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하마스 무장해제·이스라엘 철군 일정 요구 사우디 "그 이전엔 가자 재건 자금 못 대" 인도네시아, 가자 ISF에 병력 파견 약속
옵저버 한국 외무부 "전투 임무엔 참여하지 않을 것" 유럽국 대다수 불참…한국은 "검토 중"
이스라엘, 휴전 합의 위반해 가자 공습 휴전 이후만도 팔 사망자 600명 넘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평화위원회'(BoP)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평화 방안을 논의하고자 19일 워싱턴D.C에서 첫 회의를 개최한다.
작년 10월 카타르, 이집트와 함께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중재해 자신의 가자 지구 평화 구상 1단계인 휴전 합의와 인질·수감자 교환을 끌어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폐허가 된 가자의 재건이란 평화 구상 2단계 실행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상황은 전혀 녹록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회의를 계기로 '평화위원회'(BoP) 출범식을 갖고 연설하고 있다. 2026. 01. 22 [UPI=연합]
'유엔 대체' 의도 지닌 '트럼프 평화위'
유럽국 대다수 불참…한국은 "검토 중"
가장 큰 문제는 이 '평화위원회'의 불투명한 정체다. 트럼프는 당초 이 위원회를 가자 전쟁 종식과 재건이 완료될 때까지 가자를 통치할 최고 의사 결정 기구라고 밝혔지만, 실제론 가자 뿐 아니라 모든 국제 분쟁에 관여하는 사실상의 유엔 대체 기구로 변질시키고 있어서다. 트럼프가 지난달 각국 정상들에게 보낸 가입 초청장에 첨부된 평화위 헌장엔 '가자'란 표현이 없었다. 또한 본인에게 '종신 의장직'을 부여해 이 기구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그러자 예전 같으면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섰어야 할 서방 진영 국가 대다수가 참여를 거부하거나 관망하고 있는 상태다.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교황청이 불참을 통보한 대표적 유럽 국가다.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출범한 '평화위원회'에는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이집트·요르단·바레인·튀르키예·파키스탄·카자흐스탄·인도네시아·베트남·몽골·우즈베키스탄·아르헨티나·파라과이·헝가리·불가리아·알바니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코소보, 그리고 이스라엘 등 20여 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20일 미국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뒤 외교부 당국자의 말을 빌어 어떤 국가들이 참여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판단할 수 있을듯하다.…시간을 가지고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는 회의 하루 전인 18일까지 참여 여부에 대한 추가적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첫 회의에 가입은 보류한 채 가자재건지원 담당 대사를 파견하기로 했다.
이른바 '트럼프 평화위'는 가자 지구 재건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개혁 프로그램 완료 때까지 가자 주민에게 일상의 서비스와 행정을 제공하는 팔레스타인 기술관료 중심의 실무기구인 가자행정국가위원회(NCAG)를 감독한다.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8일 영국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헤어지고 있다. 2025. 12. 08 [EPA=연합]
아랍권, 명확한 무장해제·철군 일정 요구 사우디 "그 이전엔 가자 재건 자금 못 대"
다음은 앞으로 이 위원회가 풀어야 할 과제의 방대함과 복잡성이다. 가자 재건과 안정화를 위해 하마스의 무장해제, 이스라엘의 철군, 국제안정화군(ISF) 병력 배치와 팔레스타인 경찰력 도입 문제 등이 서로 연계돼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여기에 예민한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 문제도 얽혀 있다.
사실상 트럼프의 우격다짐에 밀려 아랍과 이슬람권 국가들이 대거 동참했지만 하마스의 무장해제 합의와 가자에서 이스라엘의 완전한 철군 일정 없이는 국제안정화군에 병력 파견이나 가자 재건에 자금 투입을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ISF는 가자지구에 안보나 치안 공백이 없도록 접경지대를 지키고 팔레스타인 경찰력 강화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창설되는 다국적군이다.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사우디의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무장관은 13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을 통해 "우리는 분쟁의 진짜 종식을 봐야 한다. 이스라엘이 언제 철수할지, 하마스는 언제 무장해제 할지, 모두가 20개 항 계획(트럼프 평화 구상)의 모든 항목을 언제 준수할지에 대한 명확성이 필요하다"라면서 사우디는 그 이전에 가자 재건 자금을 댈 수 없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 차량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2024. 11. 09 [로이터=연합]
인도네시아, 가자 ISF에 병력 파견 약속 외무부 "전투 임무엔 참여하지 않을 것"
앞서 트럼프는 15일 본인의 트루스 소셜을 통해 평화위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가자의 인도적 지원과 재건을 위해 50억 달러(약 7조2000억 원)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세계은행, 유럽연합(EU), 유엔이 작년 2월에 공동 발표한 보고서가 가자의 완전한 회복과 재건에 50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던 것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가자 국제안정화군 병력 파견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맨 먼저 나섰다. 이르면 4월부터 시작해 6월까지 다양한 병과로 구성된 최대 8000명 규모의 여단 병력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가자 파견 병력은 하마스 등 현지 무장단체들과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전투 임무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무부는 "민간인 보호, 인도적 및 보건 지원, 재건, 그리고 팔레스타인 경찰의 역량 강화 및 훈련에 집중될 것"이라면서 팔 자치정부의 승인도 요청했다.
