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패권 떠받치던 동맹 · 미군기지 · 해로 침식
‘외과수술적 타격 독트린’도 파산…국력 취약이 배경
미국 패권의 구조적 수축 가운데 군사력도 한계

 

15일(현지시각)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을 하고 있다. 에비앙레뱅/AP 연합
 

 

미국-이란 간 합의로 107일간 이어진 전쟁이 종전의 길에 들어섰다. 이번 전쟁은 단순한 중동 분쟁을 넘어 반세기 넘게 이어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큰 변동을 가져왔다. 미국의 패권 체제에 가해진 균열과 중동 세력 판도의 변화, 서방 동맹 체제의 분열 등을 살펴본다.

 

베트남·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미국의 전략적 판단 실패를 보여줬다면, 107일 동안 이어진 이란 전쟁은 차원이 다르다. 전략적 판단 실패에 더해 미국이 누리던 패권과 초격차를 가진 국력·군사력이 침식되는 모습이 전장에서 증명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집권 때인 2018년 이란 핵 개발을 규제하는 국제 협정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2기 집권 2년차인 지난 2월 말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 전쟁을 감행했다. 100일 넘는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이란을 군사적으로 굴복시키지 못했고,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이란에 뺏기면서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긴 협상 끝에 지난 14일 이란과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합의했지만, 이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협정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에서 “왜 전쟁을 했느냐”는 질문이 비등하고, 이란 전쟁 역시 베트남·이라크·아프간 전쟁을 잇는 미국의 실패한 전쟁 계보로 분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베트남전 등 세차례의 지상전 수렁을 겪은 미국은 이번 이란 전쟁에서 지상군 없이 첨단 해·공군력만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외과 수술적 타격’ 독트린을 수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본격화한 이 독트린을 충실하게 집행했다.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난해 1월 이후 이란·이라크·나이지리아·소말리아·시리아·베네수엘라·예멘 등 7개국에 군사 타격을 가했고, 카리브해에서는 지금도 마약 소탕을 명분으로 작전을 지속한다.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단기간에 첨단 정밀유도 무기로 전쟁을 끝내는 방식이다. 이란 전쟁은 그 독트린의 확장판이었다. 지상군 투입 없이 대규모 해·공군력을 동원해 이란 지도부를 제거하고 단기간에 정권 교체를 달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정권 교체는커녕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상실한 채 이란과의 휴전 협상에 나섰다.

 

이란 전쟁이 개전된 첫날인 지난 2월28일 미국 해군 5함대의 바레인 본부 기지가 이란의 폭격으로 불타고 있다. 로이터 연합
 

더 심각한 것은 미국의 패권을 떠받쳐온 동맹과 해외 미군 기지, 항행의 자유 체제 등에 균열이 갔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14일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이 함정을 보내 호르무즈해협이 더는 위협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사실상 파병을 요구했지만, 호응한 국가는 없었다. 유럽의 미국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일부 국가들은 미군에 기지 사용과 영공 통과를 불허하는 저항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배신으로 규정하며 유럽에서 미국의 안보 기여를 줄이겠다고 위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및 세계 정세의 주요 버팀목이었던 미국과 유럽의 동맹에 적지 않은 균열이 간 것이다.

 

