선거 전략 차원에서 접근할 수 없는 심층적 재배치 과정이고, 정당 체계 자체의 재편(경쟁적 양당제의 퇴조와 지배적 중도보수 정당의 등장)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9일 오후 전남 해남 솔라시도 홍보관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29. 연합
 

'정책의 스펙트럼 확장을 넘어 자멸하는 보수 정당을 영구적으로 그 궤도에 가두고 정치 지형을 재편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도는 이미 일정 부분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29일 전남 해남군 소재 솔라시도 홍보관에서 만난 취재진이 "이재명 정부에서 보수 인사를 영입한 만큼 국민의힘도 중도 확장에 속도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오히려 우리가 보수 정당으로서 가치를 보다 더 확고히 재정립해야 하고, 당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국면"이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영입에 극도의 경계심이 발동해 폐쇄적인 '윤 어게인' 극우 정당으로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더욱 분명히 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이다. 스스로 고립 노선을 강화하는 선택을 한 셈이다. 한 술 더 떠 '당원 게시판 사태' 징계 문제 등과 관련해 한동훈 전 대표와 당내 한동훈계 인사들을 상대로 조만간 '과감한' 결단을 내리겠다는 암시도 내놨다.

 

장 대표는 "우리가 그동안 보수 가치를 확고히 재정립하지 못하고 당성이 부족하거나 해당 행위를 하는 인사들에 대해 제대로 조치하지 못했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면서 "당을 배신하고 당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4일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두고 "장장 24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냈다. 노고가 많으셨다"고 유화 제스처를 보인 바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날도 이 대통령과 이 후보자를 향해 "정권 몰락의 시발점" "역사에 길이 남을 부역 행위" 등 원색적인 공격이 줄을 이었지만, 같은 보수 진영에서도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과 일맥상통하는 관점에서 '보수의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는 신랄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29. 연합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혜훈 전 의원은 2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결국 강을 건넜다. 우리는 그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며 "거국내각은 보통 정권 말기의 레임덕 국면에서 등장하는 유화책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이런 파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감의 발로"라고 파악했다.

 

이어 "반면 보수 진영은 그동안 내부 동질성 강화만 외쳐 왔고, 이제 더 이상 외연 확장이 불가능해졌다. 보수는 닫혀가고, 민주당은 열려가고 있다"면서 "탈영병의 목을 치고 배신자라 손가락질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인가? 지금은 이혜훈 전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세울 때가 아니라, 보수 진영이 국민께 매력적인 비전과 담론을 제시하여 희망을 드려야 할 때"라고 나름대로 절박감을 토로했다.

 

천하람 원내대표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민의힘 인사를 장관으로 기용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배신자라고 맹비난하는 것은 안 맞다. 어쨌든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하는 중요한 자리고, 진영을 초월해서 인사하면 기본적으로는 좋은 일"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인사에 있어서 보수 진영 인물들을 많이 포용한다고 하는 건 보수 진영에 굉장히 위기다. 윤석열 대통령 시절에 이혜훈 후보자나 김성식 같은 합리적인 중도 보수 성향의 인물들이 기용이 잘 됐느냐?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아가 "합리적인 중도 성향 인물을 많이 뺏기는 것도 뺏기는 거지만, 이제 정말 보수 진영이 어젠다나 어떤 주도권 모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나 민주당에 뺏기는 그런 구도로 가고 있는 게 아닌지 굉장히 경각심을 느껴야 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러다가 유승민 전 대표 같은 분이 총리를 하겠다고 그러면 어떡하느냐"면서 "만약 그렇게 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엄청난 찬사를 받고, 가뜩이나 이념적으로나 의석수로나 쪼그라들어 있는 국민의힘 같은 경우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수 진영 인사들을 가져가는 건 전략적으로는 굉장히 뛰어난 일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 유튜브 '정규재TV' 화면 갈무리

 

