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세 25%로 인상 발언 하루만에
또 협상과 대화 여지 열어두려는 의도


중앙 1면 "세 번 경고 정부·국회 묵살"
외신들은 "다른 나라 겁박하는 효과"

조약 아닌 팩트시트와 MOU 이뤄져
"대법원 판결이 궁극적인 변수" 중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자료사진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제품들에 대한 관세를 25%로 되돌리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두 나라의 협상과 대화 여지를 열어두려는 한 발 물러선 발언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방문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취재진으로부터 관련 질문을 받고 "우리는 해결책을 마련할 것"(We'll work something out)이라고 답한 뒤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We'll work something out with South Korea)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두 나라가 어떤 식으로 협상을 벌일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을 통해 "한국 국회가 우리의 역사적인 무역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다"며 "이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 목재, 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적었다. 백악관도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지원사격을 했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합의에서 약속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현실은 한국 측에서 전혀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1월 한국의 3500억 달러(약 505조원) 규모 대미 투자 이행을 전제로 관세를 15%로 되돌렸다. 두 나라는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한국 국회에 관련 법안이 제출된 달의 1일 자로 관세 인하를 소급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는 15%로 낮춰졌지만, 투자 이행을 위한 '대미투자특별법'은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했는데 아직 소관 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여권은 다음달 법안 심사에 착수하면 2월 말과 3월 초 사이에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무역 합의 비준이 우선"이라며 법안 상정을 반대하고 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뒤 캐나다에 머물던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미국으로 떠나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회동할 예정이며,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미국을 찾아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일의 배경으로 미국 정치권의 압박을 유추하는 이들도 있다. 연방 하원 법사위 공화당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루스 소셜 포스트를 공유하며 "쿠팡 같은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겨냥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한국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미국 테크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다. 정부가 최근 원화 약세와 외환시장 불안을 이유로 연 200억달러 규모 투자 집행 시점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점도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중앙일보는 28일 1면 머리기사를 통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한국의 입법에 대한 공개적 우려 표명,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공식 서한 발송에 이어 J D 밴스 미 부통령이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등 세 차례 미국이 경고했는데 우리 정부와 국회가 이를 묵살했다고 보도했다. 정부와 국회가 나름의 속도 조절을 통해 입법 통과 시기를 조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마치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측 당국자들에게 왜 트집 잡힐 짓을 했느냐고 책망하는 식이다.

 

 

영국 BBC는 트럼프가 한 발 물러선 포스트를 내놓기 전 분석 기사를 통해 그의 관세 인상 위협이 실제로 이행될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 계획에 반대하는 유럽의 무역 파트너들에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가 최근 원상 복구한 예를 들었다. 

 

하그리브스 랜즈다운의 주식 연구 책임자 데런 네이선은 "서울에서 워싱턴으로 대표단이 이동 중인 가운데 시장은 이번 최신 변화를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 들어 외교 정책을 실행하는 지렛대로 관세를 자주 사용해 왔다. 지난 24일 그는 캐나다가 중국과 무역 협정을 체결할 경우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26일 중국 관리들은 캐나다와의 '전략적 동반자' 협정이 다른 국가들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지 않으며 "한 번도 고려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캐나다 관리들이 미국 측에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덧붙였다.

 

그 전에는 트럼프가 덴마크 왕국의 자치령 그린란드를 점령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반대하는 8개 나라에 수입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린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다. 트럼프는 나중에 그린란드 관련 관세 위협에서 "미래 합의"를 향한 진전을 이유로 물러섰지만, 이 일은 덴마크 및 다른 NATO 동맹국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다. 

 

27일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루스 소셜 포스트 때문에 수출 길이 막힌 듯이 이 사진을 분석 기사에 맞물렸다. 평택 연합
 

다른 외신 기사들도 간략히 살펴보겠다. 먼저 요약하자면, 공식 조약이 아닌 형태로 이뤄진 양국 합의의 불확실성이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며, 최근 캐나다와 유럽 국가들에 대한 관세 위협에 이어 나온 발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실제 부과 권한은 상호관세 위법 여부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의 발언이 지난 연말 타결된 양국의 합의를 뒤엎는 것으로 비슷한 합의를 한 나라들을 동요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그의 발언이 곧바로 한국 정부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양국 무역 협정이 공식 조약이 아닌 팩트시트와 상호양해각서(MOU) 형태로 이뤄졌다는 점이 불확실성을 더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이전에도 다른 나라들이 합의사항을 신속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한 당국자는 유럽연합(EU)을 향해 "좀 느리다"고 비난했다. FT는 또 트럼프의 메시지가 최근 유럽 국가들에 고율 관세 부과를 경고했다가 이를 철회하는 등 격동의 한 주를 보낸 직후에 나왔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도 이날의 메시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들어 발표한 일련의 관세 위협 중 가장 최근 사례이지만, 그는 어느 관세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으며 그린란드 갈등과 관련해 유럽 국가들에 위협했던 관세는 완전히 철회했다고 전했다. ‘TACO'(Trump Always Chicken Out, 트럼프는 강경 카드를 던졌다가 결국 물러난다는 월가식 표현)가 또 확인됐다는 지적이 따랐다.

 

외신들은 이와 함께 대법원 판결과 맞물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데 제약이 따를 수 있다고 짚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상호관세 등 부과의 근거로 삼은 것이 위법이라고 판결했으며,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상고에 따라 이를 심리하고 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실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행정명령 등 대통령의 공식 권한을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동안 해왔던 관세 관련 발언 중 다수는 법적인 도전에 직면했으며,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임병선 기자 >

 

청와대 "대미특별법 지연에 미 불만…입법노력 상세히 설명할 것"

 
"김정관-러트닉 채널 가장 중요…입법 전 투자프로젝트 사전준비 등도 고민"

"차분하게 해결책 모색…트럼프 발언, 쿠팡·온플법과는 무관"


발언하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광주=연합) 17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도시공사에서 열린 '광주 군 공항 이전 6자 협의체' 1차 회의에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5.12.17 [광주전남사진기자단]
 

청와대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근 '관세 재인상' 발언과 관련,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에서 신속하게 처리되지 않아 (투자 관련) 합의사항 이행이 늦어지는 데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불만은 100% 국회에서의 입법 지연에 있다고 보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실장은 "한국에서 법 심의가 끝나야 대미 투자펀드의 절차가 시작된다는 것을 미국도 알고 있다. 미국은 그 절차가 기대보다 느리다고 생각한 것 같고, 여기서 답답함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 프로젝트를 빨리 가동하고 싶은 미국 측의 기대가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에) 깔려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국회에는 2월에 특별법 입법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충분히 하겠다"며 "미국에도 우리 정부와 국회가 이런 노력을 한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하는 등 차분히 대응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의 채널이다. 또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예정보다 빨리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논의할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김 실장은 "러트닉 장관의 경우 (실무 대화 중) 관세를 올린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그러나 이는 경기를 일으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라며 "실제로 관세가 조정되려면 관보 게재 등 구체적인 작업이 있어야 한다. 우리로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기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책실장과 산업장관 (서울=연합) = 김용범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6.1.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아울러 김 실장은 특별법이 통과되기 이전이라도 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예비검토를 거치는 등 사전 준비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이 통과되고 나서 프로젝트를 검토하면 또 몇 달이 걸리지 않느냐"며 "법 통과 직후부터 신속하게 법 절차가 진행되도록 '대외 경제장관 회의' 등의 결의를 통해 예비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전했다.

