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민지배를 얼버무린 1965년 한일기본조약
학생, 정치인, 기독교계, 예비역 장성까지 함께 반대
60년 후 실질적 조약 개정 요구하는 한일 시민연대

 

                                                                           주진오 역사학자·상명대 명예교수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일본 도쿄에서 정식으로 조인되었습니다. 이전 14년에 걸쳐 한일 양국은 외교관계 정상화, 청구권 문제, 재일교포 문제 등 다양한 현안을 포함한 회담을 진행해 오고 있었는데요. 1964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치열한 국민들의 반대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부친 결과였습니다.

 

1965년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일권 국무총리, 박 대통령, 이동원 외무장관, 김동조 주일 대사.

 

그런데 한일기본조약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쳐야 했어요. 7월 14일에 난투극을 벌인 끝에 날치기로 발의한 비준안을 8월 14일, 야당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여당인 공화당 단독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일본에서는 12월에 참의원에서 비준이 이루어졌고, 1965년 12월 18일, 서울에서 양국이 비준서를 교환하면서 조약은 공식 발효되었어요.

 

힘으로 밀어부친 조약을 단식과 의원직 사퇴로 막아선 야당

 

6월 14일 제1야당인 민정당과 제2야당 민주당은 한일기본조약 반대투쟁을 위해 합당하여 민중당을 창당하였습니다. 의원들은 국회에서 비준될 경우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하고, 6월 22일 조인 이후, 국회의원 57명과 지도부는 조약 무효를 주장하며 국회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습니다. 당권 경쟁에서 패해 고문로 있던 윤보선은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들 내에 탈당과 당 해체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와 원내 반대투쟁에 머물려는 온건파의 갈등이 고조되었습니다. 윤보선이 7월 28일 탈당계를 냈으며, 8월 9일 민중당 의원 58명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습니다. 당시에는 국회의원이 탈당하면 바로 의원직을 박탈 당하게 되어 있었는데, 6명의 의원만이 탈당계를 제출하였습니다.

 

비준안 상정을 저지하는 야당의원들. 가운데 보타이를 한 사람이 서민호 의원 

 

8월 13일 이효상 국회의장은 윤보선·서민호·김도연·정일형·정성태·김재광 등의 의원직 상실을 선포했어요. 이로써 국회의원 수는 175명에서 169명으로 감소했습니다. 당시 의석 분포는 공화당 110석 민중당 55석 무소속 4석이었어요. 잔류한 민중당 의원 가운데에는 김대중과 김영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치권의 반대투쟁에 앞장섰던 서민호 의원의 수난

 

그 가운데에는 서민호 의원이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1903년에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그는 보성고보를 다니던 중, 임시정부가 보낸 지령문을 돌리다가 6개월 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 후 일본 와세다대학과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어요. 그는 조선어학회를 후원하다가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에 의하여 1946년 6월 전라남도 광주부윤, 같은 해 10월 전라남도 지사에 임명되기도 했는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고흥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어요. 그는 지주 출신의 우익 인사로서 반공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는 줄곧 이승만 극우 독재정권에 맞선 정치적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1951년 국회에서 국민방위군 의혹사건과 거창양민학살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발언으로 이승만 정권의 미움을 사게 되었어요. 1952년 순천에서 자신을 살해하려던 군인을 쏘아 죽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명백한 정당방위였지만 8년형을 받고 복역 중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쫓겨나자 바로 석방되었어요. 정치적 탄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민호 의원 선거 포스터.

 

당시 동아일보는 그를 ‘한국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960년 5대 민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민의원 부의장에 선출되었지만, 5.16 군사쿠데타로 국회가 해산되고 정치활동 금지를 당했지만, 1963년에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용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1964년 정기국회에서 ‘대통령을 탄핵한다’라는 제목으로 박정희의 퇴진을 요구했어요. 굴욕적이고 매국적인 외교로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고 있는 사태를 더 묵과할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1965년에는 한일기본조약 비준에 반대하면서 의원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고, 동생 서석순 교수는 교수단 시국선언을 주도했지요.

