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1주년이다. 그 하루 전에, 태평양 건너에서 조용히 마무리되고 있는 일 하나를 먼저 짚어야겠다. 미국이 자기 부처의 이름을 바꾸고 있다.
78년 만에 벗은 이름
2025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를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부르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튿날 국방부 누리집의 이름이 바뀌었고 주소도 war.gov로 넘어갔다. 부처의 법적 개명은 의회의 몫이지만 그 절차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상·하원 군사위원회가 2027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개명 조항을 넣었고, 7월 22일에는 하원 본회의가 216 대 212로 이를 통과시켰다. 78년 만의 복귀다.
주목할 것은 '전쟁부'가 미국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19세기까지 영국은 War Office, 프로이센은 전쟁성, 일본은 육군성이었다. 전쟁은 주권의 정당한 도구였고, 그래서 부처 이름에 '전쟁'을 넣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그 이름이 세계에서 사라진 것은 1928년 부전조약이 전쟁을 국가정책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포기하게 하고, 1945년 유엔헌장 2조 4항이 무력의 위협과 행사 자체를 금지한 뒤였다. 각국이 '전쟁부'를 '국방부'로 바꾼 것은 그 규범 전환의 언어적 반영이었다. 미국의 국방부도 1947년 국가안보법의 산물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전쟁부) 정책담당 차관이 면담을 한 가운데 2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1.26. 연합
그러니 이번 되돌림은 미국이 자기 과거로 돌아가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부전조약 이전의 언어체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럽이 두 차례 대전을 겪고 스스로 폐기한 원형을, 유럽연합이라는 기획 전체가 그 폐기 위에 세워진 그 원형을, 미국이 되줍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정직해진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복은 유럽식 세력균형 전쟁의 형태가 아니라 개척과 문명화의 형태를 띠어 왔다. '명백한 운명'은 정복을 정복이라 부르지 않는 언어였다. 유럽은 그래도 전쟁을 전쟁이라 불렀지만, 미국은 그것을 '방어'라, '해방'이라, '자유의 확산'이라 불렀다.
인디언 학살이 국가적 기억에서 끝내 청산되지 않은 것도 애초에 그것이 '전쟁'으로 명명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번 개명은 원형의 계승이라기보다 위장의 해제다. 1947년에 전쟁을 방위로 바꾼 것이 냉전기의 자기 정당화였다면, 2026년에 그 옷을 도로 벗은 것은 더 이상 정당화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신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일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에어포스원에서 내린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 08. 11 [AFP=연합]
그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름이 바뀌었을 뿐, 우리가 겪어온 실체는 늘 그 이름이었다.
160년 전 제너럴셔먼호와 신미양요가 한반도를 외교·군사적 실험장으로 취급했다. 20세기에는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애치슨 라인이,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한국인의 생명과 주권을 전략적 계산의 부차적 요소로 처리했다. 21세기에도 오산기지의 탄저균, 지난달 같은 기지에서 흘러내린 백린, 조지아주에서 쇠사슬에 묶인 기술동맹의 엔지니어들이 이어졌다. 형태는 시대마다 달랐지만 인식체계는 하나였다. 한국을 주체가 아니라 수단으로 보는 시선.
그 관성의 가장 이르고 가장 무거운 얼굴이 원폭이다. 두 도시에서 죽거나 병든 이들 가운데 조선인이 10만 명이었다. 그들은 전쟁의 당사자도, 항복 협상의 주체도 아니었다. 타자의 생명은 셈에 넣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계산 — 이것이 원죄의 원형이고,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
청산의 길은 법리적으로 이미 열려 있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전쟁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을 실체법적으로 소멸시키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짚어야 한다. 1951년 그 조약이 체결될 때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이유로 서명국 명단에 없었다. 그렇다면 일본과 미국 사이에 오간 상호 청구권 포기가, 애초에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조선인 개인의 대미 청구권까지 지울 수는 없다. 원폭을 설계하고 투하를 결정하고 실행한 나라를 직접 상대할 길이 논리적으로 열려 있다는 뜻이다.
