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정상회담 이후 각각 공식 발표를 통해 이번 회담의 성과를 강조했지만 핵심 현안에서는 적지 않은 온도 차가 확인됐다.
무역 분야에서는 300억 달러(약 40조8천억원) 규모의 상호 관세 인하와 무역·투자위원회 가동 등에 합의했지만, 핵심 쟁점인 희토류는 중국 측 발표에서 아예 빠졌다.
인공지능(AI) 분야에서는 대화 채널 구축에 합의했지만 공동 규범 마련 등 구체적인 협력 방안은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만 문제 역시 회담에서 논의되긴 했으나, 양측 모두 이를 회담 결과 발표물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25일(현지시간) 팩트시트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존중과 공정성,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전략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중국도 26일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양국이 '존중·공정·대등에 기반한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며 정상회담의 '8대 성과'를 발표했다. 중국은 지난 5월 정상회담 당시 내세운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에 '존중·공정·대등'이라는 표현이 새로 추가됐다는 점을 부각했다.
양측은 무역 분야에서 각각 300억 달러 규모의 비민감 품목에 대해 보다 낮은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과 양국 무역위원회 및 투자위원회가 가동된 점을 공통으로 성과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 5월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마련된 협의 틀을 바탕으로 후속 논의를 진전시킨 결과다.
세부 발표 내용에는 차이가 있었다.
백악관은 팩트시트에서 양측이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 부족에 관한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협의를 계속하고 있으며, 적정한 수준의 공급량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이 발표한 회담 성과에는 희토류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절반 이상, 정제·가공 능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앞서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갈등 과정에서 희토류 수출 통제를 지렛대로 활용해온 만큼 미국은 안정적인 희토류 공급을 주요 과제로 꼽아왔다.
백악관은 이와 함께 관세 인하 대상 품목과 중국의 미국산 석탄 구매 계획을 발표했지만, 중국 측 발표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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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함께 둘러보는 미중 정상 [AP=연합]
양측은 AI 분야에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합의했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AI 대신 '슈퍼지능'(SI)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합의했으며, 11월까지 후속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도 양국이 AI의 위험과 혜택을 논의하고 관련 사건에 관한 소통 채널을 구축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SI' 대신 기존의 'AI'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공동 연구나 공동 규범 마련 등 한 단계 더 나아간 협력 방안은 양측 결과 발표에 담기지 않았다.
오히려 정상회담 과정과 이후 공개 발언에서 AI 협력의 범위를 놓고 온도 차가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AI에 대한 새로운 규제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현 상태 그대로 두고 싶다"고 밝혔지만, 시 주석은 AI가 "인간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며 관리와 규제의 필요성에 방점을 찍었다.
시 주석은 또 회담에서 "중국과 미국 모두 AI 대국으로, 양측 사이에는 경쟁이 존재하지만 협력 또한 가능하며, 서로를 경계·방어하기보다는 각자의 강점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중국보다 AI 분야에서 앞서 있다고 거듭 강조하며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특히 "선두를 달릴 때는 서로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법"이라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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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시진핑 주석 맞이하는 트럼프 대통령 [UPI=연합]
대만 문제는 정상회담에서 논의됐지만, 양측 발표 내용에는 빠졌다.
앞서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은 시 주석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이 '대만 독립'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달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시 주석과 대만 문제를 논의했다면서 시 주석이 대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어떤 입장을 시 주석에게 전달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미국은 그동안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지만 현상 변경을 위한 어떤 형태의 강압적 행동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베이징 정상회담 뒤 대만 문제에 대해 "시 주석이 매우 강경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나는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란에 대해서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에 반대한다는 데 두 정상이 뜻을 같이했다고 양측이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원칙에 시 주석이 동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중국의 대이란 군사·경제 지원 중단 등 보다 구체적인 조치는 합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아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러시아와 북한, 이란 등 국제 현안을 논의했다고 밝힌 반면, 중국 측 발표에서는 러시아와 북한 관련 내용이 빠졌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무역 분야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거의 없었다고 평가하며 양측 발표문의 차이는 핵심 무역 갈등 사안에서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해결 의제들이 오는 11월 중국 선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12월 미국 마이애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두 정상 간 회담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했다. < 이유미 기자 >
무인기 공작을 벌여가며 전쟁을 유도했던 내란수괴를 배출해낸 국민의힘에 묻고 싶다. 과연 언제까지 ‘북한 장사’를 모든 합리적 논쟁을 덮어버리는 만능 키로 사용하려 하는가.
