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미국 워싱턴 디시(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콩고민주공화국 테레즈 카이퀌밤바 바그너 외교장관, 르완다 올리비에 은두훈기레헤 외교장관과 회담 중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아이티인들에 대한 임시 보호 지위(TPS)를 취소하면서 약 50만명이 추방 위기에 몰렸다.
에이피(AP)통신 등을 보면, 미 국토안보부(DHS)는 27일 아이티인에 대한 임시 보호 지위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아이티인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현지 상황이 개선됐다”며 “이번 결정은 우리 이민 시스템의 무결성을 회복하고 임시 보호 지위가 실제로 일시적인 것임을 보증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아이티인에 대한 임시 보호 지위는 오는 8월3일 만료된다. 현재 임시 보호 지위로 미국에 거주하는 약 50만명의 아이티인은 9월2일까지는 미국을 떠나야 한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2024년 7월에 임시 보호 지위를 1년6개월 연장해 2026년 2월3일까지는 유지하기로 한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국토안보부는 ‘아이티가 안전하다’고 했으나, 미국 국무부는 여전히 아이티에 대해 ‘여행 금지’(Level 4) 경보를 유지하며 납치, 범죄, 시민 불안, 의료 부족 등을 이유로 미국인의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1990년 도입된 임시 보호 지위 제도는 내전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모국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미국 체류자들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머물 수 있도록 허용한 정책이다. 아이티는 2010년 대지진 이후 임시 보호 지위 대상으로 지정 받았고, 이후엔 무장단체 폭력과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여러차례 연장된 바 있다. 아이티와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등 17개국 이민자들에게 이런 지위가 허용돼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100만명 이상에게 적용되온 임시 보호 지위 제도를 축소하겠다고 공약했고, 취임 이후에는 대대적인 불법 이민 단속을 벌여온 바 있다. 그는 또 대선 기간 오하이오 스프링필드로 온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근거 없는 음모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인에 대한 임시 보호 지위도 취소한 바 있다. < 박수지 기자 >
트럼프-김정은 '합성' 만화 그려진 피켓 든 시위 참가자= 14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 열병식을 앞두고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광장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열렸다.한 시위 참가자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얼굴을 '합성'한 만화가 그려진 피켓을 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 재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북한은 외면으로 일관하면서 '동상이몽'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공개석상에서 북한과 갈등이 있다면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북측은 관영매체를 통해 미국을 여전히 '적대세력', '날강도' 등이라 지칭하며 온도 차를 보였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성스러운 80년혁명 영도사를 긍지 높이 펼친다' 기사에서 "적대세력들은 우리 스스로가 자력갱생의 길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지난 10여년간 사상 초유의 극악한 제재 봉쇄 책동에 매달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적대세력들이 침략전쟁 책동에 광분하고 제재의 올가미로 우리의 명줄을 조이려 할 때는 물론, 우리 공화국의 군사적 강세에 질겁하여 '완화'의 기미를 보일 때도 자력갱생의 기치를 순간도 내리운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작년에는 북한이 전력 101%, 석탄 110%, 알곡 107% 등 목표치를 초과달성했다면서 "인민경제발전 12개 중요고지들이 성공적으로 점령됐다. 이것은 그대로 국가경제 전반이 장성(성장) 추이를 확고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축도"라고 밝혔다.
노동신문은 이날 '공정한 국제질서 수립은 평화 보장을 위한 절박한 요구' 기사에서도 미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신문은 "현시기 유럽과 중동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무장충돌이 벌어지고 세계가 불안정과 혼란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미국과 서방나라들의 날강도적인 주권 침해 행위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제국주의자들이 힘에 의거하여 세계를 지배하려고 날뛰고 있는 오늘 그 어떤 호소나 구걸로 자기의 주권과 존엄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라며 "제국주의의 강권과 전횡으로부터 국가의 주권과 안전을 수호할 수 있는 강한 힘을 비축할 때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제질서가 수립될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뒤로는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당장 성과를 낸다는 기대를 접고 장기전에 돌입한 상태다.
