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증인 매수하고 증언 번복하도록 유도한 사건 수사 중요성 간과 

임대료 · 딸 허위급여 명목 회삿돈 받아…배임 · 횡령 등 혐의

쌍방울 전임원 2명도 구속 기각…'진술 회유' 수사 차질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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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출석 =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연어·술파티 회유 의혹'을 조사하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쌍방울그룹 전직 임원들과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이날 열렸다. 2025.12.10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1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 영장이 기각돼 구속을 면했다.

 

서울중앙지법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0일 안 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서울고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의자가 객관적 사실관계는 인정하고 있고, 기본적인 증거들 또한 수집돼있다"며 "일정한 주거와 가족관계, 수사 경과 및 출석 상황, 피해가 전부 회복된 점, 피의자의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과 박모 전 이사의 영장도 기각됐다.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 및 수사 경과, 피해 회복, 일정한 주거 등을 고려할 때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앞서 서울고검 인권 침해점검 태스크포스(TF)는 안 회장과 대해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방 전 부회장과 박 전 이사에 대해서도 업무상 횡령 및 배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함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쌍방울 측이 안 회장을 재판 증인으로 매수하고 증언을 번복하도록 하기 위해 회삿돈으로 안 회장과 가족에게 각종 편의와 금전적인 혜택을 제공한 것으로 의심한다.

 

방 회장 등은 2023년 3월부터 약 2년 8개월간 안 회장 딸에게 오피스텔을 제공한 뒤 임대료와 보증금을 대납해주는 방식으로 7천280만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안 회장 딸이 쌍방울 계열사에 취업한 것처럼 꾸미고 허위 급여 형식으로 2천705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안 회장의 변호사비 500만원 상당을 쌍방울 측이 대신 납부했다는 내용도 영장 각주에 포함됐다.

 

검찰은 또 박 전 이사가 2023년 5월 17일 수원고검 조사실에 소주를 반입했다고 보고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도 적용했다. 소주가 아닌 물인 것처럼 방호 직원을 속여 정당한 공무 집행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아울러 당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에게 제공된 연어와 술이 쌍방울의 법인카드로 결재돼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업무상 배임 혐의도 영장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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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출석 = 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연어·술파티 회유 의혹'을 조사하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쌍방울그룹 전직 임원들과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이날 열렸다. 2025.12.10
 

검찰은 쌍방울 측이 안 회장의 진술 및 증언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본다.

 

안 회장은 2022년 11월 대북 송금 사건으로 처음 구속됐다. 이후 이듬해 1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 송금 재판에 출석해 "(대북 송금 관련) 경기도와의 연관성은 잘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3개월 뒤 재판에선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 비용을 쌍방울그룹에서 북한에 전달한 사실을 아느냐'는 검찰 질문에 "북측에서 (이 지사 방북 비용으로) 500만달러를 요구했다가 200만달러인지 300만달러로 낮췄다는 얘기를 북측 인사에게 들었다"며 기존 증언을 뒤집었다.

 

안 회장을 비롯한 피의자들은 영장심사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대료 등 금전적인 지원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이는 사업 지원 또는 인도적인 차원의 도움이었을 뿐, 진술 회유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박 전 이사의 경우 소주를 조사실에 반입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강조했다.

양측의 주장을 검토한 법원은 영장을 모두 기각하면서 피의자 측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검찰은 안 회장 등의 신병을 확보한 뒤 경제적 이득을 대가로 진술·증언 번복을 종용받았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펴볼 방침이었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  박재현  전재훈 기자 >

" 국가보안법은 문명국의 수치이자, 내란의 숙주다 "

● COREA 2025. 12. 11. 04:3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제2, 제3의 윤석열' 만들어낼 수 있는 악법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지 77년. 미군정의 그늘 속에서 태어난 제헌국회는 헌법을 제정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아, 1948년 여순사건을 처리한다는 명분 아래 이 법을 졸속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여순사건이 무엇인가. “진압”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양민을 법적 근거도 없이 학살한 국가폭력이었고, 법은 그 학살을 정당화하는 면허증이었다.

 

그 시절 국가가 경찰과 군인에게 부여한 권력은 무소불위, 의심만 있으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것이었다. 아이든 노인이든 ‘빨갱이’라는 붉은 딱지 하나로 생명을 빼앗겼다. 당시 국가는 법이 아니라 권력자의 의지로 운용되었다.

