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공사 토론토 지사 주최  ‘K-Travel Fest: Hello Korea’

Sankofa Square에서 주말 이틀간 다양한 공연 이벤트도 

 

한국의 전통과 K-푸드, K-뷰티, 웰니스 및 라이프스타일 등 한국 여행 매력 알려

 

 

K-푸드, K-뷰티, K-컬쳐 및 Korean 라이프스타일 등 한국의 다양한 여행 콘텐츠와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각종 체험코너와 공연 등으로 꾸미는 ‘K-트래블 페스타’ 가 다음 주말 토론토 도심에서 펼쳐진다.

 

한국관광공사(KTO) 토론토지사(지사장 오유나)는 오는 9월12일(토)~13일(일) 양일간 토론토 다운타운 산코파 스퀘어(Sankofa Square: 1 Dundas St E.)에서 한국 여행-문화 축제인 ‘K-Travel Fest: Hello Korea’를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이번 ‘K-트래블 페스타’는 한국의 전통과 K-푸드, K-뷰티, 웰니스 및 라이프스타일 등 한국 여행의 다채로운 매력을 캐나다에 알리고, 토론토 시민들이 한국의 역동적인 K-컬쳐를 도심 한가운데서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에는 특히 최신 K-뷰티 트렌드부터 입맛을 사로잡는 K-푸드, 그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라이브 공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여행의 매력과 한국문화의 정취를 엿보게 함으로써, 한국 방문을 적극적으로 계획 중이거나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현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직접적인 탐방의 동기를 부여하는 주말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관광공사 토론토지사는 이번 ‘K-트래블 페스타’의 주목되는 하이라이트 행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한국여행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 부산·제주·경주·전주 등 지역 여행정보를 만나고, 문화 체험과 함께 한국여행 전문여행사의 여행 상담도 받을 수 있다. 한국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유용한 여행정보와 아이디어를 얻어갈 수 있다.

 

● 스타 셰프 ‘송훈’ 라이브 쿠킹쇼: 흑백요리사 시즌2 출연한 유명 스타 셰프 송훈(Song Hoon) 셰프가 메인 무대에서 한국 요리의 깊이와 혁신을 보여주는 독점 라이브 쿠킹 시연을 펼치며,시연 중 한국 미식여행의 매력도 함께 소개한다.

 

● '한강 라면' 체험: K-편의점(K-Convenience Store) 부스에서는 다양한 한국 스낵을 만나볼 수 있으며, 서울 한강 공원에서 현지인들이 즐기는 방식 그대로 즉석 라면을 직접 조리하고 맛보는 트렌디한 '한강 라면' 체험이 마련된다.

 

● 시그니처 문화 및 뷰티 존: 푸드 워크숍, 한글 서예, 비건 타투, 프리미엄 다도 체험을 비롯해 전문가의 립 컬러 분석과 AI 피부 진단이 포함된 K-뷰티 마스터클래스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주말 내내 메인 무대에서는 고품격 K-팝 커버 댄스, 랜덤 플레이 댄스, 전통 태권도 시범, 그리고 난타 공연이 펼쳐져 축제의 열기를 더한다.

 

● 페스타 기간 한정 여행 프로모션 및 현장 혜택 (~2026 9.13.): 한국 여행을 준비하는 방문객을 위해 8개 여행사의 특별 투어 패키지와 할인혜택 및 항공권 프로모션이 진행된다. 특히, 한국행 왕복 항공권을 현장에서 보여주면 특별 사은품이 증정된다. 사은품은 선착순으로 제공되며 준비된 수량 소진 시 조기 마감될 수 있다. 자세한 내용 및 참여 조건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트래블 카드 및 리워드: 방문객들은 행사장 곳곳의 액티비티에 참여해 트래블 카드에 스탬프를 모은 뒤, 한국 테마의 특별한 리워드 교환할 수 있다.