보수 논객인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유튜브 채널 '정규재TV' 라이브 방송에서 이 후보자를 강성이 아닌 '부드러운 보수'라고 표현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진 않지만 파격적인 탕평, 실용, 통합을 상징하는 그런 인사가 전격적으로 단행됐다"며 "복지를 중요하게 여기고 최저임금을 상당한 정책적 과제로 제시하는, 유승민과 유사한 형태의 부드러운 보수라고 볼 수 있다. 이 후보자가 정책을 진행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 쪽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정 전 주필은 "국힘당이 정말 속 좁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낀다. 이 후보자에게 축하를 하고 여러 가지 정책 목적을 잘 달성해 주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네주는 것이 국힘당이 해야 할 일"이라며 "국민의힘이 보편적 정당으로 복귀하지 못한다면, 정국은 소위 이 대통령의 탕평주의적 인사 속에서 일방적으로 흘러갈 것이 뻔하다. 만일 그렇다면 누구라도 이 대통령이 손 뻗으면 (당을) 나가고, 남는 건 장동혁과 전한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에선 대체로 이 후보자 지명을 이 대통령의 실용·통합 의지의 재확인이라는 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국가 예산을 기획·편성·총괄·관리하는 요직에 국민의힘 출신 전직 의원인 이혜훈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출신과 이념을 넘어 '오직 민생과 경제'를 위해 적재적소의 인재를 기용하겠다는 대통령의 '실용주의'와 '탕평'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며 "국민의힘의 비난은 인사를 하지 말라는 발목잡기이자 몽니에 불과할 뿐이다. 민주당 출신 인사는 측근 인사라며 비판하고, 국힘 출신 탕평 인사는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면 그 누구를 기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이혜훈 후보자가 장관직 지명을 수용한 배경은 무엇인지, 장관으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등은 청문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하면 될 일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청문회 준비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며 "대한민국을 살리는 것에는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따로 없다. 민생 살리는 정책에도 파란 정책, 빨간 정책이 없다. 인사에서마저도 갈라치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 통합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게 자명하다"고 단언했다. 

                                                                                                      < 김호경 기자 >

 

내란 옹호한 정치인은 통합의 대상일 수 없다

실용 통합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에 균열 키워
국정 판단의 기준 민주주의 지킨 국민의 광장

실용 통합은 책임 회피나 기억 삭제가 아니다
바로 수정 안 하면 국민은 다시 광장으로 간다

 

윤석열 대통령을 석방하라고 외치는 이혜훈 국민의힘 전 의원.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를 '국민주권정부'라 부른다. 국민이 주권자이며, 국정의 최종 판단 기준은 시민의 삶이라는 선언이다. 그러나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광장에서 윤석열 탄핵을 외쳤던 수많은 국민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들의 요청이 지금 이 정부의 국정 운영에서 과연 얼마나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그 요구들이 '이미 지난 일' '이제는 접어야 할 이야기' '국정 안정에 부담이 되는 목소리'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윤석열 탄핵은 단순한 정권 교체의 계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또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 앞에서, 국민이 거리로 나와 헌정 질서를 직접 방어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 광장은 분노의 집합이 아니라 주권의 실천이었고, 이재명 정부의 정통성은 바로 그 국민의 광장 위에 세워져 있다. 그렇다면 국민주권정부란 무엇보다도 그 광장의 요구를 국정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 읽히는 것은 긴장과 책임감보다는 지나친 자신감이다. 선거 승리와 정권 교체는 언제나 권력에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감당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부여한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나 이 확신이 비판을 밀어내기 시작할 때였다. 지금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통합'은 국민의 요구를 국정의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권력 운영의 부담을 관리하기 위한 언어처럼 작동하고 있다.

 

통합은 갈등을 삭제하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갈등을 끝까지 드러내고, 왜 그런 갈등이 발생했는지를 묻는 과정이다. 윤석열 탄핵을 요구했던 국민들의 외침은 단지 한 인물의 퇴진을 넘어, 권력 남용, 검찰 권력의 비대화, 헌정 질서의 후퇴에 대한 구조적 문제 제기였다. 그러나 지금의 실용·통합 기조 속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이제는 경제다' '국정 안정이 우선이다'라는 말 속에서, 국민의 정치적 요구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 현수막.