 

한편 김 실장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 쿠팡 사태나 온라인플랫폼법안 등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일각의 관측에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를 아닌 국회를 염두에 두고 발언한 것"이라며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앞으로 보내온 서한 역시 (관세 문제와)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 임형섭 황윤기 기자 >

 

‘약자 보호 입법’까지 문제 삼는 미국…노골적 간섭에 정부·국회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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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기에 타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위협을 계기로 미국 쪽이 한국의 디지털 분야 ‘비관세 장벽’을 재차 문제 삼으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27일(현지시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한국 정부를 비난한 배경에는 지난해 10월 말 한-미 정상회담의 산물인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가 있다. 설명자료에는 “한국과 미국은 망 사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문구가 있다.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하여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런 요구는 미국이 수년간 제기해온 것이다.

 

망 사용료 문제는 대규모 트래픽을 유발하는 구글과 넷플릭스 등 외국 업체들도 네이버 등 국내 업체들처럼 에스케이텔레콤(SKT) 등 통신사들에 인터넷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논리에 따른 입법 움직임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문재인 정부 때부터 기존 법률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보고 입법을 추진한 온라인플랫폼법은 거대 플랫폼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독점규제법과, 입점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거래공정화법 두 갈래로 나뉜다. ‘위치·재보험·개인정보’ 문제는 구글이 요구하는 초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등을 뜻한다.

 

정부는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게 아니다”라는 논리로 대미 설득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미국 쪽은 미국 기업의 부담이 늘 수 있는 입법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유튜브 등 플랫폼 업체 쪽에 ‘허위조작정보’ 유통 단속 의무를 강화한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미국의 불만 사항이 늘었다.

 

미국이 타국의 입법 활동에까지 노골적으로 간섭하면서 정부와 국회는 난처한 상황에 빠진 모양새다. 무엇보다 정책적 필요에 의한 입법을 외국의 압력 때문에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법안 심사 절차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온라인플랫폼법은 미국이 우려를 나타낸 독과점 관련 조항은 빠지고 ‘갑을관계’ 방지 조항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미국이 계속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고민거리다. 입점업체를 주로 보호하는 내용이다 보니 배달앱·쇼핑몰이 주로 적용 대상이 되고, 결과적으로 쿠팡 등 미국 기업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한-미 관세 합의 전에는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논의를 미뤘고, 관세 합의 뒤에는 ‘쿠팡 로비’라는 복병을 만난 상태다.

 

그리어 대표의 발언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관세, 자신은 비관세 분야 협상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발언을 지렛대로 큰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계산으로도 읽힌다. 정부는 조만간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으로 보내 협의할 예정이다.                                        < 이본영  김윤주  서영지  기민도 기자 >

 

 

이해찬 전 총리 별세 소식에 "비통함 금치 못해"
"강물이 바다로 가듯 민주·통일·균형 여정 계속"
"정치 유산 오래 기억할 것…부디 영면하시길"

문 전 대통령 "오랜 동지와의 시간 소중히 기억"
진보정당들 일제히 추모…"고인 뜻 실천하겠다"
국힘·개혁신당도 "정치사에 남을 것…명복 빌어"

민주당 지도부 "운구·빈소 등 직접 챙기겠다"
베트남에서 27일 국내로 운구…빈소 서울대병원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사진은 2025년 8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해찬 전 총리 모습. 2026.1.25. 연합 자료사진.
 

이재명 대통령은 26일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별세에 "대한민국은 오늘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이 밝힌 뒤, "고인의 별세 소식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전한다"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이 수석부의장에 대해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청년의 기개는 국정의 중심에서 정교한 정책으로 승화됐다"고 했다.

 

이어 "시대적 과제 앞에서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안정과 개혁을 조화롭게 이끌어내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셨다"며 "특히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며 수도권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혁신적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셨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통일을 향한 확고한 신념으로 평화의 길을 모색하셨던 수석부의장님의 뜻을 되새겨본다"며 "함께 이루고자 했던 꿈을 완성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애통해 했다.

 

그러면서 "강물은 굽이쳐도 결국 바다로 흘러가듯, 그토록 이루고자 하셨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 그리고 대한민국 균형발전을 향한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남겨주신 귀한 정치적 유산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제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부디 영면하시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사진은 2024년 11월 13일 국회에서 당시 이해찬 상임고문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함께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 참석하는 모습. 2026.1.25. 연합 자료사진
 

이 수석부의장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등 4명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며 정치적 동지로, 때로는 '킹메이커'나 '멘토'로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이 대통령과도 당의 원로로서 인연을 맺어왔다.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2022년 대선 경선 당시 이 대통령의 지지를 공식화해 지지 기반을 닦는 데 도움을 줬고,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했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집권 청사진을 만드는 데 조언했으며, 이 수석부의장과 가까운 정치인들이 주요 포스트에서 이 대통령을 도왔다.

 

이 대통령도 이 수석부의장을 지난해 10월 장관급인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하는 등 민주진영의 원로로서 예우에 힘을 쏟았다. 이번에도 이 수석부의장이 베트남 출장 중 위독한 상태에 빠지자, 이 대통령은 조정식 정무특보를 현지에 급파하고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상황 파악과 치료 지원에 힘쓸 것을 지시했다.

 

문재인 "오랜 동지와의 시간 소중히 기억"

 

이 수석부의장과 정치적 동지 관계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오랜 동지로서, 국정의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했던 시간들을 소중히 기억하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고인은) 재야의 민주화 운동부터 역대 민주정부에 이르기까지 늘 중심에 서서 평생을 민주주의와 국가를 위해 헌신하셨다"며 "부디 그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안식하시길 기원한다. 유가족께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 수석부의장은 생전에 문 전 대통령에 대해 "민주화 운동부터 3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친구이자 동지"라고 말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과 이 수석부의장은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과 국무총리로 함께 일을 하기도 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문 전 대통령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박근혜 탄핵으로 열린 18대 대선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킹메이커'로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서울공항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노영민 비서실장 등 환송인사와 이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6박 8일 일정으로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 북유럽 3국을 국빈방문 한다. 2019.6.9. 연합 자료사진
 

강훈식·홍익표 등 청와대 참모들도 애도
"모든 길이 역사" "우리 사회 큰 빚졌다"

 

청와대 참모들도 SNS를 통해 깊은 애도를 표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페이스북에서 "이 전 총리께서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그리고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라는 거대한 꿈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었다"며 "그 꿈을 향해 걸어오신 모든 길이 역사가 됐다"고 했다.

