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 50만, 우리도 적이냐” 한국 정부에 따져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이 1일(현지시각) 알마티 고려극장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대형 사진 앞에서 흉상 이전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알마티/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있던 홍범도 장군 흉상을 외부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그가 말년을 보낸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동포들이 이전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리 류보피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 고려극장 예술감독과 박 드미트리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카자흐스탄 지회장 등 고려인 동포들은 1일(현지시각)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흉상 이전 계획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고려극장 안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대형 사진 앞에서 ‘한일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 모셔갔으면 제대로 모셔라’, ‘홍범도 장군 공산당 이력이 문제면 내 가족과 고려인 동포 50만명도 모국의 적인가’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이전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지난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현장에 있었다고 밝힌 박 지회장은 “당시 홍범도 장군이 아름다운 해방된 조국의 품에 안겨 영면하시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음 뿌듯해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자랑스럽게 느꼈다”며 “그러나 다섯 분의 독립전쟁 영웅 중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철거한다는 소식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면 공산당원이었던 돌아가신 내 부친도, 옛 소련에서 태어나고 인생의 절반 정도를 소련 체제 속에서 살았던 나도 제거 대상인가. 21세기에 공산당도 소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라고 지적했다.

리 예술감독은 “체제와 정권이 바뀔지라도 홍범도 장군은 우리 민족의 독립전쟁 영웅”이라며 “그가 8천만 겨레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고려극장은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달 31일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 등을 문제 삼았다.

독립군 지도자 홍 장군은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이주한 뒤 1943년 75살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카자흐스탄 등지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꼽힌다.

< 박고은 기자 >

 

갤럽 조사 결과…“방류 위험 과장 아냐” 응답 절반 넘어

73% “수산물 오염 가능성 있다”…보수층도 58%나 걱정
60% “수산물 먹기 꺼려져”…살충제 계란파동 때보다 높아

 

2023년 9월 1일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556호 보고서 갈무리.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에 의한 위험성과 국민들의 우려를 정부와 일부 언론이 ‘과장된 괴담·선동’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의 다수가 실제로 우리 해양과 수산물 오염을 걱정하고 있으며, 방류 위험성이 과장된 것이 아니어서 수산물 먹기가 꺼려진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정부의 ‘괴담 몰이’가 오히려 과장된 괴담이요 선동임을 보여준다.

한국갤럽이 8월 29~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전화응답 조사(CATI)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75%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우리 해양과 수산물이 오염될까 봐 걱정된다'고 답했다. ‘걱정되지 않는다’는 답은 22%에 그쳤다.

또 73%는 ‘후쿠시마 방류로 우리 해양과 수산물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고 21%만이 ‘가능성이 없다’고 답했다.

‘후쿠시마 방류 위험성은 과장되지 않았다’는 응답도 54%로 절반이 넘었으며, ‘과장되었다’는 응답은 35%였다.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중앙일보 등 일부 친정권 매체가 일본 핵 오염수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걱정의 목소리를 ‘과장된 괴담·선동’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다.

이런 불안과 우려 때문에 60%가 ‘수산물 먹기가 꺼려진다’고 답했고, ‘꺼려지지 않는다’는 답은 37%였다. 핵 오염수로 인한 음식물 거부감은 지난 2014년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때의 닭·오리 거부감 37%, 2017년 살충제 계란파동 때의 계란 거부감 54%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오염수 방류로 해양·수산물 오염을 걱정하는 응답자 중 ‘보수성향’이라고 답한 층도 절반이 넘는 58%가 ‘걱정된다’고 답했다. ‘중도층’에서는 79%, ‘진보층’에서는 91%가 ‘걱정된다’고 답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린 응답자 중에서도 38%, 국민의힘 지지자 중에서도 46%는 ‘걱정된다’고 답했다.

‘보수성향’ 응답자 중에서도 38%는 ‘후쿠시마 방류 위험성이 과장되지 않았다’고 답했고, ‘중도층’과 ‘진보층’에서는 각각 61%, 70%가 ‘과장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평가 이유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꼽은 응답자가 21%로 가장 많았으며, 이는 외교(11%), 경제·민생·물가(8%) 등에 비해 약 2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  < 김성재 기자 >

 

[한겨레S] 인터뷰

박따지아나 고려인 후손재단 이사장

 

                               박따지아나 고려인 독립유공자후손회장(후손재단 이사장). 김상욱 제공

 

국방부가 지난 31일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극우적 색깔론이라는 비판에도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 장군을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 등을 빌미 삼아 육사에서 지워버린 것이다.소련의 강제이주로 카자흐스탄으로 쫓겨온 홍 장군과 고락을 함께해온 독립투사들, 그들의 후손은 홍 장군을 정신적 지주로 기리며 이국땅에서 홍 장군 묘소를 돌보고, 2021년 홍 장군 유해 국내 봉환에도 발 벗고 뛰었다.