이후 미국과 한국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관성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러시아와 군사, 외교를 비롯해 전방위로 밀착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기대와 엇박자를 내는 김 위원장의 태도에 모종의 변화가 있으려면 내년 초로 예상되는 9차 당 대회에서 북한 내부의 노선 정리가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 박수윤 기자 >
▲2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 중인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이스라엘-이란 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뒤로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보인다.AFP 연합
미국이 다시 국제 분쟁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6월 21일, 사상 처음으로 이란 본토를 폭격한 이 결정은 단순한 군사행동을 넘어, 트럼프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스스로 불투명하게 만드는 서막이 되었다.
이 결정은 이전의 정치 문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미국을 만들겠다던 트럼프의 선언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개입을 거부하며 다른 길을 약속했던 그는, 결국 다시 낯선 타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먼 나라의 전쟁에 개입하는 익숙한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겉으로는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정밀 타격이라는 명분이 동원됐지만, 이 구조는 전혀 낯설지 않다. 20년 전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라는 '불확실한 위협'을 내세워 침공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 명분은 결국 허구로 드러났다.
이번에도 익숙한 패턴이 반복됐다. 이란은 미국이 설계한 '악의 캐비닛' 속에서 다시 타자로 호출됐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의 전형, 즉 위협적이고 낯선 타자를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의 문명성을 정당화하는 서구의 시선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 타자는 더 이상 현실의 위협이 아니라 서사의 소재가 된다. 다수의 외신 보도에서도 드러나듯, 이란의 핵은 실체보다 이야기 속 악역으로 기능한다. 권력이 위기를 모면하려 구성한 서사 속 대체 악으로, 이란은 그렇게 다시 호출되었다.
그리고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급하게 이스라엘의 연출에 합류했다. 그는 자신이 쓰지 않은 대본에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그 순간 그의 정치적 핵심 정체성, 즉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강해지는 미국'이라는 이미지는 허상으로 전락했다.
'개입 없는 리더십'의 심각한 균열
▲22일(현지사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건물에 걸린 반미 벽화 주위로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AFP 연합
이번 공습의 공식 명분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차단하기 위한 '정밀 타격'이었다. 하지만 다수의 국제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 위협의 실체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니라 서사적 연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 직후, "장기적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낮으며, 오히려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프랑스의 <르 몽드>는 "핵무장을 막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는 논리는 이란 내부의 체제 위기 인식과 맞물린 오판"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반박은 미국 내부에서 나왔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이번 공습이 이란의 핵시설에 가한 타격이 "심각하지 않으며", 핵무기 생산 지연도 "6개월 미만"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명분이 된 위협이 사실상 효과적인 타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역시 이란이 "즉각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진단한 바 있다. 결국 '핵 억제'라는 명분은 구조적으로 취약했고, 군사행동의 설득력은 애초부터 허약했다. 슬로우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영국의 보수 매체 <언허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과의 충돌에 스스로 휘말린 모양새"라며 "백악관이 전장을 포위당했다"고 표현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이번 사건은 전략적 성취로 받아들여졌다. 보수 일간지 <마리브>는 미국의 공습을 "이스라엘의 오랜 꿈이 실현된 순간"이라 평가했고, 미국의 행동을 이스라엘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외교·군사 기획의 연장선에 위치시켰다.
이처럼 외신들은 미국의 결정이 주도적 판단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이 이미 설계한 군사 시나리오를 뒤따른 사후적 동참에 가깝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은 스스로의 의지라기보다 이스라엘이 쓴 대본 속 한 장면을 연기했다는 것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왜 트럼프는 자신이 정치적 정체성으로 삼아온 핵심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며, 이스라엘의 작전에 병정처럼 합류했는가. 왜 스스로 구축한 '비개입의 리더십'을 버리고, 다시 익숙한 개입주의의 무대에 올라섰는가.
그 선택은 국제 질서의 전략적 관리라기보다, 균열된 국내 정치의 틈을 봉합하려는 일시적 연출에 가까웠다. 안보적 판단보다는 국내 정치 위기 속에서 지지층의 이탈 조짐과 중간 선거 구도의 불확실성을 감추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트럼프의 정체성 혼란은 역설적으로 그의 핵심 지지층 균열을 더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스티브 배넌, 터커 칼슨 등 지지층 내 핵심 인사들까지 "전쟁 없는 미국" 약속이 무너졌다며 그에게 경고를 보냈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6%만이 이번 공격을 지지했다. 트럼프가 스스로를 차별화해 온 '개입 없는 리더십'이라는 정체성은 이 결정으로 심각한 균열을 맞게 된 셈이다.
