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주류 정치 바꿔 유럽 결속 해칠까 두려움
유권자, 메르츠 총리와 중도연립 CDU에 등 돌려
가장 가난한 작센안할트 지역 "공산 시절에 향수"
선거 앞둔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폴란드 촉각

 

EU, 극우 정당 부상이 러시아 야심 자극 우려
'투표 한 번에 극단적으로 바뀌진 않아' 반론도
세르비아 믈라디치 장례식에 수 천명 인파 운집
EU "집단학살·반인도 범죄자 설 자리없다" 성명

 

"지진", "사회정치적 지진", "독일의 중대한 전환점"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의 옛 동독 지역 작센안할트주 의회 선거에서 반이민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당이 최종 개표 결과, 43.8%란 놀라운 지지율로 제1당에 오르자 정치 분석가들과 많은 언론들이 내놓은 반응들이라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결코 과장이 절대 아니라고 방송은 전했다.

 

작센안할트는 독일의 16개 주 가운데 땅덩이가 작은 주 가운데 하나다. 전국 5900만 명의 유권자 중 단 170만 명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AfD가 과반을 아슬아슬하게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 정치적 정서(여론) 변화가 독일 국내에서 매우 중요할 수 있다고 방송은 봤다.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작센안할트주 의회 선거에서 압승할 것으로 드러나자 독일을 위한 대안(AfD) 주총리 후보인 울리히 지크문트가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를 곧추세우고 있다. 2026.9.6 로이터 연합

 

이번 투표는 지역에 국한될 수 있지만 국가 차원에도 영향을 미친다. AfD의 압승은 이미 궁지에 몰려 있는 베를린의 중도 연립정부에 더욱 큰 압박을 가한다. 인기 없는 보수 성향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관에 못을 박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그는 AfD의 인기를 크게 떨어뜨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상황은 정반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어려움은 러시아의 침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분노, 중국의 경제적 위협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유럽대륙의 위기 국면에 유럽연합(EU)의 가장 강력한 축인 독일을 더욱 약화시키고 산만하게 만들 것이다.

 

작센안할트 선거 결과는 독일 전역에서 나치의 먹구름이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돌아보게 만든다. 1945년 제3제국 붕괴 이후 극우 민족주의 정당이 지역 차원에서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열린 처음 보는 선거 결과였다. 당국은 AfD를 부분적으로 반민주적이며, 작센안할트를 포함한 당의 여러 지역 파벌을 극우 세력으로 규정했다.

 

AfD는 옛 동독 지역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현재는 전국적으로 가장 큰 정당으로도 여론조사에서 평가받고 있다. 독일 정치 주류는 유권자들을 실망시킨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가장 큰 단일 경제국, 러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BBC는 AfD를 비롯해 독일의 여러 정당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가급적 인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워낙 독일인들에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호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소셜 미디어 뒤를 바짝 쫓은 러시아 기업가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러시아직접투자기금(RSFF)의 CEO였다. 그는 AfD 결과를 "역사적"이라고 선언하며, 독일 정부가 "신뢰를 잃었고",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에 "굴욕을 안겼다"고 평가하며, 그를 올여름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에 비유했다.

 

러시아가 왜 이 일에 관여하는지

 

러시아가 독일 지역 선거에 어떤 관심을 가질 수 있을지, 그리고 드미트리예프가 영국을 비난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최대 단일 기부국이며, 영국은 러시아 영토 타격에 사용되는 미사일을 키이우 당국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로 크렘린은 깊은 분노를 드러냈다.

 

반면 AfD는 꽤 친러시아적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 지원을 중단하고, 모스크바에 대한 제재를 중단하며, 훨씬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를 다시 구매하기 시작할 것을 공공연히 얘기한다. 에너지에 굶주린 독일 산업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이 중단되자 큰 타격을 입었다. 

 

AfD의 러시아에 대한 부드러운 접근은 옛 서독 지역보다 훨씬 가난한 옛 동독 지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일종의 통일 비용으로 2조 3000억~3조 달러(3081조~4019조 원)를 쏟아부어 옛 공산주의 지역을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됐다. 

 

독일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작센안할트는 대부분의 옛 동독 지역과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이 이른바 '동쪽 향수병'(Ostalgie)이라 불리는 증후군을 앓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는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투표가 종료된 뒤 독일을 위한 대안(AfD) 당원들이 국기를 휘저으며 환호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번 선거 구호가 화면에 올라와 있다. 2026.9.6 로이터 연합
 

유럽 전역의 정당들이 반응을 내놓다

 

유럽연합은 작센안할트 선거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앞으로 12개월은 EU 전역에서 대선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 주요 국가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EU는 좌파나 우파의 더 '극단적인' 정당들이 고루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스페인 민족주의 정당 복스(Vox) 지도자 산티아고 아바스칼은 X에 작센안할트에서의 AfD 승리가 "독일과 유럽에 큰 희망"이란 글을 올렸다. 반면,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우군인 프랑스 유럽부 장관 벤자민 하다드는 "독일 지방선거에서 극우가 승리하는 것은 유럽에서 심각한 순간"이라고 경고했다.

 

AfD나 '극단 우파' 또는 '강경 우파'로 분류된 유럽 정당들은 이 꼬리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이런 정당들은 분위기와 강령 면에서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 국민연합은 2년 전 AfD를 유럽의회 내 그룹에서 축출됐는데, 그 이유는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두 정당은 반이민 강령과 강력한 민족주의 메시지를 공유한다. 이것이 EU를 정말로 우려하게 만든다.

