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을 지켜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 사진=백악관 X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68인이 6일 공동 성명을 통해 “최근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미국의 군사 작전과 관련하여, 국제법적 절차를 결여한 무력 사용이 국제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68인의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사태는 유엔(UN) 헌장 제2조 제4항의 무력 사용 금지 원칙과 제2조 제7항의 내정 불간섭 원칙에 비추어 심각한 결함을 지닌다. 이러한 원칙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이자 국제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 없이 준수되어야 한다”라며 “제시된 ‘마약 밀매 혐의’는 국제법상 자위권 행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며, 타국 영토 내에서 해당국의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강제 연행은 주권 존중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향후 유사한 무력 개입을 정당화하는 선례 될 수 있어”
해당 의원들은 특히 “이번 사태가 우려되는 것은 향후 유사한 무력 개입을 정당화하는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강대국이 일방적 판단에 따라 타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이는 국제질서 전반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삼는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변화가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공개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사진
“베네수엘라 사태 평화적 해결과 민주적 회복 위해 공동 협력할 것 촉구”
이어 “정부는 이번 사태에 따른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과 유가 변동, 공급망 교란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 대응 체계를 가동할 것을 당부한다”라고 밝힌 뒤 “우리는 유엔의 역할과 노력을 지지하며, 국제사회가 베네수엘라 사태의 평화적 해결과 민주적 회복을 위해 공동으로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정부 역시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법과 유엔 헌장의 가치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엄격 규정하면 동조자 늘고 관대하면 정의감에 반해 80년 전 친일파 청산 위한 '반민특위' 딜레마와 닮은꼴
'이혜훈 지명' 치열한 토론 통해 사회적 합의 끌어내야
전우용 역사학자
1945년 해방을 맞았을 때, 민주독립국가 건설이 민족의 지상과제라는 의견에 반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제로부터 ‘조선귀족’ 작위를 받은 극소수만이 시대착오적인 왕정복고를 꿈꿨을 뿐이다. 새 국가 건설과정에서 ‘친일 민족반역자’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일제에 부역하여 동족을 짓밟은 민족반역자들을 처단, 처벌하지 않고서는 민주독립국가 건설의 전제인 ‘민족정기(民族正氣)’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 당대의 보편적 대의(大義)였다. 그런데 ‘민족반역자’는 누구이며 ‘민족반역행위’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는 의견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시키는대로 한 죄 밖에 없는 내가 왜 민족반역자냐"
“국민학교 때,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랑 놀다가 ‘우리말’ 썼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에게 끌려가 두 뺨이 터지도록 호되게 맞았다. 해방이 뭔지는 잘 몰랐으나 그 선생 안 보게 됐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그러나 개학 후 학교에 가니 그 선생이 그대로 있었다.” 꽤 오래 전 영화감독 임권택이 모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술회한 ‘해방의 기억’이다. 당대의 문자 보급률이나 미디어 환경에서, 보통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민족반역자’는 조선귀족이나 총독부 칙임관, 저명한 문필가나 예술가들이 아니라 말단 순사, 면 서기, 구장(區長), 경방단장(警防團長), 학교 교사, 교회 목사 등 그저 ‘유지(有志) 행세하는 이웃’들이었다. 징용 대상자 명단을 작성하고, 집안에 들어와 놋그릇 나부랭이를 빼앗으며, 우리말 쓰다가 발각된 아이들을 모질게 때리고, 일본 신도의식 시간에 일부러 지각했다는 이유로 신도를 고발한 자들이 ‘민족반역자’의 실례였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여운형 위원장을 에워싼 해방 군중들.
보통사람들에게는, 이런 자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고 ‘갱생의 시간’을 주는 게 ‘정의’였다. 그러나 이 ‘정의’는 실현가능한 영역 밖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민족반역자’로 몰린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 친척·친지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들은 ‘위에서 시키는대로’, ‘먹고 살기 위해’ 한 일이 어떻게 ‘민족반역범죄’가 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민족반역행위의 범위를 확장하는만큼, ‘민주독립국가’ 건설의 주체는 줄어들고 척결해야 하는 대상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1947년 3월 13일,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범, 간상배에 대한 특별조례법률」초안을 상정했다. 이 초안은 조선총독부의 말단 행정관리도 민족반역자로 규정했으니, 입법의원 중에도 이에 해당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해당자’들은 따로 민족반역자의 범위를 조선총독부 칙임관 이상으로 크게 축소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으로 칙임관 직위에 오른 자는 수십 명에 불과했다. 민족반역자의 범위를 둘러싼 입법의원 내의 논란은 7월 2일의 ‘재수정안’으로 귀결되었다. 재수정안은 민족반역자의 범위를 주임관(현재의 사무관급) 이상의 관리, 판임관 이상(전원)의 군인과 군속, 고등계(독립운동가 체포 심문 관련 업무 담당)에 재직한 경찰로 한정했다. 그러나 총독부 조선인 관리들에게 ‘현직 유지’를 지시했던 미군정청은 이 특별조례법률을 인준하지 않았다.
반민특위 와해로 민족반역 정체성 내면화 길 택한 경찰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제헌헌법은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부칙에 명기했다. 8월 5일,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 처벌 특별법 기초위원회’를 구성했고, 위원회는 미군정기의 특별조례법률에 기초한 법안을 만들어 정부 수립 다음 날인 8월 16일 국회에 상정했다.