 

이러한 태도는 인사 문제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고, 헌정 질서의 회복이 아니라 윤석열 석방을 공개적으로 외쳤던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을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내정한 결정은, 국민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헌법 질서를 위협한 권력을 정치적으로 비호했던 인물이 '통합'과 '능력'의 이름으로 국정의 핵심 자리에 오르는 현실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이번 인사가 드러내는 명백한 이중잣대다. 군인들에게는 내란 사태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엄정한 징계와 책임을 요구하면서,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고 내란적 상황을 사실상 옹호했던 정치인은 통합의 대상이 된다면, 이 정부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책임을 말할 수 있는가. 위로 갈수록 가벼워지고, 아래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책임의 구조를 국민이 정의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인사 논란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주권정부를 자임하는 정부가 과연 주권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다. 정치적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권력의 중심부에서는 희석되고, 명령 체계의 말단에서만 강화된다면, 국민의 분노는 너무나 당연하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광장에서 가장 크게 외쳤던 '책임 정치'의 정면 부정이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실용·통합이 이런 선택까지 정당화하는 언어라면, 그것은 실용이 아니라 책임회피이며 통합이 아니라 기억의 삭제다. 더 심각한 일은 이러한 선택들이 '우리가 하면 다르다' '우리는 관리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그런 자신감 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같은 행위에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순간, 정부의 말은 설득력을 잃고 국민의 신뢰는 급속히 무너진다.

 

국민주권정부를 자임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탄생시킨 국민과의 긴장 관계 유지다. 비판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고, 광장의 목소리를 '과거의 소음'으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 말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시민사회의 비판을 '과도한 요구'로, 문제 제기를 '개혁 피로감'으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정부는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정부가 아니라, 자신의 지지자들을 조용히 실망시키는 정부다.

 

실용이라는 말 역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위한 실용인가. 누구에게 실용적인가. 노동, 불평등, 권력 감시와 같은 문제는 본질적으로 불편하고 갈등적이다. 이를 실용의 이름으로 정리하려 할 때, 대개 피해는 국민에게,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간다. 실용이 국민의 요구를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민주적 언어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열린 '국민소통 행보 2탄, 충청의 마음을 듣다'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2025.7.4 연합
 

국민주권정부란, 국민 앞에서 늘 불안해하는 정부여야 한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할수록 더 많이 묻고, 더 자주 돌아봐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 느껴지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감이며, 성찰보다는 속도다. 지나친 자신감은 언제나 화를 불러왔다. 그것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구조적 유혹이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방향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이 정부는 자신을 탄생시킨 국민들로부터 가장 먼저 질문받는 정부가 될 수 있다. 국민은 다시 침묵하지 않고, 민주주의는 다시 광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자신감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 앞에서의 두려움 위에서만 유지된다. 이 단순한 진실을 잊는 순간, 어떤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 박철 기자 >

 

2025년 '나의 꿈 에세이 및 우리말 글짓기 대회'  유치부~12학년 대상으로 3차 심사

에세이  한율 학생우리말 글짓기 김예원김유리박수현 학생 등 상금과 상장 영예

 

 

캐나다 한국학교협회(회장 신옥연)는 차세대 청소년 유치부(SK)에서 12학년까지를 대상으로 2025년도 ‘나의 꿈 에세이 및 우리말 글짓기 대회’를 지난 12월13일 토론토 온누리연합교회에서 개최, 심사를 통해 최우수상 4명을 포함한 모두 19명의 입상자에게 $400에서 $50의 상금과 상장을 수여했다.

 

대회에서 상금 $400씩을 받은 최우수상은 나의 꿈 에세이 부문에 한율 학생, 우리말 글짓기 부문은 김예원, 김유리, 박수현 학생 등 3명이 영예를 차지했다. 이어 상금 $300씩의 우수상은 에세이 부문 Ella Yuhee Kim 학생, 글짓기는 강태린, 오하음, 장주안, 한린지 학생이 입상했고, 상금$100씩인 격려상은 에세이 사미라 학생, 글짓기는 류이현, 박노라, 신아린, 안세린, 이사벨 큰다리 학생이, 그리고 상금 $50을 받은 장려상은 에세이 이희수 학생, 글짓기는 이유나, 하예진 학생이 각각 수상했다.