인사청문회만 열리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있다. 국민의힘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지 오래된 마법의 주문, “대한민국의 주적은 누구입니까”다.
이 주문을 한 번 외우고 나면 묘한 마법이 시작된다. 북한이라는 두 글자만 등장하면 복잡한 정책과 현안도 어느새 ‘북한 눈치 보기’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복잡한 현실을 설명하기보다, 북한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논쟁을 끝내버리는 것이다.
물론 야당이 정부에 안보 기조와 대북 정책을 묻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안보를 묻는 것과 북한을 만능 정치 프레임으로 소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모순은 더욱 선명해진다. 2019년 탈북 어민 북송 당시에는 북한으로 돌려보냈다는 이유로 “북한 눈치를 본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생포된 북한군이 한국행 의사를 밝히자, 정부는 포로의 안전과 외교적 민감성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았는데, 외신 보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사실이 알려지자 이번에도 “북한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나왔다.
북한으로 돌려보내도 눈치 보기이고, 한국으로 데려와도 눈치 보기라면 무엇을 해도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소재를 끌어와 모든 사안을 같은 정치적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방식에 있는 것은 아닐까.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면, 결국 남는 것은 안보가 아니라 정쟁뿐이다.
그런 논란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군 포로 송환은 외교·안보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예민한 의제”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비공개 협의 내용을 공개한 데 대해 “징 치고 춤추며 온 세상에 광고했을 그들 입장에서는 정부의 비공개 노력이 이해가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북한 눈치 보기’에 대해서도 “소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안보를 해치는 사람을 살인자나 매국노라 부른다”며, 북한군 포로 문제를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삼는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안보는 중차대하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 또한 실재한다. 그러나 정부가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북한 눈치 보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상대가 누구냐가 아니다.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어떤 원칙과 법적 절차를 밟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국익에 부합하는지를 냉정하게 따져 묻는 일이다.
‘주적’이라는 단어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안보가 저절로 단단해지는 것도 아니다. 북한의 위협을 직시하는 것과 북한을 국내 정치의 도구로 소모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무인기 공작을 벌여가며 전쟁을 유도했던 내란수괴를 배출해낸 국민의힘에 묻고 싶다. 과연 언제까지 ‘북한 장사’를 모든 합리적 논쟁을 덮어버리는 만능 키로 사용하려 하는가. < 홍순구 시민기자 >
법관 평가의 진정한 기준에 대한 통렬한 질문 “사법농단 사태 때 당신은 어디에 서 있었는가” 재판관은 자기 판단에 대한 확신뿐 아니라 무사무욕, 비판적 성찰, 관용과 겸손 갖춰야
최근 대법관 임명 절차에서 불거진 갈등 속 좋은 사법부의 모습에 대한 또 다른 탐색 ‘사법부는 국민의 것’ 시각에는 미치지 못해 독립한 사법권력 국민 위에 군림해서는 안돼
대한민국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와 이어진 탄핵 정국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헌법이 무엇이며, 사법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됐다. 여기에 최근 청와대와 조희대 대법원장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법관 임명 절차를 둘러싼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사법 권력의 독립성과 민주적 정당성은 어느 때보다 격렬한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김기영 전 헌법재판관의 『헌법을 생각하는 일』(사회평론, 2026년 5월)은 바로 이런 시기에 법관 스스로 사법부를 돌아보며 던지는 성찰의 기록이다. 저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충격적인 헌정 위기를 겪은 뒤, 22년간의 법관 생활과 6년간의 헌법재판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포함한 법관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되돌아보고 사법부의 자성을 촉구했다.
법관 인사권 틀어쥔 대법원장이 법원 독립을 위협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인상적인 문제의식은 법관을 평가하는 진정한 기준이 무엇인가에 관한 저자의 통렬한 질문이다. 앞으로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 후보자를 평가할 때 출신 연구회나 학벌, 고향, 종교, 재산 같은 표면적인 조건을 따지기보다 훨씬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곧 “사법농단 사태 때 당신은 어디에 서 있었는가. 권력의 압력 앞에서 법관의 독립을 지켰는가. 동조했는가. 침묵했는가”라는 질문이다.
