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대미 투자법 통과 지연에 불만인 듯... 트럼프 의도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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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가 한미 간의 무역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다며,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한국 입법부는 미국과의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무역 협정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합의된 거래에 따라 신속하게 관세를 낮췄고, 당연히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도 같은 조치를 취하길 기대한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지난해 7월 30일 양국 모두에 훌륭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10월 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왜 한국 국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나”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회가 우리의 역사적인 무역 협정을 법제화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권한이긴 하지만, 나는 이에 따라 한국의 자동차, 목재, 의약품을 비롯한 모든 품목에 대한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 김원철 기자 >

 

트럼프 관세 인상 돌발카드 왜…대미투자법 통과 지연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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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기 취임 1주년을 맞은 2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제임스 S. 브래디 기자회견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가 한·미 간 무역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 및 품목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이미 관세 인하 조치를 단행해 한국 기업들이 혜택을 보고 있음에도, 관세인하의 반대급부인 대미투자를 위한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것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무역 협정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합의된 거래에 따라 신속하게 관세를 낮췄고, 당연히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도 같은 조처를 하길 기대한다”며 “그러나 한국 입법부는 미국과의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과 지난해 7월 30일 양국 모두에 훌륭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10월 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왜 한국 국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나”라며 “한국의 자동차, 목재, 의약품을 비롯한 모든 품목에 대한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는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 정부는 한국산 제품에 대해 지난해 8월7일부터 상호관세를, 지난해 11월 1일부터는 자동차·부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각각 25%에서 15%로 낮췄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미국이 먼저 관세를 인하했음에도 한국에선 대미 투자를 위한 법제화가 더디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선 한국의 합의 이행 과정이 더디다는 불만이 누적돼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 투자의 법적 근거가 될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대미투자특별법)은 현재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한미 무역합의의 법적 성격을 둘러싼 여야의 해석이 엇갈리기 때문에 처리에 속도가 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미 무역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이므로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없다고 본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26일 의원 입법 형태로 대미투자특별법을 발의했으며, 이 법안을 통해 무역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헌법 제60조 1항을 들어 맞서고 있다. 3500억 달러(약 5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투자 규모는 사실상 조약에 준하기 때문에 특별법 처리에 앞서 무역합의 비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법안 소관 상임위인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의 위원장은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다.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 상정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김원철 기자 >

 

청와대 “미, 상호관세 인상 설명 없어…곧 러트닉과 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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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연합
 

청와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25%로 인상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대책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관련 내용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경부도 “현재 미측의 의중을 파악 중에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대변인실은 27일 언론공지를 통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한국 국회의 대미 전략투자 특별법 상정 지연을 이유로 자동차 품목 관세와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게시했다”며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나 세부 내용에 대한 설명은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대한민국 국회가 미국과의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국산 자동차와 목재, 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즉각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무역 합의는 미국에게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는 합의된 거래 조건에 따라 신속하게 관세를 인하해 왔고 우리의 교역 상대국들도 동일하게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오늘 오전 정책실장 주재로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대책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현재 캐나다에 체류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조속히 미국을 방문해 러트닉 상무장관과 관련 내용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경부 대변인실도 이날 공지를 통해 “앞으로 한국 국회의 법안 논의 상황을 미측에 설명해 나가는 등 미국 정부와 소통할 것”이라며 “당초 오늘 오후에 예정된 부총리-재경위원장 면담 등을 통해 특별법안에 대한 국회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었으며, 이를 포함하여 앞으로도 국회와 적극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신형철  박수지 기자 >

 

민주 정태호 “한미 투자 특별법 정상적 입법 절차 중”

트럼프 ‘한국 국회 합의 불이행’ 탓 관세 인상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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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차트를 들고 상호 관세 부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가 한·미 간 무역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상호관세를 다시 25%로 인상한다고 밝히자, 더불어민주당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정상적인 입법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여당 간사인 정태호 의원은 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재 5개의 한·미투자법(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이 발의돼 있다”며 “숙려 기간이 지나면 당연히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의원은 또 “입법 지연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실무적 어필을 받은 바 없다”며 “(지난해 11월) 한·미가 합의한 것은 관련 법안을 발의한다는 것이었고, 통과 시점은 (정해진 게) 없었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병기 의원(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을 비롯해 안도걸·진성준·홍기원(이상 민주당)·박성훈(국민의힘) 의원이 한-미 관세협상 타결 직후인 지난해 11월 이후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재경위에서는 이후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정 의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엔 조세심의, 이달에는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로 개별 법안 심의를 할 여유가 없었다”며 “향후 정상적 절차에 따라 심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쪽에선 소관 상임위인 재경위 위원장이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인 데다가, 연간 200억달러 대규모 대미 투자와 관련된 사안인 만큼 야당과의 합의 없이 법안을 서둘러 일방 처리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민의힘이 비준을 반대하는 가운데 소속 의원이 따로 법안도 냈다. 여·야가 법안을 다 낸 만큼 법안을 (상임위에) 상정해서 논의를 해나가면 된다”며 “법안이 발의된 지 두달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안은 국민의힘이 협의해주면 신속하게 처리하면 된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합의 이전으로 관세를 되돌리는 발표를 하며) 표면적으로 밝힌 이유가 전부인지 더 파악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안 자체가 제정법인데다가 (대미 투자 금액이 연간 200억달러에 달하는 만큼) 간단하게 처리할 게 아니라 숙려가 필요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 고한솔  기민도 기자 > 

 

"KBS 박장범, '계엄 생방송' 직전 보도국장과 통화"

● COREA 2026. 1. 27. 11:4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KBS노조 "내란정권에 결탁 의혹 드러나" 폭로
"지상파 가운데 KBS만 유일하게 적시 생방송"
"당시 보도국장, 퇴근 후 복귀해 용산 동향 확인"

"윤석열은 22시 KBS 계엄 생방송 미리 언급해"
"KBS 내부 누군가 생방송 가능하다 말한 정황"
"미리 편성 준비하란 지시 받았다면 내란 선동"

 

2024년 11월18일부터 20일까지 국회 과방위에서 열린 KBS사장 후보 인사청문회 도중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박장범 후보. 연합
 

12·3 내란 당일 박장범 케이비에스(KBS) 사장이 최재현 당시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 발표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생방송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박 사장은 '사장 내정자' 신분이었다.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 사장이 공식 취임도 하기 전에 대통령실 누군가로부터 계엄 사실을 미리 전해듣고 생방송을 지시한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 전 "22시 KBS 생방송이 이미 확정돼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윤석열 발언과 연결해보면, 당시 KBS 내부 관계자들이 사전에 계엄 상황을 알고 방송을 편성한 셈이 되는 만큼 내란선동 혐의도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상파 가운데 KBS만 유일하게 적시 방송"
"대통령실 누군가와 KBS 내부자 연락한 것"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노조)는 2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는) 내란 직후, KBS 내부에 내란 정권과 결탁해 계엄방송을 미리 준비한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번에) 의혹의 전말을 풀 큰 실마리가 드러났다"면서, 내란 당일 박장범 당시 KBS 사장 내정자와 최재현 당시 보도국장의 행적을 공개했다.