 

이번 대회는 유치부에서 5학년까지는 ‘개천절, 한글날, 설날, 한가위, 삼일절, 독도의 날, 어버이날, 현충일’ 등을 주제로, 6학년에서 12학년까지는 ‘나의 꿈’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으며, 1차 관문은 한글학교에 소속된 학생 중에서 담임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이 원고를 제출했다. 이어 2차 관문은 1차 심사에 통과된 학생들이 12월13일 오후 대회장인 온누리연합교회에 모여 직접 손글씨로 작품을 써서 제출했고, 이 작품들을 다시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 검증을 하는 3차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자들이 뽑혔다.

 

 

한국학교협회 신옥연 회장은 “나의 꿈 에세이와 우리말 글짓기 대회는 차세대 청소년들에게 한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미래 삶을 위한 건강한 자아관과 세계관 형성에 도움을 주며 폭넓은 사고력으로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응원함으로써 글로벌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성장해 나갈 건강한 인재 육성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고 전하고 “한글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응모해 뛰어난 글솜씨를 겨뤄 갈수록 대회수준이 높아지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고밝혔다.

 

 

다음은 최우수상 입상 학생과 일부 부모의 수상 소감이다.

 

김예원 (글짓기 최우수상)= “이렇게 글짓기 대회에 참가해서 최우수상을 받게 되어 너무 기뻐요. 오랫동안 한글을 공부했지만 여전히 헷갈리는 글자들이 있어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대회를 준비하면서 반복해서 연습하다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한글을 쓸 수 있게 되었어요. 한글날에 대해 찾아보면서 세종대왕님에 대해서도 더 알게되었어요. 세종대왕님은 한글을 만드셨을 뿐 아니라 농사에 도움이 되는 도구들도 만들고, 음악과 책도 만드시고 병을 고치는 법도 잘 정리해주시는 등 백성들을 위해 여러가지도 노력하신 점을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고, 매주 한글과 한국 문화를 잘 가르쳐주신 한글학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려요.”

 

박수현 (글짓기 최우수상)= “안녕하세요. 한맘 한글학교 5학년 박수현입니다. 이번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저는 표현이 풍부한 한국말을 좋아하지만, 글쓰기는 처음에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문장씩 써 내려가다 보니 잊고 있던 추억과 생각들이 떠올랐고, 한글학교 선생님들과 가족들의 응원 덕분에 끝까지 글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한국말 공부는 물론, 한국의 역사와 문화도 꾸준히 배우고 싶습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미술 활동도 계속 이어가며, 미래에는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유리 (글짓기 최우수상)= “최우수상을 받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 글은 할아버지와 함께 본 한국 뉴스에서 현충일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학교에서 배운 리멤버런스 데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쓰게 되었습니다. 파이널 대회에서 직접 글을 쓸 때는 글씨가 많이 틀리고 다 못쓸까봐 조금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시간 안에 끝까지 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저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글을 자주 잊어버리는데, 이런 대회가 있을 때마다 한글로 글을 쓰고 생각하면서 한글이 조금씩 더 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글을 여러 번 다시 읽어 보면서 제 실수를 직접 고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습니다.무엇보다도 어렵고 힘들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열심히 쓴 제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좋은 상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너무 기쁩니다!”

 

한율 (에세이 최우수상)= “이번 나의 꿈 에세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정말 기쁩니다.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끝까지 열심히 노력해 상을 받게 되어 뿌듯합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제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상을 받아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며 더 성장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유나 학생 (글짓기 장려상)의 어머니=“진짜 감사드립니다. 한글 이제 받침 배우느라 어렵다고 조금 흥미를 잃어가던차에 이런 기회로 다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다른 친구들이 잘하는거 보고 두부,콩나물,떡국등 한국음식 상품 한박스 받은걸로 충분히 행복했었는데 장려상이라는 상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나가 한국에 아직 한번도 못 가 봤는데 한글 더 열심히 공부하면 한국에 데려가 준다고 약속 했어요.좋은 추억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아린 학생(글짓기 격려상)의 아버지= “꾸준히 한글 학교를 다니면서 읽기, 쓰기, 말하기를 공부하였는데, 평균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딸아이가 이번 대회에서 격려상을 받게되어 가족 모두가 기쁩니다. 차후 캐나다 한국 학교 협회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하여, 한글을 배워야하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문의: info@koreanschools.org >