방어의 언어를 벗은 나라와 마주 서게 된 지금, 이 오래된 빚을 다시 꺼내는 것은 과거로 가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자기 이름을 정직하게 되찾았다면, 우리도 정직하게 셈을 청구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안에도 있다
여기서 방향을 돌려야 한다. 상대의 이름만 탓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가 속국이 되는 것은 대개 군사적 정복이 아니라 정체(停滯)를 통해 온다. 구한말이 정확히 그 경로였다. 조선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데 세도정치가 결정을 소수 가문에 가두면서, 시대의 압력에 반응하는 속도 자체를 잃었다. 군사적으로 정복당하기 훨씬 전에 이미 결정할 능력을 잃은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공백은 반드시 밖에서 메워진다. 안에서 결정하지 못하면, 밖에서 결정한 것을 통보받게 되어 있다. 동맹국의 전투기가 통보 없이 우리 상공을 드나들고, 주둔지의 유해물질 사고가 10년 전과 판박이로 반복되어도 국가 차원의 신속하고 일관된 대응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장면들이 그 증거다.
백린 사고 이후 한국 사회가 보인 것은 분노가 아니라 피로와 냉소였다. 분노는 아직 재협상의 언어이지만, 냉소와 경멸은 위임의 비가역적 철회다. 그런데 그 경멸은 상대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 10년, 한국은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것을 두 차례나 해냈다. 대통령을 두 번 무혈로 끌어내렸고, 연인원 1700만 명이 광장을 지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광장이 두 번이나 정권을 바꿔놓은 뒤에도 그 권력을 낳는 규칙 자체는 그대로다. 소선거구제는 건재하고,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은 여전하며, 국민발안과 시민의회는 여의도 문턱을 넘지 못한다. 국민투표도 없다. 대리인은 위임받는 순간부터 구조를 바꿀 유인을 잃는다. 규칙을 쥔 자들에게 규칙 개정의 전권을 맡겨두는 한, 혁명은 늘 정권교체로 끝나고 구조교체로 이어지지 못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여의도공원 마지막 유세에서 이 후보의 '빛의 혁명' 완성을 위한 승리에 대한 연설을 들은 시민들의 응원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2025.6.2. 이호 작가
광복 81년, 세 가지
그러므로 광복 81주년에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상대의 이름을 정확히 읽는 것. 미국은 방어의 언어를 벗었다. 그 나라와 맺은 동맹이 무엇을 뜻하는지, 주한미군의 성격과 전시작전권과 연합훈련의 방향을 그 바뀐 이름 위에서 다시 계산해야 한다. 이것은 반미가 아니라 산수다.
둘째, 81년 미뤄온 셈을 청구하는 것. 조선인 피폭자와 그 후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국제 여론과 미국 의회를 향한 입법 촉구, 배상기금 제안까지 여러 무대에서 계속 살아있는 의제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미국 안에서 매파의 오판을 바로잡을 책임은 미국 시민 자신에게 있다. 1970년대 처치위원회가 CIA와 NSA의 치부를 미국 스스로 파헤치고 의회 감독체제를 세웠던 그 자기교정 능력이야말로 미국이 존경받던 이유의 실체였다. 결자해지(結者解之), 매듭을 묶은 자가 스스로 풀어야 한다. 스스로 바로잡지 않는 매듭은 남이 잘라낼 수밖에 없다.
셋째,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결정능력을 재설계하는 것. 국민발안이 실체적 효력을 갖도록 하고, 국민투표 발의권을 대통령 한 사람의 재량에서 풀어내는 것, 되돌릴 수 없거나 세대를 넘는 결정은 국민이 직접 답하게 하는 것, 매번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사안은 추첨으로 뽑힌 시민이 충분한 정보와 시간을 갖고 숙의하는 시민의회에 맡기는 것들이다.
권력의 위임에는 반드시 해지 조항이 있어야 한다. 국민이 멈추게 하고 되물을 수 없다면 그것은 위임이 아니라 양도다. 그 논의를 여는 자리가 선거개혁 시민대토론회이고, 개헌 논의가 다시 열린 지금이 그 좁고도 귀한 창이다.
이젠 주권자다운 길을 개척해야
미국은 78년 만에 자기 이름을 되찾았다. 감출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니 반길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제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지 헷갈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어떤가. 광복(光復), 빛을 되찾았다는 이름을 81년째 쓰고 있다. 그런데 되찾은 것은 주권이라는 형식이었을 뿐, 그 주권을 실제로 잘 쓰는 능력까지 함께 얻은 것은 아니었다. 이름은 되찾았으나 이름값은 아직 다 치르지 못한 것이다.
상대는 이름을 바꿔 자기 실체를 드러냈다. 우리는 이름을 그대로 둔 채 그 실체를 채워야 한다. 광복 81주년, 다시 원점에 서서 주인에게 물어야 하는 이유다.
