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자로 15기 재가동, '멜트다운 악몽' 잊은 듯

● WORLD 2026. 1. 23. 13:0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세계에서 가장 큰 원자력 발전소
가시와자키 원자로 6호기 재가동

안전 기준 강화로 가동 비용 급증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지고 있다"

"과거 경험한 사고에는 대비하지만
'100년 만의 대지진'에 준비 안돼"

 

지난 2024년 8월 5일에 촬영한 일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발전소. 단일 원자력 발전소로 세계 최대 규모인데 21일 원자로 6호기가 재가동됐다. AFP 자료사진 연합
 

"그들은 과거에 본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지만, 다가오는 일은 준비하지 않는다."

 

일본 도쿄전력이 21일 혼슈 중부 니가타현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발전소의 6호기 원자로를 재가동한 가운데 독일 뮌헨 공과대학의 플로렌틴 코펜보르 박사는 영국 BBC에 이런 경고를 남겼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멜트다운'(meltdown, 원자로 중심부에 있는 핵연료 다발이 녹아내리는 현상) 됐던 후쿠시마 제1원전의 운영 주체인 도쿄전력이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은 15년 만에 처음이다. 교도통신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이날 오후 7시쯤 핵분열을 억제하는 제어봉을 빼내 원자로를 기동시켰다.

 

일본이 원자력 발전 야망을 되살리려 하면서 원자로 가동 비용이 급등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발전소 재가동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새롭게 안전 점검에 나서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게 됐기 때문이다. 코펜보르 박사는 "원자력 발전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싸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 안전 관련 고위직을 지낸 네이는 "새로운 안전 기준에 따르면,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는) 2011년에 겪었던 것과 비슷한 지진과 쓰나미도 견딜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정책들이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나 100년에 한 번 일어나는 대지진을 충분히 계획하지 못했다고 우려한다. 코펜보르그는 "과거가 반복된다면 일본은 매우 철저히 준비돼 있다"면서도 "만약 우리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예상보다 큰 쓰나미가 온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가시와자키 원전의 6호기 원자로는 하루 전에 재가동할 계획이었으나 시험 과정에 경보 장치 오류가 발견돼 확인 작업을 거쳐 원자력규제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재가동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이곳 원전에는 원자로 7기가 들어서 있으며 합계 출력은 821만 2000㎾다. 다만 이날 재가동한 것은 6호기 하나뿐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계기로 자국 내 모든 원전의 운전을 중단했다가 차츰 재가동 원자로 수를 늘려 왔다. 당시 일본 원자로는 모두 54개였다. 2015년 이후 일본은 33개의 가동 가능한 원자로 중 15기를 재가동했다. 2024년 12월 시마네 원전 2호기가 재가동됐다. 따라서 가시와자키 원전 6호기는 15번째다. 이곳은 도쿄전력이 소유한 발전소 가운데 처음으로 재가동됐다.

 

도쿄전력은 재가동한 6호기 원자로의 출력을 서서히 올려 다음달 26일쯤부터 상업 운전을 재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7호기는 2030년에나 재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머지 다섯 기는 영구 폐쇄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원전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불신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해 지역 주민 동의 절차에 난항을 겪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전력 수급이나 탈탄소 전력 확보 관점에서 원전 재가동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BBC는 에너지 수입에 크게 의존해 일찌감치 원자력 발전을 받아들였던 일본 원전의 현주소를 점검해 눈길을 끈다.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220km 떨어진 해안가에 들어선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발생한 멜트다운은 방사능 누출을 초래했다. 주민들은 대피했으며, 안전하다는 공식 확답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발전소 소유주인 도쿄전력이 준비돼 있지 않았고, 정부와의 대응이 잘 조율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독립적인 정부 보고서는 "인재"라며 도쿄전력을 질책했다. 법원은 임원 셋을 무죄로 판결했다.

 

2011년의 재앙이 덮치기 전, 원자력 발전이 일본 전력의 거의 30%를 차지했으며, 2030년까지 이를 50%까지 늘릴 계획이었다. 지난해 에너지 계획에 따르면 일본은 204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로 낮추기로 했다. 그것을 충족하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2024년 8월 6일 촬영된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7호기 내부 (AFP 자료사진 연합)

 

뜨거운 돌 위에 한 방울'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이 곱절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는 등 많은 나라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짓겠다고 나서고 있다. 2023년 기준 일본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전기의 8.5%에 불과했다.

