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패권 핵심인 에너지 지정학 포기 못 해"
"마두로, 마약 밀매업자"란 주장은 '개입 구실'

마두로 "미국과 극우 동맹 제국주의 위협 대응"

트럼프, 제재·관세로 국제석유 시장 장악 시도
"미국 압박에 탈달러 등 대안 모색 가속화"

 

"베네수엘라 주변에서 진행되는 미국 해군의 기동은 두 가지 메시지를 보낸다. 카라카스(베네수엘라)를 향해선 워싱턴이 여전히 강제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그리고 세계 (석유) 시장을 향해선 서반구에 대한 미국의 패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인도 필라니 비를라 공대의 칼랴니 욜라 선임연구원은 '워싱턴의 석유 체스판: 베네수엘라는 미국 지정학에 왜 중요한가'란 30일 자 <모던디플로머시> 기고에서 "베네수엘라 땅속의 미개발 매장량은 미래에 중동 공급망이 교란될 경우를 대비한 잠재적 보험으로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주변 해역에 이지스함 3척 등 미 해군 함정들을 배치하면서 내건 '마약 밀매 차단'은 그저 '하나의 구실'로 봤다.

 

미국 해군 타이콘데로가급 유도 미사일 순양함이 29일 파나마시티의 파나마 운하 입구 인근의 프리게이트 캡틴 노엘 안토니우 로드리게스 후스타비노 해군 기지에 정박하고 있다. 2025.08. 29 [로이터=연합]

 

트럼프, 베네수엘라 해역 미 해군 배치
"마두로, 세계 최대의 마약 밀매업자"

 

해군 함정 배치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차근차근 빌드업을 해왔다. 로이터, AFP와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지난 2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베네수엘라 기반의 트렌데아라과 등 마약 밀매 카르텔들을 '외국 테러 단체'로 지정했다. 급기야 8월 7일에는 팸 본디 법무장관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세계 최대 마약 밀매업자 중 한 명"이라고 매도하고, 그의 체포 관련 정보 보상액을 기존 2500만 달러(348억 원 상당)에서 5000만 달러로 2배 상향한다고 발표했다.

 

미 해군은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 지시에 따라, 베네수엘라 해역에 이지스 구축함 3척을 배치한 데 이어, 미사일 순양함 등을 추가로 배치해 총 8척으로 늘어나게 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작전엔 미군 장병 4000명이 투입되며, 앞으로 정보 수집·감시뿐 아니라 표적 공격을 위한 '발사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또한 P-8 해상초계기와 잠수함 등이 작전 수행에 함께 편성될 가능성도 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반미 집회가 벌어지는 가운데 29일 한 시민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사진을 바라보며 왼쪽)과 고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뮤럴 옆을 지나고 있다. 2025. 08. 29 [EPA=연합]

 

마두로, 정규군·민병대 동원해 국경 강화
"미국과 극우 동맹 제국주의 위협 대응"

 

이에 맞서 마두로 대통령은 트럼프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정규군과 민병대를 총동원해 국경 주변에서 보안을 강화할 것을 명령했고 그에 따라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현지 일간 엘우니베르살을 인용해 보도했다. 마두로는 26일 텔레그램을 통해 "미국과 그 극우 동맹 세력의 제국주의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방어 체계를 24시간 가동하고 있다"면서 "휴식이란 없으며, 누구도 베네수엘라 영토를 건드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고에서 욜라 선임연구원은 "올해 초 미국 군함들이 베네수엘라 해역에 조금씩 접근했지만, 이는 우크라이나와 남중국해의 더 큰 위기들에 가려 전 세계적으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그러나 이 조용하게 진행된 군사적 증강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에너지와 지정학의 교차로에 선 정권들을 표적으로 삼는 워싱턴의 오래된 패턴 일부다"라고 풀이했다.

