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중대성, 증거인멸 우려에도 이해 불가 결정
법무부 장관이 불법 계엄 막기는커녕 공모·가담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수도권 구치소에 3600명 수용 가능' 문건 삭제

그럼에도 "위법성 다툴 여지…불구속 원칙 우선"
중앙지법 영장전담 4명 중 3명이 수원지법에서
12·3 계엄 후 한꺼번에 인사 이동, 조희대 의도?

박 판사, 김혜경 여사 '10만 4000원' 법카 유죄
민주당 이상식 의원 당선무효형…2심서 뒤집혀
'집사 게이트' 3인방, '리박스쿨' 손효숙 영장 기각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방조·가담한 혐의를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1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5.10.14. 연합
 

내란 특검이 청구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박 전 장관의 범죄 중대성과 그간 계속된 책임 회피 및 증거인멸 행위에 비춰볼 때 상식 밖의 결정이어서 큰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4일 박 전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구속의 상당성(타당성)이나 도주·증거인멸 염려에 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15일 새벽 영장을 기각했다. 박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나 인식한 위법성의 구체적 내용, 객관적으로 취한 조치의 위법성 존부나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면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수사 진행, 피의자 출석 경과 등을 고려하면 도주·증거인멸의 염려보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앞선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앞서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지난 9일 박 전 장관에 대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장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를 막지 못하고 공모·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인권 보호와 법질서 수호를 핵심 업무로 하는 법무부 장관 직책을 맡고 있었던 만큼 다른 국무위원에 비해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못한 책임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특검팀은 영장 청구서에 박 전 장관이 국헌 문란의 목적범에 해당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현행법상 내란 범죄는 국토 참절 또는 국헌 문란 목적의식을 공유했어야 처벌할 수 있다. 박 전 장관은 다수 국무위원과 달리 지난해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기 2시간 전인 오후 8시쯤 대통령실로 들어오라고 따로 호출됐고, 윤석열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서 계엄에 관한 설명을 먼저 들어 국헌 문란 목적도 인지할 수 있었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대통령실에서 특정 문건을 자신의 양복 주머니에서 꺼내 들여다보고 A4 용지에 메모하는 모습 등을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확인했다.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대화하고 있다. 2025.1.22. 연합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단순히 비상계엄을 방조한 것을 넘어, 계엄이 선포되자 법무부에 각종 후속 조치를 지시함으로써 윤석열의 내란 행위에 순차적으로 가담했다고 점에 주목했다. 박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로 돌아와 간부 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회의에는 법무부 실·국장 등 10명이 모였는데, 이 자리에서 법무부 검찰국에 '계엄으로 설치되는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 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있다. 실제로 입국·출국 금지와 출입국 관련 대테러 업무를 맡는 출입국 규제팀이 법무부 청사로 출근한 사실이 확인됐다. 계엄 이후 정치인 등을 수용하기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의 이 같은 지시가 불법 계엄을 정당화하고 계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국헌 문란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법무부 실·국장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는 직권남용 혐의도 적용했다. 특검팀은 지난 8월 25일 법무부, 서울구치소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교정본부가 계엄 당시 구치소별 추가 수용 가능 인원을 점검해 문건을 작성했다가 삭제한 사실을 찾아냈다. 박 전 장관이 지난해 12월 4일 새벽 1시쯤 신용해 교정본부장으로부터 '구치소 현황 문건'을 휴대전화 메신저로 보고 받은 뒤 삭제한 기록이 나온 것이다. 특검이 복구한 문건에는 수도권 구치소에 계엄 관련자 360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에 따라 특검팀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230쪽 분량의 의견서와 120장 분량의 PPT 자료 등을 토대로 구속 수사 필요성을 다각도로 제기했다. 박 전 장관의 휴대전화에서 구치소 수용 현황 관련 보고를 받은 데이터가 삭제된 점, 사건 이후 휴대전화가 교체된 점 등을 들면서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그간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내란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으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통상적인 업무 수행'을 했을 뿐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취지다. 박 전 장관은 지난달 특검에 소환됐을 때도 서울고검 청사 1층이 아닌 지하를 통해 조사실에 들어가는가 하면 조서에 서명·날인을 하지 않고 조사를 마치는 등 반성의 기미가 전혀 안 보이는 태도로 일관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 추천위원회 회의에 입장해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추천위원들은 회의를 거쳐 8월 1일 퇴임하는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후보를 3배수 이상을 추천할 예정이며,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 중 3명을 선정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청할 예정이다. 2024.6.13. 연합
 