전쟁의 무대에 올라선 트럼프
▲21일(현지시간) 이란 핵 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시작된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국가안보팀이 워싱턴 D.C.의 백악관 상황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연합
트럼프는 정치 초입부터 미국 외교정책의 '주류'와 선을 그어왔다. 특히 네오콘이라 불리는 개입주의 전략가들을 '미국을 끝없는 전쟁에 끌고 간 장본인'이라 비판했고, 2003년 이라크 침공 역시 그들의 오만한 실패라 규정해 왔다. 하지만 이번 이란 폭격은 역설적으로 그가 경멸하던 바로 그 세계관과 동일한 궤적 위에 놓였다.
'정밀 타격', '핵 억제', '악의 축'이라는 표현은 과거 부시 행정부의 서사적 어휘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타자의 위협을 극대화하고, 그 위협을 통해 개입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네오콘식 위기 구성법이다. 이라크 침공을 비판했던 자신이 정작 이번에는 그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전쟁의 무대에 올라섰다.
트럼프의 이란 공습 결정은 외교정책의 노선을 바꾼 전환점이자, 정치적 고립을 자초한 계기이기도 했다. 그는 이 결정으로 인해 전통적 개입주의 세력과 자신의 핵심 지지층 모두로부터 동시다발적인 반발에 직면했다. 일종의 이중 협공이다.
네오콘 진영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한 칼럼은 "트럼프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공허한 위선"이라며, "그 역시 전임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가 비판하던 전쟁 중독적 외교 노선으로 스스로 돌아간 것에 대한 조롱이었다.
결국 트럼프는 '전통적 워싱턴'의 지지도 얻지 못한 채, 자신의 정치적 기반에서도 균열을 일으켰다. 외부의 인정 없이 내부의 신뢰를 잃는 이중의 협공 속에서, 그의 정체성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다른 미국'을 약속했지만,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봉합하려 했고, 그 선택은 결국 그 자신을 고립시켰다. 정체성의 부정은 단순한 전략의 전환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을 노출시킨다.
외부의 전쟁은 언제나 내부의 위기를 은폐하려는 수단이었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부를 잃은 지도자는 외부의 전쟁으로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2025년 6월, 미국은 다시 한번 그 진실을 되풀이하고 있다. < 임상훈 기자 >
중국공산당과 군 내부 세력관계 변화 군부 내 측근들 실각으로 시진핑 입지 약화 첨단기술산업 분야 부진도 시진핑 지반 약화 요인
차이나 브리프 6월 21일 기사 '관영매체에서 시진핑의 중심적 지위가 약화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중국을 방문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을 맞이하는 시진핑 주석.
“중국 관영매체에서 시진핑의 중심적 지위가 약화되기 시작했다”(Xi Jinping’s Central Position in Official Media Starts to Erode)
미국 싱크탱크 ‘제임스타운 파운데이션’의 간행물 <차이나 브리프>가 지난 21일 온라인에 띄운 제25권 12편 글의 제목이다. 이 글은 최근 <인민일보>나 <신화통신>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등 권위있는 관영언론매체에서 시진핑 주석의 이름이 거론되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절대적이었던 그의 권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사례를 들었다. <차이나 브리프>는 시 주석이 자신이 발탁한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등 핵심멤버들이 최근 잇따라 실각하는 등 군부 내 그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는데다, 대규모 투자를 계속해온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등 첨단기술산업 분야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등 경제 난국을 뚫고 나갈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현실이 시 주석 권력 약화의 배경에 깔려 있다고 보는 듯하다.
공청단 등 덩샤오핑 노선의 반격?