 

"독일 우선"이든 "이탈리아 우선"이든, "프랑스를 위한 프랑스!"라는 구호든, 유럽연합은 민족주의 정당의 부상이 외부에서 일어난 일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유럽의 결속력을 위협한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AfD나 이탈리아 연맹당 같은 민족주의 정당들은 대체로 유로 회의론을 믿고 있지만, 브뤼셀은 트럼프의 괴롭힘에 맞서거나 중국의 상품 덤핑으로부터 유럽 기업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유럽이 단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 국방 기관은 러시아에 대한 유럽 제재의 균열이나 나토 가입에 회의적인 나라들(르펜의 국민연합, 독일 AfD에서 볼 수 있는)이 모스크바 당국을 더욱 대담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안보 책임자들은 여러 국가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막기 위해 뭉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크렘린이 발트 3국 등 나토 내부를 공격할 유혹을 느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실 유럽 유권자들은 이런 외부 위협과 그것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의 영향, 국내 건강 서비스의 붕괴, 자신과 가족의 경제적 안정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다. 통제되지 않은 이민과 거리의 안전 문제도 크게 걱정한다. 

 

바로 이 점에서 작센안할트 투표의 의미가 빛난다. 전통 정당들만이 아니라 사법부와 안보기관 같은 유럽 전역의 기관들을 향해 깜빡이는 붉은 신호등이란 것이다. 이기적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 AfD 현상이라고 평가절하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이 대륙의 유권자들은 수십 년간 지지해온 정당들에 실망하고 상실감을 느낀다. 선거 시기에 오른쪽이나 왼쪽을 본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갑자기 극단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고 방송은 전했다. 

 

작센안할트에서 AfD의 선거 구호는 낙관적인 "무엇이든 가능하다!"였다. 아울러 독일인들이 다시 조국에 자부심을 갖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시도하지 않고 실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점점 기회를 주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라트코 믈라디치의 장례식 도중 교회 밖에는 수천 명이 공개 추모식에 참석했다. 게티 이미지

 

한편 네덜란드 헤이그의 유엔 교도소에서 종신형을 복역하던 중 84세에 삶을 접은 '보스니아의 도살자' 라트코 믈라디치의 장례식이 7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열렸는데 수천명이 운집했다고 BBC가 전했다. 고인은 1995년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8000명의 보스니아계 무슬림 남성과 소년들이 살해된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유엔 전쟁범죄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최악의 잔혹 행위로 묘사되었다.

 

세르비아 정부 장관은 처음에 국장으로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으나, 일부 유럽 지도자들의 반대로 계획이 변경됐다. EU는 성명을 내 "믈라디치는 전쟁범죄, 집단학살,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은 전범"이라며 "전쟁 범죄자에 대한 미화, 집단학살 부인, 수정주의는 가장 근본적인 유럽 가치에 반하며 EU나 EU 후보국에 설 자리가 없다"고 밝혔다.

 

세르비아는 최근 가입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긴 했지만 2012년부터 EU 가입 후보국으로 남아 있다.

집단학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믈라디치는 많은 세르비아인들에게 영웅적으로 나라를 지키려 한 인물로 인식된다. 많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그를 세르비아 공화국 스르프스카를 지킨 영웅이자 보호자로 여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여러 세르비아 정부 장관들이 장례 전 믈라디치가 안치된 교회 밖에서 눈에 띄었는데 국방장관 브라티슬라브 가시치와 법무장관 네나드 부이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장례식은 세르비아 정교회 수장 포르피리예 총대주교가 집전했으며, 그는 믈라디치의 이름이 "우리 세르비아 정교회 대다수에 깊이 새겨져 깊은 감사의 마음을 품고 키워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 아침, 작은 성 루카 교회 밖에는 관을 향해 마지막 경의를 표하기 위해 긴 줄이 형성되었다. 많은 이들이 군 복무 용사였고, 몇몇 남성들은 그의 사진이 인쇄된 깃발을 두르고 있었다. 장례식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군중들이 도착해 교회 밖에서 촛불을 밝히고, 햇살 아래 스피커로 합창단이 함께했다.

 

교회 안에서는 주로 전쟁 참전 용사들로 구성된 남성들이 믈라디치의 관을 지키고 있었고, 그의 아내, 아들, 손주들은 안에서 조의를 표했다. 그의 관은 지난주 정부 비행기로 세르비아로 운반되었고, 여섯 병사들이 비행기에서 옮겨 깃발로 덮었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대부분 도시에서 무료 버스 서비스가 조직되어 경의를 표하는 사람들을 실어 옮겼다. 전날 밤, 세르비아 축구 클럽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팬들은 파르티잔 베오그라드와의 더비를 승리로 이끌기 전에 믈라디치 사진이 인쇄된 대형 천을 펼쳤다. 

 

장례식 전날 밤,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팬들은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축구 경기 중 믈라디치 사진을 펼침막을 보이고 있다. 게티 이미지 

 

물론 장례식이 전쟁의 아픈 기억을 되살린 이들도 있었다. 사라예보 포위 도중 아홉 살 아들이 믈라디치 세력에 의해 살해된 여성 즈드라브카 그보즈자르는 로이터 통신에 베오그라드에서 장례식이 열린다는 소식이 "정말 끔찍하다"고 말했다.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져야 할 믈라디치가 영웅으로 승격됐다는 개탄이다. 그보즈자르는 "그는 백정으로만 기억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쟁과 평화보도 연구소란 이름의 NGO 편집장 다니엘라 펠레드는 "믈라디치의 범죄에 대해 믿기 힘들 정도로 상세한 역사 기록을 제공했지만, 세르비아 언론과 교육 시스템은 그의 범죄 규모나 피해자 및 생존자들의 관점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펠레드는 친정부 세르비아 언론이 그를 "임무를 수행한 충직한 군인으로 묘사한다"며 "사회나 국가가 성찰을 하거나 과거 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 임병선 기자 >

 

트럼프 반색한 독일 AfD 약진… '극우 방화벽' 버텨낼까

 

옛 동독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 44% 득표할 듯
단독 과반 안되지만 5년 전보다 23%P 끌어올려
집권 기독민주당 연합은 20%P 빠진 18.5% 그쳐
종전 후 처음으로 극우 지방정부 들어설지 주목

 

기성 정당들 "극우 집권만은 막는다" 방화벽 구축
유권자들 "카리스마 넘치는 35세 지크문트 믿음"
AfD에 공감하던 트럼프, 말 없이 개표 결과 공유
푸틴 특사도 반겨, 폴란드 총리 "바보들만 좋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주에서 치러진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성향 독일대안당(AfD)이 과반에 약간 못 미치는 득표를 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는 초기 개표 결과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했다. AfD가 5년 전보다 득표율을 곱절 이상 끌어 올리며 압도적인 제1당에 올라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자 전후 처음으로 극우 지방정부 출현 가능성이 점쳐졌다. 이에 따라 기성 정당들이 연대해 구축했던 'AfD 방화벽'이 다시 시험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 개표 결과를 나타낸 그래프를 공유했다. 해당 자료는 독일시간 오후 7시 57분 기준 개표 상황을 담고 있는데, 평소 말 많던 트럼프 대통령이 별도의 설명이나 논평을 달지 않고 그래프만 올린 점이 눈길을 끌었다. 

