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방, 가자지구 전면 봉쇄 밝혀

하마스, 보복공습 지속 땐 인질 살해 위협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군 간 무력충돌 발생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아슈켈론[이스라엘] A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이스라엘군을 가자지구에 진입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8일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진입해야 한다”며 가자지구 진격 방침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이자 240만명이 사는 가자지구를 봉쇄한 상태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9일 전면 봉쇄를 지시했다며 가자지구는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끊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예비군 30만명에 동원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액시오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익명의 소식통 3명을 인용해 두 정상의 통화 내용을 전하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지금은 (하마스와) 협상할 수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고 보도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약하게 보이면 안 되고 “억제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진격 방침 재고를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9일 연설에서 “우리가 앞으로 적들에 대해 하려는 것은 몇 세대 동안 반향이 있을 것”이라며 강력한 보복 방침을 밝혔다.

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계속 공습하면 포로로 잡아온 이스라엘인 150명을 차례차례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통화에서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제2의 전선이 형성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헤즈볼라는 8일 레바논 국경 지대의 이스라엘군 초소를 향해 로켓 3발을 쐈고, 9일에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쪽에서 국경을 넘어오는 무장 세력 여럿을 사살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헤즈볼라 초소 여러 곳을 공격했다.충돌 사흘째인 9일까지 양쪽 사망자는 1500명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민 900명 이상이 숨졌다고 밝혔고,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군의 공습 등으로 팔레스타인인 68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미국인 11명도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들 중 다수는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고 이스라엘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비교적 긴 성명을 내어 “비통하다”고 밝혔다.

또 “미국과 이스라엘은 갈라놓을 수 없는 파트너로, 나는 어제 네타냐후 총리에게 미국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국가와 시민들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확보하도록 계속 확실히 할 것임을 재확인시켜줬다”고 했다.    <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

 

일본 외무성 기밀문서 폭로

제보자 조르세티 “평형수계획의 핵심증거”

일본 외무성 기밀문서 공개는 이번이 처음

지난 7일의 조르세티 7번째 제보와 일치

 

외무성이 주한 일본대사에게 보낸 전신

한국 전담 외무성 동북아 제1과가 주관

한국 쪽 반발에 대한 대응책 강구 주문

 

일본 외무성 동북아시아 1과가 주한 일본대사에게 보낸 공문서 원본(왼쪽)과 한글번역(오른쪽). 외무대신 왼편의 한자 표기는 공문서의 수신인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

 

“이것이 ‘평형수 계획’(Ballast Water Plan)에 대한 핵심 증거입니다. (일본) 외무성의 기밀문서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해저터널을 통해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한 뒤 터널 배출구에서 나오는 핵오염수를 대형 선박 평형수로 실어 전 세계의 항구로 퍼뜨려 후쿠시마 사고원전 앞바다의 해수 방사능 농도를 신속하게 기준치 이하로 낮추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난 7일 ‘조르세티’의 제보가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일본 외무성 공식문서로 보이는 문서가 입수됐다.

외무성 동북아 1과가 주한 일본 대사에게 보낸 문서

조르세티 본인이 입수해 지난 11일 8번째의 영문 제보(제8신)과 함께 <더탐사>에 보낸 이 문서는 일본 외무성(本省) 북동아시아 제1과(亞北 1. ‘한국에 관한 외교정책’ 전담) 주관 아래 ‘외무대신’(외상=외무장관) 명의로 지난 7월 28일(레이와[令和] 5년 7월 28일) 서울의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일본대사에게 보낸 ‘전신(電信)’이다. 보존기간이 2025년 12월 31일까지로 돼 있는 이 문서에는 ‘취급주의’ 도장이 찍혀 있고 ‘ALPS(첨단액체처리 시스템. 일본정부는 이를 ’다핵종제거설비‘로 표기) 처리수(밸러스트수[ballast水])’라는 제목 아래 문서번호 ‘제2238호(취급주의)’가 붙어 있다.

한국쪽 반발 예상, 대응책 강구 주문

문서는 지난 7월 8일, 도쿄전력이 핵오염수를 저장하는 수조 J1 탱크군의 방사능 농도를 측정하고 평가했는데, “주요 7개 핵종 및 트리튬(삼중수소)의 방사능 농도가 기준치를 대폭 초과해 3만 배나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지난 7일 보낸 제보 제7신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문서는 이런 결과를 두고 “환경성이 밸러스트수(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바닥 쪽에 싣는 물=평형수)를 (해결책으로) 제안했다”고 돼 있다.