그럼에도 구속영장을 기각한 박정호 부장판사는 12·3 비상계엄 이후인 지난 2월 수원지법에서 근무하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자리로 이동한 판사 3명(이정재·정재욱·박정호) 중 한 사람이다.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 총 4명(남세진 포함) 가운데 3명이 같은 법원에서 일하다 한꺼번에 영장전담 판사로 옮겨온 건 극히 이례적이어서 내란 관련 재판을 앞두고 조희대 대법원장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수원지법은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이었을 때부터 최근까지 이 대통령 및 주변 인물들에 대해 불리하거나 불합리한 판결을 다수 내렸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박정호 부장판사는 수원지법 형사13부 재판장이던 지난해 11월 14일 당시 더불어민주당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배우자 김혜경 여사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50만 원의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김 여사는 2021년 8월 2일 서울 한 식당에서 민주당 전·현직 국회의원 배우자 3명, 자신의 운전기사와 수행원 등 모두 6명에게 경기도 법인카드로 불과 10만 4000원어치의 식사를 제공했다는 혐의(기부행위)로 검찰에 의해 지난해 2월 14일 재판에 넘겨졌다. 공직선거법상 벌금 100만 원 이상이 확정되면 선거운동이 5년간 제한된다.

 

박 부장판사는 역시 수원지법에서 근무하던 올해 2월 19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이상식(용인시갑) 의원에게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의원이 지난해 4·10 총선을 앞두고 재산 축소 신고 의혹 등이 제기되자 이를 해명하기 위한 기자회견문에 미술품 가액과 관련한 일부 허위사실을 넣어 유포했다는 혐의였다. 그러나 이 의원은 지난 7월 24일 항소심에서 형량이 대폭 축소된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 씨가 26일 오후 경기 수원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을 마치고 청사를 나오고 있다. 2024.2.26. 연합
 
조영탁 IMS모빌리티 대표가 20일 조사를 받기 위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5.8.20. 연합
 

이상식 의원 1심 선고 바로 다음날인 2월 20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으로 이동한 박 부장판사는 지난달 3일 소위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IMS모빌리티 조영탁 대표와 모재용 경영지원실 이사, 오아시스에쿼티파트너스 민경민 대표에 대해 김건희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줄줄이 기각했다. 집사 게이트란 김건희 일가의 '집사'로 지목된 김예성 씨가 설립에 참여하고 지분까지 가진 렌터카업체 IMS모빌리티가 2023년 사모펀드 운용사 오아시스에쿼티파트너스를 통해 카카오모빌리티, HS효성, 신한은행 등으로부터 184억 원을 부당하게 투자받았다는 의혹이다. 김건희 특검은 집사 게이트의 '키맨'인 이들 3인방에 대한 구속영장이 전부 기각되자 "매우 이례적이고 향후 진행될 수사와 관련해 증거인멸의 우려가 매우 크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달 18일엔 김건희 측에 1억 4000만 원 상당의 이우환 화백 그림을 건네고 총선 공천 등을 청탁한 상대적으로 가벼운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를 받는 김상민 전 부장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은 발부했지만, 다음날인 19일엔 '리박스쿨' 손효숙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해 또 다시 충격을 줬다. 손 대표는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자손군'(댓글로 나라를 구하는 자유손가락 군대)이라는 극우 성향의 여론 조작팀을 운영하며 이재명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 등을 달게 하고, 리박스쿨 출신이 '늘봄학교' 프로그램 강사로 채용되게 했다는 중대한 혐의를 받았다. 여론 조작 관련 채팅방 폐쇄를 지시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도 뚜렷했다. 그러나 박 부장판사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염려 등 구속 사유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 김호경 기자 >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5.7.10. 연합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사건 당시 법무장관
이 대통령과 백 경정 맹비난…초조감 드러내나

