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자 느리지만 정확하게 판단하던 '좌장'


자신 앞세우지 않고 공동의 자리를 떠받쳐
늘 지금보다 다음 단계를 고민하던 정치인
남아 정리했고, 책임 졌으며, 다음을 준비
단단한 정치, 책임 미루지 않는 태도 절실

 

 

이해찬 전 총리가 영면에 들었다. 그의 죽음은 한 정치인의 생애가 끝났다는 사실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가 하나의 시대를 정리하고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그가 언제나 시대의 전면에 서 있던 인물은 아니었지만,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마다 제도와 조직의 중심을 붙들고 버텨온 정치인이었다. 화려한 언변보다 구조를, 순간의 승리보다 지속을 선택했던 그의 정치적 태도는 한국 민주주의가 체력을 길러내는 데 깊이 기여했다.

 

나에게 이해찬은 텔레비전 속 정치인이기 이전에 같은 시공간을 통과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보다 세 살 위였다. 나이 차는 크지 않았지만, 그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는 앞에 서서 끌고 가는 타이프는 아니었지만, 방향을 먼저 잡고 그 방향이 틀어지지 않게 지켜 보는 사람이었다.

 

1980년대 중반, 나는 민통련 민족학교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는 민족학교의 운영위원이자 강사로 활동하며 언제나 좌장의 자리를 맡았다. 강의는 한국 근현대사, 사회과학 이론, 민족주의 경제학 등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고,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비판적 사회의식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당시 민족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훗날 제13대 국회에 진출하게 되는 이른바 ‘평민당 영입파’ 재야 인사들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다. 이 시기의 활동은 1988년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화민주당에 그가 영입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민통련과 민족학교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치밀한 전략가’라는 평가를 안겨주었고, 그 뒤 정책과 선거 전략에 능한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당시 민족학교와 민통련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도 훗날 민주당 계열의 핵심 인적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 시절, 내가 만난 이해찬은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고, 토론을 장악하려 들지도 않았다. 다만 토론이 감정으로 흐르거나, 각자의 옳음이 충돌하며 자칫 싸움으로 번질 때면, 짧고 단정한 말로 흐름을 정리했다. “그건 지금의 쟁점이 아닙니다.” “그건 판단 이전에 감정의 문제입니다.”

 

당시 대정부 투쟁에 대해서는 “나는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패배주의를 제일 싫어합니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말은 길지 않았지만, 그가 입을 열면 방 안의 공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열정이 넘치던 시절, 그는 언제나 한 박자 느리게, 그러나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토론이 길어지고 술자리가 이어지던 날들도 많았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면 계산이 문제였다. 그럴 때 그는 말 없이 지갑을 꺼냈다. 누가 보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고, 그것을 미덕처럼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때 책임을 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태도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의 정치적 태도는 이미 그 사소한 장면들 속에 응축되어 있었다. 자신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공동의 자리가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는 태도였다.

 

나무위키

 

그 무렵 이해찬은 서울대 인근 신림동 고시촌에서 ‘광장서적’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회과학 서적이 빼곡히 꽂힌 그 공간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었다. 학생운동권의 사유가 모이고 토론이 축적되던 장소였고, 시대의 질문들이 오가던 작은 공론장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책을 사고, 논쟁을 벌이고,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거리의 집회만큼이나 그런 일상의 공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분출될 수 있지만, 결국 이런 공간들을 통해 사유로 축적되고 제도로 이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했다.

 

이해찬의 정치 인생은 군사독재 말기에서 시작해 민주화 이후의 제도화 과정, 그리고 촛불 이후의 정치 재편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거의 빠짐없이 관통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단번에 완성될 수 있는 체제로 보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조정, 때로는 후퇴를 거치며 축적되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그의 정치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늘 ‘지금’보다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정치인이었다.

 

그가 한국 민주주의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제도의 안정화였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거리의 열정과 도덕적 정당성에 비해 제도적 완성도가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는 불균형을 안고 있었다. 이해찬은 이 간극을 메우는 데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집중했다. 그는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보다, 이긴 이후에도 민주주의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정치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 신념은 그의 입법 활동과 행정부 운영, 정당 조직 관리 전반에 일관되게 드러났다.

 

2019년 열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10주기 추모 사진전'에서 추모사를 하는 이해찬 전 총리. 연합 자료사진
 

총리 재임 시절에도 그는 행정의 안정성과 정책의 지속성을 중시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보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제도를 점검하고 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급진적 변화를 기대하던 이들에게는 답답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성숙한 선택이었다. 제도는 개인의 의지로만 움직이지 않으며, 사회적 합의와 행정적 역량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그는 이 점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정당 정치에서도 그의 역할은 분명했다. 이해찬은 정당을 단순한 선거 기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제도로 보았다. 계파 갈등과 내부 분열이 반복되는 상황에도 그는 조직이 붕괴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데 주력했다. 때로는 강단 있는 결정을 내렸고, 때로는 조정과 중재를 통해 갈등을 관리했다. 그 과정에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정당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그가 맡았던 역할은 ‘패배의 시간’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민주주의는 승리의 순간보다 패배 이후에 더 혹독한 시험에 든다. 선거에서 지고, 여론이 등을 돌리고, 내부가 흔들릴 때 정당과 정치인은 쉽게 무너진다. 이해찬은 바로 그 순간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남아서 정리했고, 책임을 졌으며, 다음을 준비했다. 개인의 정치적 이해만 놓고 보면 손해에 가까운 선택이었지만, 민주주의 관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었다.