법의 무게와 신속성이 조화를 이룰 때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음을 부디 상기하여, 사법부의 빠르고 올바른 응답을 기대해 본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국민의힘 나경원, 김기현, 윤상현, 권영진 의원이 재판에 넘겨졌다. 2차 종합특검은 이들이 단순히 체포에 반대하는 정치적 의사를 표시한 것이 아니라, 관저 앞에서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인간벽'을 만들어 공수처와 경찰의 진입을 실제로 저지했다고 판단했다. 특검은 당시 현장에 있던 공무원들의 진술과 채증 영상, 녹취 등을 종합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제 주목할 핵심은 사법부가 얼마나 신속한 재판으로 정의를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다. 이번 사건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인 만큼 특검법의 이른바 '633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가지 씁쓸한 기억이 뇌리에 스친다. 바로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당시, 정치인들의 특수공무집행방해 1심 선고에 무려 6년 7개월이나 걸렸던 뼈아픈 전례 말이다.
법적 절차에서 피고인의 방어권과 충분한 심리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지만, 그것이 지나친 재판 지연을 정당화하는 방패가 될 수는 없다.
특히 국가기관의 집행 현장을 조직적으로 저지했다는 이번 사건은 헌정 질서의 근간과 직결되어 있다. 법 위반 여부를 가리는 판단이 수년씩 지체될 경우, 판결이 내려질 무렵에는 당사자들이 이미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선거를 치르는 등 법의 심판이 정치적 책임보다 한참 뒤처지게 된다. 이는 결국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흔들고, 사법 정의의 실효성을 반감시키는 주원인이 된다.
사법부에게 바라는 국민의 요구는 명확하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철저한 방어권을 보장하되, 불필요하게 시간을 끌지 않고 신속하고 엄정하게 심리하는 것. 이번 재판마저 과거의 틀을 답습한다면, 사법부의 기소 의미와 심판 의지를 향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팽배해질 것이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법의 무게와 신속성이 조화를 이룰 때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음을 부디 상기하여, 사법부의 빠르고 올바른 응답을 기대해 본다. < 홍순구 시민기자 >
한남동 관저 앞에서 영장집행 저지 '육탄방어' 내란특검은 각하했으나 2차 종합특검 재수사 국힘 나경원·김기현·윤상현·권영진 재판 넘겨 "채증 영상 통해 폭언, 인간 벽 등 혐의 확인"
'체포 방해' 정점 윤석열은 이미 징역 7년 확정 경호처장 박종준, 차장 김성훈 1심 징역 4·5년 김기현 "좀비 특검의 난동, 권창영 감옥 갈 것" 나경원 "특검의 추악한 만행, 법왜곡죄로 처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2025년 1월 15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나경원 의원 등이 체포 저지에 나섰다가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2025.1.15. 연합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을 '육탄 방어'식으로 가로막았던 국민의힘 의원들이 마침내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내란성 불면증'에 시달리던 대다수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도 이들 의원이 버젓이 체포 방해 행위를 한 지 1년 7개월 만이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해당 의원들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해 사실관계를 살핀 뒤 폭언이나 폭력 행사 등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보고 각하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한 바 있다. 그러나 권창영 2차 종합 특별검사팀은 "채증 영상 등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내란 특검팀의 수사에서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사실관계에 대해 수사할 필요성이 확인됐다"며 재수사를 결정하고 결국 기소함으로써 종합특검팀이 이룬 또 하나의 성과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종합특검팀은 14일 국민의힘 나경원·김기현·윤상현·권영진 의원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 의원은 지난 2025년 1월 15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공수처와 경찰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돌입했을 때 다른 국민의힘 의원 30여 명과 보좌진 및 당직자, 그리고 일반 지지자들과 함께 스크럼을 짜고 인간 띠를 만들어 맞선 혐의를 받는다. ☞ 관련 기사 <공조본, 윤석열 관저 진입 시도…국힘 의원들과 몸싸움>
공조본의 검사와 수사관들이 이들을 뚫고 관저 입구 쪽으로 다가가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다"는 경고 방송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공조본 관계자들이 돌파에 성공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관저 앞에서 입장문을 발표하고 "불법 영장 집행을 중단하라"며 "공수처, 국수본이 권력욕에 눈이 멀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눈치를 살필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입각해 공권력을 적법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2025년 1월 6일 김기현 대표와 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인간 방패를 형성한 가운데 김 대표가 취재진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2025.1.6. 연합
당일 관저 인근 곳곳에서는 극우 단체 회원과 유튜버를 비롯한 윤석열 지지자 약 6500명(경찰 비공식 추산)이 밤새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은 기동대를 동원해 관저 정문 앞에 앉거나 누워 농성을 벌이던 이들을 강제 해산하고 진입로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지지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고성과 욕설이 난무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정당한 집행을 저지하려는 일부 과격 시위대의 난동을 만류해야 할 당시 여당 의원들이 오히려 한술 더 떠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 윤석열의 인간 방패 노릇을 한 것이다.