 

 

 

 

 ‘보복성 의혹 제기’ 주장 “쏟아지는 빗줄기 감내하겠다” 버텨

 박지원, “의원들 반성계기, 보좌진 탓 말고 본인 처신 돌아봐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자신의 비위 사실을 폭로한 옛 보좌진의 텔레그램 내용을 공개하며 정면 대응에 나선 것을 두고, 당 안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뇌물로 볼 수도 있는 선물을 받고, 특혜성 의전을 받았다는 본질은 뒤로 제쳐두고, 제보자들의 신뢰도를 흔드는 방식으로 사안에 대처해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25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최근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해 “제보자들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며 더는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직권 면직을 통보받은 전직 보좌직원들이 터무니없는 ‘보복성 의혹 제기’를 하고 있는 만큼 정면 대응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복수의 민주당 의원들에 따르면, 김 원내대표는 전날 민주당 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도 “쏟아지는 빗줄기는 감내하겠다. 든든한 우산인 의원님들을 믿고 견디겠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김 원내대표와 제보자들의 주장이 강하게 엇갈리고 있는 만큼, 의원들은 일단 좀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도리어 전날 대화방에선 김 원내대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 의원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가 옛 보좌진의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 내용까지 공개하며, 제보자들을 ‘문제적 인물’로 몰아가는 방식의 대응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치권에선 보좌진과의 갈등이 문제가 되곤 한다. 그것을 탓하기 전에 의원 본인이 어떤 처신을 했는가 하는 반성의 계기를 우리 국회의원 전체가 갖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체 의원’을 향한 말이었지만, 김 원내대표의 대응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읽혔다.

 

당 물밑에선 추가 제보가 이어지게 되면 ‘결국 김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말들이 나온다. 특히 김 원내대표 뿐만 아니라 최근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도 대통령실에 인사 청탁을 했던 게 드러나 논란이 됐던 점은 이런 가능성을 부채질한다. 당 안에선 ‘쿠팡 청문회’를 비롯해 2차 종합특검법 및 통일교 특검법 처리 등 여야 간 치열한 협상이 이어지는 국면인데 이래서야 ‘여당 원내대표의 영이 서겠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김 원내대표 말처럼 보좌진들이 앙심을 품고 폭로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제보 내용 자체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의원들이 어렵게 결단해야 하기 전에 (스스로) 적절하게 상황을 마무리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도권 초선 의원도 “국민들 눈에 납득이 되겠냐”며 “(김 원내대표가 자리를 유지하는 게) 어렵지 않겠냐”고 했다.                                           < 최하얀 기자 >

 

김병기, ‘보라매병원 진료 특혜’ 정황까지 나와도 반성커녕 제보자 역공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대한항공에서 ‘160만원 상당’의 호텔 숙박권을 받아 쓴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번엔 ‘병원 진료 특혜’ 의혹에 휘말렸다. 전날 의원 대화방에 사과 메시지를 올렸던 김 원내대표는 25일 관련 의혹을 언론에 제보한 자신의 옛 보좌 직원들을 겨냥해 “저와 가족을 난도질”했던 이들이 “교묘한 언술로 ‘공익제보자’ 행세를 하고 있다”며 이들이 나눈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역공에 나섰다. 

 