 

그 후 서민호는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전국 주요 도시를 다니며 시국강연회를 통해 식민지배 청산 미흡, 민족 자존심 훼손 등을 집중적으로 비판했어요. 그의 거침없는 비판과 민주사회주의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정당 활동으로 박정희 정권 때에만 세 차례나 투옥되었습니다.

 

보수 기독교단과 예비역 장성들도 반대투쟁에 동참

 

7월 1일 한경직, 김재준, 강원용, 함석헌 등 개신교 지도자 100여 명은 서울 영락교회에서 ‘한일협정 비준 반대 성토대회’를 열고, ‘한일협정 비준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국민의 애국적인 의사표시를 권력으로 내리누르는 행위를 즉각 중지하라”며, 국회는 한국 역사의 장래를 위해 비준을 거부할 것을 촉구했어요.

 

영락교회에서 열린 구국기도회

 

7월 5일에는 영락교회에서 2천여 신도가 참여해 ‘국가를 위한 연합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기도회는 기독교계 한일협정 비준 반대 500만 서명을 목표로 정했어요. 한경직과 김재준은 한국 교회의 예수교장로회(예장)와 기독교장로회(기장)의 지도자로, 이들이 함께 열었던 구국 기도회는 보수 개신교 세력까지 참여한 매우 드문 사례였습니다.

 

함석헌은 자택에서 한일협정 비준 반대를 위한 삭발 단식에 들어갔어요. 또한 7월 8일부터 10일까지 전국의 예수교장로회 산하 2000여 교회 약 50만 명의 신도들이 구국 금식 기도회를 개최했고, 8월 8일에는 영락교회에서 윤보선 등 3천여 기독교인들이 ‘나라를 위한 금식 연합 기도회’를 개최하고 행진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7월 14일에는 예비역 장성 11명이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어요. 장관과 중앙정보부장, 참모총장을 역임한 김홍일, 김재춘, 송요찬, 손원일, 이호 등 과거 군정과 박정희 정권하에서 최고위원 또는 장관을 역임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이라서 놀라움을 주었고 반대운동 진영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예비역 장성 11명의 이름으로 발표된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성명서’.

 

이들은 그동안의 한일 교섭이 비정상적인 경로에 의해 독선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조약 내용이 일본 측 제안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비하며 한일회담 과정과 협정의 부당함을 논박했어요. 이들은 8월 25일 한일협정 비준 무효화 투쟁에 관한 성명서를 다시 발표했고, 위수령이 선포되자 '국군 장병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배포했습니다.

 

이들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호소하고 위수령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자 이들 중 네 명을 박정희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구속했습니다. 이들이 박정희를 "국가에 불행을 불러일으키는 집권자들이야말로 이적 행위자이며 국민 단합을 파괴하는 반민족 행위자이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반국가 행위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기 때문이었어요.

 

식민지배 청산을 외면한 채 맺은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조약

 

박정희가 폭력적으로 강행한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자 국민들은 '왜놈과의 국교정상화는 제2의 경술국치이자 을사조약이다', '피 흘려 나라를 지켜낸 호국영령과 애국자들이 크게 통곡한다', '국민과의 합의도 없는 왜놈과의 국교정상화는 친일 매국 정권의 독재다'라는 등의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조약의 조인을 끝내 막을 수 없었어요.

 

‘매국적 외교를 결사 반대한다’ 등의 피켓을 든 시위대가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고 있다.

 

이 조약의 문제점은 식민지 지배 청산의 부재, 과거사 문제의 미해결,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외교, 경제적 종속 우려, 민주주의 및 주권 침해 문제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후 지금까지 한일관계에서 끊임없이 갈등과 충돌이 계속되는 원인을 제공했어요.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한일기본조약에는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은 채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어요. 조약 제2조에서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했지만, 애매한 표현을 사용해 한국과 일본이 각각 다른 해석을 하도록 여지를 남겼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일본에 지나치게 저자세로 협상에 임했다는 비판이 있었지요. 청구권 문제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배상 요구가 배제되었습니다. 독도 영유권 문제 등 주요 현안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어요. 일본 자본과 상품의 침투로 인해 한국 경제가 일본에 종속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위험성이 강조되었습니다.

