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2일~ 23일 로저스 스타디움 ‘Arirang 월드 투어’ ...10만 팬 열광 

 

 첫날 폭우에도 월드스타 7인 열정 공연에 5만 팬 뜨거운 호응

"세계 어느 곳 지난 공연들보다 아름답고 강렬한 추억을 남겨"

 

토론토시, 한달간 BTS 거리명 게시 환영... 한인대축제도 덩달아 성황

 

 

" BTS 토론토 공연이 번개와 폭우 때문에 한때 취소될 뻔했다.

공연장은 비를 피하기 어려운 야외 스타디움이었다. 천둥과 번개가 이어지자 관객들은 객석에서 빠져나와 대기했다.

팬들은 공연이 아예 취소될까 봐 안타까운 마음으로 공지를 계속 확인했다. 현장에는 “오늘은 못 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퍼졌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드디어 BTS가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예정 시간보다 늦게 시작됐지만 결국 뜨겁게 진행됐다.

하늘이 도왔는지, 세 곡쯤 지나자 비도 잦아들었다. 몇 시간 동안 비를 맞고 기다린 팬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환호했다.

취소될 뻔한 콘서트가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밤이 됐다."

 

팬들 "취소될 뻔했는데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밤"

 

월드 K-Pop 슈퍼스타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캐나다 토론토 공연 첫날인 23일 저녁 심각한 악천후로 한때 취소 우려도 나왔으나 좀 늦게 시작한 후 5만 관중이 열광하는 가운데 빗속 장관을 펼치며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둘째날은 예보와 달리 활짝 개인 날씨에 기온도 청량감을 더한 상쾌한 저녁시간 역시 로저스 특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의 뜨거운 호응 속에 캐나다 공연을 열정적으로 마쳤다. 연이틀 10만여명의 청중과 함께 한 캐나다 공연을 마치고 BTS는 미국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 공연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BTS, 빗속 열정적 팬서비스, 환상 무대로 성공적 공연

 

8년 만에 캐나다를 찾은 BTS는 8월22일과 23일 주말 저녁 토론토 다운스뷰의 대형 야외 특설무대 로저스 스타디움에서 ‘아리랑(Arirang) 월드 투어’를 세계적 명성에 버금가는 열정적 무대로 장식해 캐나다 전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10만 팬을 매료시켰다. 특히 첫날 빗속에 진행한 공연은 ”역시 BTS“라는 이구동성이 쏟아질 만큼 객석을 메우고 야광봉을 흔들며 환호한 아미(Army)들과의 호흡으로 매끄럽고 에너지 넘친 무대로 장식해 세계 어느 곳 지난 공연들보다 아름답고 강렬한 추억을 남겼다는 팬들의 후기가 쏟아졌다.

첫날 공연에서 BTS는 2시간여 동안 모두 23곡을 팬들에게 선사했다. 화려한 안무와 특수 무대조명은 눈처럼 쏟아지는 빗방울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오히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360도 무대와 십자로 런웨이를 자유자재 활용한 7명의 스타들은 열광하는 팬들에게 최대한의 팬서비스를 제공했다.

 

 

BTS는 이번 공연 무대에 토론토와 캐나다를 배려하는 퍼포먼스도 잊지 않았다. V는 캐나다 국기가 들어간 모자를 쓰고 나왔고, SUGA는 캐나다 국기 패치가 달린 복장을 입고 나왔다. 또 RM은 토론토 메이플립스의 유니폼을 입고 ‘메이플 시티’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멤버들은 토론토에서 겪었던 추억과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7인 멤버들은 특히 빗속에 뜨겁게 호응해준 아미와 팬들에게 각별한 감사와 건강을 염려하는 사랑의 말도 전했다.

팬들은 공연이 끝난 후 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않고 무리를 지어 BTS곡을 노래하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여운을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언론들 달아오른 분위기 연일 보도 토론토시, BTS도로 명 게시

 

한편 이번 공연에 앞서 캐나다와 토론토는 BTS를 환영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팬들은 기프트백과 아미 키트(ARMY Kit), 그리고 머치(Merch) 상품 등 BTS 기념품을 구하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기념품 판매처에는 문을 열자마자 끝 모를 줄이 늘어서 언론들은 장관이라며 열기를 보도하느라 바빴다.

토론토시는 이례적으로 ‘BTS 위켄드’(BTS Weekend)로 선포하고, 다운타운 네이선 필립스 광장(Nathan Phillips Square)의 명물인 토론토 사인(Toronto Sign)도 BTS를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장식했다.

 

아울러 토론토의 최중심도로인 영 스트리트(Yonge Street) 일부 구간을 ‘BTS 대로’(BTS Boulevard)로 임시 명명하는 공식 제막식도 열었다. ‘BTS 대로’는 노스요크 블러바드(North York Boulevard)에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핀치 애비뉴(Finch Avenue)까지 이어지며 9월 23일까지 한달간 유지된다. 현장에 설치된 표지판에는 방탄소년단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의 핵심 컬러인 붉은색이 적용됐다.

이같은 도로명 제정을 제안한 릴리 쳉 시의원은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관광객들을 끌어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다.

 

 

BTS 방문에 토론토 호텔들 즐거운 비명... 관광마케팅에도 호재

 

토론토의 공식 관광 마케팅 기관인 데스티네이션 토론토(Destination Toronto)는 ‘BTS 위켄드 가이드’(The Ultimate BTS Weekend Guide)를 준비해 관광객들에게 제공했다. 공연 관람을 위해 토론토를 찾은 이들이 도시를 폭넓게 경험할 수 있도록 코리아타운을 비롯해 한식, 쇼핑, 관광 명소, 로저스 스타디움 이동 정보 등을 담아 소개했다.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CityNews는 공연을 앞두고 “방탄소년단의 열기가 토론토를 밝히고 있다”며 팝업 방문객과 현장 분위기를 연일 집중 조명했다. 방송은 공연 전날인 21일 MD를 구매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서는 모습과 ‘BTS 대로’ 제막 현장 등을 잇달아 보도하며 뜨거운 열기를 전했다. 공영방송 CBC, 그리고 CTV 등도 BTS 공연 전후 분위기를 전하는 생생한 뉴스를 여러 꼭지 보도했다.

토론토 시는 교통 대책도 강화해 BTS 공연을 비롯해 마침 21일 개막된 캐나다 국립박람회 CNE 등 대형 이벤트가 집중된 주말 대중교통 운행과 현장 대응인력을 확대하는 등 대규모 방문객 맞이에 나서기도 했다. CNE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전시회로 9월7일까지 토론토 Exhibition Place에서 열린다.

 

같은 기간 열린 2026 한인대축제에 BTS 팬까지 몰려 대성황

 

한편 BTS의 토론토 공연이 열린 22일 토요일과 23일에 맞춰 노스욕 멜라스트먼 광장에서는 2026 한인대축제(Toronto Korean Festival)가 열려 BTS 공연 관람을 위해 토론토를 찾은 팬들과 시민들, 한인 등 수만명이 방문해 한국과 한국문화를 섭렵하며 즐겼다. 축제에서는 K-POP 공연을 비롯해 한복 패션쇼, K-뷰티 파빌리온, 국악 및 전통문화 공연 등 한국 문화를 알리는 프로그램과 K-푸드 및 다양한 한국물품 부스가 운영돼 최근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한국의 맛과 멋을 접하고 소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점점 짙어지는 국정원의 계엄 사전 기획 의혹

 

총선 전 민간인 불법 사찰과 사전 계엄 검토?
국정원의 어두운 역사 – 간첩 조작과 공안정국
윤석열의 내란 준비와 도구가 된 종북 프레임

 

계엄 벌어진 그날 밤, 국정원의 수상한 움직임
실세 홍장원의 과거 행적과 특검 기소의 충격
시민 저항으로 막은 내란과 국정원 개혁 과제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대한 내용을 폭로했다. 국정원이 계엄 선포 훨씬 전인 2024년 초부터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민웅 촛불행동 대표 등 30여 명의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그 결과를 매주 윤석열 대통령실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계엄을 선포하기 3개월 전인 2024년 9월에는 '계엄상황시 대공수사권 행사 가능 여부 검토'라는 제목의 문건까지 작성했다고 윤 의원은 고발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특정 부서나 내부 보고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내용은 국정원 모든 부서에 조직적으로 배포됐고, 각 부서는 이에 대응하는 더 구체적 문건들을 준비했다고 한다. 하나의 부서가 아니라 조직 전체에 대한 동원 시도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를 근거로 윤건영 의원은 "국가정보원이 불법 계엄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주도적으로 준비했다"고 지적했고, 한발 더 나아가 국정원이 "비상계엄의 최초 기획자일 수 있다"는 파격적 주장까지 내놓았다. 