 

물론 그의 정치가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 지금도 평가가 엇갈리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민주주의의 규칙을 벗어나 문제를 해결하려 한 적은 없다는 점이다. 위기의 순간에도 그는 제도 안에서 해법을 찾으려 했고, 그 과정에 발생하는 정치적 비용을 감수했다. 이는 민주주의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이지만, 실제 정치 현실에서 이를 끝까지 지켜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1985년 민통련 민족학교 시절의 이해찬. 박용수 사진작가
 

이해찬의 삶이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영웅에 의해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름이 크게 남지 않는 수많은 관리와 조정, 책임의 축적 위에서 유지된다. 그는 그 조용한 노동을 기꺼이 맡았던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때로 과소평가되었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와 구조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이제 그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태도와 기준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완이며,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이해찬이 보여주었던 느리지만 단단한 정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가 평생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다음 세대의 손에서 더욱 성숙해지기를 바라며, 그가 앞서 걸어간 그 자리를 조용히 기억한다.

 

고인이 마지막 가시는 길,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졸시 한 편을 남긴다. 그가 무척 그리울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이

한 시대의 무게를 대신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말이 아니라

시간으로 증명했다

 

앞으로 나서기보다

흐름을 세우고

부서지기 쉬운 제도 곁에

묵묵히 서 있던 사람

 

열광의 순간보다

패배의 저녁을 지켰고

박수보다

책임의 언어를 선택했다

 

당신이 남긴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규칙이었고

목소리가 아니라

버팀목이었다

 

이제 그 긴 호흡을 내려놓고

역사의 깊은 자리에서

편히 쉬소서

 

당신이 지켜온 중심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으로

조용히 이어질 것이오

 

-박철 '민주주의 표상, 이해찬의 생애를 기리며'                    < 박철 기자 >

 

당신의 혜안 더 필요할 때 홀연히 떠나셨네요

 

한 정치부 기자가 회고하는 이해찬 전 총리
DJ와 맞짱 토론, 비판적 직언 서슴지 않아
노무현 진가 알아보고 이재명엔 방패 역할
플랫폼 정당 전환 · 시스템 공천 도입 업적

 

이해찬 전 총리가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이별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비보를 접하는 순간, 그분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는 험난했던 민주화 투쟁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민주개혁 진영이 낳은 최고의 전략가였습니다.

 

대학 시절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온몸을 던졌던 그에게, 두 차례의 옥고는 피할 수 없는 시련이었습니다.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5.18 내란 당시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투옥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탄압에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재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뒤, 1987년 시민항쟁 때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을 맡아 항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격동의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가 분출하고 충돌하는 국면에서도, 그는 냉철한 시선으로 해법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 시절, 저는 옛 민주당을 출입하며 그를 거의 매일 당사에서 뵈었습니다.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민주당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당내에서 단연코 능력을 인정받은 유망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당내에서 김대중 총재와 각종 정국 현안을 놓고 맞장 토론을 펼칠 수 있는 단 한 사람. 비판적 직언도 서슴지 않던 그에게 김대중 총재는 때로 언짢아했지만 그의 높은 식견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김대중 총재의 2선 후퇴를 주장하는 정풍운동에 앞장섰을 때, 김 총재는 이해찬 전 총리의 공천 배제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능력을 지닌 그를 배제하는 것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김 총재는 결국 그 결정을 철회했습니다.

 

2016년, 김종인 씨가 민주당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추대된 후, 이해찬 전 총리는 총선 공천에서 컷오프되어 탈락했습니다. 현재 민주당 당대표인 정청래 의원도 함께 컷오프됐습니다. 김종인 씨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정무적 판단'이라는 말로 이해찬을 공천에서 배제했습니다. 아마도 이는 1988년 13대 총선 당시의 악연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그는 세종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낙승을 거둔 뒤 민주당에 복당해서 대표에 당선돼 민주당의 현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노태우 정권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종인은, 운동권 출신 정치 초년생에 불과했던 평민당 후보 이해찬에게 관악구에서 패배했습니다. 언론이 김종인의 낙승을 예상했던 그 선거에서 이해찬은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당시 크게 회자되었습니다.

 

훗날 이해찬 전 총리가 들려준 일화가 있습니다. 개표 도중 민정당 후보였던 김종인의 무더기 표가 쏟아져 나와 개표가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평민당 선거운동원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개표장이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그는 운동원들을 차분히 설득한 뒤 선관위에 개표 속개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종인을 5% 이상 앞서고 있었기에, 문제의 표를 인정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만약 부정선거 의혹 제기로 개표가 장시간 중단된다면, 오히려 민정당 측에서 진짜 개표 부정을 자행해 당락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군사독재의 잔재가 여전히 강고했고, 안기부와 경찰 같은 권력기관들이 부정선거를 서슴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이 에피소드는 이해찬 전 총리의 재빠른 상황 판단력과 전략적 사고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또한 그는 민주운동권 출신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노무현 대통령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본 정치인이었습니다. 재야 출신 인사들 대부분이 민주화투쟁 경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노무현을 정치 지도자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그는 이미 노무현을 진정한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당시 노무현을 지도자로 인정한 이는 이해찬과 유시민,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다소 괴퍅할 정도로 까칠했던 성정의 소유자였던 그였지만, 사람을 보는 눈만큼은 누구보다 예리했습니다.