 

이어 "비서실장이 된 이후, 총리님께서 하셨던 말들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많다"며 "결국 정치는 사람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고인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실을 고민하셨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는 총리님 삶을 관통하던 이 한 문장. 저 역시 가슴에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 전 총리가 생전 마지막 회고록에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이제 조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문장을 적었다고 소개하면서 "그 마음을 헤아리며 슬픔과 황망함을 달래본다"고 덧붙였다.

 

홍익표 정무수석도 페이스북을 통해 "슬프고 비통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고 했다. 홍 수석은 "이 전 총리님께서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한평생 올곧은 길을 걸어오신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셨다"며 "대한민국이 어둠의 시기를 지날 때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횃불을 높이 드셨고, 경륜과 지혜의 정치인으로 끊임없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신 나침반과 같은 분이셨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이해찬·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 홍익표 원내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 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손을 잡고 있다. 2024.4.10 [국회사진기자단] 연합
 

이어 "저도 (민주당)수석대변인으로 당 대표이셨던 총리님을 모시며 국민의 삶을 위한 정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공익을 추구하는 정치인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며 "총리님께서는 마지막까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셨다. 우리 사회가 총리님의 삶에 큰 빚을 졌다"고 밝혔다.

 

홍 수석은 "이제 우리가 그 뜻을 이어 계속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위한 길을 걸어가겠다"며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이 전 총리님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했다.

 

우원식 "시대의 거목…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

 

이 수석부의장의 비보에 정치권에서도 애도가 이어졌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에 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 뒤, "나의 영원한 동지, 이해찬 선배님, 머나먼 타국 베트남에서 들려온 비보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며 "불과 얼마 전까지도 민주주의를 걱정하시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생생한데 이렇게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우 의장은 고인과의 인연도 회고했다. 그는 1982년 민주화운동을 하다 춘천교도소에 함께 수감됐던 경험, 1988년 재야 시절 평화민주통일연구회 소속으로 평화민주당에 같이 입당한 일 등을 언급하며 고인을 "정치의 길을 함께 시작한 동지이면서 선배"라고 했다.

 

우 의장은 "김대중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민주주의의 현장에 뛰어들었던 그날부터 38년 동안 때로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때로는 서로의 어깨를 보듬으며 오직 '국민'과 '민주주의'라는 한 길을 걸어왔다"면서, 고인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현장에서 답을 찾고 국민 삶을 기준으로 정치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또 "항상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 소외된 이들의 눈물이 고인 곳을 향해 시선과 발걸음을 두시던 모습으로 민주개혁세력을 이끌어 주셨다"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던 선배님의 열정을 결코 잊지 않겠다.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 진심으로 영광이었다"고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페이스북에 공유한 사진. 2026.1.25. 페이스북 갈무리
 

더불어민주당은 참여정부 국무총리이자 민주당 대표 등을 지낸 이 수석부의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직후 서면 브리핑을 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반세기의 한 축을 이뤄온 이해찬 전 총리님의 서거에 깊은 슬픔과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 전 총리는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시대를 견디고, 민주정부 수립과 민주정당의 성장을 위해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산증인이자 거목"이라며 "대한민국 민주정부 4번의 탄생 과정마다 (고인의) 역할이 있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 발전과 책임정치 구현, 대한민국 정치의 발전에 이 총리님께서 얼마나 큰 발자취를 그려오셨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 전 총리님은 늘 민주주의를 단지 이상이 아니라 ‘지켜내고, 발전시켜야 할 현실’로 받아들였던 정치인이었다. 권력의 중심에서도, 야인으로 돌아가서도 민주주의의 원칙과 진보의 방향을 놓지 않았다"면서 "그 바탕에는 언제나 역사에 대한 책임감과 국민에 대한 의무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는 한 사람의 정치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민주주의를 함께 보내고 있다"며 "이 전 총리께서 남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국민주권에 대한 확신, 그리고 민주정부의 책임에 대한 철학은 여전히 국민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그 뜻을 이어받아, 민주주의를 더욱 단단히 지키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주권주의를 완성하는 길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사진은 1988년 3월 31일 제13대 총선에 출마한 관악구 이해찬 후보의 유세. 2026.1.25. 연합 자료사진
 

정청래 대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픔"
민주당 지도부 "운구·빈소 직접 챙길 것"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제주에서 열린 '청솔포럼' 비전 선포식에서 부고를 전해 들은 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이 밀려온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정 대표는 고인에 대해 "일생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인권과 올바른 역사를 위해 모진 고초를 다 겪으시며 헌신해 오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목"이라고 말했다. 이어 "온 국민이 회복과 쾌유를 빌었고 민주당 대표인 저 또한 온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며 "제 정성이 부족해 운명하시지 않았는지 무척 괴롭다"고 했다.

 

정 대표는 SNS에도 별도로 애도 메시지를 올리고 "이 전 총리님께서 운명하셨다는 비보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평생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민주당 이해찬 상임고문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정 대표는 제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제주 일정을 중단하고 베트남으로 가서 뵐 생각이었는데 그 사이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접했다"며 "민주당 지도부는 내일 제주 현장최고위를 취소하고, 지금 즉시 서울로 올라가 이 전 총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2004년 6월 30일 당시 신임 국무총리에 임명된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모습. 연합 자료사진
 

민주당 지도부는 오는 27일 오전 이 수석부의장의 운구 행렬을 직접 맞이하러 인천공항에 나갈 예정이다. 정 대표는 빈소가 마련되는대로 현장을 지키며 조문객들을 직접 맞이할 계획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구체적인 장례 절차는 민주평통, 행정안전부와 논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보 정당도 애도…"고인 뜻 실천하겠다"

 

민주·개혁·진보 정당에서도 이 수석부의장의 별세에 애도를 표했다. 조국혁신당 박병언 대변인은 오후 논평을 내고 "고 이 수석부의장님의 명복을 삼가 빈다"고 전했다.

 

박 대변인은 "고인께서는 박정희 군부독재에 맞서 활동하다 투옥된 이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줄곧 헌신해 오셨다"며 "고인의 마지막 일정은 민주평통 아시아태평양 지역운영위원회 참가를 위해 베트남으로 향하는 것었다. 올바름을 위해 고난을 피하지 않았던 생의 모습을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도 보여주셨다"고 평가했다.