‘미군 기지 주둔은 안전 보장’이라는 등식도 이란 전쟁에서 뒤집혔다. 미국은 80여개국에 있는 750여개 기지·시설망과 이를 거점으로 운용되는 대양 해군력을 통해 군사 패권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란 전쟁 기간 중동 내 미군 기지는 ‘안보 우산’이 아니라 ‘공격의 표적’이었다.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전역에 흩어져 있는 미군 기지들은 이란의 공격에 노출돼 상당 부분 파괴됐다. 미 해군 5함대 본부가 있는 바레인은 개전 첫날 이란의 드론과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미군이 기지를 떠나 호텔과 민간 사무실을 빌려 근무하는 초유의 장면이 연출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기지가 이렇게 대규모 피해를 본 것은 처음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미군 기지를 마련해준 중동 국가들은 전쟁 상황에서 이 기지가 자신들이 아닌 이스라엘을 지키는 데 활용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미국 패권의 또 다른 상징으로 전세계 바다를 통제하며 공공재처럼 제공해온 ‘항행의 자유’ 원칙도 이번 전쟁에서 빛이 바랬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이란을 밀어붙였지만, 값싼 드론과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끝내 풀지 못했다. 호르무즈해협의 봉쇄로 원유·가스값이 급등하면서 세계 각국이 물가 불안에 시달렸고, 미국 국민들의 마음도 싸늘하게 식었다. 미국에 쫓긴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날카로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국이 더는 전세계에 항행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2기 트럼프 행정부는 패권국의 의무는 회피하면서 그 편익만 취하려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채 대외·국방 정책의 무게 중심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시켰다. 패권의 구조적 수축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의 글로벌 투사력을 지탱하는 해외 기지망과 대양 해군력이 침식되고 있음을 이란 전쟁은 보여줬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해 발표한 2024년 군비 지출을 보면 이란은 미국의 12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란 전쟁에서의 미국의 고전은 전략 경쟁의 라이벌인 중국과의 대결에서 먹구름을 드리운다. 중국은 군사비와 제조 능력, 기술 역량, 핵전력, 반접근·지역거부(A2/AD) 체계 모두에서 이란과 비교되지 않는 초강대국이다. 이번 전쟁은 미국 패권 침식의 예고편으로, 본편은 훨씬 가혹할 수 있다.      < 정의길 기자 >

독립 250돌 미국…미국인 5명 중 2명 “250년 더 못 버틸 것”

 
 

64%는 “미국 민주주의 무너질 위험”
‘미국은 세계 최강’에 동의 30% 불과

 

 

올해 독립 250주년을 맞는 미국인 5명 중 2명은 미국이 앞으로 250년을 더 버티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중 6명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실패할 위험에 처했다고 보고 있다.

 

오는 7월4일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일을 맞아 로이터/입소스가 조사해 16일 발표된 여론 조사를 보면, 응답자 중 38%는 미국이 지금으로부터 250년 뒤에도 단일 국가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 중 40%, 공화당 지지자 중 26%, 무당파 중 46%가 이 비관적 전망에 동의했다. 미국의 존속을 긍정한 응답자는 62%였다.

 

응답자의 3분의 2가 미국 민주주의가 실패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봤다. 응답자의 64%가 미국 민주주의가 무너질 위험에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 5월의 57%에 비해 더 늘어난 수치이다. 이번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85%, 공화당 지지자의 50%가 이런 견해를 보였다. 응답자의 77%는 향후 5년 안에 정치적 폭력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응답했다.

 

미국을 세계 최고의 나라로 꼽는 응답자 비율도 하락세를 보였다. 이번 조사에서 30%만이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답했다. 도널 트럼프 집권 1기 첫해인 2017년 11월 같은 조사에서는 38%였다.

 

민주당 지지자 중 이 견해를 가진 비율은 26%에서 11%로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약 10명 중 6명이 여전히 미국을 세계 최강으로 꼽았다. 응답자의 48%는 미국이 단지 강대국 중 하나라고 답했고, 13%는 강대국도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이번 조사는 미국인 사이에서 국가적 위기 인식이 초당파적으로 퍼졌음을 보여줬다. 민주주의가 실패 위험에 처했다는 인식이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지난해 대비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이는 민주당의 ‘트럼프 위협론’과 공화당의 ‘좌파 위협론’이 각자의 방향으로 같은 공포를 증폭시키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 정의길 기자 >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MOU) 서명했지만 핵 협상 등 쟁점 첩첩산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 프랑스 에비앙레뱅에 도착했다. AP 연합
 

미국과 이란이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지만 핵 협상 등 풀어야 할 쟁점이 첩첩이 쌓여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 동안 이란 정권이 더욱 완강해져 핵 프로그램을 놓지 않으려 할 거라고 본다.