 

개표가 거의 마무리된 가운데 AfD의 승리는 분명해졌다. 공영방송 ZDF의 6일 오후 11시 22분(한국시간 7일 오전 6시 22분) 기준 집계에 따르면 AfD는 득표율 44.4%로 주의회 의석 83석 중 과반에 약간 못 미친 39석을 확보했다. 기독민주연합(CDU)는 득표율 17.2%, 의석 15석으로 밀려났다. 중도좌파 독일사회민주당(SPD), 녹색당, 좌파당 등 좌파 정당들이 각각 득표율 9.1%, 8.9%, 8.6%로 당별로 8석씩을 얻었고, 극좌 포퓰리즘 정당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이 득표율 5.2%로 5석을 차지했다.

 

한때 BSW가 원내 진입에 필요한 5%를 넘길지가 불투명했는데 그 선을 넘겨 Afd와 BSW가 손 잡아 과반을 안 넘긴 상태에서 소수 연립정부를 구성하거나 다른 당에서 의원 3명 이상을 빼오면 과반 지지로 연정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두 방법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주 헌법상 AfD의 총리 후보인 울리히 지그문트(35)가 총리가 되고 소수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길이 없지는 않다고 연합뉴스는 봤다. 총리 선출 투표에서 기권하는 등 소극적인 방식으로 AfD에 사실상 협조하는 다른 당 의원들이 많아진다면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했다.

 

 

 

이 시점 투표율은 76.0%로 2021년보다 15%포인트 이상 높았다. AfD의 약진은 특히 두드러져 2021년 이 주의회 선거에서 20.8%를 득표했던 AfD는 이번 선거에서 약 23%포인트 이상 득표율을 끌어올렸다.

 

정반대로 2021년 37.1%를 얻으며 압도적인 제1당이었던 CDU는 이번 선거에서 17%대로 내려앉아 5년 사이 지지율이 약 20%포인트 빠졌다. 2002년 이후 계속 주 정부를 이끌어 온 CDU의 이번 패배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집권 보수진영에 엄청난 정치적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지방정부는 치안, 지역 교육, 문화에 대한 권한을 갖게 된다. 나치가 패망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극우 지방정부가 들어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날 선거 결과는 독일 정치권에 상당한 심리적 충격파를 남겼다. 주요 TV 채널 다스 에르스테는 선거 결과가 의미하는 바에 집중하기 위해 전설적인 범죄 드라마 '타토르트' 편성을 취소할 정도였다고 BBC는 전했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지자들이 6일(현지시간) 작센안할트주 마그데부르크에서 주의회 선거 투표가 종료된 뒤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환호하고 있다. 2026.9.6 로이터 연합

 

AfD가 압승했다지만 단독 과반을 얻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돼 실제로 주 정부를 연립으로 꾸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독일 공영방송 등의 의석 전망에서는 AfD가 전체 83석 가운데 약 39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단독 과반에 3석가량 모자란다.

 

이에 따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는데 주요 정당들이 AfD와의 연정을 거부하는 이른바 '방화벽' 원칙을 유지하고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다. CDU를 비롯한 독일 주류 정당들은 극우 정당과 협력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작센안할트주의 AfD 조직은 현지 국내 정보기관으로부터 극우주의 단체로 분류돼 있어 AfD 측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지도자 지크문트는 초기 개표 결과에 대해 "우리는 역사를 썼다"며 유권자들이 "이대로 계속 갈 수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 결과가 작센안할트뿐 아니라 수도 베를린의 연방정부를 향한 메시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메르츠 연방정부에 대한 불만도 AfD의 지지 확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ARD 조사에서 작센안할트 유권자의 87%가 연방정부에 불만을 나타냈다. 경기 부진과 이민 문제, 에너지 정책,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관계 등을 둘러싼 갈등도 표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AfD는 특히 옛 동독 지역에서 강세를 보인다. 작센안할트 역시 과거 동독에 속했던 지역으로 인구는 약 210만명이다. 최근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도 AfD가 보수연합을 앞서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지방선거의 돌풍이 연방 정치로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가 인용한 최근 INSA 조사에서는 AfD 지지율이 28%, 보수진영은 20%로 나타났다.

 

AfD는 공산주의 동독에 대한 향수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서방과의 빈부 격차가 벌어진 것을 집요하게 비판해 왔다. 반항적라고 여겨질 정도인 "동독 출신의 자긍심“을 강조하며 지그문트는 상징적인 지역 자전거 심손(Simson)을 타고 투표소까지 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알리스 라이델(왼쪽) AfD 공동대표와 작센안할트주 총리가 유력한 울리히 지크문트가 6일(현지시간) 치러진 주 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크게 기뻐하고 있다. 2026.9.7 로이터 연합

 