 

 

이번 행사에 대해 관광공사 토론토지사 오유나 지사장은 “이번 K-트래블 페스타는 제주, 전주, 경주 등 다양한 여행지들을 소개하고, K-미식 포차, 티테라피 등 체험을 통해 한국의 다채로운 매력을 알리는데 주안을 두었다”고 밝히고 “이번 행사를 계기로 많은 캐나다 시민들이 새롭게 한국여행을 계획하고, 직접 한국을 방문해 더욱 풍성한 경험을 하게 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 문의: 647-887–3133, https://ktravelfest.ca, 인스타그램 @ktocanada >

 

 

 

 

'계엄 옹호' 자유대학 고발했다 무고죄 조사받아
경찰, 윤석열 옹호 통상적 집회라며 고발도 각하
내란 청산 정부·국회에만 못맡겨…내란특위 필요

 

청년이 내란 청산 주역으로 앞장서는 조직돼야
'반민특위 실패했지만, 내란특위단은 성공해야'
시민이 내란죄, 옹호죄, 선전선동죄 심판나서길

 

백은종(오른쪽 두 번째) 서울의소리 대표와 김혜민(오른쪽) 국민의힘해체행동 대표가 지난 1일 서울영등포경찰서에서 자유대학 고발 사건 조사를 받기 전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혜민 대표 제공

 

9월 1일 오전, 비가 내렸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앞에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와 강전호 이사, 서울의소리 회원들이 모였다. 국민의힘해체행동 대표인 필자도 그 자리에 섰다. 거센 비를 맞으며 우산을 쓰고 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해야 했던 이유는 다소 황당했다.

 

지난 1월 백은종 대표와 필자는 12·3 계엄을 옹호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유포해 온 자유대학을 고발했다. '윤석열은 옳았다', '계엄은 합법이었다'는 주장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유대학 관계자들은 특검의 황교안 전 총리 자택 압수수색을 막아서기도 했다. 공무집행방해다. 지금도 그 생생한 영상이 온라인 상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내란에 동조하며 공무집행을 방해한 범행 내용도 고발장에 담았다. 

 

특히 걱정스러웠던 것은 청소년과 청년이었다. 10대와 20대가 이런 콘텐츠를 반복해서 접하면 "12·3 계엄이 정말 합법이었던 것 아닌가", "윤석열이 그렇게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역사적 평가는 시간이 흐른다고 절로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 누군가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다시 쓰려 한다면, 그 왜곡에 맞서 기록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역사를 겪었다.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과 5·18 관련 내란 등의 책임으로 법정에 서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권에서는 전두환을 찬양하는 발언들이 나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모욕하는 일이 반복된다. 배재고 스타벅스 사태가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던가.

 

그래서 내란을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내란에 동조하는 자들도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자유대학을 고발한 이유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우리의 고발은 각하됐다.

 

경찰은 윤어게인을 외치며 윤석열을 옹호하는 것은 통상적인 집회이고 윤석열이 받은 처우가 부당하다고 알리는 것은 개인적인 의견 피력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각하 사유를 댔다.

대신 우리가 자유대학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고소당했다. 내란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움직임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우리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상황인가'

비를 맞으며 영등포경찰서 앞에 서 있으니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12·3 내란 이후 수많은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응원봉을 들고 국회 앞으로 달려갔고, 내란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특검은 끝났고 언론의 관심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재판은 그렇게도 신속하게 하더니, 내란 재판은 하염없이 질질 끌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윤어게인’과 ‘합법 계엄’을 주장하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내란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건이 희미해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아지고, 역사를 왜곡하는 주장이 조금씩 용인될 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힘은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우리는 친일청산에 실패한 경험도, 군부독재를 끝낸 뒤 독재세력을 철저히 청산하지 못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제나 다음 세대가 치렀다.