 

욜라는 "왜 미국은 베네수엘라, 이란, 러시아에 지속해서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 인도 같은 부상하는 석유 소비국과도 충돌하는가? 답은 옛 에너지 안보, 제재의 논리, 그리고 21세기판 관세 전쟁의 결합에 있다"고 자문자답했다. 특히 확인된 것으론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는 오랜 경제 쇠퇴에도 여전히 글로벌 체스판에서 필수불가결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볼리바르 광장에서 29일 시민들이 미 제국주의에 맞서자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호소에 따라 민병대 입대에 나서고 있다.  2025. 08. 29 [AFP=연합]

 

미, 석유 생산국엔 '제재' 소비국엔 '관세'
"베, 에너지 풍부하나 정치 정당성 취약"

 

욜라는 "초기 냉전에서 걸프전까지, 미국의 힘은 석유와 엮여 있었다...석유의 흐름을 통제하는 자가 세계 경제의 동맥을 통제했다"며 "베네수엘라는 워싱턴의 눈엔 이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에너지는 풍부하나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한 국가 범주에 속한다. 이론적으론 이들 국가가 석유 공급을 무기화하여 미국 주도의 질서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가스회사, 이란의 국영석유회사, 러시아의 거대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트럼프의 제재는 징벌적 성격만 있는 게 아니다. 그는 "경쟁국들의 재정 생명줄을 조이는 동시에 세계 시장엔 미국 셰일 석유의 경쟁력 제고를 겨냥한 경제적 포위의 도구였다"며 "중국, 나아가 인도와의 '관세 전쟁'도 같은 패턴에 속한다. 그건 대체 에너지 파트너십을 약화시키고 무역 흐름을 친미 네트워크로 되돌리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욜라가 보기에, 베네수엘라는 단순한 석유 국가가 아니라, 상징적 전쟁터다. 마두로의 '생존'은 미국엔 러시아, 중국의 보호를 받는다면 마두로 정권이 서방 압력을 견딜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베네수엘라 지원은 러시아와 중국엔 비싸지 않지만, 상징적으론 매우 소중하다. 이에 욜라는 "중남미에서 미국의 패권을 좌절시키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이 베네수엘라 해역에 군함 배치를 발표했을 때 중국은 "주권 침해"라고 규탄한 뒤 공개적으로 마두로 지지를 재확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중앙),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가 23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4. 10. 23 [출처. 게티이미지]

 

트럼프, 제재·관세로 국제석유 시장 장악 시도
"미국 압박에 탈달러 등 대안 모색 가속화"

 

글로벌 석유 시장에서 제재와 관세 두 무기를 함께 구사하는 트럼프의 의도와 관련해 욜라의 설명은 이렇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이란, 러시아에 제재를 가함으로써 글로벌 석유 공급자들의 경기장을 좁힌다. 동시에 인도와 중국 등에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대형 소비자들의 협상력을 억제한다. 욜라는 "그 효과는 미국이 셰일을 통한 에너지 생산자로서는 물론, 금융 제재와 해상 지배를 통한 에너지 교역의 게이트 키퍼(문지기) 역할도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이 전략엔 위험이 따른다. 제재에 맞서 러·중이 루블과 위안화로 석유 거래를 확대하면서 탈달러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값싼 러시아 원유와 미국 압력 사이에 낀 인도는 저울질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국제적 고립에도, 아시아와 물물교환식 거래를 모색 중이다. 과거에 미국의 힘이 됐던 바로 그 압력이 이제는 그 대안들을 배양하고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군사 압박에 그는 1953년 이란 쿠데타, 1990년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제재, 쿠바 해상 봉쇄 등을 역사적 사례로 들며 "석유가 풍부한 적대국들에 대한 워싱턴의 접근법은 새로운 게 아니라, 재활용된 대본"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담은 현수막이 워싱턴D.C. 미 의회 의사당 인근의노동부 청사에 걸려 있다. 2025. 08. 29 [AP=연합]

 

미국의 베네수엘라 해상 포위는 무슨 뜻?
"패권 핵심인 에너지 지정학 포기 못 한다"

