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인트 개헌도 무산됐는데 내란 세력은 복귀 최소한 합의도 못하는데 7공화국 갈 수는 있나 제헌절 의미 퇴색시키는 보완수사권 폐지 갈등 원칙 흔들린 검찰개혁, 예외가 원칙 파괴 하나 권력투쟁 속 정쟁화…숙의 할 수는 있는 건가
14일 서울 광화문스퀘어 대형 전광판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가 나오고 있다. 2026.7.14. 연합
대한민국 헌법 제정·공포를 기념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되새기는 제헌절이 18년 만에 공휴일로 부활했지만, 2026년 7월 17일 마주한 현실은 국경일이라는 단어에 담긴 '경축'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한 12·3 내란을 극복하고 시민의 손으로 국민주권정부를 출범시킨 만큼, 헌법 정신을 다시 세우는 일은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제헌절에 국정과제 1호인 '국민 중심 개헌'을 강조했지만, 새 정부 출범 후 두 번째 맞는 제헌절에도 개헌 논의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그와 더불어 두 대통령의 탄핵을 겪은 6공화국을 넘어 새로운 7공화국에서 살게 될 것이란 기대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삐삐'(무선호출기)조차 없었던 1987년 헌법 체제에 머물러 있다.
그런 가운데 내란에 책임이 있는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계엄에 대한 국회의 통제 강화,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수록, 지역 간 격차 해소와 균형 발전에 대한 국가 의무 명시 등 정치적 합의가 가능한 최소한의 원포인트 개헌마저 지방선거를 이유로 무산시키더니, 윤석열 내란 정부에 부역했던 인사들을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부활시켰다. 윤석열의 체포를 막기 위해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까지 방해했던 정치인들에게 12·3 내란은 이미 과거 한때의 실수쯤으로 취급되는 듯하다.
다행히 선관위 투표용지 사태를 계기로 시민들과 청년층 사이에서 개헌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완전한 내란 청산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올림픽공원 시위를 통해 부정선거 음모론 세력들이 결집하고, 일부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이에 편승하는 현실을 보면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지방선거를 계기로 시도됐던 원포인트 개헌은 향후 더 큰 개헌을 위한 '마중물'이자 최소한의 출발점이었지만, 그조차 무산된 상황에서 저출산·고령화, 기후위기, 지역소멸, 선거개혁, 권력기관 개편, 국민 기본권 등 시대적 과제를 담아낼 전면 개헌을 추진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타임캡슐. 2026.6.25. 연합
제헌절을 더 무겁게 만드는 검찰개혁
더욱이 윤석열 정부 3년간 조작 수사·기소 등 법비(法匪)들의 만행을 지켜본 민주당 등 제정당과 시민사회가 '빛의 혁명' 광장에서 합의한 검찰개혁의 기본 정신조차 흔들리는 현실은 제헌절의 의미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출범을 불과 3개월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보완수사권 '존치' 주장은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를 통한 검찰개혁의 핵심 원칙을 흔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완수사권이라는 '뒷문'을 열어 수사관이 그대로 남게 되는 공소청이라면, 어렵게 수사·기소 분리를 왜 하는 것이며 중수청·공소청은 왜 나누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수많은 검찰의 조작수사 사례, 보완수사 실패 사례에는 침묵했던 기득권 언론들이 검찰개혁 막바지에 이르러 유독 '장윤기 사건'을 보완수사권 존치의 근거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데에 여당 의원들까지 호응하는 모습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수사에서 피해자를 보호할 안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보완수사권 폐지로 우려되는 현장의 공백도 보완수사요구권을 촘촘하게 설계하는 등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 검찰의 폐단을 개혁하자는데, 경찰의 수사가 문제라면서 이를 확대하는 것은 논점을 벗어난다. 경찰 수사에 문제가 있다면 피해자 보호 절차와 수사 시스템을 보완하는 게 우선이지, 그것이 곧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할 이유 자체는 될 수 없다.