특별법은 ①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세습한 자, ② 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 되었던 자, ③ 칙임관 이상의 관리 되었던 자, ④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⑤ 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간부로 활동했던 자, ⑥ 군, 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⑦ 비행기, 병기 또는 탄약등 군수공업을 책임경영한 자, ⑧ 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로서 일정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 죄적이 현저한 자, ⑨ 관공리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악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⑩ 일본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본부의 수뇌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 ⑪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기타 각 부문에 있어서 민족적인 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본침략주의와 그 시책을 수행하는데 협력하기 위하여 악질적인 반민족적 언론, 저작과 기타 방법으로써 지도한 자, ⑫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들을 ‘민족반역자’로 규정했다.
반민특위에 의해 기소된 민족반역자들
이들 중 ①~③까지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④부터는 정성적 판단이 필요했다. 수사와 기소의 주체로 조사위원과 특별검찰부, 특별재판부로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민족반역자의 범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절대다수의 구 총독부 하급 관리들, 특히 경찰들은 과거 행적을 반성하는 쪽보다는 민족반역자의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쪽을 택했다. 특별법에 따르면 민족반역자로 처벌받을 경찰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적 정의감’이 원하는 바를 잘 알았던 경찰들에게 반민특위 와해는 ‘생존의 문제’였다. 결국 ‘대중적 정의감’은 단 1%도 충족되지 못했다.
내란세력은 41%인가, 25%인가, 고작 수십 명인가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은 명백한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내란세력’의 최우선 살해 대상이었던 이재명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고작 49.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내란세력’에 동조하는 것으로 의심받을 만한 판사들이 내란범들을 재판하고 있으며, 영장 기각으로 내란범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 제1야당은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 행사로서 결코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재래식 신문 지면들에는 연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리고 있다. 내란에 동조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전국 도시 거리 곳곳에 걸려 있으며, ‘윤 어게인’을 외치는 자들이 수시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내란 극복’은 ‘내란세력 척결’과 대략 같은 뜻이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했던 자들과 함께 민주주의 회복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내란범들은 나치 전범처럼 끝까지 처벌해야’한다던 이재명 대통령이 ‘윤 어게인’ 집회에서 내란의 정당성을 선동했던 국민의힘 소속 이혜훈을 기획예산처장으로 지명했다. 일견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그러나 ‘국민 검증을 거쳐야 한다’며 한쪽 문을 열어 놓은 것을 보면, ‘내란세력’의 범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는 ‘생각 없이 내란세력에게 휩쓸려 들어간’ 사람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준 것일 수도 있다. 민주공화국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법적 단죄의 전제이다. ‘대중적 정의감’이 지목하는 내란세력과 ‘사회적 합의’로 규정되는 내란세력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내란세력’을 엄격히 규정하면 오히려 그 동조세력이 늘어나고, 관대하게 규정하면 ‘대중적 정의감’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 80년 전의 딜레마이자 오늘날의 딜레마이다. ‘내란세력’을 어떻게 특정할 것인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김문수에게 투표한 41%의 국민?, 지금도 계엄은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국민의힘 당원들과 그 당을 지지하는 25%의 국민?, 아니면 내란특검이 기소한 고작 수십 명의 ‘수괴 및 중요 임무 종사자’들?
80년 전 반민특위 경험이 지금 우리를 도울 수 있을까?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린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 대개혁 시민 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응원봉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12.3 연합
민주주의 회복과 내란 극복은 미룰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80년 전 선조들이 ‘친일파 청산’을 못해서 한국 현대사가 시작부터 뒤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제 우리 세대가 같은 시험대 위에 올라 서 있다. ‘내란세력’의 범위, 달리 말하자면 내란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길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이혜훈 기획예산처장 지명은 ‘내란세력’의 범위를 최소화하는 안을 제출한 것과 같다. 이 지명을 둘러싼 논쟁이 대통령 결정에 관한 ‘찬반 논란’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치열한 토론을 거쳐 ‘사회적 합의’로 이어져야 하며, 국회 청문회가 ‘토론장’ 구실을 해야 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번에는 반민특위의 경험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 전우용 역사학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군이 기습적인 군사 작전으로 체포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근황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다. ⓒ 트루스소셜
2026년 새해 벽두, 세계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미국 특수부대가 남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기습 연행하여 미국으로 이송한 것이다. 주권국가의 현직 국가원수를 해당국 동의 없이 무력으로 체포한 이번 사건은 국제법 체제에 거대한 균열을 낸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마두로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그가 연루된 범죄 혐의에 대한 비판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귀책 사유가 무엇이든, 타국 정상을 일방적으로 납치하는 행위는 국제법상 주권 침해이자 유엔 헌장의 무력사용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조치다.
국제법을 존중하는 척했던 러시아와 국제법 자체를 경시하는 미국의 대비
문제의 본질은 미국이 이 엄청난 결정을 내리면서도 과거처럼 국제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러시아처럼 노골적인 권위주의 국가조차 국제법의 언어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감행하면서도, 유엔 헌장 51조의 자위권과 자국민 보호, 심지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제노사이드(Genocide)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법적 명분을 내세웠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 사실이나 국제법 해석상 설득력이 없었고 법률가들의 검증을 견디지 못하는 궤변이었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부는 자국 행위를 국제법 용어로 포장하며 최소한 표면적인 합법성이라도 주장하려 했다. 국제법을 위반하면서도 동시에 국제법의 틀 안에서 자기 정당화를 시도하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역설적이게도 침략국조차 법률 용어로 자기 행동을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음을 보여준다.