지그문트는 AfD의 친근한 간판으로 여겨지는데 그의 선거 공약은 급진적이다. 특히, 취임 첫날부터 불법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재이주 및 추방 공세"를 펼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 당은 미국과 서유럽 등에서 일고 있는 "깨어있는" 사상에 반대하는 정책으로 공립학교의 성 소수자(LGBTQ) 프라이드 무지개 깃발을 독일 표준 깃발로 교체하고, 역사 교육에서 히틀러의 제3제국에 대한 강조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다 이주 노동자를 대체하기 위해 AfD는 해외 거주 독일인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한편, 인구 210만 명의 작은 주에서 감소하는 인구를 되돌리기 위해 가족들에게 "출산 보조금"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경제연구소는 AfD의 이민 정책이 외국인 노동자, 특히 의료 부문에 크게 의존하는 작센안할트 주에 "파괴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AfD가 운영하는 주 안보 기구가 러시아에 민감한 정보를 유출할 수 있으며, 모스크바가 이를 독일에 불리하게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튀링겐 주 내무장관 게오르크 마이어는 일간지 한델스블라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크렘린은 AfD가 푸틴에게 독일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도인 마그데부르크의 AfD 지지자들은 지크문트가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점을 칭찬했다.올리라는 남성은 "이 사람은 우리에게 아무도 줄 수 없는 것을 준다"며 ”어떤 정부든 다들 나아질 것이라고 약속만 하는데 이 정당은 정말로 노동자들을 위한 당이다. 이것이 독일의 대안"이라고 BBC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AfD 지지자 버트는 동쪽 사람들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가족을 위해 상황이 개선되어야 한다. 내게는 세 아이가 있다. 나는 두렵다. 정말로 안전이 점점 더 무너질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AfD의 이민 반대와 인종차별 정책 정강에 공감해서일까? 트럼프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은 그동안 AfD를 둘러싼 독일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 2월 독일 연방의회 총선을 앞두고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독일 주류 정당들이 AfD와 협력하지 않는 '방화벽' 정책을 사실상 비판했다. 밴스는 "민주주의는 국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신성한 원칙에 기초한다"며 "방화벽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밴스 부통령은 그 뒤 AfD 공동대표 알리스 바이델을 직접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독일 국내 정치, 표현의 자유 문제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정부 조직 혁신을 맡는 부서를 책임졌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영상 연설을 통해 AfD를 지원했고, 바이델 공동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를 본떠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화답한 것도 화제를 낳았다.

 

BBC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특사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트럼프의 게시물을 스크린샷하며 "실용적인 AfD의 역사적인 승리"를 찬양했다. 드미트리예프는 이전에 친러시아 셩향의 AfD를 "희망과 이성, 협력, 진실, 희망의 정당"이라고 치켜세운 적이 있다.

폴란드 중도우파 총리 도널드 투스크는 결과를 매우 다르게 봐 "폴란드에서는 오직 바보와 배신자만이 AfD의 승리를 기뻐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 임병선 기자 >

 

 

 

 
 

영국, 상품 · 일부 서비스 금지… "테러리스트들이 인종청소 자행" 비판 수위 높여

마크롱 · 버넘 · 카니 "두국가 해법이 우리 국익…수입금지 등 조처할 것"

 

서안 마을 [AFP=연합 자료사진]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를 포함한 12개 국가가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과 교역에 대한 제재를 도입하거나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영국 외무부는 8일 영국과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은 국제법상 불법인 정착촌과의 상품 교역에 국가 차원의 제한을 두거나 범유럽 차원의 조치를 도입 또는 지지하거나 이같은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 국가는 공동 성명에서 서안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행동이 두 국가 해법의 가능성을 훼손하고 있으며 전례 없는 수준의 정착민 폭력과 서안 E1 구역 정착촌 추진을 포함한 정착촌 확장으로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별도로 공동 성명도 내 이스라엘 정착촌을 거듭 비판했다.

 

세 정상은 중동과 세계의 안정 및 안보에 중대한 두 국가 해법을 지키는 게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의 근본적 국익'이라며 "정착촌 확장은 평화를 향한 그 비전을 직접적으로, 긴급하게 위협한다"고 밝혔다.

이어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는 정착촌산 상품 수입을 금지하고 정착촌이 운용되게 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이들을 겨냥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FP 통신과 BBC 방송에 따르면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이미 이스라엘 정착촌과의 교역을 제한하는 조치를 도입했으며, 프랑스도 유럽연합(EU)에 비슷한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다만, EU 내에서 일부 회원국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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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 구역의 팔레스타인 주택들  [UPI=연합]

 

이번 공동 성명을 주도한 영국은 이날 서안 정착촌 상품 수입 금지를 발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에드 밀리밴드 외무장관은 의회에서 영국이 정착촌에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금융과 건설, 인프라, 부동산, 광고 등 부문에서도 정착촌 확장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 기업 및 개인에 대해서도 조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밀리밴드 장관은 "서안에서 정착민 테러리스트들이 자행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가 있다는 데 영국 정부는 동의한다"며 "주택을 밀어버리고 도로와 공공 인프라를 파괴하며 가족들이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다"고 강도 높게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가 이를 자주 외면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밀리밴드 장관은 이날 공동으로 목소리를 낸 국가 가운데 캐나다와 프랑스가 정착촌에서 생산한 상품에 대한 거래 금지를 발표할 예정이고, 덴마크와 핀란드, 아이슬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스웨덴은 '추가 조치 지지'를 약속했다고 전했다. 나머지 국가들도 이미 상품 거래 금지를 했거나 이를 위한 절차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영국이 가자지구에서 사용될 무기 수출을 금지했던 것과 관련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대한 '점령에 실질적 기여하는' 무기를 포함하는 것으로 강화한다고 밀리밴드 장관은 덧붙였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국가이지만, 가자지구 및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갈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출범한 버넘 총리의 노동당 정부는 이스라엘을 향해 좀 더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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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밴드 장관  [AP=연합 자료사진]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이같은 제재는 "중대한 오판이며 역사의 그른 편에 서게 될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오는 10월 총선을 앞둔 점과 관련해서도 "주권 국가의 민주적 선거에 대한 심각한 개입이 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이날 동예루살렘 주재 영국 영사관 폐쇄 등 보복 조치를 발표했다.                                                                                < 김지연 기자 >

 

 

 

 

수감자 9323명 가운데 언론인이 40명
확인된 옥중 사망 기자 2명, 더 많을 수도
실종된 기자 7명, 생존보다 사망 가능성 높아
목격자는 분명히 있는데 이스라엘은 모르쇠
가족들은 자나 깨나 살아 돌아오길 기다려
이스라엘, 강제실종방지협약 비준 거부
1980년대 남미 ‘더러운 전쟁’의 이스라엘판

 

이스라엘군에 붙잡혀 끌려가는 사람들. 이들 가운데 약 1800명이 생사를 알 수 없는 ‘강제실종’ 상태다. Ⓒ알자지라 화면 캡쳐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정치군사집단인 하마스(Hamas)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벌어진 지도 벌써 3년이 다 돼 간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하마스의 기습에 대한 보복을 빌미 삼아 가자지구를 초토화시켰다. 내친 김에 하마스를 궤멸시키려는 목표 아래 숱한 사람들을 ‘하마스 용의자’ 또는 ‘하마스 지지자’란 구실을 붙여 감옥에 가두었다.