 

 

그의 혜안은 이재명 대표를 대통령감으로 일찍이 주목했고, 정치권에서 뚜렷한 기반이 없었던 이재명 대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방패가 되어주었습니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 이재명 대표를 제거하려 온갖 패악질을 자행할 때도, 이해찬 전 총리는 흔들림 없는 멘토이자 후원자였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는 민주당을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 정당으로 변모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당 대표 시절이었던 2018년, 그는 웹 기반의 당원 플랫폼을 구축하여 당원 전용 온라인 시스템 및 투표 기능을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민주당의 당원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명실상부한 당원정당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시스템 공천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총선 1년 전까지 공천 룰을 확정하여 공개하고, 그 룰에 따라 전 지구당을 동일한 기준으로 심사한 뒤 경선을 거쳐 공천자를 확정하는 제도였습니다.

 

이처럼 이해찬 전 총리는 민주당을 초현대식 민주정당으로 변모시킴으로써, 180석의 거대정당으로 비약할 수 있는 굳건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내란 척결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시점에 이해찬 전 총리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민주 진영의 20년 장기 집권 플랜을 주창했던 그의 전략적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지금, 그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빈자리가 얼마나 클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님, 이제 그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부디 편히 쉬시기를 기원합니다.

                                                                                                            < 장정수 기자 >

 

이해찬의 때 이른 죽음, 결국 고문 후유증 때문이었나

 

"하도 맞아서 죽었구나 소문도" 회고록에 언급
"고춧가루 고문…연탄집게로 눈깔 뺀다 들이대"
"아침에 불려 나갔다 오후에 시체처럼 돌아와"

"고문당한 사람을 보는 게 더 큰 심리적 고통"
"동지와 인간에 대한 믿음 없었다면 못 견뎌"
김근태·김홍일 별세 때 "고문 후유증" 깊은 애도

본인도 점차 말투 어눌해지고 몸 둔화, 손 떨어
당대표 때 닷새간 입원…곧바로 선거운동 진력
정치 일선 은퇴 뒤 지팡이나 부축에 의지 거동

이해찬 죽음 계기로 "피해자 전수조사" 목소리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사진은 1988년 3월 31일 제13대 총선에 출마한 관악구 이해찬 후보의 유세. 2026.1.25. 연합 자료사진
 

• 1974~1975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다.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투옥, 안양교도소와 대전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 1980~1982 : 80년, 복학과 함께 복학생협의회장을 맡았다. 5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배 중 연행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다. 10년형을 선고받고 육군교도소, 안동교도소, 춘천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2022년 9월 돌베개에서 출간된 <이해찬 회고록> 중 맨 뒷부분 연보(年譜)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는 이처럼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기 민주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분투하다 당국에 체포돼 혹독한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곤 했다.

지난 25일, 그가 너무 이른 나이인 73세에 심근경색으로 타계하자 열악한 수감 생활을 동반한 그 시절 고문 피해의 후유증이 결국 건강과 수명에 악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생전에 자신이 고문당했던 일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경우가 드물지만 회고록에서는 당시 상황이나 소회를 비교적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대담자인 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대표님은 고문당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으셨어요. 물론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당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관련 얘기를 안 하는 게 금기이긴 하지만 용기를 내어 여쭙니다. 수사받는 동안에도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2022년 9월 돌베개에서 출간된 '이해찬 회고록'
 

"그때 내가 고생을 좀 했어. 처음으로 고춧가루 고문도 당하고. 나중에 누가 그러는데 내가 죽은 줄 알았대요. 하도 맞아서. 아이고, 이해찬이 죽었구나 그렇게 흉하게 소문이 나고 그랬대. 학생들이 많이 잡혀 왔는데 문리대가 제일 많았고 의대생들도 많았어요. 성균관대에서도 잡혀 오고. 동대문경찰서 관할은 다 잡혀 왔어. 그중에서 나는 주모자급이 돼 있었어요. (…)

 

나는 수사 끝나고 유치장으로 넘어가서도 매일 불려 가서 고문당하고 맞았어요. 수배자들 행적을 대라고. 근데 나는 진짜 몰랐거든. 내가 알면 대겠는데 정말 모른다, 그랬지. 그때가 초봄이어서 쌀쌀했어요. 연탄난로를 때고 있었는데 연탄집게를 빼 가지고 이놈의 새끼 눈깔을 뺀다고 들이대는 거야. 그 순간은 진짜 공포스러웠어요. 일주일을 그렇게 아침에 불려 나갔다 오후에 시체처럼 돌아오니 저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그랬던 거예요.

 

영장이 떨어지고도 구치소로 보내 주지 않아서 7월까지 유치장에 있었어요. 하도 많이 잡아들여서 구치소에 방이 없었던 거야. 나처럼 캠퍼스 행동대 역할을 한 정도에게 내줄 독방도 없고. 유치장에는 쥐가 왔다 갔다 하고 빈대는 너무 많았어. 밥은 꽁보리밥에 단무지. 처음에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는데 배가 고프니까 어떻게 해. 먹는 거지."

 

다음과 같은 회상들도 그의 심신에 인장처럼 깊이 새겨졌던 고문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동지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못 견뎠을 거야. 언제든 잡혀가고, 구속되고, 죽을 수도 있는데…. 얼마 전에 사위랑 얘기하다가 내가 고문받은 얘기가 나왔어요. 우리 손자가 옆에서 듣고 깜짝 놀라서는 할아버지를 고문했다고요? 아이고 무서워라, 하더라고. 역사 유튜브 같은 걸 보면서 독립운동가들이 고문당한 얘기를 들었대요. 그런데 할아버지도 당했다고 하니 놀란 거야.