 

여수·순천만이 아니었다. 전쟁 중에도, 그 후에도 국가보안법은 기소권력의 만능열쇠였다. 증거가 부족하면 가정을 보태고, 정황이 없으면 상상을 채워 ‘간첩’을 만들어냈다. 법이 아니라 의심을 기초로 한 문학작품이 판결문을 대신해 왔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연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 발의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12.1 연합
 

무엇보다 우리는 이 법이 단순한 통치 수단을 넘어, '내란의 불씨'가 되어왔음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분단체제를 악용하여 끊임없이 내부의 적을 만들고,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기제로 작동해 왔다. 특히 조선일보와 같은 수구 언론은 이 법을 무기 삼아 평화를 이야기하는 세력을 매도하고, 사회적 증오를 부추기며 기득권을 수호해 왔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세력이 애국자로 둔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피해는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30년, 40년 뒤 무죄가 쏟아져도 국보법으로 밥을 먹고 사는 공안기관 종사자와 기득권 세력은 건재하다. 2025년 오늘날에도 공안경찰은 SNS를 뒤지며 표현의 검열을 일상화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옹호자들은 여전히 "간첩"을 운운한다. 그러나 인공위성과 AI가 지배하는 21세기에 낡은 이념의 잣대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이 법은 국민을 생각은 있으되 말할 수 없는 '사상 유아(幼兒)'로 길들이며, 사회 전체를 가스라이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진정한 내란 청산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주동자 몇몇을 처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내란을 가능케 했던 구조, 즉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온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조적 악을 타파해야 한다. 이 법을 그대로 두고서는 권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공안 통치'의 유혹에 빠질 것이며, 결국 제2, 제3의 윤석열은 필연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죽고 사는, 생사의 문제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압박과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길은 깨어있는 집단지성뿐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라는 색안경을 끼고서는 세계의 흐름을 올바로 판단할 수도, 주체적으로 헤쳐 나갈 수도 없다. 낡은 색안경을 벗어던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외세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우리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77년 동안 국가보안법은 단 한 번도 국민의 편이었던 적이 없다. 그것은 권력자의 방패이자, 국민을 향한 칼날이었으며, 이제는 국가의 미래를 좀먹는 암적인 존재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단순한 인권 회복을 넘어,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를 위한 가장 시급한 안보 전략이다. 문명국이라면 이미 폐기했을 이 수치를, 우리는 언제까지 껴안고 갈 것인가.                                                                                 < 김정희 재불동포,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

 

‘암묵적 친중파’ 라는 제2의 친북몰이 논리

● COREA 2025. 12. 11. 04:3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친미 정책 찬성만이 국익일 수는 없다

 

내란수괴 윤석열 정권은 붕괴되었지만, 내란 세력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검찰과 언론, 종교 그리고 사법과 정치 등 우리 사회 곳곳에 강고하게 포진되어 있는 극우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 내란 세력들의 저항은 현재진행형이다.

 

자주 외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암묵적 친중파?’

 

내란 세력들이 내건 핵심적 이슈 중의 하나는 바로 ‘혐중’이다. 그런데 얼마 전 시민언론 민들레에 실린 한 기고문에 우려스러운 내용이 들어있다. “‘전환시대의 논리’에 익숙한 70~80년대 운동권의 영향 때문인지, 탈미 자주외교를 주장하는 인사들 가운데는 암묵적 친중파들도 적지 않다”는 내용이다.

 

‘암묵적 친중파’라는 용어에는 이전 군부독재 세력과 보수언론들이 서슬 퍼렇게 몰아붙이던 ‘친북몰이’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군부독재 시기 민주화운동 세력은 결코 북한을 찬양하고 옹호하지 않았다. 반대 세력을 친북으로 몰아붙이며 오로지 자신의 독재권력을 정당화하려는 군부독재의 논리와 행태를 비판하고 반대했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동맹 수탈' 정책에 맞서 주권과 국익을 수호하고자 발족한 시민사회 연대조직인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 주최로 18일 광화문에서 'NO트럼프 범시민대행진'이 열렸다. 참석자들이 주한미대사관 앞에서 'NO 트럼프'를 외치고 있다. 2025. 10. 18 민중의소리 영상 갈무리

 

반대 세력에 붙인 ‘친북’ 딱지

 

어느 나라인들 장점만 있는 나라가 있겠으며, 또한 단점이 없겠는가? 북한이라고 장점이 없겠는가? 북한은 무엇보다도 외세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 같은 민족으로서 언젠가는 반드시 통일되어야 할 대상이 아닌가!

 

민주진보 진영은 이러한 북한의 존재를 오로지 독재권력 자신의 정당화를 위해 악마화하는 한편, 비판세력에 대해서는 어김 없이 “북한을 찬양하고 고무하는” 반국가 반체제 집단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군부독재와 보수 언론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반대했던 것이다.

 

중국 문제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북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국을 전면적으로 찬양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도 우리 한국에는 전혀 약점이 없고 진정 공정한 사회이며 모든 사안에서 민주적 시스템이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을 터이다.

