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순국 116주기…이번엔 찾을 수 있을까

1910년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상세 묘사
"뤼순 감옥서 1㎞밖에 마잉푸 산 중턱에 묻어"
"발굴하지 못하도록 지하 2.1m 깊이에 매장해"

전문가들 "유해 발굴 하려면 남북이 대화해야"

 

안중근 의사 서거 116주기인 26일 이규수 전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서거 약 5개월 뒤인 1910년 9월 10일 보도된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기사를 공개했다. 2026.3.26. 이규수 전 교수 제공
 

안중근 의사 유해가 중국 다롄(大连)의 뤼순(旅順) 감옥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약 2.1미터(m) 깊이로 매장됐다는 내용을 담은 과거 일본 신문 기사가 발굴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관심과 협조를 부탁한 가운데, 이번에 나온 사료가 유해 발굴 추진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안 의사는 사형집행 전 동생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던)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116년 동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뤼순 감옥서 1㎞ 떨어진 마잉푸…지하 2.1m 깊이" 

 

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인 26일 이규수 전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안 의사 순국 5개월여 뒤인 1910년 9월 10일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현 마이니치 신문)에서 보도된 '안중근의 묘'라는 제목의 기사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전 교수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2020년쯤 일본에 머물면서 이 자료를 찾았다"고 전했다. 

 

신문에는 당시 현장의 상세한 묘사와 함께, 구리하라 사다키치 전옥(典獄, 뤼순감옥 형무소장)의 설명 등이 담겨 있다. 구리하라는 안 의사를 지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뤼순감옥 보고서에 따르면 구리하라는 안 의사가 형무소에서 '동양평화론'을 완성하도록 사형 집행일을 늦춰달라고 한 바 있다. 또 안 의사가 순국 직전 "어머니가 보내주신 흰 한복을 입고 죽고 싶다"고 한 요청을 흔쾌히 허락하기도 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구리하라가 특별히 붙여준 '안내자'를 따라 "감옥에서 약 10정(약 1㎞) 떨어진 묘지로 향했다"면서, 안 의사의 묘가 있는 터에 대해 "울타리도 담도없는 산 중턱, 무성한 잡초 사이에 규칙적으로 두 줄을 이루어 50~60기의 무덤이 서 있었다"고 적었다. 이어 "고개를 들어 보면 정면 마주 보이는 산등성이 정상에 청나라 통치 시기의 기병영(騎兵營) 터가 거의 완전한 형태의 흙담으로 남아 있고, 고개를 숙이면 오른편으로 마잉푸(馬營浦)라 불리는 작은 부락 거리의 한쪽 끝으로 약 1정(약 109m) 떨어진 남쪽 산기슭과 가깝다"고 설명했다. 마잉푸(옛 둥산포·東山坡) 일대는 안 의사 유해가 매장된 지역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곳 중 하나다. 현재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알려졌다.

 

안중근 의사 서거 116주기인 26일 이규수 전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서거 약 5개월 뒤인 1910년 9월 10일 보도된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기사를 공개했다. 2026.3.26. 이규수 전 교수 제공

 

신문에서는 안 의사의 묘 위치도 특정했다. 기자는 "2~3년 전 다롄에서 중국인 환전상을 꾀어내어 2천 엔을 강탈하고 그를 교살한 모토야마 겐이치(本山謙市), 야마무라 세이이치(山村精一) 등을 비롯해 불과 얼마 전 처형된 중국인 살해범 혼다 오토마쓰(本田音松), 일본인 살해범 위안광가오(袁廣高) 등 두 강도의 흙이 마르지 않은 새 무덤과 인접한 지점"이라며 "한 조각의 나무 표식도 세우지 않고, 한 덩어리 돌멩이도 놓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이처럼 표식도 없이 안 의사의 묘를 만든 것은 일제의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구리하라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실은 당시 안중근의 형제가 너무나 유해를 원했던 점과 우리 일본인들의 격앙이 심했던 탓에 신중하게 고려했다"며 "겉에는 성명을, 뒤에는 사망 연월일을 기록한 것을 묘표로 세우지 않고, (관과 함께) 묻어서 흙을 덮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록 방치해 일부러 매장 지점의 형태와 흔적을 완전히 감췄다"고 말했다. 