수사 외압 받은 '피해자'는 수사하면 안 된다?
"마약 밀수의 피해자가 아니니 아무 지장 없어"
"윤석열은 박근혜 정권의 피해자인데 복수혈전"

다만 동부지검은 백해룡 별도 수사팀 구성키로
경찰 윗선 등 '고발인' 신분에 합수팀 불신 감안
"검경 지휘부, 마약게이트 깊이 관련…셀프 수사"

임은정은 합수팀 신뢰…"수사 의지와 역량 확인"
양측 입장 차 커 '화학적 결합'은 좀 더 지켜봐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백해룡 경정. 연합 사진

 

이재명 대통령이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에게 "성역 없이 독자적으로 엄정 수사하라"고 지시하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언론 인터뷰와 SNS를 통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2023년 사건 발생 당시 '윤석열 정권의 황태자'로 불리며 법무부 장관을 맡고 있던 인물이 바로 한 전 대표였기 때문에 본인의 결백을 내세우는 여론전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나 임 지검장이 한 전 대표를 언급한 것도 아니고, 심우정 검찰총장 시절인 지난 6월 10일 발족한 합동수사팀에서 지금까지 4개월이 넘도록 한 전 대표를 소환조사하거나 압수수색하기는커녕 수사선상에 올렸다는 소식도 전해진 바가 없기 때문에 한 전 대표가 혼자 발끈하는 모습은 오히려 '제 발 저린 듯' 초조감을 드러내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한 전 대표는 "대통령이 마약을 척결해야지 마약으로 정치하면 안 된다" "대통령이 일선 검사에게 직접 수사 개입을 한 것은 중대한 불법이다" "세관 마약 수사에 관여했다는 게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다 던지고 정치 안 하겠다" 등의 격한 발언을 연일 쏟아내는 중이다. 그는 특히 이 대통령이 수사팀 보강 차원에서 백해룡 경정을 파견하도록 지시한 대목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수사 외압을 받은 피해자 보고 수사를 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백 경정도 14일 오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2023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으로서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의 필로폰 밀반입 및 인천세관 공무원들의 연루 의혹을 추적하다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으로 좌천된 백 경정은 "한동훈 씨는 마약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당한 백해룡이 못내 안쓰러운 모양이다. '백해룡은 외압의 피해자'라 말한다"면서 "검찰과 한동훈 씨가 제 걱정을 언제부터 해왔는지 모르겠지만 정중히 사양하겠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동훈 씨는 마약게이트 수사 대상이다. 그가 12·3 비상계엄 때 왜 윤석열·김건희로부터 주(主) 척살 대상자가 되었는지 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백해룡 수사팀은 2023년 7월 말부터 자수한 필로폰 투약자 1명을 입건해서 수사를 진행했다. 이후 20여 회 검거, 10여 차례 압수를 거쳐 그해 9월경 조직원 등 26명 검거(14명 구속), 74kg 밀수 유통(27.8kg 압수)되었다는 사실을 특정했다"고 당시 수사 과정을 설명했다.

 

또 "이때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의 마약 밀수에 세관 직원들이 공범으로 가담한 사실을 확인했고, 이들이 작당해서 국내 밀수입 유통시킨 필로폰 양은 수백kg을 넘을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제가 추후 확인한 밀수입 양만 300kg이 넘는다"면서 "대한민국 하늘 국경을 마약 조직에게 열어준 것이었다. 일단 물밀듯이 들어오는 이 참담한 상황을 막아야 했다. 그래서 사건 브리핑을 하려한 것"이라고 전했다.