 

지난해 10월에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에너지 자급에 원자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종종 강조해 왔다. 특히 데이터 센터와 반도체 제조에 에너지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 지도자들과 에너지 기업들은 오랫동안 원자력 발전을 추진해 왔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보다 더 믿음직한 데다 산악 지형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판하는 이들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강조가 재생에너지 투자와 배출 감축을 희생했다고 반박한다. 

 

정부는 발전 비용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거나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데, 수십 년 동안 원자력 발전이 저렴하다고 목소리를 높여 온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 비싼 에너지 요금은 가계들이 비용 상승에 항의하는 시기 정부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코펜보르그는 "정부가 주요 판매 포인트 중 하나를 번복하지 않는 한 원자력 재정 지원에 손이 묶여 있다"면서 "(일본의 원자력 부흥은) 뜨거운 돌 위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 내 원자력 발전 쇠퇴라는 더 큰 그림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두려움 말고도 일련의 스캔들이 대중의 신뢰를 흔들었다. 특히 가시와자키 발전소는 몇 가지 문제에 휘말렸다. 2023년에는 직원 중 한 명이 자동차 위해 발전소 서류 뭉치를 올려놓았다가 분실한 사고가 있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또 다른 사람이 기밀 문서를 부적절하게 다룬 사실이 밝혀졌다. 도쿄전력 대변인은 이 사건들을 원자력 규제기구(NRA)에 보고했으며, 보안 관리를 계속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 달 초, NRA는 중부 하마오카 발전소 가동을 중단시켰다. 회사가 지진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회사는 사과하며 "우리는 NRA의 지시와 지침에 대해 진심으로, 그리고 가능한 한 최대한 온전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자력 안전 관련 고위직을 지낸 네이 히사노리는 BBC에 "전력 회사들은 (데이터를 조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당국이 문제를 일으키는 기업들을 "거부하고 처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일본 도쿄의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려 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도쿄 AFP 연합
 

후쿠시마 원전은 '멜트다운' 이어 오염수 유출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일은 저렴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평가 받던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게 만들었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며 방사선 노출과 관련된 재산 피해, 정신적 고통, 건강 문제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3월 참사 이후 몇 주 동안 일본인의 44%가 원자력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수치는 이듬해 70%로 급증했다. 하지만 2022년 일본 경제지 닛케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전이 보장된다면 50% 이상이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불신이 있다. 2023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처리된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면서 국내외에서 불안과 분노가 일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가시와자키-가리와가 위치한 니가타현 청회 앞에 모여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만약 발전소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책임을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로 재가동을 앞두고 지난 19일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반대 집회가 진행됐다. 후쿠시마 이후 원자력 안전 기준이 강화됐다. 2012년에 내각 산하로 설립된 NRA는 현재 이 나라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을 감독하고 있다. 가시와자키-가리와에는 대형 쓰나미를 방지하기 위해 높이 15m의 방파제가 건설됐으며, 방수문이 시설의 주요 장비를 보호하고 있다.                                                         < 임병선 기자 >

          

"그린란드, 사실상 북극 전체 관련한 미래 합의틀(framework) 마련했다”

미·유럽 갈등 일단 숨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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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기간 중,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왼쪽)과 회담하고 있다. 다보스/A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구상에 반발해 병력을 파견한 유럽 8개국에 다음 달 1일부터 관세를 부과하겠다던 계획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 참석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인 마르크 뤼터와의 회담을 통해 그린란드, 나아가 사실상 북극 전체 지역과 관련한 미래 합의틀(framework)을 마련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해결책이 최종 성사된다면 미국은 물론 모든 나토 회원국에 매우 유익할 것”이라며 “이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2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다음달 1일부터 10%, 오는 6월1일부터는 25%의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들 국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해 군사력 사용 가능성까지 시사하자, 나토 차원에서 그린란드에 병력을 증강 배치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됐다.