 

노조에 따르면 2024년 12월 3일 최재현 당시 KBS 보도국장은 오후 6시쯤 퇴근한 뒤, 7시30분~8시 회사로 복귀했다. 이어 대통령실 출입기자에게 동향 확인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보도국장 취임 이후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뉴스 부조정실에 들어가 신호 수신 여부를 챙기고,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안보 관련'이라는 대답까지 했다고 한다.

 

KBS는 내란 당일 지상파 방송사 가운데 유일하게 10시 23분 적시에 맞춰 윤석열의 비상계엄 담화를 생중계했다.

 

당시 최 국장은 내란 직후 제기된 '생방송 준비'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로부터 계엄과 관련한 언질을 받은 일은 결코 없다"고 반박했었다.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대통령. 2024.12.14. 연합
 

이에 대해 노조는 "(10시 23분 생방송은)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이례적이고 기이한 행보와 결과였다"면서 "당시 의혹의 핵심은 누가, 어떤 내용으로 전화를 했기에 퇴근한 보도국장이 다시 회사로 돌아왔느냐였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KBS본부는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최재현 당시 국장에게 전화한 주인공이 박장범 현 KBS 사장이라는 것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아울러 노조는 "12월 3일, '코리아풀'을(KTV를) 통해 대통령 담화가 공식적으로 예고된 것이 밤 9시 18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이른 밤 8시 40분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윤석열로부터 '22시 KBS 생방송'을 들었고, 밤 9시쯤에는 한덕수 전 총리도 같은 내용을 들었다"며 "코리아풀의 공식 공지 이전에 윤석열이 '22시 KBS 생방송'을 말한 것은, 분명히 KBS 내부의 누군가에게 (미리) 담화 생방송을 지시했고 수행하겠다는 회신을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1심 판결문에 밤 9시쯤 대통령집무실에서 윤석열로부터 ‘KBS 생방송이 준비되어 있다’는 발언을 들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2026.1.26.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제공

 

노조는 "결국 대통령실의 누군가가 박장범 사장에게 연락했고, 박장범 사장은 다시 최재현 전 국장에게 전달했으며, KBS 내부 누군가가 22시 생방송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주었기에 윤석열이 코리아풀 공지 이전에 '22시 KBS 생방송'을 말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일 수 밖에 없다"면서, 박 사장을 향해 "내란의 밤, 누구로부터 어떤 내용의 연락을 받았는가, 그리고 최재현 전 국장에게는 뭐라 얘기했는가, 그리고 불법계엄 선포가 예정됐다는 것을 언제 알았나"라고 물었다.

 

"미리 편성 준비하란 지시 받았다면 내란선동"
"1년 전에 고발했는데 수사 부진…재수사해야"

 

그동안 박 사장은 12·3내란 사전 인지 의혹에 대해 "근거 없다"고 반박해왔다. 지난해 8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KBS 결산심사에서도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엄 생방송 의혹과 관련, '내부 인사가 비상계엄에 대한 사전 협의나 공모 내지 최소한 이를 알고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회사 차원 진상조사를 했느냐'라고 물었고, 박 사장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호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박장범과 KBS 경영진은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았고, '근거 없는 의혹'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 등 유체이탈 화법으로 대응했다. 내란이 발생한 지 1년 2개월이 된 지금까지도 박장범은 자신이 최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전에 특보 준비를 시켰다는 사실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며 "무엇을 숨기려 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KBS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박장범 KBS 사장 12.3 내란 방송개입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호찬 언론노조 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2026.1.26. 연합
 

이 위원장은 "박장범과 윤석열·김건희와의 유착관계, 계엄방송 사전 모의 의혹에 대해 박장범이 그동안 진실을 꼭꼭 감춰왔던 사실로 봤을 때, 언론노조는 박장범이 윤석열 내란에 사실상 공범 역할을 했다고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특검과 경찰의 수사는 극히 미진하다. 고발한 지 1년이 넘었음에도 수사 결과 발표도 없이 사실상 뭉개고 있다"며 "경찰과 향후 발족할 종합 특검의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임재성 변호사는 "(의혹이) 사실로 인정된다면 당시 KBS 사장으로 내정됐던 박장범 현 KBS 사장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의 공동정범으로 보도국장에게 그런 편성을 지시한 처벌을 받을 여지 있다"며 "만약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방송을 10시부터 생방송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방송 편성을 준비하라는 구체적인 언급이 있었다면 내란 선전·선동의 법리로 처벌받을 가능성 있다"고 말했다.          < 김성진 기자 >

 
 

[여론조사꽃] 유권자 전화면접 긍정 48.4% · 부정 42.9%

민주당 · 조국혁신당 지지층 10명 중 7명은 합당 지지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 평가 1.2%p 하락한 68.3%
가덕도 테러 사건 ‘재수사 필요’ 전화면접 57.2% 찬성
6월 지방 선거 여당 지지 56.8% · 야당 지지 34.7%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가능성에 대해 전체 여론은 찬반이 크게 엇갈리지 않지만 두 당 지지자들 간에는 합당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꽃이 1월 23일부터 24일까지 양일간 18세 이상 유권자 1003명(응답자 이념성향: 진보 266명, 중도 419명, 보수 241명) 대상으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에 대한 국민 인식을 전화면접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48.4%가 ‘긍정’(매우 긍정 14.4%+긍정적 34.0%)으로 평가한 반면 ‘부정’ 응답은 42.9%(부정적 25.3%+매우 부정 17.6%)로 나타났다. (표본오차 ±3.1%포인트, 신뢰범위 95%,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민주당 지지층 68.7% 조국혁신당 77.3% 합당 ‘찬성’

 

권역별로는 호남권(65.0%)과 강원·제주(55.3%)에서 ‘긍정’ 응답이 우세했고, 경인권(46.9%), 서울(47.3%) 등은 소폭 높았다. 충청권(46.6%), 부·울·경(46.0%)은 ‘긍·부정’ 응답이 팽팽하게 갈린 반면 대구·경북은 ‘부정’ 응답이 51.9%로 ‘긍정’(41.7%)을 앞서 권역별 인식 차이가 확인됐다. 연령별로는 40대(61.1%)와 50대(60.3%), 60대(58.0%)에서 ‘긍정’ 응답이 우세했다. 반면 ‘부정’ 응답은 18~29세(55.7%), 70세 이상(52.0%), 30대(51.4%)에서 과반을 넘기며 우세했다.