 

박 대변인은 "혁신당은 고인께서 평생 보여주신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정치적 단결,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다시 되새기며, 유지를 따라 실천할 것을 다짐하겠다"면서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진보당 손솔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독재의 엄혹한 시절부터 민주공화국의 기틀을 세우기까지, 온몸으로 시대를 관통해온 현대사의 거목을 잃은 슬픔이 가눌 길 없다"며 "진보당은 민주주의의 대의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고인의 삶을 기리며, 비통한 마음으로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손 수석대변인은 "1987년 6월 항쟁의 현장에서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고, 이후 7선 의원과 '책임 총리'를 거치며 제왕적 권력을 분산시킨 당신의 발자취는 우리 정치의 격을 높여낸 위대한 여정이었다"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그 서슬 퍼런 기개와 국가균형발전을 향한 혜안은 지금도 우리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이해찬 전 총리 별세 소식에 국내외 시민 사회단체들도 잇달아 애도의 뜻을
밝혔다. 사진은 캐나다 범민주원탁회의가 낸 애도성명.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노심초사하시던 고인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부디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고 평안히 잠드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인께서 생전 소망하셨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향한 그 뜻을 이어받아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덧붙였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은 페이스북에서 "고인께서는 '어항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늘 '진실한 마음, 성실한 자세, 절실한 심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에 몰두하라고 강조하셨다"며 "한평생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 삶의 여정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고 가신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사명, 이제 그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라며 "남겨진 우리가 그 무거운 책임 함께 나누며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개혁신당도 "정치사에 남을 것" 애도

 

야딩인 국민의힘도 "급작스러운 비보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 수석부의장은 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내며 정치의 중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분이었다"면서 "재야에서 시작해 국정의 책임을 맡기까지의 길은 우리 정치사의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국민들과 함께 슬픔 속에 계신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고인은) 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역임하시며 오랜 세월 대한민국 정치 현장에서 소임을 다하셨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평통 아태지역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이던 지난 23일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지 이틀만인 이날 오후 2시48분께 사망했다. 사진은 2025년 11월 열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취임식에 참석한 이해찬 수석부의장 모습. 2026.1.25. 연합 자료사진
 

27일 국내로 운구…빈소 서울대병원 예정

한편 고인의 시신은 베트남의 한 군 병원에 임시 안치돼 있으며, 오는 27일 비행기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베트남 현지에 가 있는 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 수석부의장의 임종 소식을 전한 뒤, 26일 호찌민에서 오후 11시 50분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KE476편으로 운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비행기편은 27일 오전 6시 4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며, 고인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 김성진 기자 >

'변방'을 끊임없이 '최전선의 중심'으로 바꿔온 이해찬

‘한 시대의 길’이 된 그를 깊이 애도하며
이 시대 최대 과제 온몸으로 껴안아
스스로에게 엄격, 정치 원칙 일깨워
겉모습과 달리 유머 많고 속정 깊어
군림하는 정치와 단절한 '변방의식'

 

너무 이른 별세 소식

 

이해찬, 생애 마지막 공직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이었다. 그 공직이 맡긴 이 시대 최대의 과제를 온몸으로 껴안고 아낌없이 감당하다 이승을 떠난 나이가 73세. 오늘날의 수명 계산으로는 너무 이른 부음(訃音)이다. 참으로 황망하다. 하지만 이 세상을 홀연히 뒤로 한 그 별세(別世)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었던 무수한 고초와 격투의 무게를 생각해보자면, 이런 갑작스러운 마지막 하직 인사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또한 든다. 이제는 평안하시라고, 뒷일은 염려 마시라고 말씀드리며 마음 다해 애도의 기원을 올린다.  

 

그래도 아쉽고 아쉽다. 이해찬이 있는 시대와 그가 보이지 않는 시대의 격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있는 곳은 언제나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긴장으로 팽팽해졌고, 어느 한마디 그저 내뱉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했다. 불의와 마주해서는 불퇴전으로 단호했으며 스스로에게 지나칠 정도가 아닌가 싶게 엄격한 이해찬의 삶은 정치의 원칙이 무엇인지 매 순간 일깨웠다. 이에 더해 아무리 억울한 지경에 처하고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지라도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고 꼿꼿하게 돌파해나간 태세는 허무맹랑한 요설을 퍼뜨리는 입들을 마침내 침묵시켰다. 

 

이해찬 전 총리가 3일 서울 중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5.11.3. 연합
 

내면의 위력

 

이해찬을 제거하는 것이 민주세력의 뇌를 타격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자들의 생각은 옳았으나, 이들의 공작은 언제나 실패했다. 이해찬이 가진 내면의 위력을 미처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로 “모셔져 온” 김종인이 총선 공천과정에서 이해찬을 밀어낸 사건은 과거 선거에서 맞붙다가 패배했던 김종인의 이해찬에 대한 구원이 작동했던 저질스러운 행각이었으나 이해찬은 무소속으로 당선되었고 당으로 복귀했으며 7선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정치적 불사조”였던 것이다. 

 

이해찬이 그렇게 이런 저런 음해에 휘말리고 때로 가당치 않은 퇴장을 당하기도 했으나 그런 고비들을 넘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에 이르는 역사의 현장에 언제나 중심을 잡고 우뚝 존재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그와 같은 내면의 힘을 끊임없이 기르고 발휘해왔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남들은 좀 까탈스러운 게 아닌가 여긴 그의 모습은 사실 유머도 많고 속정깊은 마음을 잘 알지 못한 탓이요, 조금의 실수나 오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수신(修身)의 공적 표현이었다. 그러니 그토록 깔끔한 삶과 군더더기 없는 말로 살아온 그이기에 삶을 마치는 순간마저도 이리 떠나는가 싶기조차 하다. 

 

1970년대 박정희 철권통치의 유신과 이에 항거한 민청련 사건을 겪었던 세대들에게 이해찬은 하나의 명쾌한 작전지도였고 구체적인 지침 자체였다. 그는 그때마다 어디를 공격해야 할 것이며 대중들에게 어떤 구호로 나서야 할 것인지 정확히 제시해나갔다. 이부영, 김근태로 이어지는 민주화 투쟁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찬은 그런 역할을 했고, 그에 머물지 않고 가장 먼저 재야운동의 정치권 진입의 문을 여는 대열 선두에 섰다. 이는 이후 민주화 운동과 정치의 일체화를 이루는 매우 중요한 기폭제를 만들어 낸다. 

 

당시에는 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한다, 정치적 욕심 때문에 운동했다는 듯 엄청난 비난과 오해가 있었지만 그걸 감내하면서 뚫어낸 길 위에 오늘날 한국 정치의 주류가 된 60년대생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포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기원을 가지고 있다.   