결국 이번 회의에서 트럼프가 검증이 가능한 하마스의 무장해제 방안과 명문화된 이스라엘의 철군 일정에 관한 청사진을 동시에 제시하지 못하면 '트럼프 평화위'는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17일 가자 남부 칸 유니스 해변에 팔레스타인 예술가 야지드 아부 자라드가 '환영한다, 라마단'이라는 문구를 모래에 새겨 넣었다. 아부 자라드는 전쟁으로 인해 가자 북부 베이트 라히아에 있는 집을 떠나 남부로 피난했다.2026. 02. 17 [EPA=연합
이스라엘, 휴전 위반해 가자 공습, 드론 공격 작년 10월 휴전 이후 팔 사망자 600명 넘어
작년 10월 휴전에도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휴전 이후 줄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은 휴전을 위반해 거의 매일 공습과 드론 공격을 가했으며, 휴전 이후 사망자만 600명이 넘었다. 인도적 지원의 선택적 허용과 접경지대 검문소 통제 등을 통해 가자 주민을 여전히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 이스라엘은 또한 팔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정착민들의 폭력을 방조하면서 서안 합병 작업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트럼프가 이런 이스라엘의 휴전 위반과 서안 합병 추진 행위들에 눈감고 계속 이스라엘을 두둔한다면 아랍과 이슬람권 국가들은 평화위에서 탈퇴하라는 국내 비판 여론의 압박에 노출될 공산이 크다.
하마스는 현재 이스라엘의 봉쇄와 공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저항할 권리가 있다며 완전한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권총 등은 보유하되 중화기는 해체할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 일부에선 하마스 요원들에게 무기 반납 대가로 보상금과 면죄부를 주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 정권은 하마스의 완전한 무장해제를 거듭 요구하고, 60일간 무장해제를 하지 않으면 군사 공격을 재개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도 15일 본인의 트루스 소셜을 통해 "하마스가 완전하고 즉각적인 무장해제 약속을 지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썼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5일 예루살렘에서 열린 '주요 미국 유대인 기구 의장 협의회'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6. 02. 15 [UPI=연합]
"트럼프, 평화 구상 2단계 시작하려면, 이스라엘 네타냐후의 팔도 비틀어야"
싱가포르라자트남 국제학대학원 선임 연구원인 제임스 도르시 박사는 16일 자 유라시아리뷰 기고에서 "지금까지 트럼프는 하마스가 무장해제에 실패하면 끔찍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위협하며 하마스를 압박해왔지만, 이스라엘의 휴전 위반에는 눈을 감아왔다"면서 "평화 구상의 2단계를 시작하려면 트럼프는 하마스뿐 아니라 네타냐후의 팔도 비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르시는 "이미 많은 이들은 이 위원회를 팔레스타인의 이익이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가자 공격을 재개한다면 아랍과 무슬림 다수의 국가들은 평화위에서 탈퇴하라는 대중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 이유 기자 >
1968년 멘토인 킹 목사 암살 옆에서 지켜봐 흑인들 삶 개선,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데 앞장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나서
시리아, 쿠바 등에 억류된 인질 석방에도 보탬 '흑인 목숨도 소중' 시위에도, 경찰을 강력 규탄 트럼프와 민주당 전직 대통령들 일제히 애도
마틴 루터 킹(오른쪽 두 번째)이 암살되기 하루 전인 1968년 4월 3일(현지시간) 멤피스 호텔 발코니에 호사 윌리엄스(왼쪽), 제시 잭슨(왼쪽 두 번째), 랄프 앨버너시와 함께 서 있다. AP 자료사진
미국 흑인 민권 운동에 앞장섰던 제시 잭슨 목사가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1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고인이 이날 아침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전하며 "우리 아버지는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억압 받고 목소리 없는 이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소외된 이들을 섬기는 리더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시 잭슨 목사. 뉴욕타임스 2월 17일
잭슨 목사는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민권을 위해 싸웠고, 1984년과 1988년 두 차례나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경쟁에 뛰어들었다. 앤서니 저커 BBC 기자는 고인이 킹 목사의 애제자로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개선하는 데 힘쓰는 일로 경력을 쌓았으며, 두 차례의 백악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전국적인 지도자가 됐다고 적었다.