 

정당 지지층별로는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긍정’ 응답이 68.7%로 높게 나타났고, ‘부정’은 25.5%로 집계됐다. 조국혁신당 지지층도 ‘긍정’ 77.3% 대 ‘부정’ 22.7%로 ‘긍정’응답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은 ‘부정’이 73.0%로 압도적이었으며, ‘긍정’은 15.4%에 그쳤다. 무당층은 ‘긍정’ 31.7% 대 ‘부정’ 51.3%로 ‘부정’ 응답이 앞섰고, ‘모름’은 17.0%로 나타나 판단 유보층 비중도 상대적으로 높게 확인됐다.

 

이념성향별로는 진보층의 ‘긍정’ 응답이 70.1%로 높은 반면, 보수층은 ‘부정’ 응답이 61.2%로 우세했다. 중도층은 ‘긍정’ 49.7%, ‘부정’ 45.1%로 ‘긍정’ 응답이 소폭 앞섰다.

 

같은 기간에 1009명(진보 318명, 중도 403명, 보수 217명) 대상으로 진행된 ARS조사에서도 응답자 47.7%가 ‘긍정’(매우 긍정 27.0%+긍정적 20.7%)으로 평가했다. 반면 ‘부정’ 응답은 41.0%(부정적 20.8%+매우 부정 20.2%)로 집계됐다. 전체적으로는 합당에 대한 ‘긍정’ 여론이 ‘부정’ 여론을 앞서는 흐름으로 나타났다.

 

역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긍정’이 70.2%로 높게 집계됐고, 조국혁신당 지지층도 ‘긍정’이 79.4%로 압도적이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은 ‘부정’ 응답이 71.4%로 뚜렷한 우세를 보였다. 이념성향별로는 진보층의 ‘긍정’ 응답이 70.7%로 우세한 반면, 보수층은 ‘부정’ 응답이 60.3%로 우위를 보였다. 중도층은 ‘긍정’ 42.3%, ‘부정’ 47.3%로 ‘부정’ 평가가 소폭 앞서, 중도층에서는 합당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양상이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제안하고 있다. 2026.1.22. 연합
 

지지율, 지방선거 지지 여부, 민주당 큰 차이 우세 변화 없어

 

‘더불어민주당’지지율은 지난 조사 대비 1.3%p 하락한 53.6%, ‘국민의힘’은 0.3%p 상승한 26.7%를 기록했다. 양당 간 격차는 26.9%p로 지난 조사(28.6%p) 대비 1.7%p 줄었다. ARS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조사 대비 0.1%p 상승한 54.2%, ‘국민의힘’은 1.8%p 상승한 32.2%를 기록했다. 양당 간 격차는 22.0%p로 지난 조사(23.6%p) 대비 1.6%p 줄었다.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서도 전화면접조사 기준,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56.8%를 기록한 반면,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4.7%로 집계됐다. 지난 조사 대비 ‘지원론’은 1.6%p 하락하고 ‘견제론’은 0.3%p 하락한 수치다. ARS조사 결과 ‘여당 지원’ 응답은 57.2% ‘야당 지지’ 응답은 37.2%로 집계됐다. 두 응답 간 격차는 20.0%p로, 응답자 과반이 현 정부를 지원하는 ‘여당 지원론’에 힘을 실었다.

 

 

중도층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 ‘긍정’ 73.1%, ‘부정’ 26.1%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는 전화면접조사 기준 ‘긍정’ 68.3%, ‘부정’ 30.2%로 집계됐다. 지난 조사 대비 ‘긍정’ 평가는 1.2%p 하락했고 ‘부정’ 평가는 0.9%p 상승했다. ‘긍·부정’ 격차는 38.1%p로 국민 10명 중 약 7명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30대 이상 모든 세대에서 ‘긍정’ 평가가 우세했다. 50대(86.3%)와 40대(81.5%)에서 특히 높게 나타났고, 60대(68.8%), 70세 이상(59.7%), 30대(57.4%) 도 과반이 ‘긍정’ 응답을 보였다. 반면, 지난 조사에서 ‘긍정’평가가 앞섰던 18~29세는 ‘긍정’ 49.1% 대 ‘부정’ 46.2%로 팽팽하게 갈렸다. 무당층에서는 ‘긍정’ 46.8% 대 ‘부정’ 46.6%로 초박빙이었고, 이념성향별로는 중도층의 경우 ‘긍정’ 73.1%, ‘부정’ 26.1%를 기록하며 격차는 47.0%p에 달해 중도층에서도 ‘긍정’평가가 강하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진행된 ARS 조사에서 국정운영 평가는 ‘긍정’ 63.5%(0.2%p↓), ‘부정’ 34.8%(0.6%p↑)로 집계됐다. ‘긍·부정’ 격차는 28.7%p로 나타났다.

 

 

가덕도 테러 사건, ‘재수사 필요’(전화면접 57.2%, ARS 57.9%)

 

정부가 2년 전 발생한 ‘이재명 대통령 가덕도 피습 사건’을 테러로 지정한 것과 관련해 국민인식을 물었다. 전화면접조사 결과 응답자 57.2%가 ‘사건 축소·왜곡 등에 대한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징역이 확정됐으므로 재수사는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2.3%로 집계됐다. 전체적으로 ‘재수사 필요’ 여론이 ‘재수사 불필요’ 응답을 24.9%p 앞서며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역별로는 모든 지역에서 ‘재수사 필요’ 응답이 앞서거나 우세했다. 연령별로는 30~60대에서 ‘재수사 필요’ 응답이 두드러졌다. 40대(68.8%)와 50대(67.9%)에서 ‘재수사 필요’ 여론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60대(65.3%)와 30대(50.9%)는 과반을 넘겼다. 반면 18~29세와 70세 이상에서는 ‘재수사 필요’와 ‘불필요’가 40%대로 비등하게 나타났다. 정당 지지층별로는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재수사 필요’(72.2%)가 우세한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은 ‘재수사 불필요’(50.7%)가 앞섰다. 무당층은 ‘필요’ 34.6% 대 ‘불필요’ 48.5%로 ‘재수사 불필요’ 응답이 앞섰고, ‘모름’은 16.8%로 나타나 판단 유보층 비중도 상대적으로 높게 확인됐다. 이념성향별로는 진보층의 ‘재수사 필요’ 응답이 75.9%로 높게 나타났고, 중도층 역시 55.6%로 과반을 넘겼다. 반면 보수층은 ‘재수사 불필요’ 45.8% 대 ‘재수사 필요’ 44.7%로 팽팽하게 갈렸다.