 

‘거미줄 걸려 죽음 기다리는 작은 벌레’

 

하모케드(HaMoked,1988년 출범)는 이스라엘의 인권단체로, 정식 명칭은 '개인의 방어를 위한 센터(Center for the Defence of the Individual)'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법적인 도움을 주려고 1988년에 출범했다. 이스라엘 교도소청(IPS)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수감자 통계 데이터를 받아내는 하모케드에 따르면, 2026년 8월 2일 현재 이스라엘 감옥 안에는 9323명이 갇혀 있다(이 가운데 여성은 92명, 어린이는 370명).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지기 전의 팔레스타인 수감자가 5200명이었으니, 거의 곱절로 늘어난 셈이다.

 

구금 형태로 나누자면, ▲형이 확정된 ‘보안 수감자’가 1474명, ▲ ‘보안 구금자’ 3293명 ▲‘행정 구금자’ 3198명 ▲‘불법 전투원’ 억류자 1358명이다. 1개월 전인 2026년 7월 1일의 통계에 견주면 수감자 숫자는 24명 늘어났고, 특히 불법 전투원 억류자가 한 달 사이에 38명 더 늘어났다. 그동안 3차에 걸친 포로교환으로 4000명 가량의 수감자가 풀려났던 점을 떠올리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마구잡이 체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정구금과 불법전투원법은 이름만 다를 뿐 (규정상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사실상 똑같은 제도다. 둘 다 변호사조차 만나기 어려운 상태에서 “비밀 증거만으로 무기한 감옥에 갇혀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들 수감자 자신은 물론 변호사들조차 붙잡힌 사유가 적힌 ‘보안 정보’ 문서를 볼 수도 없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답답한 상태에서 갇혀 있다.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거미줄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작은 벌레’에 견주곤 한다.

 

지금도 갇혀 있는 기자 34~40명

 

기자들도 거미줄을 피하기 어려웠다. 많은 수의 기자들을 ‘표적 사살’하거나 감옥에 가두었다(연재 9, ‘가자지구는 기자의 무덤’ 참조). 기자들은 변호사 접견이나 가족 면회가 금지된 상태로 ‘비밀 증거’만으로 사실상 무기한 갇혀 지내는 형편이다. 미 뉴욕에 본부를 둔 언론인 보호위원회(CPJ)나 국경없는 기자회(RSF) 등 국제 언론단체들은 정당한 취재 활동을 하던 언론인을 사살하거나 감옥 안에 가두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자 불법 구금이라고 비판해왔다.

 

이스라엘은 전세계에서 언론환경이 나쁜 것으로 악명이 높다. CPJ의 최근 집계(2026년 8월 18일)에 따르면, 2023년 10월 전쟁 이래 108명의 기자가 붙잡혀 수감시설에 갇혔다. 이스라엘-하마스 사이의 포로/인질 교환 합의 또는 혐의가 풀려 개별적으로 풀려났지만 아직도 34명이 수감 중이다. CPJ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최근 2~3년 사이에 언론인 구금률에서 중국, 미얀마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https://cpj.org/special-reports/2025-journalist-jailings-remain-stubbornly-high-harsh-prison-conditions-pervasive/#:~:text=China%20is%20responsible%20for%2015%25%20of%20the,18.%20Eritrea.%2016.%20Vietnam.%2016.%20Tajikistan.%209)

 

팔레스타인 수감자협회(PPS)의 집계는 CPJ보다는 더 많다. PPS는 누적 수감자를 약 250명, 현 수감자를 약 40명으로 꼽고 있다. 언론인 또는 기자의 범위를 어떻게 두느냐에서 비롯되는 차이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체포된 사람들의 정확한 수를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이런 이스라엘의 비밀주의는 수감자 집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현재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언론인이 몇 명이나 되는가도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언론인을 구금 형태별로 나누면, 가자지역에서 붙잡힌 언론인 15~18명은 불법전투원법, 서안지구에서 붙잡힌 언론인 15~20명은 행정구금이다. 지난 연재 글에서 살펴봤던 스데 테이만 수감시설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언론인에게는 '불법전투원법'이 전면 적용됐다. 서안지구 언론인들 가운데는 행정구금이 아니라 일반 형사/군사 재판을 받은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 씌워진 혐의는 "SNS에 선동 글을 올렸다"거나 "불법 단체(하마스 등)를 찬양했다"는 따위다.

 

CPJ, RSF 등 국제 언론단체들은 이스라엘이 명확한 증거나 재판 절차도 없이 언론인들을 붙잡아 가두는 것은 노림수가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전쟁범죄의 실상과 가자지구의 참상이 바깥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무자비한 강압책이라는 지적이다.