반면 자칭 자유민주 진영의 리더인 미국의 최근 행보에서는 그런 최소한의 법적 수사(rhetoric)조차 찾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복귀 이후 국제 규범을 경시하는 태도를 노골화했다. 그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는 방안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합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심지어 그린란드와 캐나다 일부를 점령하거나 파나마 운하를 탈취하는 시나리오까지 암시함으로써, 명백한 불법 행위를 고려 가능한 옵션으로 격하시켜 국제 규범의 금기를 희석시켰다.
이러한 언행들이 세계 질서를 법의 지배(Rule of Law)에서 힘의 지배로 회귀시킬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현실로 나타난 미국의 행동은 정확히 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2025년 이후 카리브해와 태평양 일대에서 마약 카르텔 간부를 대상으로 한 드론 공습, 그리고 마침내 2026년 1월 3일 주권국 정상에 대한 직접적인 납치까지, 미국은 넘지 말아야 할 금단의 선을 넘어섰다.
과거 미국은 군사행동 시, 때로 억지스럽더라도 유엔 헌장상 자위권이나 인도적 개입 등 근거를 찾으려 애써왔다. 1989년 파나마 침공이나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나름의 논리를 동원했다. 그러나 이번 마두로 체포와 같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미국 정부는 별다른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규범에 구애받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태도다. 국제법을 위반하면서도 존중하는 척했던 러시아와, 아예 국제법 자체를 경시하는 미국의 대비는 오늘날 국제 규범 지형의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잘못 적용된 논리라도 내세우는 행위는 국제법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반면 이번처럼 아예 무시해버리는 태도는 자신이 남들에게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기대 자체를 내포하기에 훨씬 더 위험하다.
자유민주국가들이 규범을 저버리고 국제기구가 침묵하는 상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마러라고 자택에서 존 랫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 EPA 연합
국제 규범이 이처럼 흔들릴 때, 그 파장은 단순한 조약 위반 사례를 넘어선다. 특히 국제 규범을 설계하고 지지해온 자유민주국가들 스스로 규범을 경시하거나 저버릴 때 질서는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이는 역사가 입증한 교훈이다.
1930년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체제 붕괴는 표면적으로 이탈리아, 일본, 독일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침략이 원인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영국과 프랑스 같은 민주국들의 책임 방기와 이중 잣대가 자리했다.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제어하기는커녕 묵인함으로써 국제연맹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켰다. 규범 붕괴 조짐 앞에서 지도자들은 단호히 대처하지 못했고, 그 결과 히틀러의 독일은 오스트리아 합병, 폴란드 침공으로 폭주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을 초래했다. 당시 자유 진영 지도자들조차 식민지 이익을 위해 원칙을 선택적으로 적용했던 위선이 규범 수호 의지를 약화시킨 것이다.
오늘날 양상도 이와 섬뜩할 정도로 닮아 있다. 서방 민주국가들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조하면서도, 자국이나 우방에 불리하면 국제법을 무시하거나 편법으로 피해왔다.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ICC) 관할을 부정하고 제재를 가하거나 유엔 인권기구를 탈퇴하는 등 규범 체제를 경시해왔다. 특히 2023년 가자지구 전쟁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이 희생될 때 일부 서방 지도자들이 보인 방조적 태도는 전후 국제질서의 막이 내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더욱 통탄스러운 현실은 국제연합(UN), 그 중에서도 세계 평화와 안전의 일차적 책임을 지닌 안전보장이사회의 처참한 몰골이다. 오늘날 안보리는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 국제법 위반을 제재하는 수단이 아니라, 강대국과 그 동맹들의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정치적 방패로 전락했다. 헌장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유엔의 현주소는, 1930년대 국제연맹의 무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힘을 앞세운 국가들은 더욱 대담해지게 마련이다.
자유민주국가들이 규범을 저버리고 국제기구가 침묵하는 상황은 독재국가의 일탈보다 훨씬 근본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규범을 설계하고 수호자를 자임했던 이들이 규칙을 어길 때, 규칙 자체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지지 기반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규범 위반 자체보다 심각한 것은 규범을 지킬 의지의 소멸이다.
인류에게 국제법보다 더 나은 언어와 규칙은 아직 없다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위대가 마켓 스트리트를 따라 유엔 광장까지 행진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군의 군사 행동에 반대하고 있다. ⓒ EPA 연합
그렇다면 이 혼란 속에서 국제법은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인가? 혹자는 강대국이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현실 앞에서 조약 따위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고 자조한다. 국제법학자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론적 논의를 넘어서,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어 나가는 사태를 법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혹은 최소한의 절차라도 갖추어야 한다는 '레드 라인은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그로티우스(Grotius) 시기부터 전쟁법이 국제법의 핵심으로 다루어진 이유는, 전쟁이 일반 살인과 다르지 않다면 야만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국제인도법은 전쟁을 허용하려고 태어난 법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허용될 수 없는 잔혹함의 하한선을 그어 인간성을 보존하기 위한 장치다. 인권 관점에서 국제법의 존재 이유는 이상주의적 평화의 약속이 아니다. 오히려 폭력의 비용을 올리고, 정당화의 부담을 키우며, 사후 책임 추궁의 경로를 남기는 냉혹한 현실적 필요성에 있다.