살인 누명을 쓰고 15년을 복역했던 부녀가 지난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일명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다. 이들 부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장기 복역한 이유는 검찰의 조작 수사 때문이었다. 검찰은 지적 장애가 있는 딸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했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은폐한 사실이 법원에서 확인됐다. 보완수사권 존치론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하는 '정의로운' 형사부 사건에서도 조작이 이뤄진다는 점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경찰 수사를 통제하거나 보완하는 절대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5일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가운데 진보당 손솔 의원이 준비한 '수사 기소 분리 원칙에 따른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 검토 및 의견' 문서가 놓여 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현재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2026.7.15. 연합
더군다나 최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여성과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 등에 한해 보완수사권을 인정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지만, '등'이라는 표현을 남겨 예외를 확대할 여지를 두고 있다. 2022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윤석열·한동훈 검찰이 시행령을 통해 수사 범위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확장했던 사례를 떠올리면 우려가 적지 않다. 윤석열 정권 당시 검사들이 '등' 한 글자만 가지고도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의 자택 문을 '빠루'로 뜯어가며 명예훼손 혐의 사건까지 무차별적 수사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예외를 통한 원칙 파괴가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애초 검찰개혁은 정권의 하수인이 된 검찰이 기소권, 영장청구권, 수사권을 독점하면서 발생한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시작됐다. 대통령도 탄핵하는데 검사는 잘못을 저질러도 탄핵은커녕 징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무소불위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수사·기소를 분리해 상호 견제하고 보완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경찰 수사의 일부 문제를 이유로, 개혁 마무리 단계에서 사실상 수사권과 다름 없는 보완수사권을 부여하자는 것은 개혁의 원칙 자체를 흔드는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은 원칙과 방향을 지키면서 현실을 놓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문제는 지금 여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논의가 그 균형점을 찾기 위한 숙의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로 원칙 자체를 흔든다는 점이다. 1987년 헌법을 넘어서는 일도, 검찰 권력을 헌법 정신에 맞게 재설계하는 일도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권력은 분산되고, 서로 견제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 원칙이 흔들린다면 공휴일이 된 제헌절은 그저 하루 쉬는 날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18년 만에 공휴일이 된 제헌절이 그다지 고맙지도 반갑지도 않은 이유다. < 김성진 기자 >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장 큰 약속 '나라법 만든 날'
[오늘의 토박이말] 나라법 만든 날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나라법 만든 날
오늘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나라법 만든 날'입니다. 그림 속 국회의사당을 뒤로 한 채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모여 회의하는 모습과 함께 '헌법(나라법)'이라고 쓴 법전이 있습니다. 단단하면서도 굳은 느낌의 글꼴로 된 법전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위에 온 백성이 평화롭고 공평하게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한 주춧돌을 놓았다"는 든든한 안도감과 뭉클한 자부심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가만히 피어오릅니다.
제헌절, 다시 돌아온 국경일
17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최고의 약속을 세운 뜻깊은 '제헌절'입니다. 1948년 7월 17일, 나라를 세우고 운영하는 가장 바탕이 되는 법을 만들어 널리 알렸습니다. 올해는 제헌절이 다시 국가기념일이 된 첫 해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큽니다. 나라 곳곳에서는 헌법의 뜻을 되새기는 기념행사와 전시,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평화롭게 지켜주는 이 고마운 날을 맞아 오늘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볼 토박이말은 바로 '나라법 만든 날'입니다.
최고의 법을 가장 쉬운 목소리로 전하는 '나라법 만든 날'
아이들이 "제헌절이 무슨 날이야?"라고 물으면 어떻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보통은 "헌법을 만든 날이란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시 묻습니다. "헌법은 뭐예요?" '제헌절'보다 '헌법'이 더 어렵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제헌'을 '헌법을 만들어 정함'이라고 풀이합니다. 그리고 '헌법'은 '국가 통치 체제의 기초에 관한 각종 근본 법규의 총체. 모든 국가의 법의 체계적 기초로서 국가의 조직, 구성 및 작용에 관한 근본법이며 다른 법률이나 명령으로써 변경할 수 없는 한 국가의 최고 법규이다'라고 아주 상세하고 엄숙하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어린이나 우리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제안해 봅니다. 헌법을 '나라법'이라 풀어 쓰고, 제헌절을 '나라법 만든 날'이라 함께 불러보면 어떨까요? 나라를 어떻게 세우고 다스릴지, 국민 모두가 안전하게 지켜야 할 가장 크고 바탕이 되는 법이라는 뜻이 단번에 환하게 들어오지 않습니까?