그 내용은 핵오염수의 해양 투기가 시작된 뒤에 화물선을 핵오염수가 나오는 해저터널 배출구 앞에 정박시켜 방류돼 나오는 핵오염수를 그 배들이 평형수로 싣고, 거기서 가까운 후쿠시마 현의 오나하마 항과 소마 항으로 가서 이를 “교환”함으로써 ‘ALPS 처리수’의 희석을 가속시켜 안전기준치를 충족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환경성의 이런 제안에 대해 한국 쪽에서 반발이 예상되므로, 대응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한 일본대사에게 주문했다.

“내 모든 삶, 모든 것을 한 번에 걸어야 할 때”

조르세티는 이번 여덟 번째 영문 제보에서 이 문서가 ‘평형수 계획’의 “핵심 증거”라면서, 이를 세상에 처음 공개하는 이 순간이 “내 모든 삶을 걸고, 한 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세계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가치가 있다”며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계속 싸워야 한다”고 했다.

지난 7일 제보 내용과 동일

이 문서를 보내기 나흘 전인 지난 7일에 보낸 7번째 제보에서 ‘조르세티’는 같은 내용의 계획을 전하면서, 외무성이 도쿄전력에 의뢰해 ALPS 처리과정을 통과한 수조들의 핵오염수 방사능 농도 검사를 실시해 본 결과, 수조들에 담긴 핵오염수의 Sr-90(스트론튬 90), I-129(요드 129) 등의 농도가 기준치를 크게 초과했으며, 특히 J1-D1 수조의 Sr-90 농도가 기준치의 3만 배를 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해저터널 배출구 앞에 정박해 있다가 배출되는 핵오염수를 평형수로 싣고 갈 배들이 배수량 5000톤의 배 6척이고, 인근 오나하마 항과 소마 항에는 이들 배가 부려 놓을 평형수를 싣고 세계 곳곳의 항구로 가서 다시 부려 놓을 배수량 6만톤의 대형 국제화물선들이 대기하고 있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적었다.

이제까지의 제보 내용 신뢰성 높여줄 듯

이번 제8신 제보와 함께 보낸 문서는 제보자 조르세티가 자신이 지난 7일 제보한 내용이 외무성 공식문서로 뒷받침되는 사실임을 보여 주기 위해 보낸 것으로, 이전의 제보들을 포함한 이제까지의 그의 모든 제보 내용에 대한 신뢰성을 한층 더 높여 줄 것으로 보인다.

[ 조르세티 영문 제보 제8신과 번역문 ]

이것이 "평형수 계획"(Ballast Water Plan)에 대한 핵심 증거입니다.

외무성의 기밀문서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내 모든 삶을 걸고, 한 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가치가 있습니다.

핵오염수(nuclear wastewater) 배출 시기가 임박했습니다. 자, 세상을 위해 우리는 포기할 수 없었고, 계속 싸워야 합니다.

조르세티

It may be the first time that the MOFA’s confidential document has been displayed in front of the world. It’s time to stake all my life on this moment, to risk everything on one throw. But in order to let the whole world know the truth, it is worthwhile taking any risks.

It is very close to the discharge of nuclear wastewater. Come on, for the sake of the world, we couldn’t give up, we have to keep fighting.

Jorseti

< 시민언론 민들레 한승동 에디터 sudohaan@mindlenews.com >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

두나라 협상 대표, 합의안 초안 마련

우크라, ‘러시아·서방의 안전보장’ 제시

‘탈나치화’ 등 러시아쪽 요구는 빠져

영토 문제는 정상간 담판 통해 해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협상 대표들이 휴전 합의안 초안에 의견 접근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28일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의 시민들이 지하철역 안에 대피해 있다. 하르키우/EPA 연합뉴스

 