종합특검팀은 이번 재수사를 통해 공수처 검사 등 체포영장 집행에 참여한 여러 공무원의 진술, 94GB(기가바이트) 상당의 채증 영상에서 확인된 폭언 등 녹취록, 동종 사안에 관한 법리 및 유죄 판결문 분석 등 객관적인 증거를 종합해 나경원·김기현·윤상현·권영진 의원의 혐의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들이 단순히 체포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 있던 다수의 사람과 함께 인간 벽을 형성해 관저 내 진입을 저지하는 등 영장 집행을 현실적으로 방해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체포 방해'의 정점인 윤석열은 이미 대법원 3부(재판장 이흥구, 주심 이숙연 대법관)에 의해 지난달 9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징역 7년의 확정판결을 받은 상태다. 여기에는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외관을 갖추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만 소집함으로써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국무위원 9명의 계엄 심의권을 침해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양형도 포함돼 있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백대현 부장판사)는 올해 1월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2심을 맡은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 형사1부(윤성식 부장판사)는 지난 4월 징역 7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대통령 경호처의 체포 방해를 지휘한 박종준 전 경호처장과 김성훈 전 차장의 경우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이현경 부장판사)는 지난달 9일 역시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처장에게 징역 4년, 김 전 차장에겐 징역 5년, 그리고 이광우 전 경호본부장에겐 징역 2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할 때 관저 진입을 방해한 이들의 혐의를 모두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아울러 김 전 차장이 윤석열 지시로 군사령관 3명의 비화폰 정보를 삭제하는 데 관여한 혐의(대통령경호법 위반)도 유죄로 인정했다.
2025년 2월 1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민의힘 윤상현, 나경원, 김기현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을 촉구하고 헌재의 불공정성을 규탄하기 위해 헌재 사무처장을 면담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2.17 [공동취재] 연합
이처럼 윤석열 체포 방해 사건에 대한 법원의 엄중한 유죄 판단이 계속되는 가운데 종합특검이 의원들까지 기소하자 국민의힘과 해당 의원들은 강력 반발했다. 당 법률자문위원장인 김태규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기소는 법리가 아닌 정치적 계산 위에 서 있다"며 "그날 김기현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몸싸움이 생기면 공무집행방해가 되니 뒷짐을 지라' '욕도 하면 안 된다'고 거듭 당부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더구나 그날 집행된 영장은 관할 없는 법원에서 발부된 것이었고, 관할부터 잘못된 영장이었다"며 또 다시 영장 발부 및 집행의 적법성을 문제 삼았다.
김기현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억지 혐의를 조작해 없는 죄도 만들어내려는 사이비 법 기술자 '좀비 특검'의 정치 난동에 불과하다. 국민이 아닌 권력을 위해 법을 사유화하고 왜곡한 권창영과 그 하수인들이 감옥에 갈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날을 세웠고, 나경원 의원도 "야당 의원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사법권을 남용하고 법리를 멋대로 짜깁기한 정치 특검, 법왜곡죄로 처벌받을 것이다. 특검의 추악한 만행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이 건은 야당 탄압의 흉기를 자처했던 조은석 특검조차 기소를 포기한 건이다. 2차 종합특검이 장장 180일 수사에 빈손 특검이라는 비난이 두려워 '일단 기소하고 보자' 식으로 무책임하게 기소를 진행했다"면서 "결국 기소권을 동원해 야당 의원들에게 정치적 망신을 주기 위한 억지 기소이며, 수사 기간을 기본 90일에 90일 더 연장시켜 준 정부‧여당에 보여주기 위한 아부성 기소"라고 특검 측을 맹비난했다. < 김호경 기자 >
석패 속에서 빛난 한국계 노동자 워킹맘의 도전 경합주 위스콘신의 돌풍과 기득권의 집중 공세 내외부 억압 뚫어낸 선명한 공약과 풀뿌리 운동
본선에서 더욱 필요한 반기득권 후보의 경쟁력 정체성 정치와 계급 정치의 급진적 결합의 과제 민주적 사회주의와 진보정치 미래에 던진 화두
민주당 주지사 후보 프란체스카 홍이 2026년 8월 11일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열린 예비선거 개표 방송 시청 파티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
프란체스카 홍(Francesca Hong)이 0.4% 차이로 민주당의 위스콘신주 주지사 경선에서 패배했다. 여러모로 너무나 아쉬운 소식이다. 승패라는 단순한 수치적 결과에만 얽매여 홍이 얼마나 수많은 악조건과 걸림돌 속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의미 있는 정치적 성과를 거둔 것인지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경선은 단순한 당내 경쟁을 넘어, 풀뿌리 진보좌파 정치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증명해 보인 역사적 변곡점이었기 때문이다.