어려운 이름 곁에 쉬운 풀이를 함께
'제헌절'이라는 이름을 바꾸자는 뜻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써 온 이름에는 역사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헌절(나라법 만든 날)'처럼 쉬운 풀이를 함께 쓰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복절'을 "나라 찾은 날", '한글날'을 "한글 기림날"이라고 풀이해 주듯, '제헌절'도 '나라법 만든 날'이라고 함께 풀어 쓰면 아이들도 뜻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은 뜻이 바로 그려질 때 더 오래 살아남습니다.
쉬운 말이 더 많은 사람을 이어 줍니다
기림날(기념일)은 날짜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 그날을 기리는지 함께 이해할 때 비로소 모두의 기림날(기념일)이 됩니다. 올해처럼 제헌절이 다시 국경일이 된 첫 해에는, 쉬는 날이라는 사실보다 나라의 바탕이 되는 법을 세운 날이라는 뜻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헌절'과 함께 '나라법 만든 날'이라는 쉬운 풀이를 함께 써 보기를 권합니다.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풀어 주는 일은 우리말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우리말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나누기]
여러분은 아이가 "제헌절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또 '제헌절(나라법 만든 날)'처럼 어려운 한자말 곁에 쉬운 풀이말을 함께 쓰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들려주세요.
[한 줄 생각]
"쉬운 말은 어려운 뜻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게 하는 다리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나라법 만든 날
뜻 : 제헌절을 누구나 알기 쉽게 풀어 쓴 말
쉬운 풀이 : 나라의 가장 큰 법인 나라법(헌법)을 만든 것을 기리는 날
보기: 올해 나라법 만든 날(제헌절)에는 아이들과 함께 우리나라 나라법을 왜 만들어졌는지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 이창수 기자 >
'윤 탄핵 반대' 헌법학자들 강단에서 뭘 가르칠까
제헌절 앞두고 돌아보는 헌법학자들 '비상계엄은 합법' 윤석열 헌법 제대로 못배워 헌법이론·역사 제대로 못 배우면 '제2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가 인용됐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알려진 직후 서울 종로구 계동 헌재 앞에모여 탄핵 인용을 염원했던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2025.4.4 연합
17일은 제78주년 제헌절이다. 1948년 7월 17일, 우리나라가 최고 규범인 헌법을 만들어 공포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헌법이 있어야 국가가 있는 것이고 국가가 있어야 헌법이 있는 것이므로, 대한민국 헌법은 이 나라가 존재하는 법적 기초이다. 따라서 제헌절은 국기(國基)를 세운 것을 기리는 날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헌절은 1949년 국가기념일로 법제화 되어 1950년부터 공휴일로 시행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주40시간 근무제(주 5일제)를 도입하면서 “공휴일이 많으면 경제가 위축된다”는 이유로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했으나 민주주의 가치를 되새기고 국민들에게 정당한 휴식권을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올해 법정공휴일로 환원했다. 18년 만에 원상 복구된 것이라 환영할 일이다.
더욱이 올해는 ‘재판소원제’가 국회에서 입법돼 시행된 원년(元年)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뜻이 깊다. 재판소원제는 지난 2월 27일 관련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3월 12일 시행된 제도로 확정된 법원 재판이 헌법적 문제점을 지님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헌법재판소가 심사해 재판 취소까지 할 수 있게 한 헌법소원 제도이다. 대법원과 상당수의 정치인·법조인들이 재판소원제 도입을 반대하며 강력히 저항했으나 국회를 통과해 입법으로 실현됐다.