 

안 의사의 묘는 발굴되지 못하도록 다른 죄수와 달리 더 깊이 팠다고 한다. 구리하라는 "특별히 들여온 백목(白木, 표면을 가공하지 않은 목재)으로 일본식 침관(寝棺, 시신을 눕히는 관)을 만들었다"면서 "일반 죄수와 같이 지하 4척(약 1.2m) 이내에 묻지 않고 특별히 7척(약 2.1m) 아래로 깊이 묻었다. 매장한 장소는 감옥 부속 수인 묘지 안이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사는 '방외생'(方外生)이라는 인물이 작성했다. 이 교수는 방외생이 고마츠 모토고(小松元吾) 기자의 필명이라고 설명했다. 고마츠 기자는 오사카 마이니치신문 기자, 도요신문사 통신원 등으로 활동한 언론인이자, 미술가이다. 고마츠는 안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기 나흘 전 공판을 그림 스케치로 남기기도 했다. 그가 남긴 공판 스케치는 재판 관계인들의 표정이나 분위기 등을 유추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이 교수는 고마츠에 대해 "당시 양심적인 일본 기자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안중근 의사 서거 116주기인 26일 이규수 전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서거 약 5개월 뒤인 1910년 9월 10일 보도된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기사를 공개했다. 사진은 기사를 작성한 고마츠 모토고 기자. 2026.3.26. 이규수 전 교수 제공

 

"안 의사 유해발굴, 남북 대화 없이는 어려워"

 

안 의사의 유해 매장 위치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우리보다 앞서 1970년대 김일성 주석 지시로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유해 수습에 실패했다. 남북은 지난 2008년 중국에서 유해 발굴을 공동으로 추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얻진 못했다. 이후 안 의사 유해발굴 사업은 중국 정부가 남북이 합의로 정확한 매장 지점을 특정하면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하면서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중국 국빈 방문 중 시진핑 주석에게 안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달엔 안 의사 유묵이 11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소식을 엑스(X)에서 전하며 “정부도 안 의사 유해 발굴과 송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지난 18일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민관 협력단'을 발족하고, 유해발굴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번에 확인된 마잉푸 일대는 중국 측 협조로 현지 답사는 한 적 있지만, 본격적인 발굴 작업으로는 나아가지 못한 곳이다. 정부와 학계 등에선 이곳이 문화재 지역인 점 등을 고려해 지표투과레이더(GPR, Ground Penetrating Radar)를 활용한 비파괴 방식으로 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이를 설득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안중근 의사.

 

다만 중국의 협조를 구하기엔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국이 남북 합의로 정확한 매장 위치를 특정하면 협조하겠다고 한 만큼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지만, 최근 한반도 상황을 고려했을 때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과 남북의 외교적인 문제도 얽혀 있다. 또한 매장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일본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들도 필요하지만, 여기에 아직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는 지난 21일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 추모식에서 "남북이 합의하지 않고서는 유해발굴이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면서 "북의 경직된 마음을 바꿔서 우리가 같은 민족이고 같은 선조를 모시고 있다는 부분을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교수도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기본적인 대전제인 남북의 대화가 막혀 있다"고 지적하며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해 신뢰를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성진 기자 >

 

'전국지표조사’ …국정 방향성 평가도 ‘신뢰’ 67%

민주당 지지도 동반 상승 46%…국민의힘 18%
여당 역할 ’잘한다’ 53%…제1야당 '잘한다'16%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26.3.26

 

이재명 대통령 지지도가 고공행진을 멈출 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도 덩달아 상승곡선이고 집권 여당의 역할을 ’잘한다’는 평가도 높다. 반면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도·평가는 최악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사가 2026년 3월 23일 ~ 25일(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응답자 이념성향: 진보 286명, 중도 354명, 보수 241명)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방식의 전국지표조사(NBS·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3.1%p)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잘하고 있다’(매우+잘함)는 긍정적 평가는 69%, ‘잘못하고 있다’(매우+못함)는 부정적 평가는 22%로 나타났다(모름/무응답 10%).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대통령 취임 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이념성향별로는, 진보 성향층과 중도 성향층에서는 긍정 평가가 각각 92%, 71%로 높은 반면, 보수 성향층에서는 부정 평가가 50%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에서도 긍정 평가 49%, 부정 평가 30%이다. 모름이 22%로 유난히 높은 것이 눈길을 끈다.