홍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그의 정치가 왜 커다란 진정성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홍은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요리하던 노동자 출신에 대학 졸업장도 없이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 없는 세입자였다. 온갖 좌절과 방황을 이겨낸 홍의 삶을 살펴보면, 인생의 밑바닥까지 가본 이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은 2011년 공화당 주정부의 공공부문 노동권 박탈 시도(스콧 워커 주지사의 단체교섭권 박탈 법안)에 맞선 투쟁에 노조원인 부모를 따라 참가하며 급진화하고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SA,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조직에 가입하고 위스콘신주 하원의원도 됐다. 현장 노동자로서 겪은 삶과 투쟁이 그를 정치의 주체로 일어서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번에 홍은 위스콘신의 민주당 주지사 후보로 도전했다. 학벌도, 정계 인맥도, 자산도 없고,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완전한 아웃사이더였지만 말이다. 더구나 위스콘신은 미국 중서부의 대표적인 스윙(경합) 지역으로 민주당의 힘이 크지 않았다. 전체 인구에서 백인 비중이 압도적이고 아시아계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1950년대 반공주의 마녀사냥을 이끈 조셉 매카시의 고향으로 그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는 지역이었다.
위스콘신 노동조합들의 프란체스카 홍 지지 포스터
이곳에서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 밝힌 아시아계 여성의 도전 자체가 기적이었고, 보수적 압력에서 멀지 않은 미국 중서부의 한복판에서 기존 정치의 프레임을 정면으로 깨뜨린 사건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홍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순식간에 민주당에서 지지율 1위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원래부터 진보적이고 민주당 강세 지역인 뉴욕에서 조란 맘다니의 급성장을 뛰어넘는 사건이었다.
전통적인 진보 요새가 아닌 위스콘신에서 이름 없던 아시아계 여성 사회주의자가 주지사가 될 수 있다면, 모든 게 가능하다는 지지자들의 기대와 반대자들의 공포가 제기됐다. 기득권 체제의 오랜 성벽에 균열이 생기자,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의 뜨거운 열기와 그것을 막으려는 기득권의 저항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흐름을 차단하려는 트럼프와 공화당의 필사적 공격은 당연했다. 그들은 아직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지도 않은 홍을 '극단적 공산주의자', 심지어 '지하디스트'라고 선제 공격했다. 공화당뿐 아니라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은 홍에게 부정적이었고 10년 전 SNS까지 뒤지며 작은 말실수나 흠집을 찾아내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 한국의 조선일보까지 이런 공격에 동참할 정도였다. 언론들은 먼 과거의 발언들을 맥락 없이 낱낱이 잘라내어, 그를 '위험한 과격파'로 몰아세우는 공세를 펼쳤다. 문제는 미국 민주당의 기득권 주류도 이런 공격에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홍이 '믿을 수 없는, 불안한, 본선에서 패배할' 후보라는 공격이 계속됐다. 당내 보수·중도파는 진보적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집요하게 의심했다.
프란체스카 홍을 공격하는 조선일보 -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그들은 출마를 포기했던 사람(데이비드 크롤리)을 다시 불러서 홍을 막을 후보로 세웠고, 민주당의 토니 에버스 위스콘신 현 주지사가 앞장서 크롤리를 도왔다. 에버스는 '만약에 홍이 이기면 도와야 하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자금도 홍보다는 크롤리에게 압도적으로 몇 배나 더 많이 몰아줬다. 예컨대 홍은 소액 다수의 후원금을 힘겹게 모아서 광고비로 50만 달러를 쓰는 동안 크롤리는 400만 달러를 쓸 수 있었다.