 

 

같은 기간에 진행된 ARS조사에서도 응답자 57.9%가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한 반면 ‘징역이 확정됐으므로 재수사는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28.2%로 집계됐다. ‘재수사 필요’가 ‘재수사 불필요’ 응답을 29.7%p 앞서며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인 북한 무인기 침투 엄중 처벌해야” 68.5% 공감

 

“민간인이 북한 핵시설 지역에 무인기를 침투시키는 것은 전쟁 개시 행위와 마찬가지”라며 철저한 진상 조사와 엄중 처벌을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공감도를 물었다. 전화면접조사 결과 응답자 68.5%가 ‘공감한다’(‘매우 공감’ 48.2%+‘어느 정도 공감’ 20.3%)고 답했다. 반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8.1%(‘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13.4%+‘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14.6%)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에 진행된 ARS조사에서는 응답자 66.9%가 ‘공감한다’(‘매우 공감’ 54.2%+‘어느 정도 공감’ 12.8%)고 답했다. 반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0.9%(‘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10.2%+‘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20.6%)로 집계됐다.

 

 

한덕수 징역 23년 판결 ‘적정’ 38.5% ‘더 엄벌해야’ 28.4%

‘과도한 처벌’은 28.3%, ARS ‘적정+엄벌’ 64.2%, ‘과도’ 32%

윤석열 체포방해 혐의 5년 퍈결은 58.9%가 ‘더 엄벌했어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덕수에 대해 법원이 징역 23년을 선고한 판결을 두고 국민 인식을 물은 결과, 응답자 66.9%가 ‘적정한 처벌’(38.5%) 또는 ‘더 엄하게 처벌했어야 한다’(28.4%)고 답했다. 반면 ‘과도한 처벌’이라는 응답은 28.3%로 나타나, ‘정당한 처벌이거나 더 엄벌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과도한 처벌’ 인식보다 크게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진행된 ARS 조사에서 한덕수 징역 23년 판결에 대해 ‘더 엄하게 처벌했어야 한다’(38.5%)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과도한 처벌’(32.0%), ‘적정한 처벌’(25.7%)순으로 나타났다. 이를 ‘적정·엄벌’로 묶으면 64.2%로, ‘과도’(32.0%)를 크게 앞섰다.

 

 

공수처의 체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석열에 대해 법원이 징역 5년을 선고한 판결을 두고는 전화면접조사 결과, 응답자 58.9%가 ‘더 엄하게 처벌했어야 한다’고 답해 엄벌 여론이 과반을 넘어 뚜렷하게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과도한 처벌’은 19.5%, ‘적정한 처벌’은 18.3%로 집계됐다.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판단이 ‘과도·적정’ 응답을 합친 것보다도 크게 앞선 흐름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진행된 ARS조사에서도 응답자 58.6%가 ‘더 엄하게 처벌했어야 한다’고 답해 엄벌 여론이 과반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과도한 처벌’은 28.3%, ‘적정한 처벌’은 9.5%로 집계돼 ‘징역 5년은 부족하다’는 인식이 우세한 흐름으로 확인됐다.  < 강기석 기자 >

 

 

우상호 “혁신당과 통합, 이 대통령도 강력 공감…결심은 정청래가 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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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태형 기자 
 

우상호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통합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는 조국 (혁신당) 대표, 정청래 (민주당) 대표, 청와대의 공감대가 있었다”며 “통합의 시점, 추진의 결심은 정 대표가 내린 것”이라고 27일 밝혔다.

 

우 전 수석은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제가 정청래 대표, 조국 대표를 몇 번씩 만나서, 그러니까 다른 문제로 만났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를 한 바가 있다”며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통합에 대해서는 사실은 원칙적으로 조 대표, 정 대표, 청와대의 공감대가 있었다”고 했다.

 

우 전 수석은 “그런데 통합의 시점 또 추진의 결심은 정청래 대표가 내린 것이라 보시면 된다”며 “정당과 정당의 통합을 당연히 정당의 대표들이 결정해야지 대통령실에서 구체적 절차와 방법까지 다 지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큰 원칙적인 의미의 통합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으면 구체적인 안을 짜고 그것을 실행해 나가는 건 정당 지도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은 “지금 민주당 안에서 여러 가지 아쉬운 이야기들이 나오는 건 그것이 설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대표가 최고위원급의 지도부하고는 미리 상의해 가면서 추진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 대표가 사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은 “통합 자체는 (이재명)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게 아니다. 대통령도 강력한 공감대를 표시한 적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 통합 시점, 통합을 언제 추진할 것이며 어떻게 끌고 나가겠다는 것을 아주 세부적으로 조율하거나 상의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건 정당의 몫이다. 청와대와 그런 것으로 너무 세세하게 얘기하면 선거 개입 시비가 붙는다”고 했다.                                                                      < 고한솔 기자 > 

 

한박자 느리지만 정확하게 판단하던 '좌장'


자신 앞세우지 않고 공동의 자리를 떠받쳐
늘 지금보다 다음 단계를 고민하던 정치인
남아 정리했고, 책임 졌으며, 다음을 준비
단단한 정치, 책임 미루지 않는 태도 절실

 

 

이해찬 전 총리가 영면에 들었다. 그의 죽음은 한 정치인의 생애가 끝났다는 사실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가 하나의 시대를 정리하고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그가 언제나 시대의 전면에 서 있던 인물은 아니었지만,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마다 제도와 조직의 중심을 붙들고 버텨온 정치인이었다. 화려한 언변보다 구조를, 순간의 승리보다 지속을 선택했던 그의 정치적 태도는 한국 민주주의가 체력을 길러내는 데 깊이 기여했다.

 

나에게 이해찬은 텔레비전 속 정치인이기 이전에 같은 시공간을 통과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보다 세 살 위였다. 나이 차는 크지 않았지만, 그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는 앞에 서서 끌고 가는 타이프는 아니었지만, 방향을 먼저 잡고 그 방향이 틀어지지 않게 지켜 보는 사람이었다.