 

백 경정은 "국민이 알게 되면 마약 밀수 행위가 위축될 것이고 수사도 가능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저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말레이시아발 마약 수입은 윤석열·김건희의 독점사업이었고 그것을 들추어내는 일은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었다"며 "말레이시아 조직원들과 세관 직원들의 범죄 행각을 확인하고도 검찰이 축소·은폐하고 또 덮어버렸다. 백해룡은 그들의 국가반역 행위를 들추어 내려다 수사권을 빼앗기고 쫒겨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에게 '외압의 피해자'란 타이틀을 붙이고 백해룡이 수사하면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범죄 수사하던 중 수사팀에게 외압이 행사되면 팀장은 피해자가 되는 건가? 수사 방해 목적으로 진정이나 고소·고발을 하면 수사팀이 피해 당사자가 되어 이해충돌 문제가 생긴다는 건가? 그래서 마약 게이트를 덮어버린 검찰이 수사를 해야 이해충돌의 문제가 없어진다는 건가?"라며 조목조목 따져 묻고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듣게 된다"고 일축했다.

 

2022년 5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5.26. 연합
 

'백 경정은 외압의 피해자이므로 그의 수사팀 합류는 불법'이라거나 '이 대통령의 수사 지시는 불법'이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백 경정 외 제삼자들에 의해서도 다각도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김규현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백 경정은 외압의 피해자이지 마약 밀수의 피해자가 아니다. '세관 마약' 사건을 수사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며 "수사 개시를 해라 말아라, 압수수색을 해라 말아라, 구속을 시켜라 말아라 같은 '구체적 수사지휘'는 법무부 장관을 통해서 해야 하지만 수사부서에 누구를 배치할지 같은 '일반적 지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열심히 수사하라' 같은 추상적 지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또 "한동훈 측에서 '피해자가 수사를 하면 안된다'고 백해룡 경정 수사팀 합류를 비판하는데 옛날 기사를 한번 보라"면서 "2013년 윤석열은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다가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여주지청장, 대구고검 등지로 좌천되는 수모를 겪었다.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부활한 윤석열은 기다렸다는 듯이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전 국장, 차장에 대해서 소환조사, 압수수색을 했고 검사장까지 수사 방해 혐의를 물어 구속했다. 이는 검찰 설립 이래 처음"이라고 유사 사례를 들었다. 아울러 "여기에 덤으로 사이버사령부 여론 조작 건으로 전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까지 구속하는 데 성공한다"며 "윤석열의 복수혈전에 가담했던 한동훈 전 검사는 이에 대해서도 입장 표명 바란다"고 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마약 수사 외압 사건에 백해룡 경정을 투입하라는 지시를 하자마자 도둑이 제 발 저린 듯한 어떤 사람이 '마약으로 정치하지 말라'며 과민반응을 보인다. 그 어떤 사람은 한동훈이다. 한동훈이야말로 마약으로 정치해보려다 몰락한 케이스"라며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듯, 마약 수사 외압 사건 수사하라는데 엉뚱하게도 '마약으로 정치하지 말라'는 과민반응을 보이는 자야말로 마약 수사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한 진범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짚었다.

 

황 의원은 "이태원 참사의 여러 원인 중 가장 강력한 원인은 윤석열의 택도 아닌 '마약과의 전쟁' 선포였다. 생뚱맞은 마약과의 전쟁은 영악한 검사들에 의해 기획되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면서 "주무 부서는 법무부(장관 한동훈)였을 테고, 용산 대통령실에 있던 검사 출신들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을 것이다. 불순한 동기로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은 축제를 즐기던 청년 159명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는 비극을 낳았고, 이후 마약과의 전쟁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지만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권 몰락의 서막이 되었다. 한동훈이 '마약으로 정치하지 말라'며 경망스럽게 떠드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추정했다.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찰개혁의 쟁점은 무언인가 : 국민이 바라는 검찰개혁의 속도와 방향'을 주제로 열린 검찰개혁 긴급 공청회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는 촛불행동, 검사를 검사하는 변호사 모임, 민생경제연구소,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 조국혁신당 황운하·박은정 의원 주최로 열렸다. 2025.8.29. 연합
 