필자는 찬반 논란이 한창일 때 “재판소원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칼럼을 여러 차례 언론매체에 기고했는데, 그 때를 돌이켜보니 감회가 깊다. 당시 반대론자들은 재판소원제가 도입되면 금방이라도 나라가 결딴날듯 호들갑을 떨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큰 혼란 없이 운영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 제도가 잘 정착돼 국민의 기본권이 사각지대 없이 ‘실효성 있게’ 보장될 수 있도록 관련 기관과 공무원들이 책임감 있게 일해 주기 바란다.
헌법은 우리나라 법 중에서 최고의 기본법이므로 법치질서를 세우고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헌법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국법질서를 바르게 세워야 한다는 엄중한 소명의식을 새로이 해야 할 것이다. 이참에 몇몇 헌법학자들을 돌아보자.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와 앉는 헌법재판관들. 2026.3.26 연합자료사진
필자는 1976년 법대 1학년 때 김남진(1932~2025) 교수(단국대·경희대·고려대)로부터 헌법학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김 교수는 유신헌법에 실망했다며 나중에는 주로 행정법 강의를 맡았다. 지난해 작고하셨는데 젊은 시절 강단에서 헌법학의 의미, 헌법제정 권력의 개념 등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하지만, 당시 법대생들은 국가고시 합격 등을 목표로 박정희 정권이 만든 유신헌법을 암기 위주로 공부했기 때문에 헌법학의 학문적 본령(本令)과 정수(精髓)를 제대로 공부했다고 보기 어렵다.
당시 일부 법학자들은 유신헌법을 적극 지지하는 등 어용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는데, 특히 한태연(1916~2010) 교수(서울대·동국대·한양대)와 갈봉근(1932~2002) 교수(한양대·중앙대·동아대)는 유신헌법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전해지며,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당시 법대생들은 주로 문홍주(1918~2008) 교수(성균관대)와 김철수(1933~2022) 교수(서울대)의 저서로 헌법 과목을 공부했는데, 문 교수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헌법심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유신정권에 협력했으며, 제5공화국 헌법을 제정하는 데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철수 교수와 권영성(1934~2009) 교수(서울대), 한상범(1936~2017) 교수(동국대), 계희열(1936~ ) 교수 등은 유신헌법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일부 학자는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엄혹한 독재체제에서 유신헌법을 비판하면 탄압을 받게 될 것이기에 아예 입을 다무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 헌법학자들이 저술한 헌법 해설서들에는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의 헌법학자들에 대해서도 보자. 일부 헌법학자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행한 비상계엄 선포를 옹호하거나 지지, 또는 묵인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각하 또는 기각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허 영 교수(경희대·연세대)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은 ‘사기탄핵’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헌법재판관들은 그의 의견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영수 교수(고려대)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중대한 불법이 아니어서 탄핵이 합당하지 않다면서 헌재 재판관 3~4인이 기각 또는 각하 의견을 선택해 탄핵 소추가 기각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차진아 교수(고려대)도 탄핵이 법적으로 합당하지 않다면서 탄핵 반대론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또 지성우 교수(성균관대), 이인호 교수(중앙대), 이호선 교수(국민대), 최희수 교수(강원대), 김상겸 교수(동국대), 정현미 교수(이화여대), 김학성 교수(강원대), 황도수 교수(건국대) 등도 탄핵이 부당하다며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다수의 헌법학자들이 탄핵 반대의 입장을 취했고, 많은 교수들이 탄핵 반대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반면 김선택 교수(고려대), 김종철 교수(연세대), 이헌환 교수(아주대), 임지봉 교수(서강대), 전광석 교수(연세대), 정태호 교수(경희대), 황치연 교수(홍익대) 등은 윤 대통령의 탄핵이 법적으로 합당하다는 입장을 취했는데, 헌재가 이들의 견해를 수용해 인용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 사전 심사를 통해 26건을 각하했다. 2026.3.25 연합 자료사진
학자들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학문적 소신에 따라 견해를 밝힐 자유를 지닌다. 우리 헌법 제2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일부 헌법학자들이 12·3 비상계엄을 옹호·지지 또는 묵인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을 정면으로 반대했던 것에는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 사회법 전공인 내가 보기로는 그렇다.