터키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5차 협상을 앞두고 두 나라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은 포기한다’는 내용의 휴전 합의안에 의견 접근을 이뤘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28일 보도했다. 하지만 지난 4차 협상 직후인 16일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는 이 매체의 보도에 대해 러시아가 ‘정확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최종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신문은 두 나라 간의 협상 상황을 보고받은 4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대가로 그동안 요구해온 ‘안전 보장’과 ‘유럽연합 가입’을 맞바꾸는 내용의 적대 행위 중단안 초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침공의 목표로 내세워온 중립화·비무장화·비나치화 가운데 중립화를 중심으로 타협이 이뤄진 모양새다. 소식통들은 러시아가 요구해왔던 비나치화, 비무장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에 대한 법적 보호 등 세가지는 합의안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자국 내에 외국군 주둔도 허용하지 않는 방안을 협상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대신 ‘나토 회원국이 공격을 당하면 다른 회원국들이 지원에 나선다’는 나토 조약 5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안전을 보장받는 방안이 제시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독일·중국·이탈리아·이스라엘·터키 등 주요 국가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어느 나라도 아직 안전 보장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거부한 나라도 없다고 관계자가 밝혔다.

 

다비드 아라하미야 우크라이나 집권당 대표 등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들은 신문에 “모든 쟁점이 초기부터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으며, 많은 쟁점에서 이견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도 안전 보장과 유럽연합 가입 추진 등과 관련한 합의가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남은 여러 쟁점 가운데 안전 보장과 관련한 문제에선 의견이 모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에 따라 합의안 초안에는 크림반도 등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점령당한 영토를 포기할지 여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담판을 통해 해결하도록 남겨진 상태라고 신문은 전했다.

 

다만, 아라하미야 대표는 국경 문제에 대해 “우리가 독립을 선언할 때 결정된 것 이외의 국경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양보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도 협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국민, 영토, 주권은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진지한 협상 자세로 나오고 균형 잡힌 제안을 내놓는다면 진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러시아는 이번에도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협상 과정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진전이 있는지 여부는 말할 수 없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라면서도 “안타깝게도 중대한 진전이 이뤄졌다거나 돌파구가 마련됐다고 말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나라가 29일 터키에서 시작되는 5차 협상에서 휴전에 합의하면, 안전 보장 문제 등에 대한 별도 합의문을 작성하기 위해 외교장관 회담이 추진될 예정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과 관련한 움직임은 없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기섭 기자

 

러, 우크라 정권 제거→돈바스 분단·장악으로 목표 선회?

 

[러 전쟁 ‘최종목적’ 논란]

 

러 국방부 “돈바스 해방에 집중”

동부지역 분리로 초점 이동 관측

우크라 “러, 남북처럼 만들려 해”

영구분단 시나리로 추진 분석 내놔

 

동남부에선 ‘실질적 통치’ 움직임

친러세력 “러 통합 주민투표할 수도”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서 27일(현지시각) 한 여성이 포격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학교의 잔해물을 치우고 있다. 하르키우/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달을 넘어서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전쟁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관측이 오가고 있다. 일부에선 우크라이나의 강한 저항에 막힌 러시아가 수도 키이우(키예프) 제압을 포기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을 확보하는 쪽으로 목표를 수정했다는 관측을 내놓지만, 우크라이나 내부에선 한반도식의 ‘영구 분단’을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의 목표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 참수(제거)에서 동부 지역 확보로 낮췄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 것은 러시아 국방부의 지난 25일 기자회견이었다. 세르게이 루츠코이 작전본부장은 이날 우크라이나 침공 작전의 “1단계 성과는 달성됐다”고 밝히며, “앞으로 주요 목표인 돈바스 지역의 주민 해방에 핵심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부 외신들은 러시아가 ‘젤렌스키 정권 교체’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21일 독립을 승인한 동부 돈바스 지역의 두개 ‘자칭 국가’를 지원하는 데 역량을 기울인다는 현실 노선으로 기울어진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이틀 뒤 우크라이나에선 조금 다른 맥락의 분석이 나왔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군사정보부장은 27일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전체를 삼킬(swallow up) 수 없게 된 “러시아가 그동안 점령한 모든 지역을 한데 모아 한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준국가와 같은 실체’를 만들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러시아가 “수도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를 전복하려다 실패한 뒤, 주 작전 방향을 동부와 남부로 전환했다”는 점을 꼽으며 “그(푸틴 대통령)가 아마도 우크라이나에 한국과 같은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점령 지역과 점령되지 않은 지역을 분리하려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남한과 북한을 만들려는 시도”라고 우려했다.