역사는 위기와 재건의 연속이었다. 국제연맹의 실패 위에서 유엔이 출범했고, 뉘른베르크의 교훈 위에서 제네바 협약과 인권 체제가 섰으며, 냉전 후 학살을 딛고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탄생했다. 이 모든 과정은 국제법이 죽은 법이 아니라, 비극을 통해 학습하고 진화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지금 국제법 체제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면, 독재자들의 도전 때문만이 아니라 자유 세계의 규범적 리더십 부재와 유엔 시스템의 마비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법을 포기하는 길은 해답이 될 수 없다. 국제법은 단지 규칙 집합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공통 언어이자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이다. 심지어 북한이나 하마스 같은 행위자들조차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제법을 거론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국제법의 규범력이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국제법은 완벽하지 않다. 강대국에겐 관대하고 약소국에겐 엄격하다는 비판도 뼈아픈 진실이다. 하지만 국제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침략을 침략이라 부를 수 없고, 전쟁범죄를 범죄라 규탄할 기준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다. 국제법 없는 세계는 오직 힘의 논리와 약육강식만이 지배하는 야만의 세계일 뿐이다.
최근의 혼란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법적 금지선과 절차적 정당성을 다시금 분명히 하는 결단이다. 특히 작동 불능에 빠진 유엔 안보리를 대신해서라도 각 국가와 시민사회는 법의 레드 라인을 재확인해야 한다. 민간인 학살 금지, 영토 강제병합 불인정, 주권 존중과 같은 기본 원칙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1945년 유엔 헌장의 약속은 지금 숨이 가쁘고 상처 입었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인류에게 국제법보다 더 나은 언어와 규칙은 아직 없다. 국제법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난폭한 힘이 난무하는 분열된 세계에서 인류의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 백악관의 엑스(옛 트위터) 긴급대응 계정은 3일(현지시간) 뉴욕에 있는 마약단속국(DEA) 사무실에서 구금 상태로 복도를 걸어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영상을 공개했다. ⓒ 백악관 긴급대응 엑스 계정 게시물
2026년 1월 3일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여 베네수엘라 현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하는 사태가 발발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주도하던 초강대국 미국이 국제규범 등을 모조리 무시하며 자국법에 따라 타국의 대통령을 '납치'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예상치도 못한 전격적인 기습에 베네수엘라 당국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으며 채 2~3시간만에 마두로 대통령이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납치되어 미국으로 호송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민주적 정당성이 약한 마두로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이 충격적인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사태는 미국의 제재가 얼마나 효과적이지 못한지를 잘 드러내는 사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베네수엘라는 오랫동안 이중권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선거부정 등을 이유로 후안 과이도(Juan Guaidó) 국회 의장이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직을 맡겠다고 선언하고 유럽, 미국 등의 친서방 세력 50여 개국이 그걸 승인한 순간부터 그랬다.
분명 마두로 정부는 선출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기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 연임에 성공했지만 야당후보들을 탄압했을 뿐만 아니라 친(親)마두로 성향의 의원들이 다수 포진된 초헌법적 기구인 '제헌의회'가 선거를 주관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이도를 정부 수반으로 인정한 뒤에 미국은 거듭해서 베네수엘라를 제재했고 베네수엘라는 달러 수입의 대략 98%에 해당하는 수입원인 원유수출길을 상실했다. 안그래도 파탄으로 내몰리고 있던 베네수엘라 경제는 파국에 직면했다. 미국은 과이도 임시정부를 앞세워서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군부를 비롯한 다른 국가기관들의 이반을 유도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2020년 4월 일부 망명자들이 주도한 무장반란은, 쿠바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처참하게 실패했고 마두로 정부는 제재 이전보다 오히려 더 안정적인 권력유지를 해냈다.
결국 2022년 임시정부 해산이 결정되면서 후안 과이도는 임시대통령에서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장직에서도 물러나면서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석유공급지로서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과 척을 지자 바이든 행정부는 서둘러 베네수엘라와의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했고 그것이 마두로 정권에 힘을 실어줬던 것이다. 그렇게 2023년 베네수엘라 임시정부가 완전히 소멸하면서 2026년 현재까지 마두로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다.
후안 과이도 임시정부로 대표되는 베네수엘라 내의 반체제 세력과 미국 및 서방세력의 압박을 통한 '평화적'인 정권이양은 실패로 끝났고 마두로 정권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 게 바로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군사적 개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보면 미국은 외과수술과도 같은 정밀 타격을 통해 마두로 정권의 수뇌부를 제거하고, 정권 내에서의 권력변동에 따른 협력자의 등장을 꾀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작년에 있었던 이란 핵시설 타격의 연장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시설 타격, 베네수엘라 참수작전 등과 같은 외과수술적인 군사적 개입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변수에 기초해 협상을 이어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 제재의 효과가 약해진 결과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마두로의 '마피아 자본주의'로 후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 12월 1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지역사회 기반 단체들의 취임 선서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마두로 정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열린 행사다. ⓒ 로이터/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이와 같은 방식의 군사적 개입을 왜 반복해서 시도하는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협상 스타일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국의 한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국은 광범위하게, 특히 러시아, 중국 등에 대해 제재를 남발해왔다.