이해찬의 '변방의식'

 

어디 그뿐인가. 그는 이미 당시 거목이었던 김대중에게도 애초 사뭇 냉철했고 몹시 까다로왔다. 그런 그의 편편하지 않은 면모를 너끈히 품어낸 김대중의 정치적 혜안과 품의 크기와 깊이도 놀라운 것이자, 일단 서로 굳게 결합한 이후 뿜어져 나온 에너지는 한국 정치사의 진로를 바꿔내는 강렬함을 보였다. 이해찬의 이러한 태도는 아무리 충심을 가지고 따라야 할 지도자라도 그에 대해 끝까지 자기확신을 점검하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다는 인식의 소산이었으며 이런 힘이 이후 연이어지는 대권 창출의 용광로를 만들어 내는 경로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해찬의 “변방의식”이다. 그에게는 엘리트주의란 들어설 자리가 없었고 따라서 권력의 자리에 있어도 “지배하는 정치”, “군림하는 정치” 역시도 그에게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이해찬을 이해할 때 바로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한 지점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도 한국정치사에서 이른바 주류세력에게 내몰리고 몰린 변방의 정치인이었으며, 노무현 또한 말할 것도 없이 그 삶이 변방 자체였지 않은가. 문재인은 정치의 영역에서 아예 변방으로 은거해버린 인물이었고, 이재명으로 오자면 그는 가장 처절한 변방적 존재였다. 하지만 이해찬에게 이들은 모두 한국사회가 겪은 가장 깊고 날카로운 고통의 총체였으며 그로써 이들이 중심이 되는 최전선이 형성될 때 정치는 앞으로 진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해찬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불퇴전의 정치, 한 시대의 길

 

그래서 그는 당시의 소위 유력한 주류 세론에 휘둘리지 않았고 도리어 그것과 정면으로 맞섰고 그런 때문에 그는 대중들뿐만 아니라 정치인 동료들에게조차도 쉽게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에 처하곤 했다. 그는 이를테면 대중적 인기가 높은 정치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 그가 멈추거나 포기하거나 뒤로 물러설 리 없었다. 이 시대의 원칙이 무엇인가, 그걸 구현할 정치세력과 지도자는 누구인가를 꿰뚫어 보았고 그 판단에 확신이 서면 그대로 직진이었다. 그건 융통성 없고 대중성 없으며 유연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결국 이긴 것은 이해찬이었다. 그렇게 이겨온 그 스스로도 한때 대권가도에 나서고자 한 바 있으나, 그는 자신의 임무가 달리 있음을 자각했고 그걸 기반으로 한국정치의 새로운 주류역사를 써왔던 것이다.

 

이해찬이 어느 날 “민주세력 20년 집권론”을 내세웠을 때 그걸 권력의 오만이라고들 비난했으나 이는 이 나라 지배세력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강고한지를 절절하게 알았기 때문에 나온 발상과 주장임은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친일잔재세력의 80년 장기집권은 문제가 안 되고 민주세력 장기집권만 문제가 된다고 하는 논지는 결국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내란세력 척결의 정치적 과제 앞에서 얼마나 가소로운지 분명해졌다.  

 

오늘의 현실에서 “민주세력의 항상적 집권”은 따라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그 안에서 어떤 진보의 역사를 만들어갈 것인가의 경쟁만이 있을 뿐이다. 이해찬은 최소의 시간으로만 잡아도 20년이라고 했던 것이며 그로써 이 나라의 현대사가 짓밟아온 변방의 역사가 종결하고 새로운 중심이 뿌리내리는 정치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이해찬은 그 존재가 “정치의 원칙”이자 “한 시대의 길”이다. 

 

고 박원순에 대한 예의

 

이해찬은 언제나 담대했고 부당한 현실을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 그런 행동이 자신에게 비난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정치 역정 모두가 그랬다. 가령 자살로 마감한 고 박원순 시장 장례에 참여하는 것조차도 2차 가해라는 소란이 벌어지고 그런 분위기에 눌린 정치권이 입 한번 제대로 열지도 못하고 어떻게든 거리를 두려 하고 있을 때 이해찬은 “40년 친구이자 시민사회의 영역을 확장한 동지”라며 그의 빈소를 찾았다. 

이런 이해찬을 공격하고 깎아 내리려는 언론공작은 집요했고 그런 맥락에서 어느 기자가 박원순 의혹 제기 운운하자 그 자리에서 “어디서 이런 예의 없는 짓을 하는가”라고 대노하며 크게 질타했다. 자신에 대한 비난, 음해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사안의 본질에 대한 원칙을 지키는 것, 그것이 그의 소신이었기 때문이다. 

 

이해찬의 부활을 꿈꾸며

 

그와의 오랜 사적 인연은 여기서 굳이 거론하지 않으려 했으나,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닷새 뒤인 5월 28일 내가 프레시안에 쓴 “호민관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글을 읽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연락을 취해왔던 일은 기록한다. 까닭이 있다. 오랜만이었다. 이후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된 그는 내게 재단 계간지 <광장>에 기고를 부탁해 글을 쓰기도 했는데, 그가 앞서 말한 “호민관 노무현의 부활” 글의 일부를 인용해 노무현 대통령 49재를 기념한 추도문을 <광장>에 실은 바가 있었다.

 

이해찬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명박 정권의 폭압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앞으로 3년 반 동안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치고 포기하면 우리 다음 세대는 꿈과 자유와 생명을 잃습니다. 우리가 저들의 만행을 두려워하면 우리의 자존심과 양심마저 잃습니다. 우리가 현혹당하면 눈과 귀를 잃고 마음까지 잃게 됩니다. 현 정부의 역주행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기회와 시간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부활해야 합니다. 조문행렬의 마음속에 부활한 노무현의 가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듯이.”

 

그러면서 다음의 문장을 이어 나갔다.

“김민웅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부활'은 '봉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탐욕스러운 주류의 핍박으로 이미 죽었다고 여긴 변방의 힘이 역사의 중심에 서고, 모두를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일깨우고, 역사적인 실현의 장에 나서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부활의 사회적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광조의 기묘사화, 실학파에 대한 신유박해에 비유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역사 속에 묻어버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가치는 역사에서 찾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 국회의원 7선,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당 대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의 직함을 가지고 살아온 이해찬. 그런데 그런 공적 직함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가 원칙과 시대정신을 정치의 본체로 삼아 자신의 공생애를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그건 누림이 아니라 섬김이었다. 이것이 그가 존경받는 까닭이며 정치에 있어서 국민적 사표가 된 진실이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을 겪으면서 더욱 심각한 만행을 목도하고 체험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치지 않았고 이겨냈다. 봉기했기 때문이다. 내란세력들의 준동은 여전하다. 이런 때 이해찬은 우리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다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듯이.” 그렇게 우리는 매일 부활의 역사를 써나갈 것이다. 이해찬과 함께 변방이 최전선의 중심이 되는 역사를 꿈꾸며. 자신을 모두 바쳐 마지막 순간까지 공적 헌신을 다한 “이해찬” 그의 이름, 날로 더욱 불멸의 역사로 아로새겨질 것이다. 