2025년 4월 4일 헌재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탄핵을 인용한 것도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이 명확하고 윤 대통령의 행위가 충분히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을 옹호·지지 또는 묵인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을 정면으로 반대했던 헌법학자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논리의 합리성 여부를 심각하게 뒤돌아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껏 이들 가운데 판단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한 사람은 없는 듯하다. 이들이 교단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헌법학을 왜곡·편향되게 가르치고 있지는 않을지 염려되는 바 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판정에서 “계엄선포권은 대통령의 절대적·전속적 권한이므로 12·3 비상계엄 선포는 합법이다”라고 줄곧 강변하는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아마도 그가 고시공부를 하며 헌법을 공부할 때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에 대해 잘못 배운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말하자면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 ‘대통령의 영도자적 지위’, ‘통치행위론’ 등 오도된 궤변에 치중해 헌법을 잘못 배운 탓이라고 생각한다.
선생이 잘못 가르치면 학생을 망치게 되고, 그 학생은 장래에 나라를 망치게 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헌법학자들은 젊은 학생들에게 헌법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정도(正道)와 정론(正論)을 가르쳐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학생들이 헌법을 학문으로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엉터리 궤변적 이론을 배우게 되면 나중에 사회지도층이 됐을 때 ‘제2의 윤석열’이 나오지 않을까 두렵다. < 이선신 기자 >
"폐지 당론으로 알았는데 이제와서 아니라니" "보완수사권 필요하다는 법무장관 사퇴하라" 홍기원 등 발의한 보완수사권 존치 법안 비판
"그놈의 '등'으로 장난치지 말고 공약 지켜라" "검찰이 김학의 성범죄 피해자 보호 하더냐" "보완수사권 존치론자들 법사위서 제외하라"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당원 단체들과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수사·기소 분리 대선 공약을 지켜달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7.16. 연합
더불어민주당 당원단체들이 16일 "당장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론으로 확실하게 흔들림없이 정하라"며 여당 내에서 보완수사권 폐지를 두고 '신중론'이 제기되는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보완수사권을 그대로 두겠다는 것은 응원봉 광장의 시민을 배신하는 것이고, 당원들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과 8개 당원단체(민민운, 세종강물, 민대련, 파란고양이, 부산당당, 대구만찬, 민경네, 더민실)는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소청, 중수청 출범까지 77일 남은 시점에 갑자기 보완수사권 폐지 당론을 부정하는 민주당에 묻는다"며 "당원이 그렇게 바보로 보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모두가 다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론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그게 당론이 아니었다는 건가"라며 "거대 공당이 이렇게 가볍게 당론을 부정하는 행태를 정말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굳이 보완수사권 폐지 당론을 부정하는 것이냐"며 "당론 위배될 위험 없이 검사의 보완수사권 필요성 주장을 맘껏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냐"고 말했다.
이들은 "이제 와서 보완이란 단어를 붙인 수사권을 검사에게 그대로 두겠다는 것은 응원봉 광장의 시민을 배신하는 것이고 당원들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당장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론으로 확실하게 흔들림없이 정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향해서도 "1년 동안 뭐했느냐"면서 "법무부 장관과 차관은 지속적으로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이제는 전건송치(경찰 등 1차 수사기관이 수사한 모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것)를 들고 나오는가. 검사가 굳이 그 모든 사건을 종결 권한을 가져야지 김앤장이 장사하기 더 편하다고 김앤장 출신 민정수석이 부탁이라도 하던가"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정 장관에게 "사퇴하라"며 "검사 수사권 옹호론자는 응원봉 광장의 시민이 원한 법무부 장관이 아니다"라고 했다.