 

15일 미 고위 당국자 브리핑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개방 등을 약속하는 양해각서 체결에 이어 60일 동안 후속 협상에 들어간다. 핵 프로그램과 대이란 제재 완화, 동결자금 해제 등을 둘러싼 논의가 이 기간 이뤄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양해각서 합의 소식을 전하며 “이 위대한 합의는 그 지역 전체에 평화와 안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찬한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안보 쟁점 중 가장 중요한 핵 협상이 뒤로 밀린 점을 지적한다. 오는 19일 이후 공개될 양해각서는 미-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 처리 방안 등을 후속 논의에서 다룬다고만 규정할 뿐, 구체적인 해결 방향은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대니얼 샤피로 선임연구위원(전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은 “트럼프는 자기 합의를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JCPOA)보다 낫게 보이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아직 그런 비교를 할 만한 단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현재 합의엔) 이란의 탄도미사일에 관한 내용도, (후티·헤즈볼라 등) 이란 대리세력 네트워크에 관한 내용도, 이란 정권을 약화시키거나 이란 국민을 도울 내용도 없다. 이란 정권을 강화하고 이란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흘러들어 갈 대규모 제재 완화만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이 후속 협상에서 미국 바람대로 핵 프로그램을 관둘지는 미지수다. 이번 전쟁을 거치며 이란 독재 정권이 더욱 강경해졌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테일러 애틀랜틱 카운슬 ‘이라크 이니셔티브’ 국장은 “(이란) 정권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으며, 걸프 전역에서 보복 공격을 감행한 뒤 오히려 대담해졌다. 전쟁은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보다, 핵 억지력이 자기 미래를 보호할 최선의 방법이라고 일깨웠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 중동연구소(MEI)의 괴뉠 톨 선임연구원도 “이번 전쟁은 이란 지도자들 사이에서 ‘미래 공격을 억제하려면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강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전망은 지역 국가들을 매우 불안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재개할 경우 휴전이 깨져 협상 자체가 중단될 우려도 여전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국무부에서 이란 문제를 담당했던 네이트 스완슨은 “이스라엘은 어떤 합의에도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조건이 나쁠 경우 자신의 역량을 이용해 합의를 막거나 약화시키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레바논, 가자지구, 시리아 ‘테러 조직’들과의 싸움도 계속된다”고 주장했다. 헤즈볼라 소탕을 명목으로 레바논 등을 계속 공격하겠다는 얘기다. 반면 이란은 휴전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유지돼야 한다고 못 박는다.

 

이번 양해각서로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면서 세계 유가에는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호르무즈 항로의 물동량이 단기간에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전쟁 동안 이란이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뢰를 제거해야 하는 데다, 해운사들은 전쟁이 완전히 종식됐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탓이다. 이란이 해협 ‘통행 수수료’ 징수권을 주장하고 있어, 통항 재개 뒤에도 물류비용은 전쟁 전보다 뛸 수 있다.

 

조시 립스키 애틀랜틱 카운슬 국장은 “시장은 앞으로 (유가 하락) 동력을 얻기 위해 ‘해협이 약속대로 실제로 열릴지’, ‘해협 통과 비용이 전쟁 이전과 비교해 얼마나 될지’에 대한 답을 원한다”며 “두 질문에 대한 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시장은 평화 합의(양해각서) 서명은 판단 기준점 중 하나로만 볼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이번 양해각서만으로는 미국이 애초 전쟁 목표로 내걸었던 ‘핵 위협 제거’ 등은 해결하지 못한 채, 이번 전쟁으로 초래된 ‘호르무즈 봉쇄’만 푼 셈이다. 가디언은 “이번 합의는 무책임한 전쟁이 시작되기 전과 거의 같은 상태로 모든 것을 남겨둔다”고 평가했다. 마르크앙투안 엘마제가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에너지·기후센터장은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는 양쪽이 결코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두 달마다 연장되는 적대 행위 중단에만 머무르는 것”이라며 “신뢰 회복엔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천호성 기자 >

 

이스라엘도 못 본 미·이란 종전 MOU…트럼프 “수일 내 공개”

  