다만 임은정 검사장이 이끄는 서울동부지검은 백해룡 경정이 파견되면 별도의 수사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백 경정이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조병노 경무관(외압 사건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과장), 고광효 전 관세청장 등 사건 관계자 9명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공수처에 고발한 '고발인' 신분이라는 점을 감안해 불필요한 시비를 차단하려는 조치다. 게다가 백 경정은 "검찰은 수사 대상이지 수사 주체가 될 수 없다"면서 기존 합동수사팀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대검찰청은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주축이자 세관 마약 밀수 은폐 의혹의 당사자인 심우정 전 검찰총장(사건 당시 인천지검장)이 현직에 있을 때 합동수사팀을 꾸렸기 때문에 백 경정으로서는 일리 있는 항변이었다.

 

동부지검은 14일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백 경정은 수사 외압·은폐 의혹의 고발인 또는 피해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본인이 고발한 사건 등을 '셀프 수사'하는 것은 공정성 논란을 야기하는 등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따라서 백 경정이 파견될 경우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기존 합동수사팀과 구분된 별도 수사팀을 구성하되, 2023년 2월 (발생한) 인천지검 마약 밀수 사건 수사 은폐 의혹 등 백 경정이 피해자가 아닌 사건 수사를 담당하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고 수사 과정과 수사 결론 모두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세관 마약 밀수 연루 의혹 합동수사팀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수립 후 검찰·경찰·국세청·FIU 등 정부기관 합동으로 출범한 수사팀으로, 전 검찰총장이나 검찰이 개인적·독단적으로 구성한 것이 아니다"라며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 8월 합동수사팀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인계받아 관련 수사기록을 면밀히 검토했고, 매일 수사팀의 수사 상황을 챙기면서 역량과 의지를 확인하고 깊이 신뢰하고 있다. 현재 수사팀 구성원들과 원팀을 이뤄 함께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백 경정이나 상당수 국민의 불신과는 달리 합동수사팀의 수사 의지와 역량이 충분히 믿을 만하다는 점을 임은정 지검장이 직접 보증하고 나선 셈이다. 합동수사팀은 지난 6월 출범 이래 ▲인천세관, 경찰청, 서울청, 관세청, 주요 피의자들의 주거지, 마약 밀수 피의자들의 수용 거실 등 총 28개 장소에 대한 광범위한 압수수색 ▲마약 밀수범 16명, 직권남용 피의자 6명 등 관련자 입건 ▲중요 피의자들 및 참고인들의 휴대전화 총 42대 포렌식, 통화 내역 분석, 영상녹화 조사 등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동부지검은 특히 윤국권 합동수사팀장(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이 2023년 2월 서울중앙지검 근무 당시 마약 밀수 사건 수사를 무마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당시 구속 기간 임박으로 피의자들을 구속기소한 이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새로운 사건번호를 부여받아 공범 및 여죄에 관한 추가 수사를 진행한 사실 ▲당시 합수팀장은 해당 사건 수사나 결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사실을 임 지검장이 직접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의 수사팀 교체 주장은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이미 4개월간 방대한 수사가 착실히 진행돼 합수팀장을 교체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임 지검장은 따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저 역시 처음에는 이런저런 말들에 혹시나 싶어 합수팀을 색안경을 끼고 지켜보았다가, 그간의 수사 상황을 확인하고 매일매일 함께 머리를 싸매며 처음의 오해가 많이 미안했다"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 합수팀 수사에 있어 보안이 철저히 지켜지는 것이 어찌 보면 이례적인 것이어서 수사의 정도(正道)를 지키며 거대한 의혹의 산더미를 묵묵히 파헤치고 단단하게 사실관계를 찾아가는 합수팀원들이 대견하다 못해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수사 보안이 어찌나 철저하게 지켜졌는지 심지어 일을 안 한다는 억측이 돌았고, 백해룡 경정님 등 수사팀 보강까지 이루어질 예정이라 정식 공보로 밝힐 건 밝히고 정리할 건 정리해야겠다 싶어 입장문을 발표했다"며 "특검 등에서의 연이은 인력 차출로 검찰은 물론 경찰 역시 수사팀 보강이 쉽지 않은 상황인 듯하고, 관련자 등 면면으로 인해 이런저런 우려와 기대 역시 많다. 공정성이나 편향성 논란이 제기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하여 단단하게 사실을 좇아 계속 가보겠다"고 전했다.