잭슨 목사가 1984년 첫 대선 유세 당시 뉴올리언스의 루이지애나 슈퍼돔에서 흑인 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그는 그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의 지지층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 저주받은 사람들, 상속권을 박탈당한 사람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 멸시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2월 17일
그는 2017년 파킨슨씨 병 진단을 받았으며 지난해 11월 퇴행성 진단을 받은 뒤 입원 치료 중이었다.
잭슨 목사는 멘토였던 킹 목사가 주도한 1960년대의 민권 운동 시절부터 흑인과 소외 계층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 왔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1971년 흑인 민권 단체 ‘오퍼레이션 브래드바스켓(푸시)’을, 1984년에는 여성 권익과 성소수자 권익까지 아우르는 단체 ‘전미 레인보우 연합’을 각각 설립했다. 두 단체는 1996년 ‘레인보우푸시연합(RPC)’으로 합병됐다.
잭슨 목사는 2023년 RPC 회장 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50년 이상 단체를 이끌며 인권 운동에 투신했다. 공식 직함은 없었지만 시리아, 쿠바, 이라크, 세르비아 등 해외에 억류된 미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의 석방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 민권 관련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는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를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때 경찰의 가혹 행위를 강력 규탄하기도 했다.재작년에는 위스콘신주 라신을 방문해 젊은이들의 대선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지난해에는 '타깃'(Target)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프로그램을 축소하자 해당 기업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2016년의 제시 잭슨 목사. 연합
본명은 제시 루이스 번스. 1941년 10월 8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태어났다. 모친 헬렌 번스는 열여섯 살이었고, 부친 노아 루이스 로빈슨은 프로 권투 선수 출신 유부남이었다. 제시가 두 살 때 헬렌은 찰스 잭슨과 결혼했다. 제시는 열세 살 때까지 조모 매틸다와 함께 살았다. 그러고나서 제시는 찰스 잭슨의 집에 1957년 의붓아들로 입양됐다.
그린빌의 스털링 고등학교에서 잭슨은 마이너리그 야구선수 계약과 빅텐 미식축구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졸업했다. 그는 쿼터백으로 활약하고,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 대학으로 전학가기 전에 일리노이 대학 어배너-섐페인에서 1년을 보냈다. 1964년 사회학 학위를 받고 졸업할 무렵, 동급생 재클린 브라운과 결혼해 다섯 자녀 가운데 첫째를 맞았다.
잭슨은 1966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남부 기독교 지도자 회의(SCLC)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했다. 2년 뒤 킹 목사가 암살당하자 그의 뜻을 이어받고자 했다. 뉴욕타임스 2월 17일
대학을 마친 뒤 시카고의 신학교에서 신학 전공들을 시작했고 킹 목사를 지원하는 학생들을 조직했다. 1965년 3월 잭슨은 킹 목사와 함께 역사적인 셀마 몽고메리 행진을 위해 앨라배마주로 여행을 떠났다. 1년 후 그는 남부기독교지도회의를 전담하겠다며 신학교를 그만 뒀다.
1968년 킹 목사가 암살돼 스러졌을 때 그 곁을 지켰다. 당시 함께 한 랄프 앨버너시와 함께 남부기독교지도회의를 누가 이끌지를 놓고 경쟁했다.
인질 석방에 그가 기여한 것을 높이 산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7년 잭슨을 아프리카 특별 교섭인으로 임명했다. 일각에서는 잭슨이 세 번째 대선 출마를 포기한 데 대한 보상으로 2000년 대통령 자유 훈장이 수여됐다고 보기도 했다. 2001년 잭슨은 직원의 불륜 행각과 공금 유용 등의 혐의를 인정한 뒤 잠시 남부기독교지도회의를 물러나기도 했다.
오바마의 정책들을 비판하긴 했어도 잭슨은 오바마의 2008년 대선 승리를 이끈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오바마 선거의 밤에 잭슨은 무대에 올라 킹 목사와 민권운동을 위한 분투에서 숨진 이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잭슨 목사는 2008년 11월 4일 밤,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 군중들과 함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는 소식을 축하하며 눈물을 흘렸다. 잭슨 목사는 두 번이나 대통령직에 도전했다. 뉴욕타임스 2월 17일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언어의 힘과 비범한 에너지, 그리고 야망을 통해 인종적으로 모호했던 시대, 짐 크로우 법이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흑인의 정치적 권력이 현실보다는 열망에 가까웠던 시대에 도덕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고인을 탐탁치 않게 봤던 이들은 그가 킹 목사처럼 되고 싶어 안달했다고 봤다. 자신의 삶을 신화로 만들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사회의 주변부에 있던 유색인종과 소외 계층을 포용하는 연합체가 이제 전면에 나서서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비전을 설파했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다인종 연합이라는 그의 비전은 민주당 진보 진영의 핵심 사상으로 남아 있으며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같은 단체에 영감을 줬다.