즉 민주당 주류는 위스콘신의 지지자들에게 사실상 '홍을 찍지 마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따라서 이런 여러 악조건과 걸림돌 속에서도 홍이 크롤리를 거의 이길 뻔하다가 0.4% 차이로 아깝게 패배한 것은 놀라운 일이고 큰 성과라고 보는 게 맞다. 자금과 조직의 거대한 열세를 메우고 이처럼 바짝 추격할 수 있었던 동력은 오직 홍의 선명한 주장과 공약이었다.
홍은 무상 공공보육, 공공교통, 공공식료품점, 주거비 안정, 최저임금 20달러, 학자금 대출 탕감, 주 32시간 노동제, 부유세 강화, 이민세관단속국(ICE) 폐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반대 등을 약속하고 주장했다. 특히 시민들의 불만이 큰 데이터센터 건설 중단을 약속한 유일한 후보였다. 지금 미국에서 데이터센터는 일방적으로 건설되면서 수도요금과 전기요금을 폭등시키며 빅테크 기업들에만 이익을 안기는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홍은 "이런 상황에서 ‘점진주의’는 무책임하다. ‘큰 위기’에는 그에 걸맞은 속도의 ‘큰 해결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하며 급진적 방향을 분명히 했고, 자신의 선거운동을 "노동계급이 자신의 힘을 되찾아가는 더 큰 운동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홍의 선거운동은 거대 자본이 아닌 대중의 능동적 참여로 채워졌다. 선거 자금은 부족했지만 홍을 지지한 자원봉사자 7천여 명은 14만 번 가까이 집들을 방문해 문을 두드리고 대화를 하며 직접 지지를 호소했다.
변두리와 농촌 지역까지 가서 노래 모임과 음식 행사를 찾아다녔다. 민주당 지지자의 30%가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답하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런 급진적 공약과 풀뿌리 선거운동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슬아슬한 패배가 이러한 의미와 성과를 삭제할 수는 없다. 사실, 11월 본선을 위해서도 홍은 크롤리보다 더 나은 후보였다.
색깔론을 펴며 '좌파 척결'을 선포하던 트럼프 - 관련 방송 갈무리
스윙(경합)주는 좌도 우도 아닌 중간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느 당에도 충성하지 않으며 반기득권 정서가 큰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기득권 양당 체제에 환멸을 느낀 무당층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버니 샌더스가 이긴 곳이 위스콘신이다. 따라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지하는 트럼프 충성파 MAGA주의자인 공화당 후보 톰 티파니를 꺾기 위해서도 홍이 민주당의 후보가 될 필요가 있었다.
크롤리는 체제의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는 표심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상징성이 약하고, 기득권에 맞서기보다 그 일부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 점에서 버니 샌더스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같은 DSA의 전국적 스타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홍을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돕지 않은 것은 아쉽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얼마 전에 이들이 지지했던 진보 후보의 과거 막말과 성폭력 의혹 등이 드러나면서 사퇴한 아픈 기억 때문에 더욱 몸을 사리게 됐다는 평가가 있다. 경합주에서 무당층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서로가 거리를 뒀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홍이 "나는 전국 DSA의 강령을 전부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다.
홍이 '추수감사절 폐지', '경찰 예산 삭감' 등의 과거 SNS에 올린 과격한 발언과 말실수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바로잡지 못하면서 거리를 두게 됐다는 말도 있다. '정체성 정치'보다는 '계급과 민생 정치'가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문화 전쟁보다는 생계비가 중요하다'는 이런 식의 대립 구도는 다소 기계적이고 일면적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나 카멀라 해리스가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여성과 인종을 내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신자유주의나 이스라엘 집단학살 지지와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정체성 정치'와 '계급 정치'는 얼마든지 급진적인 방식과 내용으로 결합될 수 있다. 조란 맘다니는 무슬림 이민자 소수인종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노동계급의 삶의 문제와 고통을 대변했다. 노동계급의 '민생' 문제 안에서 정체성을 포섭하는 것은 가능하다.
