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AFP 연합
“세계사를 살펴보면 자유시장과 자유주의 정치 시스템이 있는 곳에서 번영과 풍요가 꽃을 피웠습니다. 저는 무너진 헌법 가치를 바로 세우고….”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알 수 없으나, 그의 취임사에 ‘무너진 헌법 가치’의 회복과 수호는 새겨질 게 틀림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을 뱉은 윤석열 대통령은 결국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전복시켰다. 지난 3월 총선을 앞두고 제51회 상공의 날을 맞아 그는 ‘자유주의 경제시스템에서 기업 활동의 자유와 국가의 역할’이란 제목의 경제사상을 다룬 논문 같은 으레 긴 강연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복원하여 더욱 강화하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큰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말마따나 ‘대통령의 가장 큰 책무’를 해태하고, 결과적으로 권력을 잠시 맡겨준 국민을 배신했다.
‘선택할 자유’를 버린 대통령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시민의 자유를 폐기한 윤 대통령은 놀랍게도 지난 3년간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해왔다. 그가 취임사에서 35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22번이나 외쳤던 ‘자유’는 기실 우리가 익히 교과서에서 배운 자유와는 다른 것인지 모른다. 그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는 밀턴 프리드먼이 쓴 책, ‘선택할 자유’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엉뚱하게 독해했을 가능성이 짙다.
21세기 보수주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경제사상가 중 한명인 프리드먼은 책에 이렇게 썼다. “군대나 경찰은 모두가 국내외의 억압∙폭력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유사회를 성취하고 유지하는 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유의 보루로서 정부에 맡겨놓은 군대나 경찰에게 어떻게 하면 본래의 목적에만 충실하게 하고 엉뚱하게 자유를 짓밟는 일을 막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우리의 개국공신들은 헌법을 기초할 때 이 문제를 놓고 씨름을 했었다. 현재의 우리는 이 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 프리드먼이 ‘큰 정부’를 겨냥해 쓴 책이지만, 불법 비상계엄은 그가 말하는 군대나 경찰의 본래의 목적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그는 또 다른 책, ‘자본주의와 자유’에서도 “경제적 자유의 증가가 정치적∙시민적 자유의 증가와 함께 이루어졌고, 더 큰 번영으로 이어졌으며, 경쟁적 자본주의와 자유는 분리할 수 없는 것임이 드러났다”고 썼다.
그의 열혈 독자였던 대통령 윤석열은 보수 경제사상과 정책을 관통하는 작은 정부론과 규제 완화, 감세 등을 서툴게나마 이해하고 추진했지만, 정작 프리드먼이 그 대전제로 여긴 ‘자유의 보루로서 정부’는 거부했다. 그는 한국 현대 정치사를 44년 전으로 퇴행시킨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사상적 스승의 교훈을 따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스승의 사상이 아니라,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자유시장주의 노선을 채택한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의 경제정책을 자문해줬다는 의혹을 받는 프리드먼의 행동에서 ’엉뚱한’ 영감을 얻었는지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제공
‘GDP 살인자’가 된 친위 쿠데타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국회에서 빠르게 해제되긴 했지만,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비싼 2시간 반짜리 계엄의 경제적 비용은 모든 국민이 그것도 상당히 오랫동안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 보수경제지 ‘포브스’는 지난 6일 ‘윤석열의 필사적인 곡예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살인자(Killer)인 이유’란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한국 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 비상계엄을 한 마디로 ‘지디피 살인자’로 표현했다. 기사는 말미에 섬뜩한 문장으로 끝난다.