 

실제, 러시아는 전쟁 초기 공수부대와 기갑전력을 키이우에 집중해 젤렌스키 정권을 쓰러뜨리고 단숨에 전쟁을 끝내려 했지만, 사실상 이 목표 달성은 힘들어진 상태다. 오히려 23일께부터는 러시아군이 키이우 부근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군은 애초 반군 세력이 일부를 장악하고 있던 동부 지역을 넘어 흑해와 면한 남부 지역을 공략하는 데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는 21일 2014년 3월 합병한 크림반도와 친러 세력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연결하는 데 성공한 데 이어, 남부 점령 지역에서 단순 점령이 아닌 영구 통치를 염두에 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예로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주 군 당국은 26일 러시아가 점령한 도시 멜리토폴에서 러시아 지지를 표명하는 집회가 계획되고 있고, 또 다른 점령 도시 토크마크에선 새달인 4월부터 통화를 우크라이나 흐리우냐에서 러시아 루블로 바꾸는 계획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도 이날 남부 헤르손과 자포리자주 러시아 점령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기존 정부를 해체하고 새 민군 합동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시도가 성공하면 우크라이나는 흑해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를 대부분 봉쇄당한 채 내륙국가로 조그라들게 된다.

 

한발 더 나아가 친러 세력이 만든 자칭 국가인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레오니트 파세치니크 수반은 27일 “조만간 유권자들이 헌법적 권리를 행사해 러시아의 일부가 되는 것을 지지하는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크림반도 합병 때도 주민투표를 명분 삼아 흡수 작업을 단숨에 마무리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는 영웅적인 항전에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길윤형 기자

 

우크라 마리우폴 사망자 5천명 넘어…“사실상 함락”

 

마리우폴 시장 “우리는 점령군 손 안에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도심을 원형으로 방어 중”

우크라, 키이우 인근 도시 이르핀 탈환

“러시아군 어려움 겪자, 용병 1천명 투입”

유엔, 구호품 지원에 어려움 겪어

 

우크라이나 동남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친러시아계 군인이 28일(현지시각) 폭격으로 뼈대만 남은 건물 앞을 지키고 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한 달 가까이 러시아군에 포위돼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에서 지금까지 민간인이 5천명이나 희생된 가운데 도시가 사실상 러시아군에 넘어갔다고 마리우폴 시장이 28일(현지시각) 밝혔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이날 미국 <시엔엔>(CNN) 방송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우리 권한 안에 있지 않고, 불행하게도 우리는 점령군 손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식수, 전기, 난방이 모두 끊겨 생활이 불가능한 도시에 현재 16만명의 주민이 머물고 있다. 정말 두렵다”고 말했다.

 

보이첸코 시장은 도시의 모든 탈출 통로가 러시아군에 의해 봉쇄됐다며 “마리우폴에서 완전히 탈출하는 게 필요한 상황이며,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이첸코 시장은 우크라이나 <인테르팍스> 통신에 현재까지 마리우폴에서 210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5천명의 주민이 숨졌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은 자국 군인들이 마리우폴 시내에서 원형으로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혀, 끝까지 마리우폴을 지킬 의지를 드러냈다.

 

수도 키이우 주변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이날 러시아가 점령한 도시 이르핀을 탈환하는 등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올렉산드르 마르쿠신 이르핀 시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오늘 반가운 소식이 있다. 이르핀이 해방됐다”고 썼다. 이르핀은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20㎞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로, 러시아의 침공 초기에 벨라루스쪽에서 남쪽으로 진격한 러시아군에 점령당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키이우 서쪽 마카리우 등에서도 러시아군에 반격을 가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제2 도시 하르키우, 북부 국경 도시 체르니히우 등에서도 뚜렷한 전과를 올리지 못한 채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고 미국 국방부 관계자가 밝혔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강한 저항에 직면해 어려움을 겪자, 러시아가 1천여명의 용병을 투입했다고 영국 국방부가 밝혔다. 영 국방부는 트위터를 통해 “용병기업 와그너그룹이 우크라이나 동부에 조직의 고위 지도자를 포함해 1천명이 넘는 용병을 배치했고 작전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어 “러시아군이 큰 손실을 당하고 공격이 정체에 빠지자 와그너그룹 용병을 아프리카와 시리아 대신 우크라이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 하다”고 설명했다.