자만심, 카리스마, 언론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능력은 남부기독교지도회의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그의 야망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고 킹 목사와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졌다.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클레이본 카슨 교수는 잭슨이 두 시대 사이에 끼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즉, 킹 목사처럼 명실상부 영웅적인 인물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고, 버락 오바마처럼 정치 최고위직에서 성공하기에는 너무 일렀다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보다는 도덕적 지도자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잭슨 목사는 1986년 전두환 정권에 민주화를 촉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고, 32년 만인 2018년 두 번째로 찾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나는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그를 잘 알았다"며 "그는 강한 개성과 투지, 실용적 지식(street smarts)을 지닌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사교적이었으며,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제시는 그 이전에도 보기 드문 자연 같은 존재(force of nature)였다"고 칭송했다. 대자연처럼 거스르기 힘든 영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는 뜻인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과 관련해 "그(잭슨 목사)는 오바마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으나, 인정받거나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오바마는 제시가 견딜 수 없었던 인물"이라고 했다.
또한 자신이 잭슨 목사에게 여러 도움을 준 것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극좌의 악당과 미치광이들, 모든 민주당원들이 나를 거짓으로 일관되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했지만, 나는 항상 제시를 돕는 게 기뻤다"며 "월스트리트 40번지의 트럼프 빌딩에 수년간 그와 그의 레인보우 연합을 위한 사무 공간을 제공했다"고 했다.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도 당연히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엑스(X)에 올린 성명을 통해 "수십년에 걸친 우리의 우정과 협력 속에서 나는 잭슨 목사를 역사가 그를 기억하는 대로 알고 있다"며 "신의 사람이자 국민의 사람, 단호하고 끈질긴, 우리나라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맞붙은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엑스에 젊은 법대생 시절 자신의 차에 '제시 잭슨을 대통령으로'(Jesse Jackson for President)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는 일화를 전했다. 해리스 전 부통령은 "내 경력을 통틀어 그와 함께 협력하며 배울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올해 1월 함께한 시간에 매우 감사하다"며 "잭슨 목사는 저와 다른 많은 이들에게 이타적 지도자이자 멘토,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내) 미셸과 나는 진정한 거인, 잭슨 목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역사적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내가 이 나라 최고위 직책에 도전하는 캠페인의 토대를 깔았다"고 애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60년 이상 잭슨 목사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운동을 이끌었다"면서 "우리는 그의 어깨 위에 서 있다"고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공동으로 낸 성명에서 두 사람이 잭슨 목사와 리틀 록 센트럴 고등학교가 백인 전용에서 흑인 학생을 통합하는 학교로 바뀐 지 20년이 되던 해인 1977년에 처음 만나 거의 50년 간 친구로 지냈다고 돌아봤다.
클린턴 부부는 또 "잭슨 목사는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며 "더 나은 미국과 더 밝은 미래를 위한 일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흑인, 라티노, 아시안, 그리고 저소득 백인 미국인의 문제를 위해 싸웠다"고 평가했다.
< 임병선 기자 >
미국 흑인·인권 운동의 별 제시 잭슨 목사 별세…한국 민주화도 지지
제시 잭슨 목사가 2018년 방한 당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미국의 저명한 흑인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17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향년 84.
유족은 성명에서 잭슨 목사의 부고를 알리며 “아버지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 목소리 없는 이들을 섬기는 지도자였다”고 추모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앞서 잭슨 목사는 201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잭슨 목사는 그의 멘토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주도한 1960년대 민권 운동 시절부터 미국 흑인과 소외 계층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 왔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1971년 흑인 민권 단체 ‘오퍼레이션 푸시'를, 1984년에 여성 권익과 성소수자 권익까지 아우르는 민권 단체 ‘전미 무지개 연합'을 각각 설립했다. 두 단체는 1996년 ‘레인보우푸시연합(RPC)'으로 합쳐져 미국 내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거듭났다. 잭슨 목사는 2023년 RPC 회장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50년 이상 단체를 이끌며 인권 운동에 투신했다.
인종, 성, 종교를 뛰어넘어 소외된 이들을 결집한 무지개 연합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대선 승리를 뒷받침한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잭슨 목사는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해 흑인 유권자들과 백인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끌어내며 선전하기도 했다.
탁월한 연설과 실천으로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에 앞장서 온 그는 비공식적인 외교로도 유명했다. 공식적인 직함은 없었지만 그는 시리아, 쿠바, 이라크, 세르비아 등 해외 분쟁지에 억류된 미국인과 타국인들의 석방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잭슨 목사는 말년에도 꾸준히 흑인 인권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2020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를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때 경찰의 가혹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기도 했다.