완전히 새로운 뉴욕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맘다니 당선자. AP 연합
사실 홍이 과거에 '추수감사절 폐지'나 '경찰 예산 삭감'을 말한 구체적 맥락을 살펴보면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실제로 추수감사절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수탈을 '화합과 감사'로 포장하면서 시작된 역사를 숨기고 있다. 또한 조지 플로이드 등 흑인들이 경찰 폭력으로 죽어가던 상황에서 중무장 경찰과 감옥에 쓰이는 돈을 줄이고 정신보건, 주거, 빈곤 구제를 위한 복지 인프라에 투자하자는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물론, 이것이 이해나 동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런 주장과 정책을 반드시 그대로 고집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홍은 과거의 그런 주장을 철회하거나 톤 다운했다. 하지만 경쟁자들은 계속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서 집요하게 파고들며 프레임을 전환하려 했다. 그런 공격에 함께 맞서지 않은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왜곡된 프레임 공세 앞에 수동적으로 물러설 때, 공격과 프레임은 더욱 공고해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샌더스나 코르테스같은 이들의 선택은 더욱 아쉽다.
결국, 이번 위스콘신에서 벌어진 논쟁과 평가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바람이 민주당 주류의 훼방을 뚫고 뉴욕 같은 진보적 대도시뿐 아니라 경합 지역까지 더 넓게 퍼져나가기 위한 방향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로 이어진다. 진보 정치가 전통적 거점에 머무르지 않고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경합 지역으로 확장하기 위해 치러야 할 정치적 기회비용과 전략이 질문의 핵심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들과 DSA는 '당선 가능성'을 위해 과거의 '급진적 발언과 지향'들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삭제하거나 바로잡아야 할 것인가?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며 전진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도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명성을 유지하면서도 광범위한 대중적 동의를 획득하는 균형점을 찾으며 힘을 모으는 일은 진보 좌파가 직면한 고도의 정치적 과제이다.
"한국인에겐 저항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리도 여기서 [한국의 대통령 탄핵 같은] 그런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인과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트라우마와 회복력의 역사"라고 말하던 프란체스카 홍의 이번 도전과 성과는 미국을 넘어서 진보 좌파 정치운동 일반이 언제든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런 고민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0.4%의 차이로 막을 내린 선거 결과는 실패가 아니라, 모든 진보적 운동이 돌아봐야 할 중대한 이정표로 남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나비문화제’가 열려 참석자들이 ‘기림일 선언’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평화 돌풍, 그들의 굳센 바람과 우리의 힘찬 바람이 만나!”
14번째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기림일)을 맞아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 평화로에서 열린 나비문화제 무대에는 평화가 돌풍이 되길 바라는 피해자와 시민의 마음을 담은 문구가 내걸렸다.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200여명의 시민이 왼쪽 가슴에 노란색·보라색 나비 모양 리본을 달고 자리를 지켰다.
이날 나비문화제는 6년만에 온전한 소녀상 곁에서 열렸다. 극우 단체들의 훼손 우려로 2020년부터 소녀상을 둘러싼 채 설치됐던 바리케이드는 지난 5월 철거됐다. 한 시민이 안긴 노란 꽃을 무릎에 둔 소녀상과 사진을 찍으려는 시민 행렬이 이어졌다.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은 1991년 8월14일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1997년 작고)씨가 최초로 피해 사실을 증언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7년부터 정부 차원의 법정기념일로도 지정됐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98)씨는 영상을 통해 “오늘은 다른 날이 아닌 기림일이다. 정말 잊어선 안 된다”며 “여러분, 건강하시고 (도움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감사를 전했다. 피해자 박필근(98)씨도 “일본한테 보상도 받고 잡(싶)고, 사과도 받고 잡다. (나비문화제에) 많이 와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나비문화제’가 열리는 동안 소녀상 위로 세찬 비가 쏟아지고 있다. 김정효 기자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위한 투쟁이 36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피해 생존자들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며 ‘피해생존자 없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현재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5명이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며 “피해자들의 굳센 바람과 우리들의 힘찬 바람이 만나 전쟁과 폭력, 차별과 혐오를 밀어내는 더 큰 평화의 바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일본 정부에 △전쟁범죄 인정과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법적 배상 △역사지우기 중단과 재발방지 위한 교육 △군사대국화 중단을, 한국 정부에 △일본 정부에 책임 이행을 촉구하고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폭력과 혐오에 맞선 연대를 다짐했다. 이들은 기림일 선언에서 “전쟁이 없고, 폭력이 없고, 혐오가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더욱 크게 목소리 내고 세계 시민사회와 굳건히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장종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