이에 따라 이른바 중국혁명 원로들의 후예인 ‘태자당’ 중심의 시진핑 일극 권위주의 중앙집권체제 강화 이후 밀려났던 후진타오와 리커창 등의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 나아가 장쩌민 ‘상하이파’ 그리고 더 멀리는 덩샤오핑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개혁개방, 민주집중 집단지도체제 지향 세력들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당과 군부를 장악해 가고 있고, 장차 시진핑을 실권 없는 국가주석직만 유지하게 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공산당 강령에 따라 2027년의 제21차 중국공산당대회까지 시 주석의 공식직함은 유지되겠지만 그가 실권을 잃을 수도 있으며, 그의 3기 연속집권이 끝난 뒤 덩샤오핑이 틀을 짠 2기 연속집권의 집단지도체제가 부활하면서 중국공산당이 미국과의 전면적인 패권경쟁 노선을 버리고 경제 및 민생 위주의 실용주의 노선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오는 7월 말이나 8월 초에 열릴 가능성이 있는 중국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 또는 전현직 당 원로들의 비공개 모임인 베이다이허 회의 뒤에 그런 움직임들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진타오의 ‘정치적 유언’ 인용한 시진핑의 연설
차이나 브리프의 6월 11일 기사가 나오기 전인 지난 5월 28일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이 내보낸 “후진타오 '유언' 뜻밖의 부활, 시 주석이 지시한 과학과 민주의 정체” 제목의 기사도 비슷한 관점에서 최근 시진핑 체제 내부의 정치 군사 사정의 변화를 상당히 밀도있게 추적했다.
예컨대 이 기사는 시 주석이 지난 4월 30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15차 5개년계획’ 관련 좌담회에서 공산당 유력 간부들을 앞에 두고 “과학적인 정책결정, 민주적인 정책결정, 법률에 근거한 정책결정을 견지하라”고 한 연설은, 그가 2022년의 제20차 공산당대회 때 인민대회당의 공개석상에서 쫓아내다시피한 후진타오 전 주석이 공산당 총서기 자격으로 한 마지막 활동보고 연설에서 한 말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연설 당시에는 보도되지도 않았다가 보름이 훨씬 더 지난 5월 19일에야 <신화통신>과 <CCTV>에서 보도되고 <인민일보>는 시 주석의 그 발언을 1면 머릿기사 제목으로 달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023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뽑힌 장여우샤(중앙)와 허웨이둥(왼쪽), 그리고 국방장관에 임명된 리샹푸가 선서를 하고 있다.. 시진핑이 발탁한 이들 중 허웨이둥과 리샹푸는 비리혐의 등으로 이미 실각했다. 일본경제신문 6월 18일
중국공산당과 군 내부 세력관계의 변화?
이례적인 ‘사건’의 해석을 둘러싸고 몇 가지 ‘설’들이 유포되고 있다. 이 가운데, 시 주석이 정적관계라 할 수 있는 공청단의 후진타오 전 주석 얘기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내부 조율을 거쳐 공표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당과 군 내부의 세력관계가 바뀌고 있다고 보는 것도 유력한 ‘설’의 하나다.
베이징 특파원을 지내고 <닛케이> 중국총국 국장을 거쳐 편집위원 겸 논설위원직을 맡고 있는 다카자와 가쓰지라는 중국 연구자가 쓴 기사 중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내의 세력변화를 읽을 수 있는 ‘중국의 장군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전장이 아니라 No.2의 실각’(6월 11일)이라는 것도 있다.
이런 ‘설’들 때문인지 최근 중국의 정치권력 변화에 관한 분석과 전망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상당수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전문가들조차 팩트를 확인하기 어려운 중국사회 특성 때문에, 전혀 근거없는 관측들도 난무하고 있는 듯하다.
차이나 브리프와 닛케이 보도를 중심으로 몇 가지 중국 내부변화들에 대한 최근의 관측과 해석을 정리한다.
