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전선지역에서 대규모 병력 투입돼 작업 중인 북한군. ⓒ 연합
 


국방부가 17일 북한에 군사분계선의 기준선 설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군사당국 회담을 공식 제의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김홍철 정책실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우리 군은 남북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남북 군사당국 회담을 개최해 군사분계선의 기준선 설정에 대해 논의할 것을 공식 제안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회담 일정, 장소 등은 판문점을 통해 협의할 것을 제안했다.

성명에서 국방부는 "최근 북한군이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술도로와 철책선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과정에서 일부 인원들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우리 지역을 침범하는 상황이 지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에 대해 우리 군은 작전수행절차에 따라 경고방송, 경고사격을 통해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퇴거토록 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과 절차에 따른 우리 군의 대응이 지속되면서 비무장지대 내 긴장이 높아지고 있으며, 자칫 남북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원인에 대해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당시 설치했던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상당수 유실돼, 일부 지역의 경계선에 대해 남측과 북측이 서로 인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짚었다.

국방부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군사적 신뢰회복을 위한 제안에 대해 북측의 긍정적이고 빠른 호응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남북 간 군사회담은 지난 2018년 10월 제10차 남북 장성급 회담을 마지막으로 7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시 설치했던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상당수 유실되어 일부 지역의 경계선에 대해 남북 간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면서 "이에 우리 군은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기준선 설정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 김도균 기자 >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아부다비 왕실공항에 도착해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락 퍼스트 아부다비 뱅크(FAB) 비상임 이사겸 이사회 운영위원회 의장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 연합
 


이재명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국빈방문을 시작했다.

남아공 G20 정상회의 등 아프리카·중동 순방을 위해 18일 오전 서울공항을 출국한 이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3시 15분(한국시간 8시 15분) 첫 방문국인 아부다비 왕립 공항에 도착했다.

UAE는 우리나라가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로 이번 방문을 계기로 AI·방산기술·에너지·물류·K컬처·할랄 식품 등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아부다비 공항에는 둔 칼리파 알 무바락 퍼스트아부다비뱅크(FAB) 비상임 이사 겸 이사회 운영위원회 의장, 마이사 빈트 살렘 알-샴시 국무장관, 압둘라 사이프 알 누아이미 주한대사 등이 이 대통령 부부를 영접나왔다.

우리측에서는 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로 미리 와있던 강훈식 비서실장과 박종경 주UAE 대사대리 내외, 장광덕 UAE 한인회장, 김귀현 민주평통 UAE 지회장 등이 나왔다.

UAE측은 이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 1호기가 자국 영공에 진입하자 "국빈 방문 예우 차원"에서 전투기 4대를 출격시켜 호위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도착 즉시 아부다비에 도착해 현충원과 고 자이드 UAE 초대 대통령의 영묘를 방문했다. 저녁에는 재외동포·지상사들과의 만찬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 김경년 기자 >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탑승한 공군 1호기가 17일(현지시간) UAE 상공에서 UAE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탑승한 공군 1호기가 17일(현지시간) UAE 상공에서 UAE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아부다비에 위치한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를 방문해 사원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아부다비에 위치한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를 방문해 작성한 방명록. ⓒ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아부다비에 위치한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를 방문해 사원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UAE 현충원인 '와하트 알 카리마'를 방문해 추모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UAE 현충원인 '와하트 알 카리마'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 위협, 부활한 '총포외교'

● WORLD 2025. 11. 18. 01:5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미국의 뒷마당' 라틴 아메리카에 군사적 개입
미 제국의 역사: 몬로 독트린부터 쿠데타까지
볼리바르 혁명의 도전과 마두로 정권의 문제점