1986년 방한한 제시 잭슨 목사가 야당 지도자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한국과 인연도 깊다. 잭슨 목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6년 한국을 방문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고 가택연금 상태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국의 넬슨 만델라'(세계적 인권 운동가이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로 부르며 지지를 표했다. 잭슨 목사는 2018년 두 번째 방한 때는 한국 정치권, 종교계 등과 폭넓게 교류하며 한반도에 평화 메시지를 전했다. < 박민희 기자 >
일본 집권 자민당이 8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개헌안 발의선인 의석수 3분의 2를 훌쩍 넘어섰다.
9일 교도통신과 NHK에 따르면 자민당은 316석, 연립 여당 일본유신회는 36석을 얻었다. 여기에 개헌에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제2야당 국민민주당과 우익 성향 야당 참정당도 각각 28석, 15석을 확보했다.
개헌에 우호적인 이들 정당의 의석수 합계는 310석을 훨씬 상회하는 395석에 달한다. 선거 직전에는 261석이었다.
일본에서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중의원 전체 의석수는 465석이며, 개헌안 발의선은 310석이다.
앞서 자민당과 유신회는 작년 10월 새로운 연립정권을 구성하며 개헌 추진에 합의했다.
양당은 당시 헌법 9조와 긴급사태 조항 관련 개정을 위해 조문 기초(起草·초안을 잡음) 협의회를 설치하고, 국회 헌법심사회에도 조문 기초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자민당은 총선 이후 중의원 헌법심사회장 자리를 탈환해 헌법 개정 논의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개헌 논의의 핵심은 헌법 9조다. 헌법 9조는 전쟁과 무력행사의 영구 포기, 전력(戰力) 보유 금지, 교전권 부인을 규정한 ‘평화헌법’의 근간이다. 자민당은 사실상 군대 역할을 하는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일 유세에서 “헌법에 왜 자위대를 적으면 안 되는가”라며 “그들의 긍지를 지키고 (자위대를) 확실한 실력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 공약에서 “국제 정세가 격동하는 지금, 시대에 맞게 현행 헌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신회는 한발 더 나아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삭제, 집단 자위권 용인과 국방군 존재 명기 등을 주장하고 있다.
야당 중에서 개헌에 긍정적인 국민민주당은 자위권 행사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견해를 총선 공약에 담았고, 참정당은 자위권을 위한 군대 보유를 명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제1야당인 중도개혁 연합은 헌법 9조 변경에 대체로 반대하고 있다. 공산당, 레이와신센구미, 팀미라이 등 나머지 군소 야당들도 헌법 개정에 반대하거나 평화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개헌 세력이 중의원에서 압도적 다수를 점하면서 헌법 9조 개정 논의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 개헌으로 이어질 경우 일본은 태평양전쟁 종전 80여년 만에 사실상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관건은 2028년 여름에 치러질 참의원 선거다.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참의원에서도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현재 자민당과 유신회 의석수는 전체 248석 중 120석으로 과반에 못 미친다. 국민민주당과 참정당 의석수를 합해도 3분의 2를 채우지 못한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자민당의 압승으로 개헌 논의가 빨라질 수는 있지만, 참의원에서도 개헌 세력이 3분의 2를 차지하지 못하면 개헌안을 발의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 이영경 기자 >
트럼프 “훌륭한 일본 국민, 언제나 강력히 지지”…‘다카이치 압승’ 축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AP 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연립 여당의 총선 압승에 대해 “역사적인 승리”라며 찬사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오늘 매우 중요한 투표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그의 연립여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을 축하한다”며 “그는 일본에서 매우 존경받고 인기 있는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카이치 총리가 조기 총선을 결정한 것을 두고 “대담하고 현명한 결정이 큰 성과로 이어졌다”고 치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의 정당이 이제 의회를 장악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역사적인 3분의 2 초대형 의석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헌법 개정안 발의가 가능한 의석수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다카이치 총리를 지지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다카이치 총리와 그의 연립여당에 대해 공식 지지를 선언(endorse)했던 것은 나의 영광이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미·일 관계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는 “보수적 가치와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라는 의제를 입법으로 추진하는 데 큰 성공이 있기를 기원한다”며 두 정상 간의 이념적 유대감을 과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토록 열광적으로 투표에 참여한 훌륭한 일본 국민은 언제나 나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미·일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 미·일 보수 진영 간 정치·안보 공조가 한층 강화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 김원철 기자 >
미 언론 “일 총선, 미국에 희소식···‘중국 위협’이 다카이치 도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AFP연합
미국의 주요 신문들은 일본 집권 자민당이 중의원 3분의 2 이상 의석을 차지한 8일(현지시간) 총선 결과가 “미국에 희소식”이라고 평가하면서 중국과의 갈등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에게 정치적 호재가 됐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사설에서 일“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경우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게 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진실을 밝힌 다카이치에게 수출과 관광 등 제재로 벌을 주려했던 중국에게도 ‘공(功)’이 있다”며 “(일본에 대한) 중국의 괴롭힘은 대만, 호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역효과를 냈다”고 지적했다.
