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통합은 반대파의 모든 요구 수용 아냐
시대적 과제 '검찰·사법개혁'서 효능감 떨어져

모두를 아우르려다 개혁 칼날 무뎌진 건 아닌지
국민 발안제·시민의회 도입 등 과감한 개혁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반복적으로 내세우는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구호는 듣기에 달콤하나, 냉정한 정치학적 잣대를 들이대면 심각한 논리적 결함에 직면한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전근대적 군주가 아니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대리인(Agent)'이자, 특정 가치와 정책적 지향점을 선택받은 '일꾼'이다.

 

현실 정치에서 정책이란 한정된 자원의 배분이다. 누군가의 이익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손실로 귀결된다. 모든 국민을 100% 만족시키는 정책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강박은 결국 결단을 회피하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흐르거나, 지지층과 반대파 모두를 실망시키는 어중간한 정책으로 귀착되기 쉽다.

 

진정한 통합은 반대파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파의 의지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되, 소수파의 생존권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부당한 손실을 주지 않는 '절차적 공정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혼동할 때,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수사는 통합의 언어가 아니라 책임 회피의 언어로 전락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동 상황 대응책 논의를 위한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3.5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효능감 없는 개혁, 그리고 '주변부 정책'의 위험성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보이는 일부 행보는 이 우려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시대적 과제로 꼽히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서 정작 '효능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공소청 설치를 골자로 하는 수사권·기소권 분리 법안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독립성 강화 논의는 국민 다수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거나 여전히 원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개혁의 외양은 갖추되 핵심 의제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모두'를 아우르겠다는 명분 아래 개혁의 칼날을 스스로 무디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 안정의 핵심 수단인 종합부동산세·보유세 개편은 '조세 저항'을 우려해 소극적인 채, 공급 확대라는 부분적 처방에만 기대고 있다. 세제 개편 없는 공급 확대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뿐이다. 단기 집값 급등이 재현될 경우, 그 정치적 책임을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쪽은 대통령 자신임을 잊어선 안 된다.

 

소통 방식 역시 점검이 필요하다. 국무회의를 개방형으로 운영하는 파격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통령 한 명이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통치로 굳어진다면, 제도와 시스템이 아닌 개인 역량에 기대는 정치가 된다. 개인의 유능함에 의존하는 통치는, 그 개인이 한계에 봉착할 때 국가 전체를 리스크로 몰아넣는 법이다.

 

대의제의 한계를 넘는 직접민치(直接民治)의 제도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민은 선거 날에만 주권을 행사하고, 나머지 4~5년은 정치의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대의민주제의 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그 골격 위에 '직접민치'라는 근육을 붙이는 과감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제도가 시급하다.

첫째, 국민발안제 도입이다. 일정 수 이상의 시민이 서명하면 법률안을 직접 발의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스위스에서는 국민발안이 수십 년째 일상적 주권 행사의 통로로 작동하고 있다.

둘째, 구속적 국민투표제의 확대다. 현행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는 대통령의 임의적 부의에 의존한다. 이를 일정 요건을 갖춘 시민 청원만으로도 발동되도록 개정해야 한다.

셋째, 추첨제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의 제도화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 시민의회를 통한 선거제 개혁

 

가장 시급한 것은 선거제도라는 '정치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에게 스스로의 목을 치는 선거제 개혁을 맡기는 것은 '중이 제 머리를 깎으라'는 말만큼 비현실적이다. 이해충돌이 명백한 집단에게 이해충돌의 해결을 위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자기모순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시민의회다. 아일랜드는 2016~2018년 시민의회를 통해 낙태권 헌법화와 동성결혼 합헌화라는 극심한 사회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소했다. 인구 통계에 따라 무작위 추출된 99명의 평범한 시민들이 법학자·의료윤리학자 등 전문가와 함께 수개월간 숙의한 뒤 권고안을 도출했고, 이는 국민투표로 직결되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도 2004년 시민의회를 통해 선거제 개혁안을 설계했다.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인을 배제한 채, 주권자가 직접 설계한 선거법만이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고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

 

대만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디지털 플랫폼 'vTaiwan'을 통해 우버(Uber) 합법화, 핀테크 규제 등 첨예한 사안들을 온라인 숙의로 풀어냈다. 당시 디지털장관이었던 오드리 탕(唐鳳)은 '정부는 플랫폼이 되어야 하며, 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답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모두의 대통령'을 자처하는 이재명 정부가 경청해야 할 충고다.

 

한국에서의 실행 경로 - 헌법 개정 없이도 시작할 수 있다

 

시민의회나 직접민치의 도입이 당장 헌법 개정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법체계 안에서도 실행 가능한 경로가 있다. 우선 선거제 개혁과 정치자금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 특별법'을 국회가 통과시켜, 그 권고안에 국회가 상당한 무게를 두도록 의무화하는 방식이 있다. 법적 구속력을 완전히 부여하기 어렵다면, 권고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절차를 명문화하면 된다.

 

더 나아가 디지털 시민 참여 플랫폼을 정부 차원에서 구축해야 한다. 국민청원 게시판 수준이 아니라, 시민들이 정책 초안을 열람·수정하고 숙의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예산 우선순위 결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예산제'의 중앙정부 적용도 검토할 만하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정부가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국가 단위로 확장하면 그 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물론 직접민치 확대에는 위험도 따른다. 숙의 없는 여론의 쏠림, 정보 비대칭, 포퓰리즘의 악용 가능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도 설계로 보완할 수 있는 리스크이지, 제도 자체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대의민주제의 실패 비용과 비교하면, 직접민치의 실험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도전이다.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통합이다

 

'모두의 대통령'은 수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주권자의 뜻이 막힘없이 흐르는 제도를 설계하는, 일꾼의 헌신으로 완성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내가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겠다'는 선의의 오만에서 벗어나, '국민이 직접 결정하게 하겠다'는 민주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검찰개혁과 선거제 개혁의 주도권을 시민의 손에 넘기는 멍석을 깐다면,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패러다임을 바꾼 지도자로 평가받을 것이다. 반대로 핵심 개혁 과제를 회피하며 '이도 저도 아닌' 행태를 반복한다면, 가장 큰 기대를 받은 정부가 가장 큰 실망을 남긴다는 역사의 공식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만기친람형 소통이 아니라, 기득권의 저항을 뚫고 권력을 국민에게 반납하는 과감한 제도적 이행이다. 그 이행의 첫걸음이 시민의회다. 멍석은 대통령이 깔고, 그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은 국민이어야 한다.              <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