16일(현지시각) 제이디 밴스 부통령이 뉴욕시 폭스뉴스 채널 스튜디오에서 열린 ‘폭스 앤드 프렌즈’에 출연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전자 서명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번 전쟁의 또 다른 핵심 당사국인 이스라엘이 아직 합의문을 열람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16일 이스라엘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미국에 이란과의 종전 합의문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이 열람 요청을 거부한 배경 중 하나로, 공식 발표 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가 합의문 내용을 유출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예루살렘포스트도 미국이 이번 주 후반 스위스에서 열릴 공식 서명식 전 이스라엘의 양해각서 열람 요청을 거절했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 정부는 이 같은 보도를 부인하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한 미국 당국자는 시엔엔에 해당 보도가 “정확하지 않다”며 “미국은 협상 과정 내내 이스라엘을 포함한 역내 파트너들과 긴밀히 조율해왔다”고 밝혔다. 뉴욕포스트는 한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미국 협상단에 애초에 그러한 열람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합의문 비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중 기자들에게 합의문 전문을 “며칠 안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필요하다면 합의문을 카메라 앞에서 “한 글자씩” 읽을 수도 있다고 했고, 의회에도 검토를 위해 보내겠다고 말했다.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이날 메긴 켈리 쇼 출연해 합의문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란과 파키스탄·카타르 등 중재국들이 외교적 순서에 맞춰 공개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며 “아랍·이슬람권에 존재하는 민감성에 대응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합의문이 “늦어도 금요일에는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 쟁점은 레바논 문제다. 이란은 이번 합의의 일부로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이란이 미국과의 다음 단계 협상에서 이스라엘의 레바논 철군을 요구하겠다는 보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고위 당국자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철수가 이번 양해각서에 포함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해, 합의 해석을 둘러싼 미국·이란·이스라엘 간 이견이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주요 7개국 정상회의 현장에서 지난 주말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를 겨냥해 감행한 대규모 공습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헤즈볼라를 다루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투를 너무 오래 끌고 있으며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며 “누군가를 찾을 때마다 매번 아파트 건물을 통째로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네타냐후 총리는 레바논 문제에 대해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종전 양해각서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거의 밝히지 않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항상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여전히 그 합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전쟁 당사자임에도 합의문 내용에서 배제됐다는 인식이 확산할 경우,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 정치적으로 더 큰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에서도 합의문 공개와 의회 보고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행정부가 상·하원 지도부와 정보위원장 등 이른바 ‘갱 오브 에이트’에게 합의 내용을 즉각 보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김원철 특파원 >

  

“트럼프가 이란에 항복했다”…미 보수진영 ‘종전 합의’ 반발

 
 

 이란 핵 억제 불분명한데, 경제적 여지 열어줘

 

 

미국과 이란이 종전 및 후속 협상의 틀을 담은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공화당 강경파와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합의 내용에 대한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쟁 초기 내세웠던 이란 핵 프로그램 억제 목표가 충분히 반영됐는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란에 경제적 여지를 열어준 것 아니냐는 게 비판의 요지다.

 

합의 소식이 전해진 뒤 미 보수 진영의 주요 인사들은 잇따라 우려를 나타냈다. 보수 논객 에릭 에릭슨은 15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엑스에 “트럼프가 이란에 항복했다”며 “미국인들을 죽이는 자들이 이 합의를 좋아한다”고 적었다. 조지 더블유(W). 부시 행정부 출신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마크 티센도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이번 합의의 틀이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해온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합의 세부 내용과 협상 결과를 보고 싶다. 우려된다”고 말했다.

 

보수 매체 내셔널리뷰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비군사 목적 우라늄 농축 허용을 시사한 데 대해 “실망스럽다”며, 이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이 합의에서 다뤄지지 않은 점도 비판했다. 폭스뉴스 진행자 마크 레빈은 합의문 전문이 공개되지 않은 것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이 오는 19일 종전 양해각서 서명식 이후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이번 휴전 합의가 전쟁 목표 달성보다는 호르무즈해협 재개방에 무게를 둔 “전략적 후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우라늄 농축 능력과 핵 역량을 유지한 채 제재 완화의 여지를 확보할 수 있다며, 강력한 합의라면 농축·재처리 금지, 핵시설 해체, 무제한 사찰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미사일 프로그램과 역내 대리세력 지원 문제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았다.