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사태가 초래한 값비싼 대가는 한국인 5100만 명이 시간을 두고서 분할해 지불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 오래 기록될 사고를 친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이런 진단과도 너무 동떨어져 있다. 계엄을 한국 사회가 잠시 겪은 ‘불편’ 정도로 여긴다. 계엄이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한 지 나흘 만에 내놓은 첫 번째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 윤석열은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께 불안과 불편을 끼쳐 드렸다”라고 말한다. 또 그 뒤 닷새째 되는 12일에는 에이포(A4)용지 15쪽에 이르는 장문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계엄으로 놀라고 불안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사과”한다고 밝혔다. 지난 3일 그의 손을 거쳐 나온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 6항에서도 ‘불편’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또 그날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낸 긴급 담화문에서도 “계엄 선포로 인해… 선량한 국민께 다소의 불편이 있겠습니다마는, 이러한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윤석열에게 보수가 그토록 즐겨 써왔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훼손,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엄청난 경제적 충격과 피해를 불러온 비상계엄은 ‘불편’이란 단어로 표현된다. ‘어떤 것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거북하거나 괴로움’을 뜻하는 불편의 사전적 뜻을 아무리 곱씹어도 계엄이 초래한 상황을 설명하기엔 너무 가볍다. 한국 사회가 장기간 할부로 갚아나가야 할 엄청난 계엄의 비용이 잠시, 잠깐의 불편일 순 없다. 그의 의도와 계획이 그나마 실패해서 다행이지, 성공했다면 한국 사회는 회복하기 어려운 재앙에 가까운 고통과 비용을 요구받았을지 모른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합동 브리핑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민주주의도, 경제도 위태롭게 한 계엄
지난 12일 국회의원 190명이 국회에 제출한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떠안게 된 계엄의 비용을 총론적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피소추자의 위헌, 위법한 비상계엄선포와 무장병력을 사용한 내란 행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고, 급격한 환율 인상, 경제와 정국의 불안이 초래되었다… 국민을 지켜야 할 국군이 총부리를 국민에게 향하는 모습을 본 국민은 불안과 공포에 떨었으며, 환율과 주가는 요동을 쳤고 경제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 우세해졌다.” 소추안은 ‘신속한 탄핵소추와 파면’만이 “손상된 근본적 헌법질서의 회복이며, 국민의 통합, 정국의 안정, 경제 불안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경제 불안’이 가장 크게, 직접 나타난 곳은 금융시장이다. 특히 탄핵 소추안에서 언급한대로 원-달러 환율(이하 환율)이 급등했다. 환율 상승은 미국 달러에 견줘 원화의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유로화와 엔화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의 상대 가치의 변화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계엄 전날인 지난 2일(한국 시각)부터 27일 현재까지 대략 1.5% 상승했지만, 원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는 같은 기간 4.8%나 뛰었다. 달리 말해 주요 6개 통화 대비 원화의 가치가 3배나 더 하락한 셈이다. 원화 가치의 하락은 원부자재 수입 시 가격 상승 부담과 해외 자금 조달 및 상환 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물론 미국의 중앙은행이라 할 수 있는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과 ’강달러주의자’ 트럼프의 당선이란 변수도 영향을 줬지만 무엇보다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 소추와 이후 안갯속을 헤매는 정국의 혼란이 결정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계엄 전날부터 27일까지 환율은 딱 4일 하락했고, 반대로 상승(원화 가치 하락)한 날이 18일이나 된다. 지난 27일 현재 환율은 1475.50원으로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공황(패닉)에 빠졌을 때 급등(1534원, 2009년 2월 평균 환율)한 이후 최고 수준이다.