15일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가운데 진보당 손솔 의원이 준비한 '수사 기소 분리 원칙에 따른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 검토 및 의견' 문서가 놓여 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현재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2026.7.15. 연합
보완수사권 일부 존치 법안(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홍기원 의원과 법안에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고민정·곽상언·김남희·문진석·모경종·민홍철·박균택·박희승·이소영·주철현 의원 등을 향해서도 "형소법 개정안은 예외적으로 수사권을 주자고 하며 해당되는 사건을 열거한 후 '등'을 붙였고, 해당되는 피해자를 열거한 후 또 '등'을 붙였다"며 "그놈의 '등'으로 어떤 사건이나 어떤 피해자나 모두 검사가 수사권을 가질 수 있는 거 정말 모른 척 할 거냐"고 했다.
"2022년 4월에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를 경제범죄, 부패범죄에 한하는 개혁 법안을 올렸으나 박병석 국회의장이 '등'을 붙이자고 강요해서 누더기 법안이 통과됐고, 그 이후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시행령으로 수사권을 무한 확장해서 남용하는 길을 열어주게 됐고, 결국 윤석열 정부는 내란까지 일으켰다"면서 "'등'으로 장난치지 말고 공약을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윤기 사건'을 매개로 보완수사권 존치를 주장하는 데 대해선 "성범죄 피해자 보호해야 한다며 검사한테 수사권 줘야 한다고 김남희·김동아 의원이 기자회견을 했던데, 검사가 김학의 검사의 엽기적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했느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후배 검사를 성폭행했는데도 조직 내에서 아무 처벌 없이 사표만 받고 끝내는 검찰이다"라며 "경찰 수사에 문제가 발견되면 다른 곳에 수사하게 하면 되지 왜 꼭 검사인가"라고 반문했다.
한병도 당대표 직무대행을 향해선 "보완수사권 존치를 주장하는 분들을 법제사법위원회 전방에 배치한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검찰개혁을 선도할 선수들을 법사위원으로 선임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원들은 결코 우매하지 않다"면서 "정치인의 행적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기억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끝으로 "수사·기소 분리를 반드시 지켜달라"라며 "민주당과 대통령이 공약한 것은 검찰개혁이다. 법이 최후의 보루가 되지 못하고 전관예우라는 허울 아래 전관카르텔 범죄가 판치는 이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수사·기소 분리라는 대원칙은 무너지지 않아야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 김성진 기자 >
온라인 플랫폼 규제까지 통상 문제화하는 미국 정보통신망법, 온라인 플랫폼법까지 시비 대상 온갖 불법 불공정으로 얼룩진 비리 기업 쿠팡 플랫폼 사업자에 더 강한 공적 책임 묻는 온플법 미국 플랫폼 자본 어떻게 다룰 것인가 시험대
작년 12월 24일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일명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 7월 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불법 정보의 범위를 확대하는 법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 조장, 폭력과 차별 선동도 포함된다.
허위조작정보 역시 규제 대상이다. 불법 정보 및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미국은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유튜브, 메타, 엑스 같은 미국 플랫폼에 한국 정부가 직접적인 관리 책임을 지우지 말라는 얘기였다.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조이트 팩트시트(공동설염자료) 후속 협의에 참석한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왼쪽)과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가 포즈를 취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25.12.16 [공동취재=연합]
정보통신망법 최종 시행령에서 빠진 검색서비스와 오픈마켓
미국은 이제 자동차 관세나 농산물 시장 개방만으로 한국을 압박하지 않는다. 디지털 플랫폼, 데이터, 클라우드, 지도 정보, 망 사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까지 전부 통상 문제로 끌어들인다. 지난 11월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도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은 미국 기업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고, 디지털서비스 관련법과 정책에서 불필요한 장벽을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거기에는 망 사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 위치정보·개인정보의 국경 간 이전 문제가 명시되어 있다. 미국은 한국의 디지털 주권을 통상 장벽이라고 부른다.