 

백해룡 경정(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 2024년 7월 31일 경기도 과천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인 자격으로 출석하고 있다. MBC 뉴스 화면 갈무리

 

경찰청은 이날 백 경정을 동부지검으로 파견한다는 인사 발령을 통지했다. 이에 따라 백 경정은 15일부터 동부지검으로 출근하게 됐다. 백 경정은 사전 협의 없는 인사 발령을 '폭거'라고 표현하고, 합동수사팀에 대해서도 적법한 절차와 과정을 거치지 않은 '불법 단체'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어 임 지검장 및 수사팀과 제대로 화학적 결합을 이룰지, 업무 분담을 어떻게 매끄럽게 조율해나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백 경정은 이날 저녁 페이스북을 통해 "수사팀을 모집하고 구성하는 일체의 협의가 없으니 수사팀을 어떻게 꾸리고 운영할 건지 알 수도 없다. 절차도 없고 작은 배려조차 없이 무작정 발령부터 내버린다"면서 "경찰 지휘부와 검찰 지휘부를 두텁게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때 그 사람들이다. 세상은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진짜 바뀌었나 강한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하기 위해 수사 인력을 선발할 수 있는 권한과 최소한의 인원(25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합수단을 구성하도록 지휘한 검찰 지휘부와 경찰 지휘부 모두 마약게이트와 깊이 관련돼 있다. 합수단 단장은 마약게이트를 덮어주고 승진한 사람"이라며 "셀프 수사는 합수단이 하고 있다. 검찰로 향하는 수사를 원천 차단하는 역할을 합수단이 맡고 있는 것이다. 동부지검의 보도자료 내용이 동부지검장의 입장이라면 참으로 고약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백 경정 파견이 공식 결정되자 또 다시 펄쩍 뛰면서 자신이 피의자로 입건될 가능성에 불안감을 내비쳤다. 그는 "검찰이 이재명 대통령의 불법 수사지휘대로 백해룡 씨를 동부지검 수사팀에 파견한다고 한다. 게다가 백해룡 씨 1인을 위한 별도 수사팀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며 "검찰은 대통령 지시가 불법이면 듣지 말아야지 이게 뭐하는 건가. 마치 병풍조작 사건을 위해 김대업 만을 위한 수사팀을 만드는 셈"이라고 했다.

 

이어 "동부지검 수사팀에게 제가 영등포경찰서 마약 사건에 외압을 가하고 덮었다는, 이재명 대통령이 보증한 백해룡 망상에 1%라도 동의하는지 묻고 싶다. 22명을 입건했다던데, 백해룡 망상에 동의한다면 그 망상의 핵심인 나도 당연히 피의자로 입건되었을 것"이라며 "수사는 이미 4개월 동안 했으니 충분히 오래 했다. 나는 괜찮으니 내가 그 22명 피의자로 입건되어 있는지와 내 혐의 사실을 공개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 김호경 기자 >

전시작전통제권 회복에 ‘비용 폭탄’은 없다

● COREA 2025. 10. 16. 13:3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전작권 회복해도 주한미군 전력 제공은 불변
한국군 전력 토대로 연합사령관 국적만 바뀌어
전작권 회복에 천문학적 비용 주장 근거 없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에 “굳건한 한미동맹 기반 위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회복해 대한민국이 한미연합방위태세를 주도해 나가겠다”고 발언했다. 이 대통령은 “급변하는 안보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자주국방은 필연”이라며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의존할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작권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 정부가 유엔군사령관에게 한국군 지휘권을 넘긴 이래, 75년째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 사령관)이 행사하고 있다. 여러 정세로 볼 때 이제는 전작권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군대를 우리가 지휘하며 미국과도 협력할 때 우리 안보가 더욱 튼튼해지리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 발언은 적절했다.