트럼프 1기의 정권교체 측면 지원과 경제 제재
트럼프 재집권과 '마약 전쟁'이란 허구적 명분
콜롬비아, 브라질, 멕시코 압박과 대중적 반발

침략과 전쟁으로 향하는 무모한 시도 막아서야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베네수엘라 해군 순찰선이 2025년 10월 24일 베네수엘라 푸에르토 카베요에서 카리브해 연안을 항해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미국 트럼프 정권의 '미국 우선주의'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신제국주의'의 형태로 나타나며 위험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베네수엘라를 '테러 국가'로 규정하며 노골적인 군사 개입을 위협해 왔지만 최근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트럼프는 CIA의 비밀 작전을 승인하면서 카리브해에 항공모함, 핵잠수함, B-52 폭격기 등 '죽음의 함대'를 전진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기만극 아래 포장되어 있다. 그 실상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전복시키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모든 움직임을 말살하려는 야욕이다. 특히 좌파 정권이 집권한 콜롬비아, 브라질 등에서 관세 폭탄, 이민자 추방, 정치적 공갈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다극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의 쇠퇴하는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현재의 위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정책에 내재한 제국주의적 뿌리와 본성을 직시해야 한다. 19세기부터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간주되어 왔다. 1823년 선포된 '몬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은 그것을 분명히 한 외교정책 선언이었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군사적으로 침략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 외신 기사 화면 갈무리 

 

그 역사는 군사적 개입과 강탈로 점철되어 있다. 1850년대 니카라과 정복 시도부터 1903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콜롬비아로부터 파나마 운하 지대를 강탈한 것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팽창주의는 거침이 없었다. 이러한 전통은 20세기 냉전 시대에 더욱 강화되었다. 1961년 존 F. 케네디 행정부는 피그만 침공을 통해 쿠바 혁명을 무너뜨리려 했다.

 

1973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칠레의 국민이 선출한 사회주의 정부인 살바도르 아옌데(Allende) 정권을 전복시키는 쿠데타를 지원하여 피노체트를 우두머리로 하는 피의 군사독재를 탄생시켰다. 1983년 그레나다 침공 이후 대규모 직접 군사 개입은 줄어들었으나, 라틴 아메리카를 무대로 한 CIA의 은밀한 공작과 경제적 종속과 강탈 시도는 멈춘 적이 없다.

 

1999년 휴고 차베스가 이끈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은 이러한 미국의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석유 자원의 국유화와 사회주의적 실험은 미국의 자본주의 헤게모니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볼리바르 혁명, 특히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아래에서의 혁명 과정은 내부적 모순과 심각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많은 좌파적 비판가들이 지적하듯, 마두로 정권은 차베스 시대의 급진적 민주주의와 노동자 참여의 이상에서 후퇴했다. 경제 위기 속에서 관료주의가 심화하였고, 부패가 만연했으며,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타협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더욱이, 정권에 비판적인 노동운동가와 좌파 활동가들마저 탄압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은 혁명의 성과를 스스로 좀먹어 왔다.

 

그러나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은 이러한 베네수엘라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미국의 목표는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의 회복이 아니라, 반미 정권의 전복과 석유 자원에 대한 통제권 확보다. 미국은 2000년대 초부터 쿠데타 시도, 친미 우파 야당 지원과 조종, 잔혹한 경제 제재를 통해 이 목표를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2017년 베네수엘라 석유 수입 금지 및 금융 시장 접근 차단 조치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700만 명 이상의 대량 이민 사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트럼프 1기 정부는 후안 과이도(Guaidó)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며 노골적인 정권교체를 시도했다. 베네수엘라 민중은 그러한 외세의 난폭한 개입을 거부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며 미국을 규탄하는 집회 - 출처: 트위터(X)

 