 

 

이스라엘 감옥에서 숨진 팔레스타인 언론인들. 이합 모하마드 디압(왼쪽)과 마르완 하르잘라. Ⓒ언론인 보호위원회(CPJ)

 

옥중 사망 언론인, 확인된 숫자는 2명이지만...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진 뒤 이스라엘군에 붙잡혀 간 구금자 가운데 몇 명이 감옥에서 숨졌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이런 비밀 구금 정책으로 말미암아 정확한 숫자를 알기는 어렵다. 현재까지 옥중 사망자는 100명 안팎인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 가운데 확인된 언론계 옥중 사망자는 2명이다(감옥에서 풀려난 뒤 이스라엘의 ‘표적 공습’으로 숨진 언론인도 2명이다). CPJ나 베첼렘(B’Tselem, 점령지 인권 정보 센터, 1989년 출범) 같은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감옥 안에서 숨졌지만 쉬쉬하고 숨기고 있는 강제실종자들까지 합친다면, 언론인 사망자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가자지구의 독립 언론사 아인 미디어(Ain Media) 사진기자 이합 모하마드 디압(Ihab Mohammad Diab, 사망 당시 36세)는 이스라엘군에 붙잡혀간 지 9개월 만인 2024년 9월 감옥에서 숨졌다. 2023년 12월 12일 가자지구 북부 알라바비다 거리에 있는 친척집에서 붙잡혀 끌려갔다. 이스라엘 당국은 처음엔 구금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쉬쉬했다. 이스라엘군 언론담당실은 “디압 기자를 체포하거나 구금한 기록이 없다”고 발뺌했다. 이스라엘 교도소청(IPS)도 “우린 이합 디압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는 감옥에 없다”고 했다.

 

디압 기자는 법적으로 생사를 알 수 없고 수감 장소도 알 수가 없는 이른바 ‘강제실종’ 상태에 놓였다. 하지만 디압이 바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이스라엘군에 붙잡혀 갔기에 목격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 애가 탈대로 탄 가족들은 그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기샤(Gisha, 자유이동을 위한 법률센터)’를 통해 이스라엘군 검찰과 대법원에 인신보호영장 취지를 담은 탄원서를 내면서 수감 여부와 행방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이 청원에 대해 이스라엘 쪽은 미적거리며 시간을 끌었다.

 

2026년 4월 마침내 슬픈 소식이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해당 인물이 이스라엘 군 시설에 구금돼 있다가 사망했고, 시신은 이스라엘 군 시설에 보관·유치 중"이라고 뒤늦게 사망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숨졌는지 밝히지 않았다. 언론보호위원회(CPJ)와 팔레스타인 ‘수감자 지원 및 인권 협회(Adameer)’ 등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디압 기자는 체포 전엔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결국 그가 사망한 원인은 ▲극심한 고문 ▲열악한 수감 환경 ▲의료 치료 방임 가운데 하나이거나 셋 모두가 겹쳐서다. 사망 경위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이스라엘은 ‘추가 답변 없음’(No Comment)으로 짧은 답신을 보내왔을 뿐이다.

 

사망 원인 감추고 시신 인도 거부

 

마르완 하르잘라(Marwan Harzallah, 사망 당시 54세)도 옥중 사망을 둘러싼 의혹이 따르는 희생자로 꼽힌다. 하르잘라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산하 공영방송인 팔레스타인 TV의 나블러스 지국에서 방송 미디어 기술자로 일했다. 2026년 1월 8일 나블러스 인근 자와타 마을 자택에서 이스라엘군에 붙잡혀 갔다. 기소나 재판 없이 80일 동안 행정구금 상태로 있던 그는 메기도(Megiddo) 교도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하르잘라는 지난 1995년 반이스라엘 시위 도중에 총격을 받아 한쪽 다리를 자른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유가족과 인권단체들은 생전의 하르잘라가 건강했고 이렇다 할 지병이 없던 점을 들어, “감옥 안 가혹행위로 숨진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심을 품고 있다.

 

또 다른 논란은 옥중 사망한 두 기자의 시신을 가족에게 넘기지 않고 보관 중이라는 점이다. 유족들에게는 2차 가해의 아픔이다. CPJ가 이스라엘 군 쪽에 "시신을 언제 유가족에게 인도할 것인가"라고 물었으나, 돌아온 답변은 "추가로 밝힐 입장이 없다"였다. 유가족에게 돌려주지 않고 이스라엘이 보관하고 있는 옥중 사망자의 시신은 알려진 것만 100구에 가깝다. 실제론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은 시신을 협상의 ‘인질’로 삼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이 문제에 대해선 따로 곧 집중 살펴볼 참이다).

 

위의 이합 디압과 마르완 하르잘라, 이 두 언론인은 모두 숨지기 전에 변호사 접견을 단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체포 직후부터 사망할 때까지 변호사 접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감자의 가족과 인권단체(Gisha)나 언론단체(CPJ 등)가 법적으로 청원을 넣고 지속적인 추적 조사를 한 끝에 비로소 두 사람이 숨졌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이로 미루어, 실종상태 행불자(이른바 ‘강제실종자’) 가운데 숨진 이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2023년 10월 7일 전쟁 첫날 가자지구에서 실종된 하이탐 압델 와헤드 기자(왼쪽)와 니달 알 와히디 기자(오른쪽). Ⓒ국경 없는 기자회(RSF)

 

목격자 있는데도 “우린 알지 못한다”

 

CPJ에 따르면, 적어도 7명의 언론인이 강제실종(enforced disappearance) 상태다. 남은 가족들은 (집안의 아빠일 수도 있고 아들일 수도 있는) 실종자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란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다. 인권단체, 인도주의 단체, 변호사 등에 연락을 주고받으며 애타게 실종자를 찾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소식을 듣지 못한 상태다.

 

가자지구의 독립언론 매체인 알쿠피야 TV의 사진기자 니달 알 와히디(Nidal Al-Wahidi)도 강제실종자 가운데 하나다. 전쟁이 터지던 당일(2023년 10월 7일) 그는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경계 지역인 에레즈(Erez) 검문소 인근에서 현장 생중계로 취재를 하다가 이스라엘군에게 붙잡혀 갔다. 함께 일하던 동료 취재진은 알 와히디가 이스라엘군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그가 어디 갇혀 있는지, 살아 있기나 한 것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하이탐 압델 와헤드(Haitham Abdel Wahed) 기자도 강제실종 상태다. 가자지구의 독립언론 매체인 아인 미디어(Ain Media) 소속 사진기자인 와헤드는 위의 알 와히디 기자와 함께 에레즈 검문소 근처에서 붙잡혀 간 뒤 행방불명이다. 그 무렵 찍힌 한 영상에는 와헤드 기자가 PRESS 글자가 뚜렷이 박힌 취재 조끼를 입고 카메라를 든 채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에레즈 검문소의 금속 게이트 앞에서다. 단 몇 초 분량의 짧은 영상은 두 기자가 사라지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알 와히디 기자도 그곳에서 목격되었다. 현장에 있던 다른 언론인들은 두 사람이 이스라엘 영내 방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봤다.