 

 여당 정보위 간사로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 국정원의 계엄 사전 공모 및 조직적 계엄 가담 의혹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2026.8.19 연합뉴스

 

이것은 결코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니며 충분히 설득력 있는 추정이다. 왜냐하면 국정원은 이 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핵심적인 비밀 정보기관이자, 동시에 가장 오랜 억압적 국가기구였기 때문이다. '반국가 세력', '종북 좌파'라는 프레임을 생산해낸 원조가 바로 이 조직이며, 국가보안법을 무기 삼아 숱한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내고 그때마다 공안 정국을 조성해온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

 

유신 시절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이나 김대중 납치 사건에서부터,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의 각종 간첩단 조작에 이르기까지, 이 기구의 이름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그 뿌리는 숨길 수가 없었다.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군사독재자들, 그리고 그 이후의 보수우파 정권들이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누르는 데 가장 의존했던 권력기관이 바로 이 조직이었다.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로,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꿔왔지만 그 문제점들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다는 의심의 시선이 존재해 왔다. 민주당 계열 정권들이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법으로 금지하거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등 개혁을 시도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보수우파가 다시 정권을 잡을 때마다 이러한 개혁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반복돼 왔다.

 

윤석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검사 출신의 최측근 인사들을 국정원 요직에 배치해 이 기구를 자신의 정치적 무기로 삼으려 했다. 실제로 국정원은 윤석열 정권 초기부터 이른바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공안 사건을 잇달아 터뜨리며, 결과적으로 훗날의 내란으로 이어지는 길을 앞장서 닦아놓았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시점부터 윤석열은 공개 석상에서 툭하면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국정원식 언어와 사고방식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그대로 흘러나온 장면으로 보였다. 이런 윤석열이 자신의 정치 생명과 모든 것을 걸고 벌인 절체절명의 쿠데타 시도 과정에서, 정작 자신이 무기삼아 장악해온 국정원의 힘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믿기가 어려웠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실제로 12월 3일 계엄의 늦은 밤에 국정원에는 130여 명의 직원이 출근해서 각종 회의를 진행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심야 비상 소집'이 직원들의 자발적 판단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는 것은 누구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청사로 출동했던 군 간부에게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곧 검찰과 국정원이 올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증언도 남아있다.

 

방첩사 간부와 검찰청 검사, 그리고 국정원 처장 사이에 오간 통화 기록 역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며 계엄이 해제된 새벽 시간대에도 국정원이 계엄사령부에 인력을 파견하려 한 정황이 최근 추가로 밝혀졌다고 한다. 계엄이 끝난 뒤에도 조직 차원에서 계엄사와의 연결 고리를 유지하려 했다면, 단순한 방관자나 협조자 수준을 넘어서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사실관계를 종합하면, '국정원이 내란을 미리 알고 함께 기획하고 준비했다'는 윤건영 의원의 추정은 상당히 강력한 정황적 뒷받침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내란 저지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왔던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된다. 홍장원은 30년 가까이 국정원에서 경력을 쌓아온 조직 내부의 핵심 인사이며, 이른바 블랙요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곧 그가 국정원의 어두운 역사와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국정원이 저지른 민간인 사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이른바 '댓글부대'를 동원한 여론 공작, 나아가 내란음모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러한 흐름과 무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이러한 과거 때문인지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에서 밀려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윤석열이 집권하면서 그는 다시 국정원의 주요 보직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무엇보다 그는 명목상 상관인 국정원장 조태용을 사실상 건너뛰어 대통령 윤석열에게 직접 보고하는, 조직 내 '실세 중의 실세'로 통해왔다는 점이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져 있다. 

 

국가정보원법 위반, 직무유기, 위증 등의 혐의를 받는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1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2025.11.11. 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윤석열이 쿠데타를 감행한 직후 국정원장인 조태용이 아니라 굳이 홍장원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도 우연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다. 또한 윤건영 의원의 지적대로 '국정원이 내란을 미리 알고 함께 기획하고 준비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조직의 2인자였던 홍장원만 이 흐름에서 배제된 채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란이 벌어진 그날 밤 홍장원이 구체적 지시를 내리고 역할을 수행했다는 증언과 증거들이 드러나면서, 최근 종합특검이 그를 조태용과 함께 내란 혐의로 정식 기소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소식은 그동안 홍장원을 '윤석열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하고 내란을 막아내는 데 기여한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로 기억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함께 의문을 안기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내란에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내란에 일부 발을 담그고 있다가 상황이 실패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어느 순간 태도를 바꿔 돌아섰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12월 3일 밤의 쿠데타를 막아낸 진짜 힘이, 목숨을 걸고 국회와 거리로 뛰쳐나온 평범한 시민들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는 이야기가 된다.

 

바로 그 시민들의 힘이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국회에서 신속하게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도록 만들었고, 동시에 내란 세력 내부에서도 균열과 이탈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12월 3일 직후에도 홍장원의 일부 진술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존재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체포 대상자 명단을 받아 적으면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의 이름을 잘 몰랐다고 했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핵심 간부가, 이 나라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단체이자 국정원의 오랜 감시와 탄압의 주된 표적이었던 민주노총의 위원장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잘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최근에도 홍장원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면서 '국정원은 계엄의 무풍지대였다', '나도 TV를 보고 처음 계엄 선포를 알았다'는 등 쉽게 납득하기 힘든 취지의 주장들을 내놓았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26일 '계엄 정당화 메시지 전달'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과천 권창영 2차 종합 특별검사팀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6.6.26. 연합뉴스

 

물론 아직 진실이 완전히 밝혀졌다고 볼 수는 없으며, 앞으로 진행될 추가 수사와 재판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홍장원 진술의 신빙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자칫 윤석열의 12·3 내란 자체에 대한 사법적 심판까지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특정 증인이 기소됐다 해서 그동안의 모든 진술을 일괄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각 진술과 증거를 개별적으로 따져 신빙성을 판단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윤석열의 내란죄는 홍장원 한 사람의 진술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수많은 종합적인 물증과 다수의 독립적인 증언들을 통해 충분히 입증되어 온 사안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함께 겪어낸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며, 어느 한 증인의 신뢰도 문제로 그 본질이 흔들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앞으로 수사와 재판을 통해 더 많은 사실이 밝혀져야겠지만, 만약 홍장원이 뒤늦게나마 내란 세력에게서 등을 돌리고 민주주의의 편에 서게 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스스로가 더 철저히 성찰하며 국정원 조직과 이번 내란, 그리고 국정원의 어두운 과거에 관한 진실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러한 사태를 계기로, 국정원의 더 철저하고 근본적인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

 

대북전략 선회… “11월 중간선거 겨냥한 카드”
이란 공격 실패로 인한 실점 만회 나선 듯
'비핵화 전제 대화'전략 포기한 현실적 접근

 

"김정은과 만나게 될 것" 구체 일정은 안밝혀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발표 등 일관된 행보
한국 핵추진 잠수함 개발 인정과도 연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19일 워싱턴 D.C. 백악관 루즈벨트 룸에서 암호화폐 업계 임원들과의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8.19. 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북한이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57발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제까지의 미국정부 공식입장과 배치되는데다 구체적인 보유 핵무기 수치까지 밝혔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그가 이번 가을에라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측근들을 독려하고 있다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18일 보도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신문은 북미 두 정상의 만남을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에 맞춰 성사시키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덧붙였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이미 최대 90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분열성 물질을 생산했고, 그 중에서 약 50발은 제조를 끝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민간단체의 추산을 소개했지만, 미국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 6월 세계 핵무기 보유 현황을 정리한 연례 보고서에서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 수를 약 60발로 추정했다.