 

70, 80년대를 돌아보면 다들 목숨을 내걸고 싸웠어요. 험난한 과정에서도 동지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살았고. 민주화 세력이 그런 혹독한 시기를 같이 이겨 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자료를 보기가 싫었어요. 지나간 일들을 다시 보려고 하니까 정글로 들어가는 거 같아. 쭉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구만. 아이고, 어떻게 용케 살아왔다. 대담 준비를 하면서 가끔 꿈을 꿨어요. 보안사(현 방첩사)에 잡혀가는 꿈, 안 잡혀가려고 싸우고 그런 꿈을 꿨어요. 가위 눌리는 거지.

 

예전에 고문당할 때도 막연히 느꼈지만, 고문당한 사람을 보는 게 더 충격이 큰 것 같아요. 문리대 친구들이 고문당한 나를 보고 죽었다고 생각했대. 고문이 심리적으로도 큰 고통을 남기는 거야. 나하고 같이 다녔다고 소문이 잘못 난 친구가 잡혀가서 고문을 당한 일이 있었어요. 이번에 그 일도 꿈을 꿨어."

 

2011년 12월 30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별세했다.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서 이해찬 전 총리가 조문하고 있다. 2011.12.30. 연합
 

그와 마찬가지로 고문 피해자였던 김근태 전 의원과 김홍일 전 의원이 그 후유증으로 큰 고통을 겪다 별세했을 때 이 전 총리는 동병상련과 함께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김근태 전 의원은 2011년 11월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 달 만에 숨을 거뒀고(향년 64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은 파킨슨병을 앓다 2019년 4월 2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에서 쓰러져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향년 71세).

 

"김근태 고문과는 70년대 학생운동 때부터 40년 동안 같이해오며 경찰과 싸우고 감옥 갔던 그런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특히 종로 파고다 공원에서 참 많이 싸웠던 것 같아요. 김 고문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너무 심하게 받아 가을 찬바람만 불면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어왔어요. 해가 갈수록 심해졌는데 아마도 금년이 한계인 것 같습니다. 아직 한창 활동할 나이에 고문 후유증으로 이런 상황을 맞아 안타깝습니다." (2011년 12월 29일 김근태 전 의원이 의식 불명 상태로 입원해 있던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을 나오며.)

 

"김홍일 전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이기도 했지만, 정치적 동지이자 독재정권에 맞서 온몸을 바친 민주화 운동의 투사였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독재정권의 조작 사건으로 가혹한 고문과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셨습니다. 저와 함께 정치를 30년 가까이 해오면서 김홍일 전 의원은 굉장히 따뜻하고 폭이 넓은 정치인이었습니다. 유명을 달리한 것을, 다시 한 번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면서 영면을 기원합니다." (2019년 4월 22일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이 전 총리는 본래 말투가 또박또박 명료했으나 2010년대 들어 말이 어눌해지거나 자주 끊기고 몸놀림이 둔화되며 손을 떠는 증상을 나타내곤 했다. 항간에 파킨슨병 투병설까지 떠돌자 이를 묻는 기자에게 "별소리가 다 나온다. 일부 언론의 과장 보도"라고 일축하기도 했지만 건강은 점차 악화되는 것으로 보였다.

 

2020년 3월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과로 등에 따른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닷새나 머물렀다. "당원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갑자기 몸이 나빠져서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고 오히려 미안해한 그는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4·15 총선 선거운동에 뛰어들어 또 몸을 돌보지 않았다. 정치 일선에서 은퇴한 뒤에도 간간이 강연과 축사 등 외부 일정을 소화하긴 했지만 지팡이를 짚거나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고 걸음을 옮겨야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사진은 2024년 11월 13일 국회에서 당시 이해찬 상임고문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함께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 참석하는 모습. 2026.1.25. 연합 자료사진
 

이 전 총리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출장을 떠났다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이송된 뒤 25일 끝내 세상을 떠나자 이를 계기로 과거 고문 정권 및 그 하수인과 부역자들을 향한 분노를 표시하는 한편, 피해자들에 대한 온전한 치유와 전수조사 등을 위해 우리 사회와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김홍일, 김근태, 이해찬 등 젊은 시절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분들의 만년(晩年) 모습은 대체로 비슷했다"며 "저분들에게 고문을 지시했던 자들과, 저분들을 직접 고문했던 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할까?"라고 개탄했다.

 