 

‘빛의 혁명’ 없었다면 제2의 굴욕적 한일기본조약 없었을까?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등 식민지배 관련 피해자들의 권리와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양국 간 해석 차이로 인해 과거사 문제가 지속적으로 남게 되었지요.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명시했으나, 개인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배상 문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2018년 11월 12일 강제징용 피해자 변호인들이 피해자 사진과 배상 촉구 요청서를 들고 일본 도쿄의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하고 있다.

 

일본은 이 협정으로 모든 배상 문제가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한국 대법원 등은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결하며, 피해자들은 여전히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이로 인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 과거사 피해자 문제는 현재까지도 한일 간 갈등의 핵심 현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와 달리 1972년 중일 공동 성명에서는 배상금은 받지 않았지만, "중국 국민에게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어요. 아울러 일본의 지배를 4년도 받지 않았던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한국보다 더 많은 액수의 배상금이 지급되었습니다. 버마의 경우 3억 4000만 달러, 필리핀은 5억 5000만 달러를 받았어요.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자 미국은 즉각 이를 환영하였습니다. ‘한·일국교 정상화’는 한·미·일 3국 정부가 추구했던 목표가 상호 부합한 가운데 이루어졌어요. 즉 ’경제난 해결’이라는 한국의 필요와 ’식민지배 피해청산’의 부채를 경제협력이라는 포장지를 씌워 해소하려는 일본의 요구, 그리고 미국의 대중국 봉쇄를 위한 동아시아 지역통합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인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2025년의 을사년에 60년 전의 굴욕적인 한일기본조약에 버금가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했어요. 특히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김태효 1차장의 행적을 보아, 신한일선언을 통해 독도 공동소유를 비롯한 일방적 양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친위쿠데타의 실패로 무산되었지만,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요.

 

한일기본조약 60주년 맞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한일 시민연대

 

2025년 5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체결 60년을 맞아 한일 시민사회 원로와 지식인 146명이 참여한 ‘공동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선언은 “1910년 8월 22일 체결된 한일병합조약 및 그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이 불법 무효임을 확인한다”며, 한일기본조약 제2조의 해석을 양국이 통일할 것을 촉구했어요.

 

2025년 한일 시민 공동선언.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책임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재일조선인 차별 철폐,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등도 과제로 제시했어요. 이에 앞서 1월에는 일본 지식인들이 도쿄에서 “한일기본조약의 일본 측 해석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시각이 담겨 있다”며, ‘병합조약 등은 원천 무효’라는 한국 해석을 따라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한일 시민사회는 기자회견, 공동선언, 범국민 서명운동, 한일 동시 기자회견 등 다양한 연대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요. 6월 20일 일본과 동시 기자회견에서는 한일기본조약 제2조의 애매한 ‘이미 무효’ 표현 대신, ‘불법 무효’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또 ‘한반도 두 국가’ 현실 반영 등 조약 해석 개정도 제안되었어요.

 

이번 발표는 2010년의 ‘한일병합조약 원천무효’ 선언의 문제의식과 시민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한일기본조약의 실질적 개정과 과거사 청산을 더욱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214명이 참여했던 선언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대법원 판결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어요. 2025년 선언이 그보다 더 많은 성과를 거두기를 기원합니다.

 

 

건진법사 ‘김건희 청탁’ 의혹
한학자 카지노 의혹 수사로 확대

 
 
한학자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 독자 제공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검찰이 수사하던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간부들의 원정 도박 의혹 사건을 이첩받은 것으로 1일 확인됐다. 검찰이 김 여사의 금품 수수 의혹 수사 중 인지한 통일교 관련 사건까지 넘기면서 특검팀의 수사 범위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최근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 박건욱)가 수사하던 한학자 통일교 총재 등의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원정도박 의혹 사건을 이첩받고 수사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건진법사’ 전성배씨에게 김 여사 청탁용으로 금품을 건넨 윤아무개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한 총재 등이 2008년부터 카지노에서 원정 도박을 한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었다.