 

실패한 비핵화 전제 대화전략 포기한 현실적 접근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사실상 인정함으로써, 비핵화를 전제한 이제까지의 대북 정책으로는 북한과의 어떤 대화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판단의 토대 위에서 어떤 식으로든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북한이 현상태에서 더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동결한 토대 위에서 먼저 대화를 시작하고 종국적으로 비핵화를 이뤄낸다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전략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안에 김 국무위원장을 만날 예정인지 묻는 기자들 질문에 “만나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북한으로부터 그런 답신을 받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발표 이후 일관성 지닌 발언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미국에 비적대적인 북한’에 대한 한미 연합훈련 ‘자유 방패’를 대폭 축소시키라고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에게 지시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트루스 소셜을 통해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올해 안에, 어쩌면 11월 초 중간선거 전에 만나려 하고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인 17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대화 제의에 응해 왔다고 기자들에게 얘기했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란공격 실패로 인한 실점 만회할 유력 카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일련의 발언들에 대해 외신들은 대체로 교착상태에 빠진 이란과의 종전협상으로 인한 정치적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외교적 성과를 보여 주려는 중간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이란의 신정체제 붕괴 및 체제 전환, 핵무기개발계획 폐기를 노렸던 미국의 지난 2월 말 이란 선제공격은 실패로 끝나고, 오히려 호르무즈 해협 봉쇄까지 자초함으로써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끼쳐, 트럼프 정권은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비판을 받아 왔으며 지지율은 바닥상태다. 로이터 통신 등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33%로, 트럼프 2기 정권 들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한층 더 불리해진 상황에서 예고된 11월 중간선거에서의 패배를 피해 갈 돌파구로 북한과의 대화 재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 핵추진 잠수함 개발 인정과도 연결

 

한편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이런 발언들을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개발과 보유를 인정한 미국의 결정과도 연결시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 인정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인정했을 경우 피하기 어려운 미국과 한국 내의 반발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기도 한다. 핵추진 잠수함 개발 및 보유는 핵무기의 개발 보유가 아니라는 점에서 핵무기 개발 보유에 대한 국내외적 반발을 피해가면서, 언제라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잠재적 핵보유국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까다로운 대북 대화조건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고, 그것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데도 유효할 수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 한승동 기자 >

 

북미협상의 한국 패싱 극복할 북방경제론

 

트럼프가 던진 북한 김정은과의 회담 가능성
한국에는 외려 외교적 압박 카드 활용할 수도
우린 버티면서 평화협정 당사자 자격 요구해야
최근 확대 강화된 북중러 경제협력 움직임
정치보다 경제 이익 앞세워 접근하면 안될까?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란과 우크라이나 양대 전쟁으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의 위기돌파용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김정은 회동인가. 이란전쟁 명분은 이란 핵프로그램 중단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석유에너지 통제와 전쟁특수, 즉 미 군수자본이 개입된 경제이익이라는 건 불문가지이다. 문제는 호르무즈해협 통제력을 이란이 가져간 사실상 패전 상태로는 핵프로그램 폐지라는 명분도 공중분해 되고, 전쟁 장기화로 인한 물가상승과 서민생활 악화, 경기침체, 그에 따른 민심이반(트럼프 최저 지지율 33%, 로이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참에 핵프로그램 폐지 이슈로 모양이 비슷한 북한의 김정은을 소환해 화제를 돌릴 수만 있다면 꽤 괜찮은 낚시밥이 되지 않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회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15일 이 사진을 본인의 트루스 소셜에 올렸다. 2026. 08. 15 시민언론 민들레

 

북미회담 의제 될 가능성 거의 없는 북핵

 

트럼프-김정은 회동이 성사된다고 해도 북핵은 더 이상 의제가 될 수 없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대한 참수작전 실행으로 북핵 폐기 운운은 물 건너간 것이다. 만약 그래도 핵 의제가 올라온다면 현재핵 최소화, 미래핵 동결 정도는 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미 넉넉한 핵 보유상태에서, 기술적 진화라면 모를까 공격적 핵 추가란 별 의미없는 일이라는 낙관적 생각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실제 가능한 의제가 궁금해진다. 2026년 미국과 북중러 동북아 국가들간 일련의 회담 과정과 두만강 북중러 3각 물류 라선특구화가 답이 될는지 모른다. 5월 중미 정상회담(베이징)에서는 무역 투자 불균형 완화, 핵심 광물과 기술 수출 통제, 외교안보 국제 현안 등이 주 의제였던 바, 양국간 주요 수출입품목(농산물 에너지 항공기 등) 구매 확대, 희토류와 반도체 등 상업마찰 완화 등이 부분 협상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핵심 의제인 이란·우크라이나 전쟁, 대만문제, 북한 비핵화 등은 무합의, 심지어 의례적인 공동성명도 없었다. 정상회담 정례화 정도가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대폭 확대 강화된 북중러 북방경제권

 

한편 6월 북중 정상회담은 ‘북중 전략적 혈맹’, 당·정·군 전방위 실질 협력 공조체계 확대, 대만 등 중국 핵심이익 지지 및 다자(UN 등)무대 공조 등을 채택하였다. 북측 관련 핵심 포인트는 비핵화 개념 배제 및 양국 핵심이익 상호지지 및 경제밀착 가속이다. 즉 초점은 그간 대북 제재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던 중국이 경제 밀착 단계로 공공연히 방향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는 2024년 북러 신조약(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 ; 유사시 상호 자동 군사개입)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북러 밀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며, 핵심이익 지지란 그간 북중관계를 소원하게 했던 북핵을 잠재 승인(UN 제재 불참)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의 회담이 지난 8일 금수산 영빈관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2026.6.9 연합

 

사실 북중회담 이전에도 중국은 이미 신의주-단둥 교류를 조심스럽게 확대하고 있었지만 이번 북중회담은 그 조차도 제낀 것으로 보인다. 즉 아직은 교역량이 대단치 않으나 북중러라는 북방경제의 새로운 교역권이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수준은 두만강 일대 3국 접경지대 동북아 물류 거점화에 따른 신두만강대교 및 철도 도로 확장, 라진항 이용 및 동해 출해권, 라진선봉특구화(원자재 공급 및 가공) 가동 정도다. 다만 두만강을 통한 동해 진출, 러시아 일본 유럽 북미로 직접 이어지는 중국의 북방경제권 확대가 눈에 뜨이는 데 세계 경제 2위 중국의 잠재력 평가가 관건이다.