 

1980년대 중반, 나는 민통련 민족학교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는 민족학교의 운영위원이자 강사로 활동하며 언제나 좌장의 자리를 맡았다. 강의는 한국 근현대사, 사회과학 이론, 민족주의 경제학 등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고,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비판적 사회의식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당시 민족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훗날 제13대 국회에 진출하게 되는 이른바 ‘평민당 영입파’ 재야 인사들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다. 이 시기의 활동은 1988년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화민주당에 그가 영입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민통련과 민족학교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치밀한 전략가’라는 평가를 안겨주었고, 그 뒤 정책과 선거 전략에 능한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당시 민족학교와 민통련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도 훗날 민주당 계열의 핵심 인적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 시절, 내가 만난 이해찬은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고, 토론을 장악하려 들지도 않았다. 다만 토론이 감정으로 흐르거나, 각자의 옳음이 충돌하며 자칫 싸움으로 번질 때면, 짧고 단정한 말로 흐름을 정리했다. “그건 지금의 쟁점이 아닙니다.” “그건 판단 이전에 감정의 문제입니다.”

 

당시 대정부 투쟁에 대해서는 “나는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패배주의를 제일 싫어합니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말은 길지 않았지만, 그가 입을 열면 방 안의 공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열정이 넘치던 시절, 그는 언제나 한 박자 느리게, 그러나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토론이 길어지고 술자리가 이어지던 날들도 많았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면 계산이 문제였다. 그럴 때 그는 말 없이 지갑을 꺼냈다. 누가 보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고, 그것을 미덕처럼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때 책임을 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태도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의 정치적 태도는 이미 그 사소한 장면들 속에 응축되어 있었다. 자신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공동의 자리가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는 태도였다.

 

나무위키

 

그 무렵 이해찬은 서울대 인근 신림동 고시촌에서 ‘광장서적’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회과학 서적이 빼곡히 꽂힌 그 공간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었다. 학생운동권의 사유가 모이고 토론이 축적되던 장소였고, 시대의 질문들이 오가던 작은 공론장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책을 사고, 논쟁을 벌이고,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거리의 집회만큼이나 그런 일상의 공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분출될 수 있지만, 결국 이런 공간들을 통해 사유로 축적되고 제도로 이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했다.

 

이해찬의 정치 인생은 군사독재 말기에서 시작해 민주화 이후의 제도화 과정, 그리고 촛불 이후의 정치 재편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거의 빠짐없이 관통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단번에 완성될 수 있는 체제로 보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조정, 때로는 후퇴를 거치며 축적되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그의 정치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늘 ‘지금’보다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정치인이었다.

 

그가 한국 민주주의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제도의 안정화였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거리의 열정과 도덕적 정당성에 비해 제도적 완성도가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는 불균형을 안고 있었다. 이해찬은 이 간극을 메우는 데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집중했다. 그는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보다, 이긴 이후에도 민주주의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정치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 신념은 그의 입법 활동과 행정부 운영, 정당 조직 관리 전반에 일관되게 드러났다.

 

2019년 열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10주기 추모 사진전'에서 추모사를 하는 이해찬 전 총리. 연합 자료사진
 

총리 재임 시절에도 그는 행정의 안정성과 정책의 지속성을 중시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보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제도를 점검하고 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급진적 변화를 기대하던 이들에게는 답답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성숙한 선택이었다. 제도는 개인의 의지로만 움직이지 않으며, 사회적 합의와 행정적 역량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그는 이 점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정당 정치에서도 그의 역할은 분명했다. 이해찬은 정당을 단순한 선거 기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제도로 보았다. 계파 갈등과 내부 분열이 반복되는 상황에도 그는 조직이 붕괴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데 주력했다. 때로는 강단 있는 결정을 내렸고, 때로는 조정과 중재를 통해 갈등을 관리했다. 그 과정에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정당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그가 맡았던 역할은 ‘패배의 시간’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민주주의는 승리의 순간보다 패배 이후에 더 혹독한 시험에 든다. 선거에서 지고, 여론이 등을 돌리고, 내부가 흔들릴 때 정당과 정치인은 쉽게 무너진다. 이해찬은 바로 그 순간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남아서 정리했고, 책임을 졌으며, 다음을 준비했다. 개인의 정치적 이해만 놓고 보면 손해에 가까운 선택이었지만, 민주주의 관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었다.

 

물론 그의 정치가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 지금도 평가가 엇갈리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민주주의의 규칙을 벗어나 문제를 해결하려 한 적은 없다는 점이다. 위기의 순간에도 그는 제도 안에서 해법을 찾으려 했고, 그 과정에 발생하는 정치적 비용을 감수했다. 이는 민주주의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이지만, 실제 정치 현실에서 이를 끝까지 지켜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1985년 민통련 민족학교 시절의 이해찬. 박용수 사진작가
 

이해찬의 삶이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영웅에 의해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름이 크게 남지 않는 수많은 관리와 조정, 책임의 축적 위에서 유지된다. 그는 그 조용한 노동을 기꺼이 맡았던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때로 과소평가되었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와 구조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이제 그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태도와 기준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완이며,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이해찬이 보여주었던 느리지만 단단한 정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가 평생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다음 세대의 손에서 더욱 성숙해지기를 바라며, 그가 앞서 걸어간 그 자리를 조용히 기억한다.

 

고인이 마지막 가시는 길,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졸시 한 편을 남긴다. 그가 무척 그리울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이

한 시대의 무게를 대신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말이 아니라

시간으로 증명했다

 

앞으로 나서기보다

흐름을 세우고

부서지기 쉬운 제도 곁에

묵묵히 서 있던 사람

 

열광의 순간보다

패배의 저녁을 지켰고

박수보다

책임의 언어를 선택했다

 

당신이 남긴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규칙이었고

목소리가 아니라

버팀목이었다

 

이제 그 긴 호흡을 내려놓고

역사의 깊은 자리에서

편히 쉬소서

 

당신이 지켜온 중심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으로

조용히 이어질 것이오

 

-박철 '민주주의 표상, 이해찬의 생애를 기리며'                    < 박철 기자 >

 

당신의 혜안 더 필요할 때 홀연히 떠나셨네요

 

한 정치부 기자가 회고하는 이해찬 전 총리
DJ와 맞짱 토론, 비판적 직언 서슴지 않아
노무현 진가 알아보고 이재명엔 방패 역할
플랫폼 정당 전환 · 시스템 공천 도입 업적

 

이해찬 전 총리가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이별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비보를 접하는 순간, 그분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는 험난했던 민주화 투쟁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민주개혁 진영이 낳은 최고의 전략가였습니다.