                                                                            <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 >

 

'노무현 동지·이재명 멘토' 이해찬 전 총리 끝내 별세

 

베트남 방문 중 호흡 곤란, 심근경색…향년 73세
박정희·전두환 맞선 민주화 투사 출신 7선 정치인
김대중 정부 교육장관, 노무현 정부 총리 등 역임
민주당 대표 맡으며 21대 총선 180석 압승 견인

 

이해찬 전 총리가 3일 서울 중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취임식에서 취임사 하고 있다. 2025.11.3. 연합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참여정부 국무총리 등을 지냈던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오후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22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출장을 떠났다. 이미 출국 전부터 몸살 기운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오전 몸 상태가 안 좋다는 판단으로 귀국 절차를 밟았으나, 오후 1시쯤 귀국을 위해 베트남 떤선녓 공항에 도착한 이후 호흡 곤란으로 호찌민 탐안(Tam Ahn)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이송 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을 보고 받은 이재명 대통령은 곧바로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를 베트남 현지에 급파했고, 조 특보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김태년·이해식·이재정·최민희·김현 의원도 베트남에 도착해 이 수석부의장을 문병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현지 심장 전문 의료진은 심근경색 진단을 내리고 이 수석부의장에게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을 시행했지만, 끝내 의식 회복을 하지 못하고 현지시간으로 25일 오후 2시 48분 숨을 거뒀다.

 

민주평통은 "현재 유가족 및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 운구 및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이라며 "확정되는대로 다시 알려드리겠다"고 공지했다. 그러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고, 유가족분들께 따뜻한 위로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1990년 6월 당시 지낸 평화민주당 의원 시절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의를 펼치는 모습. 연합 자료사진
 

이 수석부의장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투사이자 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민주주의 역사의 산증인이다. 

 

1972년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중 박정희 유신 체제에 맞서 학생운동에 투신한 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상황실장을 맡으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끌어내는데 앞장섰으며,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에 들어가 정계에 입문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에서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한 뒤 17대까지 내리 5선을 지냈다.

 

1989년 국회 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외친 일화는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초선 의원 시절, 노동 분야 입법 활동에도 주력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이상수 전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도 불렸다. 이 수석부의장의 당시 보좌관이 유시민 작가였다.

 

1995년 민선 1기(초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았고,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 16대 대선 때는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기획본부장을 맡아 초선 시절 함께 활약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2003년 국민참여통합신당 창당 기획단장을 맡아 열린우리당 창당을 이끌었고, 2004년 고건 전 총리에 이어 노무현 정부의 두 번째 총리로 임명됐다. 노 전 대통령과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다.

 

2004년 6월 30일 당시 신임 국무총리에 임명된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모습. 연합 자료사진
 

2007년 17대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정동영 후보에 밀려 낙선했고, 이후 손학규 체제가 출범하자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됐고 대표를 맡았으나,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사퇴 압박을 받은 끝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4∼2018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으며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좌장 역할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정치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앙숙이었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컷오프(공천 배제)됐고, 탈당 후 무소속으로 세종에 출마해 당선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당선 후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한 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당 대표로 선출됐다. 참여정부 시절 함께 했던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며 당청 관계를 공고히 했으며,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180석 압승을 이끌었다. 1987년 6공화국 체제 출범 이후 민주진영 최대의 승리였다.

 

이 수석부의장은 '마지막 소임'이라고 밝힌 당 대표 임기가 끝난 뒤 2020년 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했으며,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했다. 지난해 10월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돼 이재명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 입안을 뒷받침했다.     < 김성진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과 인사하고 있다. 2026.1.2. 연합
 
 

이해찬 전 총리 장례, 엿새간 기관 · 사회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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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사진은 2004년 6월30일 국무총리 취임식 당시의 모습. 연합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장례가 26일부터 엿새간 기관·사회장으로 엄수된다.

민주평통은 이날 이 수석부의장 장례를 26∼31일 기관·사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특1호실)에 마련된다.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훈을 남긴 사람이 사망했을 때 관련 단체가 중심이 돼 각계각층 인물들과 장례 위원회를 꾸려 거행하는 장례 의식이다.

 

이 수석부의장의 장례는 민주평통과 더불어민주당이 공동 주관한다. 민주평통 쪽은 “이후 실무적인 내용은 관계기관 간 협의를 통해 확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25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향년 73살 일기로 별세했다. <장예지 기자>

 

이해찬 “같잖은 윤석열, 내가 내란 전문”…만년에 더 노련했던 민주화 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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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이티브이 세종’ 갈무리
 

젊은 시절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며 학생 운동에 투신했던 고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일흔 살 넘어 맞닥뜨린 12·3 내란에 또다시 거리로 나가 투지를 불태웠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으킨 12·3 내란은 이 수석부의장 생애 세 번째 내란 사건이었다. 1952년생인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일으킨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을 모두 겪었다.

 

이 수석부의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1학년생이었던 1972년 박 전 대통령의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인 충남 청양으로 내려갔지만 “나라가 이 모양인데 학생들이 데모도 하지 않느냐”는 부친의 질책을 듣고 바로 서울로 상경해 학생운동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한다.

 

그는 1974년 유신정권에 반대하다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투옥돼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0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민주화 인사들이 ‘내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신군부의 조작 사건에 휘말려 2년6개월간 복역하다 1982년 특별사면 됐다.

 

2024년 12월3일 현직 대통령에 의한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이 선포됐으나 그는 담담했다. 44년 만에 목도한 내란은 빈틈투성이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나와 “집사람이 계엄이 선포됐다고 잠을 깨웠다. 미친놈들 하고 그냥 또 잤다”, “시시하다”고 내란 당일 상황을 돌이켰다.

 

“시시한 계엄”이었지만, 엄연한 “내란”이었다. 윤 전 대통령이 극도로 위험한 인물이라는 생각도 확고했다. 계엄 이전부터 강력한 대여 투쟁을 주문했던 그는 계엄 직후 거리로 나가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야 한다”, “저렇게 무도한 놈은 정치하면서 처음 봤다”, “싸가지 없고 예의도 없다”며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그는 2024년 12월8일 세종시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저는 박정희 독재하고도 싸웠고, 전두환 독재하고도 싸웠는데 이 같잖지도 않은 놈하고 싸우려니까 재미가 없다. 정말 같잖지도 않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내란은 제가 전문가다. 박정희 때도 내란 음모로 잡혀갔고, 전두환 때도 내란 음모로 잡혀갔는데, (윤석열이) 엉성하게 해서 사람들 기분 나쁘게 하고, 놀라게 했다”며 “토요일엔 반드시 (윤석열을) 탄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대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토요일인 같은 달 14일 국회를 통과했다.           < 심우삼 기자 >

 

'힘의 약육강식' 질서 맞선 '중견국들 연대' 호소

NYT 칼럼 "슬픈 현실 인정할 때…다 끝나"
"동맹국들, 트럼프 침략·탐욕에 저항 선택"
"미국 동맹국, 자동으로 번영·안보 구가?
과거의 안일한 가정 더는 유효하지 않아"

"중견국들, 사안별로 작동하는 연합 구축"
"패권국과 단둘이 협상한다면 약자 위치,
더 나은 대우 받고자 서로 경쟁할 건가?"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20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 연설이 지구촌에 큰 반향을 부르고 있다.  

