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침략의 원흉 이토 추도 : 1909년 11월,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하기 위해 민간에서 조직한 ‘국민대추도회(대한국민추도회)’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실제 추도회가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관민추도회와 별도로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식민통치 및 수탈기구 참여 : 경성부윤의 자문기구이자 일제 식민통치를 뒷받침한 지방행정 보조기구인경성부 협의회원(1914, 1918, 1920, 관선 임명직)을 역임했다. 또 식민지 금융수탈기구인 경성 종로금융조합의 조합장(1922∼1927)을 지냈다.
● 내선융화 및 친일단체 활동 : 경성신사의 씨자총대(신도 대표, 1915), 내선융화 단체인 대정친목회(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1916), 반일운동 배척을 표방한 동민회 회원(1924) 및 평의원(1925∼1927)으로 활동했다.
● 동화주의의 내면화: 『매일신보』(1918.12.10.) 기사에서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사람과 상관이 없다”라며 밝히는 등 일제의 동화정책을 전면적으로 내면화한 대표적 인물로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