하지만, 2025년에 재집권한 트럼프는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며 제국주의적 개입과 정권교체 시도를 다시 시작했다. 미국 패권의 쇠퇴를 받아들이며 곳곳에서 후퇴하는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라틴 아메리카라는 '미국의 뒷마당'에서만은 군사적 개입주의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21세기에 다시 부활한 제국주의적 "총포 외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9월 초, 미국은 베네수엘라 민간 선박을 타격해 11명을 사살했다. 이는 마약 밀수의 명확한 증거 없이 이루어진 무차별 공격이고 민간인 살상이었지만, 그 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나아가 10월 15일, 트럼프는 1만 명의 해병대와 항공모함을 카리브해에 배치하며 "우리는 가서 그들을 죽이겠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사실상의 초법적 전쟁 선포이지만, 그 명분은 완벽한 허구다. 베네수엘라는 펜타닐 생산국이 아니며, 미국 내 마약의 90%는 태평양 경로를 통해 유입된다. 트럼프가 마두로 정권에 5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며 제기한 마약 범죄 연루 혐의와 '솔레스 카르텔(Soles cartel)' 의혹도 실체가 의심스럽고 아무 근거가 없다. 

 

이러한 위협은 베네수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을 "마약상"이라고 매도하며 관세 및 비자 중단을 위협하고, 브라질에는 쿠데타를 시도한 극우 정치인을 석방하라면서 50%의 관세 부과를 협박했다. 아르헨티나 시민들에게는 '미국의 극우적 동맹인 밀레이를 지지하지 않으면 달러 지원을 끊겠다'라며 노골적 정치 개입을 자행했다.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초래하는 인도주의적 피해는 끔찍한 수준이다. 경제 제재의 결과로 민생과 의료보건 체계가 붕괴하면서 식량 부족과 물가 폭등, 영양실조로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들의 건강 악화와 사망률의 폭증이 이어졌다. 최근 카리브해에서 민간 선박 공격으로 어부 6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콜롬비아 연안에서도 미군의 무차별 사격이 이어지고 있다.

 

만약 미국이 실제로 베네수엘라를 침공한다면 이는 대재앙을 낳은 이라크 전쟁의 재현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대외 정책은 미국 내 이민자 탄압과도 연결돼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마약 갱단원'이라고 낙인찍고 대규모 추방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폭력적 갱단처럼 운영되고 있는 것은 ICE(이민세관단속국)이다. 

 

엡스타인 파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전쟁으로 시선을 돌리려 한다는 외신의 풍자 만평 - 출처: 트위터(X)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노골적인 도발은 라틴 아메리카의 진보세력을 결속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2025년 트럼프의 위협이 본격화하면서 브라질 룰라, 콜롬비아 페트로, 멕시코 셰인바움 등 좌파 지도자들의 지지율이 반미 정서와 함께 급등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트럼프의 압박에 "브라질은 그 누구의 후견도 받지 않는다"라며 맞섰다.

 

콜롬비아의 페트로 대통령 역시 유엔 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정권을 정면 공격하고 흔들림 없이 진보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멕시코의 셰인바움 대통령은 트럼프 정권의 압박에 일부 타협하면서도 수출 다변화 등을 통해서 실리를 챙기는 정책으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는 마두로 정권을 비판하는 좌파 세력도 미국의 압박에 함께 맞서고 있다.

 

트럼프 정권의 베네수엘라 및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위협은 쇠퇴하는 제국주의가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면서 다시 전 세계적 개입을 위한 힘을 키우려는 시도이다. 역사적 침략의 전통, '마약 전쟁'이라는 기만적 명분, 그리고 이미 시작된 인도주의적 재앙은 이를 증명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위협은 무고한 민중의 피를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국내에서 지지율이 추락하고, 엡스타인 파일 문제로 궁지에 몰리고, 마가(MAGA) 진영 내부의 분열까지도 번져가는 상황 자체가 트럼프 정권의 무모한 시도를 낳을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보수적이고 부패한 정권일수록 내부적 위기를 대외적 침략과 전쟁을 통해서 돌파하려고 했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군 철수, 모든 개입 중단, 베네수엘라의 자결권 존중을 함께 외쳐야 한다. 이 투쟁은 라틴 아메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팔레스타인에서 집단학살과 강대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투쟁과 연결되어 있으며, 미국과 전 세계에서 반트럼프 투쟁과도 맞닿아 있다. 국제적 관심과 연대만이 트럼프의 '죽음의 함대'가 침략과 전쟁이라는 위험천만한 시도로 향하는 것을 막아설 수 있다.                                               < 전지윤 기자 >