현재 미국이 문제 삼는 대상은 한두 개가 아니다. 정보통신망법,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 망 사용료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개인정보보호법의 국외 이전 규제, 지도·위치정보 반출 제한, 공공 클라우드 보안인증, 국가핵심기술 관련 외국 클라우드 제한, OTT의 방송규제 편입 논의까지 전부 걸려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의 2026년 무역장벽보고서는 한국의 망 사용료 법안, 위치정보 반출 제한, 개인정보 국외이전 규제, 온라인 플랫폼 규제, 공공 클라우드 보안인증을 줄줄이 문제 삼았다.
애초 정보통신망법 시행령안은 규제 대상을 넓게 잡아 검색서비스와 오픈마켓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쿠팡 같은 온라인 장터도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최종 시행령에서는 검색서비스와 오픈마켓이 빠졌다. 미국의 압력을 의식한 부분 후퇴라고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쿠팡이 정보통신망법 전체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쿠팡을 제대로 손보려면 다른 칼을 써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 공정거래법, 표시광고법, 전자상거래법, 근로기준법, 그리고 온플법이 그 칼이다.
EU(디지털시장법)는 하는데 우리(온플법)가 못할 것 없지 않나
정부와 여당은 정보통신망법 말고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을 별도로 추진해 왔다. 온플법의 핵심은 사후제재 중심의 공정거래법을 보완하는 것이다. 대형 플랫폼은 단순한 시장 참여자가 아니다. 검색 순위, 추천 알고리즘, 결제 구조, 리뷰 노출, 광고 단가, 정산 방식, 판매자 퇴출 여부까지 좌우한다. 플랫폼은 시장 안에 있는 기업이면서 동시에 시장의 규칙을 정하는 준통치자다. 그러므로 플랫폼에 대해서는 일반 기업보다 더 강한 공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이 온플법의 정당성이다.
미국은 온플법을 EU 디지털시장법(DMA)의 한국판으로 본다. 위법 행위가 실제로 발생한 뒤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지배력을 가진 플랫폼의 특정 행위를 미리 금지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전규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기업 차별이라는 것이다. 아니다. 법 적용 결과 미국 기업이 많이 포함될 수는 있다.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의 상당수가 미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규제가 곧 차별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구글, 애플, 메타, 아마존, 넷플릭스, 쿠팡이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한국 법의 규율을 받아야 한다.
EU의 디지털시장법을 보라. 미국 빅테크는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 정부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EU는 물러서지 않았다. 2025년 4월 EU 집행위원회는 애플과 메타가 DMA를 위반했다고 판단했고, 애플에 5억 유로, 메타에 2억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백악관이 이를 비판했지만 EU는 법 집행을 계속하고 있다. 유럽이 할 수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 미국이 싫어한다고 해서 법을 접어야 한다면 그것은 통상정책이 아니라 식민지 행정이다.
과징금 부과로 끝내서는 안될 개인정보 유출 문제
이 대목에서 쿠팡을 다시 보아야 한다. 쿠팡은 자신을 미국 기업 탄압의 피해자처럼 포장한다. 미국 정부와 의회도 그 프레임을 거든다. 7월 1일 미국 하원 법사위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 한국 정부가 쿠팡을 차별적으로 압박했다는 중간보고서를 냈다. 한국 정부는 이 보고서가 일방적 주장에 근거한 것이며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당연한 반박이다. 쿠팡 문제의 본질은 미국 기업 탄압이 아니다. 한국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플랫폼 기업이 한국 소비자, 판매자, 노동자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쿠팡 본사 건물
그렇다면 쿠팡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개인정보 문제, 공정거래 문제, 거래질서 문제, 그리고 노동 문제를 낱낱이 전부 해결하면 된다. 첫째, 개인정보 문제는 최대 과징금 부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과징금은 시작일 뿐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시정명령 이행 여부를 분기별로 점검하고, 외부 독립 보안감사를 의무화해야 한다. 인증키, 접근권한, 로그관리, 외주인력 관리, 침해사고 통지 체계를 전부 다시 뜯어고치게 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책임자의 독립성도 보장해야 한다. 경영진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보안투자를 미루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재발하면 매출액 기준 과징금, 영업정지에 준하는 서비스 제한, 형사고발까지 가야 한다.