시진핑과 그의 사상 보도 줄이는 주요 관영매체들
차이나 브리프에 따르면, 미국과의 중요한 무역협상, 사회복지 증진을 위한 새로운 정책 발표, 리창 총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국가 헌법에 대한 충성 맹세 행사 등을 전한 주요 보도들에서 시 주석이나 그의 이념(eponymous ideology)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 주석은 군부와 (첨단)기술산업 분야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군부에서는 그가 발탁한 고위급 간부들이 숙청당해 그의 지지기반이 약화됐고, 산업분야에서는 반도체 산업 자금지원을 위한 세 번째의 대형 펀드를 출범시켰으나 성과는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차이나 브리프는 최근 중국을 방문한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을 환영하는 ‘가족 연회’에 하버드대를 졸업한 시 주석의 딸 시밍쩌가 등장한 것을 두고 시 주석이 ‘부분적인 은퇴’를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중국 정치에는 권력자가 자녀와 함께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한때 권위적이었던 아버지가 적어도 부분적인 은퇴(partial retirement)를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돼 왔다며, 마오쩌둥 이래 최고권력자들 중에 자녀를 공개행사에 참석시킨 예가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지난 13일 덩샤오핑과 함께 중국을 이끌었던 천윈 탄생 120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한 장여우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오른쪽) 일본경제신문 6월 18일
군부 내 측근들 실각으로 시진핑 입지 약화
처이나 브리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시 주석이 발탁한 장성들이 잇따라 퇴출당하면서 군부 내에 시 주석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고 있고, 시 주석에게 불리한 흐름이 형성됐다. 최근 해임된 측근들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서열 2위인 허웨이둥, 군 인사 및 사상검열 책임자인 먀오화, 그리고 동부전구사령부 린샹양 사령관 등이다. 모두 2월 말 이후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닛케이 보도(6월 11일)에 따르면,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들 중의 한 사람인 허웨이둥(68)이 6월 8일 일요일 베이징 바바오산(팔보산) 장례식장에서 열린 쉬치량 전 부주석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4명의 중앙정치국위원(정치국 상무위원 7명 포함) 중에서 유일하게 조화도 보내지 않아, 3월 11일 전인대 폐막식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의 실각이 확인됐다.
중국군(인민해방군) 최고의사 결정조직인 중앙군사위원회는 국가주석이자 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이 주석을 맡는데, 허웨이둥은 시 주석이 발탁한 사람으로, 2년 전까지 부주석을 지낸 뒤 지난 2일 병사한 쉬치량(75)의 장례식에 참석했어야 할 인물이다.
이로써 후진타오 전 주석 재임 말기부터 지금의 시 주석 체제까지 모두 6명의 군 출신 중앙군사위 부주석들 가운데 3명이 실각했다. 허웨이둥에 앞서 궈보슝 부주석이 비리사건 적발로 징역형을 받고 복역 중이고, 쉬차이허우 부주석 역시 비리사건 적발로 구속 중에 암으로 사망했다. 리샹푸 국방장관 역시 비리혐의로 물러났다.
지난 1월 17일 열린 은퇴한 원로 군인들 위로회에 참석한 쉬치량(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일본경제신문 6월 4일
권위주의 일극 마오쩌둥 시대 허룽 실각과 닮은꼴
허웨이둥의 실각은 현역 군 출신 중앙군사위 부주석들 중에서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혁명 초기인 1967년 당시 인민군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불린 허룽 부주석이 감금당해 고초를 겪다가 비참하게 죽은 사건과 닮은 구석이 있다. 마오쩌둥의 권위주의적 일극지배체제 때 과거 난창 무장봉기를 지휘한 인민군 창시자의 한 사람인 허룽이 실각한 것과, 덩샤오핑의 집단지도체제를 버리고 마오쩌둥식의 권위주의적 일극지배체제를 밀어붙인 시진핑 체제 군 내부 측근의 실각은 일극 권력자의 약체화를 야기하고 그 뒤의 지도체제 노선 수정을 불렀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유추해낼 수 있다. 10년간 지속됐던 중국 문화혁명은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함께 종언을 고했고, 마오의 권위주의적 일극 집중체제는 장칭 등의 과도기적 보수강경 4인방체제를 거쳐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린 현대 중국의 압축적 성장이 거기서 시작됐다.
거액 뇌물 및 부정축재 사건으로 실각한 궈보슝(2016년)과 쉬차이허우(2014년) 부주석은 장쩌민 전 주석이 발탁한 장군들이었고, 2017년에 비리사건으로 자택감금 중 자살한 장양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과, 같은 시기에 군 규율문제로 조사받았던 중앙군사위 통합참모부 참모장 팡펑휘는 후진타오가 장군자리에 앉힌 사람들이었다. 그들 모두 시진핑의 부패청산 캠페인의 희생자들이 됐다.
그런데 2022년 제20차 공산당대회 뒤인 2023년, 2024년에 시 주석이 발탁한 현역 군 출신 국방장관 리샹푸, 그 전임 국방장관 웨이펑허가 잇따라 비리사건으로 실각했고, 그 뒤부터 시 주석이 발탁한 중앙군사위 고위관리들을 시 주석 자신이 잘라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정적인 전기가 된 것이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 먀오화가 중대한 규율위반으로 2024년 11월에 정직을 당하고 2025년 5월 말에 중앙군사위 공식명부에서 갑자기 이름이 사라진 사건이다.