미국의 제재 외교를 분석한 일본의 스기타 히로키는 <미국의 제재 외교>라는 책에서 제재 외교가 등장하게 된 이유로 전쟁에 반대하는 국민여론, 핵무기 등으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살상력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대규모의 지상전을 치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전쟁이 불가능해진 상황이지만 갈등과 분쟁은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제재'이다.
스기타는 이런 맥락에서 제재를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이라 지적한다. 미국은 전쟁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제재라는 다른 수단을 통해 계속해서 전쟁을 해왔던 것이다.
문제는 제재의 효과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러시아, 중국, 베네수엘라 등의 국가들에 광범위한 제재를 가해왔지만 그 효과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베네수엘라를 예시로 설명하자면 제재의 목적과 효과에 대한 적절한 고려 없는 '남발'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광범위한 제재 이전에 이미 경제가 파탄나고 있었기 때문에 제재로 인한 효과와 진행중이던 경제붕괴의 추세를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려웠다. 아마 대체로 효과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베네수엘라의 1인당 GDP는 80% 이상 감소했지만 그 대부분은 제재가 이뤄지기 이전인, 2017년 이전에 발생한 것들이었다. 즉, 미국의 제재는 무너지는 경제에 가속도를 붙였을 뿐, 정권의 명줄을 끊는 결정적 변수는 되지 못했던 셈이다.
둘째로 제재는 상대방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광범위한 경제제재는 중국의 경우에는 미국의 제재를 무력화시킬 여러 수단과 역량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러시아의 경우 최소한 그에 대비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갖추도록 유도하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서 마두로 정권은 국내외의 압박을 계기로 새로운 권력기반을 창출하였다.
예컨대 마두로 정권은 초인플레이션으로 베네수엘라 통화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서둘러 국내외의 모든 교환체계를 '달러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비공식 달러화'라고 불리는 현상이 급격하게 퍼지면서 베네수엘라 전체 거래의 절반 이상이 미국 달러로 결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비공식 달러화'는 기존의 국가통제 하에 놓여 있던 경제를 완전히 '자유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무역자유화와 비공식 달러화가 함께 이뤄지면서 민간의 수요에 맞게 어떠한 형태의 상품이든 공급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편에서는 국가의 권위주의적인 통제, 특히 마두로 개인의 사적인 지배연합으로 전락해가는 질적 하락이 이뤄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달러화를 매개로 한 시장자유화에 힘입어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두로 정권은 경제위기를 맞이해 조용히 국유자산들을 매각하며 민영화했고 이 과정은 거의 대부분 비밀에 붙여졌다.
이렇듯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마두로의 '마피아 자본주의'로 후퇴했던 것이다. 이러한 후퇴에도 불구하고 마두로 정권은 살아남았다. 중국, 튀르키예, 시리아, 이란 등의 반미 성향의 국가들과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역관계를 형성해나가면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확장했다. 미국 등의 서방 세력의 압력 속에서 반(反)제국주의를 기치를 내걸고 국영부문을 '구조조정'하는 우경화된 정책들을 견지했던 것이다.
마두로 정권을 전복해야 할 이유가 무엇?… 우리의 시선은 '대만 해협'으로 향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군 공습 이후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마러라고 관저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UPI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그렇게 7년 간의 구조조정과 새로운 무역관계의 수립, 비공식 달러화를 매개로 한 자본주의의 발전, 군대의 사병화, 국가기구의 사조직화 등의 변화를 거쳐 마두로 정권은 2021년을 기점으로 베네수엘라 경제를 다시금 성장세로 돌렸으며 회복 중이기는 하지만 중남미 내에서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서방세력의 압박이 베네수엘라의 체제 성격을 바꿔놓았던 것이다.
이렇듯 제재의 효과가 낮아지자 미국으로서는 정밀한 외과수술적 타격이라는 군사적 개입의 '최소화'를 전제로 한 내부 변화의 유도를 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두로 정권을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적 수단을 활용하지 않고 타격해 전복시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군사적 개입이 현실화된 건 이런 맥락이다. 이라크, 아프간 등의 대규모 군사개입의 실패가 경제제재의 남용으로 이어졌고, 그 제재의 효과가 줄어들자 다시금 '최소한'의 군사적 개입으로 선회한 것이다.
지금은 최소한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처럼 미국이 지상군을 주둔시키는, '대규모'의 군사개입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전세계적 개입에서 지역적 개입으로 그 개입 범위를 축소시키면서 경제제재와 군사적 개입이라는 다양한 선택지를 활용하여 세력권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제재의 무력화, 군사적 개입의 최소화 등의 '합리적'인 수단의 활용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이 바로 지금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전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자는 석유 자원의 확보 때문이라고 하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미국의 석유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 투자할 것이라 공언하지만 핑계에 가깝다. 베네수엘라 석유 시설들은 이미 노후화된 지가 오래라 미국이 제대로 수익을 내고자 한다면 상당한 기간, 상당한 정도의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이는 곧 대규모의 지상군 주둔을 전제로 한다. 지상군 주둔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그리 합리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마약과의 전쟁 운운하는 것도 설득력이 약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유통되는 마약의 대부분은 태평양을 통해 유입되지, 베네수엘라나 카리브해를 경유하지 않는다. 당장 콜롬비아가 세계 최고 수준의 코카인 생산국이지만 미국이 그를 공격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베네수엘라 이주민, 난민 등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합당한 설명이라 보기 어렵다. 중남미 출신 유권자들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미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에 패했던 전략이다.