 

민주진보 진영의 절대 다수는 중국이 지니고 있을 약점이나 중국 사회에서 잘못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 사회의 대다수 언론들이 중국에 대하여 부정적인 측면만을 확대 보도하고, 중국인에 의한 부정선거설처럼 터무니 없는 ‘혐중 선동’ 주장이 난무하고 있는 우리 사회 보수 정치세력과 보수 언론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바로잡으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진보 진영 인사들에 암묵적 친중파가 적지 않다”는 논리야말로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암묵적 편견’이지 않을까?

 

기고문은 미국의 문제점을 중국의 문제점과 함께 언급하면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비론은 기실 보수 언론이 사실을 은폐하려 애용하는 전형적인 논리다. 기고문은 결국 “미국의 패권은 여전히 강력하며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굴기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세계질서를 재편할 만큼의 패권 전환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우리는 중국 예외주의와 중국발 지정학 리스크에 대비하는 전략적 안목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한반도 평화와 경제교류와 같은 국익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도 안 된다”는 대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결론은 확고하게 정해진 ‘일방론’으로 읽힌다.

 

국익은 친미 세력의 독점물일 수 없어

 

기고문은 말미에 “민주진보 진영은 민주당이 야당일 땐 단결하지만, 막상 민주당이 집권하면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곤 한다”라고 기술한 뒤 “과도한 비난은 오히려 민주당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을 약화시킨다”면서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인정하며 국익을 위해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나 성주 사드 배치 등의 사안에 있어 민주진보 진영은 언제나 민주당 정부에 협력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한 사안들을 반대했다고 하여 과연 그것이 국익을 해쳤던 행위였을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과연 무엇이 국익인가? 아무리 양보해도 비합리적이며 비상식적인 친미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비판하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정부의 협상력도 제고될 수 있지 않은가? 필자는 강정마을과 성주에서 전개되었던 투쟁들과 이번 경주 APEC 당시 트럼프에 반대하는 기습 시위가 진정 국익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되었으며 실제로도 우리의 국익에 커다란 공헌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국익(National Interrest)이란 결코 친미 혹은 친미적 세력만이 독점할 수 있는 그러한 독점물일 수 없다.                                 <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

 

멋진 ‘외교 · 안보 용어’ 속 숨겨진 음흉한 의도

● COREA 2025. 12. 11. 04:2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진실 호도하는 선전술에 더 이상 속지 말아야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대학교 1학년 때, 미국이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미사일에 ‘어네스트 존(honest John)’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비판한 놈 촘스키의 글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대량으로 죽일 수 있는 끔찍한 무기에 ‘착한 이웃 아저씨’를 떠올리는 명칭을 붙임으로써 전쟁과 폭력의 모습을 감추고 순화하여 대중의 비판의식을 무디게 하려 한다는 내용입니다.

 

대학 입학 직전까지 줄곧 주입식·암기식 교육만 받고 자란 사람에게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주체적인 사고의 중요성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습니다.

 

경계해야 할 ‘언어 세탁’ 통한 여론조작

 

미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성인이자 언어학자인 놈 촘스키는 나이가 90살을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 활동의 하나가, 이 시대의 강자들이 ‘언어 세탁’과 ‘언어 기만’을 통해, 대중이 도덕적 분노나 비판 없이 그들의 폭력적 행위에 순응하도록 여론조작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까발리는 일입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공격할 때 발생하는 민간인 사상자와 비군사 시설 파괴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다른 나라에 대한 공습을 ‘외과적 타격(Sugical Strike)’으로 부르는 게, 그가 제시하는 대표 사례입니다.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2차대전 때 일본제국주의를 결정적으로 항복으로 이끈 두 발의 원자폭탄 이름에도 그 파괴적 위력을 숨기는 ‘언어 세탁’이 사용되었습니다. 1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히로시마 투하 원폭의 이름이 ‘리틀 보이(Littie Boy, 꼬마)’였고, 7만 명 이상을 불귀의 객으로 만든 나가사키 투하 원폭의 이름이 ‘팻맨(Fat Man, 뚱보)’이었으니까요.

 

외교·안보·군사 분야에서 흔히 벌어지는 이런 언어 세탁과 언어 기만은 남의 나라에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과 관련한 사안에서도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힘의 격차가 심한 한미 관계에서 두드러집니다.