 

욜라는 "제재는 정권을 무너뜨리기보다 굳히는 경향이 있다. 관세는 굴복보다는 보복을 촉발하는 일이 잦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두로의 베네수엘라는 "붕괴 직전의 국가라기보다는, 영원히 붕괴를 견디는 국가처럼 보인다. 회복하기엔 너무 약하고 죽기엔 너무 완강하다"라고 논평했다. 그는 "제재는 도덕적 도구로 포장되지만, 현실에선 국가경영의 경제적 수단이다. 관세는 불공정 무역 교정 조치로 정당화되지만, 더 중요한 기능은 전략적 지배의 확보"라고 했다.

 

욜라는 "베네수엘라 해상 포위는 공개 충돌로 비화하진 않겠지만, 워싱턴은 글로벌 패권의 핵심인 에너지 지정학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더 광범위한 패턴을 드러낸다"며 "베네수엘라, 이란, 러시아를 표적으로 삼고, 인도, 중국과는 관세로 싸움으로써 미국은 석유와 무역의 중심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다시 주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욜라는 "문제는 다극화로 더 다가가는 세계에서 이 전략의 지속 가능성 여부다. 제재의 피로도는 커가고, 관세 전쟁으로 동맹들은 긴장하고, 새 금융 인프라들은 서서히 달러 독점을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강대국들이 도를 지나칠 수 있음을 가르친다. 미국은 베네수엘라는 궁지로 몰아넣을 '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 힘의 한계를 비추는 거울이란 교훈을 고통스럽게 배우게 될 위험을 지니고 있다"고 경고했다.  < 이유 기자 >

 

크렘린궁, 푸틴 중국 방문 일정 설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시진핑 중국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계기로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할 예정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도 추진되고 있다고 크렘린궁이 29일(현지시각) 밝혔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진행되는 푸틴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일정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 톈진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베이징으로 이동해 시 주석과 회담을 하고, 9월3일 톈안먼(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행사의 주빈이기 때문에 시 주석의 오른쪽에 앉을 예정이며, 시 주석의 왼쪽에는 김 위원장이 착석한다고 우샤코프 보좌관은 설명했다.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나란히 앉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또 아직 확정되진 않았으나 중국에서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회담할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담이 성사될 경우, 두 정상은 2023년 9월과 지난해 6월 이후 약 1년3개월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방중 기간 동안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등 10여명의 정상과 회담이 예정됐다고 우샤코프 보좌관은 전했다.                                                   < 이정애 기자 >

트럼프의 날강도 깡패짓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 WORLD 2025. 8. 24. 15:2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중국 추격에 동맹국 강탈로 대응하는 미 정부
뒷골목 깡패짓에 굴복 말하는 국힘과 족벌언론
신의 한 수였다는 MASGA, 새로운 족쇄될 수도

정상회담에서 더 많은 청구서 내놓을 트럼프
약육강식으로 가는 국제질서 속 새로운 길 찾기

 

지난 한미 관세 협상은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만이 아니라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강탈도 존재하며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이미 약소국에 대한 침략, 전쟁, 자원과 영토 강탈, 인디언 학살, 흑인 노예 수탈 등을 거치며 세계 최강대국 패권을 얻었던 미국은 오늘날 경쟁 대국인 중국의 매서운 추격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는 지금 제조업의 침체와 무역수지와 연방 예산의 천문학적인 쌍둥이 적자 속에 헤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패권 상실의 위기를 다시 날강도 같은 강탈을 통해 벗어나려 한다. 패권을 과시하면서 이전 동맹국과 표적이 된 상대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관세 전쟁'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는 25일 미국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연합
 

장하준 교수는 트럼프 정권이 보호무역주의로 질주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유치산업 보호는 어린 기업, 약한 기업을 보호하는 것인데 다 늙은 아들에게 다시 돈 대주겠다는 격이다. 그 아들이 그간 빌빌거린 이유는 사업도 제대로 안 하고, 기업에 투자할 돈 다 빼서 놀러 다녀서 그런 거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높은 관세를 강요하는 것은 "동네 깡패들이 가게를 뒤집어엎고 '그동안 내던 돈을 5배로 내라, 10배로 내라’면서 야구 방망이로 집기를 부수고 있는 상황"으로 비유했다. 미국이 이번 관세 협상에서 한국에 요구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제조업 재건을 위해서 한국 제조업 생태계와 산업 기반, 식량주권의 훼손을 감수하라는 강요였다.