 

유엔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주민 89만명에게 구호 물자를 공급했으나, 여전히 물자 지원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유엔은 하르키우와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비상 식량과 의료품 등을 지원했지만, 많은 지역에서 포격이 이어지고 곳곳에 지뢰가 매설된 상태여서 구호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신기섭 기자

우려 키우는 우크라 신나치집단

 

백인 우월주의자들 온라인서 극성

극단적 국가주의 성향 드러내며

우크라 참전 희망자 대대적 모집

 

우크라이나 ‘아조우 대대’가 운영하는 군사학교 교육생들. ‘아조우 대대’ 누리집 갈무리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구 언론이 다루기 껄끄러워진 주제가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극우·신나치 무장세력의 움직임이다. 미국과 유럽 등의 극우 분자들이 우크라이나군에 합류해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인 뒤, 여기서 쌓은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자국 내에서 폭력 활동을 강화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전세계 극단주의 세력 분석 기관인 ‘사이트 인텔리전스 그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백인 우월주의자와 신나치 추종자들의 온라인 활동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이 기관의 상임이사이자 테러분석가인 리타 카츠는 최근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극우 집단이 주로 사용하는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러시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는 방안 등 참전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카츠 분석가는 최근 전투 참여 의사를 밝힌 외국인 가운데 노골적인 신나치 집단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신나치 민병대 구성을 논의하는 소셜미디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활동하던 이들 중 한 명이 ‘MD’라는 아이디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참전 희망자를 모집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신나치 대화방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자칭 ‘전직 군인’도 지난달 말 “앞으로 1~2주 안에 (우크라이나를 향해) 영국에서 출발할 것”이라며 함께 참전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D’라는 아이디를 쓴 이 인물은 우크라이나에 입국하면 유대인들을 죽일 것이라며 ‘하일 히틀러’(나치식 경례)를 외치는 등 노골적인 나치 성향을 드러냈다.

 

미국·영국 외에도 독일·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스웨덴·폴란드 등 유럽 여러 나라의 극우 성향 인물들이 우크라이나 참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사이트 인텔리전스 그룹은 파악하고 있다. 카츠 분석가는 “2014년 이슬람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가 전세계에서 동조자들을 모집한 이후 이렇게까지 광범하게 전사 모집 활동이 전개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들의 목표는 유대인 대통령이 이끄는 다민족 국가인 우크라이나 방어가 아니다. 일부는 이번 전쟁을 자신들의 폭력적인 공상을 현실화할 기회로 보고, 다른 일부는 우크라이나에서 극단적인 국가주의 성향의 (백인) 단일민족국가 구상을 현실화하고 이를 전세계에 수출할 꿈을 꾸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심엔 신나치 조직 ‘아조우 대대’

고문·약탈 저질러 한때 제재 불구

정부 공식조직으로 군사경찰 활동

정당·무장 민병대까지 갖추며 득세

 

우크라이나로 극우세력을 끌어들이는 구심점은 신나치에 뿌리를 둔 이 나라의 무장조직 ‘아조우 대대’다. 이들의 활동 근거지에 면해 있는 아조우(아조프)해에서 따온 이름으로 추정된다. 이 조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달 25일부터 공개적으로 외국인 전사를 모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달 초 참전을 희망한 외국인이 1만6000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몇명이 아조우 대대에 합류했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조직이 보통의 극우 무장세력과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정부의 공식 조직이라는 점이다. 아조우 대대는 현재 우크라이나 내무부 산하의 ‘아조우 특수작전 파견대’라는 명칭으로 군사경찰 활동을 하고 있다. 평소에는 지역 치안을 담당하고 전시에는 전투에 직접 참가하는 국가방위군의 일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목표 중 하나로 ‘탈나치화’를 내세운 것도 구체적으로는 이 조직을 겨냥한 것이다. 신나치 성향의 무장조직이 정식 정부 조직으로 치안·군사 작전에 참여하면서 돈바스 등 분쟁지역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을 탄압해왔다는 게 러시아의 주장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의 아조우 대대 분석 보고서를 보면, 우크라이나에서 극우 무장세력이 정부의 정식 조직으로 편입된 계기는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으로 촉발된 내전이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직후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시아 분리독립 무장세력이 등장하자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자국민에게 민병대 구성을 촉구했다. 이에 호응해 안드리 빌레츠키 등 극우·신나치 세력 50여명은 즉각 아조우 대대를 구성했다.