 

주요 정책 평가: 국민생활 안전정책(72%) 긍정 가장 높아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성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매우+대체로)는 응답이 67%,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매우+대체로)는 응답이 25%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모든 연령층에서는 ‘올바른 방향’이라는 긍정적 응답 비율이 높은 가운데, 40대와 50대에서 긍정적 응답이 각각 81%, 76%로 크게 높았다. 이념성향별로는 진보 성향층과 중도 성향층에서는 ‘올바른 방향’이라는 응답이 각 91%, 70%로 높은 반면, 보수 성향층은 ‘잘못된 방향’이라는 응답이 53%로 조사됐다.

 

이재명 정부의 주요 정책 분야에 대한 긍정 평가는 ‘국민생활 안전정책‘ 72%, ‘지역균형발전정책’ 63%, ‘교육정책’ 61%, ‘노동정책’ 58%, ‘대북 정책’ 56% 순으로 나타났다. 모든 정책 분야에 대해 진보 성향층과 중도 성향층에서는 긍정 평가 비율이 과반을 차지한 반면, 보수 성향층의 경우 ‘국민생활 안전정책’을 제외한 나머지 정책 분야에서 부정 평가 비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정당지지도: 더불어민주당 46%, 국민의힘 18%, 태도유보 30%

 

‘집권 여당 역할 잘한다’ 53%, ‘제1야당 역할 잘한다’ 16%

지방선거 ‘여당 힘 실어줘야’ 53% > ‘야당 힘 실어줘야’ 34%

 

정당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46%, ‘국민의힘’ 18%, ‘조국혁신당’ 2%, ‘개혁신당’ 2%, ‘진보당’ 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없다+모름/무응답 30%).

 

 

22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집권 여당의 역할을 ’잘한다’는 평가는 53%로 조사됐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긍정 평가는 85%였으며, 진보 성향층의 긍정 평가는 80%, 중도 성향층의 긍정 평가는 50%(부정평가 43%)로 조사됐다.

 

국민의힘이 제1야당의 역할을 ‘잘한다’는 평가는 16%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긍정 평가는 35%였으며, 보수 성향층의 긍정 평가는 28%(부정 평가 69%).

 

 

제9회 지방선거에서 ‘현 정부의 국정안정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53%,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34%로 나타났다(모름/무응답 13%). 지역별로는 대구/경북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여당 지지’가 높게 나타났고, 이념성향별로는 진보 성향층에서는 ‘여당 지지’가 84%, 보수 성향층에서는 ‘야당 지지’가 64%로 높은 가운데, 중도 성향층에서는 ‘여당 지지’와 ‘야당 지지’가 각각 52%, 34%로 조사됐다.

 

 

추경 편성: 찬성한다 53% > 반대한다 34%

차량 5부제 민간 확대: 찬성한다 59% > 반대한다 36%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고려에 대해서는 ‘중동 사태로 인한 민생경제 어려움을 고려해 추경에 찬성한다’가 53%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 추경에 반대한다’ 34% 보다 높게 나타났다.

 

진보 성향층과 중도 성향층에서는 ‘찬성한다’는 응답이 각각 79%, 53%로 높은 가운데, 보수 성향층에서는 ‘반대한다’는 응답이 57%로 높게 나타났다. 경제적 계층 인식과 무관하게 전반적으로 추경에 찬성하는 양상이다.