과거 사법농단은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 참담한 사건이었다. 권력이 사법을 압박하던 시기에 법관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그들의 가치관과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평상시의 경력이나 말보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했는지가 한 인간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듯이, 법관 역시 헌법적 위기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가 그가 말하는 ‘사법부 독립’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험대가 된다.
저자는 법원의 독립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법관 인사권을 지적한다. 대법원장이 법관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에서는 법관들이 재판할 때 인사권자의 의중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그것만으로도 법관의 독립은 구조적으로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법관 개개인의 용기와 양심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법관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에 참석, 입술을 다물고 있다. 2026.8.5.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 제도와 문화의 차이
저자는 같은 사법부에 속하면서도 헌법재판소가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소통 문화를 통해 재판관 개개인의 독립성을 지켜내는 모습을 소개한다. 권위적인 직급 대신 각자가 정한 호(號)를 부르고, 가장 늦게 임명된 막내 재판관을 ‘총무’로 지정해 평의에서 먼저 발언하게 하는 관행 등이 좋은 사례다. 선배 재판관들의 의견을 먼저 들은 뒤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젊은 재판관부터 자신의 논리를 펼치게 함으로써 신임 재판관이 위계에 눌리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와 문화의 차이는 단순한 조직문화의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그것이 헌법적 판단의 과정과 결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법관의 독립은 법률상 선언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 속에서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구조적·문화적 차이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25년 5월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일과, 같은 해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전원일치 결정을 내린 일을 제시했다. 두 사건의 법적 쟁점과 재판의 성격은 서로 달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개별 판결의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헌법기관 내부에서 재판관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지점이다.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7차 변론이 열리고 있다. 2025.2.11. 연합
재판관의 덕목은 무사무욕, 비판적 성찰, 관용과 겸손
총 8부로 구성된 이 책은 사형제, 양심적 병역거부, 집회의 자유 등 헌법재판소에서 다뤘던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헌법적 판단의 의미를 되짚는다. 저자는 결정문이라는 건조한 텍스트 뒤에 숨어 있던 재판관들의 치열한 고민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으며 자신의 판단이 다수의견이 되지 못했던 경우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당시에는 소수에 머물렀던 생각이 언젠가 헌법의 발전을 위한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솔직하게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동료 재판관들의 판단을 매섭게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은 비판의 칼날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데 있다. 저자는 재판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만이 아니라 무사무욕, 비판적 성찰, 관용과 겸손이라고 강조한다. “확신에 차 있는 사람보다 의심하는 사람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사람보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라는 그의 태도에서는 세속의 권력을 다루는 법관이라기보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에 가까운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저자는 법관의 양심이 개인적인 취향이나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오직 헌법이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헌법재판관 선임의 민주적 정당성, 재판관 구성의 다양성, 사건 처리 속도의 일관성 등 헌법재판소 자체의 제도적 쇄신도 요구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라기보다 ‘좋은 법관이란 어떤 사람인가’와 ‘좋은 사법부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함께 묻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오늘의 대한민국 사법부에 던지는 매우 성실하고 양심적인 자기성찰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바로 그 성실한 성찰 때문에 오히려 책의 한계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권의 문제와 사법부 내부의 위계적 구조를 비판하면서도, 그 대안을 주로 법조 엘리트 내부의 권력 배분과 법관 개개인의 직업윤리, 양심과 용기의 강화에서 찾는다.
‘사법부 독립’은 민주주의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사법의 문제가 과연 그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낳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헌정 위기를 거치고, 최근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에서 대법관 제청과 임명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은 이 질문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대법관 재제청을 둘러싼 논란은 한편으로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사법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묻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의 임명권과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민주적 정당성이 사법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도 제기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손봉기 후보자에 대한 재제청 요구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거부 입장을 밝혔고, 청와대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추천된 후보자들에게 법령상 근거 없이 개별적으로 연락해 사퇴 의사를 묻는 등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에 기계적으로 종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청와대의 논지다. 반대로 대법원 쪽은 제청권과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최종적으로 옳은지를 떠나, 이번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 헌법이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적 정당성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준다.