수단의 합리성은 보이지만 목적의 합리성이 보이지 않는 이 기묘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란, 미국이 다시금 먼로독트린(Monroe Doctrine)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정도이다.
앞으로 미국이 멕시코, 캐나다 등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하고 그린란드를 병합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대규모의 군사적 개입부터 경제제재까지 활용가능한 수단이 여전히 '효과'를 보일 수 있는 지역으로만 세력권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여러모로 이번 사태는 미국의 제재와 군사적 개입의 효과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징표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미국이 베네수엘라, 멕시코, 캐나다, 그린란드 등에 취할 조치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시선은 대만해협을 향해야 한다. 미국이 국가이성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과 대립의 위험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일이 정말로 현실화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동북아의 평화를 지켜나갈 것인가. 미국 없는 세계 속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고민해볼 때가 아닌가 한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왼쪽)와 베네수엘라 국방부 장관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즈가 2025년 11월25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행사(2026년 1월 3일 재발행)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 연합
새해 첫 토요일인 3일 오전 2시께(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내 주요 시설에 대한 전격적인 공습을 단행한 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부인을 체포해 국외로 압송했다는 소식까지 알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해온 베네수엘라 강경 노선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내에서는 이번 공습이 단순한 군사적 타격을 넘어 석유 이권 보호, 마약 카르텔 소탕, 이민자 대량 추방이라는 여러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분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오전 2시께부터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인근에서 폭발음과 함께 낮게 나는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는 언론 보도가 시작됐다. 오전 3시 30분께 베네수엘라 정부는 미국이 수도 카라카스 등 여러 주에서 민간 및 군사시설을 공격했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후 미국 시비에스(CBS) 뉴스는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인근의 군사 시설에 대한 공습을 지시했다”고 보도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 4시21분 공습을 공식 발표하면서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아내가 체포되어 국외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시작은 지난해 5월 메모리얼 데이 직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비밀 회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역점 법안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 통과를 위해 쿠바계 의원들의 표가 절실했다. 마두로 대통령에 반대하는 쿠바계 의원들은 마두로 정권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로 여겨지는 미국 석유기업 셰브론의 베네수엘라 사업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셰브론이 철수할 경우,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할 것을 우려했다. 뉴욕타임스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타협안을 제시했다. 셰브론의 베네수엘라 석유사업에 대한 이권은 유지해 대중국 견제 교두보를 사수하되, 마두로 정권을 ‘마약왕’으로 규정하고 군사적 타격을 가함으로써 쿠바계 의원들을 달래자는 제안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밀러 부비서실장에게 베네수엘라 타격은 이민 정책을 완결 지을 ‘법적 도구’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밀러 부비서실장은 18세기 법령인 ‘적국 시민법(Alien Enemies Act)’에 주목했다. 미국과 전쟁 중이거나 미국을 침공한 국가의 국민을 재판 없이 즉각 구금·추방할 수 있게 하는 이 법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베네수엘라와의 ‘전쟁’이 필요했다.
실제 두 달이 흐른 지난해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라틴아메리카 마약 카르텔에 대한 군사 작전을 명령하는 비밀 지침에 서명했다. 이후 미군은 ‘1단계’ 작전으로 해상에서 마약 운반 의심 선박들을 타격해 100명 이상을 사살했다. 이번 카라카스 공습은 지상 작전을 포함하는 ‘2단계’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이는 밀러가 원하는 ‘전쟁 상태’를 완성하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
“마두로 정권 끝나면”…미, 베네수엘라 봉쇄 뒤 쿠바로 향하는 시선
루비오 국무 “베네수엘라 무너지면 쿠바가 뒤따른다”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실과 바늘 관계 쿠바에 공급되는 하루 30만배럴 베네수엘라 석유도 차단
쿠바 아바나의 거리에서 지난 18일 주민들이 과일과 채소를 구입하고 있다. 쿠바 중앙은행은 이날 미국 달러당 410페소의 새로운 공식 환율을 발표했다. 이는 현재 시행 중인 세 번째 환율로서 다른 두 개의 국가 고시 환율보다 비공식 시장 환율에 더 가까운 수준이다. 현재 쿠바 페소는 암시장에서 달러 당 약 450페소 내외로 거래된다. EPA 연합
미국의 베네수엘라 봉쇄가 쿠바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아메리카 대륙권에서 반미사회주의 진앙이었던 쿠바의 목줄을 쥐며, 국가전략의 우선순위가 된 서반구 우선주의를 시험하고 있다.
미군이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첫번째 유조선을 나포한 지 이틀 뒤인 지난 12일 린지 그레이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에 “마두로의 베네수엘라 공포정치가 곧 끝나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 중 하나이자 우리 코앞에 있는 가장 억압적인 정권 중 하나인 쿠바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레이엄 의원은 중남미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책을 주도하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밀접하게 협력해온 인물로, 결국 이들의 시선이 쿠바로 향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조 바이든 시절 백악관에 재직했던 후안 곤잘레스의 말을 인용해 “베네수엘라가 무너지면 쿠바가 그 뒤를 따를 것”이라는 게 루비오식 접근법이라고 전했다.