이어 "고문을 지시하고, 고문을 실행하고, 고문당한 사람을 기소하고, 고문당한 사람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자들 중 스스로 '양심고백'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민주화 운동'이 곧 '양심 회복 운동'이었기에,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이해찬 선생님, '양심 없는 자들'은 갈 수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고문이란 조작된 진술을 얻기 위해 수사·정보기관이 극한의 고통,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고통과 공포감을 가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고문 앞에 장사 없다'는 것이고, 오죽하면 민주화 운동의 핵심 구호가 '고문 없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것이었겠는가"라며 "(김근태·이해찬) 두 분 다 직접 사인은 있겠지만 고문 후유증의 증상을 겪고 있었고 수명 단축에까지 악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는 민주화 운동으로 영예를 받아 누린 것처럼 논란을 벌이지만, 민주화 운동 자체가 혹독한 고문과 옥살이를 동반한 엄청난 고난의 길이었음을 가끔 잊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고문의 실체를 세세하게 조사하고, 치료도 하고, 그럼으로써 개인적 고난의 무게도 이해하고, 독재 권력이 사람들에게 무슨 악행을 했던가도 생생하게 드러냈으면 한다"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그런 방면에 노력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주유공자법도 그런 바탕 위에서 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승종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세간에서는 이해찬 전 총리가 평생 짊어지고 온 고문의 후유증이 그의 생을 앞당겼으리라 짐작한다. 한 개인의 강인한 의지로도 끝내 이겨낼 수 없었던 생물학적 파괴, 그것이 바로 독재가 남긴 잔인한 유산"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겪었을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이제 개인의 서사를 넘어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나아가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할 때다. 이해찬 전 총리의 죽음을 단순히 한 정치인의 퇴장이 아닌, 고문 피해 세대의 마지막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고문의 후유증을 총체적으로 조사하고,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의료 지원과 심리 치유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도리다. 전수조사를 통해 숨겨진 눈물을 닦아주고 고문이라는 야만의 역사를 종결짓는 것만이 역사의 이름으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김호경 기자 >

 

“약자 고통 치유하려던 큰 스승”…이해찬 전 총리 빈소 조문 시작

우원식·김민석·정청래 등 빈소 찾아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공동취재 사진
 

베트남 출장 중 별세한 고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 수석부의장(전 국무총리)의 기관·사회장이 시작됐다. 조문에 나선 동료 정치인과 지인들은 미소 띤 이 부의장 생전 모습이 담긴 영정 앞에서 입을 굳게 다문 채 눈시울을 붉혔다.

 

고 이해찬 수석부의장의 영정과 주검을 실은 운구 차량은 27일 아침 9시께 양 옆으로 도열한 의장대와 정치인들 의전 속에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전날 밤 11시50분(현지시각) 베트남 현지를 출발한 지 한 나절여만이다. 베트남 출장 도중 호흡이 약해지는 증상이 나타나 응급실로 이송된 이 전 부의장은 베트남 호치민의 한 병원에서 지난 25일 끝내 목숨을 잃었다. 향년 73살.

 

동료이자 선배, 스승이이었던 정치인을 잃은 정치권 인사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영정과 유가족 앞에 고개를 숙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산 증인이고 민주 정부를 만드는 데 역대 정권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다. 무엇보다도 힘들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그분들의 고통을 치유하려고 했던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이어 “그분이 뜻했던 나라를 제대로 세우고 힘이 약한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정치, 그 뜻을 잘 이어가야 되겠다 하는 생각으로 오늘 조문을 했다”고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우원식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날 아침 빈소에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소속 정치인 50여명이 이 부의장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영정 한 쪽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전한 화환이 놓였다. 김 총리와 정 대표는 상주의 자리에서 함께 조문객을 맞기도 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청천벽력 같은 비보 였다. 아직 총리님을 보내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애통함을 전하며, “남북평화, 남북통일을 위해 애쓰기 위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으셨는데, 우리들이 이어서 남북평화와 통일을 이어가야 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정복 민주당 최고위원도 “건강이 안 좋으셨는데 공직을 맡아 최선을 다해 수행하다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당에서 애도기간을 설정했고, 온 당원이 한마음이 돼서 추모하는 절차를 마련했다”고 했다.

 

이 부의장 장례는 이날부터 31일까지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통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기관·사회장으로 치러진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상임 장례위원장을 맡고, 시민사회 및 정당 상임공동 장례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맡았다. 이날 오후부터 일반 시민도 이 부의장 빈소에 조문할 수 있다.                                 < 김수연 기자 >

 

이해찬 향한 각별한 예우…베트남 정부 “고향서 돌아가셨다 여겨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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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25일 타계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주검이 27일 오전 국내로 운구된 가운데, 베트남 호찌민시 현지에서 관련 절차를 밟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귀국 과정을 전했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27일 새벽 페이스북에 ‘이해찬 전 대표님과 함께 귀국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호찌민시 떤선녓 국제공항 카고 터미널에서 관포식이 거행됐다. 대표님이 누워계신 관에 대형 태극기가 펼쳐져 덮였을 때 다시 콧등이 시큰해졌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주인공 동호가 ‘왜 관에 태극기를 덮냐’고 궁금해했다는 대목이 떠올랐다. 1980년의 태극기와 오늘의 태극기가 겹쳐 보였다”고 했다.

 

이 의원은 고인이 생전에 쌀국수와 호찌민을 좋아했다고 전하며 “(부인인) 김정옥 사모님은 ‘가족들과 의원들, 정부 관계자들을 호찌민시까지 불러들여 쌀국수를 맛보게 하고 호찌민 시내 구경을 시켰다’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베트남 정부는 대표님 가시는 길에 각별한 호의를 베풀었다”며 “우리의 시장 격인 호찌민시 인민위원장은 어제 병원으로, 부위원장은 오늘 법의학센터로 각각 방문해 가족을 위로하고 의원단을 만났다”고 말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이 의원은 호찌민 떤선녓 국제공항 의전실로 찾아온 응우옌 밍 부 베트남 외교부 수석 차관의 말도 전했다. “베트남도 유교 전통을 가진 나라로서 집안이든 나라든 큰 어른이 돌아가시면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잘 안다. 한국과 베트남의 돈독한 관계를 고려한다면 타국에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 고향이나 진배없는 곳에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해달라.”