지난해 11월 정직당한 뒤 실각한 먀오화 전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 일본경제신문 6월 4일
시진핑을 빼면 지금 중앙군사위에서 그와 동년배의 유일한 생존자는 장여우샤 부주석뿐이다. 일극의 권력집중에 성공한 시진핑도 ‘붉은 귀족’으로 불리는 홍2대(紅二代) 홍3대(紅三代)의 ‘태자당’의 단결과 지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태자당 출신 장여우샤의 권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시진핑의 통제범위를 벗어났다는 그가 시진핑 이후 집단지도체제가 부활할 경우 군부를 대표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당은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왕양, 정부(국무원) 총리는 정협 부주석을 지낸 후춘화 등 공청단파 인사들이 맡게 될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2022년 제20차 공산당대회를 거쳐 새로 구성된 중앙군사위 위원들은 모두 7명이었으나 지금까지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4명이다. 이들 중 시진핑을 예외로 하면 군 출신 위원은 3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 당대회 뒤 3년도 지나지 않아 중앙군사위원 절반 가까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들 외에 군 내에서 시진핑파 핵심인물로 간주되고 있던 동부전구사령부 린샹양 사령관 등 각 전구 사령부 사령관, 정치위원 등의 요직을 거친 다수의 다른 장군들도 잇따라 행방불명 상태인데, 정식으로 발표되진 않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025년 6월 2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회담에서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다니엘 노보아 대통령은 '여름 다보스'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신흥 강국 연례 회의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 중이다. 2025.6.27. EPA 신화 연합
첨단기술산업 분야 부진도 시진핑 지반 약화 요인
첨단기술산업 분야에서 시 주석 체제하의 국가주도 투자계획이 계획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점도 시 주석 권력 약화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중국정부는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전기 자동차, 친환경 기술과 같은 첨단기술 분야 개발에 수백억 달러를 투입했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예컨대 2024년 중반에 시 주석은 반도체 등 특정 기술분야에 450억 달러를 투자하는 ‘빅 펀드 3’을 승인했다. 이는 2014년과 2019년에 승인된 두 차례의 펀드 설립에 이은 세 번째 펀드였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소련식 산업정책'(Soviet-style industrial policy)의 부활은 기대했던 돌파구를 열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돈을 보고 몰려든 자들의 부패가 만연했다. 대형 반도체회사 칭화유니그룹의 자오웨이궈 전 회장이 지난 5월 부패와 횡령죄로 사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자오웨이궈는 정부가 조성한 대형 펀드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회사들의 대형 부패사건들의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 그 많은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중국 반도체 기술이 여전히 외국 기술에 지속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정부가 올해 초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려는 조치가 발동되기 전에 200억 달러 이상의 칩을 수입하려고 아우성을 치며 경쟁을 벌인 사실로도 입증된다.
전기자동차(EV) 분야도 비슷한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 기술개발보다는 당국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격심한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EV업계에서는 2018년 이후 400개가 넘는 EV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이는 EV회사의 80%가 파산해 사라졌다는 얘기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투자, 그리고 가혹한 경쟁과 도태라는 대가를 치르며 살아남은 극소수의 기술 또는 기업이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중국을 최종 승자로 만들 것이라는 중국공산당의 전략은 지나치게 낙관적일 뿐만 아니라, 다수 인민의 이익을 희생시킬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공산당, 공청단파 주도 개혁개방으로의 회귀?
이런 상황에서 공산당 지도부가 덩샤오핑이 주창하고 후진타오 전 주석과 리커창 전 총리가 이끌었던 공청단파가 주도하는 개혁개방 정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차이나 브리프는 썼다. 당 지도부가 ‘전반적인 우경화’(overall shift to the right)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마오주의 '좌파' 시 주석의 위상이 추락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차이나 브리프는 짚었다.
지난 10일에는 인민일보가 첨단기술 기업인 화웨이의 창립자이자 CEO인 런정페이의 글 ‘국가가 개방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다’(国家越开放,会促使我们更加进步)는 글을 실었다. 이 기사에서도 시 주석이나 그의 사상은 언급되지 않았다. 게다가 국가를 개방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는 시 주석의 일극집중 통제체제에 대한 명백한 반대의사 표시로 보인다. 런정페이의 그런 생각보다는 런정페이의 그런 생각을 인민일보 1면에 제목으로 뽑아 실은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내부 기류 변화가 더 주목할만하다.