25일 한겨레가 확보한 김 원내대표 보좌진과 보라매병원 부원장이 2023년 4월25일 주고받은 문자 대화를 보면, 보좌진이 “(사모님의 안과 진료에 대해) 의원님께서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다. 잘 부탁드리고자 연락 올렸다. 보라매병원 발전을 위해서 의원실 차원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하자, 부원장은 “(담당 의사에게) 다시 한번 부탁드려 불편함이 없으시도록 하겠다”고 답한다. 김 의원의 장남 역시 지난해 11월 의-정 갈등이 진행되던 시기에 보라매병원에서 대기 없이 진료를 받으려고 했던 정황이 문자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보라매병원은 김 원내대표의 지역구(서울 동작구갑)인 신대방동에 있는 공공의료기관이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입장문을 내어 “(단순한)‘예약 부탁’이 ‘특혜 의전 지시’로 둔갑했다. 아들은 우크라이나 작전에 투입됐다가 부상을 입고 귀국해 응급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제 배우자, 아들 일로 보라매병원 측에 특혜나 의전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앞서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고심 끝에 결심했다”며 자신의 옛 보좌진 6명이 만든 텔레그램 대화방 화면을 갈무리한 사진 12장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계엄 다음날인 지난해 12월4일) 6명의 보좌 직원들이 만든 비밀 대화방을 알게 됐다”며 “가식적인 겉웃음 뒤에서 내란을 희화화하고, 여성 구의원을 도촬해 성희롱하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저와 가족을 난도질하고 있었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확인하고 닷새가 지난 12월9일 대화방에 있던 보좌진 6명을 직권면직했다고 한다.

 

김 원내대표는 페이스북 글에서 지난 6월 원내대표 경선 뒤 잇따라 불거진 아들의 국정원 채용 청탁 의혹과 숭실대 특혜 편입 의혹, 쿠팡 대표를 만나 전 보좌 직원에 대한 인사 불이익 조치를 요구했다는 의혹 등이 모두 옛 보좌 직원들의 ‘악의적 제보’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김 원내대표는 “지금 그들은 교묘한 언술로 ‘공익제보자’ 행세를 하고 있다. 점점 더 흑화되는 모습을 보고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수치심을 감수하고 90여장의 대화 중 극히 일부만 공개하겠다. 직접 보고 판단해달라”고 했다. 제기된 의혹의 사실 관계를 반박하는 대신, 제보자의 흠결을 부각해 의혹의 신뢰도를 떨어뜨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의 ‘메신저 때리기’에 옛 보좌 직원들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김 원내대표가 공개한 문자 대화가 불법 취득된 정보임을 강조하며 “이미 김 원내대표 등에 대해서 고소 조치를 완료했고, 공익제보자 보호 조치도 요청한 상황”이라고 했다.                                                                                                 < 기민도 박찬희 기자 >

 

김병기 옛 보좌진 “김 원내대표 부인이 텔레그램 계정 도용…중대 범죄”

“통신비밀보호법·명예훼손 혐의로 김 원내대표 고소”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5일 공개한 옛 보좌직원들의 텔레그램 대화방 문자 대화에 대해 옛 보좌직원 쪽은 김 원내대표의 부인이 보좌진 한명의 텔레그램 계정을 도용해 확보한 불법 자료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김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에 공개한) 해당 텔레그램 대화는 김 원내대표 부인이 막내 보좌진의 (텔레그램) 계정을 당사자 동의 없이 몰래 자신의 폰에 설치해 취득한 것”으로 “통신비밀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의 중대 범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화 내용은 보좌직원끼리 나눈 사적 대화로 일부 욕설이나 농담이 포함돼 있지만 불법적인 내용이 전혀 없었다”며 “대부분 업무, 그리고 김 원내대표와 부인의 비리와 권한남용에 대한 규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개된 대화는) 김 원내대표가 그중 일부 내용을 맥락을 알 수 없게 발췌하여 왜곡한 것으로, 이미 김 원내대표 등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한겨레와 통화한 전 보좌진은 “텔레그램 대화방은 (지난해) 12월9일 폐쇄된 뒤 지난 1년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고, 될 수도 없는 비밀(대화)방”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9일은 김 원내대표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당시 근무하던 보좌직원 6명에게 직권 면직을 통보했다고 밝힌 날이다. 그는 “지난 1년간 김 원내대표의 협박과 직권남용 등의 가해 행위가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단체 대화방 캡처 사진에 대해 “적법하게 취득한 자료”라며 “오늘은 90여장의 대화 중 극히 일부만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원내대표 쪽 관계자는 “(대화방에 참여하고 있었던 이들 중)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애초 김 원내대표가 그 대화방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겠느냐”며 김 원내대표 부인이 계정을 불법 도용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 최하얀 기자 >

 