둘째, 알고리즘을 열어야 한다. 쿠팡의 검색 순위, 추천 알고리즘, 광고 노출 기준, 자체 브랜드 우대 여부를 독립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영업비밀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다. 플랫폼 알고리즘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장 배분 장치다. 소비자가 무엇을 보고, 판매자가 얼마나 팔고, 누가 퇴출되는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자사우대, 임직원 리뷰, 유료광고와 자연검색의 혼합, PB상품 밀어주기는 엄격히 금지하거나 최소한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
오픈마켓 열어놓고 자기 물건도 팔면서 벌어지는 불공정
셋째, 쿠팡의 오픈마켓 기능과 자기 상품 판매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쿠팡은 장터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그 장터 안에서 자기 상품을 판다. 이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자사우대가 확인된다면 기능분리, 회계분리, 데이터 접근 제한, 심지어 구조분리까지 검토해야 한다. 쿠팡이 시장을 운영하려면 시장 운영자로서 중립 의무를 져야 한다. 중립 의무를 질 수 없다면 자기 상품을 파는 방식에 제한을 받아야 한다.
넷째, 노동 문제는 특별근로감독 수준으로 다뤄야 한다. 새벽배송, 심야노동, 물류센터 노동강도, 하청 배송기사의 실질적 지휘·감독 관계를 전면 조사해야 한다. 하루 배송량, 연속 야간노동, 휴게시간, 산재 은폐 여부를 공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중대재해가 반복되면 해당 물류센터나 배송권역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 쿠팡은 “우리는 직접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하청 뒤에 숨지 못하게 해야 한다. 로켓배송이라는 브랜드가 하나라면 책임도 하나여야 한다.
진보당 윤종오 의원이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와 함께 탈법,꼼수 쿠팡 대리점 계약서 규탄 및 국토교통부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6.7.13
다섯째, 미국 정부를 동원한 압박에는 통상으로 맞서야 한다. 쿠팡 투자사인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올해 1월 USTR에 무역법 301조 조사를 청원했다가 3월 철회했다. 청원은 철회됐지만 위협은 남아 있다. 미국 의회 보고서, USTR 보고서, 로비, 301조 청원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의 정당한 법 집행을 미국 기업 탄압으로 몰아가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사건별 법적 근거, 국내외 기업에 대한 동일한 기준, 비교 가능한 해외 집행 사례를 공개해 통상 공세를 정면으로 반박해야 한다.
미국 정부 동원하는 비리 기업, 제대로 손봐야 주권국가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영업하려면 한국 법을 따라야 한다. 한국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관리하고, 한국 판매자의 생계를 좌우하고, 한국 노동자의 밤과 새벽을 사용하는 기업이라면 한국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면책될 수 없다. 오히려 미국 정부를 동원해 한국을 압박한다면 더 엄격하게 봐야 한다. 외국의 의견을 무조건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개념은 명확해야 한다. 과잉규제는 피해야 한다. 혁신을 막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합리적 조정과 굴복은 다르다. 하지만 미국이 싫어하니 법을 접자는 것은 통상주권의 포기다.
이경렬 전 대사
쿠팡 문제는 단순한 기업 비리 사건이 아니다. 한국이 미국 플랫폼 자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시험대다. 개인정보를 흘리고,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판매자를 종속시키고, 노동자를 갈아 넣고, 문제가 생기면 미국 정부 뒤에 숨는 기업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 이런 시점에 강경화 주미대사가 쿠팡과 정보통신망법 등 디지털 규제 현안 협의 목적으로 7월 15-19일간 이례적으로 귀국해 있다. 미국의 압력을 국내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전단계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정신 차려야 한다. 못된 기업을 손보지 못하는 국가는 주권국가가 아니다. 쿠팡 같은 독버섯이 다시 자라지 못하게 하려면 통상주권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 이경렬 전 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