미국 극우의 '집권 설계도'를 보다

● WORLD 2025. 11. 18. 01:4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미국 민주주의 몰락의 이유를 묻다]

게리맨더링·레드맵·마가·프로젝트2025

 

■ 헌법의 경직성 - “개정 불가능한 민주공화국”

 

미국은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 불리지만, 그 핵심인 선거와 대표 제도는 국민의 의사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오래전부터 받아왔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왕정과 귀족정으로의 회귀를 막기 위해 민주공화국의 틀을 견고히 했지만, 그 결과 헌법 개정의 길을 봉쇄했습니다. 상·하원 3분의 2, 그리고 50개 주 중 3분의 2(38개 주)의 의회 동의가 없이는 개정이 불가능합니다. 

 

사실상 혁명이 아니고서는 헌법을 바꿀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동안 정치권은 정파적 이해관계 속에 헌법 개정 논의를 외면했고, 그 결과 연방대법관의 종신 임기조차 손댈 수 없는 제도로 고착화되었습니다.

 

■ 사법의 폐쇄성 - “아홉 명의 종신 권력”

 

미국 연방대법원은 9명의 종신 재직 판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 중 다수가 공화당 집권기에 임명되면서, 보수 성향 인사들이 헌법 해석의 최종 권한을 장악했습니다. 결국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균형추가 아니라, 보수 진영의 정치적 해석을 확정하는 기구로 전락했습니다.

 

■ 선거의 장벽 - “유권자 사전등록이 만든 배제의 민주주의”

 

미국은 ‘유권자 사전등록제(Voter Registration)’를 통과해야만 투표할 수 있습니다. 등록하지 않은 국민은 투표장에 갈 자격조차 없습니다. 이 제도는 오늘날 미국의 투표율을 세계 최하위권으로 끌어내린 주된 요인입니다. 대통령선거는 60%를 넘은 적이 드물고, 하원의원선거는 40% 미만, 지방선거는 20%대에 머무는 경우가 흔합니다. 1980년대 75% 수준이던 등록률은 2022년 메인주 92%, 조지아 64%, 텍사스 58%로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U.S. Election Project, 2023).

 

특히 흑인·라틴계·아시아계 저소득층에게는 사전등록 과정이 구조적으로 불리하게 작동합니다. 얼굴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이나 범법 이력 무증명서 등 경제적 비용이 요구되고, 주중 업무시간만 운영되는 등록 창구는 장시간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참여를 차단합니다. 결국 “참여할 수 있는 시민”과 “참여할 수 없는 시민”을 가르는 장벽이 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100일 연설을 듣기 위해 미국 미시간주 머콤 카운티 현장을 찾은 지지자들이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선거 구호)라는 문구가 새겨진 전광판 아래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2025.4.30 연합
 

■ 게리맨더링 - “10년마다 그려지는 권력의 지도”

 

미국은 10년마다 인구센서스 결과를 바탕으로 선거구를 재획정합니다. 이 권한을 가진 주 의회가 공화당일 경우,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거구를 그려 권력을 재생산합니다. 이른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입니다.

지도가 곧 권력이 되는 시대, 지도 한 장으로 10년의 정치 구도가 결정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행위가 법원에 의해 합법화되어 제도적 불평등으로 고착된 점입니다.

 

■ 다이아몬드의 경고 - “미국은 스스로를 무너뜨릴 것이다”

 

역사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대변동(Upheaval, 2019)』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미국은 두 대양과 우호적인 이웃으로 보호받는 축복받은 나라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우리 자신 때문이다.” (The U.S. is a blessed country... - Upheaval, 2019)

제도는 건재하지만, 시민의식이 제도를 지탱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내부로부터 부식됩니다.