 

트럼프-김정은 회동에서 기대되는 최대치와 최소치

 

이제까지 미국 아시아태평양전략의 관례에 따르면 중국은 잠재 주적, 북한은 핵보유 돌출 행동대 변수(부시 정부 시절 ‘4대 악의 축’) 쯤으로 평가될 것이다. 이쯤 되면 트럼프의 김정은 회동이 시사하는 윤곽은 이렇다. 핵보유국을 회담에 끌어들여 핵프로그램 관리에 대한 트럼프의 지속적 관심사를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고 미국의 대 중국 및 북러 협약 견제, 나아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NDS전략이 환기되며, 한일 등 동맹국의 방위비분담 독촉과 대 이란전 동맹국 협조 불참 지탄이 종합적으로 결부되는 그림이 읽힌다. 회담 성사 여부에 관계없이 이것은 동아시아 외교군사 패턴에 슬쩍 파문을 던지는 일종의 ‘잽’이라면 적정할까. 방위분담 독촉과 2026년 미군사전략 재편, 이란전 환기 정도의 의미라면 실 성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즉 던져두는 것만으로도 일거양득, 방위비 갹출 독촉과 다른 한편 국제 인지전 환기라는 최소치의 회동 시사 가치가 성립한다.

 

시레 회담이 성사되면 여기에 몇 가지 선심성 경제협력, 댓가 또는 유명무실한 대북 제재 해제를 밑밥으로 추가할 수는 있다. 대개 비군사적 의제로 인도적 지원, 관광 교통 문화예술, 경제적 의제로서는 희토류 등 자원개발 합작 등이 고려될 법한 범주다. 종합하면 현재핵 동결과 미래핵 차단, 그 대가로 1990년대 핵감시 대가 수준 이상의 대북지원 또는 북한 자원개발 합작이 북미 회담 성사시 가능한 최대치 의제가 아닐까 싶다.

 

패싱 당할 위기를 전화위복 기회로 삼을 수 없을까?

 

문제는 이 회담에서 한국은 2019년 트럼프-김정은 회동 때처럼 소외(패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방위분담 GDP 3.5% 증액의 지지부진과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한 지구 단위로써의 역할(동맹현대화)을 질책당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은 이른바 트럼프의 동맹약탈 프로그램의 만만한 호구로 남아 있어야 할까.

 

그러나 접근을 달리하면 이것도 기회다. 언제는 전작권이 없어서 개성공단이 개척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지금은 두 개의 전쟁으로 미국의 국력이 가장 쇠진되었을 시기이고, 그들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은 미국 본토 수호로 축소되어 있다. 대북 제재는 더 이상 무의미하고 미국의 주력 제조업들은 국내용 고립주의로 쪼그라들거나, 다른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대세적으로 보면 미국이 외면한 기후문제는 지구 공동의 대응이 아니면 점차 더 심화될 것이고 슈퍼엘니뇨가 내년쯤 울트라슈퍼엘니뇨로 확대되면 미국이 지난 상호관세 파동을 넘어 더 큰 국제적 지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정도라면 방위비 분담 독촉시 대가성 요구, 즉 북미회담의 이해관계 당사자, 전작권 주권 반환 당사자 자격으로 유명무실 대북 제재 대폭 완화, 한반도 평화협정 등을 의제로 하는 회담 동참권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돈 못 낸다는 자세로 적극 버티는 것도 방법이다. 33% 지지율 트럼프 임기래 봐야 이제 2년 남짓, 레임덕이 코앞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북방경제에 대한 기대

 

트럼프-김정은 회동은 이런저런 경로로 한반도 유화국면에 일조할 또 하나의 기회라면 기회다. 그 실속은 자원과 인구, 영토가 풍부한 북방경제에 대한 기대라고 본다. 한국의 주 교역처는 중국(20%), 미국(18%), 아세안(30% ; 베트남 9% 포함)이지만, 남방과 북미 시장은 사실상 이미 포화상태다. 확장 가능성은 같은 문화전통, 언어, 지역, 핏줄이 일치함에도 교역이 중단된 북측, 러시아의 신흥시장, 세계의 공장인 중국과의 국제분업이다. 유럽까지 북방항로는 주교역로인 싱가폴 수에즈 항로의 70% 수준인 13000km에 불과해서 이 통로의 수익성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것이다. 최근 중국은 전역 오지를 고리로 잇는 황금대외곽순환망(2만7천km)을 2030년 계획으로 추진 중이다. 그간 일대일로 철도망이 한계에 봉착한 대신으로 대륙간 내수용 건설경기를 도모한다. 성공여부는 몰라도 솔직히 그 자유로움은 부럽다.

 

강화된 북중러 경제협력 체계에서 북한의 역할을 들러리 정도로 과소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 북한은 시장사회주의가 본격화된 지 오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북한이 성장하는 동안 한국은 완전 소외될 것이다. 남북 합작 개성공단이 폐쇄된 동안 북한의 대체 교역, 즉 대중국 교역은 UN 대북 제재 전 수준을 회복하거나 훌쩍 넘어섰다(2025년 30억 달러 수준), 우리가 손 놓고 있는 동안 임가공 형태의 제조 무역 유통,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급증(98%), 고전적 자립 계획경제 수준을 간단히 넘어서 나름 국제분업의 한 축(2024년 북한 성장률 3.5% 추정)을 담당한다.

 

중요한 사실은 북중러 간 경제교류는 저임금에 기초한 단순 제조 임가공 수준을 넘어서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주요 광물자원 매장량이 세계적 수준(최소 3000조 원∼1경 원 이상, 마그네사이트 세계 3위, 철광석 50억 톤, 희토류, 텅스텐 등)이다. 이를 익히 아는 중국은 대북 제재 시절에도 접경지역 광산(무산 철광산, 혜산 동광산 등) 합작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 러시아 역시 대북자원 협력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다.

 

11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오른쪽). 북한의 철거작업으로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의 저층부만 남아있다. 왼쪽 사진은 지난해 11월에 찍은 센터 건물. 2026. 1. 11 연합

 

정치·외교로 어려우면 경제적 잇속으로 뚫자

 

우리는 대륙 진출 육로가 막힌 80년 분단, 절름발이 구조다. 최고수준 기술과 풍부한 자본의 남과 세계적 지하자원을 갖춘 북이 통일도 포기하고 협력도 포기할 건가. 두 개의 국가론이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론도 안 되던 개념이다. 국경이란 지리상의 경계에 불과하다. 장사란 수지가 맞으면 어제의 적도 오늘의 동지가 되는 법이다. EU를 보라, 국경과 정치·외교는 분리되어도 경제통합으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실익을 확장하지 않는가. 압록강 하구 단둥과 신의주를 왕래하는 주민이 적어도 10만이고, 몽골에 이마트와 CJ가 대세이고, 카자흐스탄 블라디보스톡의 고려인, 조선족 자치주 연길 직항로로 백두산 탐방 인파가 하루에 수만 명이다. 우리도 신두만강 대교 북중러 경제협력에 슬쩍 끼어들면 안 되나.

 

휴전선만 말이 없다. 훗날 우리 후대가 현재의 경직된 남북관계를 두고 시대변화를 못 따라가는 우매함이라고 욕해도 할 말 없다. 유연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간 미국이 먼저 움직이고 북한이 응해야 그에 맞춰 겨우 기동하는 경제외적 시스템에 너무 길들여 있는지 모른다. 좀 손해보면 어떤가. 개성공단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적 이해부터 맞춰보면 안 되나. 시간이 가면 결국 민족의 공통이해로 통일된다는 대승적 생각이 필요한 시절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한미동맹에 연연하지 않을 배짱과 실속 챙기기라는 생각이다. 첫째, 둘째, 셋째도 독립이고 통일이라는 백범 김구 선생이 생각나는 8월이다.    < 백일 전 울산과학대 교수 >

 

절박한 트럼프, 11월 중간선거 전 북미대화 재개 성과 서두르나

 
 

유력 계기 중 APEC은 중간선거 이후…'옥토버 서프라이즈' 노릴지 주목

핵보유국 용인 원하는 김정은, 초조한 트럼프 처지 활용해 주도권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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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판문점에서 만난 북미 정상  [연합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내 북미대화 재개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면서 11월 초 중간선거 이전에 외교적 성과를 확보하려 서두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간선거 직전인 10월에 터트려 판세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옥토버 서프라이즈'를 노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북미대화가 전격 재개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절박한 처지가 북한에 훨씬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11월 3일이다. 한국의 총선과 비슷한데, 현직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탓에 국정 심판의 성격을 갖는다.