 

중동 상황 악화로 인한 경제 부담 증대에 대한 대응책으로 차량 5부제 등 에너지 사용 제한 조치를 민간까지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한다’가 59%로 ‘반대한다’ 36% 보다 높게 나타났다. 40대 이상의 경우, ‘찬성’ 비율이 과반을 차지한 반면, 30대 미만은 ‘반대’가 타 연령대 대비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 강기석 기자 >

 

 

소속 기자, 사장 배임 혐의 고발…'내란' 의혹 제기

"퇴진해야" "노조 등 내부 미온적 대응 벗어나야"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 사장의 12.3 비상계엄 사전 협조 의혹 등을 제기한 이 회사의 전 기자를 고소한 사장에 대해 연합뉴스 현직 기자가 사장을 고발했다. 이주영 연합뉴스 테크부 과학전문기자는 26일 연합뉴스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황대일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권 시기에 임명된 연합뉴스의 현 사장에 대해 여러 의혹과 문제제기 및 거취에 대한 논란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번 고발이 그와 관련된 연합뉴스 내부의 기류를 보여주는 것인지 주목된다. 

 

이 기자는 이 게시글에서 “연합뉴스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황대일 사장을 비판한 한 퇴직 기자를 형사 고소하면서 본인 개인의 명예 훼손 가능성이 있는 글에 대해 회사 인력과 재원을 투입한 것은 업무상 배임 행위 혐의에 해당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 사장은 최근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12.3 계엄 전후 연합뉴스 송고 기사에 대한 조사를 주장한 권영석 전 연합뉴스 통일언론연구소장을 정보통신망법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연합뉴스 사옥. 

 

황 사장은 고소장에서 “연합뉴스 사원들이 사장과 그의 육사 선배인 전 국방장관 김용현과의 관계에 의혹을 제기하며 내란 전후 연합뉴스 송고 기사를 전면 조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표현이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합뉴스 사장은 육사에 다니다 퇴학당하고 고대를 나온 극우파’라는 표현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연합뉴스 사장의 사회적 평가를 현저히 저하시키는 명예훼손적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게시글에서 또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폭넓은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할 연합뉴스가 경솔하게 법적 조치에 나섬으로써 비판에 재갈 물리기로 대응한다는 인식을 심어줘 언론사로서의 품위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황 사장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서도 거듭 제기하면서 황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황 사장이 취임사에서 징비록을 쓰겠다고 공언하고 감사실이 공정성을 감사할 수 있도록 감사 규정을 고치고, 감사실을 동원해 과거 정권시절 송고된 기사와 기사 작성자를 대상으로 감사를 했다”면서 “어느 언론사가 사장 직속 기구인 감사실을 통해 기자와 기사의 공정성을 감사한다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또 12·3 비상계엄 내란 이후 황 사장이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에 대해서도 “윤석열 비상계엄 내란 후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은 신상품이 나와서 바꿨다고 설명했지만 옹색하기 그지없는 변명에 불과하다”면서 “교체 사유가 무엇인지 소상히 밝혀 연합뉴스 구성원들의 의구심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황 사장이 과거 극우성향 매체 '미디어X'에 [황대일칼럼]이라는 이름으로 [역사학계, 홍범도 붉은 행적 '묻지마 두둔']과 ['독립군 몰살' 자유시참변의 최대 수혜자는 홍범도] 등의 글을 쓴 것을 둘러싼 논란 등까지 거론하며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를 이끌어갈 리더의 자격이 없으며 황 사장이 계속 사장 자리를 지키는 것은 연합뉴스를 더 망칠 뿐이니 즉각 퇴진하라”고 주장했다.

 

자신과 연합뉴스의 내란 관련 보도를 둘러싼 여러 여러 의혹이 나오고 있지만 그에 대한 분명한 해명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황 사장과 연합뉴스 전현직 기자들 간의 비판과 고소, 고발 공방으로 연합뉴스 내부의 관련 움직임이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이 기자의 게시글이 말하고 있듯 “연합뉴스 사원으로서, 노동조합 조합원으로서 현 경영진의 부조리를 더는 용납할 수 없으나 이에 대한 노조의 미온적 대응도 수긍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 경영진의 거듭된 부조리한 행위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가 내부에서 이어질 것인지 관심이 모인다.                       < 이명재 기자 >

고문 등 가혹 행위로 허위 자백을 받아낸 이력으로 ‘고문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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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초대 민청련 의장을 고문한 이근안(가운데)씨가 1999년 11월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1988년부터 11년 가까이 도망 다니다 자수한 이씨는 7년의 실형을 살고 나온 뒤 목사로 변신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군사정권 시절 악랄한 고문 수사를 자행해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떨친 이근안(88) 전 경감이 25일 사망했다.