 

■ 레드맵(REDMAP) - “지도 위에서 승리하라”

 

2010년, 공화당 전략가 크리스 얀코스키(Chris Jankowski), 토머스 호펠러(Thomas Hofeller), 칼 로브(Karl Rove)가 주도한 RSLC(Republican State Leadership Committee)는 레드맵(REDMAP, Redistricting Majority Project)을 추진했습니다.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기술로 인구·투표 성향·소득·인종 데이터를 결합해 선거구를 정밀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국 득표율 50.6%, 공화당은 48.7%였음에도 공화당이 234석(54%)을 차지했습니다 (U.S. House of Representatives, 2012). ‘지도 위의 쿠데타’가 완성된 것입니다.

 

■ 셸비 카운티 대 홀더 (Shelby County v. Holder, 2013) - 감시의 문이 닫히다

 

이 판결은 흑인 투표권을 보호하던 1965년 투표권법 제5조의 효력을 사실상 제거했습니다. 대법원장 존 로버츠(John G. Roberts Jr.)는 “미국은 더 이상 제도적 인종차별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Vox, 2019.07.11). 이후 남부 여러 주는 투표소 축소, 조기투표 제한, 신분증 요건 강화 등 새로운 장벽을 세웠습니다 (Brennan Center for Justice, 2014). 결국 ‘레드맵’ 전략은 사법의 보호를 받으며 제도적 기틀을 굳혔습니다.

 

■ 루초 대 커먼 코즈 (Rucho v. Common Cause, 2019) - 게리맨더링의 합법화

 

정당 이익을 위한 선거구 조작이 헌법 위반인지 다투었던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보수 5명 대 진보 4명의 구도로 “게리맨더링은 헌법적으로 금지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Washington Post, 2019.06.27). 결국 사법부는 ‘정치적 게리맨더링’을 합법화했고,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할 마지막 제도적 통제 장치마저 사라졌습니다.

2013년 Shelby County v. Holder가 “연방의 감시를 제거”했다면, 2019년 Rucho v. Common Cause는 “정당의 조작을 합법화”했습니다. 두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붕괴시킨 쌍두마차였습니다.

 

■ MAGA 운동의 정치적 기원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트럼프(Donald Trump, 1946– )가 2015년 대선에서 내건 구호지만, 그 뿌리는 2009년 티 파티(Tea Party) 운동입니다. 작은 정부·감세·반이민·애국주의를 기치로 내건 이 운동은 백인 보수층의 불안과 분노를 조직화했고, 공화당을 전통적 보수에서 극우 포퓰리즘으로 전환시켰습니다 (The Atlantic, 2010). 트럼프는 “그들이 노리는 것은 나 하나가 아니다. 당신들이다.”(CNBC, 2020.09.10)라며,엘리트 워싱턴 기득권 대 ‘잊힌 국민(White Middle America)’ 구도를 확립했습니다.

 

■ Project 2025 - 행정권력 장악의 청사진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은 2022년 900쪽에 달하는 『Project 2025』를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2기 혹은 유사한 보수 정권이 즉시 시행할 행정 매뉴얼입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딥스테이트(Deep State)청산 — 5만 명 공무원 교체 (Politico, 2023.07.28).

2️⃣ 행정명령 통치— 대통령 권한 집중 (Fox News, 2023.08.01).

3️⃣ 기독교 국가주의 사회정책 강화— LGBTQ+ 권리 축소, 여성 재생산권 제한 (New York Times, 2023.08.10).

4️⃣ 기후·환경 정책 폐기— 파리협정 탈퇴, 화석연료 확대.

“Our aim is to restore the soul of America through faith and order.”

— Heritage Foundation, Project 2025 Preface (2022)

이는 ‘신앙과 질서’로 포장된 행정쿠데타의 설계도였습니다.

 

■ LGBTQ+ 권리 축소 - “정체성의 삭제”

 

‘LGBTQ+’는 다음을 뜻합니다.