이틀 뒤인 14일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아바나에서 열린 쿠바공산당 중앙위 11차 전원회의 폐회 연설에서 미국을 겨냥했다. 그는 16~17세기 카리브해에서 활동했던 영국의 해적 선장을 빗대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헨리) 모건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듯, 도널드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유조선에 자신의 해적들을 풀어놓아, 천박한 도둑처럼 뻔뻔하게 화물을 빼앗았다”고 했다. 그는 “그 적들에게 규칙이라는 것은 규칙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비난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9월 초부터 강화해온 베네수엘라 옥죄기가 쿠바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지난 2000년 이후 실과 바늘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쿠바는 최대 후원국이던 소련이 1991년에 붕괴한 이후 극도의 고립 속에서 체제 붕괴 위기를 겪다가, 1999년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가 집권한 이후 숨통이 열리게 됐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중남미에서 반미사회주의 성격의 차베스주의 확산을 내걸고, 쿠바를 든든한 동맹국으로 삼았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쿠바의 혁명 인력을 교환했다. 쿠바는 석유를 제공받는 대가로 베네수엘라에 의료·교육 및 보안·정보 인력을 제공했다. 특히 쿠바가 제공한 보안·정보 인력은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이 의도하던 정권교체 기도에 맞서 정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
쿠바의 정보 및 보안 요원들은 베네수엘라군과 관료 조직 내 ‘불충분자’를 색출하고, 쿠데타 음모를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차베스보다도 기반이 취약한 그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은 쿠바가 제공하는 정보와 보안 인력 및 서비스에 크게 의존했다.
차베스는 쿠바와의 관계를 “행복의 바닷속에서 하나로 묶인 두 나라”라고 표현하며, 하루 10만배럴의 석유를 쿠바에 공급했다. 베네수엘라가 제공하는 석유는 이제 하루 3만배럴로 줄었으나, 여전히 쿠바 석유 수입의 약 40%를 차지한다. 쿠바는 자국에서 소량의 석유를 생산하고 멕시코·러시아산 원유도 일부 들여오나, 전력 및 자영업자 분야에서는 상당 부분을 베네수엘라산 원유에 의존한다.
미국이 지난 9월 초부터 카리브해에서 마약선박을 단속하고 군사력을 전개한 이후부터 쿠바로 향하는 베네수엘라 석유도 영향을 받았다. 미국은 지난 10일부터 베네수엘라로 오가는 유조선을 나포하며 봉쇄해, 쿠바로 가는 석유의 완전한 차단도 예상된다. 베네수엘라 석유의 차단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재개된 미국의 제재로 악화한 쿠바의 사회경제 상황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이미 쿠바에서는 하루 18시간 이상 정전되는 지역이 있다.
쿠바의 사회경제 위기 담론은 미국 등 서방의 오래된 프로파간다이기는 하나 최근 위기는 1959년 쿠바혁명 이후 가장 심각하다는 평가이다. 쿠바 경제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제재를 강화한 2018년 이후 약 15%나 축소됐다. 2018∼24년까지 누적 인플레이션은 450%이다. 쿠바 페소는 암시장에서 2020년만 해도 1달러당 30페소 수준이었는데, 현재 약 450페소에 거래된다.
아바나의 인구학자인 후안 카를로스 알비주-캄포스의 계산에 따르면, 쿠바 인구의 약 4분의 1인 270만명이 지난 2020년 이후 쿠바를 떠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그는 “쿠바가 겪는 것은 인구 공동화이고, 이는 무장분쟁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인도적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도 “쿠바에는 엄청난 물질 부족이 있다”며 “거시경제 안정이 절박하다. 경제 효율 없이는 주권도 없다”고 인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 대외정책의 우선순위 지역을 기존의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서반구로 이동시켰다.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세력권이니 유럽 열강들은 간섭하지 말라는 19세기 때 먼로주의의 계승을 내세웠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를 압박해 쿠바까지 위기에 몰아넣어 중남미 일대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려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트럼프의 먼로주의, 즉 서반구 우선주의가 본격화하는 시험대이다. <정의길 기자 >
트럼프의 먼로주의 부활 시험대가 된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해군이 호위한 유조선 출항 미, “유조선 호위 작전 인지”…대응 검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오가는 제재 유조선에 대한 봉쇄 명령을 발동한 가운데 17일 베네수엘라 라구아이라 항구에 한 화물선이 정박해 있다. AP 연합
미국의 ‘해상 봉쇄’에 맞서 베네수엘라가 해군에 유조선 호위를 명령해, 양국 충돌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소극적 자세였던 중국과 중남미 국가들도 개입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가 국가안보전략(NSS)에서 국가안보의 최우선 사안으로 규정한 서반구 우선주의가 첫 시험대에 올라섰다.
■베네수엘라도 해군력으로 맞대응, 중국도 개입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해군에 석유 관련 제품을 운송하는 선박들을 호위하라고 명령했다고 로이터와 뉴욕타임스 등이 17일 보도했다. 앞서,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오가는 “모든 제재 유조선에 대한 전면적이고 완전한 봉쇄”를 명령했다. 미국의 봉쇄에 베네수엘라도 해군 호위로 맞선 것이다.