 

이번 관세 철회 결정으로,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유럽 갈등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뤼터 사무총장은 이날 다보스 현지에서 회담을 갖고 최소한 관세와 군사적 충돌을 피하는 선에서 출구 전략을 마련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미래 합의틀’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백악관 역시 추가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미래 합의틀’이 마련됨에 따라, 그린란드와 북극권의 안보·경제적 권리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 간 후속 협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그린란드에 적용되는 ‘골든돔(Golden Dome·미국 차세대 공중·미사일 방어체계)’과 관련해 추가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논의가 진전되는 대로 추가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제이디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윗코프 특사가 협상을 맡게 되며, 필요할 경우 다른 인사들도 참여해 나에게 직접 보고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그린란드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매우 중요하다”며 소유권 확보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하지만 군사력을 사용하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덴마크 정부는 “무력 사용을 배제하겠다는 발언은 환영한다”면서도, 그린란드의 주권 문제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 발표 직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국과 유럽 증시는 동반 상승했고, 국채 금리는 하락했다. 

                                                                                               < 김원철 기자 >

 

트럼프 “그린란드 획득 위해 무력은 안 써…즉각 협상 원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에서 특별 연설을 하고 있다. 다보스/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해 “즉각적인 협상을 원하지만 무력을 사용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란드 인수 구상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한 위협이 아니며, 나토 안보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을 위해 100%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설에서 그린란드를 언급하며 “나는 무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으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미국이 그린란드를 다시 인수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즉각적인 협상에 나설 것을 추진하고 있다. 많은 유럽 국가들 또한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사용권이 아니라, 방어를 가능하게 하는 명확한 권리와 지위”라며 “(그린란드 인수 요구에 대해) 선택지가 있다. ‘예’라고 말하면 우리는 깊이 감사할 것이지만, ‘아니오’라고 하면,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는 미국·러시아·중국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라며 “사실상 북아메리카의 일부이자 서반구 북부 전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국제 안보 환경에서 이처럼 광대하고 거의 무방비 상태인 지역은 미국의 핵심 국가 안보 이익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희귀 광물 확보 목적’ 주장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그는 “그린란드에는 희귀한 원소들이 존재하지만, 진짜 문제는 광물이 아니라 가공 기술”이라며 “(그린란드 광물 개발을 위해) 수백 피트의 얼음을 뚫어야 하는 상황에서 광물 확보가 핵심 이유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덴마크가 독일에 빠르게 점령됐던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미국이 그린란드를 방어하지 않았다면 적대 세력이 서반구에 거점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막대한 비용을 치르며 그린란드를 방어했고, 전쟁 뒤 이를 덴마크에 반환했다”며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이었나. 그런데 지금 그들은 얼마나 배은망덕한가”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인수 논의가 나토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동맹 전체의 안보를 강화하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린란드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나토 전체의 안전과 직결된다”며 “강하고 안전한 미국은 곧 강한 나토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덴마크가 2019년 그린란드 방어 강화를 위해 2억 달러 이상을 지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지출한 금액은 그 금액의 1%도 안 됐다”며 “그린란드를 보호·개발·관리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 김원철 기자 >

 

‘트럼프 성토장’ 된 다보스포럼…“함께 행동 안 하면 잡아먹힐 것”

마크롱 “유럽 종속시키려 끝없이 관세 동원…용납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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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연설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오른쪽 눈 충혈로 선글라스를 쓴 채 연단에 올랐다. AFP 연합
 

올해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야욕을 규탄하는 성토장이 됐다. “폭력배보다 존중이 낫다”, “괴물이 될지 말지 스스로 택하라” 등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날 선 비난이 쏟아졌다.

 

다보스포럼 사무국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오늘날의 세계가 “국제법이 짓밟히며 유일하게 의미 있는 법이란 가장 강한 자의 법인 무규범 상태로 들어서고 있다”며 “제국주의적 야심들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오른쪽 눈 충혈 탓에 선글라스를 쓴 채 연단에 올랐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러한 징후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미국이 무역 협정을 통해 벌이는 분쟁”을 콕 집어 언급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발 무역 전쟁이 “우리(유럽)의 수출 이윤을 갉아먹고 최대의 양보를 요구하며, 유럽을 공공연히 약화·종속시키려 한다”며 “여기에는 끝없이 쌓이는 새로운 관세가 동반된다. 이는 근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특히 그것이 영토 주권을 침해하기 위한 지렛대로 쓰일 때 더욱 그렇다”고 비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에 반대하는 유럽 8개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일방 통보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연합이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우리는 폭력배보다 존중을, 음모론보다 과학을, 적자생존보다는 규범을 선호한다”며 연설을 맺었다.