 

대체로 현직 대통령에게 불리한 선거다. 이란전쟁 장기화에 따른 민심 악화의 부담을 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간선거 패배에 따른 국정 동력 상실을 크게 우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인 한미연합훈련 대폭 축소 지시를 통해 북미대화 재개를 추진하는 것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면 전환의 의도가 크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문제는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중간선거까지 70여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가급적 신속하게 외교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결과물을 받아 들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호응을 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18∼19일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아시아를 방문하는 김에 김 위원장과 회담을 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

 

그러나 APEC은 중간선거 이후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김 위원장의 대면 회담 성사와 외교적 성과 도출의 극적인 효과를 중간선거 전에 연출하고 싶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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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AP=연합]

 

일각에서는 북미정상회담을 '옥토버 서프라이즈'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한다. 미국의 중간선거와 대선은 11월 초에 고정돼 있는데 선거를 앞두고 예기치 못하게 벌어져 판세를 뒤흔드는 사건을 옥토버 서프라이즈라고 한다.

 

통상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정이지만 외교정책의 기존 문법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가능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가장 극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방식은 '현직 미 대통령의 역사상 첫 방문'으로 기록될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지만 경호와 보안은 물론 당국 간 사전 준비라는 측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집하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선택지다.

 

중간선거 전에 김 위원장과 대면 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미국 유권자들에게 성과로 내놓을 수 있도록 외교적 진전을 도모하려는 시도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6개월 가까이 이란전쟁의 출구가 보이지 않아 절박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김 위원장이 호응할지는 여전히 불분명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초조한 처지를 최대한 활용해 북한의 핵심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수준의 핵역량을 갖춘 이상 비핵화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김 위원장의 입장이다. 비핵화 논의를 배제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면 김 위원장으로서는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용인되는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지난해 9월 중국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톈안먼 망루에 올라 열병식을 지켜본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비핵화 논의 없는 회담까지 관철한다면 강대국이 너나없이 손을 내미는 핵보유국 지도자로서 국제적 위상을 크게 끌어올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2018년 6월 1차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명시된 데 이어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제재완화를 포함한 미국의 상응 조치 교환이 핵심 의제였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북한의 요구 수준 자체가 다른 상황이다.

 

북한은 제재를 한미연합훈련과 함께 대북적대시 정책의 대표적 조치로 보고 폐기를 요구해왔고 제재완화는 여전히 북한에 중요한 문제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으로 숨통이 트이면서 예전만큼 절실하지는 않다는 평가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북미대화 재개의 목표가 비핵화인가'라는 질문에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비핵화를 질색하는 김 위원장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려고 즉답을 피한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 비핵화 목표에서 후퇴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미국과 동맹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보다 개인적 친분을 토대로 한 협상을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이란과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을 때도 항복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양보를 했다는 비판이 쇄도할 정도로 합의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특히 김 위원장과의 회담이 성사된다면 실무협상이 거의 없는 채로 정상 간 담판에 집중하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톱다운' 방식이 주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선언적 선물'에 트럼프 대통령이 더 큰 '선물 보따리'를 안겨주고 성과와 치적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  백나리 기자 >

 

 

 

2006∼2010년 1기 조사위 당시 시가 2천373억원 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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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국가귀속 특별법  [연합]

 

2010년 이후 사라진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올 연말부터 재가동된다.

국가 차원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환수가 다시 본격화할 전망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친일파 재산을 국가에 환수하는 내용을 담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오는 12월 3일부터 시행된다.

 

특별법은 2006년 설치된 1기 조사위가 2010년 해산된 이후 새로운 친일 재산을 찾아낼 법적 기구가 없다는 미비점을 보완하고자 마련됐다.

 

특별법은 친일 재산 은닉 시도를 막기 위해 친일파 후손들이 관련 재산을 처분했더라도 그 처분의 대가까지 환수 대상으로 명시한다.

 

친일 재산을 적발해 신고한 사람 등에 대한 포상금 규정을 신설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법무부와 공식 백서 등에 따르면 1기 조사위는 2006년 7월부터 2010년 7월까지 4년간 친일파 168명의 2천359필지에 대해 국가귀속을 결정했다.

 

이미 친일 재산을 제삼자에게 처분한 친일파 후손 24명에 대해서는 친일 재산 확인 결정을 내렸다.

이를 통해 국가가 환수한 재산은 당시 시가 기준 총 2천37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후 법무부는 1기 위원회에서 밝혀진 친일 재산에 대한 소송 관련 업무를 수행해 왔다.

작년 10월에는 친일파 이해승 후손이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토지 31필지를 매각해 챙긴 78억원에 대해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지난 6월 22일 조사위 설립준비단을 발족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설립준비단은 법무부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국가보훈부, 산림청 등 관계 부처 인력 11명으로 꾸려졌다.

 

단장은 이영창 검사(사법연수원 33기)가 맡았다.

이들은 조사위 출범 전까지 관련 법규를 마련하고 조사 계획을 수립하는 등 친일 재산 환수를 위한 기초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추후 환수된 친일 재산은 순국선열·애국지사 사업기금에 우선적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  최윤선 기자 >

 

법무부,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설립준비단 발족 정성호 법무부 장관(왼쪽)이 2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이영창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설립준비단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6.6.22 [법무부 제공]
 
 
 

친일재산조사위 16년 만에 재출범 "최소 325억원 환수"

이 대통령 이어 정성호 법무 "유공자 후손 지원에"
친일재산귀속법 12월 3일 시행에 발 맞춰
이해승·신우선·임선준·박희양 등 환수 소송
처분한 경우도 대가를 환수하게 근거 마련
신고한 사람에 포상하는 근거 조항도 신설
6월에 조사위 설립준비단 발족 11명 활동 중
1기 때 2373억원 환수, 얼마나 늘어날지 관심
이해승 후손 소유 스위스그랜드호텔에 눈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3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제81주년 광복절 기념 독립유공자 후손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에 참석해 기념사하고 있다. 2026.8.13 연합

 

"지난 6월 2일 '친일재산귀속법'이 공포된 만큼,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부당 축적한 재산을 조사·환수하여 역사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 국가에 귀속된 친일 재산을 더욱 책임 있게 관리해, 그 재원이 독립유공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에 온전히 쓰일 수 있도록 만들겠다."

 

이재명 대통령의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사 가운데 한 대목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같은 날 친일재산 환수를 통해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소셜미디어에 밝혔다. 정 장관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2기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다시 출범하면 최소 325억원 이상의 친일재산을 환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봐 눈길을 끌었다.

 

때마침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과 그가 후대에 물려준 막대한 재산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민족문제연구소도 안상호가 친일 활동을 한 것이 맞다고 인정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자산이 제대로 된 청산 작업 없이 후손들에게 승계돼 기득권으로 유지되는 것을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법적 기반도 마련됐다. 친일재산귀속법은 제3자에게 매각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미 처분된 친일재산에 대해서도 그 대가를 환수해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위해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6월 2일 공포된 법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12월 3일 시행된다.