마두로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9월 초부터 카리브해에서 마약 선박 단속 등 자신들을 겨냥한 무력 조처들에 직접 대응하지 않아 왔다. 하지만, 미국이 봉쇄하려는 유조선 등에 해군을 호위시킴으로써, 미국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베네수엘라 동부 연안에서는 16∼17일 해군의 호위를 받는 선박 몇척이 항해를 했다고 언론들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이 배들은 트럼프가 봉쇄를 명령한 지 몇시간 뒤에 베네수엘라 항구를 출항했다. 요소, 석유 코크스 및 석유 관련 제품들을 수송하는 3척의 선박은 호세 항을 떠나 아시아로 향했다. 소식통들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트럼프의 위협에 맞서 이 선박들에 호위를 붙였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PDVSA)는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는 에너지 주권 수호, 합법적 무역 약속 이행, 해상 운영 보호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다”며 “원유 수출 작업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의 유조선 호위 작전을 인지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세 항을 떠난 3석의 선박은 미국 재무부의 제재 대상 선박 명단에 들어있지 않다고 뉴욕타임스가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석유의 최대 구매국인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장관)은 이날 이반 길 베네수엘라 외무장관의 요청으로 이뤄진 통화에서 "중국은 모든 일방적 괴롭힘에 반대하며 각국의 주권·민족존엄 수호를 지지한다며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이며, 상호 신뢰, 지지가 양국 관계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지난 9월2일 카리브해에서 마약 단속을 이유로 선박에 공격을 시작하며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압박한 이후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며, 간접적으로 미국에 자제를 시사했다. 중국 외교장관이 직접 나서기는 처음이다. 베네수엘라 석유 판매의 약 80%는 중국 민간업자들이 사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화해 개입을 촉구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마두로에게 “회원국들이 국제법을 준수하고 긴장을 완화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유엔 쪽은 밝혔다.
■ 트럼프의 서반구 우선주의 시험대가 된 베네수엘라
미국은 지난 9월 초 이후 카리브해 등 중남미 연해에서 해군력을 동원해 마약 밀매 선박이라며 지금까지 모두 25차례나 공격해 최소한 95명이 숨졌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멕시코 등은 공격받은 자국 선박들은 어선 등으로 마약과 무관하다며 항의해왔다. 미국은 또 카리브해에 최대 항모인 제럴드포드, 3척의 구축함, 1만5500명의 병력을 전개해, 베네수엘라를 겨냥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달 중순에 베네수엘라에 대한 중앙정보국(CIA)의 비밀공작을 승인하는 한편 지상 공격도 시사했다.
마두로 정권 붕괴를 노리는 미국의 이런 압박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본토 및 주변 지역을 우선시하는 대외정책의 선회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미국은 서반구에서의 우위를 회복하고 우리의 본토와 지역 전역의 주요 지형에 대한 접근을 보호하기 위해 먼로 독트린을 재확립하고 집행할 것”이라며 “비 서반구 경쟁자들이 우리 반구에 병력이나 기타 위협적 역량을 배치하거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산의 소유·통제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이후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를 중국 억제에 두고 인도태평양 지역을 가장 중시하는 대외전략을 펼쳐왔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에 아메리카 대륙의 서반구에서 더 중시하는 국가안보 전략으로 크게 선회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에서 반미정권을 제거하고 우호적인 친미 정권 수립이 서반구 우선주의 집행의 첫 과제가 됐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반미사회주의를 표방한 우고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1990년 초반 이후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를 추구해 왔다.
■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대응
트럼프가 이번에 명령한 봉쇄에서는 대상이 일단 ‘제재 유조선’에 한정돼, 부분적인 봉쇄로 간주되고 있다. 이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이번 봉쇄 집행을 군이 주도해야 하는지 아니면 치안기관이 집행해야 하는지 혼선이 일고 있다.
군사력을 이용한 외국에 대한 봉쇄는 국제법적으로 전쟁 행위에 해당되고, 군이 개입된다. 해상봉쇄에는 안보리 승인이나 교전 상태가 요구된다. 지금까지 미국이 실제로 집행한 해상봉쇄는 1962년 쿠바 해상봉쇄가 마지막이었다.
미국 치안기관들이 봉쇄를 집행해도, 유조선을 호위하는 베네수엘라 해군과 충돌하면, 미군의 개입으로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시민들은 베네수엘라 석유를 장악하려는 트럼프의 의도에 경악해, 군사력을 동원해 미국에 맞서려는 마두로에 대한 지지가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트럼프는 봉쇄를 명령하면서 “과거에 미국에서 훔쳐간 모든 석유, 토지, 자산을 돌려줄 때까지 봉쇄를 풀지 않겠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1976년에 석유 산업을 국유화했고, 우고 차베스 정권 이후에는 서방 석유회사들의 이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해군이 유조선을 호위하면, 이 지역에 배치된 전함에서 발진한 무장헬기를 이용해 선박을 나포할 가능성이 크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미국은 이미 지난주 이런 방식으로 선박을 나포했다.
하원 군사위의 애덤 스미스 민주당 의원은 “트럼프는 마두로가 결국 굴복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나 그들이 선박을 호위하고 우리는 그들을 잡으려고 전투를 벌여야 하는 다른 시나리오가 있다”고 우려했다. < 정의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