20일 다보스포럼 패널 토론에서 발언 중인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 로이터 연합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 역시 유럽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는 압박을 ‘노예 상태’에 비유하며 수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패널 토론에서 “(미국에 대해) 불행한 노예가 되는 건 행복한 신하가 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라며 “지금 양보하면 존엄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미국-유럽 간) 동맹을 지켜낼 책임은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며 “괴물이 될지 말지는 트럼프의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나토(NATO) 회원국인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는 덴마크의 그린란드 영유권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약속했다. 그는 “우리는 세계질서의 ‘전환’이 아닌 ‘균열’ 한가운데 있다”며 “강대국의 지정학이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잔혹한 현실의 시작”이라고 짚었다. 이어 “중견국들은 함께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 우리는 (잡아먹히는) 메뉴가 된다”며, 미국·중국·러시아 등 열강의 ‘파워 게임’에 맞서 다른 나라들이 한 목소리를 내자고 했다.

 

다보스포럼은 65개국 정부 수반이 모인 가운데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연설을 앞두고 있다. 그린란드 영유권과 유럽 8개국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 등에 대한 입장을 재차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날 다보스포럼 회의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그린란드 문제를 두고 대화를 시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덴마크 정부는 다보스포럼에 대표단을 보내지 않겠다며 미국 쪽과의 대면 접촉을 피했다.                     <천호성 기자 > 

AI 합성사진으로 도발적 북극권 병합의지 재확인

대통령 체포·압송한 베네수엘라에도 '미국령' 표시


'그린란드 - 미국령 EST. 2026'  [트럼프 트루스 소셜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덴마크령 그린란드와 캐나다, 베네수엘라에까지 성조기를 내건 도발적인 이미지들을 잇달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 소셜 자신의 계정에 그린란드로 표시된 지역에 대형 성조기 깃발을 들고 서 있는 가상의 그림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 옆에는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과 JD 밴스 부통령이 서 있고, 사진 속 표지판에는 '그린란드 - 미국령 EST. 2026' 이라고 적혀있다.

 

이미 여러 차례 그린란드 병합 야욕을 드러냈던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를 기점으로 그린란드를 미국의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올린 사진. 대형 패널 속 지도에 캐나다와 베네수엘라 영토까지 성조기 표시된 것을 볼 수 있다. [트럼프 트루스 소셜 캡처]

 

트럼프 대통령은 또 별도의 포스팅에서 캐나다, 베네수엘라 영토까지 미국령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 가상의 사진을 올렸다.

 

이는 지난 8월 유럽 정상들이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당시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던 사진을 변형한 이미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책상에 앉아있고,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이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며 책상 없이 의자에 부채꼴 모양으로 앉아있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 옆에 놓인 대형 패널 지도에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베네수엘라 영토로 추정되는 지역까지 성조기로 표시된 것을 볼 수 있다.                 < 김연숙기자 >

트럼프식 ‘유엔’ ?…평화위 돈줄 쥐고 “헌금해, 10억달러씩”

한국 외교부 “시간 가지고 검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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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환영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도 자신이 주도하는 ‘가자지구 평화위원회’에 참여해달라며 초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20일 미국으로부터 평화위원회 초청을 받고, 참여할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에 초청받았고 어떤 국가들이 참여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참여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며 “시간을 가지고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가자지구 전쟁 종식을 목표로 하는 ‘평화 구상’ 2단계의 핵심 기구로 평화위원회 창설을 발표했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기구의 종신 의장을 맡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한국을 포함해 프랑스, 독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캐나다, 유럽연합(EU), 이집트, 튀르키예, 이스라엘, 러시아, 벨라루스 등 60여개국이 초청장 발송국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 종식과 관리를 명분으로 내건 ‘평화위원회'가 사실상 유엔을 대체하려는 의도에서 추친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현지시간) 당초 가자지구 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이 지역을 통치할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알려졌던 평화위원회의의 설립 헌장 초안에 가자 분쟁 해결을 시작으로 다른 지역 분쟁 중재까지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 유엔을 대체하겠다는 의도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평화위원회 참여를 사실상 거부하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참여하지 않으면 프랑스산 와인과 샴페인에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 박민희 기자 >