 

그리고 한국의 국민의힘과 족벌언론들은 '큰형님 기분 상하지 않게 돈이든, 쌀이든, 쇠고기든 빨리 다 내주자'라고 난리였다. 형식과 내용 모두 뒷골목 깡패를 방불케 하는 미국 트럼프 정권의 무자비한 관세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데, 국내의 정치세력과 족벌언론들은 ‘깡패짓’에 대한 순응과 굴복을 설파했던 셈이다.

 

브라질이나 일본에서는 우익까지 '반미'로 돌아서며 정권을 지지하고 응원하던 것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런데도 지난 관세 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비관적 예상들과는 달리 트럼프 정권에게 상대적으로 덜 뺏기고 쌀과 쇠고기까지 지켜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을 마무리하며 난데없이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라는 입장까지 밝혔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3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협상 막전막후를 전하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마스가 모자를 바라보고 있다. 2025.8.3. KBS뉴스 화면 갈무리

 

이것은 '트럼프가 곧 한국의 부정선거를 지적하며 이재명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있던 이 나라의 '윤어게인' 극우세력들에게 실망과 멘붕을 일으키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여기에는 한국 정부가 비장의 카드로 준비한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마스가)' 제안이 중요했다는 게 많은 이들의 평가다.

 

MASGA라는 조선업 협력 패키지를 제안하고, 약 1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조선업 투자 계획을 제시하면서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미국은 현재 대양 항해 선박을 1척도 만들지 못하는 처지다. 2023년에 중국은 3300만 톤 , 한국은 1800만 톤의 선박을 건조했지만 미국은 6만 4800톤에 불과했다.

 

MASGA는 이처럼 쇠락하는 미국의 해양 패권을 되살릴 수단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물론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당시에 트럼프는 '소아성애 성폭력 범죄자 엡스타인 리스트' 파문으로 심각한 정치적 위기와 마가MAGA 진영의 분열에 직면해 있었다. 한국 협상팀이 그런 상황을 잘 활용했다면 현명한 대응이었다고 평가할만하다.

 

농업시장과 쇠고기 수입 개방을 압박하는 미국에게 한국 협상팀이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항의 시위'의 사진을 보여준 것도 매우 타당하고 효과적인 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출범 한 달 만에 당시 이명박 정부를 퇴진 위기로 내몰며 한미동맹을 뒤흔든 역사적 투쟁이었고, 오늘날 '빛의 혁명'의 뿌리였다고도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노 킹NO KING'을 외치는 반정부 시위의 불길에 시달리고 있던 트럼프는 한국에서 그런 거대한 투쟁이 다시 벌어지고 미국까지 정치적 파장이 끼치는 것을 우려했을 법하다. 하지만 관세 협상은 끝이 아니었고 한미 정상회담이 코 앞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에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한반도 역외로 확장하는 '한미동맹 현대화', 국방비를 GDP 대비 5% 증액, 주한미군 분담금 100억 달러로 인상 등을 요구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관한 정상회담을 연 뒤에 가진 합동기자회견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알래스카 앵커리지 2025.8.15. AFP 연합
 

트럼프의 이러한 '안보 청구서'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한국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에 동참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에 더욱 종속될 것이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그것은 대중국 경제 협력에도 타격을 가하면서 후유증과 악영향을 낳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관세 협상에서 '신의 한 수'로 평가하는 MASGA 제안은 역설적으로 이미 거기에 끌려간 측면이 있다.