 

공화당 내 대표적 대이란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의회 차원의 검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전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이란 쪽이 이해하는 합의 내용이 미국 협상팀이 주장하는 것과 달라 보인다”며 “다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최종 합의가 마련될 경우 밴스 부통령 등 협상 당사자들이 의회에 직접 설명해야 하며, 조약에 준하는 의회 승인 절차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도 이란의 이행 의지를 둘러싼 회의론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액시오스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존 래트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 당국자들에게 미 정보기관이 수집한 첩보를 근거로, 이란이 최종 합의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핵 양보를 실제로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 중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이 첩보에는 이란 당국자들이 내부적으로 논의한 내용이 중재자들과 미국 쪽에 전달한 설명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내부 논의에서 이번 양해각서에 대한 우려와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 김원철 기자 >

 

 

 

 

멜라니아 발언으로 논란 다시 정치 쟁점 떠오를 가능성이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중앙현관(그랜드 포이어)에서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자신을 연결 짓는 여러 의혹을 부인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갑작스러운 성명 발표를 통해 죽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과 공범 길레인 맥스웰과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뜬금없는 발표에 워싱턴 정가와 언론은 그 배경과 의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멜라니아 여사는 9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약 5분간 생방송으로 진행된 성명 발표를 통해 “나를 그 불명예스러운 제프리 엡스틴과 연관 짓는 거짓말은 오늘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멜라니아 여사는 “멕스웰에게 보낸 내 이메일 답장은 그저 캐주얼한(격식 없는) 서신 교환에 불과했다. 그녀의 이메일에 대한 내 정중한 답장은 사소한 메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멜라니아 여사가 맥스웰에게 2002년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드러났고,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은 멜라니아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한 사람이 엡스틴이라고 주장했다. 엡스틴은 수십 명의 미성년자를 착취하고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미국의 금융가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유력 정치인 및 유명인들과의 넓은 인맥으로 논란이 됐고, 2019년 수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쟁으로 엡스틴파일 관심 사그라들었는데…

 

멜라니아 여사는 “나는 엡스틴의 피해자가 아니다. 엡스틴은 나를 트럼프에게 소개해 주지 않았다”며 “나는 내 남편을 1998년 뉴욕시의 한 파티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뉴욕시와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는 사교계가 겹치는 게 흔하다. 도널드와 나는 가끔 엡스틴과 같은 파티에 초대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엡스틴이나 그의 공범인 맥스웰과 어떠한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며 “내가 엡스틴을 처음 마주친 건 2000년 도널드와 함께 참석한 한 행사에서였다. 그전에 엡스틴을 만난 적이 없고, 그의 범죄 행위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멜라니아 여사는 의회를 향해 “앱스틴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공개 청문회를 개최할 것”을 촉구하며 이들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의회 기록에 남길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9일(현지시각) 멜라니아 트럼프 미국 영부인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 그랜드 포이어에서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AP 연합
 

“사건 덮으려 해도 정반대 효과 가져올 것”

 

멜라니아 여사가 갑작스러운 발표를 한 배경을 두고 현지 매체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에이피(AP)통신은 멜라니아 여사의 이날 발표가 “갑작스러운 메시지”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사건에서 관심을 떼려 했지만, 이번 영부인의 발언으로 논란이 다시 정치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시엔엔(CNN)도 멜라니아 여사의 돌발행동에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그가 이 사건을 덮으려고 했던 것”이라면서 “그러나 (의도와는) 확실히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의 발표를 몰랐다고 했다. 그는 미 엠에스(MS)나우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멜라니아 여사의 발언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그녀는 (엡스틴을) 몰랐다”고 말했다. 엠에스나우는 또 멜라니아 여사가 이날 성명 발표를 하게 된 추동력이 불분명하다며 백악관 직원들도 영부인의 발표에 당황해했다고 전했다.

 

멜라니아 여사의 수석 고문이자 영화 제작자인 마크 베크만은 뉴욕포스트에 “멜라니아가 이제야 목소리를 낸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거짓말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국민과 여론은 그가 이룬 놀라운 업적과 국가에 대한 헌신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윤연정 기자 >

 

미 석학 "선택적 해협 통제로 걸프 서열 정점에"

정치적으로 굴복해야 석유 얻게 된 셈
"트럼프의 보호, 아무런 가치 없다 입증"
"걸프·아시아, 미국과 거리를 두게 할 것"
미-이란, 11일 이슬라마바드서 종전 협상

"이란, 어설픈 거래 받아들이지 않을 것"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 봉쇄 제안
NPT 가입시키고 디모나 핵시설 사찰해야
이스라엘, 레바논 맹폭…사망자 303명

 