 

이들은 흉상 철거를 어떻게 생각할까.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거주하는 박따지아나 고려인 독립유공자후손회장(후손재단 이사장)과 이날 서면 인터뷰를 했다. 그는 고려인 독립운동의 대부로 평가받는 최재형 선생의 증손녀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연해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에게는 소련과 협력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소련 공산당 입당은 조국에 대한 홍 장군의 애국심을 손상할 수 없고 조선 독립을 위한 투사들의 공로와 조선 민족의 행복과 해방을 위한 사심 없는 투쟁 업적에 누를 끼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러시아어로 답변했고 인터뷰 진행 과정에서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의 도움을 받았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을 어떻게 알게 됐나요?

“한국 뉴스를 전하는 인스타그램(vsya_korea)과 러시아 타스 통신, 온라인 매체 등을 통해 알았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육사에 설치한 홍범도 장군의 흉상, 또 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 등 항일 독립영웅의 흉상을 철거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당혹감이 일었습니다. 재외 동포들은 한국 내부의 이념적, 정치적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결정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싶습니다.”

―어떤 의견입니까?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가 조국 독립, 우리 동포의 행복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운 독립투사라는 점, 그가 일본군과의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이 거둔 빛나는 승리는 우리 민족해방운동사에서 의미 있는 사건의 하나로 기록돼 있습니다. 항일유격대 역사상 가장 큰 승리 중 하나가 청산리 대첩인데,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이 연합해 일본제국군을 상대로 대승한 것입니다. 조선 민중들의 믿음과 희망을 강화한 것은 이 전투에서 거둔 더 큰 승리였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안위와 생명을 걸고 민족해방 투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투옥·토벌 등 고난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온갖 숙청과 탄압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은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공로를 재평가하고 규탄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단지 소련에서 살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의를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돕니다. 민주적이고 자주적이며 번영하는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런 우리 선열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독립을 향한 그들의 영웅적 헌신과 사심 없는 투쟁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감사하고 찬사를 보내는 인간적 감정을 표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는 국군 장교를 양성하는 육사에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이 있는 홍 장군 흉상을 둘 수 없다고 하는데요?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게 조국의 독립을 위한 전설적인 공적을 망각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카자흐스탄에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그 (조상)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성묵·채성룡·최고려·김미하일·최성학 등 일제강점기 연해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소련과 협력하는 것 외에는요.”박따지아나 회장은 항일 독립운동에서 큰 족적을 남겼지만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이들의 이름과 그들의 항일 투쟁 공적을 상세히 나열했다.“연해주로 달려간 우국지사들은 조국을 일본 식민통치로부터 해방하려 러시아의 도움에 의지했습니다. 연해주 동포들과 조선에서 온 이민자들은 조선인이 동아시아 혁명과 세계 혁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홍범도 장군도 일제에 맞서는 조선 민족해방투쟁의 거점이 된 러시아에서 여러 조직 활동에 참여했고, 1927년 소련 공산당의 당원이 되었습니다. 그의 공산당 입당은 독립을 위해 투사들을 지원하는 국가(러시아)의 민주주의 체제 건설에 참여하려는 열망으로 설명됐습니다. 러시아에 기반을 마련하고 살기 위해서는 소련 당국과 협력하고 그 국가의 정치, 사회, 경제 활동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시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2021년 8월14일 유해가 수습돼 운구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8월, 정부(문재인 정부)는 홍범도 장군 유해를 봉환해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역할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홍 장군의 묘지는 그의 아내와 아들이 사망하면서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전설적인 홍범도 장군을 기리며 민족 영웅으로 추모했습니다. 항일 유격투쟁의 공로로 홍범도 장군은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1996년 5월엔 크즐오르다시 홍범도 장군 동상 뒤에 (소련의 정치탄압에 희생된 홍 장군을 비롯한 고려인을 기리는) ‘정치탄압 희생자 추모비’가 건립되었습니다. 해마다 대한민국 대표들이 이곳을 방문해 홍범도 장군을 추모했습니다. 저는 2019년 8월 자손재단 이사장으로서 김대식 전 주카자흐스탄 대사에게 홍 장군 유해를 모국으로 봉환할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작성해 보냈습니다. 고려인협회와 현지 고려인 동포들도 이 제안을 지지했습니다. 민족의 전설적 영웅을 합당하게 예우하기 위해, 현세대와 미래 세대가 홍범도 장군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그를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의 유해를 대전 현충원에 안장한 것입니다.”