김병기 “전직 보좌관들, 대화방에서 가족 난도질·내란 희화화”…진흙탕 싸움

옛 보좌진 대화방 ‘여의도 맛도리’ 공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5일 “고심 끝에 결심했다. ‘여의도 맛도리’의 실체를 공개한다”며 자신의 대한항공 숙박권 수령 의혹 등을 제보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신의 과거 보좌진들의 텔레그램 대화를 공개했다. 시민단체가 김 원내대표 고발을 예고한 가운데, 사안의 본질을 비켜난 진흙탕 싸움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먼저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언론에서 제기되는 여러 사안에 대해 사실과 다른 부분은 분명히 바로잡되, 책임을 피하려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언론사로부터 또 다른 제보가 있다며 해명을 요구받고 있다. 제보자는 동일 인물, 과거 함께 일했던 전직 보좌직원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마음은 무겁고 착잡하지만, 이제는 그들과 있었던 일들을 밝힐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는 “(계엄 다음날인 12월4일) 6명의 보좌직원들이 만든 ‘여의도 맛도리’라는 비밀 대화방을 알게 됐다”며 “가식적인 겉웃음 뒤에서 내란을 희화화하고, 여성 구의원을 도촬하여 성희롱하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저와 가족을 난도질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12월9일) 저는 이들 6명에게 ‘텔레그램 대화방 여의도 맛도리를 봤다. 사유는 잘 알 것이다. 각자의 길을 가자. 다시는 인연을 맺지 말자’는 말로 직권면직을 통보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지난 6월 원내대표 선거를 기점으로 상황은 악연으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성은커녕 피해자 행세로 자신을 포장하며 점점 더 흑화되는 모습을 보고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수치심을 감수하고, 오늘은 일단 ‘여의도 맛도리’ 90여장의 대화 중 극히 일부만 공개하겠다”며 갈무리한 사진 12장을 올렸다. 그러면서 “부디 직접 보시고 판단해 주십시오”라고 덧붙였다.                                            < 기민도 기자 >

 

박지원, 김병기 겨냥 “보좌진 탓 말고 본인 처신 돌아봐야”

김병기 전날 의원 단톡방에 “심려 끼쳐 송구”
“악감정 의한 보좌직원 사적 복수”라고 해명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연합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5일 김병기 원내대표의 ‘대한항공서 호텔 숙박권 수수 및 공항 의전’ 의혹과 관련해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사과를 했지만 더 자숙해야 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BBS) 라디오에서 ‘김병기 원내대표를 둘러싼 의혹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 의원은 “보좌진과의 갈등이 있는 것에는 항상 정치권이라 좀 문제가 있다”면서도 “그것을 탓하기 전에 의원 본인이 어떤 처신을 했는가 하는 반성의 계기가 우리 국회의원 전체가 갖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 본회의 표결 전에 민주당 의원 전원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저를 둘러싼 각종 보도로 심려를 끼쳐 더 송구한 마음”이라는 입장을 올렸다고 한다. 그는 “악감정에 의한 그들(면직된 보좌직원)의 사적 복수일지라도 누구를 탓하겠나” “또 다른 빌미로 트집과 공격을 할지 모르지만, 쏟아지는 빗줄기는 감내하겠다” “제 든든한 우산인 의원님들을 믿고 견디겠다”는 취지의 내용을 올렸다고 한 민주당 의원은 전했다.

 

앞서 한겨레는 김 원내대표가 지난해 11월 2박3일 동안 대한항공으로부터 받은 160만원 상당의 서귀포 칼 호텔 최고급 객실(로얄스위트) 숙박권을 가족들과 함께 이용했다고 보도했다. 또 김 원내대표 가족의 2023년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김 원내대표 쪽 보좌진과 대한항공 관계자가 공항 편의 제공 등을 논의했다고도 보도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유 불문 부적절하다”며 “숙박비용은 즉각 반환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대한항공이 칼호텔에서 약 34만원(조식 포함)에 구입한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1박에 72만5천원(조식 미포함)이 아니라 34만원(조식 포함)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또 공항 의전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며 “관계가 틀어진 보좌직원이 이제 와서 상황을 왜곡하고 있지만 이 문제로 보좌직원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 기민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