"이란에 무엇을 주고 세계 권력을 포기하도록 만들 것인가? 나는 현시점에서 그들이 어설픈 거래는 받아들일 걸로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군사 역사가인 로버트 페이프 시카고대 교수(정치학)는 9일 미 매체 <데모크라시 나우!> 인터뷰에서 이란이 지난 40여 일의 전쟁 과정에서 선택적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통해 세계적 권력을 얻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지속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량이 감소하자 칼리스토 유조선이 10일 오만 무스카트에 정박해 있다. 2026. 03. 10 [로이터=연합]
 

미-이란, 11일 이슬라마바드서 종전 협상
페이프 "이란, 어설픈 거래 받지 않을 것"

 

미국이 11일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란과 종전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최근 이란의 체급이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로 급상승 중인 만큼 웬만한 걸 제시해선 먹히지 않을 걸로 예상했다. 협상 대표로는 미국에선 JD 밴스 부통령,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이란에선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과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참석한다고 양국 언론들은 전했다.

 

페이프 교수는 '확전이 이란에 유리한 까닭'이란 3월 9일 자 <포린 어페어즈> 기고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2‧28 '불법 공격'과 최고 지도자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이스라엘과 걸프 지역 내의 미군기지와 외교공관들은 물론, 공항과 석유 인프라 등 민간 시설들을 타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유조선을 타격하는 것을 두고 베트남전에 적용됐던 '수평적 확전'(horizontal escalation) 전략이라고 탁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전쟁이 이란을 세계의 주요 강대국으로 바꾸는 중'이란 6일 자 뉴욕타임스 기고에선 "만약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통제권이 수개월 또는 수년간 지속된다면, 글로벌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면서 결국 미국의 이익을 해치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인터뷰에서 페이프는 드론과 기뢰를 이용한 선택적인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가 석유 부족과 유가 상승 대란을 초래한 부분을 넘어, 그런 상황이 장기화할 때 이란은 어떤 권력을 갖게 될지에 주목했다. 그가 보기에, 호르무즈의 병목 지점은 지리적으로 이란이 선택적으로 선박들을 통제하기에 완벽한 위치에 있다.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된 이 연출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사진 앞에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재생 중인 레고 스타일의 AI 생성 전쟁 테마 영상을 보여준다. 미·이란 휴전 소식이 전해진 직후, 한 이란 단체는 트럼프를 풍자하고 "이란이 승리했다"라고 선언하는 새로운 레고 스타일 영상을 공개했으며, 이는 AI 생성 전쟁 선전물의 최신 사례다. 2026. 04. 10 [AFP=연합]
 

이란, 호르무즈 '선택적 통제'로 권력 획득
"정치적으로 굴복하고 협력해야 석유 얻어"

 

페이프는 "이란은 이 선택적 통제를 지렛대 삼아 걸프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서열을 바꿀 수 있다. 즉, 걸프의 세력 균형을 '균형'에서 이란이 정점에 서는 '위계'로 바꾸는 것이다"라며 "다른 국가들이 이란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막대한 국내총생산(GDP)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호르무즈의 전면 폐쇄가 아닌, 선택적 통제는 이란의 '권력'을 대폭 강화할 걸로 그는 봤다. 이란군에 협조하면 선박을 통과시키고 저항하면 실제 타격함으로써 '빈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페이프는 이란 전쟁 개전 이후 처음으로 지난 3일 프랑스 컨테이너선이 호르무즈를 통과한 것을 거론한 뒤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는 이란으로부터 호르무즈를 탈환하는 어떤 군사적 노력에도 참여하지 않고, 사실상 이란에 협력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라면서 "정치적으로 굴복하고 협력하면 석유를 얻을 수 있고, 아니면 배가 침몰당하는 상황이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이란은 해협의 지리적 특성 덕분에 소수의 드론과 기뢰만으로도 적의 배를 침몰시켜 상대 국가를 취약하게 만드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며 "글로벌 경제에서 리스크는 곧 권력이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확전 함정'(escalation trap)에 빠져 있다고 봤다. '확전 함정'은 미국 같은 강대국이 군사력이나 공군력을 사용해 목표물 타격, 지도자 사살 등 전술적 성공을 거뒀지만, 전략적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선제공격한 강대국이 패배의 조짐을 느낄 때 어떻게든 승리하고자 더 높은 단계의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확전의 사다리를 올라가게 되는 현상이다.