그날 경찰서 앞에서 다시 한번 절감했다. 내란 청산을 정부와 국회, 사법부에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내란청산국민특별위원단의 백은종 수석단장과 김혜민 국민의힘해체행동 대표 등 관계자들이 1일 국회 소통관에서 발족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민 대표 제공

 

"제도권 정치가 국민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같은 날 오후 1시 20분, 서울의소리와 애국시민들, 필자가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경찰서 앞이 아니라 국회였다. '내란청산국민특별위원단', 내란특위를 공식 출범시키기 위해서였다. 

 

내란특위 수석단장을 맡은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내란에는 반드시 단죄가 따른다는 것, 민주주의를 파괴한 자는 반드시 법과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오직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의소리, 청년들, 그리고 필자가 함께 한 달 전부터 내란특위를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은 바로, 제도권 정치가 국민의 염원, 눈높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내란특위 국회 자문위원인 최혁진 국회의원은 말했다.

“대한민국을 세운 것도 국민이고 헌법의 주인도 국민이며, 내란이 일어났을 때 나라를 지켜낸 이들도 국민이다. 내란 척결을 내란 당시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법부의 판결만으로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란의 잔불까지 완전히 끝났다는 최종적인 판단은 결국 우리 국민의 몫이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섰다.” 

 

최혁진 내란특위단 국회 자문인 최혁진 의원이 격려 발언을 하고 있다. 김혜민 대표 제공

 

"청년은 내란 청산의 구경꾼이 아니다"

 

이날 우리가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청년이었다. 12·3 내란에 대한 마지막 재판이 끝날 때쯤이면 지금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판결 이후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 사람들도 청년들이다.

 

민주주의의 규칙이 무너졌을 때 그 충격을 가장 오래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제 막 삶을 시작하는 청년 세대다. 이 사회에서 취업을 해야 하고, 집을 구해야 하고,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정한 채용도, 평등한 기회도,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도 결국 사회의 기본적인 규칙이 지켜질 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를 이용해 다른 세대와 성별, 집단을 공격하게 만들고, 그 틈에서 정치적 선동이 확산되고 있다. '계엄은 정당했다', '윤석열은 옳았다'는 콘텐츠 역시 그 흐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청년이 싸워야 할 상대는 다른 청년이 아니다. 청년의 기회를 빼앗는 불공정이며, 민주주의의 규칙을 무너뜨리는 권력이며, 사실을 왜곡해 국민을 갈라놓는 선동이다.

 

그러므로 청년은 내란 청산의 구경꾼일 수 없다. 당사자이며 주역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내란특위를 청년들이 앞장서는 조직으로 만들려는 이유다. 

 

 

시민 3만명이 감시자가 된다면

 

우리가 만들려는 조직은 ‘말뿐인 조직’이 아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내란의 기획과 실행뿐 아니라 그 과정의 방조와 비호, 옹호에 이르기까지 추적하고 필요하면 고발하고자 한다.

 

수사와 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국민의 눈으로 지켜보고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꿀 것이다. 온라인에서 내란을 왜곡하고 옹호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시민이 제보하고, 법률 검토를 거쳐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다.

 

평범한 시민이 나서 내란을 청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300명으로 시작해 3000명이 되고, 3만명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3만명의 시민이 내란 재판을 지켜보고, 내란 옹호와 역사 왜곡을 감시하고, 관련 사실을 기록한다면 내란 청산은 몇몇 정치인이나 법조인의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이 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결국 주권자 시민의 감시와 참여이기 때문이다. 

 

 

"반민특위는 실패했어도 내란특위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해방 이후 우리는 친일세력을 청산하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를 만들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의 방해와 경찰의 습격 속에 좌초했고, 친일청산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여파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내란특위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런 구호를 내걸었다. "반민특위는 실패했어도 내란특위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을 때 그 대가를 다음 세대가 치러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말이다.