런정페이의 인민일보 1면 기사는 2015년 8월 11일 인민일보가가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의 글을 1면에 실은 이후 유명기업의 오너 기사를 1면에 실은 첫 기사였다. 2020년에 자신의 엔트그룹을 상하이, 홍콩에 상장하려던 마윈이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를 공개비판했다가 엄청난 벌과금 등의 제재를 당하고 비즈니스 무대 전면에서 사라져야 했던 사실에 비추면, 통제 아닌 개방을 외치는 화웨이의 창업자이자 CEO 런정페이 기사를 인민일보 1면에, 시 주석과 그의 사상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이 싣게 한 것은 최근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노선 변화를 짐작하게 하는 인상적인 사례일 수 있다.
후진타오 ‘유언’의 반대방향으로 질주한 시진핑
닛케이 5월 28일 기사에 나온 “과학적인 정책결정, 민주적인 정책결정, 법률에 근거한 정책결정을 견지하라”는 시진핑 주석의 4월 30일 제15차 5개년계획 좌담회 발언은 앞서 지적했듯이 원래 후진타오 전 주석이 2012년 11월 8일 제18차 중국공산당대회 활동보고 연설에서 한 발언이었다. 공산당 총서기 자격으로 공식회의에서 한 마지막 연설이자 공산당원들에게 보낸 일종의 ‘유언’으로, 그는 과학과 민주를 강조한데 이어 “공산당 내의 권력 감독(감시)” “여론에 의한 권력감독”을 강조하면서 “인민이 권력을 감독하게 하라” “권력은 양광(햇볕)에 쪼이면서 공개적으로 운용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18차 공산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뽑혀 새로운 권력자가 된 사람이 시진핑이다. 후진타오는 시진핑의 그 뒤 파행을 예건하고 있었던 것일까.
기사를 쓴 나카자와 위원은 시진핑 시대인 지금 이 13년 전 후진타오의 “확고하게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전진해 샤오캉사회의 전면적인 실현을 쟁취하자”는 보고문을 다시 읽으니 격세지감이 든다고 했다.
지금의 시진핑 시대는 여러 면에서 후진타오 보고서 내용에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시진핑식의 권위주의적 ‘톱다운’식 설계,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하는 방식 등에서 보듯, 권력의 일극집중은 후진타오가 남긴 정치적 유언의 정반대 쪽으로 향하고 있다.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공산당대회 퍠막일에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는 시진핑 주석과 후딘타오 전 주석. 일본경제신문 5월 28일
후진타오 ‘유언’으로 시진핑 노선 비판한 중국공산당
그런데 이런 상황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시진핑이 상하이에서 열린 제15차 5개년계획 관련 좌담회에서 중국 각지에서 모여든 차세대 공산당을 떠맡게 될 간부들을 상대로 그런 제목의 연설을 한 것은 지난 4월 30일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보름이 훨씬 지난 5월 19일이었다. 그날 신화통신과 CCTV가 “일전에(최근에)”라는 구체적인 날짜 불명상태로 제15차 5개년계획에 관한 시 주석의 ‘중요지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그 다음날인 20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공산당의 직접적 통제를 받는 주요 관영매체들이 보름이 넘도로 아무 언급도 없다가, 갑자기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정책결정, 법률에 입각한 정책결정 견지라는, 원래 후진타오가 한 ‘정치적 유언’을 일제히 제목으로 뽑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의도된, 매우 계획적인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비록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유언을 강조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그것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시진핑체제의 권력 일극집중을 후진타오의 그 유언을 빌려 비판하고 민주적 분권과 인민의 권력감시를 강조하기 위한 기획보도들이었고, 기획의 주체는 바로 공산당 지도부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22년 10월 제20차 중국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인사정책에 항의하다 인민대회당에서 끌려 나가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난처한 표정의 후진타오 주석과 리커청 당시 총리. 일본경제신문 5월 28일
인민대회당서 끌려나간 후진타오가 반격의 기점?