WSJ는 이어 “다카이치는 자민당의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파벌 출신”이라며 “그녀는 방위지출 확대를 선호하는데, 그것은 중국의 광대한 군비 확장을 감안할 때 시급히 필요한 것”이라고 썼다.
이어 “최고의 소식은 자민당의 확고한 다수당 지위가 다카이치에게 권한을 갖고 통치할 재량을 부여한다는 점”이라며 “미국과 자유세계는 중국 공산당의 제국주의 야심에 맞선 동맹으로서 강하고 자신감있는 일본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WP)도 사설에서 일본 총선 결과가 “중국이 주는 실존적 위협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증가하는 각성을 반영한다”며 “일본인들은 다카이치가 대만에 대한 중국의 공격이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함으로써 중국의 시진핑에 정면으로 맞선 뒤 다카이치 주위에 결집했다”고 평가했다.
WP는 이어 “다카이치의 성공은 미국을 위해 희소식이며, 미국은 그녀의 성공을 도울 수 있다”며 다카이치 총리의 일본 방위지출 확대, 공격용 군사역량 확대, 살상무기 수출금지 해제 등 매파적 안보정책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총선 압승으로 일본 여당이 의회에서 힘있는 다수당 자리를 차지하게 된 상황은 “다카이치가 2차대전 이후 일본 헌법에 들어가 있던 평화헌법 조문을 폐지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며 “그녀의 어젠다가 의회를 통과하면 일본은 중국에 맞서기 위한 더 많은 안보 부담을 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WP는 다카이치 총리의 확장적 재정 정책에 대해서는 우려를 제기했다. 대규모 재정지출이 일본의 국가 부채를 더욱 악화시켜 장기적으로 방위비 증액의 재원 마련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은 전체 465석 가운데 316석을 확보해 개헌안 발의선이자 전체 의석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310석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전후 일본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역사적 대승으로 평가된다. < 이영경 기자 >
‘개헌 발의 의석’ 확보한 다카이치 “내 정책, 국민 판단 받고 싶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8일 자민당 본부에서 중의원 선거 당선자 이름 위에 빨간 종이 장미를 붙이고 있다. AFP 연합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를 겸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8일 중의원(하원) 총선거에서 사실상 압승을 확정한 뒤 “(총리 취임 뒤) 정부 경제 재정 정책을 크게 전환하고, 책임 있는 적극적 재정을 주장한 것에 대해 반드시 심판을 받고 싶었으며 향후 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아 위기 관리 투자와 성장 투자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번 ‘중의원 해산 뒤 총선거'를 결단한 배경과 관련해 ”자민당과 일본유신회의 연립 정권, 그리고 (새 정부가 내세운) 완전히 새로운 공약에 대해 국민들께 물어야한다고 생각했다”며 “지난해 임시국회는 물가 상승 대책이 최우선 과제였던 만큼 불가피하게 우선 추가경정예산안 등을 마무리한 뒤 가능한 한 빠른 시점에 국민들 뜻을 묻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던지 승부수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성공’으로 결론났다. 이날 오후 8시 투표 종료와 함께 발표된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출구조사를 보면, 일본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중의원 전체 465석 가운데 최소 300석 이상, 최대 전체 의석의 80% 가까이 확보할 것이란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최대 예상 의석수가 328석, 최소 274석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날 선거 개표가 2시간 가량 지난 시점에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을 넘겼고, 밤 11시가 되기 전에 개헌 발의 정족수인 310석을 확정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에 따라 중의원 해산 결정과 함께 이전 정부를 해산했던 다카이치 총리도 조만간 열리는 국회 총리 선출 선거에서 연임이 확실하다. 그는 새 정부 진용과 관련해 “현재 정부 각료은 좋은 팀을 꾸려왔고, 불과 3개월 남짓 일하면서도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낸 만큼 (내각 틀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연립정부를 꾸리고 있는 일본유신회에서 각료 1명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관해서는 고려를 해보겠다는 입장을 냈다. 자민당은 일본유신회 이전에 장기간 연립을 꾸렸던 공명당과는 주로 국토교통성 쪽 장관을 받는 형식으로 연립정부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새로 연립 관계를 맺은 일본유신회는 어수선한 자민당 상황 등을 고려해 자민당의 각료 파견 제안을 보류해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유신회가 (연립여당으로서) 내각의 책임도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얘기해왔고, 그런 뜻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선거를 결단하고, 사실상 자민당에서 ‘원톱’ 구실로 완승을 이끈 다카이치 총리가 향후 정책 추진에 강력한 동력을 얻게 됐다. 그는 민생 과제 가운데 소비세 인하 요구와 관련해 “선거 운동 과정에 당수 토론 등에서 나온 내용을 보면 대체로 식료품 소비세율을 0%로 해달라는 등 소비세를 낮추는 방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자민당도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가속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이제까지 다른 당에서 내놓은 제안을 비롯해 제가 주장왔던 내용들에 대해 다른 당의 협력을 호소하며 유연하게 실현해 나가고 싶다”며 야당과 협력을 강조했다. < 홍석재 기자 >
50여 년 만에 핵 보유 제한 없어진 미국 · 러시아 중국을 핵군축 협상에 끼워넣으려는 트럼프 계산 핵탄두 수를 90%까지 줄인 핵군축 조약 끝나 트럼프 2.0과 함께 핵군비경쟁도 2.0으로 부활?