(https://rsf.org/en/what-happened-gaza-journalists-nidal-al-wahidi-and-haytham-abdel-wahed-missing-7-october-2023)

 

이렇듯 여러 목격자들이 있는데도 이스라엘 교도당국과 군은 그들의 수감 여부, 수감 장소에 대한 정보 제공을 일절 거부하고 있다. 인권단체 하모케드(HaMoked)와 기샤(Gisha)가 함께 이 두 기자의 생사 확인 및 수감 장소 공개를 요구하며 이스라엘 대법원에 인신보호 청원을 잇달아 제출했지만, 깜깜 무소식이다. 이런 ‘강제실종’ 상태는 남은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가족들이 정작 더 두려워 하는 것은 어느 날엔가 사망 통지서가 날아드는 상황이다.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선 그럴 가능성이 높다.

 

두 기자가 현장에서 사망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날 오전 10시 30분쯤 이스라엘군 F-16 전투기가 에레즈 국경 검문소 근처를 공격했고 폭격을 맞은 사람들의 시신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에레즈 검문소 근처에 모인 기자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을 겨냥한 폭격이었다. 팔레스타인 언론인협회는 그들이 이스라엘 군에게 끌려가다가 도중에 사망했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추정한다. 분명한 사실은 에레즈 검문소와 가장 가까운 인도네시아 병원에선 두 기자의 시신, 또는 그들의 흔적(PRESS 글자가 보이는 조끼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실종됐다가 살아 돌아온 기자

 

이스라엘의 인권단체 하모케드(HaMoked)는 두 기자가 실종된 지 2주 만에 이스라엘 대법원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열흘 뒤 돌아온 답변은 “이스라엘 쪽에 두 사람이 억류돼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모케드는 그 뒤 이스라엘군에도 여러 차례 수배 요청을 했으나 돌아온 답은 매번 같았다. “이스라엘군에 억류되어 있지 않으며, 구금되었다는 어떠한 징후도 없다.”

 

실종된 두 언론인은 이미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가족들이나 동료 기자들은 아직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기적적인 생환 소식이 들려온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의 가족 잡지 알 사아다와 가자 지구의 알라이 라디오에 기고를 하던 프리랜서 언론인 모하메드 나페즈 카우드(Mohammed Nafez Qaoud)는 한동안 강제실종자로 분류돼 가족들이 애를 태웠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존이 확인됐다.

 

카우드 기자는 2024년 3월 19일 피난민 친척을 만나러 가던 중 이스라엘군에게 붙잡혔지만 여러 달 동안 강제실종자로 남았다. 아무도 그의 생사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카우드 기자가 살아 있다는 소식은 극적으로 들려왔다. 그해 8월 15일 팔레스타인 수감자 지원단체인 아다미르(Addameer, 1991년 출범) 소속 변호사가 서안지구의 오페르 교도소에서 가자지구 출신 수감자 31명 중 한 명으로 카우드를 지목하면서 그의 생존이 확인됐다. 카우드는 11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2025년 2월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됐다. 그가 감옥에서 얼마나 지옥 같은 삶을 살았는가는 몸무게 변화(96kg→58kg)가 모든 것을 말해줄 듯하다.

 

집계에서 빠진 강제실종자들

 

글 맨 앞에서 수감자 숫자가 9323명이라 했지만, 집계에 빠진 사람들(이른바 ‘강제실종자’)을 떠올리면, 실제 숫자는 이스라엘의 공식 발표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지난 2006년 유엔은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강제실종 방지협약)’을 채택하여 국가권력이 민간인의 생존 여부를 감추는 것은 우리 인류에 대한 범죄이자 중대한 인권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제사회는 해마다 8월 30일을 유엔이 지정한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로 기린다.

 

21세기 중동 한복판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그런 강제실종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23년 10월 전쟁 초기부터 이스라엘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변호사의 접근을 막고 팔레스타인 구금자에 대한 인적 사항조자 알려주길 거부했다. 집안의 가장이 아무런 죄도 없이 붙잡혀 간 것도 억울한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고문을 받고 있거나, 죽음마저 은폐된다면 남은 가족들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잡혀간 이들이 지금 어디에 갇혀 있을까. 살아 있기나 한 것일까. 남은 가족들은 자나깨나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애타고 찾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는 그야말로 냉담하다.

 

이와 관련, 중요한 보고서가 하나 있다. 인권단체 하모케드가 2026년 5월 11일에 펴낸 ‘구금 중 가자지구 주민들의 강제 실종’이란 제목의 정책보고서다. 여기서 하모케드는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진 뒤 이스라엘군에 붙잡혀 끌려가 실종된 가자지구 주민들의 사례와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보고서에 실린 전형적인 강제실종 사례 하나를 꼽아보면 이렇다.

 

[2024년 2월 24일,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 근처에 있는 아주르 가족의 집을 습격해 어머니와 다섯 살 된 딸에게 총상을 입혔다. 어머니는 부상당한 딸 아이와 남편을 뒤로한 채 남쪽으로 강제 피난을 떠나야 했다. 그 순간부터 아이와 아버지의 생사와 소재는 알 수 없게 됐다. 인권단체 하모케드는 이들의 소재를 알기 위해 이스라엘 당국에 문의했다. “아이는 병사들에게 끌려갔고, 아버지는 이스라엘 구금 시설에 갇혀 있다”고 말해주는 목격자들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당국은 “체포나 구금 기록이 없다”고 답변했다. 하모케드는 이스라엘 대법원(HCJ)에 재조사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기각되었다. 이들의 운명을 규명하기 위한 추가적인 조치는 없다. 남은 가족은 이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하고 있다.]