―홍 장군은 강제이주된 카자흐스탄에서 극장 문지기를 하며 노년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37년 8월 21일 인민위원회와 볼셰비키 전소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동 결의안 제1428-326호에 근거한 ‘극동 국경 지역에서 조선인의 추방에 관하여’에 따르면, 고려인 17만2천명이 극동 국경 지역에서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으로 강제 이주됐습니다. 1937년 홍범도 장군은 연해주의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탄압을 받고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됐습니다. 크즐오르다시에서 극장 문지기로 일했습니다.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손상할 수 없고, 조선 독립을 위한 투사들의 공로와 업적, 조선 민족의 행복과 해방을 위한 사심 없는 투쟁업적에 누를 끼치지도 않았습니다. 흉상 철거 논리와 명분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항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의 후손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와 아무르 지역 애국지사들 사이에서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을 이끈 지도자입니다. 저는 최재형 선생의 증손녀입니다. 저의 어머니 김올가는 최재형 선생의 딸인 최나데즈다의 딸입니다. 최재형 선생은 비록 젊은 나이에 조국을 떠났음에도 자신이 이룬 부와 사회적 지위로 늘 동포들의 운명과 조국의 독립, 민족의 자주권과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1906년 포시에트에서 최초의 항일독립부대를 조직하고 돈과 무기를 모아 그들을 무장시키고 조선으로 파견해 항일 투쟁을 수행했습니다. 1919년 3월엔 대한국민회의(러시아 내 한인 애국자들이 창설한 최초의 조선 정부 기관)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됐고, 1919년 4월엔 상하이 임시정부 재무장관으로 선출됐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정부에 하실 말씀이 있나요?

“저는 독립운동가의 역할과 의의, 공로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정부의) 시도가 한국 국민과 국외 동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최재형 가짜 후손’ 사건으로 마음 고생

 

―현재 카자흐스탄의 독립투사 후손들을 하나로 묶는 공익재단 회장을 맡고 계시는데요.

“2019년에 공익재단 독립유공자후손회 회장으로 당선됐습니다. 저는 72살이지만 550여명의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을 하나로 묶는 후손재단의 이사장직도 맡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거주 항일독립투사 후손들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조국의 해방에 목숨을 걸고 헌신한 영웅적인 선열들의 기억하고 선양하기 위한 활동을 합니다. 후손재단은 해마다 대한민국 보훈부의 지원을 받아 3·1운동기념일과 한국독립운동가 추모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도 개최합니다.”

 

―최재형 선생의 유해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가짜 묘 논란 등 고통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1920년 4월7일, 최재형 선생과 동료들은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인근 언덕 기슭에서 일본군에 처형됐습니다. 1918~1922년에 조선인들이 묻히고, 고문·총살당했던 공동묘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보존되지 않았습니다. 1935년부터 조선인 묘지 자리에 시립 석유 저장소가 세워졌습니다. 최재형 선생 유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42년 후인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8년 후인 1970년 11월17일에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108호에 가묘를 조성하면서 최규흠이 후손으로 등록했어요. 그런데 1995년 최재형의 딸 엘리자베스와 손자 최발렌틴이 독립운동가 후손 초청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에 왔을 때, 최규흠은 가짜 후손이고 그 가짜 후손이 30년 이상 유족 후손으로서 연금을 받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뒤 최발렌틴이 2009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갔는데 2006년에 108호 무덤이 철거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통탄스러웠습니다. 모든 우리 최재형 후손들도 많이 속상했습니다. 최재형 기념재단과 그 후손들이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108호에 있는 최재형 묘소를 복원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최근 최재형 선생의 아내 최엘레나의 유해가 발견돼 한국으로 옮겨 국립현충원에 안장한 것으로 압니다.

“최재형 선생의 아내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는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의 희생자가 됐습니다. 그는 1952년 7월7일에 사망해 키르기스탄 비슈케크시의 묘지에 묻혔습니다. 오랫동안 그의 무덤은 버려지고 방치됐습니다. 최재형 기념회(회장 문영숙)는 키르기스탄 비슈케크 묘지에서 최엘레나 페트로브나의 유해를 가져오고 비슈케크에 있는 최재형 자택 뜰의 흙도 반출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7월31일, 최 엘레나의 유해가 비슈케크의 묘지에서 수습됐고, 지난 8월3일엔 옛 무덤이 있던 그 자리에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이후 추모식과 송별식을 거행했고, 8월5일 최엘레나의 유해를 한국으로 옮겨 국립서울현충원에 최재형 부부 묘를 복원하고 안장했습니다. 최재형 선생 후손으로, 또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후손재단을 대표해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묘 복원에) 조직적·재정적 지원을 해주신 국가보훈부에도 감사드립니다.”       < 신승근 기자 > 

 

8월 한달 광복 이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매국적 사건들

후쿠시마 오염수- 이동관 두 개의 파고, 한국사회 덮쳐

 

26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인근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피켓을 들고 있다. 2023.8.26 연합뉴스

 

나라 안팎에서의 일대 역행

여름이 가고 가을로 접어드는 때, 하늘은 높고 청명합니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한국사회를 숨막히게 하는 일들의 연속입니다. 이번 주가 마지막 주간인 광복의 달 8월, 그러나 광복의 달은 마치 거꾸로 선 광복의 달처럼 대한민국은 78년 만에 광복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라 안팎에서의 일대 역행이 한여름의 무더위보다 더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해방과 독립의 감격과 환희를 미래로의 발전과 번영의 원천으로 삼아야 할 이 달에 전개되고 있는 일들입니다.