 

4월부터 전투에 직접 참여한 아조우 대대는 6월 반군 세력으로부터 남동부 주요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우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리우폴 탈환을 위한 전투에 참여한 의용군 400여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아조우 대대 소속이었다. 우크라이나군과 반군이 휴전에 합의한 9월까지 아조우 대대 조직원은 500명 수준으로 빠르게 늘었다. 휴전 합의 뒤에도 돈바스 지역에서 분쟁이 그치지 않은 가운데 아조우 대대는 11월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 소속의 정식 조직으로 편성됐다. 이듬해에는 조직원이 1000명 수준까지 늘어나면서 국가방위군 내의 주요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국제안보협력센터 보고서는 “아조우 대대 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신나치 성향을 부인하거나 일부 구성원의 문제로 치부해왔지만, 이 조직 설립자인 빌레츠키는 2010년 유대인들이 이끄는 ‘인간 이하 세력’(나치 용어)에 맞서 세계 백인종의 마지막 십자군 전쟁을 주도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국가의 임무라고 발언한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빌레츠키는 2014년 10월 정치를 위해 조직을 떠났고, 그해 11월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의원에 당선돼 2019년까지 의원직을 유지했다.

 

아조우 대대는 이후 돈바스 지역 내 분쟁에 계속 개입했다. 미국 정부는 이 조직의 극우 성향을 문제 삼아 2015년 금융과 물자 지원 금지 등의 제재를 단행했다가 이듬해 해제했다. 유엔인권사무소는 2016년 보고서에서 아조우 대대가 돈바스 지역에서 고문이나 민간인 약탈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외국 극우세력에도 영향력 키울 듯

세계 분쟁지역서 불안 부추길 위험

“시리아처럼 알카에다·IS 온상될 수도”

 

국제적인 비판 속에서도 아조우 대대의 활동은 더욱 확대됐다. 2016년에는 빌레츠키 주도로 ‘국민군단’이라는 정당이 창당됐고 이듬해에는 ‘국민민병대’라는 별도의 무장조직이 구성됐다. ‘아조우 운동’으로 통칭되는 군사경찰·정당·민병대의 3각 구도가 갖춰진 것이다. 아조우 세력은 유럽과 미국 등의 극우세력과 유대를 강화하는 국제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조직 구성원도 2019년에는 아조우 대대와 국민민병대가 각각 1500여명과 1000명 수준까지 늘었으며, 국민군단 당원은 2만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병대 조직은 2019년 대통령선거에서 공식 선거감시단체로 활동하기도 했다. 활동 지역도 초기에는 마리우폴에 국한됐으나, 지난달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수도 키이우, 제2도시 하르키우 등의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 아조우 대대는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한 올해 초 민간인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일반인 대상 활동도 적극 전개했다.

 

러시아의 이번 침공은 아조우 운동 세력이 국내외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제안보협력센터 보고서는 “아조우 세력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향후 우크라이나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치 영향력 확대를 꾀하더라도 대규모 대중정당을 추구하기보다 대중을 급진화하고 극우 이념 확산에 집중하는 전략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아조우 세력이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에 끼치는 영향보다 더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외국 극우세력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라고 지적한다. 이 조직은 그동안 소셜미디어를 통한 선전선동 활동을 주 무기로 국제 극우세력의 중심으로 자리잡았고, 외국 무장세력에 대한 군사훈련 등에도 적극적이다. 전직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 알리 수판이 이끄는 테러연구집단 수판센터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 분쟁에 개입한 외국 전사는 50개국에서 1만7000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미국 의원 40명은 2019년 “이 조직이 몇년 동안 미국 시민들을 모집해 훈련시키고 과격화를 부추겼다”며 국무부에 이 조직을 테러 집단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외국 극우세력의 규모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불안을 부추기는 세력이 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사이트 인텔리전스 그룹의 리타 카츠는 “우크라이나 상황은 2010년대 초중반 시리아 상황을 연상시킨다. 당시 시리아는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같은 과격 세력을 키운 온상이 됐다. 극우 집단의 부상을 재촉할 환경이 우크라이나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