미국 정부는 6일 중국이 2020년 6월 비밀리에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1996년에 마지막으로 지하 핵실험을 한 이후 지금까지 실제 핵폭발을 수반하는 핵실험을 한 적이 없다고 얘기해 왔다. 토머스 디나노 미국 국무차관은 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군축회의에서, 중국이 2020년 6월 22일 핵실험에 따른 지진 측정 등을 통한 감시효과를 낮추는 ‘디커플링’ 방식으로 몰래 실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군비관리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협상에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도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4월 8일 프라하 성에서 역사적인 핵 군축 조약 서명 후 기자회견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러시아는 2026년 2월 4일, 미국과의 마지막 핵 조약이 2월 5일 만료될 경우 "책임감 있게"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조약의 파기 가능성은 양국 간 새로운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2010년에 체결된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은 각국이 배치할 수 있는 핵탄두 수를 제한했다. 2026.2.5. AFP 연합)
‘뉴스타트’ 종결로 “지구 멸망까지 85초”
지난 5일 미국과 러시아간 핵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 New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 ‘뉴스타트’)이 종료됐다. 이로써 1972년 미국과 당시 소련이 제1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1/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Treaty) 체결을 통해 핵군축을 시작한 지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보유량에 대한 제한이 없어지게 됐다. 핵무기 경쟁이 다시 시작되고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커졌다.
미국 과학 학술지 ‘원자력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는 지구 멸망까지 남은 시간은 85초밖에 없다고 발표했다. 1945년 최초의 원자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카고대학 과학자들이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창간한 이 학술지가 매년 발표해 온 ’지구멸망까지 남은 시간‘은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1991년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에 서명한 냉전 종결 직후 가장 긴 17분이었으나 점점 짧아지다가, 뉴스타트 종결로 가장 짧은 85초로 당겨졌다.
2020년 2월 5일 오전 12시 33분(태평양 표준시) 캘리포니아주 밴덴버그 공군 기지에서 개발 시험 중 발사되는 비무장 미니트맨 III 대륙간 탄도 미사일. 러시아는 2026년 2월 4일, 미국과의 마지막 핵 협정이 2월 5일에 만료될 경우 "책임감 있게"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협정 파기로 인해 양국 간 새로운 군비 경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2026.2.4. AFP 연합
중국을 핵군축 협상에 끼워넣으려는 트럼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뉴스타트‘를 1년 더 연장하자고 미국에 제안했으나 트럼프 정권은 무응답으로 뉴스타트 종식을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형은 7일 그래도 괜찮으냐는 기자들 질문에 “종료된다면 종료돼도 좋다. 더 좋은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말한 ‘더 좋은 합의’란 중국을 겨냥한 말이다. 새 군축조약을 체결한다면 급속히 핵탄두를 늘려가고 있는 중국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애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30일 김해공항에서 시진핑 중국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 직전에 자신의 SNS를 통해 미국도 핵실험을 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면서, 중국 러시아와 “같은 기준”에 따라 그렇게 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준’이란, 중국과 러시아가 대외적으로 표방한 공식입장과는 달리 사실은 핵실험을 계속하는 불공정 행위를 해 오고 있다는 주장을 바탕에 깔고 한 얘기다. 그날 김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뉴스타트 이후의 새 군축협상에 중국도 참여하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뉴스타트 연장을 거부한 데에는 중국을 핵군축협상에 불러들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핵전력 현대화를 통한 미국의 핵 절대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트럼프 정권은 늘 “힘이야말로 최대의 억지력”이라며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해 왔다. 그 힘의 정점이 핵전력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흘리면서 핵전력 강화 움직임을 보여 왔다. 두 나라는 핵감축조약으로 자국 핵무기 개발이 발목을 잡힌 상황에서 중국만 제헌없이 핵개발을 가속하고 있는 기존 군축체제를 파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중국을 최대 패권경쟁국으로 지목한 미국이 그러했을 것이라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 발언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은 2020년 6월에 핵실험을 했다는 미국 주장을 “사실무근”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고, 린젠 외교부 대변인은 뉴스타트 종결에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다”며 유감의 뜻을 표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핵군축 협상 참여 요구에 대해 “중국의 핵전력은 미국 러시아와 동등한 규모가 아니어서, 지금 단계에서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거부입장을 밝혔다.