 

미 국방부가 공개한 리틀보이 원자폭탄.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미동맹 현대화’는 ‘한미동맹 종속 심화’의 다른 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타결된 한미 경제·안보 협상의 팩트 시트에는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한미동맹 현대화의 표면적인 의미는 21세기 안보 환경에 맞게 동맹을 개선하고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내세우는 명분만 바라보면 누구도 쉬이 반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그럴듯한 표현과 달리 미국이 한국에 안보 비용을 전가하고 군사 종속을 심화시키는 게 핵심입니다. 팩트 시트의 한미동맹 현대화 부분에 나오는 “한미 양국은 북한을 포함한 동맹에 대한 모든 지역적 위협에 대응하여”라는 문구는 미국이 관여하는 분쟁에 한국이 빨려 들어갈 여지를 한층 넓혀 놨습니다. 이전에 한미 간 큰 쟁점이었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도 일반 사람은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2006년 이후 관련 양해각서’라는 암호로 부활했습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란 쉽게 말해 주한미군을 마음대로 대만 등 다른 분쟁 지역으로 빼내어 쓰겠다는 미국 쪽 구상입니다. ‘2006년 이후 양해각서’라는 것은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라는 두루뭉술한 타협이 담긴 양국 외교 수장의 공동성명을 말합니다. 한미 정상회의 팩트 시트, 그 뒤 나온 제57차 한미 군사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을 아울러 보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국의 입장이 2006년보다 훨씬 미국 쪽으로 기울어졌음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2025 호국훈련'이 진행 중인 20일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남한강에서 열린 '한미 연합 도하 훈련'에서 육군 제11기동사단 K2 전차가 육군 제7공병여단과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예하 다목적 교량중대가 함께 구축한 부교를 도하하고 있다. 2025.11.20 연합
 

심지어 5일 공개된 트럼프 행정부의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는,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국군도 대만 분쟁을 비롯한 중국 억제에 미국과 함께 직접 개입할 것을 까놓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말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한미동맹 현대화는 ‘한미동맹 종속 심화’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의 미군 해외 발진 기지화’로 부르는 게 정명(正名)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일 관계에서도 언어 세탁을 통한 의미 왜곡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본 쪽이 만들어 퍼뜨리고 한국의 먹물들이 그대로 옮기는 ‘사과 피로증’이란 용어가 좋은 예입니다. 이 말은 일본이 과거사를 거듭 사과했는데도 한국이 집요하게 사과를 요구하는 바람에 일본 쪽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 때 외교·안보 정책을 주물렀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후에 수십 차례에 걸쳐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가 있었고, 그러한 사과로 인한 피로감이 많이 쌓여 있다”라고 대놓고 일본 논리를 앞장서 선전했습니다.

 

한일 관계의 ‘사과 피로증’ ‘골대 이동’도 기만적 수사

 

사과 피로증이란 용어는 가해자를 피해자로 바꿔치기하는 교묘한 언어 조작입니다. 가해자의 관점을 마치 보편적인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 사과가 미흡했다는 본질적 비판을 피하기 위한 기만적 언사입니다. 일본 안에서는 한국이 무리한 요구를 계속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한국에는 과거사 청산 노력을 중단시키려는 일본 쪽의 노림수가 들어 있습니다. 사실 인정과 책임이 동반하지 않는 사과는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는 점만 봐도 이 용어의 허구성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골대 이동’이라는 용어는 또 어떻습니까. 일본이 한국이 요구하는 조치를 다 취했는데도 한국이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요구를 들고 나온다는 뜻으로 쓰는 일본 쪽 언어입니다. 1965년 한일 협정으로 과거사가 모두 정리됐는데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노동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건 축구 경기에서 골대를 움직이듯이 규칙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거죠. 이 말 역시 한국의 일부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위안부나 강제노동 등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거나 관점의 변화로 나온 문제를 봉쇄하기 위한 선전술에 불과합니다. “사실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라고 한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고, 1965년 당시 다루지 못했던 사실이나 인권 의식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면 새로운 요구를 하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따라서 일본 쪽이 말하는 사과 피로증은 ‘사과 거부증’으로, 골대 이동론은 ‘가해자 심판론’으로 고쳐 불러야 마땅합니다.

 

외교·안보 다루는 언론인들 책임 더욱 막중해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어가 인간의 존재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더 국가의 존망을 다루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어떤 용어를 사용하느냐는 아주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국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용어를 아무런 비판과 성찰 없이 그대로 옮겨 사용하는 것은, 협상이나 대결에서 이미 반쯤 지고 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운동경기에서 항상 상대방 응원단이 활개 치는 원정경기를 치르는 것과 비슷한 꼴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런 점에서 특히, 대외관계를 다루는 한국 언론인들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만들어 퍼뜨리는 용어를 생각 없이 그대로 옮겨쓰는 일이 바로 그들 나라의 이익에 부역하는 이적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 나라의 용어를 한국 중심의 용어로 바로 바꿔 쓰지는 못할지언정 그 말이 품고 있는 의도와 배경, 맥락이라고 정확하게 드러내도록 최대한 힘을 기울이는 게 필요합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말 한마디가 나라를 살리고 죽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