 

9월 1일 아침, 필자는 비를 맞으며 경찰서 앞에 섰고 ‘자유대학’의 명예를 ‘감히’ 훼손한 것 아니냐는 질의로 가득한 경찰 조사까지 2시간 내내 받아야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국회에서 시민들과 함께 내란특위의 출범을 선언했다. 그 하루가 내게는 하나의 답이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국민이 직접 지켜야 한다. 반민특위는 실패했지만 내란특위는 실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청년들도 함께 역사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 김혜민 시민기자 > 

 

 

월드투어 LA 공연 기념…"현세대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

 
 

그룹 방탄소년단(BTS)  [빅히트뮤직 제공]

 

미국 로스앤젤레스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 개최를 기념해 이달 1∼8일(이하 현지시간)을 'BTS 위크'(BTS Week)로 지정했다고 소속사 빅히트뮤직이 1일 밝혔다.

 

로스앤젤레스시는 지난달 31일 시의회, 관광청, 빅히트뮤직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청에서 공식 선포식을 열었다.

 

'BTS 위크'를 기념해 로스앤젤레스 시청은 1일 5집 '아리랑'의 키 컬러인 붉은색으로 불을 밝힌다. 이는 도시를 방문하는 관객을 위한 공식적인 환영과 우정의 의미라고 빅히트뮤직은 설명했다.

 

캐런 배스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BTS 위크' 선포에는 예술과 문화가 상호 이해를 높이고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이 담겼다"며 "세계 문화에 크게 기여해 온 방탄소년단의 놀라운 업적을 기리고, 로스앤젤레스와의 특별한 인연을 전 세계인과 함께 축하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존 리 로스앤젤레스 시의원은 "이번 선포는 방탄소년단이 세계 문화에 남긴 특별한 발자취를 시 차원에서 기리는 것"이라며 "동시에 로스앤젤레스와 한국 및 한인 사회의 오랜 유대와 문화 교류를 기념하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방탄소년단(BTS) 로스앤젤레스 'BTS 위크' 선포식 [빅히트뮤직 제공]

 

방탄소년단은 1∼2일과 5∼6일 로스앤젤레스 대형 공연장인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연다. 4회 공연은 전석 매진됐다. 이들이 이곳에서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것은 2021년 12월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PERMISSION TO DANCE ON STAGE) 이후 4년 9개월 만이다.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는 결의문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2013년 데뷔 후 현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고 소개했다.

 

또한 방탄소년단이 세계 음악 산업에서 한국과 아시아 가수들에게 길을 열어줬고, 이들이 전한 희망의 메시지가 언어·문화를 넘어 전 세계를 연결하고,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앞서 '아리랑' 공연이 열린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 카운티, 일리노이주, 캐나다 토론도 등은 콘서트 개최를 기념해 'BTS 위크' 혹은 'BTS 데이'를 잇달아 지정했다.      < 이태수 기자 >

 

 

 

프레드릭 맥켄지와 기록하는 자의 책임

 

사진 한 장과 책 두 권으로 후대 한국인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 남겨

힘없는 자의 편에서, 강자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눈앞의 사실 기록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난 신문기자가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러 조선 땅을 밟았을 때, 그는 그저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기사를 송고하는 종군기자였을 뿐이다. 처음엔 일본에 딱히 나쁜 감정도 없었다. 오히려 근대화를 이룬 신흥강국이라는 호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사람은 눈으로 보고 마음을 바꾸는 법이다.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rthur McKenzie, 1869~1931)는 조선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본의 만행을 직접 목격한 뒤, 펜끝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그는 백년도 더 전에 이 땅에 왔다가, 사진 한 장과 책 두 권으로 후대 한국인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남겼다.

 

프레드릭 맥켄지(위키피디아)

 

을사년 이후의 목격자

 

맥켄지는 런던의 신문사 데일리 메일 소속으로 1904년과 1906년, 두 차례 조선을 찾았다. 첫 방문은 전쟁 취재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1906년 여름 다시 찾아온 그는 이번엔 아예 조선에 눌러앉다시피 하며 약 1년 반을 머물렀다. 1907년에는 순종의 즉위식 현장을 눈으로 지켜봤고, 같은 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한 뒤 전국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의 활동을 취재하러 다녔다.