 

대학 시절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온몸을 던졌던 그에게, 두 차례의 옥고는 피할 수 없는 시련이었습니다.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5.18 내란 당시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투옥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탄압에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재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뒤, 1987년 시민항쟁 때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을 맡아 항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격동의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가 분출하고 충돌하는 국면에서도, 그는 냉철한 시선으로 해법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 시절, 저는 옛 민주당을 출입하며 그를 거의 매일 당사에서 뵈었습니다.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민주당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당내에서 단연코 능력을 인정받은 유망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당내에서 김대중 총재와 각종 정국 현안을 놓고 맞장 토론을 펼칠 수 있는 단 한 사람. 비판적 직언도 서슴지 않던 그에게 김대중 총재는 때로 언짢아했지만 그의 높은 식견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김대중 총재의 2선 후퇴를 주장하는 정풍운동에 앞장섰을 때, 김 총재는 이해찬 전 총리의 공천 배제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능력을 지닌 그를 배제하는 것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김 총재는 결국 그 결정을 철회했습니다.

 

2016년, 김종인 씨가 민주당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추대된 후, 이해찬 전 총리는 총선 공천에서 컷오프되어 탈락했습니다. 현재 민주당 당대표인 정청래 의원도 함께 컷오프됐습니다. 김종인 씨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정무적 판단'이라는 말로 이해찬을 공천에서 배제했습니다. 아마도 이는 1988년 13대 총선 당시의 악연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그는 세종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낙승을 거둔 뒤 민주당에 복당해서 대표에 당선돼 민주당의 현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노태우 정권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종인은, 운동권 출신 정치 초년생에 불과했던 평민당 후보 이해찬에게 관악구에서 패배했습니다. 언론이 김종인의 낙승을 예상했던 그 선거에서 이해찬은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당시 크게 회자되었습니다.

 

훗날 이해찬 전 총리가 들려준 일화가 있습니다. 개표 도중 민정당 후보였던 김종인의 무더기 표가 쏟아져 나와 개표가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평민당 선거운동원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개표장이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그는 운동원들을 차분히 설득한 뒤 선관위에 개표 속개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종인을 5% 이상 앞서고 있었기에, 문제의 표를 인정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만약 부정선거 의혹 제기로 개표가 장시간 중단된다면, 오히려 민정당 측에서 진짜 개표 부정을 자행해 당락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군사독재의 잔재가 여전히 강고했고, 안기부와 경찰 같은 권력기관들이 부정선거를 서슴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이 에피소드는 이해찬 전 총리의 재빠른 상황 판단력과 전략적 사고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또한 그는 민주운동권 출신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노무현 대통령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본 정치인이었습니다. 재야 출신 인사들 대부분이 민주화투쟁 경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노무현을 정치 지도자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그는 이미 노무현을 진정한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당시 노무현을 지도자로 인정한 이는 이해찬과 유시민,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다소 괴퍅할 정도로 까칠했던 성정의 소유자였던 그였지만, 사람을 보는 눈만큼은 누구보다 예리했습니다.

 

 

그의 혜안은 이재명 대표를 대통령감으로 일찍이 주목했고, 정치권에서 뚜렷한 기반이 없었던 이재명 대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방패가 되어주었습니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 이재명 대표를 제거하려 온갖 패악질을 자행할 때도, 이해찬 전 총리는 흔들림 없는 멘토이자 후원자였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는 민주당을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 정당으로 변모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당 대표 시절이었던 2018년, 그는 웹 기반의 당원 플랫폼을 구축하여 당원 전용 온라인 시스템 및 투표 기능을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민주당의 당원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명실상부한 당원정당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시스템 공천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총선 1년 전까지 공천 룰을 확정하여 공개하고, 그 룰에 따라 전 지구당을 동일한 기준으로 심사한 뒤 경선을 거쳐 공천자를 확정하는 제도였습니다.

 

이처럼 이해찬 전 총리는 민주당을 초현대식 민주정당으로 변모시킴으로써, 180석의 거대정당으로 비약할 수 있는 굳건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내란 척결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시점에 이해찬 전 총리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민주 진영의 20년 장기 집권 플랜을 주창했던 그의 전략적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지금, 그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빈자리가 얼마나 클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님, 이제 그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부디 편히 쉬시기를 기원합니다.

                                                                                                            < 장정수 기자 >

 

이해찬의 때 이른 죽음, 결국 고문 후유증 때문이었나

 

"하도 맞아서 죽었구나 소문도" 회고록에 언급
"고춧가루 고문…연탄집게로 눈깔 뺀다 들이대"
"아침에 불려 나갔다 오후에 시체처럼 돌아와"

"고문당한 사람을 보는 게 더 큰 심리적 고통"
"동지와 인간에 대한 믿음 없었다면 못 견뎌"
김근태·김홍일 별세 때 "고문 후유증" 깊은 애도

본인도 점차 말투 어눌해지고 몸 둔화, 손 떨어
당대표 때 닷새간 입원…곧바로 선거운동 진력
정치 일선 은퇴 뒤 지팡이나 부축에 의지 거동

이해찬 죽음 계기로 "피해자 전수조사" 목소리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사진은 1988년 3월 31일 제13대 총선에 출마한 관악구 이해찬 후보의 유세. 2026.1.25. 연합 자료사진
 

• 1974~1975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다.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투옥, 안양교도소와 대전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 1980~1982 : 80년, 복학과 함께 복학생협의회장을 맡았다. 5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배 중 연행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다. 10년형을 선고받고 육군교도소, 안동교도소, 춘천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2022년 9월 돌베개에서 출간된 <이해찬 회고록> 중 맨 뒷부분 연보(年譜)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는 이처럼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기 민주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분투하다 당국에 체포돼 혹독한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곤 했다.

지난 25일, 그가 너무 이른 나이인 73세에 심근경색으로 타계하자 열악한 수감 생활을 동반한 그 시절 고문 피해의 후유증이 결국 건강과 수명에 악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생전에 자신이 고문당했던 일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경우가 드물지만 회고록에서는 당시 상황이나 소회를 비교적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대담자인 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대표님은 고문당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으셨어요. 물론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당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관련 얘기를 안 하는 게 금기이긴 하지만 용기를 내어 여쭙니다. 수사받는 동안에도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2022년 9월 돌베개에서 출간된 '이해찬 회고록'
 

"그때 내가 고생을 좀 했어. 처음으로 고춧가루 고문도 당하고. 나중에 누가 그러는데 내가 죽은 줄 알았대요. 하도 맞아서. 아이고, 이해찬이 죽었구나 그렇게 흉하게 소문이 나고 그랬대. 학생들이 많이 잡혀 왔는데 문리대가 제일 많았고 의대생들도 많았어요. 성균관대에서도 잡혀 오고. 동대문경찰서 관할은 다 잡혀 왔어. 그중에서 나는 주모자급이 돼 있었어요. (…)

 

나는 수사 끝나고 유치장으로 넘어가서도 매일 불려 가서 고문당하고 맞았어요. 수배자들 행적을 대라고. 근데 나는 진짜 몰랐거든. 내가 알면 대겠는데 정말 모른다, 그랬지. 그때가 초봄이어서 쌀쌀했어요. 연탄난로를 때고 있었는데 연탄집게를 빼 가지고 이놈의 새끼 눈깔을 뺀다고 들이대는 거야. 그 순간은 진짜 공포스러웠어요. 일주일을 그렇게 아침에 불려 나갔다 오후에 시체처럼 돌아오니 저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그랬던 거예요.