 

26일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이씨는 건강 악화로 입소해 치료를 받던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전날 숨졌다.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이었던 이씨는 고문 등 가혹 행위로 허위 자백을 받아낸 이력으로 ‘고문기술자’라는 별칭까지 얻은 인물이다. 이씨는 1979년 남민전 사건 등 주요 공안 사건에서 고문을 주도했고, 1981년에는 ‘서울대 무림사건’을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내무부 표창을 받았다.

 

이씨는 1985년 9월 김근태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전기고문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해 12월 김근태 의장의 변호인단이 고문 경찰들을 고발했으나, 이씨의 신원이 알려지지 않아 고발장에는 ‘이름 모를 전기고문 기술자’로만 기재됐다. 이후 3년만인 1988년 12월21일 한겨레가 이씨의 실명과 얼굴 사진을 보도하면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1988년 12월 21일 한겨레신문 1면 기사의 일부.

 

그뒤 11년간 수배를 피해 도피 생활을 하던 이씨는 1999년 자수했고, 고문·불법 구금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씨는 2006년 출소한 지 2년 만에 목사 안수를 받고 종교 활동을 했다. 이씨는 종교 활동 중 ‘과거를 반성한다’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애국’이라고 두둔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이씨는 2010년 2월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라며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었으니까.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1년 12월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던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이 별세한 뒤 이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이듬해 그가 소속됐던 교단은 이씨의 목사직을 박탈했다.

 

이씨가 관여한 공안 사건은 최근까지 고문으로 인한 조작 수사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24년 6월 서울중앙지법은 이씨와 국가가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납북어부 고 박남선씨의 유족에게 총 7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 “그는 고문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죄나 반성의 뜻을 밝히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며 “가해자의 죽음은 그가 저지른 만행을 지울 수 없으며, 민주주의 역사에 새겨진 피해자들의 고통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업회는 “오랜 세월 고통을 견뎌온 피해자와 그 가족들께 깊은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며 “이근안의 사망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더욱 확고히 지키며, 과거의 잘못을 성찰하고 올바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 임재우 기자 >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이렇게 보낼 순 없다

88세 사망 소식이 안기는 당혹감

이해찬·김근태 고문 후유증 때 이른 죽음 대비
이근안 목사 안수 받고 스스로 용서받았다 말해
전두환 90세 장수와도 겹쳐 …천수는 우연일까

 

때로는 누군가의 죽음은, 특히 그것이 천수를 누린 자연사라면, 그 죽음이 쉽게 용납되기 힘든 경우가 있다. 죽음은 본래 애도의 대상이지만, 어떤 죽음은 추모를 보내기가 힘들다. 아니, 애도를 보내는 것 자체가 부정의라고 해야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 한 사회가 그 죽음을 받아들이려면 필요한 선행 조건이 있는 죽음이다. 사죄와 반성, 그리고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만 하는, 그것 없이 천수를 다한 자연사라면 그 인물의 죽음 이상으로 한 사회가 일종의 '죽음'을 겪게 되는 그런 죽음이다. 이를 테면 그런 죽음은 사회의 허락, 정리와 청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대신 스스로를 용서한 채 한 인물이 '일방적으로' 먼저 가버렸다.

 

교회에서 신앙 간증을 하는 고문기술자 이근안. SBS 유튜브 화면 갈무리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이 25일 숨졌다는 소식이 하루 뒤인 26일 알려진 것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가 갖는 복잡한 심경, 적잖은 당혹감이 바로 그렇다.