 

트럼프 ‘초대장’ 단칼 거절한 마크롱…미국 “그럼 와인 200% 관세”

‘트럼프판 UN’ 논란 평화위 초청에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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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세미용·소비뇽블랑 품종으로 빚은 보르도 화이트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는 모습. 유튜브 채널 Vincent POUSSON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산 와인과 샴페인에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자신이 이끄는 ‘평화위원회’ 참여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거부한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통신 보도를 보면, 19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을 만나 마크롱 대통령이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초청을 거부한 것을 두고 “그는 곧 대통령직에서 내려올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는다”라며 “나는 그의 와인과 샴페인에 200% 관세를 부과할 것이고, 그는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의 한 측근은 아에프페(AFP) 통신에 “우리의 국외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관세 위협은 용납할 수 없고, 효과적이지도 않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한 주류매장에 프랑스산 와인들이 진열되어 있다. AFP 연합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프랑스를 포함한 수십개 나라 지도자에 평화위원회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는 초청장을 발송한 바 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의 한 측근은 초청에 “긍정적으로 답할 의사가 없다 (…) 가자지구 문제만을 다루는 범위를 넘어서며, 유엔의 원칙과 구조에 대한 존중과 관련해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아에프페(AFP)에 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평화계획 추진을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의 성격을 확대해 유엔을 대체할 국제기구로 만들려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마크롱 대통령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메시지에서 “당신이 그린란드에 대해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며 오는 22일 우크라이나, 덴마크, 시리아, 러시아를 초청해 파리에서 만찬을 열자고 제안했다.                                                                     < 김지훈 기자 >

 

트럼프식 ‘유엔’ 만드나…평화위 돈줄 쥐고 “헌금해, 10억달러씩”

3년 이상 임기 유지 원하는 회원국에 10억달러 요구

 

 
 
14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 재건을 감독할 ‘평화위원회’의 역할을 확대해 유엔을 대체할 국제기구로 만들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위 위원직을 유지하길 원하는 국가들에는 10억달러를 요구하며 국제기구마저 돈벌이로 삼는 행태를 보였다.

 

블룸버그 통신은 17일(현지시각) 미국 트럼프 정부가 새로 창설되는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평화위) 위원 자리를 유지하길 원하는 국가들에 최소 10억달러(1조5천억원)를 납부하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가 입수한 평화위 헌장 초안에선 “헌장 발효 첫해 안에 10억달러 이상의 헌금을 납부한 회원국은 3년 임기 제한에서 제외된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 프랑스, 독일, 호주, 캐나다, 아르헨티나, 이집트, 튀르키예,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가입 초청장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19일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서 세부적인 평화위 구성을 발표하고 첫 회의가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평화위 초대 의장직을 맡을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다. 의장은 평화위 회원국으로 초청할 국가를 직접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의결은 회원국 과반이 찬성해야 하나, 의장은 모든 결정을 승인할 수 있어 의장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는다. 회원국들의 임기는 3년이나, 의장이 재승인하면 연임할 수 있다. 의장은 제명권과 후임 의장 지명권도 갖는다.

 

블룸버그와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대체하거나 경쟁할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든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헌장엔 “분쟁 지역에서 안정을 촉진하고, 합법적 통치를 회복하며, 지속 가능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기구”라고 명시한 대목 때문이다. 평화위는 애초 가자지구 종전과 재건을 맡을 기구로 알려졌으나,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영역을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당국자는 “장차 평화위가 가자지구를 넘어서는 사안을 다룰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들은 “트럼프가 자금을 직접 관리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 참가의향국가들에겐 용납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며 “여러 나라가 강력히 반대하며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유엔 산하 31개 기구와 유엔 소속이 아닌 35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등 유엔에 부정적인 자세를 보여왔다.