 

베트남에서 함께한 김영배 민주당 의원 역시 “베트남 정부의 배려와 정성을 잊지 않겠다”며 이날 페이스북에 현지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사진 속에서 고인의 부인인 김정옥씨와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인 조정식 민주당 의원 등이 태극기로 덮인 관에 손을 대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전날 팜 투 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지난 며칠 동안 호찌민시 인민위원회, 관계 기관과 협력해 이 수석부의장에게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며 팜 민 찐 총리 등 베트남 지도부가 한국 정부와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대한항공 KE476편을 통해 이날 오전 6시53분께 인천공항으로 운구됐으며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차려진다.                                                    < 송경화 기자 >

 
 

트럼프 "중국과 협정 체결시 100% 관세…캐나다 자멸 중" 위협

카니, 무역다변화 시도에 트럼프 분노…트럼프 "주지사 카니" 공세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오타와 AP=연합]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25일 중국과의 협력을 문제 삼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100% 관세' 부과 위협에 대해 캐나다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고 캐나다 CBC 방송이 25일 밝혔다.

 

캐나다가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고 시도하는 와중에 카니 총리가 미국 이외 국가들을 상대로 광폭 행보를 벌이는 가운데 캐나다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카니 총리는 이날 캐나다 토론토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중국과 한 조치들은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이슈들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며 이처럼 말했다.

 

카니 총리는 캐나다가 미국, 멕시코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미국 및 멕시코에 사전 통지 없이는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없다며 "우리는 중국 또는 다른 경제권과 이 같은 일을 할 의도가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카니 총리는 지난 16일 중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두 정상은 중국산 전기차와 캐나다산 유채씨에 대한 관세 인하에도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트루스소셜에 "캐나다가 중국과 협정을 체결한다면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캐나다 상품과 제품에 즉각 100%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25일에도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캐나다가 체계적으로 자멸하고 있다"며 "중국과의 (무역) 합의는 그들에게 재앙"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향해 연일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카니 총리가 최근 들어 대미 관계에 있어 강경 노선으로 전환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카니 총리는 방중 직후인 지난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국제관계에 새로운 현실이 정착했다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강대국 간 대결이 심해지는 체제이며, 이 체제에서 강대국들은 자국 이익을 위해 경제통합을 강압 수단으로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와 같은 국가들은 더 이상 현실 순응으로 안전을 살 수 없게 됐다며 "중간 국가들은 함께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테이블에 없다면 우리가 메뉴에 올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니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와 맞물려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인 21일 다보스 연설에서 카니 총리의 발언을 지적하며 "캐나다는 미국 덕분에 존재한다"며 "다음 연설 때는 그걸 기억해야 한다. 마크(카니 총리의 이름)"라고 말했다.

 

이에 카니는 캐나다로 귀국 후 연설에서 "캐나다는 미국 덕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캐나다는 우리가 캐나다인이기 때문에 번영한다"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캐나다에 대한 100% 관세 부과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주지사(Governor) 카니'라는 호칭을 처음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자신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쥐스탱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를 향해 '주지사 트뤼도'란 호칭을 썼지만, 카니 총리에겐 주지사 호칭 사용을 중단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카니 총리의 전략 수정에 국내외적인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오타와 칼턴대학교의 펜 햄슨 국제관계학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 재협상을 앞두고 캐나다가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에 카니 총리가 계산된 베팅을 하는 것일 수 있다"며 "이 경우 최선의 선택은 무역을 다변화하고 투자자를 찾으며 규칙에 기반한 파트너 연합을 이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문 뉴스레터 '시노시즘'을 발행하는 중국 전문가 빌 비숍은 최근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카니의 행동에는 분명히 국내 정치적 이유가 있다"라며 국내적으로 집권 자유당의 선거 승리를 노린 행보라는 분석을 내놨다.

 

한편 주유엔 캐나다 대사를 지낸 루이즈 블래는 캐나다 매체 '폴리시' 기고문에서 "공유된 가치에 관한 성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지 않고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라며 "캐나다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라고 우려했다.                                                     < 이지헌 기자 >

 

법무부, 총기 소유 이유로 ‘시민 사살’ 옹호하자
총기 소유주들 “수정 헌법 2조 권리 침해”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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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지난 24일 이민세관단속국 등의 불법이민 단속 현장에서 시민 알렉스 프리티가 연방요원들에게 제압당해 사살당하기 직전의 장면. 로이터 연합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불법이민 단속요원의 시민 사살에 대한 전국적 항의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의 핵심 지지 세력인 전국총기협회(NRA) 등 총기소유권 옹호 세력들도 가세했다.

 

전국총기협회는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요원에게 사살된 알렉스 프리티 사망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미국 내에서 가장 막강한 로비단체인 총기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책임 있는 공식적인 목소리들은 법을 지키는 시민들을 일반화하고 악마화하지말고, 책임 있는 수사를 기다려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총기협회의 이런 지적은 이 사건과 관련해 연방검사가 총을 소지한 사람은 법집행 요원들에 의해 사살당한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앞서, 캘리포니아 연방지검의 연방검사 빌 에사일리는 소셜미디어에 “총을 가지고 법집행 요원에게 접근하면, 그들이 당신을 쏘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하지마라!”고 적었다. 이에 총기협회는 소셜미디어에 올린 별도의 논평에서 “모든 경찰관 총격 사건과 마찬가지로, 무력 사용이 정당한지를 가리기 위해서 철저하고 포괄적인 조사가 있을 것”이라며 “사실관계가 밝혀지고 상황이 더 명확해질 때까지, 우리는 정치권이 긴장을 완해 유권자와 법집행요원들의 안전을 확보해주기를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전국총기협회 등 총기소유권 옹호 세력들은 트럼프와 법무부가 프리티를 사살한 연방요원을 옹호하려다 자신들의 주장하는 정당한 총기소유권인 수정헌법 2조를 부정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전국총기협회 등은 총기를 소지하고 시위에 참가하는 것도 옹호하고 있다.