지난 한달 동안 원-달러 환율과 유로-달러 환율 추이. 원화의 가치가 달러 대비 유로의 가치보다 더 크게 하락했음을 보여준다. 서울외국환중개
환율은 ‘외환위기’를 트라우마로 기억하는 한국 경제에 가장 큰 불안이자 위협 요인으로 떠올랐다. 1997년 12월에 당시 보유 외환이 거의 바닥나 1달러당 약 1695원까지 치솟았다. 물론 그때와 달리 지금은 외환보유액이 4154억 달러(약 613조원, 11월 기준)에 이른다. 환율의 추가 상승을 제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그래도 방심할 수 없는 이유는 2021년 4692억 달러에 이르던 보유액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어서다. 최근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계속 쏟아붓고 있어, 다음 달 초 한국은행이 발표할 외환보유액이 4천억 달러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 무너진다면, 이는 지난 한 달 사이 환율 방어에 20조원 넘게 썼다는 의미가 된다. 대통령 윤석열이 말한 ‘불편’의 비용치곤 너무 비싸다. 앞으로도 한동안 환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 계엄 사태 뒤 환율 방어 누적 비용은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계엄 뒤 증시에서만 79조원 증발
계엄 이후 증시도 죽을 쑤고 있다. 이미 바닥권에서 오르내리던 증시는 비상계엄 뒤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이 정족수 미달로 부결되자 2360.18까지 폭락했다. 다시 회복하긴 했으나 반등하지 못한 채 등락을 반복하며 지난 27일 현재 2400대를 겨우 턱걸이하고 있다. 증시는 경제의 선행지표이자 경제 심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누구보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됐다면서 ‘밸류 업’(Value-up, 가치 상승)을 외쳤던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으로 증시를 크게 ‘밸류다운’(Value-down, 가치 하락) 시켰다. 비상계엄 뒤 증시는 맥을 추지 못하면서 79조원이 증발했다. 시가총액은 2000조원 아래로 쪼그라들었다. ‘불편’이라고 하기엔 주식 투자자들의 손실이 너무 크다. 계엄 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증시는 확실한 반등의 계기를 당분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계엄 뒤 정치적 불확실성의 증가로 인한 환율 상승과 주가 하락뿐만 아니라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 심리 또한 모두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12월 기업경기 조사 결과를 보면, 이달 전산업 기업심리지수는 전달보다 4.5%포인트 낮은 87.0(100 이하면 경기를 비관적으로 전망)을 기록해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쳤을 때인 2020년 9월(83.0) 이후 4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후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환율도 걱정이지만, 경제 지표 중 제일 크게 영향을 받는 건 기업의 투자다. 안 그래도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로 바뀌면서 투자하기가 좀 불확실한 상황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쳐, 기업의 투자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비 지표도 추락 중이다.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달보다 12.30 하락한 88.40(100 미만은 현재 경기가 과거 평균보다 좋지 않음)을 기록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18.3)에 이어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이는 세계 금융위기 때(12.6)와 비슷하다. 불확실한 정치, 경제 상황에서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소비 시점을 미루기 마련이다.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의 위축은 결국 경제의 동력을 떨어뜨려 시간을 두고서 국내총생산(GDP) 감소로 나타날 것이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의 음식점 밀집 거리에서 한 가게 관계자가 영업을 시작하기 위해 입간판을 설치하고 있다. 연합
1호 공약과 국정과제 1호의 파기
계엄으로 경제를 망가뜨렸지만 기실 대통령 윤석열은 ’민생’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의 후보 시절 1호 공약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살리기였다. 국정과제 1호도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회복과 도약이다. 그는 지난 2일 마련한 임기 후반 첫 민생토론회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불러 놓고서 “전향적인 내수 소비 진작 대책을 강구”해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예산시장을 확 바꿔 놓은 백종원씨를 예로 들며 민간 상권기획자 1천 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 날 그가 선포한 계엄으로 1호 공약이자 국정과제 1호는 파기됐다. “21세기 상상하기 어려운 비민주적 상황”(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을 초래한 그의 극단적 선택은 특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어려움에 빠뜨렸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0~12일 음식∙숙박업, 도∙소매업, 개인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는 전국 소상공인 1630명을 대상으로 한 경기전망 긴급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4%가 '매출이 감소' 했다고 답했다. 연말인데도 계엄으로 예약 취소가 줄을 잇고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소상공인의 송년 특수는 실종됐다.