베네수엘라 불법 침공과 대통령 납치, 기소와 덴마크 반자치령인 그린란드 강탈 추진, 캐나다 51번째 주 편입 주장 등으로 대변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힘'에 의한 일방주의와 약육강식 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중견국들의 연대'를 통한 새로운 국제 질서의 구축을 호소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카니 총리는 이날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 연설에서 "세계 질서의 파열, 즐거웠던 허구의 종말, 그리고 냉혹한 현실의 시작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여기선 거대하고 주요한 강대국의 지정학이 어떤 한계나 제약에도 구속받지 않는다"라고 트럼프를 겨냥했다. 그는 "우리는 매일 강대국 경쟁 시대에 살고 있고, 규칙 기반 질서가 퇴색 중이며,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하는 일을 당한다는 사실을 되뇌게 된다"라며 '힘의 질서' 본질을 간파한 투키디데스 격언을 인용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6. 01. 20 [AFP=연합]
 

카니, 다보스 포럼서 '트럼프 야욕' 질타
"세계 질서 파열, 즐거웠던 허구의 종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 '규칙 기반 국제 질서'의 공과를 따졌다. 카니는 캐나다 같은 '중견국들'은 이 질서 속에서 예측 가능성이란 혜택을 보고 가치 중심적 외교 정책을 추구하며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규칙 기반 국제 질서 얘기가 부분적으로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면서 강대국들은 편의에 따라 스스로에 면죄부를 주고 무역 규칙은 비대칭적으로 집행되며, 국제법도 피고에 따라 달리 적용돼왔다는 점을 털어놨다.

 

실상이 그렇기는 해도, '규칙 기반 국제 질서'란 허구는 나름 유용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카니는 "특히 미국의 패권은 공공재의 제공, 공해상 항로 개방, 안정적 금융 시스템, 집단 안보, 분쟁 해결 체제 지원 등에 도움이 됐다"면서 그래서 '일부 거짓'을 알면서도 그 질서에 동참해왔다고 해명했다.

 

이젠 솔직해질 때가 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카니는 "우리는 전환이 아닌, 파열의 한복판에 있다"며 "지난 20년 금융, 보건, 에너지, 지정학 분야에서 터진 일련의 위기들은 극단적 글로벌 통합의 리스크를 드러냈고, 더 최근에는 강대국들이 경제 통합을 무기로, 관세를 지렛대로, 금융 인프라를 강압으로, 공급망을 착취할 취약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통합이 종속의 원천이 될 때 통합을 통한 상호 이익이란 거짓 속에서 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약자들의 힘은 정직함에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현 상황에 대해 "중견국들이 의존해 온" 세계무역기구(WTO),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 등 집단적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기구 자체가 위협받게 되면서, "많은 국가가 에너지, 식량, 핵심 광물, 금융 및 공급망에서 더 큰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스위스 다보스포럼 참석을 마치고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2026. 01. 22 [로이터=연합]
 

"미국 동맹국, 자동으로 번영·안보 구가?
과거의 안일한 가정 더는 유효하지 않아"

 

카니 총리는 "요새화된 국가들의 세상은 더 가난해지고, 더 취약하고,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라며 "강대국들이 권력과 이익의 거침없는 추구를 위해 규칙과 가치라는 가식마저 벗어 던진다면 거래주의로부터 얻을 이익은 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패권국들은 지속해서 관계를 수익화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동맹국들은 불확실성 대비하고자 다변화할 것이다. 보험을 들고 선택지를 늘려 주권을 재건할 것이다. 한때 규칙에 근거했던 주권은 갈수록 압박을 견뎌내는 능력에 기초하게 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이 대목에서 카니는 "캐나다와 같은 중견국들은 무력하지 않다...인권 존중, 지속 가능한 발전, 연대, 각 국가의 주권과 영토 보전이라는 우리의 가치를 포괄하는 새 질서를 구축할 역량이 있다"면서 중견국들의 연대를 호소했다.

 

카니는 "회복력에 대한 집단적 투자는 각기 요새를 쌓는 것보다 싸다. 표준 공유는 파편화를 줄인다. 상호보완은 포지티브섬게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캐나다가 지리상 미국에 붙어 있고, 미국의 동맹국이 되면 "자동으로" 번영과 안보를 누릴 거라는 "과거의 안일한 가정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핀란드 알렉산더 스투브 대통령이 말한 '가치 기반 현실주의'에 기초해 전략 태세의 근본적 전환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덴마크의 반자치령인 그린란드의 누크항에 보트들이 정박해 있다. 2026. 01. 22 [AP=연합]

 

'가치 기반 현실주의'로 원칙과 실용 추구
"중견국들, 사안별로 작동하는 연합 구축"

 

그러면서 "원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게 목표라고 소개했다. 주권, 영토 완전성, 유엔 헌장에 부합하지 않는 무력 사용 금지, 인권 존중 등 "근본 가치들"에 대한 공약에선 원칙적이고, 때론 진보는 점진적이며 이해관계는 엇갈리고 모든 파트너가 우리의 모든 가치를 공유하는 건 아니란 점을 인정하는 점에선 실용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우리는 더 이상 가치의 힘에만이 아니라, 우리 힘의 가치에도 의지하고 있다"며 ▲ 에너지, 인공지능(AI), 핵심 광물, 신규 무역로를 위한 1조 달러 투자 ▲ 2020년대 말까지 국방비 두 배 증액 ▲ 유럽연합(EU)과 포괄적 전략적 동맹 합의 ▲ 중국·카타르와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 등 지난 6개월 4개 대륙에서 12개의 무역·안보 협정 체결 ▲ 인도, 아세안, 태국, 필리핀,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와 자유무역협정을 협상 진행 등을 대표적 사례로 제시한 뒤, "글로벌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가변적 기하학(협력 구조)', 즉 공통의 가치와 이익을 바탕으로 사안별로 서로 다른 연합체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니는 "이는 함께 행동할 충분한 공통분모를 지닌 파트너들과 사안별로 작동하는 연합을 구축하는 것이다"라며 "중견국들이 함께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식탁에 앉지 않으면 메뉴로 오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대국들은 현재론 혼자 길을 갈 능력이 있다. 시장 규모와 군사력, 조건을 강요할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 중견국은 그렇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에게 중국은 경쟁, 경계, 또 때로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는 중국은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존재임을 잘 안다. ‘국가안보전략 202’는 중국과 관련해서는 다국적 접근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도널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10월 30일 부산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
 

"패권국과 단둘이 협상한다면 약자 위치,
더 나은 대우 받고자 서로 경쟁할 건가?"