 

총기소유 옹호단체인 ‘미국총기소유주’(GOA)도 성명에서 “수정헌법 2조는 미국인에게 시위 중에 총기 소유를 허락한다”며 “이는 연방정부가 침해해서는 안 되는 권리이다”고 지적했다. 미네소타 총기소유자 코커스도 성명에서 “현지 당국에 따르면 그는 적법한 총기 소유자이자 휴대 허가증 소지자였다”며 “우리는 무엇이 치명적인 무력 사용의 원인이 되었는지 독립적 설명을 아직 듣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사망자가 요원들을 해칠 의도가 있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제시된 바 없다”며 “누구나 시위에 참여하거나 참관하는 동안에도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할 권리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의원들도 비판에 가세하며, 연방과 주 정부의 합동조사를 촉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사건 수사에서 주 당국의 참가를 거부하고 있다.

 

토머스 매시 공화당 하원의원도 “총기 소지는 사형선고가 아니다”며 “이는 헌법적으로 보호되는 신이 부여한 권리이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법집행이나 정부에서 일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빌 캐시디 상원의원은 엑스에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난 사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이민세관단속국과 국토안보부의 신뢰성이 위태로워졌다"며 “연방 정부와 주 수사당국의 완전한 합동 조사"를 촉구했다. 톰 틸리스 상원의원도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 대해 철저하고 공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연방과 주, 그리고 지역 법 집행기관 사이의 협력과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거나 수사를 무마하려는 행정부 관리가 있다면, 이는 국가와 트럼프 대통령의 업적에 엄청난 해를 끼치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에사일리 검사는 소셜미디어에 “나는 법을 준수하며 총기를 드러내지 않은 사람을 쏘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화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내 말은 총을 가지고 무장해제를 거부하면서 법집행 요원에게 접근하는 선동자들을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정의길 기자 >

 

미네소타 총격 사망자 부모 “트럼프 정부 역겨운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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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요원의 총격으로 숨진 알렉스 프레티(37)를 추모하는 행사에 25일(현지시각) 시민들이 모여 있다. 미니애폴리스/AFP 연합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요원의 총격으로 숨진 알렉스 프레티(37)의 가족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해명을 “역겨운 거짓말”이라며 맹비난했다. 이번 사건은 불과 몇 주 사이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요원의 총격으로 민간인이 숨진 두 번째 사례로, 연방 정부의 이민 단속 방식과 법 집행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콜로라도주에 거주하는 프레티의 부모는 24일(현지시각) 성명을 내고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 동시에 극심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며 “행정부가 우리 아들에 대해 퍼뜨린 역겨운 거짓말은 천인공노할 짓이며 구역질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프레티는 트럼프의 살인마 같고 비열한 아이스(ICE·이민세관단속국) 깡패들에게 공격당할 당시 분명히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며 “그는 오른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고, 빈 왼손은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아이스 요원들이 방금 밀쳐 넘어뜨린 여성을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후추 스프레이를 맞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프레티 부모는 “제발 우리 아들에 대한 진실을 세상에 알려달라”며 “프레티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다”고 성명을 마무리했다. 국토안보부(DHS)와 연방 국경순찰대(Border Patrol)는 프레티가 권총으로 요원을 학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사법 관할권을 둘러싼 유례없는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 미네소타주 범죄수사국(BCA)은 사건 직후 현장 접근을 시도했으나 연방 요원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키스 엘리슨 미네소타주 검찰총장은 “주 수사기관이 연방 요원에게 현장 접근을 거부당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에릭 토스트루드 연방 지법 판사는 미네소타 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연방 정부가 이번 총격 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파기하거나 변경하는 것을 금지하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

 

25일(현지시각) 연방 이민단속국(ICE)을 규탄하는 시위대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도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니애폴리스/AP 연합

 