지난 5일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이 종료됨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는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핵무기 보유에 제한이 없어진 상태에서 핵군비 경쟁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 가디언 2월 5일
50여 년 만에 핵무기 보유 제한 없어진 미국과 러시아
지금 미국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핵탄두는 5100~5200발(배치돼 있는 것과 예비 탄두, 해체 대기 중인 탄두까지 포함)이며, 러시아의 보유 핵탄두는 5400~5500발로 미국보다 약간 더 많다. 세계 핵탄두의 90%를 미국 러시아 두 나라가 갖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약 600발이지만 증가 속도가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도 50발에서 최대 150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핵군비 경쟁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과 소련이 보유한 핵탄두 수는 7만 발이 넘었고, 두 나라
는 1700회가 넘는 핵실험을 하면서 자국뿐만 아니라 지구 대기와 토양 전체에 막대한 양의 방사능 오염물질을 뿌렸다.
에드워드 마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민주당)은 “5일 미국과 러시아 간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핵무기 감축조약이 종료된다. 신전략무기감축조약(뉴스타트)이 사라지면 50여 년만에 처음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보유량에 대한 제한이 없어진다”면서 “우리는 바로 군비경쟁 2.0으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가디언 2월 5일)
마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수조 달러를 들여 구축하려는 미사일방어체제 ‘골든 돔’계획을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꿈”이라며, “핵무기 보유량을 약 90%나 줄인” 핵군축 조약 쪽으로 가야 하며, 그럴 경우 “골든 돔이 전혀 불필요하며 그린란드를 점령할 필요도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핵무기 및 군비통제 실무그룹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그는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듯이, 핵무기 경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은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핵탄두 수를 90%까지 줄인 핵군축 조약
그가 말한 ‘50여 년’은 미국과 소련이 1972년에 제1차 전략무기제한협정(START 1)과 탄도탄요격미사일(ABM/ Anti-Ballistic Missile Treaty) 제한협정을 체결한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한때 7만 발을 넘겼던 핵탄두 감축을 본격화한 것은 1980년대 냉전 말기부터다. 핵위협의 제거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결단에서가 아니라, 양국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생존과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게다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핵군비 경쟁을 더는 지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87년에 두 나라는 사거리 500~5500km의 중거리핵전력(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전면폐기 조약을 체결했으며, 1991년에는 양국이 각기 핵탄두 수를 6천 발 이내로 제한하는 제1차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 1)에 서명했다. 전략무기(핵탄두)의 약 80%를 없애기로 한 START 1이 발효된 것 1994년 12월이었다.
2010년 4월에는 뉴스타트가 체결됐고 2011년 2월 5일 발효됐다. 2021년 2월에 연장된 뉴스타트는 5년씩 더 연장할 수 있었으나 2026년 2월 5일의 협정 만료일까지 연장에 합의하지 못함으로써 자동 종료됐다. 배치 가능한 핵탄두 수를 각기 1550발로 제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폭격기 수도 제한했던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남은 유일한 핵군축 조약이었다.
그에 앞서 미국은 2002년에 ABM 제현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거기에 반발한 러시아는 신형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 2019년엔 트럼프 1기 정권이 중거리미사일 보유를 금지한 중거리핵전력(INF) 폐기 조약을 파기했다.
트럼프 2.0과 함께 핵군비경쟁 2.0으로
1970년에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핵무기 보유 5대국 이외의 핵보유를 금지하는 대신 핵보유국들의 핵군출 노력을 의무화했다. 뉴스타트의 종료에서 보듯 그 ‘노력할 의무’를 강제할 수 있는 어떤 장치도 없는 현실에서, 핵전쟁을 막고 있는 것은 핵무기를 사용하면 쌍방 모두 공멸한다는 상호확증파괴(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의 공포뿐이다.
만일 어느 한쪽이 핵 선제공격을 해서 상대를 절멸시키고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순간 핵전쟁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AI(인공지능)시대에는 그런 정밀한 계산을 통한 승리의 환상이 촉발할 핵전쟁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핵군비 경쟁이 무서운 것은 상대적 핵우위를 서로 다투는 것보다 상대에게 뒤지면 멸망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지지 않으려는 경쟁이 끝없이 가속될 수밖에 없는 그 구조 때문이다.
에드워드 마키 의원이 지적했듯이 SALT와 START와 ABM, INF 폐기 조약을 거쳐 NEW START로 제동이 걸렸던 핵군비경쟁 1.0이 트럼프 2기 정권(트럼프 2.0) 출범 뒤 되살아나 핵군비 경쟁 2.0을 향해 가고 있다. <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