 

영장이 떨어지고도 구치소로 보내 주지 않아서 7월까지 유치장에 있었어요. 하도 많이 잡아들여서 구치소에 방이 없었던 거야. 나처럼 캠퍼스 행동대 역할을 한 정도에게 내줄 독방도 없고. 유치장에는 쥐가 왔다 갔다 하고 빈대는 너무 많았어. 밥은 꽁보리밥에 단무지. 처음에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는데 배가 고프니까 어떻게 해. 먹는 거지."

 

다음과 같은 회상들도 그의 심신에 인장처럼 깊이 새겨졌던 고문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동지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못 견뎠을 거야. 언제든 잡혀가고, 구속되고, 죽을 수도 있는데…. 얼마 전에 사위랑 얘기하다가 내가 고문받은 얘기가 나왔어요. 우리 손자가 옆에서 듣고 깜짝 놀라서는 할아버지를 고문했다고요? 아이고 무서워라, 하더라고. 역사 유튜브 같은 걸 보면서 독립운동가들이 고문당한 얘기를 들었대요. 그런데 할아버지도 당했다고 하니 놀란 거야.

 

70, 80년대를 돌아보면 다들 목숨을 내걸고 싸웠어요. 험난한 과정에서도 동지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살았고. 민주화 세력이 그런 혹독한 시기를 같이 이겨 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자료를 보기가 싫었어요. 지나간 일들을 다시 보려고 하니까 정글로 들어가는 거 같아. 쭉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구만. 아이고, 어떻게 용케 살아왔다. 대담 준비를 하면서 가끔 꿈을 꿨어요. 보안사(현 방첩사)에 잡혀가는 꿈, 안 잡혀가려고 싸우고 그런 꿈을 꿨어요. 가위 눌리는 거지.

 

예전에 고문당할 때도 막연히 느꼈지만, 고문당한 사람을 보는 게 더 충격이 큰 것 같아요. 문리대 친구들이 고문당한 나를 보고 죽었다고 생각했대. 고문이 심리적으로도 큰 고통을 남기는 거야. 나하고 같이 다녔다고 소문이 잘못 난 친구가 잡혀가서 고문을 당한 일이 있었어요. 이번에 그 일도 꿈을 꿨어."

 

2011년 12월 30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별세했다.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서 이해찬 전 총리가 조문하고 있다. 2011.12.30. 연합
 

그와 마찬가지로 고문 피해자였던 김근태 전 의원과 김홍일 전 의원이 그 후유증으로 큰 고통을 겪다 별세했을 때 이 전 총리는 동병상련과 함께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김근태 전 의원은 2011년 11월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 달 만에 숨을 거뒀고(향년 64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은 파킨슨병을 앓다 2019년 4월 2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에서 쓰러져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향년 71세).

 

"김근태 고문과는 70년대 학생운동 때부터 40년 동안 같이해오며 경찰과 싸우고 감옥 갔던 그런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특히 종로 파고다 공원에서 참 많이 싸웠던 것 같아요. 김 고문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너무 심하게 받아 가을 찬바람만 불면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어왔어요. 해가 갈수록 심해졌는데 아마도 금년이 한계인 것 같습니다. 아직 한창 활동할 나이에 고문 후유증으로 이런 상황을 맞아 안타깝습니다." (2011년 12월 29일 김근태 전 의원이 의식 불명 상태로 입원해 있던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을 나오며.)

 

"김홍일 전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이기도 했지만, 정치적 동지이자 독재정권에 맞서 온몸을 바친 민주화 운동의 투사였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독재정권의 조작 사건으로 가혹한 고문과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셨습니다. 저와 함께 정치를 30년 가까이 해오면서 김홍일 전 의원은 굉장히 따뜻하고 폭이 넓은 정치인이었습니다. 유명을 달리한 것을, 다시 한 번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면서 영면을 기원합니다." (2019년 4월 22일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이 전 총리는 본래 말투가 또박또박 명료했으나 2010년대 들어 말이 어눌해지거나 자주 끊기고 몸놀림이 둔화되며 손을 떠는 증상을 나타내곤 했다. 항간에 파킨슨병 투병설까지 떠돌자 이를 묻는 기자에게 "별소리가 다 나온다. 일부 언론의 과장 보도"라고 일축하기도 했지만 건강은 점차 악화되는 것으로 보였다.

 

2020년 3월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과로 등에 따른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닷새나 머물렀다. "당원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갑자기 몸이 나빠져서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고 오히려 미안해한 그는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4·15 총선 선거운동에 뛰어들어 또 몸을 돌보지 않았다. 정치 일선에서 은퇴한 뒤에도 간간이 강연과 축사 등 외부 일정을 소화하긴 했지만 지팡이를 짚거나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고 걸음을 옮겨야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사진은 2024년 11월 13일 국회에서 당시 이해찬 상임고문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함께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 참석하는 모습. 2026.1.25. 연합 자료사진
 

이 전 총리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출장을 떠났다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이송된 뒤 25일 끝내 세상을 떠나자 이를 계기로 과거 고문 정권 및 그 하수인과 부역자들을 향한 분노를 표시하는 한편, 피해자들에 대한 온전한 치유와 전수조사 등을 위해 우리 사회와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김홍일, 김근태, 이해찬 등 젊은 시절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분들의 만년(晩年) 모습은 대체로 비슷했다"며 "저분들에게 고문을 지시했던 자들과, 저분들을 직접 고문했던 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할까?"라고 개탄했다.