 

경기도 양평 지평면 인근 야산에서는 낡고 녹슨 총을 든 젊은 의병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훗날 그는 이때 만난 의병이 "우리는 어차피 죽겠지만,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고 기록했다. 이 장면은 훗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회에서 재현될 만큼 깊이 남은 순간이 되었다.

 

1907년 맥켄지가 촬영해 '대한제국의 비극'에 실린 의병들 사진(위키피디아)

 

사진 한 장, 책 두 권

 

맥켄지가 이때 남긴 사진은 오늘날까지 전하는 사실상 유일한 의병 기록사진이다. 제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청년들이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선 이 사진은, 문서보다 더 강한 방식으로 그날의 진실을 증언한다. 그는 이 경험을 담아 1908년 '대한제국의 비극'이라는 책을 펴냈다. 을사늑약 이후 조선에서 벌어진 일제의 탄압과 의병의 항쟁을 세계에 소개한 최초의 서양어 기록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꾸민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재판 기록까지 부록으로 실려 있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하나의 고발장에 가까웠다.

 

1910년부터는 런던 타임스로 자리를 옮겨 1914년까지 일했지만, 조선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당시 캐나다 출신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암리 학살의 진상을 세상에 알렸고, 이 기록을 바탕으로 1920년에는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이라는 책을 펴냈다. 같은 해 런던에서는 한국친구회를 조직해 "한국의 독립은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에도 이익이 된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항일 언론활동을 벌였던 영국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1872~1909)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신념으로 목숨을 걸었던 서양인 언론인이었다. 맥켄지와 베델처럼 낯선 땅의 약자 편에 서기를 택한 외국인들이 있었기에, 조선의 참상은 완전히 묻히지 않고 세계에 전해질 수 있었다.

 

한국정부는 2014년 삼일절을 맞아 맥켄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조선 땅에 잠시 머물다 간 외국인 기자 한 사람에게, 백 년도 더 지난 뒤에야 갚은 감사였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위키피디아)

 

기록하는 자가 지켜야 할 것

 

맥켄지가 남긴 것은 단순한 특종이 아니다. 그는 힘없는 자의 편에서, 강자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눈앞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 그는 캐나다 퀘벡 태생이었지만, 당시 캐나다는 영국의 자치령(Dominion)이었고 그 자신도 평생 런던의 신문사에 몸담았다. 그가 소속된 영국 언론사는 하필 일본과 동맹을 맺은 나라였다. 자신이 몸담은 언론사와 국가의 외교적 이해관계와 정반대되는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힘없는 이웃 나라의 재산과 목숨을 짓밟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제국의 팽창은 인간의 양심에 반한다고 분명히 적었다. 자기가 속한 언론사와 동맹국의 체면보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진실을 앞세운 선택이었다.

 

지금 한국을 돌아보면 어떨까. 2024년 12월 3일 밤, 국민들은 텔레비전과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이라는 낯선 단어와 다시 마주해야 했다. 그 순간 시민들의 휴대전화 영상, 기자들의 현장취재, 국회의 담을 넘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 한 장 한 장이 훗날 진실을 증언하는 자료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맥켄지의 사진 한 장이 백년 넘게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이야기되듯, 지금 이 순간의 기록들도 언젠가 역사의 증거로 다시 소환될 것이다.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편에서 사실을 붙잡아 두는 일. 이것이야말로 맥켄지가 백 년 전 조선 땅에서 몸소 보여준 언론의 본분이었다. 지금 한국언론이 되새겨야 할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권력을 쥐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진실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 김성수 기자 >

 

KBS1 ‘다큐 공감’ 방송 화면 갈무리 2019.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