 

이런 가운데 백악관은 16일 평화위 산하의 ‘가자지구집행위원회’(Gaza Executive Board·가자집행위) 구성을 발표했다. 가자집행위는 팔레스타인 인사로 구성된 ‘가자지구국가행정위원회’(NCAG)를 감독하는 기구다. 니콜라이 믈라데노프 전 유엔 중동 특사가 대표를 맡고,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하산 라샤드 이집트 정보국장, 림 하시미 아랍에미리트 국무장관 등 11명이 집행위 위원을 맡는다. 마크 로완 미국 자산운용사 아폴로 최고경영자와 아키르 가바이 이스라엘 출신 부동산 사업가 등 경제계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은 이런 미국의 가자집행위의 구성을 비판하고 나섰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7일 “평화위 산하 가자집행위 구성 발표는 이스라엘과 조율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정책에 반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사안에 관해 외무장관에게 미 국무장관을 접촉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이 강력한 동맹인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일은 드물다.

 

이스라엘이 반대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 않은 가운데 이스라엘과 대립하는 튀르키예와 카타르 정부 인사들이 참여한 것에 이스라엘 정계의 반발이 나오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가자집행위엔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과 카타르 고위 외교관인 알리 타와디가 포함되어 있다. 야당의 나프탈리 베넷 전 이스라엘 총리는 “카타르와 튀르키예를 가자지구에 데리고 들어오는 것은 2023년 침입을 저지른 하마스에 대한 상이고, 이스라엘 안보엔 위협”이라며 “혼돈의 네타냐후 정부는 이스라엘의 주권을 포기했다”라고 말했다. 

                                                                                                    < 김지훈 기자 >

 

‘미국을 막아야 하는’ 유럽…국제질서 기둥이 흔들린다

대서양 동맹의 와해 상
그린란드 분쟁으로 역사적인 대서양 양안동맹 붕괴 직전
‘미국을 막고, 러시아와 타협하고, 독일을 부상시키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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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국방부가 그린란드에서 덴마크 군인들이 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을 18일 공개했다. AFP 연합
 

“소련을 막고, 미국을 끌어들이고, 독일을 억제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초대 사무총장인 영국 출신 헤이스팅스 이즈메이가 한 이 말은 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주축이던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양안 동맹, 즉 서방 동맹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전후 국제질서는 미국이 주축인 서방 세력이 소련으로 상징되는 반서방 세력을 제압하는 과정이었다. 1991년 소련 해체로 본격화된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에도 나토로 상징되는 서방 동맹은 다양한 국제 사안을 주도하던 국제질서의 기둥이었다.

 

하지만 서방 동맹의 한 주축이던 유럽은 이제 “미국을 막고, 러시아 및 중국과 타협하고, 독일을 부상시킨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일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자치령 그린란드를 획득하겠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미국이 다른 나토 회원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춘다”며 “그것은 나토 자체,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제공돼온 안보까지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며, 트럼프의 주장이 단순히 위협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의 상황은 프레데릭센 총리가 경고한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제이디(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8일 그린란드와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위협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14일 미국 백악관에서 미국과 덴마크·그린란드 사이 고위급 회담이 소득 없이 끝나자, 유럽의 8개 나토 회원국은 같은 날 그린란드에서 ‘북극의 인내’ 군사 훈련 실시를 발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이 군사 훈련에 참가한 유럽 8개국에 “2월1일부터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상품에 10% 관세 부과, 6월부터는 25%로 인상”한다고 위협했다. 다음날인 18일 유럽연합 집행위가 930억유로 규모의 대미 보복관세를 검토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보복관세가 현실화되지는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불신은 이미 임계점을 지났다고 유럽은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2017년 1월~2021년 1월) 때부터 유럽의 효용성을 일찌감치 부정했다.

 

영국 대외정책 연구소인 채텀하우스의 브론웬 매덕스 소장은 지난 13일 “미국의 동맹국들이 이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 즉 무역과 안보 양 측면에서 미국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것을 서방 동맹의 종말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서방 내부 갈등에 표정관리를 하는 모습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가 “좋은지 나쁜지, 혹은 국제법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와 분리해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며 “그린란드 병합 문제를 해결하면(그린란드를 차지하면) 트럼프는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거라는 국제 전문가들이 있다”고 말했다.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음을 에둘러 조롱한 것이다.

20일 중국 관영 언론 글로벌타임스는 ‘유럽의 가장 큰 문제는 친구와 적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유럽이 미국에 제대로 맞서지 않고 “쉽게 휘둘리는 처지”가 됐다고 지적했다.                                                    < 정의길 천호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