지난 주 기어코 투기가 시작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의 한반도 해안으로의 접근은 한국인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넘어서 일제 일본군의 한반도 영토 상륙의 예고처럼 보입니다.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세워진 항일독립투쟁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한다는 소식은 윤석열 정부가 핵 오염수 방류를 용인한 것은 물론 조장한 것과 함께 지난 22일부터 일주일간의 경술국치 주간을 113년 만에 재연한 듯했습니다.

만주 벌판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 일본군의 총칼에 맞서다 스러져간 젊음들의 투혼인 듯, 돌베개에 머리를 눕히고 풍우한설을 맞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애국투사들의 비원을 한국군의 장교 생도들에게 불어넣어주던 애국선열들의 흉상을 들어내려 하는 이 기막힌 현실에 독립운동 노병들의 비통한 울음이 육사 교정에 울리는 듯합니다.

대신 그 자리에 독립군을 토벌하던 백선엽에다 맥아더와 미군 장군의 흉상을 설치하겠다니 “독립항쟁의 영웅 대신 관동군과 미군을 조상으로 삼겠다는 육사, 이제는 한국군을 괴뢰군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라는 <촛불행동>의 성난 논평이 국민들의 분노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말년에 중앙아시아의 낯선 땅에서 극장의 수위로 일하면서 통한 속에 눈을 감았을 홍범도 장군은 2년 전 78년 만에 그 유해가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귀환했지만, 홍 장군에게 지금과 같은 수치와 모욕을 안기려 그의 유해를 봉환한 것인지, 홍 장군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입니다. 수천 억원 이상의 가산을 모두 털어 독립운동 자금을 대면서 그 자신은 기아의 고통에 시달렸던 이회영 선생이 오열을 할 상황입니다.

이번 주 화요일 29일은 1910년 일본에 의해 국권을 완전히 강탈당한 강제병합, 경술국치의 날입니다. 조선인에겐 치욕이며 침략자에겐 득의의 순간이었을 그날을 하루 앞둔 8월의 마지막 주간, '국치에서 광복으로'가 아닌 '광복에서 국치로'의 대역진의 끝은 어디일지, 매일 매달이 국치가 되는 현실입니다.

나라가 나라다워야 '조국' 되는 것

8월을 보내면서 우리는 '조국'이란 그것이 참으로 위할 만한 것이라야, 나라가 나라다울 때라야 진정한 조국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땅에선 단지 자주와 독립의 후퇴뿐만 아니라 '문명'의 후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명을 이루는 상식과 양식의 붕괴, 그 문명의 한 근간인 권력이 정당성을 스스로 잃고 반문명으로의 길로 치닫는 것을 참담한 심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몰상식과 불합리가 권력의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막는 빗장을 스스로 열어줬듯 한국사회를 지켜주는 둑이 무너지고 기초를 지탱하는 기둥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촛불집회 연단에 오른 박미라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는 오염수 방류가 세대 간 정의에 어긋난다면서 “현재를 위해 미래를 죽이는 악랄한 선택”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현재를 죽여서 미래를 없애는 행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 언론조차 일제히 방류 강행을 비판하는 상황인데, 정작 한국언론의 다수는 이를 ‘수산물 오염 괴담’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오염수 해양 투기 범죄’의 직접적이고 최대의 피해자가 될 한국 어민·수산업자·상인들의 방류 반대 목소리와 한숨을 제대로 다룬 매체는 거의 없습니다. 촛불 집회에서 나온 구호처럼 “차라리 대통령을 방류하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며, "언론을 방류하라"고 외치고 싶은 국민들의 심정입니다.

가뜩이나 망가져 있는 한국의 언론을 더욱 황폐화시킬 일들이 이번 주에 벌어질 것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결국 방송통신위원장에 앉고 만 이동관 씨가 월요일 아침 언론단체들과 시민들의 반대 속에서 첫 출근과 함께 드디어 공영방송 경영진 축출과 개편에 나설 것입니다. 바다에서의 오염수의 쇄도와 공영방송에서의 언론장악의 위협이라는 밖으로부터, 또 안에서부터의 두 개의 동시 파고에 맞서는 시민들의 힘, 상식과 양식을 지키려는 힘이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주간입니다.  <시민언론 민들레 이명재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