’이번 계엄은 다르다’
가장 가까운 계엄은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1979년 10∙26 다음날 선포된 계엄은 81년 1월24일 해제됐다. 무려 456일 지속했다. 그로 인해 환율과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과 단순 비교할 순 없다. 당시 환율은 ’단일변동환율제도’에서 ’복수통화바스켓제도’(80년 2월부터 시행)로 바뀌었으나, 두 제도 다 사실상 정부가 통제하는 방식이다. 80년 1월 정부는 환율을 484원에서 580원으로 20% 올렸으나 이는 계엄의 영향이라기보다 2차 석유파동(오일 쇼크)으로 인한 국제수지 악화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 조처였다. 증시 또한 당시 영향을 논할 수조차 없을 만큼 규모도 작고 개방돼 있지 않았다.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로 출범한 주식시장은 1981년 3월에서야 전산화 되었고, 1992년부터 외국인의 직접 투자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1980년대 초 여전히 폐쇄적인 데다 금융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엄이 직접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회 사무처가 지난 4일,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해당 영상 화면 갈무리. 국회사무처 제공
또 2시간 만에 실패한 계엄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도 쉽지 않다. 비상계엄 다음날 신한투자증권 리서치본부는 ‘비상계엄과 금융시장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해외 사례를 제시하면서 “계엄령 발동에 따른 영향은 길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4년 태국 계엄령 발동 때 SET 지수는 1.6% 하락한 뒤 상승하고, 밧화 환율도 1.2% 평가절하된 뒤 1주일 만에 회복한 사례를 들었다. 또 2016년 튀르키예(옛 터키) 계엄령 발동 당시 BIST 지수가 13% 하락하고 리라화 환율도 6% 절하됐으나 10일 뒤 원래 추세대로 회복했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나라에서 ‘일상’이 된 쿠데타와 계엄은 이들 나라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가중해왔고 이는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아온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계엄은 겉으로 나타난 지표보다 더 깊은 상처와 고통을 수반할 때가 잦다. 필리핀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1972년 친위 쿠데타를 하면서 계엄령을 선포했고 1981년에서야 해제했다. 필리핀 계엄 박물관은 누리집에서 “마르코스는 1986년 축출될 때까지 권위주의 독재자로서 모든 권력을 유지했고, 계엄령의 효과와 유산은 마르코스보다 오래 지속하였다”고 기록했다. 72년 계엄령 선포 뒤 마르코스가 물러날 때까지 무려 14년 동안 필리핀의 1인당 지디피(GDP)는 1430달러에서 1570달러로 1% 상승했다. 사실상 정체됐다. 필리핀의 잃어버린 ’14년’이다. 이 수치 하나만으로도 필리핀이 얼마나 혹독한 계엄의 비용을 치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상황은 과거 2번의 탄핵과도 다르다. 일단 강도가 너무 세다. 후진국에서 볼 수 있는 친위 쿠데타가 시도됐고,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반동’과 불확실성도 과거보다 훨씬 크다. 이는 한국사회가 지불해야 할 정치∙경제적 비용 또한 과거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은 지난 15일 낸 ‘비상계엄 이후 금융∙경제 영향 평가 및 대응 방향’이란 제목의 보도참고자료 맨 끝에 “향후 정치 상황 전개 과정에서 갈등 기간이 과거보다 길어질 경우에는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직도 그 경고는 유효하다.
1979년 12월13일 새벽 노태우 당시 9사단장 휘하 병력이 서울 광화문 앞에서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 한겨레
계엄 뒤 한국 경제는 조타수를 잃은 배와 같다. 내부의 리더십 실종과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트럼프의 복귀로 예고된 국제 정치∙경제 질서의 격변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놓치고 있다.
그나마 긴 시야를 갖춘 어느 경제학자는 부정 속 긍정을 되새긴다. 한국 경제학계 거두였던 학현 변형윤 선생을 기리는 학현학술상을 지난봄 수상한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이렇게 짚었다. “한국이 분단과 냉전 체제의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경제발전을 한 집단 기억이 너무 강해서 이런 시대착오적인 일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쿠데타 속에 분단 냉전 체제의 인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 단계 나아가려면 한 번쯤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민주화의 성공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쿠데타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진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 유산을 빨리 청산하고 극복하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 < 한겨레 류이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