 

일부 언론과 연구자는 10월 2일치 언론 보도와 논평을 통해 전작권을 회복하면 막대한 비용이 들고 대북 억지력도 약화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A신문은 ‘전작권 전환 초기 비용만 35조-미군 재조정과 맞물려 난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한국군은 정찰·감시, 지휘·통제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이런 자산들을 확보하는 데는 최소 수십조 원, 최대 수백조 원의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고 주장했다.

 

임철균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지난 7월 세미나에서 초기 비용만 34조9990억원이 든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A신문은 같은 날 사설에서 “지금 한국군은 북핵을 탐지·추적·요격·반격하는 전시 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없다. 특히 감시·정찰 분야에서 전작권 전환 기준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핵 반격 자산은 미군만 갖고 있다. 이런 능력을 갖추려면 많은 시간과 최소 수십조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2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남한강 도하훈련장에서 열린 \'한미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에서 K1A2 전차가 부교 도하를 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육군 제7기동군단 예하 7공병여단과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다목적 교량중대 등이 참여했으며 지난 6월 전력화된 한국형 자주도하장비 \'수룡\'이 처음으로 참가했다. 2024.10.22 연합
 

A신문 주장은 옳지 않다. 한미가 합의한 현행 전작권 전환 구조와는 전혀 다른 ‘가상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0월23일 한미 국방부는 제46차 안보협의회(SCM)에서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세 가지 조건을 합의했다. 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국군이 한미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핵심 군사능력을 확보하고 미국은 보완·지속 능력을 제공하는 것, ②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한국군은 초기 필수 대응능력을 구비하고 미국은 확장억제 수단과 전략자산을 제공, 운용하는 것, ③ 안정적인 전시작전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와 지역의 안보환경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10월 31일 한미 국방부는 제50차 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지침’에 합의했다. 이 지침에서 한미연합군사령부를 편성하되 한국군 4성 장성을 연합군사령관으로 임명하며 미군 4성 장군을 연합군 부사령관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아울러 대한민국 국방부는 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지속 발전시키고, 미 국방부는 대한민국 방위를 위한 보완 및 지속 능력(bridging and enduring capabilities)을 계속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한미가 합의한 현행 전작권 회복 구조를 보면 현재 미군 4성 장성이 맡은 연합군사령부 사령관 직위를 한국군 4성 장성으로, 한국군 4성 장군이 맡은 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은 미군 4성 장성으로 교체한다. 전작권 회복에도 불구하고 미 측은 전력을 철수하거나 감축하지 않고 보완 능력을 계속 제공하기로 했다. 한국 국방부는 연합방위를 주도하는데 필요한 군사적 능력을 확보하려고 ‘2021~2025 국방중기계획’에 약 300조원의 재원을 반영했다.

 

A신문 주장과 달리 현행 구조에서는 전작권을 회복해도 한미 연합방위태세 자체는 변함이 없으며 연합군사령관 국적만 바뀐다. 비유법을 사용한다면 미군 4성 장군이 맡고 있던 연합군사령관을 한국군 4성 장군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추가 비용’은 주인이 바뀌는 사령관 집무실을 청소하거나 단장하는 비용 정도에 그칠 것이다.

 

전작권을 회복하면 미국측이 한국 방위 지원을 줄이지 않을까라고 주관적으로 짐작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현행 한미 합의는 그런 가능성을 명백히 배제하고 있다. 현행 합의구조를 무시하고 전작권 회복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 것이라고 과장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

 
 

母語로 대화하던 두 누이 잃은 슬픔 딛고 사투리로 성경 풀어내

"우리말의 풍성함 생각…엘리트주의 벗어나 머리 낮추자는 마음"


                                                                                      임의진 목사

 

"예수께서는 입서리를 벌쌔듬마(입술을 열더니) 말씀을 허셨재. '예말이요, 성님 동상님덜. 인자부텀 온 천하에 댕김서 몽조리(모조리) 만나는 사램들마다 그간 알캐드린 복음을 전하셔야 쓰겄소."