 

8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열린 미국 및 이스라엘 규탄 시위 도중 파키스탄 시아파 무슬림들이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2026. 04. 08 [EPA=연합]
 

"트럼프의 보호, 아무런 가치 없다 입증"
"걸프·아시아, 미국과 거리를 두게 할 것"

 

페이프가 보기에, 이란은 40일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세계 석유의 20%를 통제하고 있으며, 이제 네 번째 권력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그는 "40일이 지난 지금, 이란은 단지 해협 장악에 그치지 않고 자국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이론적인 능력이 아니라 실질적 권력임을 배우고 있다"면서 "인도를 보라. 인도는 사실상 이란에 굴복하며 협력하고 있고, 그 덕분에 인도의 유조선 몇 척이 통과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도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또한 아시아 국가들을 미국과 거리 두게 만드는 이란의 영향력은 이미 명백히 나타나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아시아는 이란의 선택적 봉쇄로 인한 경제적 충격의 직격탄을 맞는 지역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이란에 맞서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포함한 걸프 국가들도 갈수록 더 이란 쪽에 줄을 설 걸로 점쳤다. 뭣보다 미군 기지들의 취약함이 드러나면서 걸프 국가들의 안전을 보장하기보단 오히려 공격의 빌미가 됐고, 막대한 피해만 봤기 때문이다. 페이프는 "그들이 어디에서 보호받겠는가? 트럼프의 보호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게 입증됐다"며 "걸프 국가들이 협력하지 않는다면, 이란은 아마 그들의 정부를 전복시키려 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특히 그는 이제 세계 석유의 약 20%를 통제하게 된 이란, 11%를 가진 러시아, 그리고 그 석유의 상당 부분을 소화할 중국이 카르텔을 형성한다면 미국과 서방엔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페이프는 향후 1년간 750억~1000억 달러 규모의 석유 수출 대금이 중국에서 이란으로 들어오면, 보유 중인 고농축 우라늄을 실제 핵무기로 전환하는 데 사용할 수 있고, 그럴 때 이란은 가까운 미래에 "핵무기와 석유를 모두 거머쥔" 세계 4번째 권력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8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의 공습 현장을 구조대원들이 수습하고 있다. 2026. 04. 08 [로이터=연합]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 봉쇄 제안
NPT 가입시키고 디모나 핵시설 사찰해야

 

이런 상황의 해결 방법은 전쟁과 협상 두 가지뿐인데 트럼프 정권으로선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전쟁을 지속하자니 전략적 패배 가능성이 큰 '확전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고, 협상하자니 전쟁 직전과는 달리 이란의 '권력'이 급상승한 만큼 그 대가로 치를 비용이 치솟고 있다는 점에서다. 페이프는 "지난 2월 27일에 제시됐던 조건들은 더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이미 2월 27일에 3.5% 농축 우라늄을 원했다. 이제 이란은 더 큰 힘을 가졌으므로 과거의 조건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란의 관심을 끌 실질적 카드로 이스라엘에 대한 강제력 있는 군사적 봉쇄를 제안했다. 페이프는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앞으로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보호를 매우 분명하게 요구해 왔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진정한 군사적 봉쇄, 어쩌면 이스라엘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하고 이란이 사찰받는 것처럼 디모나 핵시설에 대한 현장 사찰을 수용하게 만드는 정도의 카드가 나와야 얘기가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이 단행된 이후 폭격 현장에 구조대원들이 모여 있다. 2026. 04. 08 [AP=연합]

 

한편, 이스라엘은 미국과 이란의 휴전 첫날인 9일 친이란 헤즈볼라를 공격을 구실로 레바논의 민간인 밀집 지역에 무자비한 폭격을 가해 303명이 사망하고 1150명이 부상했다고 레바논 보건부는 밝혔다. 이란 전쟁 개전 이후 레바논의 누적 사망자는 1888명, 부상자는 6092명으로 늘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과 미국은 헤즈볼라가 있는 레바논이 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은 레바논도 포함되고 레바논을 제외한 협상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이에 네타냐후는 레바논과의 협상 개시를 지시하면서도 공격을 멈추지는 않겠다고 주장했다.                                       <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