트럼프 ‘미니애폴리스 철수’ 첫 언급…공화당도 독립수사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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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각)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도심에서 시민들이 이민세관단속국(ICE)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니애폴리스/A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연방 이민 요원 총격에 의한 미국 시민 사망 사건과 관련해 “모든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며 사태 수습을 위한 단속 축소 또는 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독립 수사 요구와 정책 재검토론이 잇따르는 등 이번 사건이 트럼프 집권 2기 중대 분수령으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과 약 5분간 전화 인터뷰에서 총격을 가한 연방 요원의 행위가 정당했는지 묻는 말에 두 차례 직접적인 답변을 피한 채 “우리는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곧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총격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시위 현장에 탄창 두 개가 장전된 강력한 총을 들고 가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피해자인 알렉스 프레티(37)가 무장 상태였음을 지적했다. 피해자를 ‘국내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강경파 참모들의 주장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으면서도, 사안의 폭발성을 의식해 요원을 전적으로 두둔하지는 않는 모호한 태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시점엔가 우리가 떠날 것이다. 요원들은 훌륭한 성과를 냈다”며 미니애폴리스에 대규모로 배치된 이민 단속 요원들의 철수 가능성도 처음으로 공개 언급했다. 다만 구체적인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복지 사기 수사와 관련된 다른 인력은 남을 수 있다”고 덧붙여, 이민 단속 중심의 작전 규모를 축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현지 상황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보수지 월스트리트저널도 사설에서 “알렉스 프레티는 ‘국내 테러리스트’가 아니며, 이번 사건은 아이스(ICE·이민세관단속국) 전술 전반을 재검토해야 할 수준의 정치·도덕적 실패”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행정부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에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미네소타주 관계자들로부터 쏟아지는 항의 전화를 직접 받고 있으며, 일부 참모진은 여론 악화를 우려해 시위대와의 충돌을 피하면서 추방을 계속할 방안을 논의 중이다. 반면 ‘반이민 설계자’로 불리는 스티븐 밀러 부비서실장은 피해자를 “암살자”로 지칭하며 미니애폴리스에서 물러나면 안 된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화당 내 반발도 거세다. 상원 국토안보위원회의 빌 캐시디 의원(공화·루이지애나)은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부(DHS)의 신뢰가 걸린 문제”라며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합동 수사를 촉구했다. 톰 틸리스(노스캐롤라이나), 리사 머코스키(알래스카), 수잔 콜린스(메인) 등 상원 중진 의원들도 “철저하고 공정한 조사”를 요구하며 행정부를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군인 제임스 코머 하원 감독위원장(공화·켄터키)조차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시장과 주지사가 요원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무고한 생명을 잃게 할 가능성이 있다면, 차라리 다른 도시로 이동해 미니애폴리스 시민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며 철수론에 힘을 실었다. 하원 국토안보위원장 앤드루 가르바리노(공화·뉴욕) 의원은 이민세관단속국·국경순찰대·국토안보부 고위 관계자들의 의회 청문회 출석을 공식 요구했다.

 

공화당 주지사들의 비판도 나왔다. 케빈 스티트 오클라호마 주지사는 시엔엔(CNN)에 출연해 “연방 정부가 자기 주에 들어오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다”며 “지금 당장 감정이 격화되고 있어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필 스콧 버몬트 주지사도 “최악의 경우 고의적인 연방 정부의 위협이자 미국 시민에 대한 선동”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예산 투쟁에 돌입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국토안보부 예산이 포함된 지출법안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이르면 30일 자정 연방정부 셧다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에 대한 탄핵 논의까지 거론되면서, 이번 사건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김원철 기자 > 

생산유발 효과만 40조, 2만개 일자리 창출…수주 가능성 높이도록 최선"

김정관 산업부 장관 동행…한화·현대차·HD현대 등 기업도 함께 현지로

노르웨이도 방문 "머잖아 결과 나올 것"…"사우디·UAE·페루 협력도 준비"

 

‘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26일 이재명 대통령의 전략경제 협력 특사 자격으로 방위산업 협력 강화 논의를 위해 캐나다로 출국했다.

 

특히 총 60조원 규모에 달하는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CPSP) 사업을 한국 기업이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이번 일정의 목표다. 강 실장 외에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이용철 방위사업청장 등이 특사단으로 동행한다.

 

수주전에 뛰어든 한화오션을 비롯해 현대차그룹, HD현대 등 기업 관계들자도 함께 캐나다를 향한다.

 

강 실장은 출국길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번 수주 건은 최근 진행된 방산 사업 중 가장 큰 규모로, 국내 생산 유발 효과만도 최소 40조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수주에 성공하면 300개 이상의 협력업체 일거리가 주어지고 2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강 실장은 "현재 해당 잠수함 사업의 수주 대상이 대한민국과 독일 양국으로 압축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독일은 제조업 강국인 데다 우리에게도 잠수함 개발 기술을 전수한 나라다. 녹록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지금부터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대규모 방산 사업은 무기의 성능이나 개별기업의 역량만을 앞세워 도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캐나다 정부 최고위급 인사들을 만나 양국 간 산업·안보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직접 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캐나다에는 '진짜 친구는 겨울에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는데, 이번 주 캐나다가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혹한이라고 한다"며 "대한민국의 진심을 전달해 수주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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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 강훈식 비서실장, 캐나다로 출국 (영종도=연합)  '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캐나다로 출국하고 있다. 강 비서실장이 이끄는 방산특사단은 이날 출국해 캐나다와 노르웨이를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2026.1.26 
 

이번 방문에 앞서 강 실장과 김정관 장관은 전날 전쟁기념관을 찾아 캐나다 참전용사들을 추모하는 등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강 실장은 캐나다 방문 후에는 노르웨이도 찾아 방산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 실장은 "노르웨이에도 이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문해 친서를 전달한 바가 있다. 머지않은 시간에 (방산 협력에 대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페루 등과의 협력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특사단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합류한다. 특사단은 현대차그룹과 한화, HD현대, 대한항공 등에 참여 요청을 했다. 정 회장 함께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함정·형선사업부 사장 등이 합류한다.

 

한국은 캐나다의 초계 잠수함 사업 수주를 두고 독일과 경쟁하고 있다. 이 사업은 디젤 잠수함 최대 12척을 건조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잠수함 건조 비용(최대 20조원)과 도입 후 30년간 유지·보수·운영(MRO) 비용까지 포함하면 사업 규모는 최대 60조원으로 추정된다. 현재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원팀 컨소시엄이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KMS)과 숏리스트(적격후보)에 올라 올해 6월 발표를 앞두고 최종 경쟁을 벌이고 있다. 

                                                                        < 임형섭  황윤기  정환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