 

가장 오래된 성서 중 하나인 마가복음 16장 15절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는 장면이 소개돼 있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당시 상황을 전한다. 만약 예수가 전라남도에서 태어났다면 위에 쓴 것처럼 구수한 사투리로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임의진(56) 목사는 '공동번역 성경'(1997년)과 '개역개정판 성경'(1998년)을 바탕으로 이처럼 전라남도 방언으로 마가복음을 번역한 '마가복음 전남 방언'(대한기독교서회)을 최근 펴냈다.


'마가복음 전남 방언' 삽화 '가시관을 쓰신 예수' [대한기독교서회 제공]

 

책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나 '아리랑'처럼 사투리에 지역 정서가 맛깔나게 녹아있다. 방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각 페이지 하단에 주석을 붙였고 방언사전도 책 말미에 덧붙였다. 임 목사의 오랜 벗인 홍성담·전정호 화백이 협업해 목판화로 찍은 삽화를 책에 실었다.

 

성경을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로 번역하는 것은 언뜻 생각하면 불경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임 목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런 시각이 편견에 불과하다며 예수 이야기를 꺼냈다.

 

"예수님은 당시 표준말을 쓴 분이 아니에요. 아람어라는 갈릴리 지방의 사투리를 썼어요."

 

다양한 언어, 각 지역의 특색이 담긴 말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낮은 자들의 언어로 가르침을 전한 예수의 정신에도 부합한다는 것이 임 목사의 견해다.


책 표지 이미지 [대한기독교서회 제공]
 

'마가복음 전남 방언'은 지역 언어 연구 자료로 삼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남도 방언을 생생하게 포착해냈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임 목사가 전남 강진군에서 태어나 강진·해남 등에서 성장하고 일대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등 지역 사회와 어우러진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숨은 비결이 더 있었다.

 

"저는 목사의 아들로 자랐는데 권사님들이나 동네 할머니들이 저를 키우다시피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구수한 강진·해남 사투리를 배우고 자랐어요. 사투리의 영역이 머릿속에서 폭넓게 각인됐죠. 사투리 영재 교육을 받은 셈이죠." (웃음)

 

작가이기도 한 임 목사가 틈틈이 지역 언어를 정리해서 사전처럼 모아놓은 것도 번역 작업에 도움이 됐다.

 

그런 그가 성경을 사투리로 번역하길 마음먹은 계기는 작년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찾아왔다.

 

누나와 여동생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두 누이는 임 목사가 모어(母語)인 전남 방언으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던 혈육이었다.


'마가복음 전남 방언' 삽화 '십자가상 예수' [대한기독교서회 제공]

 

"가족과 전화하거나 만나면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쓰잖아요. 우리는 퍼스트 랭귀지, 그러니까 모어를 서로 썼는데 그런 가족을 잃은 거예요.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내가 목사라서 그런지 두 누이와 나누었던 사투리로 성서가 떠오르더라고요."

 

임 목사는 표준어의 역할과 기능을 긍정한다. 하지만 표준어만 바른 것이고 방언은 틀렸다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투리는 지역의 언어이고 다만 표현이 다를 뿐인데 표준어가 아니면 안 좋은 것처럼 보는 시각이 아쉽다"며 "우리말의 풍성함에 대해서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성경을 굳이 방언으로 번역한 것은 표준어를 제패와 독점의 도구로 인식하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저항인 셈이다.

 

아울러 요즘 교회에 퍼진 엘리트주의를 극복하고 어려운 이들,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하자는 메시지도 전하고자 했다.

 

"요즘 교회는 밑바닥 사람들, 빈곤한 사람들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위험천만하게 권력에 줄을 대기도 하잖아요.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고 머리를 낮추어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사투리로 번역하게 됐어요."


남녘교회 시절의 임의진 목사[연합 자료사진]
 

'마가복음 전남 방언'은 임 목사가 강진에서 출생해 전남 방언을 모어로 지니게 된 우연의 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만약 그가 속초에서 태어났다면 '마가복음 강원 방언'을 펴냈을지도 모른다. 임 목사는 "다른 지방 사투리로도 성서가 번역되기를 기대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 이세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