“윤핵관이 인지수사 알려줘…보고 드렸다”

 

특검팀이 넘겨 받은 자료에는 한 총재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으로 거액을 잃은 내역과 통일교 비서실장 및 북미대륙 회장 등의 카지노 이용 기록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이 통일교 간부들의 원정도박 의혹을 수사했지만 윤 전 본부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핵심 측근의 도움을 받아 이를 무마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윤 전 본부장이 2022년과 2023년 통일교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최고위직’이 (원정도박 사건을) 외국환관리법이라고 얘기했다. 압수수색 올 수도 있으니 대비하라고 했다” “(경찰의) 인지수사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 알려줬다. (윗선에) 보고를 드렸다”고 말한 녹음파일도 입수했다. 다만 통일교 쪽에선 “종교 지도자가 선교 중심 국가와 거점을 방문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원정 도박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을 전달하려 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윤아무개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독자 제공


전씨를 통한 경찰·검찰 인사 청탁 의혹도 특검팀의 수사 대상이다. 검찰 압수수색 당시 전씨의 서울 양재동 주거지와 강남구 역삼동 소재 법당에선 유력 정치인과 경찰·검찰 간부 명함 수백장이 확보됐다. 특검팀은 검찰로부터 전씨의 휴대전화 등을 포렌식한 압수자료를 받아 분석에 들어갔다.

 

특검팀은 또 감사원이 대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한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유령 건물’ 공사 관련 뇌물 사건도 이첩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이 현직일 때 스크린 골프 시설로 검토됐다는 ‘미등기 유령 건물’의 공사비를 누가 냈느냐가 수사의 핵심이다. 감사원은 지난 1월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면서 수사 대상자로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당시 경호처장)을 지목했다고 한다. 관저 건물 관리 책임자인 윤재순 전 총무비서관도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그는 검찰 재직 때부터 윤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도 특검으로 넘어갔다. 특검팀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오세훈 캠프’가 미래한국연구소(명태균씨가 운영한 여론조사업체)에 공표 여론조사를 함께 진행할 언론사를 연결해주는 등 명씨와 밀접하게 연결된 정황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배지현  이나영 기자 >

 

‘윤석열 불법 선거사무실 운영’ 의혹도 김건희 특검 이첩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월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2·3 내란 사건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21년 대통령 선거 당시 불법 선거사무소를 운영했다는 의혹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고발된 사건이 김건희 여사 의혹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별검사팀에 이첩됐다.

 

27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시민단체인 민생경제연구소가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고발한 ‘불법 비밀 선거사무소’ 운영 사건을 특검팀에 넘겼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서울 강남 가로수길의 한 건물 사무실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은 채 무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 건물 소유주는 윤 전 대통령 결혼 때 주례를 한 정상명 전 검찰총장의 사위 남매다. 이 사건을 고발한 이제일 변호사는 “기존 담당 검사도 이 사건을 충분히 조사를 한 상태”라며 “특검에서 보강수사 이뤄지면 혐의가 밝혀질 거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이 2021년 ‘고발사주’ 의혹을 부인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고발된 사건도 특검팀으로 이첩됐다.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2021년 9월 기자회견에서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출처와 작성자가 없는 소위 괴문서”,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발사주 사건의 항소심 법원은 이같은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검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메시지를 (윤석열) 검찰총장 등 상급자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합리성 있는 의심”이라며 윤 전 대통령의 개입 가능성을 의심했다.

 

고발사주 의혹은 검찰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를 준비하던 김웅 전 의원을 통해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였던 최강욱 전 의원 등을 고발하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 검사장은 고발장 이미지와 실명 판결문을 김 전 의원 전달하고 선거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수사 및 기소 대상인 손 검사장은 직접 재판에 넘겼지만 수사대상이 아닌 김 전 의원 사건은 검찰로 이첩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전 의원을 불기소 처분했다.