 

법이 시행되면 2010년 해산됐던 친일반민족재산조사위원회가 다시 구성된다. 새 위원회는 최장 5년 동안 친일재산 환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정 장관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친일재산 환수를 주요 국정 과제로 추진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무부는 독립지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며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부터 친일 재산 환수를 주요 과제로 추진했고, 그 결실로 지난 5월 친일재산귀속법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중단됐던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을 대상으로 한 재산 환수 소송도 재개됐다. 정 장관은 “이해승·신우선·임선준·박희양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을 상대로 한 재산 환수 소송을 다시 시작했다”며 “정미칠적 임선준의 후손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1심에서 국가의 전부 승소가 확정됐다”고 전했다.

 

1기 조사위 활동 종료 이후 법무부가 기존에 확인된 친일재산을 대상으로 소송 등을 통해 환수 업무를 이어왔다.  지난해 10월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된 조선 귀족 이해승의 후손이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토지 31필지를 매각해 얻은 78억원을 돌려달라며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1일 오후 서울 충무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회의실에서 김창국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전원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위원회는 이날 친일재산 관련 내용을 정리한 백서를 오는 7일 발간한다고 밝혔다. 2010.7.1 연합 자료사진

 

법무부와 관련 백서 등에 따르면 1기 친일재산조사위(김창국 위원장)는 2006년 7월부터 2010년 7월까지 4년간 활동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 168명이 보유한 토지 2359필지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친일재산을 제3자에게 이미 처분한 후손 24명에 대해서는 별도로 친일재산 확인 결정을 했다. 당시 국가가 환수한 재산은 시가 기준 2373억원에 이르렀다. 2010년 10월 12일 해산된 뒤 관련 활동은 법무부로 이관됐다.

 

1기 위원회의 '친일 재산 국가 귀속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는 494만 4435㎡(397필지)로 전체(812만 4381㎡·1199필지)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두 번째인 충청남도(193만 6582㎡·252필지)의 2.5배를 웃도는 규모로 여의도 면적(290만㎡)의 약 1.7배에 이른다. 경기도 시·군별로는 포천시 내 재산 면적이 160만 9105㎡(89필지)로 가장 넓었고, 이어 의왕시 77만 3752㎡(1필지), 남양주시 45만 6778㎡(9필지) 순이었다.

 

1기 활동 종료 이후 별도의 조사 기구가 사라지면서 새롭게 발견되는 친일재산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번 특별법은 이런 제도적 공백을 메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친일재산을 후손 등이 이미 처분한 경우에도 처분 대가를 환수할 수 있도록 근거를 명확히 했다. 재산을 매각하거나 다른 형태로 바꿔 은닉하는 방식으로 국가 귀속을 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친일재산을 찾아내 신고한 사람 등에 대한 포상금 지급 근거도 새로 마련됐다. 민간 신고를 활성화해 오랜 기간 숨겨진 재산을 추가로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조사위 재출범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법무부는 지난 6월 22일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설립준비단을 발족했다. 준비단은 법무부를 비롯해 행정안전부와 국가보훈부, 산림청 등 관계 부처에서 파견된 인력 11명으로 구성됐다. 단장은 이영창 검사(사법연수원 33기)가 맡았다.

 

준비단은 조사위가 공식 출범하기 전까지 하위 법규를 정비하고 조사 대상과 방식, 세부 조사 계획 등을 마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부처별로 흩어진 토지·등기·보훈 관련 자료를 연계해 추가 환수 대상 재산을 찾아내는 작업도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사위가 출범하면 1기 조사 당시 확인하지 못했거나 이후 새롭게 드러난 친일재산을 중심으로 조사 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이미 처분된 재산의 매각대금 등도 환수 대상에 포함되면서 실제 국가 귀속 규모가 얼마나 늘어날지도 주목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추후 환수된 친일재산은 순국선열·애국지사 사업기금에 우선적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용만(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이재명 대통령 주최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 가족 초청 오찬에서 인사하고 있다. 2026.8.13 연합
 

백범 김구의 증손자로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이데일리 인터뷰를 통해 "나라를 배신하고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썼던 것을 이번에는 반드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 게 역사 정의라고 생각한다”며 "2010년 이후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사실상의 국가행위는 없었다. 이번 특별법은 실질적인 매각 대금, 그 이익금 자체를 환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법원도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이 재산을 처분해 얻은 이득은 별도의 입법을 통해 환수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며 “그 취지를 반영해 처분대가까지 환수하는 조항을 신설했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 가운데 실제 재산 환수로 이어진 사례는 5%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는 “과거 파악한 친일재산도 대부분 환수하지 못한 채 위원회 활동이 끝났다”며 “환수 대상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환수 재산에 대한 전수조사를 신속히 진행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갖고 계신 분들께 국가 차원에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번만큼은 대형 친일재산 환수라는 실질적 성과를 통해 역사 정의가 세워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이런 조사와 환수가 상시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스위스그랜드호텔.(전 그랜드힐튼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 홈페이지 갈무리]

 

한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이슈와 관련해 몇년이나 개발이 지지부진했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 부지에도 눈길이 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스위스그랜드호텔 건물과 부지 소유권은 지난달 이우영 동원아이엔씨 회장과 관계 법인 등에서 '홍제353PFV'로 이전됐다.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는 특정 부동산 개발사업을 위해 설립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이다.

 

부동산 개발업체(디벨로퍼) 연합와이앤제이가 추진하는 이번 사업은 호텔과 주변 필지 등 약 1만 2000평 규모 부지의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약 1300가구 규모의 아파트와 부대시설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키움증권은 부지 매입 잔금과 초기 사업비 등에 쓰일 약 450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을 단독으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부지 매입대금과 초기 사업비는 5000억~6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해당 부지는 2020년대 초반부터 여러 차례 개발이 추진됐지만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어 장기간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번 소유권 이전과 대규모 자금 조달로 사업이 다시 출발선에 섰지만 고층 아파트 개발을 위해서는 종상향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고, 친일재산 관련 논란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실제 개발 완료까지는 변수가 남아 있다는 평가다.

                                                                                                          < 임병선 기자 > 

 

민문연 "안상호 친일...친일파 기득권 대물림 성찰해야"

이토 히로부미 추모, 대정친목회 가입 등 행적
『친일인명사전』 빠진 건 기준에 못 미쳤기 때문
등재 안 됐다고 친일파 면죄부 주어진 것 아냐
전문직을 모두 배제했다는 주장은 명백한 오해

 

임종국 "친일 행위보다 반성 없는 태도가 문제"
박유하 "친일 강박증과 순결 강박증 빚은 결과"
배기성 "어떻게 '오욕을 끌어안으라' 말하는가"
"조봉암 손가락 잃은 사연 안다면 그럴 수 있나"

 

광복절 81주년을 하루 앞두고 일제강점기 전문 연구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안상호 관련 논란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입장'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최근 언론 및 온라인 공간을 통해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1874∼1927)의 친일 행적과 후손들의 언행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것이 계기가 됐다.

 

민족연구소는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지만 일부 과도한 해석이나 오류가 있어 적지 않은 혼란이 일어나고 『친일인명사전』에 안상호의 이름이 수록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다면서 안상호의 실제 행적과 역사적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도자료는 세밀한 내용으로 짜였다.  ▲ 안상호의 주요 친일 행적 ▲ “어떤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고 친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신중론에 대해 ▲ “친일인명사전에서 전문직은 모두 다 뺐다”는 주장에 대해 ▲친일파 명단마다 수록 인원이 다른 이유 ▲ 친일인명사전 미등재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 연좌제적 비난 경계와 구조적 성찰의 필요성 등이다.