 

이어 "고문을 지시하고, 고문을 실행하고, 고문당한 사람을 기소하고, 고문당한 사람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자들 중 스스로 '양심고백'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민주화 운동'이 곧 '양심 회복 운동'이었기에,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이해찬 선생님, '양심 없는 자들'은 갈 수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고문이란 조작된 진술을 얻기 위해 수사·정보기관이 극한의 고통,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고통과 공포감을 가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고문 앞에 장사 없다'는 것이고, 오죽하면 민주화 운동의 핵심 구호가 '고문 없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것이었겠는가"라며 "(김근태·이해찬) 두 분 다 직접 사인은 있겠지만 고문 후유증의 증상을 겪고 있었고 수명 단축에까지 악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는 민주화 운동으로 영예를 받아 누린 것처럼 논란을 벌이지만, 민주화 운동 자체가 혹독한 고문과 옥살이를 동반한 엄청난 고난의 길이었음을 가끔 잊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고문의 실체를 세세하게 조사하고, 치료도 하고, 그럼으로써 개인적 고난의 무게도 이해하고, 독재 권력이 사람들에게 무슨 악행을 했던가도 생생하게 드러냈으면 한다"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그런 방면에 노력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주유공자법도 그런 바탕 위에서 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승종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세간에서는 이해찬 전 총리가 평생 짊어지고 온 고문의 후유증이 그의 생을 앞당겼으리라 짐작한다. 한 개인의 강인한 의지로도 끝내 이겨낼 수 없었던 생물학적 파괴, 그것이 바로 독재가 남긴 잔인한 유산"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겪었을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이제 개인의 서사를 넘어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나아가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할 때다. 이해찬 전 총리의 죽음을 단순히 한 정치인의 퇴장이 아닌, 고문 피해 세대의 마지막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고문의 후유증을 총체적으로 조사하고,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의료 지원과 심리 치유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도리다. 전수조사를 통해 숨겨진 눈물을 닦아주고 고문이라는 야만의 역사를 종결짓는 것만이 역사의 이름으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김호경 기자 >

 

“약자 고통 치유하려던 큰 스승”…이해찬 전 총리 빈소 조문 시작

우원식·김민석·정청래 등 빈소 찾아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공동취재 사진
 

베트남 출장 중 별세한 고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 수석부의장(전 국무총리)의 기관·사회장이 시작됐다. 조문에 나선 동료 정치인과 지인들은 미소 띤 이 부의장 생전 모습이 담긴 영정 앞에서 입을 굳게 다문 채 눈시울을 붉혔다.

 

고 이해찬 수석부의장의 영정과 주검을 실은 운구 차량은 27일 아침 9시께 양 옆으로 도열한 의장대와 정치인들 의전 속에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전날 밤 11시50분(현지시각) 베트남 현지를 출발한 지 한 나절여만이다. 베트남 출장 도중 호흡이 약해지는 증상이 나타나 응급실로 이송된 이 전 부의장은 베트남 호치민의 한 병원에서 지난 25일 끝내 목숨을 잃었다. 향년 73살.

 

동료이자 선배, 스승이이었던 정치인을 잃은 정치권 인사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영정과 유가족 앞에 고개를 숙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산 증인이고 민주 정부를 만드는 데 역대 정권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다. 무엇보다도 힘들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그분들의 고통을 치유하려고 했던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이어 “그분이 뜻했던 나라를 제대로 세우고 힘이 약한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정치, 그 뜻을 잘 이어가야 되겠다 하는 생각으로 오늘 조문을 했다”고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우원식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날 아침 빈소에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소속 정치인 50여명이 이 부의장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영정 한 쪽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전한 화환이 놓였다. 김 총리와 정 대표는 상주의 자리에서 함께 조문객을 맞기도 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청천벽력 같은 비보 였다. 아직 총리님을 보내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애통함을 전하며, “남북평화, 남북통일을 위해 애쓰기 위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으셨는데, 우리들이 이어서 남북평화와 통일을 이어가야 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정복 민주당 최고위원도 “건강이 안 좋으셨는데 공직을 맡아 최선을 다해 수행하다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당에서 애도기간을 설정했고, 온 당원이 한마음이 돼서 추모하는 절차를 마련했다”고 했다.

 

이 부의장 장례는 이날부터 31일까지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통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기관·사회장으로 치러진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상임 장례위원장을 맡고, 시민사회 및 정당 상임공동 장례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맡았다. 이날 오후부터 일반 시민도 이 부의장 빈소에 조문할 수 있다.                                 < 김수연 기자 >

 

이해찬 향한 각별한 예우…베트남 정부 “고향서 돌아가셨다 여겨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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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25일 타계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주검이 27일 오전 국내로 운구된 가운데, 베트남 호찌민시 현지에서 관련 절차를 밟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귀국 과정을 전했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27일 새벽 페이스북에 ‘이해찬 전 대표님과 함께 귀국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호찌민시 떤선녓 국제공항 카고 터미널에서 관포식이 거행됐다. 대표님이 누워계신 관에 대형 태극기가 펼쳐져 덮였을 때 다시 콧등이 시큰해졌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주인공 동호가 ‘왜 관에 태극기를 덮냐’고 궁금해했다는 대목이 떠올랐다. 1980년의 태극기와 오늘의 태극기가 겹쳐 보였다”고 했다.

 

이 의원은 고인이 생전에 쌀국수와 호찌민을 좋아했다고 전하며 “(부인인) 김정옥 사모님은 ‘가족들과 의원들, 정부 관계자들을 호찌민시까지 불러들여 쌀국수를 맛보게 하고 호찌민 시내 구경을 시켰다’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베트남 정부는 대표님 가시는 길에 각별한 호의를 베풀었다”며 “우리의 시장 격인 호찌민시 인민위원장은 어제 병원으로, 부위원장은 오늘 법의학센터로 각각 방문해 가족을 위로하고 의원단을 만났다”고 말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이 의원은 호찌민 떤선녓 국제공항 의전실로 찾아온 응우옌 밍 부 베트남 외교부 수석 차관의 말도 전했다. “베트남도 유교 전통을 가진 나라로서 집안이든 나라든 큰 어른이 돌아가시면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잘 안다. 한국과 베트남의 돈독한 관계를 고려한다면 타국에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 고향이나 진배없는 곳에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해달라.”

 

베트남에서 함께한 김영배 민주당 의원 역시 “베트남 정부의 배려와 정성을 잊지 않겠다”며 이날 페이스북에 현지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사진 속에서 고인의 부인인 김정옥씨와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인 조정식 민주당 의원 등이 태극기로 덮인 관에 손을 대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전날 팜 투 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지난 며칠 동안 호찌민시 인민위원회, 관계 기관과 협력해 이 수석부의장에게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며 팜 민 찐 총리 등 베트남 지도부가 한국 정부와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대한항공 KE476편을 통해 이날 오전 6시53분께 인천공항으로 운구됐으며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차려진다.                                                    < 송경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