 

한편 특검팀은 검찰로부터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을, 공수처에서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 관련 녹음파일 등을 넘겨받고 본격적인 수사를 준비하고 있다.  < 배지현 기자 > 

 “헌법 개별 조항은 위헌 심사 대상 될 수 없어...법원 재판 헌법소원 다툴 수 없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를 근거로 이재명 대통령의 형사재판을 재임 기간 중 미룬 법원 결정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이 잇달아 각하됐다.

 

헌재는 “헌법 84조의 위헌 확인을 구한다”고 제기된 헌법소원을 지난 24일 각하했다고 2일 밝혔다. 각하는 당사자 적격성 등 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 심리 없이 재판을 종료하는 절차다.

 

지난달 9일 ㄱ씨는 “헌법 68조 2항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판결 등으로 자격을 상실할 경우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하도록 해 국민주권의 실현과 책임 정치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 84조의 대통령 불소추특권으로 인해 재임 중 대통령에 대한 유죄 확정이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지연됨으로써 위 조항이 무력화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재는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에서 이를 심리한 뒤 각하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헌법의 개별 조항은 위헌 심사 대상이 될 수 없어 이를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은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비슷한 내용으로 청구된 헌법소원 2건도 지난 1일 각하했다. 헌재 관계자는 “법원 재판이기 때문에 헌재법 68조 제1항에 따라 헌법소원으로 다툴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판 지연 위헌 확인 관련 헌법소원 1건은 현재 다른 지정재판부에서 심리 중이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는 지난달 9일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1차 공판기일을 변경하고 ‘추후 지정’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기일을 다시 지정할 때까지 재판은 열리지 않는다. 또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1심과 위증교사 사건 항소심도 모두 추후 지정으로 연기됐다. 수원지법도 지난 1일 이 대통령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의 공판기일을 추후 지정한다고 밝혔다.      < 장현은 기자 >

해운대구 구의회 해수부 부산 이전 촉구 결의안 부결 후폭풍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5월14일 부산시 유세에서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등의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부산 지역 국민의힘 기초의원들이 해양수산부(해수부) 부산 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부결시키면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당리당략에만 매몰돼 지역 균형 발전에 필요한 목소리조차 제대로 못 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일 부산 해운대구 구의회 회의록을 보면, 지난달 19일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미희 구의원이 발의한 ‘해양수산부 부산 조속 이전 촉구 결의안’이 찬성 9표, 반대 10표로 부결됐다.

 

부산을 해양산업 허브 도시로 조성하기 위해 해수부를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지역 차원에서 내자는 취지였으나, 국민의힘 의원들이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이재명 대통령 재판 진행 등이 선행돼야 한다며 일제히 반대표를 던진 결과다.

 

국민의힘 소속 박기훈 구의원은 “이재명 후보 시절에 말했던 산업은행 부산 이전도 안 하고 있다”며 반대 이유를 밝혔으나,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해수부와 해운사 에이치엠엠(HMM) 부산 이전을 공약했었다.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였으나 3년이 되도록 진척을 보이지 못해왔다. 전임 정부의 국정과제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 정부의 지역 균형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제시한 셈이다.

 

이런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자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그간 뜨문뜨문 글이 올라오던 해운대 구의회 누리집 게시판에 최근 1주일간 200개가 넘는 비판글이 올라왔다.

 

글 대부분은 국민의힘 구의원들이 지역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 시민은 “해수부 이전은 ‘노인과 바다’ 부산에 마지막 희망이라는 걸 알 텐데, (국민의힘 구의원들이) 그 자리에 왜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며 “30년 동안 국민의힘만 찍어왔는데, 이재명 못 찍은 것 후회 중”이라고 토로했다.

 

민주당도 1일 이나영 상근부대변인 명의 논평을 내어 “국민의힘 부산 지역 국회의원 17명은 무엇을 하고 있기에 해운대구 구의원들의 행태를 묵인하느냐. 부산을 글로벌 해양 중심 도시로 도약시키려는 정부의 미래 전력을 가로막는 것이 국민의힘 입장이냐”며 “북극항로 시대를 열어야 할 지금,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가로막으려 들다니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 심우삼 기자 >