 

연구소는 먼저 안상호가 대한제국 관립일어학교와 도쿄 자혜의원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전문직 의사였지만, 화려한 이력 이면에 다음과 같은 친일 · 부일 협력 행적이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고 정리했다. 

 

● 일제침략의 원흉 이토 추도 : 1909년 11월,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하기 위해 민간에서 조직한 ‘국민대추도회(대한국민추도회)’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실제 추도회가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관민추도회와 별도로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식민통치 및 수탈기구 참여 : 경성부윤의 자문기구이자 일제 식민통치를 뒷받침한 지방행정 보조기구인경성부 협의회원(1914, 1918, 1920, 관선 임명직)을 역임했다. 또 식민지 금융수탈기구인 경성 종로금융조합의 조합장(1922∼1927)을 지냈다.

● 내선융화 및 친일단체 활동 : 경성신사의 씨자총대(신도 대표, 1915), 내선융화 단체인 대정친목회(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1916), 반일운동 배척을 표방한 동민회 회원(1924) 및 평의원(1925∼1927)으로 활동했다.

● 동화주의의 내면화: 『매일신보』(1918.12.10.) 기사에서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사람과 상관이 없다”라며 밝히는 등 일제의 동화정책을 전면적으로 내면화한 대표적 인물로 소개되었다.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내선일체' '일선동화'의 모범가정으로 소개된 안상호의 가족 사진. 1918년 12월 1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안상호는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은 조금도 못 먹는다"며 "다섯 자녀들은 일본어만 쓰고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조선 사람과는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도서관 연합

 

「왕세자전하(王世子殿下) 가례(嘉禮) 전에 일선동체(日鮮同體)의 가정방문(家庭訪問): 전연(全然)히 내지화(內地化)한 의사 안상호씨의 가정」

-> 安商浩씨는 일선동체의 가정을 만드는데도 제일 먼저 성공의 기를 들었다. (중략) 기자는 먼저 살림 재미를 물었다. 안씨는 ‘그렇지요 별수 있나요 나는 무엇[무릇] 일본사람과 똑같지요. 나는 지금 조선옷은 한 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어요. 일본사람과 똑같지요. 그러하니까 불편한 점은 조금도 없어요. (중략)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어요. (중략)’ 안씨는 지금부터 열두해 전에 의친왕이 동경에 계실 때에 의친왕의 시의로 있었는데 그때에 씨의 부인 磯子와 서로 알게되어 기자부인의 모친에게 청혼을 하여 전후 열한해 동안 고락을 같이 하였는데 (중략) 자녀가 모두 5남매이며 (중략) 안씨가 도리어 아내를 따라서 일본사람이 된 셈이다. (중략) ‘나는 조금도 조선사람하고 상관이 없으므로 일본에 사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고 열 한 해 동안을 조선에 있었어도 조선말은 한마디도 못해요’

 

물론, 대정친목회와 동민회에 이름을 올렸다고 친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신중론을 펴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대정친목회는 고문 이완용 · 민영휘, 회장 조중응 등 거물 친일파들을 중심으로 조선인 전직 관료 · 귀족 · 대지주 · 실업가들이 결집하여 ‘내선융화’를 표방하며 결성한 단체다. 

 

조선인의 단체 결성과 결사 활동이 극도로 억압되던 1910년대 무단통치 아래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1930년 전시체제기에 반강제적으로 조직된 전쟁협력단체와는 결성 배경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 조선인 단체로는 종교단체를 제외하면 대정친목회가 거의 유일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친일 엘리트의 모임이었던 대정친목회는 조선인 유력자와 일제 당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자임했다. 나아가 3·1운동 전후 일제가 이른바 문화통치(민족분열책)를 획책할 당시, 대정친목회는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민족의 저항 의지를 무력화하는 정신적 · 사회적 협력기구로 기능했다. 이들은 3·1운동을 반대하고 일제 통치에 순응하면서 ‘독립불능론’을 주장하는 한편, 산업의 발달과 문화 향상을 내세우는 개량주의적 ‘실력양성론’을 펼쳤다.

 

안상호는 이 단체의 평의원(1916.11.29)으로 명단이 확인된다고 밝힌 연구소는 시대적 상황과 단체의 성격을 고려할 때, 평의원(일종의 대의원 격)으로 참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친일 행위라고 강조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부 유튜브 방송 등에서 “친일파인명사전 708명에서 전문직(의사, 변호사) 이런 사람들은 다 뺐다”, “시대의 아픔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전하며 두 가지 명백한 사실관계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2009) 수록 인원은 총 4389명이다. 한 방송에서 언급된 “708명”은 2002년 광복회가 자체 선정한 692명에 국회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의원모임)이 16명을 추가하여 발표했던 ‘친일파 708인 명단’을 혼동한 것이다.

 

둘째, 『친일인명사전』이 전문직을 일괄 배제했다는 것은 명백한 오해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문화·예술·종교·법조·언론·교육 등 각 분야 친일 인물이 다수 등재되어 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기준에 따르면, 기술직이나 전문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 수록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복수의 친일협력단체에 가담했거나 지속적이고 능동적인 부일 행적이 입증된 전문직 인사는 엄격한 심의를 거쳐 사전에 수록하였다. 즉, 핵심 기준은 친일행위의 자발성·반복성·지속성과, 식민통치기구 내 특정 지위(귀족, 중추원, 고등관, 경찰간부, 군장교, 친일단체 간부급) 여부였으며, 전문직 여부는 면책 사유가 될 수 없었다.

 

안상호의 경우, 단순한 의료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경성부 협의회원, 대정친목회 및 동민회 평의원, 경성종로금융조합장 등 식민통치기구와 관변단체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였다. 지식인과 전문직 인사들의 친일은 사회적 영향력과 이데올로기 확산 효과가 막대했다는 점에서 결코 그 역사적 책임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자연스럽게 친일파 명단마다 수록 인원이 다른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 차이는 기준의 자의적 왜곡 또는 정치적 의도 때문이 아니라, 조사 주체의 성격, 조사 목적, 법적‧학술적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1948년 제헌국회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인신 구속과 공민권 제한 등 직접 처벌을 목적으로 출범했으나,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 방해와 경찰의 특위 습격으로 조기 와해되었다. 2005년 출범한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반민규명위)는 법적 행정처분이 따르는 국가기구였기 때문에 지위 자체보다는 엄격한 행위 입증에 집중하였고, 입법 당시의 여야간 절충 등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규모가 1006명에 머물렀다.

 

반면 민간 학술단체가 주도한 『친일인명사전』은 반민족행위자만이 아니라 부일협력자까지 포함하였으며, 식민통치를 지탱한 고등관료, 고등경찰, 군 장교 등 ‘지위범’을 포함하고 만주 등 해외 지역까지 범위를 확장하였으며, 지식인과 전문직의 역사적 책임을 가장 포괄적이고 엄정하게 물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안상호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연구소는 강조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여부는 편찬위원회의 선정 기준과 행위의 자발성, 적극성, 반복성, 지속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결정했다는 것이다. 2009년 발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가 축적한 자료로는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선정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에 편찬위원회의 결정으로 수록을 보류하였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해방 60여 년 만에 결실을 맺은 사전 편찬 작업은 당시 축적된 학술 연구 성과와 사료의 한계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인력과 자료 부족으로 인해 판단이 보류된 인물도 다수 존재했다. 『친일인명사전』을 비롯한 과거사 기록 사업은 완료된 결과물이 아니라 사료의 발굴과 검증을 통해 ‘보유편’과 ‘개정증보판’으로 이어지는 현재진행형 학술 사업이다. 새롭게 확인되는 관보, 신문 기사, 단체 명부 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학술 검증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라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번 논란의 본질에 대해 배우 개인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조상의 식민지 협력 이력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성찰 없이 발언하여 대중에게 상처를 준 ‘역사인식과 성찰 부재의 문제’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조상의 과오를 성찰 없이 미화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소비한 태도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과오에 대한 법적·정치적 책임은 행위 당사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며, 선대의 과오에 대한 단죄를 후손에게 전가하는 연좌제적 발상은 민주 사회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연구소는 분명히 했다. 그러나 강성현 교수가 지적했듯, “어떤 제도가 그 이력을 씻어주었나… 이 질문들이 ‘연좌는 안 된다’는 한 문장에 막혀버릴 때 가장 크게 손해 보는 쪽은 친일 청산이라는 의제 자체다”라는 경고를 새겨야 한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단순히 ‘후손에 대한 연좌제 금지’라는 방어 논리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 하에서 형성된 전문직 계보와 사회적 자산이 해방 후 청산 없이 어떻게 기득권으로 승계되고 세습되었는지에 대한 구조적 질문과 역사적 성찰로 이어져야 마땅하다는 것이 민족문제연구소가 내린 결론이다.