 

카니는 "패권국과 단둘이 협상한다면, 우리는 약자의 위치에서 협상하게 된다. 제시된 것을 수용할 뿐이다...이건 주권이 아니라, 종속을 받아들이면서 주권이 있는 척 연기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대국 경쟁의 세계에서 사이에 낀 국가들은 선택해야 한다. 더 나은 대우 받고자 서로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연대해 영향력 있는 '제3의 길'을 만들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견국들을 향해 세 가지를 호소했다.

첫째, 있는 그대로 현실을 말하라. 여전히 '규칙 기반 질서'가 작동하는 듯이 말하지 말고 강대국들이 경제 통합을 강압의 수단으로 사용해 이익을 추구하는, 격화된 강대국 경쟁 체제라고 말하라.

둘째, 일관되게 행동하라. 동맹과 경쟁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라. 중견국들이 한쪽의 경제적 협박은 비판하면서 다른 쪽의 협박엔 침묵하면 안 된다.

셋째, 옛 질서의 복원이 아닌, 새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연대에 나서자 등이다. 카니는 "강대국들엔 그들의 힘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뭔가가 있다. 가식을 멈추고, 현실을 그대로 말하며, 국내에서 힘을 기르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그것이 캐나다의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으로 압송되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홍콩 SCMP 캡처] 연합
 

NYT 칼럼 "슬픈 현실 인정할 때…다 끝나"
"동맹국들, 트럼프 침략·탐욕에 저항 선택"

 

이 연설에 대해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카니 독트린'이란 22일 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우여곡절과 기복은 있겠지만, 슬픈 현실을 인정할 때가 된 것 같아 두럽다. 다 끝났다"라고 썼다. 그는 최근 노벨 평화상 수상 불발에 대한 불만으로 "더는 순수하게 평화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다"란 내용으로 노르웨이 총리에 보낸 트럼프의 서한과 카니의 다보스 연설을 거론한 뒤 "이번 주, 이 두 사건이 동시에 발생해 미국과 세계에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미국이 주도해 온 민주주의 동맹이 파열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맹과의 신의를 깼고, 우리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침략과 탐욕에 굴복보단 저항을 선택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프렌치는 "카니가 기립 박수를 받은 이유는 굴복을 촉구해서가 아니다. 대신에 본질적으로 미국에 필적할 새로운 강대국을 창설할 수 있는 동맹화된 통합과 협력의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자존심이 있는 국가들은 속국이 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은 저항이냐, 굴복이냐가 아니라, 저항의 형태를 결정하는 문제다. '중견국들'이 국가적 요새를 구축할 것인지, 미국을 뺀 새로운 동맹과 협정을 맺을지의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 이유 기자 >

 

트럼프, 캐나다 총리 “패권” 비판에 “평화위 초청 철회” 뒤끝 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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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퀘벡시티에서 각료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주도하는 ‘평화위원회’에 함께 하자고 초대했던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에 대한 초청을 철회했다. 카니 총리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종언을 고한 연설을 한 뒤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뒤끝’ 조처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카니 총리에게’로 시작하는 글에서 “이 서한을 통해 평화위원회가 캐나다의 가입과 관련해 귀하에게 보냈던 초청을 철회함을 알린다”라고 밝혔다. 이어 평화위가 “역사상 가장 권위 있는 지도자들의 위원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20여개국이 참여한 평화위원회를 공식 발족했다. 캐나다는 평화위 초대를 수락하겠다면서도 영구 이사직 자리를 위해 거액을 지불하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평화위는 10억달러를 내면 영구 이사직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각국에 제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카니 총리에 대한 초청을 거둬들인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외신들은 20일 카니 총리가 다보스 포럼에서 한 연설에 주목했다. 그는 직접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패권”을 언급하며 “강대국”들이 경제 통합을 “무기”로 휘두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와 같은 중견국들이 불리하다며 뜻을 같이하는 중견국들끼리 세계 무대에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오래된 세계질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튿날 다보스 무대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캐나다 총리의 연설을 봤다면서 “그는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았다”며 “캐나다는 미국 덕분에 존재한다”, “다음 발언 때는 이 점을 명심하라”고 쏴붙였다.

 

22일 카니 총리가 다시 반격에 나섰다. 그는 이날 퀘벡시티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캐나다와 미국은 경제, 안보, 풍부한 문화 교류 등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파트너십을 구축해왔다. 하지만 캐나다가 미국 덕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가 번영하는 이유는 우리가 캐나다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캐나다 공영방송(CBC)이 전했다.   < 김지은 기자 >

 

스트롱맨 · 트럼프 열혈팬만 모였다···“평화위는 불량배들 집합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 중 열린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회의에서 서명된 창립 헌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UPI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평화위원회’ 발족식이 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지만, 친트럼프 성향의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주로 참석하면서 국제적 대표성 논란이 일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다보스의 한 회의장에서 진행된 헌정 서명식에는 약 20명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사회자의 “평화위원회 의장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해 달라”는 소개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했지만, 박수 소리는 크지 않았고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서명식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적 지지자로 알려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비롯해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등 이른바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지도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또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아르메니아 총리가 나란히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나라의 분쟁이 자신이 끝낸 8개 전쟁 중 하나라고 여러 차례 주장해왔다. 이 밖에도 중동 왕정국가와 옛 소련권 국가의 외교 대표들이 일부 참석했다.

 

반면 서방 주요국 정상들은 대거 불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논란 등으로 일찌감치 불참을 선언했다.

 

한 유럽 관리는 “평화위원회가 ‘불량배들의 집합소’(gallery of rogues)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의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회의장에 도착하며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 곁을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

 

트럼프 대통령은 참석 규모가 크지 않은 점은 개의치 않는 듯 “오랜 시간 준비된 매우 흥미로운 날”이라며 “여러분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인물들”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참석자들을 향해 “모두 내 친구들”이라며 “이 그룹이 마음에 든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길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의회 승인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다고 했다”며 “영국과 프랑스도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이날 서명식으로 헌장이 발효돼 평화위원회가 공식 국제기구가 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가 참여하고 싶어 한다”며 59개국이 서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참여 의사를 밝힌 나라를 20여개국으로 파악했다.

 

유럽 주요국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여 의사를 밝힌 데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국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포함된 이사회에 참여하기 어렵다”며 “헌법적 제약과 의회 승인 필요성을 핑계로 참여를 회피하는 것은 교묘한 수법”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동결 자산을 활용해 위원회 내 영구 의석을 확보하려는 구상에 대해 “자기 돈을 쓰는 것이라면 괜찮다”고 말했고, 자신의 임기 이후에도 위원장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는 종신도 가능하지만, 그럴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유엔이 “무용지물”이라고 비판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위원회가 유엔을 대체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유엔과 협력해서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영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