L(Lesbian): 여성 동성애자,

G(Gay): 남성 동성애자,

B(Bisexual): 양성애자,

T(Transgender): 성별 정체성이 출생 시 지정 성별과 다른 사람,

Q(Queer/Questioning): 기존 성규범 밖의 정체성 혹은 탐색 중인 사람,

‘+’는 Intersex, Asexual, Non-binary 등 그 외 성 정체성을 포괄합니다.

 

Project 2025는 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대신, ‘성(sex)’의 정의를 생물학적 남녀 이분법으로 한정하고,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 조항을 삭제하려 합니다 (Guardian, 2024). 동성혼 지원 중단, 성전환자 의료비 삭감, 교육부 프로그램 폐지 등이 구체적 조치입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정체성 자체를 삭제하려는 시도입니다.

 

■ 여성 재생산권 제한 - “몸의 통제”

 

프로젝트 2025는 낙태 접근을 차단하고 낙태약 우편 발송을 금지하며, ‘양심적 거부’ 조항 확대를 통해 피임 접근권까지 축소합니다 (National Women’s Law Center, 2023). 이는 ‘작은 정부’를 외치면서 가장 개인적인 영역에 개입하는 역설입니다.

 

■ 이념적 배경 - “기독교 국가주의의 복귀”

 

이 프로젝트의 근저에는 ① 기독교 국가주의, ② 생물학적 성별 이분법, ③ ‘작은 정부 + 전통가족’이라는 틀이 있습니다. 이는 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2022) 판결 이후 보수 진영의 반격을 제도화한 결과였습니다 (Ms. Magazine, 2022). 결국 Project 2025는 시민의 자유를 통제하는 파시즘적 신정국가의 청사진이었습니다 (ACLU, 2023).

 

■ 네트워크의 확장 - 록브리지 · TPUSA · CPAC

 

Rockbridge Network: 피터 틸(Peter Thiel)과 리처드 율라인(Richard Uihlein)이 후원 (Guardian, 2022.05.03).

Turning Point USA (TPUSA): 찰리 커크(Charlie Kirk, 1993– ) 주도 (New York Times, 2021.07.14).

 

CPAC: 보수진영 최대 정치 행사, 트럼프 복귀 플랫폼으로 변모 (Reuters, 2021.02.28).

War Room: 스티브 배넌(Steve Bannon, 1953– ) 운영 (NBC News, 2021.01.15).

레드맵이 제도를 장악했다면, MAGA는 대중을 동원했고,

Project 2025는 그 동원을 행정권력으로 체계화했습니다.

 

■ 한국적 함의 - “극우의 제도화 · 사법의 정치화”

 

이러한 미국의 극우화는 한국에도 깊은 함의를 남깁니다. 2008년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신자유주의+반공주의+종교보수’를 결합해 이명박(1941– ) 정부의 정치적 기반을 제공했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의 사법 엘리트·종교 네트워크 결합은 MAGA 구조의 국내적 변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은 ① 사법개혁, ② 종교·정치의 분리, ③ 시민 감시기구 강화에 달려 있습니다.

 

■ 민주주의, 진화를 멈춘 체제의 말로

 

민주주의는 완성된 경전이 아닙니다.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제도이자,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주의는 진화를 멈추었습니다.

 

게리맨더링의 합법화, 레드맵의 제도 장악, MAGA의 대중 선동, Project 2025의 행정 쿠데타. 이 네 축은 “민주공화국이 내부로부터 어떻게 붕괴되는가”를 보여주는 실험장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본처럼 배워온 ‘미국식 민주주의’는 이제 신화에서 현실로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대한민국은 이 길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진화를 이룰 것인가.”

 

12·3 내란 사태 이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정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도, 미국처럼 도태될 수도 있습니다.

 

검찰과 사법 권력의 개혁, 극우 정서의 차단, 시민 주권의 확립 -이 모두는 역사의 숙제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가장 아름다운 유산입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시민이 매일 새로 써 내려가는 진화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 이병권 인문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