 

 

앞서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학진 사무처장은 지난 13일 YTN 라디오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전화로 출연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싣는 기준, 검증 문제, 이번 논란의 의미와 파장 등을 짚어봐 눈길을 끌었다.  방 처장은 이번 논란이 불거진 파장의 의미를 묻는 진행자에게 "연초부터 우리는 스타벅스 탱크 데이, 배재고 사태를 겪지 않았나?" 되묻고 "지금도 우리는 그 문제가 비단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지 않나?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하영 씨의 행동이나 태도가 적절치 않았지만, 그러면 과연 우리들은, 우리 역사에 대해 얼마나 성찰하고 지속적으로 보고 있는가. 이렇게 스스로 돌아봐야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역사를 돌아보는 한 방법으로는 올해 초 네덜란드에서 약 40만 명의 나치 당원 명부가 공개돼 화제가 됐던 일을 떠올렸다. 독일 역시 1000만 명의 나치 당원 명부가 공개됐다. 독일 인구 6명 중의 한 명정도가 나치 당원이었다. 그 명단이 언론사 <디 차이트> 홈페이지에 공개돼 독일 사람 누구라도 볼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방 처장은 "이렇게 명단을 공개하는 뜻은 '저 집안은 나치 당원 집안이야'라고 지목하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 '우리 할아버지가 집안에서 인자한 어르신이었는데 역사적으로 이런 악행에 가담했거나 방관했구나' 이렇게 성찰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태도로 사건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 처장은 "평생을 친일파 연구에 바친 임종국 선생께서 살아계셨다면 오늘의 하영 씨 논란에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 묻는 진행자에게 "이런 어록을 남기셨다. '친일했던 일제 하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반성과 화해, 참회와 반성이 없었다는 해방 후의 현실이 더 문제다. 이런 문제를 우리가 철저하게 바꾸지 않는다면 민족사의 기강은 헛말이다. 이런 것을 우리가 바꾸지 않는다면 민족 사회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말씀이 요즘 상황에 적절하지 않나 싶다"고 답했다.

 

아울러 방 처장은 "앞서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 한 여배우(이지아)는 처음에 할아버지가 친일파로 등재돼 있어서 억울해 했지만, 비공식적으로 (연구소를) 찾아와 저희와 함께 그(할아버지의) 행적을 함께 공부를 했다. 그 분은 지금도 계속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상의 행적을 반성하고 있지 않나?"고 되묻고 "연예인은 어쨌든 공인으로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런 공적인 태도가 필요하고, 하영 씨가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성숙하고 훌륭한 배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배우 하영과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넷플릭스와 연합 자료사진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제국의 위안부'로 숱한 비난과 질타를 받았던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까지 나섰다. 박 교수는 11일 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당대 최고의 의사"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논란을 두고 "친일 강박증과 순결 강박증이 빚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안상호에 대해 "조선의 양의 1호이자 대한제국 1호 국비유학생으로, 대한제국이 만든 인재였다"고 소개한 뒤 "귀국 후 순종 주치의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부도 따라왔을 것"이라며 "친일로 쌓은 명예라기보다 스스로의 실력과 국가의 지원으로 의료계 파이오니아(개척자)가 된 이로 보인다"고 적었다. 특히 안상호가 을사오적 이완용을 치료한 이력과 관련해서는 "이완용이 아니라 서민이라도, 가능하다면 당대 최고 의사였던 그에게 치료받고 싶었을 것"이라며 "아픈 사람이라면 실력 있는 의사에게 치료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한 발 나아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지도층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도 "정치·경제·문화·교육 모든 분야에서 리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교육부터 활동까지 구조적으로 친일파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부정한다면 일제시대 내내 인재를 키우지 말았어야 했다"며 그렇게 한다면 조선인 정치가와 기업인, 학교장 등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된다고 지적했다.

 

또 하영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인 조상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수십만명이 모였다는 지원병 지원자들 가운데 당신의 조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창씨개명을 신청한 조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자신이 이런 발언을 하는 이유를 "규탄부터 하고 보는 당신의 폭력이 한 사람을 사정없이 죽이는 걸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순결 강박, 친일 강박증이 이 모든 걸 만든다"며 "치유하려면 오욕을 내 것으로 끌어안는 태도부터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역사 강사 배기성 씨는 13일 유튜브 채널 '최욱의 매불쇼'에 나와 "과거 일본군 병사와 위안부가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고 망언을 늘어놓은 박 교수가 또다시 수많은 일본 식민지배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씨는 특히 "치유하려면 오욕을 내 것으로 끌어안는 태도" 운운한 것은 일제 식민 지배에 희생된 많은 이들을 참담하게 모욕하는 언동이라고 격분했다.

 

재판정의 죽산 조봉암. 그는 늘 의수였던 일곱 손가락을 가리기 위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마치 결박당한 것처럼 보이는 자세로 앉아 있곤 했다. 

 

그는 죽산 조봉암이 1958년 진보당 사건으로 재판받을 때 왜 늘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있었는지 아느냐고 진행자 등에게 묻고는 일곱 손가락을 잃은 사연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만주의 교도소에서 7년 수감돼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첫사랑이었던 아내가 옥바라지를 하다 동사했다는 소식을 전하던 일본인 간수가 '아내가 세상을 떠나게 만들었으니 너 같은 존재는 목숨을 끊는 게 낫지 않느냐'고 모욕하자 흥분해 이로 손가락들을 끊었는데 실제로 끊어졌다는 것이다. 너덜너덜해진 손가락들을 당국이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그 상태로 지내다 감옥을 나와서야 어렵사리 의수를 마련해 손가락들을 감춘 채 살아갔다는 슬픈 얘기를 전했다. 

 

배 강사는 "이런 잔인하게 슬픈 얘기들을 안다면 어떻게 감히 '오욕을 내 것으로 끌어안으라'고 망발을 늘어놓을 수 있느냐"고 따져물었다.

 

당연히 누리꾼들의 박 교수 비판도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시대적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업을 수행한 '구조적 친일'과는 다른 문제"라며 안상호가 당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어를 사용하지 않고 의복과 음식, 생활방식 등을 일본식으로 했다고 자랑한 것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계형 협력과 자발적 내선일체를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안상호처럼 최초의 서양의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김필순, 이태준, 박서양 등은 근대 의학을 배운 엘리트였지만 망명과 의료 활동, 독립운동 지원의 길을 선택했다. 따라서 "그 시대에는 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만으로 모든 행적을 덮기는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다른 누리꾼은 "그럼 독립운동가들은 물욕이나 명예욕이 없어서 목숨 걸고 항일했느냐"며 "시대가 지났다고 친일 매국노들이 이해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청산해야 할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 임병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