후진타오가 권좌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지난 지난 2022년의 제20차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은 3기 연임을 확정했다. 덩샤오핑의 집단지도체제 전통에 따랐다면, 시진핑은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대회를 2번 거친 2기 10년(1기=5년) 집권 뒤에 후계자에게 총서기직과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넘겨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1기 5년 집권이 끝난 시점에서 후계자를 내정하고, 다시 5년이 지난뒤 그 내정자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집단지도체제 관례를 거부하고 연속 3기 집권을 했고, 이를 위해 주석직 연임제한 규정까지 바꿨다.
그 20차 당대회 때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공산당원들이 모인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 전 총서기이자 존경받아야 할 중국공산당 장로는 그들과 세계의 유력 매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진핑 인사정책에 항의하다 두 팔을 붙잡힌 채 끌려 나가는 충격적인 장면이 생중계됐다. 그 뒤 공개된 20차 당대회 결정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 인사는 공청단파와 상하이파 등 경쟁세력들을 완전히 배제한 시진핑 태자당 일색의 인물들로 채웠다.
공청단파 등이 반격의 날을 벼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인지도 모른다.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정치적 유언’을 되짚게 한 제15차 5개년계획(2026~2030년)은 2027년의 제21차 공산당대회가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기간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기간 중에 열리는 21차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의 영구집권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그가 4기 연속집권하려면 21차 대회에서 다시 형식적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낮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일본경제신문 5월 28일
미국 추월 목표 10년 앞당긴 ‘초장기 목표 2035’
그가 자신의 정책방향에 반하는 후진타오의 유언을 공식행사에서 발설한 것은 반대세력까지 아우르려는 절대권력자의 여유와 자만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변해버린 당내 역학관계에서 다시 힘을 회복한 공청단과 상하이파 등 반대세력과의 타협 내지는 압박 또는 양보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 서방쪽 관찰자들 시각이다. 즉 시진핑은 남은 3기 집권을 무난하게 마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이는 추측일 뿐 확실한 근거가 있는 얘기가 아니다. 여러 정황상 그럴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2030년까지의 5년은 시진핑이 2017년 제19차 공산당대회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한 ‘초장기 목표 2035’ 달성 여부가 결정되는 시기다. 2035년은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아 선진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목표년이다. 원래 그 목표년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년인 2049년으로 설정돼 있었다. 그런데 시진핑이 2017년 제19차 공산당대회에서 그 목표를 15년 앞당긴 2035년에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트럼프식 ‘중국 죽이기’의 출발점
2017년이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해다. 그 제1기 트럼프 정권(트럼프 1.0) 때 미국을 경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시진핑의 ‘초장기 목표 2035’와 그 2년 전에 발표된 '중국제조 2025'였다. 트럼프는 불과 18년 뒤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겠다고 선언한 시진핑 중국의 야심을 엄청난 도전과 위협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오늘의 미중 패권경쟁이 그때부터 본격화됐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이 당파를 초월해 중국을 견제하고 거세해야 할 제1의 경쟁상대로 인식하면서 추가관세 등 거의 무차별적인 보호주의 공세를 펴면서 ‘타도 중국!’을 외치고 있는 것이 거기서 비롯됐다고 보는 건 지나친 단순화일까.
덩샤오핑 실용주의 노선으로의 회귀
그런 미국의 ‘과잉 대응’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국 국내정책 실패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시진핑의 대결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압축성장 노선이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보고 수정하려 하고 있다고 보는 외부 관찰자들이 있다. 이것은 이른바 기대섞인 ‘서방의 시각’일 수 있다. 하지만 차이나 브리프나 닛케이의 지적대로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과 부동산경제 붕괴 이후의 중국은 깊어가는 난관을 벗어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데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까지 받고 있다. 중화주의 ‘중국몽’을 단기간에 실현하겠다는 첨단기술 개발과 수출 중심의 조급한 성장전략과 군비확장보다는 민생과 인민의 복지 증대를 통한 국내소비 확장도 병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고,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최근 변화 조짐은 바로 그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시각들이 있다.
최근 후진타오, 리커창의 공청단 계열 또는 독립파로 간주되는 원자바오 전 총리, 나아가 장쩌민 시대의 주룽지 전 총리 계열,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 더 크게 뭉뚱거리면 덩샤오핑의 실용주의계열의 왕양, 후춘화 등 시진핑 일극체제에서 소외당했던 인사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고 그들이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그런 추세를 반영한다는 관측이 있다. 이 또한 ‘서방적 시각’이라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겠지만, 달리 중국 내부사정에 접근하는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