더구나 대법관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은 청와대도 대법원도 아니다. 재판받아야 하는 국민이다. 사법부의 독립이 중요한 이유도 결국 국민이 권력이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법원에서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사법부 독립’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법부 권력은 국민에게 얼마나 열려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을 읽은 뒤 남는 질문이 있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면, 독립된 사법부는 누구에게 책임을 지는가. 그리고 사법부의 권력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 김기영 전 재판관
저자의 시선은 여기까지 충분히 밀고 나가진 않는다.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가 사법의 영역에서는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시민이 재판과 사법행정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면 배심·참심제와 같은 시민의 재판 참여를 확대하는 문제, 법원 행정과 인사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문제 등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
물론 이것을 저자 개인의 결함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오랫동안 법조 엘리트로서 훈련받고 사법부 내부에서 생활해 온 사람에게 사법부를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바라보는 것과 사법부를 ‘국민의 것’으로 바라보는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던지는 “국난의 순간 당신은 어디에 서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오늘도 유효하다. 오히려 이 질문을 한 단계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사법농단과 헌정 위기의 순간에 법관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묻는 것에서 더 나아가, 평상시 사법 권력이 국민에게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하나 더 보태야 할 질문 “사법부는 누구의 것인가”
사법부 독립은 권력으로부터 사법부를 떼어놓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법관들이 외부의 압력 없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그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또 하나의 폐쇄적 권력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하나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저자는 법관에게 묻는다. 국난의 순간 당신은 어디에 서 있었는가. 이제 우리 시민은 그 질문에 하나를 더 보태야 한다. 사법부는 누구의 것인가.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우리에게 남긴 성찰을 다음 단계로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 < 오태규 언론인 >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부 주최 공식 환영 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6.7.8 [공동취재 제공] superdoo82@yna.co.kr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뉴욕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한미 정상이 오늘 오후 7시 20분부터 약 30분 동안 회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위 실장은 "회담에서 양 정상은 최근 두 나라 간 투자 사업 논의가 큰 진전을 이룬 것을 환영했다"고 전했다.
두 정상은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를 토대로 핵잠수함 연료 문제, 농축 재처리 문제, 조선업 협력 문제, 전시작전권 전환 등의 분야에서 한미 간 협력을 심화하고자 하는 공동의 의지를 확인하고 후속 협의를 해나가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 유엔 기조연설 =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6.9.23 [공동취재 제공] xyz@yna.co.kr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재확인했으며, 한미 정상은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로서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트고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도록 긴밀한 소통을 해나가기로 했다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다음날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이 한중 관계를 포함해 역내 정세에 중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성공적 개최를 기원했다. < 임형섭 설승은 기자 >
이 대통령, 트럼프와 30분 정상회담…“북-미 대화 기여해달라”
전작권·핵잠 연료 등 핵심 현안 논의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유엔총회 참석 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해 소통하기로 뜻을 모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현지 브리핑에서 “22일 오후 7시부터 30분간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며 “회담에서 양 정상은 두 나라 간 전략투자 사업 논의가 큰 진전을 이룬 것을 환영했다”고 말했다.
위 실장은 이어 “22일 발표한 한-미 정상 공동설명자료 토대로 핵잠수함 연료, 농축 재처리, 조선 협력,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분야에서도 협력을 한층 더 심화시키고자 하는 공동의 의지를 확인하고 후속 협의를 해나가기로 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대화 의지를 재확인하고, 한·미 정상은 피스메이커, 페이스메이커로서 대화의 물꼬를 트고 한반도에서의 지속가능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해 나가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또 23일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이 한-중 관계를 포함해 역내 정세에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양 정상은 북-미 대화와 관련한 논의도 나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여해 달라는 기대를 표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며 “지금 어떤 구체성이 있는 연락이 오가는 것 같은 얘기는 없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로 잘 지낸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남북관계는 접촉이 거의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 이를 풀어가면 좋겠다는 취지의 언급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12월에 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곳이 마이애미다. 거기서도 골프를 하면 좋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작권 전환 등 양국 현안도 두루 회담 테이블에 올랐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꽤 많이 시간을 들여서 얘기한 건 전작권이었다. 미국 쪽에 많이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그 문제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하게 됐다”며 “미국의 요지는 조건을 충족해 빨리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진 것은 대미투자 협의가 진전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로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곧 이를 발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미 간) 투자 협의 전망이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 투자 협의가 진전이 잘 되어 다시 추진을 했고 성사가 됐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