 

MASGA 프로젝트에는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립, 군함 유지보수 및 조선 공급망 재구축 등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통해서 한국은 미국의 군사 전략 및 방산 시스템에 더 깊숙이 편입되며 미국 국방 산업의 하위 파트너가 될 위험이 존재한다. 미국의 군사적 필요에 따라 한국의 산업 역량이 동원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이 만든 선박이 미군 작전에 쓰일 경우 군사적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경고했다. 특히 MASGA 프로젝트의 주력 기업인 HD현대는 이미 미국의 첨단 방산 기업인 '팔란티어'Palantir와 협력하고 있는데, 팔란티어는 군함의 작전 운용과 군수 지원 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투자를 받아 설립된 팔란티어는 미국 세계 패권과 군사 전략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최근에는 AI·자동화 기술을 기반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악명 높다. 결국 한국의 조선 및 방위 산업이 팔란티어를 매개로 미군의 군사 전략에 종속되면, 그것의 부작용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감당 어려운 수준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매우 힘겨운 고비로 다가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국내에서 '이재명은 반미주의자'라고 낙인찍는 족벌언론과 국민의힘의 방해 속에서 막무가내로 날강도처럼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우기는 트럼프를 상대해야 한다. 국내외 정세가 만들어내는 틈을 최대한 이용하고, 모든 협상의 기술을 활용하면서 최대한 덜 뺏기고 지키며, 조금이라도 더 얻어와야 할 처지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다른 무역 상대를 찾겠다고 답하는 멕시코 셰인바움 대통령 - 방송 화면 갈무리 

 

물론, '규칙에 기반한 세계 질서'나 '자유무역과 세계화'라는 그럴듯한 간판과 신화마저 팽개치고 노골적인 강탈적 제국주의의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트럼프의 시대가 계속 이런 식으로 유지될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은 트럼프가 바라는 미국 제조업 부흥, 쌍둥이 적자 해결, 중국 추격의 봉쇄가 아니라 미국 패권의 더 급속한 쇠락만 낳을 수가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관세 전쟁'에서 막상 중국에 대해서는 쩔쩔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제조업 부흥과 제품 공급망을 위한 핵심 요소인 희토류에 대한 중국의 수출 제한 카드가 등장하자 곧바로 관세 압박을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더욱더 힘없고 만만한 국가들에 대한 협박과 강탈에 나서고 있다.

 

이것은 국제질서를 더욱 약육강식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보듯이 1차 대전 이전에나 있었던 무력을 통한 영토 강탈과 강대국들의 거래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트럼프가 결국 제국주의 시대의 부활을 꿈꾸며 타국을 침략하게 될지 모른다'라는 섬뜩한 예측까지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협상 기술만이 아니라 강대국들에 협박과 압박에 맞서는 국가들의 협력과 세계 남반구 민중의 더 큰 연대일 수 있다. 예컨대 남미의 대표적인 진보 정부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미국과의 경제 관계는 중요하지만 우리는 강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주권국가다.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위협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맞서고 있다. 

 

올해 3월에 미국의 관세 압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조직하고 그것을 트위터에 게시한 멕시코 셰인바움 대통령  

 

그러면서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유럽(EU–메르코수르), 브릭스BRICS, 기타 신흥시장(아세안 등)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서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앞마당'으로 불려온 멕시코 진보정부의 여성 대통령인 셰인바움도 "대화는 하되 끌려다니지 않겠다"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셰인바움은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부르자'라는 트럼프에게 "미국의 국호를 멕시코 아메리카로 바꾸는 건 어떠냐"라고 응수한 바 있다.