(https://hamoked.org/files/2026/1667080_eng.pdf)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가자지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건물 앞에서 실종된 가족들의 행방을 찾아내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Omar Ashtawy/APA

 

1800명 넘는 강제실종자, 목격자의 진술서 있는데도 행불

 

하모케드는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을 상대로 약 5400명의 실종자 소재 확인 요청을 했었다. 구금자들의 행방을 알기 위해 여러 차례 이스라엘 대법원(HCJ)에 청원서를 제출한 끝에, 2024년 5월 3632명의 소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1848명(29.2%, 10명 가운데 3명)의 행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당국은 “해당 인원의 체포 또는 구금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다. 많은 경우 이스라엘군에게 붙잡힐 당시 분명히 잡혀가는 것을 본 목격자 증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우린 모른다”고 발뺌했다.

 

이에 맞서 하모케드는 목격자들이 서명한 진술서가 첨부된 114건의 인신보호영장 청원을 이스라엘 고등법원에 내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그 가운데 76건은 구금자가 어느 감옥에 갇혀 있는지가 드러났다. 하지만 법원은 나머지 38건에서는 “체포됐다는 아무런 징후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실종자를 찾는 가족으로선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다.

 

이렇듯 1800명 넘는 강제실종자들의 행방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모케드는 이 정책보고서에서 ▲구금자 등록의 허점 ▲구금자에 대한 정보 전달의 실패 ▲실종자에 대한 실질적인 수사의 부재 등 세 가지 요인이 겹쳐 “국제법을 위반하는 강제실종을 막지 못하는 더 광범위한 실패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더러운 전쟁’의 또 다른 이름은?

 

2006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ICPPED, 2010년 발효)'에 따르면, 강제실종이란 ‘체포, 억류, 납치 또는 기타 모든 형태의 자유 박탈’이 일어난 뒤 그런 사실을 부인하면서 ‘실종자의 생사나 소재를 은폐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우리 한국은 2023년에 뒤늦게 가입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미가입 상태다.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강제실종을 막아야 할 의무마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강제실종은 독재정권이 시민들을 옥죄는 나라에서 흔히 일어나는 문제다. 지난날 중남미의 친미 군사독재정권에선 많은 강제실종자들이 생겨났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1976~1983년)의 실종자(Desaparecidos)는 조사위의 공식 기록으로만 약 9000명, 인권단체와 피해자단체의 추정치로는 약 3만 명에 이른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산 채로 대서양 바다로 던져졌다. 약물 주사를 맞고 반쯤 정신을 잃은 이들은 경비행기나 헬리콥터에 실려 가 바다 위에서 떨어져 숨졌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아르헨티나 군부독재가 무너진 뒤, 한 해군장교는 법정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비행이 이뤄졌고 1500명에서 2000명이 희생됐다고 증언했다. 이 '죽음의 비행'이 저질러지던 시절은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란 이름을 얻었다. 21세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인 마구잡이 폭격과 학살, 대규모 투옥과 강제실종을 가리켜 훗날 역사가들은 어떤 전쟁이라고 이름 붙일까.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 

 

 

 

 

 

 

 

 

 

 

 

 

 

 
 

러시아인 의용군 구금·아파트 수색 놓고 충돌…3명 부상

대러시아 비밀작전 수행하는 SBU · HUR 경쟁 수면 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AP=연합 자료사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한복판에서 우크라이나의 양대 정보기관 산하 특수부대가 총격전을 벌여 여러 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충돌은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과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HUR) 간 영향력과 자원 확보 경쟁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으로 평가된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BU 특수부대와 HUR 산하 특수부대는 1일(현지시간) 늦은 밤부터 2일 새벽까지 키이우 도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무장 대치 끝에 총격전을 벌였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이 과정에서 HUR 산하 특수부대원 3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현지 주민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에는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 건물 밖에 핏자국이 남은 모습도 담겼다.

 

SBU와 HUR은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정보기관으로, 러시아 영토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러시아군 장교 암살을 비롯한 각종 비밀작전을 수행해왔다.

 

이번 충돌의 발단은 HUR의 지휘 아래 우크라이나 편에서 싸우던 러시아 국적 전투원을 SBU가 구금한 일이었다.

 

HUR 산하에는 수천명의 숙련 병력으로 구성된 '티무르 특수부대'가 있으며, 이 부대에는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 편에서 싸우는 '러시아 의용군단'도 포함돼 있다.

 

SBU는 지난달 말 러시아 의용군단 부지휘관인 스테판 칼푸노프를 체포해 약 일주일간 구금했다.

 

칼푸노프의 변호인에 따르면 SBU 특수부대 알파그룹은 1일 칼푸노프를 데리고 티무르 부대가 임차한 키이우 도심의 한 아파트를 찾아가 범죄 수사의 일환이라며 수색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티무르 부대원들이 이를 막았고, 양측의 협의가 불발되자 티무르 지휘관이 추가 병력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했다. 늦은 밤 수십명의 무장 병력이 아파트 단지에 몰려들었고 결국 총격전으로 번졌다.

 

SBU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테러 행위를 수사하던 자국 요원들이 무장한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요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칼푸노프는 총격전 이후 풀려났지만, 그가 정확히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그의 변호인은 밝혔다.

 

WSJ은 이번 사건의 배경에 최근 한층 격화한 SBU와 HUR 간 주도권 경쟁이 있다고 전했다.

HUR을 오랫동안 이끌었던 키릴로 부다노우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지난 1월 올레흐 이바셴코가 새 HUR 수장이 됐지만, 티무르 특수부대 상당수는 여전히 부다노우에게 강한 충성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다노우 역시 HUR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이번 사건은 고위 당국자들의 부패 의혹과 일부 군부대 비위 문제 등으로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또 다른 악재가 될 전망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건 이후 정보기관 수장들에게 경위를 국민에게 명확히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부다노우 비서실장도 "누구도 군인을 불법적으로 납치하거나 우리 도시의 거리에서 총을 쏠 권리는 없다"며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사기관이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신재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