 

향년 88세. 이른바 '천수'(天壽)를 누렸다. 88이라는, 인간의 삶의 길이로는 결코 작지 않은 그 숫자의 생애를 보내고 자연사한 인물의 죽음 앞에서 떠올리게 되는 몇몇 인물들이 있다. 두달 전에 별세한 이해찬 전 총리, 그의 향년은 73세였다. 지금의 장수 시대에는 너무도 때 이른 죽음의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겪은 혹독한 구타와 고문의 후유증이 꼽혔다.

 

그리고 이 전 총리의 별세와 함께 다시 환기됐던 이름 하나를 이근안의 죽음을 맞아 다시 선명히 떠올리게 된다. 김근태 전 의원. 민청련 의장이었던 그야말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으로부터 23일간의 ‘지옥’을 경험했던 사람이다. 그의 향년은 겨우 64세였다. 고문 후유증으로 오랜 고통을 겪다가 60대 중반,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전 총리나 김 전 의장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근안의 고문으로 인해 삶이 파괴되고 결국 일찍 세상을 뜬 이들 중의 하나가 이을호 민청련 상임위 부의장이다. 김 의장과 함께 끌려가 이근안 일당에게 23일에 걸쳐 수십번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한 그는 후에 이렇게 술회한다.

 

“잠 안재우고, 물고문 며칠 하면 변이 안나온다. 전기고문과 칠성판이 더해지면 '내가 올빼미'라는 환상이 든다. 죽고 싶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이을호는 결국 김 의장이 사망한 지 10년 여 후에 고문후유증에 따른 복합증세로 세상을 떠나 김 의장이 묻혀 있던 마석 모란 공원묘원 묘역으로 뒤따라갔다.

 

이근안은 '고문 기술자' 외에도 '인간 백정', '지옥에서 온 장의사' 등의 별칭으로 불렸다. 그의 고문 수법은 잠 안 재우기, 물고문, 전기고문, 날개 꺾기, 통닭구이, 관절 빼기에 이르기까지 실로 ‘현란’했다. 남영동에 끌려갔던 이들이 증언하는 '칠성판' 물고문은 나무판자에 사람을 눕히고 가죽끈으로 묶어 물을 퍼붓는 방식이었다. 뛰어난 고문 기술로 영화 〈1987〉에서 박처원 남영동 대공분실장이 가장 아꼈다는 부하가 바로 이근안이었다. 1981년 '서울대 무림사건'에서도 가혹 행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지목됐던 그는 그해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래도 난 애국을 한 것이었다"고 2012년 12월 14일 이근안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종지묵을 댔다.  2012.12.14 연합 자료사진  
1999년 10월 28일의 이근안. 연합 자료사진 

 

민주화 이후 수배된 그는 12년간 도피 끝에 자수했고, 받은 형량은 징역 7년이었다. 출소 이후 그는 목사가 됐다. 공개 간증을 통해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신앙을 통해 용서받았다고 했다. 자신이 스스로를 사면한 것이었다. 그리고 생전 자서전에는 이런 말도 남겼다.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 교회 신앙 간증에서는 "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고 하기도 했다.

 

이근안의 천수는 또 다른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광주 5·18 유혈 진압의 주범 독재자 전두환이다. 그는 호사를 누리며 살다가 2021년 만 90세로 자연사했다. 사죄 없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처벌 없이 그는 편안하게 죽었다.

 

이근안에게 전성기를 안겨준 것이 전두환의 독재였다면, 두 사람의 천수는 우연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 한국 사회의 한 구조적 현실처럼 보인다. 국가폭력에 짓밟힌 몸은 더 일찍 무너지지만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이들은 장수하는 뒤집힌 역사와 현실의 실상을 보여준다.

 

이근안의 죽음을 이렇듯 그의 사망 뉴스 한 줄로 쉽게 보낼 수 없는 이유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해찬 전 총리의 이른 죽음과 그 두 달 뒤의 고문기술자의 자연사. 70을 갓 넘기고, 70에 못 미쳐 세상을 떠난 이해찬과 김근태, 두 사람의 몸이 무엇을 증언하는지를 묻는 것. “고문이 애국이고 예술이었다”고, 자신을 스스로 용서한 이의 88년의 장수와 함께 물어야 할 일이다.                                                            < 이명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