 

특히 미국의 관세 압박이 가장 심각했던 지난 3월에는 수도 멕시코시티의 대형 광장에서 수만 명이 참가한 집회를 열어서 미국의 압박에 저항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20년 전 '반미 집회'의 사진을 보여주던 한국 정부 협상팀의 방식보다 한 발 더 나갔던 셈이다. 또한 캐나다나 중국 등과의 무역 연계를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주도하던 '대서양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이제 파산하고 있다. 이미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막기는커녕 그것을 지원하고 묵인하면서 '민주주의와 인도주의'라는 명분과 가면은 벗겨지고 있었다. 트럼프 시대에는 그것의 마지막 유산까지 사라지고 있다. 이럴수록 과거의 동맹과 외교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롭고 대담한 접근이 필요해지고 있다.                                              < 전지윤 기자 >

 

13차례 방류 불구…오염수는 원전 폐로 때까지 끊임없이 발생

 

 
 
지난 2023년 8월24일 일본 후쿠시마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관계자들이 바닷물로 희석한 방사성 물질 오염수가 해저터널로 흘러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교도통신 연합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오염수 10만여톤이 해양 방류 개시 2년 만에 바다로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오염수는 원전 폐로 때까지 끊임없이 발생하는 데다 이를 희석시키는 약품이 또다른 방사성 물질을 만들어내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 누리집을 보면, 제1원전 오염수는 지난 2023년 8월24일 첫 방류를 시작한 이후 2년 동안 10만1870톤이 바다로 흘러나갔다. 방류 첫해 3만여톤, 이듬해 5만5천톤, 올해 8월까지 1만6천여톤이 방류됐다. 도쿄전력은 주로 봄~가을에 한달여 간격으로 오염수를 바다로 내보내는, 지금까지 한차례 7800여톤씩 모두 13차례 방류를 완료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로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을 인체에 무해한 수준까지 제거해 바다에 방류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방류 개시 2년이 지나도록 각종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선 한국과 중국 정부는 여전히 오염수 안전성을 우려해 일본 일부 지역의 수산물 수입을 차단하고 있다. 때마침 열린 한·일 정상회담 과정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를 포함한 8개 현의 수산물 수입 규제 조처 해제를 한국에 요구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일본 수산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며 선을 그었다.

 

원자로 안에서 오염수가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누적량이 거의 줄지 않는 것도 문제다. 애초 후쿠시마 원전 내 저장탱크에 오염수는 해양 방출 개시 전 134만5천톤이었는데, 2년이 지난 뒤 5만6천톤밖에 줄지 않았다. 원전 내부에 880톤가량 남은 것으로 추정되는 핵연료 잔해(데브리)가 지하수나 빗물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면서, 매일 오염수가 70톤씩 발생하고 있다. 원전이 폐로되지 않으면 악순환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원전 안에 오염수 저장용기 4768기 가운데 94%가 채워져 포화 상태에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애초 원전 최종 폐로 일정을 2051년으로 잡았지만,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오염수를 방류하기 위해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에 또다른 오염물질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약품들이 불순물을 만들어 또 다른 ‘진흙 형태의 고농도 방사성 물질’(오염 슬러지)을 만들어내고 있다. 도쿄신문은 이날 “도쿄전력이 오염 슬러지 발생을 고려해 저장용기를 6백기가량 추가 설치하는 게 가능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기존 용기 자체도 이미 노후화해 교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한·일 환경단체들도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 ‘사요나라 원전 1000만인 액션’은 이날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집회를 열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2051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가 있다”며 “바다는 방사능 쓰레기장이 아니며 생명의 근원인 바다를 더는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한국에서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민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헌법소원변호단 등 단체들로 꾸려진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 중단을 요구하는 방일투쟁단’이 이날 집회를 찾아 연대에 나섰다. 최예용 한국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한겨레에 “지난 23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의 수산물 수입규제 철폐 요구를 비껴갔지만 후쿠시마 핵폐수(오염수) 해양 투기를 멈추라는 논의를 못 한 점은 아쉽다”며 “한국 정부도 국제협력을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해결을 설득하고, 인류 공동의 미래이자 자산인 바다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 도쿄/홍석재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